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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갑진년 가족행사

by 자한형 2024.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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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가족행사

지난 5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아내가 오후 2시에 행사가 경희궁에서 있었다. 5시 용산발 정읍행 KTX 편 열차로 가는 여정이었다. 중형의 캐리어를 끌고 광역버스로 서울역까지 갔다. 오늘의 교통체증의 문제는 서울역 집회에 있었다. 오후 세 시부터 시작된 집회라 그 여파가 2시간이 지나서도 남았다. 서울역 환승센터에서 내려 지하철 1호선으로 용산역으로 가서 KTX플랫홈에서 18호차로 걸어가던 중에 뒤따라 오는 아내와 조우해서 함께 열차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열차가 서대전부터 여러 역에 정차하는 관계로 소요시간이 길었다. 2시간 30분이 소요되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읍역에 가까워질 때쯤에 아내가 역 근처의 치킨집에 치킨을 주문했다. 간장, 양념, 후라이드 등으로 4마리를 주문해서 도착시간쯤에 찾으러 가기로 했다. 정읍역에는 처남이 차를 끌고 마중을 나왔다. 곧바로 치킨집으로 이동했다. 치킨은 내가 찾으러 가고 아내와 처남은 근처의 편의점에 들러 여러 물품을 구입했다. 장성의 한 펜션이 오늘의 숙박지였다. 이미 도착할 시간에 사위는 조용했고 밤은 깊은 시간이었다. 아래층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와 행사를 시작할 준비에 분주했다. 유사는 세종과 서울팀이었다. 케잌에 초를 꼽고 생일축하 노래를 전가족이 합창했다. 엄청난 대식구가 아닐 수 없었다. 전례없이 육 남매가 모두 모인 자리였다. 축하금을 장인, 장모님께 전달했고 막내처제가 장인, 장모님께 드리는 편지글을 낭독했다. 처형은 낙상사고를 당해 발에 반기브스를 하고 있어 거동에도 불편함이 있었다. 장조카 호진이는 잠깐 숙소에 들렀다가 오늘 휴가를 복귀하는 길이어서 정읍에서 이동하는 중에 잠깐 고모와 통화를 하기도 했다. 최고의 소식은 네 째 사위의 대학교 총장 영전이었다. 교수들의 투표에 의해 진작에 선출이 되었으나 교육부에서의 공문이 얼마 전에 시달되어 이제야 명실공히 총장으로 승인된 것이었다. 가문의 영광이었고 천우신조였던 관운이었다. 취임 축하박수가 우뤠와 같이 터졌다. 나베요리가 인기 만점이었다. 야채와 고기가 얇게 접어진채 포일 같은 둥근 케이스에 만들어져 있었다. 육수를 붓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요리였다. 끓여진 나베를 소스에 찍어 맛보았다. 목포 선원의 스승님께서 장모님의 쾌유를 위해 금일봉을 보내 주셨다. 일차적인 가족행사가 밤늦은 시간에 마무리가 되었다. 처형네 가족이 광주로 귀로에 올랐다. 남은 가족은 연태고량주에 하이볼을 만들어 취향대로 마시면서 담소를 나눴다. 아이들은 치킨을 먹으면서 아이들끼리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처조카 현성이는 전기차가 접촉사고로 인해 렌터카를 임시로 끌고 오기도 했다. 정선의 코레일에 근무중인 원경이는 휴일근무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밤이 깊어지는 때에 피곤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1층 배정된 방으로 내려와 잠자리에 들었다. 임플란트의 식재로 인해 음주를 할 수는 없어 식혜를 홀짝이며 아쉬움을 달랬다. 아내는 유사로서 여러 모로 준비하고 치다꺼리를 하느라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처제 두 분도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옆에 계곡이 있는 휴양지여서 공기는 맑았고 바람도 시원했다 절로 피서가 될만한 휴양지였다. 아침식사는 김치찌개였다. 가족별로 토종비결을 보았다. 액땜을 위해 부적을 써야 할 이들도 있었다. 우리가족은 모두 순탄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운세가 나왔다. 11시가 펜션에서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가족모두가 차에 분승해서 백양사로 향했다. 20분 정도를 달려 백양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신록이 푸르러가는 5월의 싱그러움이 그대로 전해졌다. 대웅전에 들어가 아내와 가족들은 삼배를 올리고 시주를 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가족별로 기념촬영을 했다. 다음의 목적지는 삼채백숙을 전문으로 하는 동창식당이란 곳이었다. 예약을 해 두었기에 음식이 금방 나왔고 다 끓여놓았던 백숙과 닭볶음탕이어서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모주를 한잔씩 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씩 했다. 이제는 가족행사가 마무리되는 시간이었다. 나와 아내는 갈 길이 달라 이산가족이 되었다. 아내는 오늘 저녁에 5.18 밤샘 행사가 있어 그 행사에 참석이 예정되었다. 나는 홀로 처제네 차로 오송역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수서행 SRT를 타고 귀로에 올라야 했다. 아내는 내일 월요일 하루를 연가를 냈다. 오송에 도착하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열차 출발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조치원 읍에 있는 막내처제의 작업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귀로에는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가랑비처럼 내렸는데 차츰 빗줄기가 굵어졌다. 처제네 작업실은 널찍하고 여유로웠다. 한달에 한 두 차례 방문해 작업을 하고 활용을 하고 있었다. 세종시보다 건물 임대료가 무척 저렴하다고 했다. 작업실의 맞은 편에는 색소폰 연주실이 있었다. 조금후에 막내처제가 도착했다. 그리고 커피를 끓여서 한잔씩 했다. 이제는 오송역으로 가서 귀경 KTX 열차로 탑승하면 갑진년 가족행사가 마무리되는 셈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연중 4 차례에 걸쳐 가족행사를 했는데 코로나 시기에는 제대로 전체 가족행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제는 광주 근교에서 행사를 하는 식이 되었고 3차례 정도의 행사가 있는 형국이다. 장성의 남창계곡에서 제대로 절경도 감상하지 못하고 급하게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한밤중이 되었다. 모든 가족의 강녕함을 기원해 본다. 지난 한 해 동안 장인, 장모는 거의 사경을 헤맬정도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이제는 건강이 충분히 회복되어 운신에는 전혀 지장이 없게 되었다. 이번 펜션에서의 행사도 본래는 연초에 예약되었는데 이제야 실행이 된 곡절이 있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장인의 생신에 맞춰 갑진년 가족행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장인어른은 모든 가족이 한사람도 어긋나고 잘못됨이 없이 바르게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에 감개무량해하기도 했다. 장인은 9순에 이른 연세이시니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홍복이 아닐 수 없었다. 처남과 처제의 극진한 간호 덕이었다. 감사를 드린다. 올 갑진년 한 해도 모든 가족이 만사형통하고 승승장구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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