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최고의 강연
최강 1교시에서 강연을 맡은 예술
전문 작가 전원경입니다
저는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예술과 역사,
사회,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강의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예술 작품이 어떻게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갖고 탐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해드릴 이야기는
예술과 경제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돈과 관계없이
자신만의 성에서 고고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오늘 강의에서는 예술 작품을 창작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돈이라는 문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강연
주제는 어떤 미술 작품이 비싸게 팔리나 하는 것입니다
미술 작품의 비싸게 팔리는 과정
자 여러분들이 지금 보고
계신 그림 환전상과 그의 아내라는 작품입니다
남편인 환전상이 돈을 세고 있고
그의 아내인 여성이
그런 남편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아내의 표정은
좀 이상할 정도로 여리가 없게 보이죠
이런 스타일의 그림들이 근대 이전의 화가들의 작품에서
돈을 다룰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스타일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
돈을 모으는 행위에 대해서
그렇게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라는 구절이 있죠
그러니까 이 기독교적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근대
이전의 유럽에서는
이런 기독교적 가치관에 반하는
그림이 그려질 수 없었습니다
16세기 초반의 플랑드레에서 그려진
퀸텐마시스의 환전상과
그의 아내에서 이 부부는 자신들의 초상을 그리되
그리고 자신들의 직업을
그림 속에 보여주되 이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보다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한다
라는 식의 메시지가 담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녀가 넘기고 있는 책은 기도서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
남편의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닥 여리가 없는 것도
그녀의 기도서에서
우리가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부부는 직업보다는
신앙생활을 훨씬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면 조금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부자들이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자신의 초상을 그릴 때는 어떻게 하나요?
특히 플랑드르라고 부르는 오늘날의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에는 무역을 통해서 큰 돈을 번
상인계급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인계급들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초상화
제작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인물이 바로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입니다
렘브란트가 20대 후반에 그린 이 모피상인
리치의 초상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정말로 모피를 팔아서
특히 러시아 쪽의 모피를 팔아서
큰 돈을 번 상인입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
상인의 나이는 60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은 대단히 좋은 나무 패널에 그려졌습니다
그림 속의 인물을 보시면 모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고
외투에도 고급 모피가 달려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이 앞섭에 모피에서 정정기가 일어나서
모피 털이 철르륵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정말로 미세한 모피
그러니까 양질의 모피니까 이런 식의 정정기가 일어났겠죠
하지만 리츠라는 인물의 얼굴을 보면
그는 좀 지금 피곤해 보여요 눈은 충혈되어 있고
양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내밀고 있는데
이것은 인보이스 송장입니다
그 인보이스를 내밀고 있는 상인의 엄지손가락을 보시면
일반적인 사람의 손가락 치고는
상당히 두툼한 뭉툭해져 있는 손가락입니다
한마디로 이 인물은 평생 동안
손가락의 모양이 변형될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는 인물입니다
그렇게 해서 큰 돈을 벌었죠
그러나 큰 돈을 번 지금까지도
그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눈이 빨갛게 충혈된 것,
양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은
그가 아마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밤새워 일을 했다면요
라는 의미일 겁니다
이렇게 밤새워 일을 해서
그는 약속받은 모피 물품을 다 배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물품의 선적을 마쳤다라는 뜻으로
보는 이에게 인보이스를 내밀고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렘브란트는 이 상인의 그림에서
그가 부자인 것을 보여주되
결코 사치하거나 나태하거나
돈을 허투루 쓰는 인물이 아니다
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과거의 예술가들이 그림에 돈이라든가
부자라는 존재를 그리지 않으려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예술을 움직이는데, 예술가를 움직이는데,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자본이라는 점입니다
당장 이 모피상의 위치에
초상만 해도 이 리츠라는 부유한 인물이
렘브란트에게
초상을 청탁하지 않았다면 이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겠죠
그리고 당연히
그 초상에 대한 대가로 이 상인은
렘브란트라는 화가에게 적지 않은 돈을 지불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예술과 자본은 과거부터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들어서 이 예술과 자본
사이의 관계는 더욱 각각적이었습니다
미술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조차도 요즘 들어
미술 작품의 경매가 점점 더 활성화되고 있고
그리고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경매에서 낙찰받는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가끔 들으신 기억이 나실 겁니다
이런 미술 작품
경매 열풍은 사실 그닥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화면 크리스티
런던에서 1987년에 빈센트
반고우의 해바라기가 낙찰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당시에
낙찰가가 4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500억 원이 좀 넘는 가격이었는데요
이때부터 미술품 경매에 대한 열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그 전까지는 최고 경매
낙찰가도 150억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미술품이 경매에서 낙찰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
해바라기가 세운 4천만 달러라는 경매
낙찰가는 같은 해에
같은 화가가 그린
북꽃이라는 그림이
거의 6천만 달러에 가까운 5,890만 달러에 낙찰되면서
간단히 깨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고의 작품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는데요 이
미술품 경매 열풍에 뛰어든 새로운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제펜머니 일본의 자본가들이었죠
1990년에 있었던 고흐의 작품
닥터 가쉐의 초상 경매 사건은 아직도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화제의 이야기입니다
고흐가 죽기 두 달 전에 그린 이 닥터 가쉐의 초상이
1990년에 경매에서 8250만 달러
무려 천억 원이 넘는 가격으로 낙찰됐습니다 이 작품을
산 인물은 일본의 제지회사 사장
사이토 류헤이였어요
그리고 류헤이는 이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 사적으로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류헤이는 1997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가 운영하던 제지회사는 파산합니다
그러면 이 그림이 당연히 다시 시장에 나와야 하는데
끝끝내 이 그림은 다시 시장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간에는 류헤이가
내가 죽을 때 이 그림을 가져가겠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그런 오싹한 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죽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
화장을 하지 않습니까?
만약 이 사이토 료헤이가 이 그림을 죽을 때
가져갔다 라고 이야기했다면 이 그림은
혹시 료헤이와 함께 화장돼서 잿더미가 되지 않았을까요?
생각만 해도 너무 오싹한 그런 가설인데
다행히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 그림은 1997년에
류에이의 사망과 함께 비공개
경매에 다시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 이 그림의 소유주도 세상을 떠나고
그의 제지회사가 파산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림은 1990년
낙찰가보다 상당히 떨어진 가격으로
다시 경매에 붙여졌다고 하고
아마도 오스트리아의 사업가가 이 작품을 현재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
닥터가시의 초상이 세운 8,250만 달러라는 경매가는
그로부터 14년 동안 깨지지 않다가
2004년에 피카소의 작품에 의해서
그 기록이 깨지게 됩니다
현재 경매 시장에서는
일본의 자본은 많이 물러간 상태이지만
중국과 중동의 신흥
자본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어서
여전히 경매의 열기는 엄청나게 뜨겁습니다
고흐를 비롯해서 피카소나 또 모딜리아니나 잭슨폴록,
고갱, 뭉크 같이
우리가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경매에서 특히 인기가 있는데요
예를 들면 지금 보고 계시는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라는 작품은 2015년에 1억 7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2천억 원이 넘는 가격으로 낙찰됐습니다 이 그림을
사들인 인물은 아마도 중국의 자본가로 추측됩니다
공식 경매보다 놀랍게도
비공식 경매에서 그림의 낙찰가가 더 비싸죠
예를 들면 넌 언제 결혼해? 라는 이 고갱의 작품은
비공식 경매에서 3억 달러
전후의 가격으로 낙찰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 이런 엄청난 가격,
무언가 우리가 주장하는 그 단위를 들었을 때
그 돈의 양이 얼마인지
과연 얼마의 가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가격으로 미술품들이 낙찰되고 있는데
그런 미술품
가격 경쟁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했던 사건이 바로
2017년에 터졌습니다
다빈치의 세상의 구원자
예수라는 작품이 무려 4억
5천만 달러에 낙찰이 됐습니다
우리 돈으로는 거의 6천억 원에 가까운
그런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낙찰이 됐는데 이 그림은 2013년에 처음으로 경매
되었을 때 1억 2천
7백만 달러에 낙찰이 됐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4년 사이에 4배 이상 가격이 상승한 거예요
그림을 산 사람은
우리도 그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사우디의 빈살만 왕사자입니다 이 그림을
2013년에 1억 2천만 달러에 사들였다가
2017년에
다시 경매에 붙인 인물은 러시아의 재벌
리볼로블레프입니다
리볼로블레프가 이 그림을 살 때
우리 돈으로 1,600억 원
정도의 돈을 내고 이 그림을 샀을 때까지만
해도 이 그림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일단 이 그림이 정말 다빈치의 그림인가
라는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어요
다빈치는 평생 동안
완성한 그림이 18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바쁜 무기를 제조하고
지도를 그리고 인체를 해부하느라고
그리고 연극을 제작하고
음악을 작곡하느라고
너무 바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데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고
그나마 한 점의 그림을 그리는데 3,
4년 이상의 시간에 걸렸던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습니다
그가 남긴 완성작은 18점밖에 되지 않는데
2011년에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레오나르도
밀라노의 궁정화가라는 다빈치
특별전에서 이 그림이 센세이셔널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때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감추어졌던 다빈치의 작품이다 라고
내셔널 갤러리 측은 발표했고
전시가 개막되기 전에
전시회에 모든 티켓이 다 팔렸습니다
그러면 이 그림은 왜 다빈치의 그림인데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 그림은 정말
다빈치의 그림이 맞을까요? 이 그림의 어떤 진위는
일단 2005년에
두 명의 미국 달러가
영국에서 이 그림을 만 달러에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5년에 걸쳐서 복원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의 자문을 들어서
과연 이 그림이 정말
다빈치의 그림일 가능성이 있는가부터
되짚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로 많은 전문가들이 이 작품이 다빈치의
그림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전문가들의 판단의 근거는
일단 이 그림에서
다빈치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그려져 있고
그리고 윤곽선을 여러 번 얇게 덧발라서
그 윤곽선이 사라지는 스프마토 기법이 사용되었고
다빈치가 사용하던 물감과
특히 다빈치가 좋아하던 호두나무
패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같은 부분이
전문가들이 이 작품을 다빈치의 작품이다 라고
판단한 중요한 증거들입니다
예를 들면 다빈치
만년에 그린 이
세례요한이라는 작품에서도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등장하고 있고
윤곽선은 부드럽게 사라지고 있고
그리고 이 세례요한에서도
요한의 얼굴은 희미하게 그려진 반면
손은 대단히 날카롭고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데
예수 세계의 구원자라는 이 작품도 마찬가지죠
예수의 얼굴은 희미하게 그려져 있지만
손은 대단히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에 대해서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다빈치가 프랑스에서 사망한 후에
다빈치의 동성애인인
살라이가 성부의 모습을 한 예수라는 작품이
다빈치가 남긴 작품 중에 있다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작품은 계속 프랑스에 남아 있다가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 공주가 영국 왕
찰스 1세에게
시집을 갈 때 이 그림을
혼수품으로 가져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에 작품은 계속 영국 왕실에 있다가
영국의 찰스
2세가 이 그림을 버킹엄 공작에게 넘기게 되고
버킹엄 공작이 이 그림을 판 후로
그림의 행방은 묘연해졌습니다
만약 영국 왕실이 이 그림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영국 왕실은 다빈치의 그림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기회를
아무튼 이 그림의 천문학적인 가격
4억 5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이 정말 놀랍지만 이 그림이 정말로
다빈치의 진본이라면
그 가격은 그닥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구나 알고 있는 다빈치의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의 2019년 보험
감정가가 6억 6천만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8천억 원이 넘죠
물론 프랑스 정부는 누군가가 그
돈을 낸다고 해도 이 작품을 팔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아무튼 모나리자의 감정가가 그 정도라면
그러니까 6억 달러가 넘는다면
다빈치가 그린 또 한 장의 그림
세상의 구원자 예수가 4억 5천만 달러라고 해도
그리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닌 셈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끝난 게 아닙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이 세상의 구원자
예수가 다빈치가 그린 그림이라기보다는
다빈치 공방에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그려졌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그림들,
이런 그림들이 다빈치 공방에서 그려진 그림들입니다
만약 다빈치 공방에서
세상의 구원자 예수가 그려졌다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지면
그림의 가격은 지금보다 거의 10%입니다
아무튼 2013년에 최초의 세상의 구원자 예수 경매에서
러시아의 리볼로
블레프가 이 그림을 한화로 1,600억 원 정도 주고
샀을 때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만약 이 그림이 다빈치
공방에서 그려졌다면 이 그림의 가격은 가치는
그 10분의 1은
150억 원도 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서랑설레에도 불구하고
리볼로 블레프는 이 그림을 샀고
4년 후에 빈살만 왕세자에게 이 그림을 넘기면서
253%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렇다면 미술품의 투자가치는 정말 확실한 셈이죠
빈살만 왕세자는 애당초 이 그림을 살 때
루브르의 아부다비 붕관에 이 세상의 구원자
예수를 공개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이 그림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다빈치의 그림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사실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다빈치는 오래전에 사망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빈치가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죠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다빈치라는 화가가 남긴
그림 자체가 굉장히 그 수가 적기 때문에
더더욱 희소가치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화가의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의 수가 적은 화가일수록
화가의 작품의 가치는
경매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예외가 있죠
바로 경매시장에서 늘 환영받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입니다
피카소는 평생 3만 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그림의 전작의 도록이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그림을 그렸는데 이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라는 작품이 1억 7천
9백만 달러에 납찰됐습니다
그렇다면 피카소의 작품들은 그렇게나 수가 많은데
왜 비싼 걸까요?
피카소의 작품은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유명한 경매장에서 늘 환영받는 작품입니다
피카소의 작품 중에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린 알제의 여인들은
피카소의 완전한 오리지널이 아니라
들라크로아가
그린 이 알제의 여인들이라는 19세기 작품을 보고
피카소가 영감을 받아서 그린 그림입니다
알제이의 여인들을 피카소는 여러 점 그렸는데
경매에서 낙찰된 1955년
알제이의 여인들은 그 중에서 5버전이라고 합니다
알파벳으로 A, B, C, D, E, F, G가 있으면
그 중에 5버전이니까
상당히 많은
알제이의 여인들을 그렸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경매에 나온 피카소의 그림들 중에서 지금까지 1억
그중에 최고가가 이 알지의 여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알지의 여인들이
피카소가 그린 3만 점의 그림 중에서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 피카소의 작품들이 있지만
피카소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높은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은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들은
대개 이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림으로써
입체파의 시작을 알린 1907년부터
독일 공군의 민간인 폭격의 항의에서
피카소가 7주 만에 그렸다는 대작
게르니카 사이에 있을 겁니다
대강 잡아도 30년입니다
아니면 그것보다 조금 더 넓게 잡으면
입체파를 시작하기 전에
피카소가 청색시대
또는 장미시대에
그렸던 1900년대 초반의 그림들도 포함될 수 있겠죠
그리고 이 아비뇽의 여인들을 통해서
피카소는 그때까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던 대상을
사물의 모습을 똑같이 모사한다던가
아니면 원근법 같은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려줬는데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린다,
아니면 구상의 원칙 같은 것을 모두 무시하고
화가 개인의 주관이 객관적인
어떤 사실보다 훨씬 더 중요하며
또 화가의 개인적인
그리고 주관적인 시선을 통해서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무너뜨리고
재창조하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때부터 천재 피카소의 눈부신 활동이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피카소라는 인물은 자신의 천재성을
거의 30년이나 40년 이상 발휘한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인물인 것은 확실하죠
그러나 알제의 여인들을 그릴 때를 생각해보면
1955년의 피카소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전성기를 지난 후의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때쯤 되면
우리는 피카소
개개인의 작품보다
피카소라는 개인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궁금해하고
훨씬 더 많이 알게 된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피카소는 이때쯤 되면 화가이자
동시에 셀레브리티였습니다
우리는 20세기의 많은 화가들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피카소일 겁니다
피카소가 구상의 세계를 해체해서
추상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을 때
유럽의 컬렉터들보다는 러시아나
미국의 컬렉터들이 그의 그림에 더 열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이 너무나도 혁명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잘 알지 못하는 그림,
뭔가 알송달송한 그림을 보면
어, 이 그림은 피카소의 그림 같군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그는 새로운 화가, 혁신의 대명사,
현대미술의 대표와도 같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정말로 그 수가 많고
그리고 쏘더비나
크리스티벌이나 같은 대표적인 딜러들이 그의 그림을 사고
팝니다
그러면 피카소는 말하자면
주식시장의 우량주 같은 존재인 거예요
그림을 샀다가 나중에 더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으려면
그림의 수가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차라리 유리합니다
그리고 소더비나
크리스티 같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딜러의 경매장에서 팔 수 있는 그림들입니다
피카소라는 이름은 너무나도 유명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이름의 가치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2002년에
뉴욕대 경영대학원의 두 교수가,
메이와 모제스라는 두 교수가
1875년부터
2002년까지
경매에 붙여진 만 점 이상의 그림들의 가격을 분석해서
한 점의 작품을 사고 팔 때
그 작품의 컬렉터가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계산해 봤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은 연 9%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해요
그리고 이 메이모제스 지수가 2002년에 만들어졌으니까
그 이후로 피카소의 작품에 대한 경매
열풍이 붙었기 때문에
아마 그 지수는 지금
2002년보다 훨씬 더 상승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피카소의 작품이 천억
원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고
또 1억 달러 이상으로 낙찰되고
이런 것은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 못지않게 이 작품의 투자가치의 부호들이
자신의 주머니를 열었다 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처럼 현대에 들어서
미술품의 가치가 이렇게 예술
가치적 가치 못지않게
투자가치의 사람들이 주목하던 때보다 훨씬 옛날
과거에는 미술 작품의 가격은 어떠했을까요?
과거에는 미술 작품들이 훨씬 쌌을까요?
이런 질문을 한번 해봅시다
미술품을 한 점에 그림을 완성시키는 데는
그 작품의 재료비가 필요하고
그리고 두 번째로 화가의 노력에 주는 공임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이 두 재료비와 공임 중에서
지금은 공임이 훨씬 비쌀 겁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화가의 수고비인 공임보다
재료비가 훨씬 더 비쌌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모든 미술품을 창작하기 위한 재료,
일단 나무판부터가 질이 좋은 나무를 구해서
도재들이 여러 번 깎고
밑칠을 하면서 평평한 나무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물감도 없죠
우리가 알고 있는 튜브에 들어있는 물감
이런 것들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모든 물감은 다 원료를 구해서
그 원료를 갈아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원료를 구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힘들고
그 원료 자체가 비싼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재료비가 비쌌기 때문에
과거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림값은 결코 싸지는 않았습니다 쌀 수가 없었죠 자,
그러면 비싼 재료는 뭐가 있을까요?
지금 보고 계시는 조토의 페루지아
성당 재단화에서 이 작품의 성인들의 뒷배경은
무엇으로 메워져 있습니까?
이것은 바로 금입니다
진짜로 금이에요
우리가 목걸이나 반지를 만드는 그 기금속인 금입니다
그러면 금이 녹아서 이렇게 칠을 했을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금은 금속이기 때문에
아무리 온도를 올려도 녹지는 않아요
대신 금은 무한정 얇게 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귀금속을 만들어서 정교하게 세공을 해서
목걸이도 만들고
팔찌나 반지도 만들 수 있는 거겠죠
과거의 화가들은 금화를 계속 두드려서 얇게 폈습니다
지금의 종이보다
우리가 쓰고 있는 티슈 정도의 두께까지 아주 얇게 편
다음에 목판 위에다가 기름을 바른 진흙을 발랐습니다
그래서 이런 점성이 있는 흙 위에 얇게
펴진 금박을 붙이고 살살살살 문질러서 주름을 폈습니다
너무 얇게 펴진 금이기 때문에 문지를 때
세 개 문지르면 찢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약돌 같은 무른 돌이나
아니면 개의 이빨을 써서 문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금이라는 진짜 귀금속이 재료로 들어갔으니까
그림은 당연히 비쌌겠죠
그러면 왜 금을 재료로 한 그림을
화가들이 그렸나면 이 중세의 그림은 절대
다수가 성당에 걸려있는 성화들입니다
성당은 어두컴컴하겠죠
그 어두컴컴한 공간에 들어갔을 때
진짜 귀금속인
금이 발려져 있는 그림은 반짝반짝 빛이 났을 겁니다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면서
자신이 있었던
지금까지 좀 전까지 있었던 일상의 공간이 아닌
비일상적인 공간,
거의 천국과
가까운 공간에 들어왔다라는 느낌을 갖게 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이 천국으로 상승하는 듯한
황홀감을 맛볼 수 있을 테니
종교화인 이
그림의 어떤 의의가 충분하다고 볼 수가 있겠죠
화가들은 단순히 금을 얇게 펴서
붙이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그 금에다가 여러 가지 무늬를 넣기도 했습니다
이런 무늬를 넣는 방법을 스크라피토라고 부르는데
이런 정교한
세공이 가능한 것 역시 금이라는 금속의 특징이겠죠
지금 보시는 수태고지
같은 경우는 지금 배경이 전부 금으로 메워져 있습니다
이런 그림들은 당연히 재료비 자체가 비쌌기 때문에
화가의 공인보다 그 그림의 재료비가 더 비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화가들은 그림의 배경을 금으로 메꾸지 않고
세세하게 그리기 시작합니다
자 이렇게 배경을 그리면 어떻게 될까요?
배경을 그리면서 화가의 실력 차이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와 못 그리는 화가가 구분이 되고
그런 경우 잘 그리는
화가가 더 높은 공임을 받게 되겠죠
그리고 또 이 로베르 깡팽의 수태고지에서 재미있는 것은
왼편에 지금 이 그림을 그리도록 화가에게 청탁해서
그 그림을 교회에 기증한 기증자 부부의 얼굴이 보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미술과 자본이 만나는 지점이 생겨납니다 이 그림을
화가에게 그리도록 청탁한 부부는 당연히 부자겠죠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 부부들은 이 그림을 교회에 기증함으로써
자신들이 부자지만
돈을 이렇게 아낌없이 교회를 위해서 쓰니까
천국에 갈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더 높아질 거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실제로 메디치가가 자신들이 후원하는 화가
보티첼리에게 청탁해서
그리게 한 이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그림에서는
예수와 마리아보다도 그들에게 경배하는 사람들
동방박사가 더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건 왜 그런가 하면
지금 막 예수의 발을 만지고 있는 인물이
바로 메디치가의 코시모 데미 메디치
그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붉은 망토를 입은 인물이
코시모의 아들인 피에로 데 메디치
그리고 그 왼편에
서 있는 두 명의 남자가 피에로 데 메디치의 아들
로렌초와 줄리아노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 그림은 산타마리아
로벨라 성당에 걸려 있었는데 이 산타마리아 로벨라
성당에 온 대부분의 프렌치 사람들은 이 그림에서
메디치가의 얼굴을 알아봤을 거예요
그리고 메디치가가 이렇게 아낌없이 작품을
피렌체를 위해서 기증하고 있으니
그들이 피렌체를 경영할 자격이 있는
그런 가문이다 라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실제로 1400년대 후반에
메디치가가 피렌체시를 위해서 기증한 미술이나
조각이나 건축의 가치는 다 합쳐서
현재의 가치로 6천억 원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미술 작품 기증
문화 사업을 통해서
메디치가는 자신들의 지배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하게 하고
그리고 또 동시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본인들이 부자지만
천국에 갈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들에게도 확신하게끔 만들었겠죠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
이제 다빈치의 그림, 역시 메디치에 가해
후원을 받았던 다빈치의 그림 같은 경우는
원근법을 사용해서 정교하게 그린 배경이 등장합니다
가까이 있는 나무들은 크고 선명하게,
멀리 있는 나무들은 희미하고 작게 그려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화가의 솜씨가 그림에 점점 더 드러나면서
공임의 비율이 점점 더 올라갑니다
보티첼리가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재료비와 공임에서
공임을 50%까지 올려받은 화가라고 하죠
그 후의 화가들
미켈란젤로나 다빈치나
라파엘로나 티치아노 같은 경우는
공임이 더 올라가게 됩니다
아무튼 중세시대에 사용되었던 기법, 이 금을 사용해서
그림의 배경을 채우는 화법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함께 사라졌다가
20세기 초반 들어서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에서 한 번 되살아나기도 하죠
왜냐하면 클림트의 아버지가
보헤미아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금
세공을 배운 장인이었기 때문에
클림트는 아버지의 작업을 통해서
금을 사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근대에 들어와도
여전히 예술과 자본과의 관계는 밀접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중에서
세상에 알린 인물이 바로 화상을 경영했던 폴
디랑리엘이라는 인물이죠 이 폴 디랑리엘은 인상파 화가들
모네나 마네나
르누아르 같은 화가들의 그림들을 대량으로 사들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1870년대의 일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시상에서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디랑리엘은 이들 그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죠
그리고 이 작품들을 특히 미국에 가져가서 팔았습니다
유럽에서는 아직까지 인상파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미국 뉴욕에서 그들의 작품을 전시했을 때
미국의 부호들은 이 인상파의 그림을 보고 웃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이 그림을 샀다 라고
드랑리엘은 훗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드랑리엘 같은 사람들 말고도 투자 가치를 보고
인상파의 작품을 사들이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리톤 가수였던 장밥티스트 포르는 1873년에
만회의 작품을 60점 이상 샀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상당한 돈을 남기고 되팔았습니다
한마디로 이 포르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서
어떤 상업적인 가치를 발견한
몇 되지 않는 인물이었던 거죠
그러나 반골기질이 가득했던 만에는
자신의 은인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선 장
박티스트 포르의 모습을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포르는 당연히 항의했죠
아니 내 모습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이야? 라고 항의를 했더니
마네는 그게 어떻단 말이오?
당신을 실제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그려줬는데
뭐가 잘못됐소? 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 못지않은
그런 기계가 넘치는 인물이 마네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특히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작품 가격에 예민했던 사람은 클로드 모네입니다
모네는 긴 무명 생활을 거쳤고
그 무명 생활
내내 경제적인 곤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데다가
1879년에는 아내인 까미유가 두 어린 아들을 남기고
32이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했는데
너무나도 돈이 없었기 때문에
아내가 사망할 때까지 제대로 병원에 데려가지도 못했어요
그것이 모네의 가슴에 끝끝내 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까미유가 죽은 후에
모네는 자신의 후원자의 아내인 알리스
오슈데와 살림을 합치게 되는데
이때 모네에게는 2명의 아이가
그리고 알리스
오슈데에게는 무려 6명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모네는 삽시간에
8명의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1880년대 말에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면서
모네는 파리
인근의 지베르니라는 마을에
자신의 집을 사서 정착하게 되죠 이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은
지금도 모네의 기념관이 되어 있고
정원이 이렇게 크게 넓고 정원에는 연못도 있습니다
당연히 땅값도 그렇게 싸지 않았을 테고
또 집값도 어느 정도는 됐을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잔금도 지불해야 되는데
슬하에는 8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많은 그림을 그려서
빨리 파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모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연작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각도와 여러 계절과
여러 시간에 따라서 다르게 다양하게 그리는 겁니다
원래 모네는 1877년 3회
인상파 전시회에 생라자르 역을 그린 7점
또는 8점의 연작을 출품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제 생라자르 역 연작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모네가 연작의 가능성에 대해서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네는 기차가 들어오면서
그 육중한 기차의 모습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증기의 모습을 그리려면 한 장의 그림
갖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초창기의 생라자르 역 연작이 잘 팔렸습니다
그때 이제 모네는 깨달았죠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번
그리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주제를 찾아서
새로운 주제를 찾아서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또 그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변화무쌍하게 다르게 그림으로써 모네
자신이 생각한 인상파의 중요한 강령,
시시각각 변화하는 햇빛과 대기를 화폭에 담는다는
인상파의 강령도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모네는 지베르니에 살았기 때문에
지베르니 인근에서 그림의 소재를 찾아야 했고
그림의 소재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1890년대부터 모네는 새로운 방법,
연작이라는 기법을 적극적으로 참고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연작의 주제로 선택한 것은
밭에, 논밭에 쌓여있는 집더미, 노적가리입니다
어쩌면 이 노적가리를 처음 보신 분들은
아니 이 노적가리가 그렇게 매력적인 주제가 아닌데
왜 굳이 이렇게 많이 그렸지? 라고
생각을 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나 모네는 여름
아침에 거의 투명하게 빛나는 노적가리
또 한낮에 짙은 같은 그늘을 드리우는 노적가리
또는 석양을 받아서 붉게 빛나는 노적가리
아니면 가을에 해가 지고 나서
어스름 속에서 희미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노적가리
또는 눈 온 아침에 눈을 맞은 노적가리
이렇게 다양한 노적가리를 그림으로써
언뜻 보기에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이 노적가리라는 주제가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따라서 얼마나
변화무쌍하게
달라질 수 있느냐를 보여줬습니다 이 작품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듀랑 리엘은 노적가리 연작을 장당 3천 프랑에 샀어요
그러나 노적가리에는
오래 그릴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모네가 일어나서 지베르니
집 바깥으로 나가보니까
농부들이 노적가리를 다 실어가버린 거예요
삽시간에 그림을 그릴 대상이 없어졌습니다
당황한 모네는 노적가리 말고
좀 더 오래 한자리에 붙어있을 수 있는 주제를 택했고
연작을 그릴 수 있겠구나 라고 판단하고
강변에 나가서 포플러를 그렸습니다 이 포플러는
나무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당연히 오래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네의 생각과는 또 달랐습니다
어느 날
강변의 목재업자들이 포플러를 다 베어가 버린 거예요
그래서 나무도 움직일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을 모네는 깨닫게 됩니다 이 포플러 연작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뒤랑리엘은 장당 4천 프랑의 이 포플러 연작을 샀습니다
아무튼 나무보다 더 움직이지 않는 것을
그려야 연작으로 오래 그릴 수 있겠다라고 판단하고
모네는 루앙 성당을 그리게 됩니다
모네의 작품들 중에
이렇게 건축물이
그림의 대상이 된 경우는 별로 많지 않은데 이 루앙
성당을 그리겠다고 결심을 한 것은
아마도 포플러
나무가 베어지고 나서
모네가 좀 심적 타격을 입었던 것 같아요
노적가리와 포플러에 이어서
루앙 성당이라는 새로운 연작에서
모네는 푸른 안개에 쌓여서 빛나는 루앙 성당이나
아니면 색깔을 거의 쓰지 않고
아침의 안개 속에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루앙 성당이나
또는 햇빛 아래서 선명하게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는 루앙
성당 또는 석양을 맞으면서
석양의 황곤의 빛으로 노랗게 빛나는 루앙
성당 흐린 날에 푸르게 그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는 루앙
성당 같은 다양한 성당을 그렸습니다 이 루앙
성당은 모네에게 정말로 어려운 과제였지만
한 번은 모네가 아내인 알리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너무나도 이 과제가 힘들어서 하루는 잠이 들었는데
성당이 자기의 위로 무너져 내리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이 루앙
성당의 돌들이 빨갛고
파랗고 노랗게 빛나고 있더라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튼 30점 넘는 루앙
성당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그려졌고
드랑리엘은 이 작품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사려고 할 때
놀랍게도 모네는 장당 15,000프랑을 불렀습니다
드랑리엘은 깜짝 놀랐죠
그 전에 2년 전에 포플러 연작을 장당
4,000프랑에 샀는데
그 가격은 못 주겠다라고 이야기를 하니
모네는 놀랍게도
자신과 드랑리엘 사이의 그런 오랜 관계도 불구하고
몇 점을 다른 화상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듀랑리엘은 장당
12,000프랑의 남아있는 루앙 성당
연작을 모두 사들이게 되죠
어찌 보면 모네는 끝까지
계산에, 작품 가격에 민감한 사람이었고
그것은 모네의 초창기에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예술과 자본 사이의 관계는 멀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가까워지고 있는
새로운 방법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죠
광고의 미술 작품을 사용하면 어떻습니까?
광고에 사용된 미술 작품들은
생각보다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백화점 광고
언뜻 보기에는 미술 작품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죠
그러나 이 작품은 자세히 보시면
뉴욕커의 모습을 즐겨 기린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광고입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분명히 호퍼의 영향이 있죠
이런 식으로 미술 작품을 광고로 이용하면
일단 보는 이들에게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고
그리고 다른 광고와 차별화된
그런 새로운 광고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광고들이 미술 작품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떤 미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을까요?
너무나도 유명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입니다 이 최후의 만찬에서 가운데
예술을 중심으로 12명의 제자들은 제각기 놀람이라던가
의문이라던가 경악이라던가
죄책감 같은 감정들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다양한
드라마틱한 효과가 광고에 이용될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런 작품도 마찬가지죠
다른 예를 하나 볼까요?
그랑디제트 섬의 일요일 오후
쉐라가 그린
유명한 정묘법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광고에 이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식으로 탄생합니다
미국의 한 TV 시리즈의 광고인데 이 그랑디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가지고 있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분위기를 묘하게
TV 시리즈와 연관시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광고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의 꽃,
자본주의의 총화입니다
이런 자본주의의 총화들과 돈과는 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고고하게
자신의 예술세계를 속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미술
작품들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뜻밖이죠
그리고 현대에 들어오면
아예 적극적으로 상업과 자본과 광고 같은 부분들을
작품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부분으로 이용하는 팝아트가 등장합니다
사실 요즘 들어
점점 더 팝아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팝아트의 장점은 우리에게 미술이라는 것이 어렵지 않고
우리가 많이 보고 있는 익숙한 이미지를 가지고도
고급스러운 미술
작품이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팝아트라고 하면
흔히 앤디 워홀을 먼저 떠올리는데 이 팝아트는 뜻밖에도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의 화가인 리처드
해밀튼이 그린 무엇이 현대의 가정을 매력적으로 만드는가
라는 1950년대 작품이 최초의 팝아트 작품입니다
여기서 화가는 육체미를 자랑하고 있는 그런 남성
광고 모델을 가운데에 세워놓고
여러 가지 상업적인 작품들 소파라던가 추금기라던가
테이블이라던가
TV같은 광고 이미지를 다 잘라서 그림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가 들고 있는
교통표지판에 팝이라고 쓰여 있죠
이것 때문에 팝아트라는 제목이 붙은 겁니다
팝아트 작품들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들은 예를 들어서
이런 만화의 이미지를 이용한 리이텐슈타인의 작품이나
아니면 마릴린 먼로를 그린 앤디 워홀의 작품들이죠
이런 작품들에서 화가들이 영화배우나
아니면 만화 같은 대중적인 어찌 보면
고급 문화보다는 하위 문화인 이런 개념들을 비웃고
비판하기 위해서 이런 장르들을 끌어들인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은 영화배우,
만화 같은 상업적인 이미지를
고급한 미술관에 걸게 함으로써
그때까지 미술이 가지고 있었던 대중감원 이미지,
고고한 이미지 등을 비판하고 있어요
리텐슈타인이 그린 이 만화에서
물에 빠진 여자가 나는 죽어도
누구에게는 도와주지 않을 거야
차라리 물에 빠지고 말 거야 라고 소리치고 있는데
사실 이 말풍선의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말풍선의 말과 만화 자체를 그림에 끌고 옴으로써
리텐슈타인은 미술관의 엄숙한 분위기를 풍자하고
우리가 이제 조금 더 본격적으로
현대의 예술은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는
이번 강연에서는 예술 작품이 팔리는 메커니즘,
예술 작품과 그 가치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예술과 자본은 사실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입니다
뛰어난 작품이 창작되는 과정에서
자본은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들어 점점 더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는 작품의 예술적 가치 못지않게
투자 가치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술도 예술가도 돈이라는 명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과거부터 돈은 예술품이 창작되고
예술이 부응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예술의 창작에는 자본 말고도
수많은 요소들이 더 필요하죠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영감도, 왕성한 창작열도,
자본의 뒷받침 없이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여러 역사적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를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큰 근간은 경제와 자본이며
그 원칙에서 예술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강연
최강 1교시 전원경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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