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방 / 정태헌
그 모도록한 텃밭을‘어머니의 방’이라 부르고 싶다.
대문 어귀, 20여 평 남짓한 그 곳엔 모락모락 갖가지 푸성귀가 자란다. 소출을 위한 밭이라기보다 어머니만 나며들며 머무르는 내면의 공간인 듯싶다. 이제 노쇠한 어머니로선 더 이상 전답을 건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력이 부쳐 도리 없이 옥답을 남에게 내주셨다. 대신 허드레 창고를 허물고 그 자리에 텃밭을 일구었다. 흙냄새를 못 잊어서이기도 했겠지만 내심은 이젠 당신의 뜻대로 모든 일을 끝마친 지금, 당신만의 공간이 필요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텃밭엔 푸성귀뿐만이 아니다. 그 둘레엔 작은 돌로 담을 쌓고 빙 둘러 철 따라 피는 소담한 꽃들을 심어 놓으셨다. 얼마 전엔 과꽃이 도담하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발치엔 시들머들한 대추나무 한 그루가 텃밭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생 어머니는 시부모를 봉양하고 시동생, 시누이들을 짝지어 내보냈으며, 오 남매의 자식들을 새 둥지 만들어 출가시키고 이젠 빈 가슴으로 텃밭에 수굿이 남아 계신다.
이태 전, 그날의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허영허영하기만 하다.
“인자, 다 끝났는 갑따!”
어머니는 산기슭 선영에서 솔바람에 옷섶을 여미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리셨다. 새로 세운 망주석에 기대어 노을지는 서녘 하늘을 망연히 바라보는 옆모습이 지금도 솜솜하기만 하다.
어머니는 자나깨나 부채처럼 선영의 산일을 사뭇 걱정하셨다. 이런 저런 일로 차일피일해 오던 조모님의 유해를 조부님 유택 옆에 안장하고, 석물 세우는 일이 마치 당신 생전의 마지막 과업이라도 되는 양 여기시었다.
생전에 자별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시부의 배려를 갚으려는 듯, 모진 시집살이였음에도 시모에 대한 마지막 섬김이라도 하려는 양, 어머니는 그 일에 집념으로 매달리셨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뒤란 장독대 옆의 감나무가 떠오른다. 지금은 고목 되어 열매도 맺지 못하는 그 단감나무 말이다. 그 허구한 세월 동안 철마다 풍성한 열매로 베풀고 이젠 소진해 말라 가는 감나무는 어머니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열예닐곱 살에 산골로 시집온 어머니는 그 이듬해 외할아버지로부터 귀한 단감나무 한 그루를 건네 받아 장독대 옆에 심으셨다. 그리고 그 감나무와 함께 오늘까지 70평생을 살아오신 셈이다. 당시 마을에 유일했던 그 단감나무는 해마다 가지가 휘도록 감이 풍성하게 열려 촌동들의 입맛을 돋우었고 마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젠 고목이 되어, 병원 출입이 잦으신 어머니처럼 시들하게 메말라 가고 있다. 아마 어머니와 감나무는 평생을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살아오셨을 것이다. 까다로운 시모에다 시동생과 시누이들의 뒤치다꺼리에 오죽이나 고단하셨으랴. 때론 감나무 그늘 밑에서 치마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실로 어머니는 한평생 자신을 내팽개친 채 오직 가족들의 안녕만을 위한 희생과 나눔의 일생이었다. 삭정이가 된 감나무의 굽은 가지처럼 어머니의 허리는 이제 속절없이 휘고 말았다.
어쩌면 어머니의 고단한 삶은 애초부터 혼자 짊어져야 할 운명이었던가 보다. 공직에서 일찍이 물러나신 아버지는 그저 논둑에서 뒷짐만 지고 벌판만 바라볼 뿐이었다. 의당히 농사일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린 눈에도 끼니조차 가족들과 함께 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기껏 선 채로 부엌에서 물 말아 훌훌 넘기시고 다시 들녘으로 내닫곤 하셨다. 집에서 거느리던 머슴보다 먼저 일어나 진종일 들판에서 살다시피 하셨다.
그런 당신의 삶이 고달프셨던지 자식들의 가르침엔 열을 보이셨다. “나처럼 무지렁이로 살지 말고 대처로 나가 편히들 살거라.” 하시며 매섭게 다그쳤던 것도 지금 헤아려 보니 가슴이 뭉클하기만 하다.
지금도 미루나무만 보면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중학교 시절, 하룻밤 묵고 일요일 오후 도회로 가는 길목이었다. 어머니는 공부에만 몰두할 것을 신신당부하셨다. 그날도 동구밖까지 따라 나오며 한사코 다짐받는 걸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동구밖 미루나무에 기대어 물끄러미 어린 자식이 산모롱이를 굽이돌 때까지 눈을 떼질 않고 바라보고 계셨다.
반 마장의 그 길을 난 눈물을 훔치며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던가. 바람에 나부끼는 미루나무 잎새들이 어머니의 손짓 같게만 느껴졌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미루나무를 보면 가슴이 젖어 온다.
달포 전, ‘다녀가라’는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 왔다. 예전에 흔치 않았던 일이라 혹여 허리 병환이 도진 게 아닐까 가슴이 철렁했다. 도회의 자식들 집에 오셔도 하룻밤 지새우기 무섭게 아버지를 졸라 시골로 내려가셨던 어머니였다. 자식들에겐 유독 강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셨던지라 불길한 예감으로 급히 달려갔다.
산그늘이 내린 어둑한 마을길로 접어들었을 때 저만치에 어머니는 마중 나와 계셨다. 마음이 한결 놓였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어둑한 동구밖에서 뵌 어머니는 더욱 작게만 보였고, 애잔한 바람이 가슴속을 훑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왔다.
“애비가 좋아하는 상추가 하도 때깔이 고와서…….”
말끝을 흐리시는 어머니의 속내를 헤아리며, 이젠‘마음마저 쇠진해지셨구나.’하는 생각에 허전허전하기만 했다. 그날 어머니는 평생을 곁에 두고 사용해 온 손재봉틀을 말끔히 닦아 내놓으셨다.
“인자, 나헌테 요것도 쓸모가 없따.”시며 며느리에게 건네는 어머니의 손등이 그날따라 유난히 메말라 보였다.
지금쯤, 어머니는 텃밭에서 무얼 하고 계실까.‘인자 죽어도 여한이 없다’시던 어머니는 어떤 표정으로 무엇을 생각하며 텃밭에 수굿이 머물러 계실까. 누에가 껍질을 벗고 나방이 되듯, 텃밭에 한 송이 과꽃으로 남은 어머니의 모습이 아릿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앞베란다 한쪽에 놓여 있는 손재봉틀이 자꾸만 흐리게 보여 애써 하늘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