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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남선

by 자한형 202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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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1957)

일제강점기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등을 저술한 문인.언론인, 사학자, 친일반민족행위자.키워드대한유학생회청년학우회조선광문회동명사문화동원론개설1890년 서울 출생으로, 본관은 동주(東州), 아명은 창흥(昌興), 자는 공육(公六)이다. 호는 육당(六堂한샘·남악주인(南嶽主人곡교인(曲橋人육당학인(六堂學人축한생(逐閑生대몽(大夢백운향도(白雲香徒)이다. 관상감(觀象監)에서 근무하며 한약방을 경영했던 아버지 최헌규(崔獻圭)와 어머니 진주(晉州) 강씨(姜氏)3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생애 및 활동사항1902년 경성학당에서 수학한 후 1904년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부립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에 입학하였으나 곧 중퇴하였다. 1906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사범부 역사지리과에 입학하였으며, 같은 해 7월부터 대한유학생회에서 발간하는 대한유학생회보의 편집인으로 활동하였다. 19076월 와세다대 정치학과 주관의 모의(模擬) 국회가 조선국왕이 일본에 알현하러 오는 가상의 상황을 토의 안건으로 삼자 이에 반발하는 한국인 유학생의 총대(總代)를 맡았고, 이로 인해 학교에서 퇴학당했다.1906년 겨울 귀국 후 신문관(新文館)을 설립하고 190811월 잡지 소년(少年)을 출판하였다. 19103월 안창호(安昌浩)가 설립한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의 평사원 겸 변론과장을 지냈고, 같은 해 10월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설립해 조선의 고서(古書)를 발간하고,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고자 하였다.한일강제병합 이후에도 1912붉은 저고리, 1913아이들보이, 1914청춘등의 잡지를 발행하였다. 19193·1운동 때에는 독립선언서를 작성해 일제에 체포되어 28개월간 복역하기도 하였다.192110월 출옥하였고, 1922년 동명사(東明社)를 창립해 주간지 동명을 발행하였다. 1924시대일보를 창간하였고, 1925년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 참여하였다. 1922동명조선역사통속강화개제(朝鮮歷史通俗講話開題)를 연재하였고, 1926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과 근대 최초의 창작 시조집 백팔번뇌(百八煩惱)를 간행하였다. 같은 해 옛 백제 지역을 방문한 심춘순례(尋春巡禮), 1927백두산근참기(白頭山勤參記), 1928금강예찬(金剛禮讚)을 발표하였다.192810월 조선사편수회 촉탁이 되었고, 같은 해 12월부터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312월 조선총독부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회 위원, 19352월 조선총독부 임시역사교과용도서조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문화동원론(文化同源論)’을 주장하면서 일본 신도(神道) 보급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4월 조선계회(朝鮮禊會)의 고문을 맡았고, 1936년 심전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출판된 강연집에 조선의 고유신앙[朝鮮固有信仰]을 발표하였다.19366월부터 19383월까지 3년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193729일부터 11일까지 3회에 걸쳐 매일신보조선 문화의 당면과제[朝鮮文化當面課題]를 게재하였다.19372월 조선총독부 박물관건설위원회 위원을 맡았으며, 중일전쟁 발발 후 19384월 만주로 건너가 만몽일보(滿蒙日報)의 고문이 되었다. 19395월 만주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로 취임하였으며, 건국대학 연구원의 민족연구반과 역사연구반에 소속되었다.193711재만조선인통신39호의 만주가 우리에게 있다, 삼천리193810월호의 건국대학과 조선청년, 19397월호의 전쟁과 교육, 19416월호의 동방고민족의 신성(神聖) 관념등 일본의 전쟁수행을 지지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하였다.19418월 흥아보국단 준비위원을 맡았고, 같은 해 12월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이 되었다. 매일신보를 통해 1943115일자 보람있게 죽자, 1120일자 나가자 청년학도야, 1125일자 오직 감력할 뿐, 194411일자 아시아의 해방, 194537일자 승리엔 젊은이의 힘등을 기고하였으며, 시국 선전용 대중잡지였던 신시대를 통해 19433월 제33만주건국의 역사적 유래, 19442월 제42성전의 설문(說文)등의 글을 발표하였다.194311월 일본의 조선인 유학생에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선배 격려단에 참여하였으며, 같은 달 일본의 조선인 가정 방문과 간담회,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1114일과 20일에는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강당에서 열린 반도출신출정학도궐기대회에서 학병 지원 관련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이밖에 잡지 방송지우(放送之友)19443월 제2권 제3도의(道義)는 이긴다, 같은 해 4월 제2권 제4신세계 건설의 도화선, 19451월 제3권 제1특공대의 정신으로 성은(聖恩)에 보답합시다등의 글을 발표하였다.광복 후 19492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곧 보석으로 풀려났고, 같은 해 5월 공판을 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해군전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였고, 휴전 후 서울시사편찬위원회 고문을 맡으며, 언론을 통해 기고활동을 지속하였다. 19571010일 사망하였다.최남선의 일제시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조 제4·9·11·13·20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690~730)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친일문학론

(임종국, 민족문제연구소, 2013)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위원회,현대문화사,2009)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최남선 연구

(류시현, 역사비평사, 2005)한국근대문인대사전

(권영민, 아세아문화사, 1991)육당 최남선 전집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현암사, 1975)육당 최남선

(조용만, 삼중당, 1964)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최남선(崔南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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