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지혜를 벤치마킹하라/김형철
"저 아이를 반토막 내라! 그리고 반씩 나눠줘라" 청천벽력 같은 판결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무슨 영아 살인도 아니고 왕이 판결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내린단 말인가!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있는 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면 이렇게 된다. 두 여인이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다. 각자 자기 아이를 잘 키우고 있던 어느 날 밤에 일이 벌어진다. 한 여인이 잠결에 뒤치락 거리다가 자신의 아이를 깔아 뭉개서 질식사시키고 만 것이다. 이 여인은 살그머니 다른 여인의 아이를 자신의 죽은 아이와 바꿔치기 한다. 그 다른 여인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기가 품고 있는 애는 죽은 애였다. 더군다나 자기애도 아니다. 보아 하니 옆에 있는 다른 여인이 멀쩡한 자기 아이를 떡하니 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무리 돌려 달라고 해도 꿈쩍도 않는다. 언성을 높이면 항의해봐도 막무가내다. 이럴 땐 소송을 제기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왕 앞에 온 거다.
자, 왕의 이 황당한 판결에 두 여인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한 여인은 왕의 명령에 복종한다면서 그렇게 난 반토막이라도 가져 가겠다고 한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때에는 그것이 가장 공평한 일이란다. 그러나 또 다른 여인은 울면서 말하기를 그럴 바에는 그 아이를 차라리 포기하겠단다. 여러분 생각에도 두번째 여인이 친모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죽은 아이의 반토막이라도 가져가겠다는 것은 애를 죽이자는 말이다.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 애를 양보하겠다는 그 사람이 진정으로 그 아이를 사랑하는 친모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아이가 죽은 것은 물론 슬픈 일이다. 그런데 그 대안으로 남의 아이를 몰래 가로챈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이제 그것도 모자라서 남의 아이도 죽이겠다는 그 심보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요즘 같으면, DNA검사 한 번만 하면 다 끝난다. 하지만, 증거도 없고, 목격자도 없는 당시 상황에서 친모를 가려내는 왕의 재치있는 판결에 우리는 박수를 보낸다.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솔로몬의 지혜 이야기다.
한 지역에 도로가 지나가기로 결정이 난다. 대개 도로가 나면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그 지역에 여러가지 혜택 주어지게 마련이다. 병원 가기도 편해지고, 대도시에 나들이 하기도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일인지, 주민들의 표정이 영 밝지가 않다. 사정을 알아 보니, 그 도로는 고속도로라서 그 지역을 지나치기만 하고, 진출로가 하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높은 고가도로가 생기니 그 밑에서 생활하는 데 그림자만 지지 나아질 게 하나 없다. 소음, 분진도 덩달아 많아 질 뿐이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게다가 그 고속도로에 자기 지역이름이 붙여진다고 명예가 올라갈 일도 없다. 자, 이제 단체로 민원을 넣자는 데 지역 군민들은 하나가 된다. 청원 결과 그 고속도로에서 지역으로 들락날락하는 진출로가 추가되는 것으로 설계가 변경된다. 모두가 반기는 결정이 나서 좋아하는 것도 잠시, 이제부터 지역민간 갈등은 시작된다. 진출로를 어디로 낼 것인가를 두고 생각들이 다 다르다. 그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서 자신에게 돌아 올 이해득실이 갈리기 때문이다.
진출로 입지를 두고 두 가지 안이 나왔다. 두 안은 각각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안을 주장하다가 두 번째 안이 유력한 것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에 첫번째 안을 주장한 측에서 두번째 안은 결국 특정 권력자 집안에 특혜를 준다고 폭로한다. 그래서 조사를 해 봤다더니 과연 그 진출로 근처에 그 권력자 일가의 땅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첫번째 안을 지지하는 쪽에도 또 다른 권력자의 땅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사건을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이 모든 소란이 이기심에서 시작된 것 같다는 인상을 풍기는 것 자체가 못마땅하다. 게다가 특정권력이 이익을 보는 것에 따라 공공정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생기니 더욱 기분이 상한다. 이런 사실들이 과거 같으면 아예 공론화되지도 않은 채 조용히 해결(?)되었을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 정도로 씨끄러워지는 것만 보더라도 "세상 참 많이 민주화되었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권이 엎치락 뒤치락하지 않았다면, 이런 결정에 대해서 감놔라 배놔라 할 수조차 있었겠는가!
양측의 주장이 씨끄워도 너무 씨끄럽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주무 장관이 완전 백지화를 선언했다. 대한민국이 그런다고 조용해질 나라는 이미 아니다. 백지화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놓고 또 설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첫째, 진출로 설치를 백지화하겠다는 건지, 둘째 고속도로 설치자체를 백지화한다는 건지, 셋째 다음 정권에서 결정하기로 한 건지. 이 세가지 중 어느 것을 의미하는 지를 놓고 또 다음 말싸움이 이어진다. 민주주의가 씨끄러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씨끄럽기만 하고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면 그것은 엄청난 국력 낭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과거 환경문제를 빌미로 건설이 지연됨에 따라 막대한 손실을 감수한 기억을 벌써 잊었는가. 말싸움을 위한 말싸움에도 진절머리가 난 국민들이다. 그런데 숨겨진 이권을 가져가려는 싸움에는 더욱 구린내만 나기 마련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솔로몬의 지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룰 수 밖에 없다. 솔로몬은 친자확인 소송에서 지혜를 발휘했다. 그런데 고속도로 노선을 결정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동종업계에서 있었던 베스트 프랙티스(모범사례)를 따라하는 것은 표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종업계에 있었던 일을 가져와서 자신의 사정에 맞도록 적절하게 조절해서 적용하는 것은 벤치마킹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정치는 솔로몬의 지혜에서 배울 수 있다. 아니 어떻게 해서든지 배워야 한다.
솔로몬 판결의 핵심은 무엇인가? 솔로몬의 판결의 목적은 친모를 가려내는 데 있지 않았다. 누가 더 아이를 더 잘 보살펴주면서 키워줄까? 당연히 친모다. 물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렇다. 그런데 왜 아이의 이익을 가장 잘 보살펴 준다는 사람을 찾아 낸다는 판에 아이를 둘로 가르려고 했는가? 솔로몬은 "아이를 죽여버리겠다."는 악마의 역할을 자처하면서까지 그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거다. 이혼재판에서 중요한 부분은 누가 잘못을 먼저 저질렀는가? 재산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 등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녀양육권을 누가 가져가는가이다. 일단 엄마에게 그 양육권을 우선적으로 준다. 왜? 통상적으로 엄마가 아이를 더 사랑하고 잘 키운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가 예를 들어 마약, 알코올, 도박 중독자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문제는 달라진다. 솔로몬 재판의 기발함은 그러한 특별 사정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의 최대이익을 추구할 사람을 찾아 준 것이다. 그럴려고 아이를 죽이겠다는 퍼포먼스를 보인 것이다.
마을에 도로 진출로를 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 방향으로 진출로를 내는가에 따라서 어느 권력자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는가는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느 방향으로 진출로를 내는 것이 주민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부합하는가이다. 오늘날 친자확인 소송은 DNA검사라는 첨단과학기법에 따르는 데에 이의가 없다. 비록 그만큼 객관적이고 정확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타당성조사라는 기법이 있다. 전문가의 의견과 주민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서 정치인이 결단을 내리면 된다. 그것이 오늘의 문제에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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