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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양산을 다녀오며

by 자한형 202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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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을 다녀오며

지난 주말이었다. 양산을 가게 되었다. 모친이 전날에 막냇동생의 도움을 받아 입원을 했다. 제대로 운신이 어려워져 갑작스럽게 입원을 한 듯했다. 막내동생으로부터 부산을 한번 다녀가라는 카톡이 있었다. 본래 예정은 일요일쯤에 한번 다녀올 요량이었는데 입원으로 인해 하루 앞당겨지게 되었다. 열심히 SRT, KTX 열차표를 조회했지만 쉽지 않았다. 주말의 표구하기는 거의 하늘의 별따기였다. 어제 밤늦게 열차표를 구한 것이 9시 30분발 물금행 KTX표였다. 간단하게 행장을 꾸려 가방에 넣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워낙 고령이셔서 병고를 잘 이겨내고 견뎌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 한 시간쯤 일찍 서울역에 도착해서 식당에서 간단히 곰탕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7년 여전의 김천구미행 KTX를 탔던 2년 동안의 마지막 직장생활도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장마기임에도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우산은 챙겼다. 막내동생은 부산대양산병원에 의과대학 교수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주말 동안 서울행을 하게 되었다. 2시간 여를 달려 물금역에 당도했다. 택시로 양산병원에 갔다. 로비 안내데스크에서 면회를 문의했더니 면회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다. 환자가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면회를 하는 식이라는 얘기였다. 막내동생의 전해준 대로 동생의 교수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출입증 카드를 갖고 병실로 찾아들어갔다. 입구에서 출입증을 제시하고 통과를 했다. 모친은 5인실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입원해 계셨다. 통증치료용 진통제 링거를 맞고 있었다. 점심시간은 지났다. 막냇동생이 하라고 했던 양치질용 물과 컵을 대령해서 모친이 양치를 할 수 있게 도와드렸다. 동생덕에 병실까지 접근할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 간호사가 와서 본래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금지되는 병동이라는 얘기였고 잠깐 얘기를 하고 퇴거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저녁식사시간에 맞춰오겠다고 하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병원 바깥으로 나와 인근에 있는 마트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복숭아와 귤 음료 위라는 것을 사들고 교수실로 왔다. 5평쯤의 사무실이 교수실이었다. 한켠에는 세면대가 있었고 책상에 컴퓨터와 TV가 세팅되어 있었고 한켠에는 책장 옷장 등이 비치되었다. 바닥에는 선풍기가 있었다. 복숭아를 씻어서 준비를 했고 저녁 식사시간 5시에 맞춰 병실로 갔다. 식사는 죽이 나왔는데 찬은 밥처럼 갖가지 성찬이었는데 모친은 식욕이 없으신지 죽과 국의 국물만 드셨다. 아내와 통화를 하고 모친을 바꿔드렸다. 딸인 여동생과도 통화를 하게 해주었다. 중식은 병원 바깥으로 나가서 콩국수집에 가서 콩국수를 맛보았다. 특이하게 충무 김밥도 세트메뉴로 있었다. 병실에는 냉장고가 비치되었다. 음료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모친을 위해 양칫물을 대령했다. 약도 복용했다. 내일 아침 식사시간에 오겠다고 얘기를 한 후 병실에서 나왔다. 동생의 교수실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식사는 간단히 베이글을 하나 사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맛보았다. 간단히 양치를 하고 세면후 취침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머리를 감고 세면을 한 후 병실을 찾았다. 아침식사를 하시고 약을 복용하고 양치질을 하는 시간까지 거의 한 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그리고 병실을 나서서 부산집으로 향하는 전철을 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전철역까지 10쯤 소요되었다. 전철을 타고 부산집으로 향했다. 모친이 입원하기 전에 요양보호사가 챙겨둔 입원용 소지품을 담아둔 가방을 갖고 오는 것이 필요했다. 전철역으로 집까기 28개 구간이었다. 거의 한시간 여가 소요될 것으로 여겨졌다. 전철역에서 내려 부산집에 갔다. 부친은 TV를 켜놓은 채 주무시고 있었다. 가방을 찾아 부친에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다시 전철을 탔는데 공교롭게도 호프행이어서 다시 다음 전철을 기다려야 했다. 3구역쯤을 남기고 있었는데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양산부산대병원역에 내려서 병원까지 택시를 호출해서 병원으로 들어왔다. 거의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어서 일단 병원 내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육개장을 시켜서 맛보았다. 그리고 병실로 올라갔다. 종이가방 두 개를 갖다드렸다. 개인 소지품 함에 종이가방을 챙겨두고 식사를 챙겼고 양칫물을 대령했다. 거의 한시간 정도가 걸렸다. 옥수수음료를 한팩 맛보셨다. 그리고 복숭아도 한 조각 맛보셨다. 병실의 한 환자는 퇴원했고 다른 환자가 입실을 하기도 했다. 휴대전화기의 충전기를 살펴보았더니 충전이 원활하지 않았다. 연결기기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병원근처의 마트에 가서 충전기를 하나 사 왔다.. 그리고 병원 근처의 산책길 메타세쿼이아길을 걸으며 산책에 나섰다. 병원내에는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치과대학 한의과대학 등이 있어고 평생교육원까지 운영을 하는 하나의 타운으로 보였다. 병원도 치과병원, 한방병원, 대학병원 등으로 구분되었다. 장례식장, 소아병동 등도 있었다. 규모와 크기가 엄청나 보였다. 저녁 식사시간에 맞춰 다시 병실로 갔다.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았고 약을 복용하게 했고 양칫물과 컵을 준비해서 양치질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작별을 고했다. 쾌차를 기원했고 하루속히 기운을 차리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다시 연구행정동으로 와서 동생의 연구실에 출입증을 놔두고 귀경길에 올랐다. 택시를 호출해서 병원에서 물금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물금역 근처의 막국수 집에서 회막국수를 시켜서 먹었다. 먼저 보리밥과 열무김치가 먼저 나왔다. 그것을 맛본 후 막국수를 먹었다. 물금역으로 들어가 KTX로 귀경길에 올랐다. 늦은 시간이었고 표가 없어 특실표를 끊은 탓에 편안하게 귀경할 수 있었다. 양산은 이제 부산의 위성도시로서 발전하고 있는 곳이었다. 아파트 등이 즐비했다. 전철역까지 들어와 있으니 부산 생활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녹지공간도 풍부했고 전원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을 듯했다. 12일간의 양산행이 마무리 되었다. 고령의 모친이 계속적으로 병고를 겪고 있는 형편이다. 쾌차하시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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