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란 무위다3/ 배철현
법이란 무엇인가? 인류가 기원전 만년경 농업을 우연히 발견하고 한정된 공간에서 모여 살면서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의 예의를 명문화하여 법전을 만들었다. 수메르 시대 '우르카긴나 법전(Code of Uru-kagina)'에서 시작하여 '우르남무 법전(Law of Ur-Nammu)', 그 뒤를 잇는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고대 이스라엘의 십계명과 고대 그리스의 법 조항들은 대개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말하는 ‘금지법’이다.
고조선 시대에도 8개 법조항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3개의 조항만 전해진다. 그것은 ①다른 사람을 죽이면 죽음으로 배상한다 ②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 곡물로 배상한다 ③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노비로 삼는데, 노비가 되지 않으려면 1인당 50만을 내야 한다 등이다. 이 조항을 통해 고조선 시대 이미 사유재산과 노비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조항들은 금지조항들로, 각각 ‘살인하지 말라,’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로 풀어 쓸 수 있다. 한마디로 ‘하지 말라’는 '무위(無爲)' 조항들이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태나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비겁이 아니다. '무위'는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동적으로 하는 행동을 제어하는 정교한 '유위(有爲)'다. 필자는 '무위'의 정신과 행동 지침을 노자의 <도덕경> 3장과 다윗의 <시편> 1편에서 찾고 싶다. 먼저 노자는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본능인 자기 사랑이 사회 생활에서 이기심으로 변해 '탐진치'라는 사회악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도를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을 '무위'라고 정의한다. 노자는 <도덕경> 3장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不尙賢 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是以聖人之治 虛其心(시이성인지치 허기심)
實其腹 弱其志 (실기복 약기지)
强其骨(강기골)
常使民無知無欲(상사민무지무욕)
使夫智者不敢爲也(사부지자불감위야)
爲無爲則無不治(위무위즉무불치)
위 문장을 풀어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잘난 사람이 주장하는 이념이나 종교를 숭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지 않는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로 유도하지 않는다.
갖고 싶은 욕심을 보이지 않음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스스로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나라 전체 백성의 배가 풍요하게 만들고, 반면에 무엇을 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어 나라의 기강이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백성들은 언제나 무엇을 알고자 하지 않고, 무엇을 바라지도 않아,
스스로 뭘 좀 안다고 하는 지식인이 감히 나서서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만든다.
지도자가 무위로 본보기를 보이면, 이 세상에 다스리지 못한 것이 없다.”
맨 마지막 행에 등장하는 ‘위무위즉무불치(爲無爲則無不治)’는 '욕심이 없이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자신을 비우고 타인에게 이익을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가져다 주는 무위가 인간의 도리다'라는 뜻이다. 무위는 정교한 도리다.
무위에 대해 구약성서 <시편> 1편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시집인 <시편>은 개인과 그(녀)가 속한 공동체가 묵상해야 할 중요한 주제들의 묵상집이다. 고대 시인들은 인간이 지닌 가장 감동적인 문학 장르를 ‘시’라고 확신했다. 시는 ‘들리는 내면의 소리(overheard inner voice)'다. 영국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시를 ‘우연히 들리는 연설(overheard speech)'라고 정의하였다. 이들의 시는 고요한 저녁에 좌정하여, 마음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이 독백하는 소리다. <시편>은 인간 내면을 가장 간결하고 감동적으로 풀어낸 음악이다.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고대 히브리 시인들의 노래다. <시편>에서 문학과 종교가 하나가 된다.
나는 <시편>의 첫 단어인 히브리어 ‘아스레이(ashrei)'가 ‘곧바로 가다, 지름길로 가다’라는 뜻의 동사인 ‘아샤르(ashar)'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한다. ‘아스레이’는 ‘지침들’ 혹은 ‘정도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시편 첫 문장의 시작은 ‘인간이 취해야 할 바른 길들’이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인간이 지켜야 할 최선의 지침들, 정도(正道)에 관한 내용이다. 이 세 가지 정도의 핵심은 무위다.
“인간이 취해야 할 정도(正道)들은 다음 세 가지 무위입니다.
범죄자들과 악행을 도모하는데, 동참하지 않는 무위,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 헤매다 엉뚱한 길에 서있지 않는 무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중상 모략하는 자리에 있지 않는 무위."
인간이 다른 일을 도모하기 전에,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세가지 무위들이다. 그 지침은 언뜻 보기에는 자신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보이나, 이것을 지키는 것이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최선의 지름길이다.
첫 번째 무위는, ‘범죄자들과 악행을 도모하는데, 동참하지 않기’다. ‘범죄자’들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 ‘라샤(rasha)'는 ‘범죄자’라는 의미로 남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범죄는 누가 봐도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다. 시인은 인간들에게 범법행위를 하지 말라고 촉구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시인은 이들과 어울리는 행위를 ‘할락(halak)'이란 히브리 동사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할락’의 기본적인 의미는 ‘걷다(walk)'다. 정도를 지키는 사람은 범죄자들의 장소에 자신의 두 발로 걸어가지 않는 사람이다.
두 번째 무위는,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 헤매다 엉뚱한 길에 서 있지 않기’다. 두 번째 지침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저지르는 범죄다. 자신이 가야할 길, 자신에게 최선이 있는데, 그 길에서 벗어나 차선을 택하거나, 길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행위다. 시인은 빈둥거리며 남을 기웃거리는 행위를 히브리어 동사 ‘아마(amad)', 즉 ‘서다(stand)'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죄(罪)란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가 없다고 생각하여 길을 잃고 헤매는 상태다. 그런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의 길이 화려해보이고 부러워하고 따라 하기에 급급하다.
세 번째 무위는, ‘다른 사람들을 중상 모략하는 자리에 앉지 않기’다.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은 타인을 중상 모략하는 짓이다. 더 나아질 자신을 부러워 할 때, 인내와 용기가 생기지만, 다른 사람을 부러워 할 때, 시기와 질투가 그(녀)를 사로잡는다. 심지어는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착각한다. 시인은 다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에 트집을 잡아, 흠을 들쳐 내고 작당하는 사람들과 교류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런 자들의 상습적인 타인 헐뜯기를 표현하는 히브리 동사가 ‘야샤브(yashab)'다, ‘야샤브’는 ‘앉다(sit)' 혹은 ‘안주하다(be settled for)’라는 의미다.
시인은 인생의 세 가지 무위를 알려준다. 이 무위는 인간이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수련해야 할 지침이다. 그 정도(正道)란 모든 것보다 우선하여, 모든 것을 멈추고(止) 내가 지켜야 할 삶의 실질적인 행동들이다. 나는 오늘 내가 가야할 곳을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 있어야 할 곳에 서 있는가? 나는 오늘 내가 안주해야 할 장소에 앉아있는가? 그 정도를 지키는 무위가 행복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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