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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 6

물 때

by 자한형 2023.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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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때 / 장금식 - 제11회 정읍사문학상 최우수상

물이끼 같은 물때다. 집중적으로 내린 장맛비의 폭격에 마음을 드러낸 색. 막지 못한 비바람, 부조화와 불균형의 연결고리에 마지못해 끼어있는, 못내 아픈 풍경의 색이다. 진하고 연한 초록과 거뭇거뭇하고 우중충한 초록 바닥이다. 자연 속, 큰 바위틈에 낀 녹색 이끼를 보면 절벽 모습이 어찌 저리도 아름다울까, 신의 조화라며 감탄을 연발할 텐데. 단독주택 시멘트 바닥 마당에 낀 물때는 미와 조금 거리가 멀다. 지우고 싶다.

깔끔한 성격 때문이 아니고 색에 대한 어떤 편견 때문에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보여주기 싫은 내 상처의 환부 같아서다. 그러나 추하고 보기 싫은, 흉한 것에서도 미를 찾아내는 예술가도 있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언뜻 보면 흙 마당에 웃자란 잔디 같다. 추함이 있어야 미가 돋보이고 가시밭길을 지나 봐야 험난한 통과의 의미를 아는 이치니까. 그래도 이런 바닥을 보면 닦아내야만 직성이 풀린다.

장마철이면 이삼일에 한 번씩 물때를 벗긴다. 손님이 오기라도 하면 익숙하지 않은 마당에 미끄러질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어서다. 집주인인 나는 조심하면 되지만 무엇보다 미관이 지저분한 게 걸려 온 힘을 기울인다. 오른손 왼손 번갈아 닦고 물 호스로 씻어내린다. 이마에 땀이 비 오듯 한다. 바닥이 규칙적으로 깎아 놓은 듯 평평하면 청소도 수월할 텐데 그렇지 않아 힘들다. 살짝 파인 곳도 있고, 조금 봉긋한 곳도 있어 서로 다른 높낮이의 바닥은 가지런하지 못한, 힘없는 내적 절규가 만들어낸 요철 문양 같다.

거무죽죽한 물때가 그려놓은 지도는 동그라미도, 세모도, 네모도 아닌 정형화된 어떤 모양이 아니다. 항아리 주변이나 화분 주변엔 물의 마찰이 더 많았던지 물때가 짙다. 옴폭 들어간 곳도 물이 고인 탓에 물때의 겹이 두껍고 시선을 돌리게 한다. 자꾸 보고 있으니 얕은산, 높은산, 살짝 가파른 구릉, 낮은 언덕, 높은 언덕, 집 근처 동산을 한곳에 그려놓은 등고선 같다. 시공간의 차이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비비대다가 그만둔 인생들의 집합소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그들의 발자국이 남긴 흔적, 생의 지도 같은 것이다. 두께나 색의 명도나 채도에 따라 삶의 상처가 깊고 얕음을 보여준다. 색상과 채도가 없고 명도의 차이만 있는 암울한 내 처지의 현주소 같다.

늘 평지에서 오밀조밀한 반경만을 그리며 왔다 갔다 하던 삶이 가파른 언덕에서 헉헉거리는 안쓰러움으로 바뀌어 가끔 자기연민에 빠진다. 남편을 잃은 후, 내 충격은 말할 것도 없고 아들마저 공황 상태에 빠져 정신병원 도움을 받아야 했다. 병원에 홀로 두고 헤어질 때, 복도에서 둘이 끌어안고 한없이 목놓아 울던 그 날, 나 홀로 집에 돌아와 고통의 문을 닫고 싶어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통곡하던 그 날, 갑작스레 맞닥뜨린 현실을 주체할 수 없어 하늘나라로 간 남편을 보겠다고 목 빼고 하늘을 바라보던 그 날, 그 마당이라 더 그렇다. 재난은 겹쳐오고 아픔과 슬픔이 폭우 내리듯 내 앞을 가로막던 그때 그 마당이다.

마음 깊은 곳까지 축축함을 말리지 못한 지가 2년이 넘었다. 목젖까지 차오른 물기를 다 삼키든지 한 줌 물기 없이 완전히 말리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을 객관화하면 받아들이기가 수월해지려나. 숨 가쁜 삶의 언덕에서 조심스레 발을 내디디며 이제 한 발자국씩 내려가고 싶다. 조금 상황이 좋아졌다고, 잠을 조금 잘 수 있다고 안도하면 발을 헛디딜까 두렵기도 하다. 다시 이중의 고를 겪게 되면 재생의 힘은 아득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안 생길 수도 있으니까.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있다.”라는 안희연 시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의 시어 하나하나에 기대고 싶다. 내 가슴이 갈기갈기 찢긴 처절한 풍경에 위안을 주는 시다. 아픔과 빈 둥지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 남은 세 식구가 이리저리 헤매며 에둘러 제 길을 찾아오기까지 시간이 흘렀다. 시인의 말대로 시간은 반으로 접혀있고 한참 지나고 보니 다른 풍경이 되어있다.

언덕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은 고뇌의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내리막길엔 조금의 여유가 생긴다. 길옆의 푸른 잎과 날아드는 나비를 본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도 들린다. 하늘도 우울한 색이 아니고 새파랗다. 처절함과 비참함을 걷어낸 고유한 색이다. 푸른 잎도 나비도 새도 하늘도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생각하니 잃어버림에 대한 다른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온다.

물때를 반쯤 청소했다. 상처의 반은 지워진 듯하다. 빨리 해치우자는 마음은 급한데 몸이 따르지 않는다. 고통을 잠시 잊은 듯 벤치에 앉아 커피 한잔하며 청소된 부분을 본다. 허리를 편다. 손에는 벌써 물집이 생겨 찌르는 듯 알알하나 자국 없는 안경을 낀, 얼룩 없는 거울 앞에 선 듯 기분이 맑아진다. 청소한 쪽과 남은 쪽의 명암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남은 절반도 서둘러 지워야겠다 싶어 다시 호스와 솔을 들고 빡빡 더 세게 문지른다.

물때 지우기는 보기 싫은 내 아픔 같아 한 것이지만 얕은산을 지나 구릉을 넘고 헉헉거리며 언덕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삶을 마주한 듯, 고통의 시간을 절반 이상을 접은 듯한, 씻는 과정의 씻김굿인 셈이다. 상처로 쌓인 때도 같이 쓸어냈을 것 같다. 어둠과 아픔을 회피하진 않았고 그저 시선을 돌리기만 한 것 같은데 어두컴컴한 진초록 물때가 내 삶을 조명하고 어둠이 밝음을 안내해주었다.

일그러져 보였던 바닥이 평평하게 보인다. 비틀거리던 감정을 추스르고 감정에 얼룩진 물때 벗기느라 굽혔던 허리 다시 올곧게 편다. 흔들리던 마음을 조금씩 땅바닥에 붙여가며 이제 시간을 반의반으로 접는 연습을 해야겠다. 마당의 질감이 발바닥에 착 붙는다. 여름 장마가 가을에 시간을 내줄 무렵이면 바람이 낙엽을 내 마당에 소복이 옮겨놓을 것이다. 얼룩진 생의 질곡을 덮어주는 따뜻한 이불이 되어주듯이.

앞산이 마당을 내려다본다. 숲에서 지저귀던 새들이 내 마음 마당에 포르르 날아든다. 초저녁달 그림자를 품은 마당은 저녁 햇살을 숙연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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