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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설, 인터뷰 등

가상의 인간일까.

by 자한형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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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인간일까/ 하재근

가상인간 또는 버추얼 휴먼이라는 존재가 대중문화산업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최근엔 넷마블의 가상 걸그룹 메이브가 '최초의 3D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타이틀로 데뷔했는데,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1000만 회를 돌파했다. 게임회사인 넷마블에프앤씨의 AI 버추얼 휴먼 제작 기술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음악 프로듀싱이 만났다고 한다.

이들은 완성도 높은 모습으로, '불쾌한 골짜기'를 건넜다는 평가를 언론으로부터 받았다. 불쾌한 골짜기란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커지던 호감도가 사람하고 근접한 순간 뚝 떨어졌다가, 사람과 아예 같아지면 다시 급상승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사람을 많이 단순화한 캐릭터 인형들은 사랑받는데, 사람과 유사하게 표현된 싸구려 인형들은 인기를 얻지 못한다. 과거 1998년에 데뷔한 국내 1호 사이버 가수 아담도 이런 원리로 사랑 받지 못했다. 아예 디즈니 만화영화 캐릭터처럼 귀엽게 표현되지 않고, 실제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어졌는데 사람하고 아주 같지는 않았다. 사람과 근접하기는 했지만 얼굴 피부의 질감, 표정, 몸의 움직임 등이 모두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럴 때 사람은 거부감을 느낀다.

메이브는 그러한 불쾌한 골짜기를 건넜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이건 생김새, 피부, 움직임 등이 정말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그만큼 고도화됐다는 이야기다. 이른바 '3D 리얼타임 렌더링 기술' 덕에 고품질의 그래픽 이미지를 손쉽게 제작해낸다고 한다.

과거 사이버 가수는 과다한 제작시간도 문제였다. 아담의 경우엔 기술자 5~6명이 두 달을 고생해야 2~3분 짜리 영상을 하나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식이면 제작비를 감당할 수가 없고, 설사 돈이 있어도 이 제작 속도로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빠른 호흡을 따라갈 수가 없다. 반면에 메이브 제작팀은 춤추며 노래하는 짧은 영상을 훨씬 짧은 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기술발전의 결과 가상인간이 엔터 업계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한유아는 이미 작년 4월에 싱글 앨범을 발매하며 데뷔했다. 작년 11월엔 두 번째 싱글까지 발표했는데, 음원 순위 35위까지 올랐다. 네이버가 자이언트스텝과 공동개발한 이솔도 활동을 시작했다. 버추얼 셀럽 제작사인 펄스나인이 탄생시킨 가상인간 11인조 걸그룹 이터니티도 있다. 홍보업계에서 가상인간이 더욱 주목받는다. LG전자 김래아가 대표적이다. 'CES 2021' 당시 LG전자 제품을 소개하며 등장한 그녀(?)는 그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들이 뜨는 건 언론이 가상인간이라며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때문이다. 대중도 가상인간이 나타났다고 하니 관심을 기울인다. 기업은 기존 스타보다 이들이 저렴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선호한다. 연예인 일탈 사고가 터질 때마다 업계가 가상인간에 주목한다. 가상인간은 사고치지 않고 정확하게 시키는 일만 한다는 점에서다.

그런데 바로 이점, 즉 사고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가상인간의 한계를 정확히 보여준다. 가상인간이 사실은 가상인간이 아닌, 허구라는 점 말이다. 인간이라면 자유의지가 있어야 한다.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는 일탈할 수 있다.

지금 업계와 언론이 가상인간이라고 부르는 그 존재들은 자유의지가 없는 만화영화 인물에 불과하다. 그들이 말하고 춤추는 짧은 만화영화를 제작진이 만들어 틀어주는 것이다. 회사가 만드는 대로만 나오니 당연히 일탈도 안 하고, 계약 분쟁도 없고, 과로했다고 쓰러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고분고분(?)한 존재라서 업계는 선호하지만, 그렇게 고분고분하기만 할 정도로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대중의 선호도가 크게 형성될 수 없다. 대중의 사랑을 제대로 받으려면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며 그만의 개성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선보인 이른바 가상인간 연예인들은 매우 사람 같은 그래픽일 뿐이라서 기존 만화영화 캐릭터와 차별성이 적다. 이런 존재를 언론과 업계가 가상인간이라며 너무 부풀린 느낌이다. 업계는 새로운 마케팅 소재를 원하고, 언론도 새로운 기사 소재를 원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외모가 뛰어난 만화영화 그래픽 인물을 두고, 마치 그가 실재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공모해 상황극을 하는 수준이다. 이런 B급스러운 상황이 나름 재미있고 신선하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주목 받는다. 가상인간 놀이이기도 하고, 간혹 허구의 존재에 진심 몰입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래도 정말 스타가 되려면 주체성과 개성까지 개발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