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2/임관산
노인은 마코상어에게 물어뜯긴 고기의 살점을 잘라 질겅질겅 씹었다. 이번에는 두 마리의 갈라노(얼룩덜룩한 상어)였다. 노인은 덤비라고 외쳤다. 그리고 두 손의 통증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칼을 잡아맨 노를 움켜쥐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어들을 노려보았다.
「골과 척추가 연결된 갈색 머리통과 등 위의 선이 뚜렷이 나타났다. 노인은 그곳을 향해 노에 매어 놓은 칼을 푹 찌르고 난 뒤 뽑아서 이번에는 고양이 눈깔 같은 누런 눈알을 향해 다시 한번 더 내리 찔렀다. 상어는 고기에게서 미끄러지듯 떨어져 나가며 죽으면서도 물어뜯은 살 조각을 삼키고 있었다.」
인생이 원래 그렇다. 힘든 일을 끝내고 나면 휴식이 아닌 더 힘든 일이 찾아오는 것이 인생이다. 청새치의 복수인 듯했다. 청새치가 넓고 깊게 뿌려놓은 피 냄새에 계속 상어 떼들이 달려들었다. 청새치의 살덩어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싸움의 와중에서 칼을 매달은 노도 잃어버렸지만, 노인은 결코 묶어 놓은 청새치를 풀어서 버리지 않았다. 청새치의 살덩어리를 잃을 때마다 배가 가벼워져 싸움에 유리하다고 생각했고 잃어버린 칼 대신 몽둥이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놈들과 싸우는 거지.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그가 말했다.」
계속되는 사투의 결과로 노인은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였고, 입속에는 마치 구리를 맛보는 듯한 느낌이 돌 정도로 탈진한 상태였지만, 기어코 항구에 도착했다. 항구에 도착한 노인은 자신의 판잣집에 도착할 때까지 다섯 번이나 쉬어야 했다. 그리고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졌다.
이튿날 마을의 어부들은 노인의 조각배에 묶여있는 5.5미터짜리 청새치의 뼈에 놀라 웅성거리고 있었다. 관광객 중 한 여자는 그 청새치 등뼈의 거대한 크기에 놀라 “저게 뭐죠?”라고 물었다. 부두 선술집의 웨이터가 ‘티부론(상어)’라고 말하자 여자는 “상어가 저토록 잘생기고 멋진 꼬리를 달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청새치는 잃었지만, 노인에겐 자부심이 남았다.
노인은 소년 ‘마놀라’의 격려와 위로 속에서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사자 꿈을 꾸면서......
파멸하되 패배하지 않는 인생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말할 수 없어도 왜 사는지는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그렇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행복할 것이라 믿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불행할 것이라 믿는다면 이 힘겨운 생을 지탱할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등 생명체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생존이 아닌 행복한 삶을 위해 살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보통 행복의 요소로 돈, 건강, 가족, 사랑 등을 이야기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모두를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상태를 간과한다면 그것은 나무 한 그루에 매몰되어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전체집합이 없는데 어찌 부분집합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전체집합의 이름이 바로 ‘자긍심’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위에 말한 행복의 요소 중 그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다. 자신도 싫어하는 존재를 타인이 사랑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을 존재론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자기 존재에 대한 긍지가 있을 때에만 그 존재가 빛나는 생명체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이 나에게 굴욕을 강요한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모욕을 감수하라고 말한다. 이들의 말대로 오늘 내가 무릎을 꿇어 내일 행복해질 수 있다면 무릎을 꿇으면 된다. 그러나 아니다. 나로부터 자긍심을 빼앗아 ‘착한 머슴’으로 만들려는 불순한 선동이다. 오늘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내일인데 어찌 오늘의 나를 멸시하며 쌓은 시간들로 행복한 내일을 만들 수 있겠는가.
맞서 싸워야 한다. 파업하지 않는 노동자, 파업할 줄 모르는 노동자는 그 누구의 존중도 받을 수 없다. 그의 통장에 찍히는 월급이 생존이야 유지해 주겠지만 그를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다. 공항에 직장 상사를 마중 나갔을 때 자신의 캐리어를 노룩 패스로 내게 던진다면, 자신이 소유한 회사의 비행기에서 일한다고 무릎 꿇고 라면을 끓여 오라고 한다면, 심지어 사장이 사무실에서 내 뺨을 때린다면, 어깨 펴고 가슴 내밀고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승산 없는 싸움이다. 모든 인생의 종착역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 마지막은 패배로 끝나게 되어 있다. 이 마지막 단 한 번의 멋진 패배를 위해 우리는 모든 부당한 굴욕과 모욕을 거부해야 한다. 파멸의 협박에 굴하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한다.
"그대가 자긍심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릇되다고 알고 있는 일을 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것보다, 옳다고 알고 있는 일을 함으로써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낫다."
-윌리엄 존 헨리 보에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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