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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칼럼(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등

함무라비 법전과 법

by 자한형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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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라비 법전과 법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명문화/배철현

정의라는 개념 고안했다

무고, 절도, 농업법, 상법 등

효율적인 바빌론 통치 위해

제정된 282개의 조항

무법 난무하는 한국사회의

어둠 밝히는 불씨 되었으면

배철현 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배철현의 함무라비와 샤마시(정의의 신)를 연재합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792~1750년 바빌론을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전입니다. 배 전 교수는 아카드어로 기록된 함무라비 법전의 함의를 오늘날 우리의 삶과 연결해 다채롭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약력

-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고대근동학 박사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2003-2019)

지난 1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원을 나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연한 귀결이라고 봅니다. 이런 당연한 귀결을 명쾌하게 판단 내려주신 재판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 소감엔 가시가 돋쳐있다. 누가 봐도 당연한 귀결이라면, 거의 5년 동안 진행된 이 재판은 그를 기소한 검찰과 질질 끌어온 사법부의 직권남용이 아닌가! 오래전부터 법은 이상이지만 법의 집행은 권력자의 노리개였다. 권력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법을 왜곡한다. 그에게 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유죄와 무죄는, 권력과의 연줄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고 수군거린다. 그들이 그런 의심을 품고 있다면, 우리 사법부는 자신의 위치를 찾기까지 혁신(革新)해야한다.

법은 도시나 국가의 일원으로 사는 인간이 타인과 조화롭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禮儀). 짐승처럼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방식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이 타인의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공동체의 구성원이 약속한 일련의 조치들이다. ‘이란 한자()는 그 핵심을 알려준다. 법은 물처럼 당연히 아래로 흘러 모든 것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시냇물은 겸손하다. 거슬러 올라가는 법이 없다. 항상 아래로 내려가 다른 물과 합류하여 바다가 된다. 시냇물은 지나가면, 그 주위의 식물과 동물은 생존에 필요한 생수를 얻는다. 노자의 용어를 빌려 설명하자면, 법은 상선약수(上善若水).

1948717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날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이라고 알려진 추상적인 개체를 가장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정의하여 존재하게 만들었다. 헌법은 대한민국이라는 영토에서 알고 있는 국민들의 정체성이다. 법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려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거룩한 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등장하는 제1항과 2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헌법조항은 인류가 역사를 시작하고 유구한 세월을 거쳐 서서히 형성된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삶의 문법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 마찬가지로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홀로 살 수 없다. 인간은 부모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가족, 친족, 사회, 국가, 더 나은 인류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인간의 공동체 안에서 타인과 유기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이 필요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인간은 도시라는 공동체에서 사는 동물이다. 도시라는 공동체를 하나로 엮는 법이 없다면, 인간은 짐승으로 전락할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왕, 함무라비(기원전 1810-1750)는 인간이 도시 안에서 문화와 문명을 구가하기 위한 기초가 바로 법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바빌론 시민들이, 시민권을 보장받으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282개 조항으로 발표하였다. 그는 바빌론 시민들이 이 규율들을 준수하면서 비로소 시민이 된다고 판단하였다. 그 인간은 여전히 동물이지만, 자신의 직계 가족과 친족뿐만 아니라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가문, 이방인, 외국인들과 공존하려는 수고를 통해 인간이 된다. 가족과 친족이라는, 자신에게 익숙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관습과 습관이 삶의 유일한 잣대로 여기는 인간들은,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사실 동물이나 다름없다. 그들에겐 문화가 없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한 이방인은 그것을 아카드어로 미샤룸정의(正義)’라고 선포했다. 그는 이 법조항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아카드어로 기록된 법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 석비

고 바빌로니아 제국의 왕 함무라비 (기원전 1810-1750) 현무암 석비/조각, 기원전 1750, 225x 79x 47파리 루브르 박물관 메소포티마아 전시실 제 3

함무라비 석비는 높이가 2미터가 넘고 현무암에 너비가 80cm이며 두께가 47cm나 된다. 석비의 1/4을 차지하는 맨 위에 두 명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오른편에 앉은 이는 정의의 신인 샤마시이고 왼편에 서 있는 이가 함무라비다. 함무라비는 오늘날 이라크의 중부에 위치한 바빌론이란 도시를 수도로 삼고 치리한 왕이다. 그는 바빌론의 왕으로 점점 세력을 확장하여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통일하였다. 함무라비법전은 점점 복잡해지는 다른 나라와의 상거래와 바빌론 사회를 지탱하는 정의와 정의의 실제적인 장치인 사회규범이다. 그의 가족은 시리아 서쪽에서 이주해온 아모리인이라고 불리는 반유목민이었다. 그의 이름은 시리아문화와 바빌론문화의 융합이다. ‘함무라는 말은 아모리어로 삼촌, 친가란 의미이고 라비는 아카드어로 위대한이란 의미다. ‘함무라비라는 이름은 삼촌은 위대하다라는 뜻이다. 유일신 종교의 창시자 아브라함도 아모리족이다.

법이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양심이며 도리다. 법은, 우주와 지구를 지탱하는 가치들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개인이나 공동체를 온전히 지켜주는 법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우리는 개인이 지켜야 할 마땅한 법을 도리(道理)’라고 불렀다. 인류는 이 도리의 일부를 문자로 기록하여 한데 묶어 이라고 불렀다. 수메르문명은 그 법을 ’, 이집트문명은 마아트’, 인도문명은 르타’, 히브리 문명은 토라’, 중국문명은 ()’라는 명칭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이것들은 법령집에 등장하는 문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

함무라비법전은 소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명문화한 법전으로 유명하다. 법조항 196, 197은 다음과 같다: (196) “만일 자유인이 다른 자유인의 눈을 다치게 했다면, 그의 눈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치게 될 것이다.” (197) “만일 자유인이 다른 자유인의 뼈를 부러뜨렸다면, 그의 뼈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러뜨려질 것이다.” 이 조항들은 복수동태법(復讐同態法)의 전형이다. 이 조항들을 해석하는 열쇠는 자유인이라는 용어의 이해에 달려 있다. 자유인에 해당하는 아카드어는 아윌룸이다. 아윌룸은 바빌론 사회에서 10% 이하의 왕족과 귀족을 의미한다.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론이라는 도시에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의를 제정해 새겨 놨지만, 그것은 왕족과 귀족만을 위한 노리개였다. 바빌론의 소작농, 외국인,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노예들의 삶에 함무라비 법전은 정의의 상징이 아니라 불의와 착취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분명 이 법전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론의 시대정신과 한계를 드러내지만, 그 결함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류가 도시 문명과 문화를 구축하면서, 맨 처음 고안해낸 정의라는 개념과 법의 기원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함무라비는 바빌론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실로 다양한 분야를 제정하였다. 무고죄, 절도죄, 농업법, 상법, 주류판매법, 사유재산관련법, 여성과 어린이 관련법, 각종 직업관련법, 일일노동자법, 동물, 노예, 이자에 관련한 법 등이다.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이 점점 법이 천시받고 무법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의 어둠을 밝히는 불씨가 되면 좋겠다. 함무라비는 무고죄를 맨 처음 소개한다. 무고죄는 바빌론 사회를 흔드는 최악의 범죄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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