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에 물들다 〈1〉 망년 너머 신년/김태완
“나는야 구두닦이 슈우샤인 보이, 어린 희망이 있소” (반야월)
‘이제 얼마나 남았을꼬, 아마 숨이 꼴깍하는 그 순간까지’(황지우)
‘나는 허공을 딛고 당신을 견디고 있었다’(김미선)
[편집자 주( 註)]
오랫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오던 ‘아(阿)Q의 시 읽기’ 연재를 마칩니다. 2023년 새해부터는 새로운 문학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기존처럼 좋은 시를 소개하되 수필, 소설, 희곡, 노랫말까지 장르를 넘어 좋은 문학, 문장을 소개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 계속 부탁드립니다.
몇 해 전 서울 인왕산 범바위에서 바라본 일출의 모습이다. 서울의 도심이 한눈에 보인다. 사진=조선DB
황지우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1998)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뒤편 미루나무 숲으로
가시에 긁히며 들어가는 저녁 해
누가 세상에서 자기 이외의 것을 위해 울고 있을까
해질녘 방바닥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는 자도 있으나
이제 얼마나 남았을꼬
아마 숨이 꼴깍하는 그 순간까지도
아직 좀더 남았을 텐데, 생각하겠지만
망년회라고 나가보면 이제 이곳에 주소가 없는 사람이 있다
동창 수첩엔, 벌써 정말로 졸업해버린 놈들이 꽤 된다
배 나오고 머리 빠진 자들이
소싯적같이 용개치던 일로 깔깔대고 있는 것도
아슬아슬한 요행일 터이지만
그 속된 웃음이 떠 있는 더운 허공이 삶의 특권이리라
의사 하는 놈이, 너 담배 안 끊으면 죽는다이, 해도
줄창 피우듯이 또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 잊는다
-황지우의 ‘망년’ 전문
망년과 송년을 마치고 신년을 맞이했다. 젊은이들이야 이해할 수 없겠지만 누군가 아프고 병들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언제부턴가 먼 하늘을, 퀭한 하늘을 자꾸 고개 들어 보게 된다.
소싯적같이 무언가를 벌컥벌컥 마셔대고, “너 담배 안 끊으면 죽는다이” 하는 소릴 귓등으로 흘리며 신년을 맞았다. 그래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의식이 늘 의식에 반란한다. 아차차 후회하지만, 너무 늦게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까지 ‘아슬아슬한 요행’의 줄타기를 할 수 있을까. 해야만 할까. 할 수 있는 날까지? ‘그 속된 웃음이 떠 있는 더운 허공이 삶의 특권이리라.’ 황지우의 시 ‘망년’은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1998)에 실렸다.
김형영의 시집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1992)
잘 익은 똥을 누고 난 다음
너, 가련한 육체여
살 것 같으니 술 생각나냐?
-김형영의 ‘일기(日記)’ 전문
황지우의 시를 읽고 나서 김형영의 시 ‘일기’를 읽는다. 망년과 송년, 신년을 맞으며 또다시 부어라 마셔라 달렸다. 어김없이 쓰라린 위장을 부여잡고 위장약을 먹는다. 그러고 다짐, 또 다짐한다. 다신 술 안 마시겠다고, 다신 담배 안 피우겠다, 망할 전자담배도 안 피우겠다고. 그러고 늦은 밥을 먹고 식은땀을 닦고 나니 겨우 살 것만 같다. 시인은 말한다. ‘너, 가련한 육체여/ 살 것 같으니 술 생각나냐?’라고. 왜 이렇게 사는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김형영의 시 ‘일기’는 시집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1992)에 실렸다.
이동순의 시집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1992)
나는 또 빈털터리, 온 힘 다해 자맥질한다
어부의 배에 실려와
나는 망망한 바다 위로 내던져졌다
어부가 내 발목을 잡아매고 있다는 것도
나는 한 순간 깜빡 잊어버리고
다만 물 속의 고기떼를 쫓아 두리번거린다
넓은 갈퀴로 물살 헤치며
발 밑으로 달아나는 저 물고기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자맥질한다
내 큰 부리는
곧 한 마리의 물고기를 물고 떠오른다
눈부신 햇살에 어깨 으쓱이며
나는 내가 잡은 물고기를 대뜸 삼키려 한다
그러나 가늘고 긴 내 목에는
이미 노끈이 조여져
그 고기 결코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때 어부는 재빨리 줄을 당겨
내 목에 걸린 고기를 뽑아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또 빈털터리가 되어
막막한 바다 위로 내던져진다
-이동순의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 전문
경기 안산 대송 습지의 호수에서 햇볕을 좋아하는 가마우지가 일광욕 중이다. 사진=조선DB
황지우와 김형영의 시를 읽은 뒤 이동순의 시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를 읽는다. 읽고 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이 서글픈 기분…. 우린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누구를 위해 미친 듯 달려가고 뛰어다니며 주머니에서 코 묻은 더러운 손수건을 꺼내 콩죽 같은 땀을 닦고 있는 것일까.
내가 바로, 우리가 바로 가마우지가 아닐까. 저 물고기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자맥질하다 한 마리의 물고기를 물면 누군가가 재빨리 낚아챈다. 그러곤 다시 물속으로 내던져지고 만다. 마치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큰 돌을 정상에 올리면 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 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인생!
누구나 승자일 수 없고 패자일 수 없는 인생, ‘슬픈 가마우지’가 되지 않기 위해 그저 몸부림칠 뿐이다.
때로 눈뜬 봉사가 될지라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이번만은, 이번만은 달라져라 외칠 뿐이다. 이동순의 이 시는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1992)에 실렸다.
박용하의 시집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1996)
허허벌판이다
나,
지쳤거나
지치고 있거나
지쳐갈 사람이다
그러나
어제라는 전생(前生)과
오늘이라는 전생
그리고 내일이라는
입맛 돋우는 전생
내가 살고
네가 살
여기, 생의 주막에서
극단이 아니면 삶은 없다
극단이 중심이다
동서남북
이 세상 그 어디서
나, 치우쳐
비록 흐릴지라도
결코 음악을 잊어본 적은 없다
나, 미쳤거나
미치고 있거나
미쳐갈 사람이다
지구 끝까지 가리라
-박용하의 ‘다시, 서시(序詩)’ 전문
1월의 빈 들에 섰다. ‘허허벌판’이다. ‘나’는 지쳤(미쳤)거나, 지치(미치)고 있거나, 지쳐(미쳐)갈 사람이다. 지치(미치)지 않으려면 죽을 도리밖에 없다.
죽지 않으려면 ‘극단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극단이 아니면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시포스처럼 돌을 굴려야만 한다. 희망이 생길 때까지. 이 시의 제목이 ‘다시, 서시’다. 이 시의 마지막 행은 ‘지구 끝까지 가리라’다. 이 행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박용하의 이 시는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1996)에 실렸다.
가요황제로 불린 가수 남인수.
신년부터 축 처지는 시를 읽었더니 뭔가 허전하다. 그 시절, 고아들의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좀 달라질까. 힘들지만 희망을 얘기하던 노래 말이다. 대표적인 노래가 남인수가 부른 ‘어린 결심’이다. 이 노래는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으로 1957년 발표되었다. 노랫말은 이렇다.
한청빌딩 골목길 전봇대 옆에
나는야 구두닦이 슈우샤인 보이
나이는 열네 살 고향은 황해도
피난 올 때 부모 잃은 신세이지만
구두 닦아 고학하는 학생이래요
명동거리 다방을 드나들면서
나는야 담배장사 소년입니다
비 오고 눈 오면 두 손발을 불면서
외할머니 봉양하며 살아가지만
만 환짜리 판잣집의 주인이래요
인경 달린 종로에 해가 저물면
나는야 신문 파는 아이랍니다
땀 젖은 양복에 헤어진 운동화
거리마다 사람마다 매정하지만
어린 결심 가슴에는 희망이 있소
-반야월 작사 ‘어린 결심’ 전문
6·25가 가져다준 비참한 삶에도 전쟁고아들은 눈물로 탄식하며 보내지 않았다. ‘구두 닦아 고학하는 학생이래요’ ‘만 환짜리 판잣집의 주인이래요’ ‘어린 결심 가슴에는 희망이 있소’라고 당당히 말하며 희망을 길어 올렸다. 가난하나 공부하며 꿈을 키우고, 판잣집이나마 내 집이 있으며, 보잘것없으나 어린 가슴에 희망이 있다고 노래한다. 가수 남인수는 반야월 선생의 이 가사를 받은 뒤 굵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김미선의 시집 《해독의 지느러미를 헤쳐간다》(2022)
생피 다 쏟고도 직립으로 서 있는 침묵
따뜻한 오른쪽이 그리웠다
추위가 어깨를 누르고
하늘이 평형을 벗어났다
그해 겨울에 찾아간 폭포는
흰 날개를 펼쳐 빙벽으로 날고 있었다
외딴 비탈길에 만난 후투티의 울음이
가슴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야윈 당신의 그림자가 잠시 다녀갔다
호수 속 살얼음이 꺾인 허리를 서로 기대고 있었다
꺼질듯 한 보폭에 불을 당겼으나
종일 내변산은 차가웠다
어디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서로의 은폐된 온기를 데우는 동안
생피 다 쏟고도 직립으로 서 있는 침묵
온 산이 쩌렁쩌렁, 푸른 등을 켜고 있었다
궤도를 벗어난 사이
나는 허공을 딛고 당신을 견디고 있었다
-김미선의 ‘한파주의보’ 전문
지금은 겨울의 한가운데다. 어느 날 갑자기 ‘한파주의보’가 닥칠지 모른다. 시인이 찾아간 전북 부안군에 위치한 내변산. 그곳의 직소폭포.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그 물소리를 잊을 수 없다.
시인은 그 꽁꽁 언 폭포를 ‘흰 날개를 펼친 빙벽’ ‘생피 다 쏟고도 직립으로 서 있는 침묵’으로 멋지게 표현한다. 얼어붙음으로 해서 ‘온 산이 쩌렁쩌렁, 푸른 등을 켜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푸른 등’의 의미는 그저 유추할 수밖에 없는데, 겨울 소나무일 수도, 빙벽에 비친 겨울 숲이 그렇게 푸르게 보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서슬 퍼런 갈기를 잔뜩 세운 어떤 이미지일 수도 있다. 꽁꽁 얼어붙은 이 겨울의 정점이 오히려 시심을 더욱 뜨겁게 만들고 있다. 삶의 어마어마한 무게, 한파를 이겨내는 사막 수도사의 외침처럼 들린다. 이 시는 김미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해독의 지느러미를 헤쳐간다》(2022)에 실렸다.
보우의 시집 《화살이 꽃이 되어》(2022)
삶은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뜻깊게 사는가
세상 어떤 피조물도
내 삶을 대신할 수 없는 것
발아래 개미와 소통되면
개미야 나 대신 죽어 줄 수 있냐고
아마 나 보고 사이코패스라 할 것이다
개미의 생명이나 그 누구의 생명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존재임을
묻는 자체가 모순이며 자연의 역행이다
인간의 죽음 앞 빈부의 격차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
죄없이 죽어간다는 것을 과거 현재
전쟁과 분쟁 속 절망적인 생체로 죽어가면서도
고통의 노래를 부르며 처지가 어렵더라도
삶 전체는 그렇게 의리가 있고
인생을 의미 있게 값지게 살려면
육신의 생명보다 인간생명을 찾아야 한다
-보우의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 일부
신년 화두를 던지듯 첫 행이 ‘삶은 무엇이냐’로 시작한다. 읽는 이의 목에 가시가 걸리듯 정신이 번쩍 든다. ‘세상 어떤 피조물도 내 삶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하찮은 개미의 생명이라도 훼손할 수 없다. 각자의 삶은 그만큼 소중하니까. ‘아무리 처지가 어렵더라도’ ‘인생을 의미 있게 값지게 살려면’ ‘인간생명을 찾아야 한다’.
이 시를 누가 썼는지 알아보니 놀랍게도 스님이다. 아호는 퇴수(退受), 법명은 보우(普友)다. ‘퇴수’는 물이 빠지거나 밀려 나간다는 의미. 물이 빠져나간 개펄은 어쩌면 인생사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아닐까. 시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는 보우 스님의 여섯 번째 시집 《화살이 꽃이 되어》(2022)에 실렸다. 스님은 현재 부산 감천문화마을의 ‘관음정사’ 주지로 있다.
김명옥의 시집 《옹알옹알 꽃들이 말을 걸고》(2022)
그림책을 빠져나온 엄마가 유모차를 밀고 가네
옹알옹알 꽃들이 말을 걸고
솜사탕 같은 바람이 뺨을 스치며
거대한 미래를 밀고 가네
바퀴는 언덕을 오르고 구릉을 지나
깊은 계곡을 넘네
낯선 시간을 향하여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닫힌 문을 두드리네
소설책을 빠져나온 딸이 휠체어를 밀고 오네
시드는 태양을 눈썹 위에 얹고
안타까운 이별의 옛 문장을 휘날리며
사라진 모든 꿈의 후기를 밀고 오네
바퀴는 오래된 골목을 빠져 나와
비틀거리며 지나온 비탈길을 만지네
남은 시간을 향하여
깔고 앉은 추억을 조립하며 겸손한 말을 고르네
-김명옥의 ‘시간의 풍경을 밀고’ 전문
임산부의 날을 맞아 서울 능동 어린이 대공원에서 엄마와 예쁜 아기들이 산책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새해의 걸음은 누구에게나 가볍고 희망찼으면 좋겠다. 가장 희망차게 보이는 걸음은 어떤 걸음일까. 아마도 1연처럼 ‘엄마가 유모차를 미는’ 걸음이 아닐까. 꽃들이 ‘옹알옹알 말을 걸고’ ‘바람은 솜사탕처럼’ 분다. 유모차를 미는 것은 거대한 미래를 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딸이 자라 늙은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걷는 걸음은 또 어떤 걸음일까. ‘비틀거리며 지나온 비탈길’을 어루만지는 걸음이지 않을까. ‘사라진 모든 꿈의 후기를 미는’ 걸음일망정 슬퍼할 이유가 없다. 세월이 그러하니까.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남은 시간을 향해 겸손하게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면 된다. 시 ‘시간의 풍경을 밀고’는 김명옥 시인의 4번째 시집 《옹알옹알 꽃들이 말을 걸고》(2022)의 표제시다.
황석영의 소설 〈삼포가는길〉.
끝으로 황석영의 중편소설 〈삼포 가는 길〉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꼭 50년 전인 1973년 세상에 나왔다. 작품 속 ‘영달’과 ‘정씨’는 무작정 삼포로 향한다.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고향 찾아 남쪽으로 걷는다. 무작정 걸어간다. 독자 여러분도 올 한 해 ‘그리운 남쪽’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강물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얼음이 녹았다가 다시 얼곤 해서 우툴두툴한 면이 그리 미끄럽지는 않았다. 바람이 불어, 깨어진 살얼음 조각들을 날려 그들의 얼굴을 따갑게 때렸다.
“차라리, 저쪽 다릿목에서 버스나 기다릴 걸 잘못했나 봐요.”
숨을 헉헉 들이키던 영달이가 투덜대자 정씨가 말했다.
“자주 끊겨서 언제 올지도 모르오. 그보다두 현금을 아껴야지. 굶어두 돈 있으면 든든하니까.”
“하긴 그래요.”
“월출 가면 남행열차를 탈 수는 있소. 거기서 기차 탈려오?”
“뭐…. 돼가는 대루. 그런데 삼포는 어느 쪽입니까?”
정씨가 막연하게 남쪽 방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남쪽 끝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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