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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설, 인터뷰 등

검은비[2]

by 자한형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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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의 광주 5·18 미술 검은비’/ 상무관 검은비 존치를 위한 예술인과 시민들의 모임

5·18 사적지인 광주 동구 상무관에 전시된 예술작품 '검은 비' 앞에서 한 학생이 추모하고 있는 모습.

 8.5m(가로)*2.5m(세로) 검은색 단색회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지난 2000년부터 작가가 100kg이 넘는 쌀에 유화물감을 섞어 만든 검은쌀의 질감이 슬프게 그러나 빛으로 다가온다.

 쌀 한 톨은 작은 우주이며 생명과 죽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검은쌀로 덮혀있는 검은 표면은 모든 빛을 품고 있어 슬픔과 상처를 조용하고 따듯하게 안아주고 모두의 빛이 되는 작품이다.

 지난 2014년 여름 독일에서 3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낸 정영창 작가는 당시 독일에서 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년 그 후] 초대 작가로서 광주에 와 있었다.

 틈나는대로 오월과 관련된 장소를 돌아보며 현시대에서 바라본 새로운 5월 작품들을 구상하던 어느날 작가는 도청 맞은편에 있는 상무관을 찾았다. 상무관은 5.18민주화 운동 38주년 기념전으로 ’[검은비(black memorial)]작품이 전시 되기 전까지 문이 닫겨 있었다.

 상무관에 작품이 설치된 지난 2018년 이후 [검은비] 작품 앞에서 여러 예술가들은 다양한 예술 행위를 하였고, 외부에서의 방문, 수많은 시민들은 헌화하며 위로하고 추모하는 발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동안 광주 5·18미술은 민중미술과 한국리얼리즘 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성했다. 생생한 언어로 그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충격적인 장면을 주저함 없이 작품으로 재현해냈다. 그럼으로써 광주의 진실을 드러내고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의 큰 흐름 속에서 민중미술이라는 한 시대의 정신이 살아있는 현장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

 정영창 작가의 검은색 모노크롬(monochrome) 작업 [검은비]는 광주 5·18을 주제로 회화적으로 재구성했음에도 구체적 장소와 인물이 없다. 그래서일 것이다. 작품의 대상이나 이미지 범주에 종속되기 보다 성찰을 제공한다. 보는 이의 눈이나 감정보다는 정신을 힘껏 끌어들인다. 광주 5·18 예술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감수성을 제공한다.

 이 처럼 작품 [검은비]는 지금 여기의 동시대적 광주 5·18 예술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내포하면서 아울러 궁극적으로는 광주 5·18 미술의 맥락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상무관 복원 공사와 맛물려 정영창 작가가 광주시에 헌정한 [검은비]의 존치, 철거 여부가 논란 중이다.

 [검은비]작품 철거 논란 이후 몇차례의 예술가와 시민모임이 열렸다. 작품을 존치하되 작품을 벽면으로 이동하여 공사에 지장이 없도록 하자는 중립안을 광주시에 보냈으며, 상무관 앞에서 존치를 위한 성명서 발표 퍼포먼스가 있었다.

 광주시는 광주시민과 오월 영령에게 헌정한 [검은비]를 이제와서 철거 해야 한다는 입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향후에 행해질 상무관 복원 사업에 대한 내용적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알길이 없다.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역사 보존·복원은 의도된 단절된 과거만을 전승하는 것이 아닌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가 말했듯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현재 세대와 과거의 대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검은비]앞에서 누구나 언제나 추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 하도록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상무관, 통곡하는 쌀 / 주홍[광주매일 신문]

광주 민주광장 근처에는 상무관이 있다. 19805, 광주민주화운동 10일간의 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의 시신을 보관했던 곳이다. 태극기에 덮인 관이 가득 놓여있었고 통곡 소리와 향냄새가 진동했던 상무관에는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시신들이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는 중학교 1학년 5·18 당시, 집에 오지 않는 언니를 찾아 그 상무관을 갔었다. 언니가 저 관 속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빽빽한 관들과 향냄새, 가족의 시신을 찾고 관을 붙들고 우는 통곡 소리를 잊을 수 없다.

38년이 지난 2018, ‘검은비()’가 상무관에 전시되기 전까지 상무관 근처는 가지 않았다. 가슴이 뛰고 무서웠다. 20185, 상무관의 장소성을 살려 정영창 작가의 검은비()’작품이 전시되고 이당금 배우의 씻김 퍼포먼스에서 시민들과 함께 울고 흰 쌀 한 봉지를 받아 나오며 다시 상무관을 찾을 수 있었고 무서움도 사라졌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정영창 작가가 상무관이라는 장소에 맞는 작업을 하기 위해 쌀 한 알 한 알에 검은 유화물감을 칠해서 붙인 가로 8.5m 세로 2.5m의 스케일의 작품, ‘검은비()’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힘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깊은 블랙에 압도되는 추상 작품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쌀알 하나하나가 검은 광택을 내며 빛에 따라 반사되어 헤아릴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독일에서 인권 화가로 활동하는 정영창 작가는 낯선 유럽에서 아시아인, 한국인으로 외롭게 작업하며 살았다. 쌀이 주식인 민족, ‘은 생명을 상징하는 정영창의 메타포가 되었다. ‘검은비()’는 한 알의 쌀이 한 사람이 되고 쌀 한 톨이 별이 되어 존재를 드러내며 빛나고 있었다. 마치 민주광장에 모인 광주시민들처럼, 마치 광화문을 가득 채운 촛불 시민들처럼! 시민들은 감탄했고 저절로 눈물을 흘렸다. 그 작품 앞에서 내면의 씻김을 경험했다. 코로나로 작고하신 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도 검은비()’ 앞에서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작품이라고 감탄하셨고, 광주의 대표적인 시인, 김준태 시인은 광주의 영혼이 깃든 상징적인 몸이라고 하시며 상무관의 검은비()’ 존치에 앞장서서 철거를 막고 있다.

검은비()’ 작품을 상시에 볼 수 있게 상무관의 문을 열어준다면, 필자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 혹은 개인적으로 너무 슬픈 일이 있어서 울고 싶을 때 검은비()’를 찾아가 울었을 것이다. 광주에는 통곡의 장소가 필요하다. 정말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곳, 상무관은 통곡할 수 있는 곳 씻김의 장소다. 그 통곡으로 다시 살아낼 힘을 얻고, 오월 영령들의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장소로 상무관만큼 맞는 장소는 없다.

정영창 작가는 아무 대가 없이광주시민에게 검은비()’를 헌사 했다. 그런데 광주시가 받지 않은 것이다. ‘이미 시민의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면 다시 상무관을 열고 시민들에게 검은비()’ 작품 관람의 기회를 주고 시민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시민들이 그동안 헌화하고 묵념한 이 검은비()’ 작품을 처음 계약대로 철거할까요? 아니면 상무관 원형복원공사에 포함시켜 계속 광주시민이 헌화하고 묵념할 수 있게 할까요? 작가는 이미 시민의 것이라고 하니 시민들이 찾아가 볼 수 있게 오픈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검은비()’ 작품을 시민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관리 당사자인 아시아문화전당은 다시 상무관을 개방하고 직접 작품을 마주하고 시민이 판단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그 작품을 직접 봤기 때문에 존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직접 작품을 본 적이 없는 시민들은 그 가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후손에게 남길 명작을 스스로 파기하는 어리석은 일을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한다면, 무엇을 복원하려 하는가? 그 내용이 궁금하다. 복원 사업을 이유로 정신과 보물을 폐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월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된다. 시간이 없다. 광주시민들에게 작품을 직접보고 판단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작가가 아무 대가 없이 시민에게 헌사 한 영혼이 깃든 작품을 법의 잣대만 들이밀며 헌신짝 취급하는 행태가 예술의 도시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안타깝다.

2018518-617, ‘5·18 38주년 특별전으로 검은비 전시-공연예술계약서 작성.

20189-11,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작품으로 사용됨-전시참여승낙서 작성.

20181122, 20195월까지 검은비를 상무관에 존치한다는 내용의 이행각서 작성.

2020330, 광주시가 5·18행사위원회에 검은비 이전 요청 공문 발송.

202043, 5·18행사위원회에서 12월까지 검은비 전시 및 안내판 설치 협조 요청.

2020412, 무등일보에 정영창 작가의 검은비 기증 의사를 광주시가 보관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기사가 나옴.

2020414, 아시아문화전당이 5·18행사위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12월까지 검은비 전시 연장 및 안내판 설치하기로 함.

202063, 아시아문화전당이 12월 전시종료 후 검은비를 이전하라는 공문을 5·18행사위원회에 보냄.

20207, 광주시로부터 검은비 1차 철거 메일을 작가가 받음.

20208,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상무관의 검은비() 작품 철거·이전을 철회하라!’ 성명문 발표(5·18기념재단,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202083, 5·18기념재단과 53단체에서 검은비 보존 요구 성명 자료를 배포했으나 5·18기념재단에서 실무자의 착오였다고 성명서를 부인.

202087, ‘옛전남도청복원대책위원회위원장단회의에서 5·18기념재단과 53단체가 검은비 철거 만장일치로 합의.

202089, 위 내용을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보도 자료란에 고시.

20209, 광주시가 독일의 정영창 작가에게 작품 철거 요청 이메일을 발송하지 작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거부.

20229, 광주시가 임시 귀국한 작가를 두 번 만나 작품 회수 요청.

20221011, 광주시와 옛도청복원추진단이 정영창 작가와의 대화 자리에서 철거요청 내용증명 전달.

202210, 41명의 검은비 상무관 내 존치를 위한 시민과 예술인 서명 포함 중재안을 광주시에 전달했으나 중재안을 거부함.

20221122, 변재훈 5·18 42주년행사집행위원장이 기자회견 및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영창 작가에게 2018년에 작성된 전시참여승낙서이행각서에 따른 철거 약속 이행 촉구.

20221126, 상무관 앞에서 검은비 존치를 위한 성명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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