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김태완 (문장에 물들다 〈7〉)
인민군 병사의 뒤를 따라 나가는 청년의 목줄띠가 입에 물었던 보리밥덩이라도 넘기는지 크게 한 번 움직였다
그놈의 마음이라는 것이 남과 달리 어쩔 수 없는 절망감과 고독감을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6ㆍ25전쟁 당시 8사단 정훈장교로 참전하여 전투 현장을 촬영한 故 한동목 예비역 중령의 개인 소장 전쟁기록 사진. 사진은 영천의 피란민 행렬 1950.8. 사진=육군
6·25전쟁 정전(停戰) 70주년을 맞았다. 1960년 《사상계》 1월호에서 7월호까지 연재된 황순원(黃順元·1915~2000년)의 장편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가 떠오른다. 이 작품은 1968년 최하원 감독의 손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이순재, 문희 등이 주연이었다. 어의(御醫) 허준(許浚·1539~1615년)의 일대기를 담은 《소설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작가 이은성이 각색했다. 다음은 소설 속 한 장면.
〈“동네 사람들은?”
“젊은 남정네들은 그 사람들이 데리구 가구…. 다른 사람들은 여기 있다간 죽는다는 바람에 죄다 피하고….”
“왜 같이 안 갔소?”
현태의 음성이 약간 부드러워졌으나 시선만은 그냥 날카롭게 여인의 눈 속을 쏘아보고 있었다.
여인이 몇 번이고 눈을 깜박여 현태의 시선을 피하면서 떨리는 고개를 방 안으로 돌렸다. 거기에는 어린애가 말라비틀어진 팔을 포대기 밖에 내놓은 채 여전히 꼼짝 않고 있었다. 그 입과 코와 눈언저리에 파리가 까맣게 붙어 있었다.
“저런 걸 업구 나갔다간… 길에서 죽일 것 같애서….”
여인의 말소리는 목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차례 심사가 끝나자 주먹밥 한 개씩을 주어 먹고 있는데, 인민군 병사 하나가 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헤실헤실한 보리밥덩이를 씹던 입들이 일제히 멈춰지면서 조용해졌다. 다시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불리운 사람이 일어섰다. 키가 자그마한 청년이었다. 인민군 병사의 뒤를 따라 나가는 청년의 목줄띠가 입에 물었던 보리밥덩이라도 넘기는지 크게 한 번 움직였다.
오정 때쯤부터 비가 그치고 흐리멍덩해 있던 하늘이 벗겨지더니 저녁나절에는 활짝 개었다. 끈끈한 옷을 벗어 햇볕에 말리고 싶었다. 움막 속 포로들과는 상관없이 저녁놀이 곱게 탔다.〉
소설 속 ‘시인’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동호’는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인 인물이다. 냉정하지만 용기와 결단력을 갖춘 ‘현태’, 전쟁의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주의적인 ‘윤구’라는 인물을 포함해 3명이 소설 속 문제인물이다. 동호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방황하다 술집 작부인 옥주를 알게 되고 그녀에게 몰입한다. 그러나 매음하는 그녀와 정부(情夫)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다.
〈“대체 우린 피해잘까 가해잘까?”
현태가 유심히 동호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지금 마신 술 때문만은 아닌 듯 동호의 코에서 뿜어지는 허연 김이 좀 잦은 것 같았다.
“오늘 무슨 일 있었냐?”
“내가 보기엔 말야, 이번 동란에 나왔던 젊은이들은 죄다 피해자밖에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건 말야. 모든 젊은이란 말이 너무 거창하면 우리 주변의 친구만 두구 봐두 그렇잖어? 우선 그 사고뭉치 김 하사가 그렇구, 또 그 선우상사가 그렇구 그리구….”〉
1968년 최하원 감독의 영화 〈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한 장면. 숙이가 현태의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하며 몸을 돌리는 장면이다.
전쟁 후 동호의 옛 연인 숙이는 동호의 흔적을 찾다가 현태와 만나 그의 아이를 갖게 된다. 현태는 어느 날 자신이 전쟁터에서 무고하게 죽인 여인과 비슷한 행색의 모녀를 만나면서 충격에 빠진다. 현태가 어떤 사건에 연루돼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되자, 숙이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윤구에게 의지하려 한다. 그러나 윤구는 냉정히 거절한다. 숙이는 현태를 비롯한 젊은 사람들과 자신마저도 이 전쟁의 피해자라며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다짐한다.
〈잠시 숙이는 숨을 가누고 나서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비로소 윤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선생님이 받으신 피해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큰 의미에서 이번 동란에 젊은 사람치구 어느 모로나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현태씨두 그중의 한 사람이라구 봅니다. 그리고 저두 또 그중의 한 사람인지 모르구요.”
“네… 그런 생각에서 그 친구의 애를 낳아 기르시겠다는 겁니까?”
그네는 윤구에게 주던 시선을 한옆으로 비키면서,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 일을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그럼 실례했습니다.”
숙이는 가만히 대문께로 몸을 돌렸다.〉
소설에서의 삶이 “파탄적인 초월의 시도를 그리는 것”(문학평론가 송상일)이라면 동호의 옛 애인 숙이가 원치 않는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이 초월의 시도가 아닐까. 그리고 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자라나는 것이 초월의 과정이 아닐까.
만약 숙이의 삶이, 그 아이의 성장이 현실에서 초월을 완성할지, 아니면 비극으로 결론 날지 알 수 없으나 소설은, 그리고 문학은 초월을 영원히 꿈꾸게 한다.
꿈꾸는 자를 통해 이어지는 이야기가 소설이란 장르다.
이호철의 단편 〈닳아지는 살들〉
이호철(李浩哲·1932~2016년)의 단편소설 〈닳아지는 살들〉을 읽는다. 이 작품은 1962년 《사상계》에 실린 소설이다. 1·4후퇴 때 두고 온 맏딸을 매일 밤 기다리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무기력한 실향민 가족이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소설 속 문제인물은 ‘늙은 주인’. 그는 퇴직한 은행원으로 귀가 먹고 반 백치다. 그저 이북에 있는 맏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그것도 밤 12시에 맏딸이 온다고 믿고 있다.
아들 ‘성식’은 삶에 대한 의욕이 없어 자폐적인 증세를 보이는 방관자적 인물이고, 성식의 아내 ‘정애’ 역시 시아버지를 모시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막내 노처녀 ‘영희’는 이런 답답한 가족들 틈에서 탈출하기만 꿈꾼다.
〈“누구인가는 이렇게 투명한 밤일수록 엽기적인 생각 있지 않수? 안나 카레리나를 자처해 본다든가 장 발장이 되어 본다든가 하면 괜찮다고 합디다만 어떨까, 그렇게라두 해볼까 봐, 어머나 벌써 열한 시 사십오 분이유, 언니.”
늙은 주인의 코 앞 사마귀를 만지는 모양은 푸념을 하는 어린애처럼 보였다. 손에 땀이 나고 초저녁보다 조급해 있었다. 이따금 눈이 휘둥그레져서 두리번거리며 영희와 정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기묘하게 예리한 것을 담고 있었다. 영희도 말을 멈추고 아버지의 그 시선을 좇고 정애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늙은 주인은 아직은 이 집안의 가장인 모양이었다.
“참 언니, 우리 집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때로 잠자리에 누워서 잠은 안 오구 점점 더 샛맑아 올 때 있지 않수? 우리 집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한번 본격적으로 따져보자, 이렇게 따져보기도 하거든요. 마음속 한구석으로는 아주 단조로운, 힘이 들지 않는 생각,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이렇게 무한정 세어 나가구, 눈은 바깥의 밤하늘을 내다보구, 다른 한구석으로는 찬찬하게 떠올려 가면서 일 년 전은 우리 집이 어떠했었나, 아버지는, 오빠는, 올케는? 이 년 전은 우리 집이 어떠했었나, 이렇게 따져 올라가 보거든요.”〉
5월 어느 날, 시계가 12번을 치고, 모두의 시선이 시계와 노인의 얼굴로 향한다. 그때 복도를 통하는 문이 열리며 기묘한 웃음을 띤 식모가 나타나 변소에 갔었다고 말한다. 영희는 식모를 가리키면서 언니가 정말 왔다고 소리친다. 늙은 주인은 영희의 부축을 받으면서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린다.
꽝 당 꽝 당 하는 쇠붙이 두드리는 소리는 밤새도록 이어진다.
〈순간 영희가 발작이나 일으킨 듯이 아버지 쪽으로 달려갔다. 한 손으로 식모를 가리키며, 한 손으로는 아버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며 쪼개지는 듯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부지, 자 봐요. 언니가 왔어요. 언니가…. 정말 열두 시가 되니까 언니가 왔어요. 이제 정말 우리 집 주인이 나타났군요. 됐지요? 아부지 자 어때요? 됐지요? 아부지.”
식모가 이번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정말이에요, 아부지, 저렇게 언니가 왔어요. 그렇게도 기다리시던 언니가 왔어요.”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식모를 내다보는 영희의 눈길은 적의로 타오르고 있고, 아버지는 영희의 부축을 받으며, 저리 비키라는 것인지, 혹은 어서 들어오라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게 한 손을 들어 허공에다 대고 허우적거리고, 성식과 정애도 엉거주춤하게 의자에서 일어서 있었다.
꽝 당 꽝 당.
그 쇠붙이 소리는 밤새 이어질 모양이었다.〉
소설 〈닳아지는 살들〉 속 ‘늙은 주인’의 가족은 사실상 해체된 가족과 다름이 없다. 그나마 간신히 결속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오지 않는 맏딸을 기다리는 명분으로 버티고 있다. 무기력한 기다림은 매번 좌절로 끝나지만 무의미하게도 밤 12시를 알리는 “꽝 당 꽝 당” 괘종소리를 듣기 위해,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듯, 조건반사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실, ‘늙은 주인’은 이북에서 헤어진 딸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 그 딸과 아내와 헤어지기 전의 행복했던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지나간 시간이 다가올 미래가 될 수는 없다.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누구도 다시 건널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는 무인도로 남겨둬야 한다.
선우휘의 단편 〈반역〉
‘사람이란 저마다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로 시작되는 선우휘(鮮于輝·1921~1986년)의 단편 〈반역〉을 읽는다. 1965년 단편소설집 《반역》에 실린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작품으로, 인간은 자기 ‘마음’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나는 감히 그의 이야기를 쓴다. 그것은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어쩌면 나 자신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소설 속 ‘나’와 ‘김·J’는 죽마지우다. 초등학교 4학년, 열한두 살 때의 일이다. 같은 반 친구 중 하나가 여학생에게 흙덩이를 던져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 그러나 누가 던졌는지 알 수 없다. 화가 난 담임선생은 학생들이 스스로 죄를 고백할 때까지 교실에서 나갈 수 없다고 명령했다. 졸아들어만 가는 배를 자꾸만 허리띠로 졸라매며 친구의 고백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한데 ‘김·J’가 불쑥 일어나더니 “흙덩이를 던진 게 누군지 확실치도 않은데 반 전부를 늦게까지 가두어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항의조의 역정을 내는 것이 아닌가. ‘김·J’의 의견은 삽시에 대다수의 공명을 얻어 반 전원을 감금한 담임의 처사를 비난하는 데 한목소리다. 그러나 잠시 후 담임이 다가오자 아이들의 눈동자에 깃든 노여움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흡사 고양이 앞의 쥐새끼와 같다.
교단으로 올라선 담임은 “언 놈인지 이제 정직하게 호명하고 나서 봐”라고 소리쳤다. 무거운 침묵 뒤 뜻밖에도 ‘김·J’가 나섰다.
“선생님, 그것은 제가 했습니다.”
‘나’는 ‘김·J’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여학생이 흙덩이를 맞았을 때 둘은 뒷산에서 아카시아 꽃을 훑어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 “왜 그랬냐”는 ‘나’의 추궁에 ‘김·J’는 이렇게 말했다.
〈“왜 그랬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 선생님이 들어와서 그런 놈은 호명하고 나서라고 하자, 그따위 짓을 하구 입을 다물구 있는 놈이 미워졌어.… 잠시 후 어떻게 된 건지 그렇게 화를 낸 내가 미워졌어.”〉
‘나’는 ‘김·J’가 무슨 괴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뇌골’이 어지러워졌다. 자기가 하지 않은 죄를 뒤집어쓴 ‘김·J’는 한 달가량이나 교실 청소를 해야만 했다.
중학교에 함께 진학한 ‘김·J’는 또다시 이상한 행동을 했다. 반 급우들이 기하(幾何)를 가르치는 수학 선생을 배척하는 스트라이크를 벌였다. 낙제 점수인 60점 이하를 맞은 학생이 거의 반수나 되고, 80점 이상을 맞은 학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수학 선생이 교실로 들어가자 학생들은 반항의 뜻으로 우아 하고 기성을 지르며 교실 뒷문으로 나가버렸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쾌감과 불안이 범벅이 된 허한 마음이 가라앉자 ‘김·J’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척후(斥候)로 뽑혀서 몰래 교실로 갔다. 수학 선생은 교실 뒤편에 혼자 남아 있는 ‘김·J’를 상대로 까딱도 않고 수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동안 나의 척후 임무를 잊고 그 광경에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눈여겨보니, 홀로 교실에 남아 있는 김·J는 한 팔을 구부려 얼굴을 가린 채 훌쩍훌쩍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헤아릴 수 없는 세찬 전율이 나의 전신을 스치더니 그것은 뒤이어 파상적으로 엄습해 왔다.〉
스트라이크가 그렇게 끝이 나고 ‘나’는 ‘김·J’에게 교실에 혼자 남은 까닭을 물었다. 그런데 그는 이전과 똑같은 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
그 후 ‘김·J’는 일본군의 충실한 육군 소위가 되었다. 당시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의 열세는 어쩔 수 없어서 조선인 일본군 병사들은 몰래 부대에서 도망쳤다. 처음 ‘김·J’는 조선인 병사의 탈주를 막으려 애를 썼다.
‘김·J’의 마음을 건드리다
1950년 10월 30일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탈환하자 환영 나온 시민들 모습이다. 사진=조선DB
어느 날 조선인 병사 한 명이 탈주하다 사살되고 또 다른 한 명은 붙잡혔다. 장교인 ‘김·J’는 이들의 어리석은 탈주에 노여움을 느꼈으나 일본군 중대장의 한마디 말(“아무도 여기서 탈주할 수가 없단 말이야. 그걸 뇌골 속에 처넣어주어야 해. 탈주 절대 불가능!”)이 ‘김·J’의 마음을 건드렸다.
‘김·J’는 탈주자들을 영창에서 끌어내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중국인의 마차에 태워 모두 도망치게 했고 그 역시 일본인 군복을 벗어던졌다. 그 역시 탈주한 것이다. 그러고 광복군의 지대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일주일도 못 가서 아무에게 이렇다 할 한마디 말도 없이 그 광복군의 대열에서 벗어나 거의 거지꼴로 혼자 상해까지 나와 귀국선을 타고 말았다.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자기 부하 가운데의 한 명이 광복군을 팔아 무고한 교포에게서 얼마간의 금전을 갈취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것은 종전 직후의 혼란기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불상사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그놈의 마음이라는 것이 남과 달리 어쩔 수 없는 절망감과 고독감을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또다시 ‘마음’ 때문에 광복군마저 그만둔 것이었다.
‘나’는 중학교 교원을 지내다가 싫증이 나서 6·25가 일어나기 1년 전 육군 장교가 되었다. 전쟁이 발발해 육군본부가 부산까지 밀려났을 때 우연히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은 ‘김·J’와 조우하게 되었다. 당시 S국방장관은 육본의 장교와 장교급 문관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국가를 위해 모두 봉급을 반환하자며 일장훈시를 했다. 모두 침묵하고 있을 때 일개 문관인 ‘김·J’가 벌떡 일어서 S장관에 맞섰다. 역시 ‘마음’ 때문이었다. 이후 숱한 눈총이 역겨워진 ‘김·J’는 소리 없이 군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 ‘김·J’를 수복된 평양거리에서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모두 명백히 봉급 반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국방장관 앞이라고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것이 너무도 보기 민망스러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고는, 그렇지만 알고 보니 벌떡 일어서져 있기에 그대로는 주저앉을 수가 없던 게 아니냐고 덧붙이며 덤덤히 웃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그에게,
“또 저도 모르게 일어나진 게로군”
하고 농을 건네고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남과 나를 구분하게 만드는 그 무엇
소설 속 ‘김·J’가 ‘자신도 모르게 한 일’은 ‘마음’이 시켜서 한 일이었다. 그 마음을 양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양심은 영혼의 일부이다. 남과 나를 구분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양심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도덕과 다르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인간이 느끼는 죄책감과도 다르다. 인간이 자연적으로 느끼는 수치심과 부끄러운 감정일지 모른다. 그 감정이 비록 학습된 것이라고 해도, 어떤 외통수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내면의 소리가 양심이다. 누군가의 지시나 은밀한 보상의 심리 없이 오직 자신의 목소리에 따라 세상에 맞서는 결정이다.
다시 소설의 마지막 단락으로 돌아가자. 자유당 말기, 신랄한 시론(時論)이 ‘김·J’의 이름으로 S신문에 자주 등장하자, ‘나’는 한편으론 자랑스러운 감정과 더불어 걱정을 누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신문사 간부들의 양해하에 일시 신문사에서 물러나고야 말았다.
4·19의거가 일어난 석 달 뒤 ‘나’는 ‘김·J’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아랫목에 앉아 두 살 난 아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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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인이 차려온 간소한 술상을 마주하고 한참 자커니 권커니 하다가 내가 농조로,
“어디 이제 강적은 없어졌는가”
하고 물었더니, 그는 무연한 표정을 얼굴에 흘리며,
“이젠 저놈이 강적이야. 그런데 귀여운 것은 귀여운 거란 말이야”
하고 저만큼 부인의 무릎에 앉아 있는 그 아들을 가리키고는 크게 팔짱을 끼면서,
“저놈 때문에 야코가 죽어 있지만 이제 더 가만히 앉아서 참고 있을 순 없을 것 같아.”
“또 자기 자신에게 반역하려나.”
“어디 제 버릇 개 주겠나.”
그러고 김·J와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 소설의 여운을 느끼다가, 조지훈(趙芝薰·1920~ 1968년) 시인이 쓴 시 ‘다부원에서’를 읽는다. 다부동 전투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 중 국군 제1사단이 대구 북방 다부동에서 미군과 더불어 북한군 3개 사단을 물리친 전투다.
이 시는 6·25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 현장을 다시 찾은 시적 화자의 감회를 적은 작품이다. 그곳은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의 시체’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가 흐느껴 울고 있는 황폐한 곳이다. 그리고 총칼을 겨누어야 했던 그들은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들’로서 한 민족이었다. 이 시는 시집 《역사 앞에서》(1959)에 실렸다.
시인 조지훈
한 달 농성(籠城)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의 화포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軍馬)의 시체
스스로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조지훈의 시 ‘다부원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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