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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 6

멍석

by 자한형 2025.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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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석 / 황진숙 - 15회 천강문학상 대상

가을로 온 작물들이 멍석에 부려졌다. 알싸한 태양초로 거듭나기 위해 고추가 제 속으로 햇살을 굴린다. 상수리는 한 자밤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부피를 줄인다. 짓찧어져 가루가 될지언정 쌉싸래한 맛을 남기고자 껍질을 떠나보낼 준비 중이다. 거둬들인 낱알들은 밀고 당기는 고무래질에 엎치락뒤치락 말라간다. 네모반듯한 두부로 세상을 물컹하게 읽고 아삭한 콩나물로 식탁을 장악하려는 콩들이 뒤섞여 소란스럽기까지 하다.

여물고 나서도 물기를 내놓으며 단단해져야 된바람에도 성할 터이다. 저들이 짓무르지 않도록 멍석이 볕살을 당기고 바람을 불러들인다. 엎어지고 뒹굴며 맘껏 널브러지도록 바닥에 묵묵히 깔려있다. 더러는 곳간으로 들이지 못한 곡식을 덮는 이불자락으로 밤새 한뎃잠을 잔다. 헛간 귀퉁이에 세워지는 날엔 쥐들이 드나들며 쏠아놓기도 한다. 땅에 쓸려 헤지고 나달거리는 행색으로 기꺼이 맨땅에 깔리는 멍석이 늡늡하다.

처마 밑에 매달린 멍석을 만났다. 숱하게 알갱이를 들이느라 몸뚱이 삭는 줄 몰랐을까. 거무튀튀한 몸피 사이로 둘둘 말린 사연이 흘러나온다. 마당에 펼쳐져 곤궁하면 곤궁한 대로 그득하면 그득한 대로 그러안는 품새가 넉넉하다. 젖은 속내를 내보이면 금세 부숭부숭하게 말려 줄 것만 같다. 한여름 폭우에 시달린 나락의 거친 숨결이, 긴 가뭄으로 약이 오른 고추의 옹고집이 멍석의 품에서 잦아든다. 제각각 뱉어내는 푸념과 한숨들이 햇살에 버무려지고 바람에 내걸려 가벼워졌을 터이다. 열매들이 제 몸 추슬러 말간 낯빛으로 정돈되길, 그저 보듬고 기다려주는 멍석이 살갑다.

가까이 다가가자 묵은 세월 탓인지 쿰쿰한 냄새가 끼쳐온다. 더러는 똬리처럼 머리 위에 올라앉아 논으로 밭으로 세상 구경 나서고 싶지 않았을까. 감자며 고구마며 곡물을 내어주는 둥구미로 거들먹거리고 싶었겠지. 유유자적을 일삼다 추수철이 되면 배를 불리는 가마니의 한량 노릇이 부러웠을 테다. 속내를 짐작하느라 한참을 바라본다.

가만히 손으로 쓸어본다. 까끌하다. 보드랍지는 않지만 묻어나는 촌스러움이 질박하다. 아라베스크의 카펫처럼 무언가 묻힐까 조심할 필요가 없다. 흙이나 검불을 들여도 개의치 않는다. 퍼질러 앉거나 드러누워도 좋을 편안함이 있다.

한 겹 한 겹 밀려드는 어둠 속에서 등을 눕힐 멍석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멍석에 누우면 신산했던 하루가 저만치 밀려난다. 개밥바라기가 고달픈 하루에 접질려 비틀거리는 마음을 마중하고 풀어음이 맥을 못 춰 부대끼는 숨을 가라앉힌다. 모깃불의 매캐한 냄새가 몸 안의 지친 기운을 쓸어낼 무렵, 고운 달빛에 취해 설핏 잠이 들어도 좋으리.

내게도 온몸을 내어주는 멍석이 있다. 종종거리며 복닥거리는 일상을 마무리하는 저물녘이면 나른해진다. 나를 잊고 일에 빠져 있느라 늘어지기 일쑤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처진 어깨를 그의 가슴팍에 기댄 채 숨을 고른다. 머릿속을 누르는 걱정거리를 풀어헤치고 고된 노동으로 채운 일과를 들추며 버겁다고 주절거린다. 빗장을 내건 아이들에 대한 푸념 섞인 원망도 꺼내놓는다. 이런저런 일로 성토하는 나를, 그는 언제나처럼 별말 없이 감싸준다. 토닥이는 몸짓에 엉킨 속내가 풀어지고 전해져 오는 체온으로 잠시 한잠에 빠지기도 한다.

그의 품에서는 등을 대고 뒤척이면 그만이다. 포기와 체념이 흐르는 바닥의 시간도, 엎어지고 뒤집히는 감정의 너울도, 이런저런 잡사에 요동치는 생의 굴곡도 잔잔해진다. 독백처럼 쏟아내는 상처들이 무르지 않도록, 한 닢 두 닢 쉼 없이 펼쳐지는 그의 자리가 넓디넓다.

아버지를 병원에 모신 이즈음,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오랜 기간 알코올로 병증이 깊어져 치료가 시급하건만 아버지 동기간들이 수시로 들쑤셔댔다. 멀쩡한 사람을 가뒀다면서 모진 말로 속을 헤집어 놨다. 병원에서는 형제들의 항의로 업무를 볼 수 없다며 보호자인 내게 연락을 자제시켜 달라 요청했다. 툭하면 다른 환자들과 시비가 붙는 아버지와 다달이 결제해야 하는 병원비에 따지고 훈계하는 친척들로 내 속은 말이 아니었다.

연일 야근으로 날밤을 새우는 남편에겐 차마 얘기할 수 없었다. 한참 학업 중인 아이들 뒷바라지로 해쓱해졌기 때문이다. 피곤한 몸으로 퇴근 후 자취방을 구해달라는 아이와 입씨름을 벌이던 날이었다. 저녁상을 차려놓고 남편을 부르니 대답이 없어 안방 문을 열었다.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식인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더는 개입하지 말아 주십시오.” 남편이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아버지 형제와 통화 중이었다. 몇 날 며칠 속앓이하는 나를 눈치챘나 보다. 그가 나서서 쐐기를 박는다. 단호한 목소리로 들썩이는 소란통을 잠재운다. 잠시 후 통화를 끝낸 남편이 방에서 나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든다. 모르는 척 말없이 헤아려주는 마음 씀씀이가 내심 고마웠다. 파이고 생채기 난 가슴으로 스며드는 그의 침묵이 아늑했다.

그는 늘 맨 밑바닥에 깔려 냉기를 막아준다. 뙤약볕에 달궈진 마당이 지열로 성을 부리건, 땅 밑에서 올라온 습기로 땅거죽이 축축해졌건 멍석은 군말 없이 맨땅으로 출정한다. 제 몸 위에 얹어진 이들 안온하도록 흙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물리친다. 한데서 이슬이라도 맞을라치면, 온몸으로 엄호한다. 물기를 끌어안은 채 도포 자락 두르듯 뒤덮는다.

먹빛 어둠에 잠긴 그림자를 밀어낼 적에도, 드리워진 음습한 그늘을 몰아낼 적에도 그는 제 몸뚱이를 축내며 비릿한 시간을 건넌다. 배어드는 습기로 후줄근해지고 곰삭아 퇴색할지언정 온갖 비곤한 일상이 잦아들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명이 묵중하다. 척박한 나날을 잇기 위해 수없이 말리고 풀리는 멍석. 썩어 문드러지도록 물기 마를 새 없이 펼쳐지며 헌신하는 그가 애잔하다.

그간 그에게 기대 온 날들이 스쳐 간다. 연로한 부모님의 병치레, 세상에 나갈 포부로 마음만 들뜬 아이들의 외고집, 살림에 태무심한 갱년기 주부의 무기력까지. 마음대로 내맡겨도 죄다 받아주는 멍석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 난장질하듯 널려도 허물마저 덮어주니 세상 두려울 게 없다. 주린 가슴을 덥혀주고 다독여주는 이가 곁에 있다는 건 행복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맘속에 멍석 하나쯤은 지니고 있으리라. 오래된 기억을 지닌 흑백사진처럼 멍석은 무탈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깃든 비손이다. 무수한 사연이 머무르며 쉬어가는 안식처로, 해감하듯 물기를 털어놓는 자리로, 음지를 걷어내는 멍석의 은유가 환하다. 무게를 덜어내어 저마다 생의 운율을 완성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는 멍석이 참하다.

멍석 위로 햇살이 내려앉는 고즈넉한 오후, 시나브로 고요가 덧칠한다. 계절 따라 무르익어 가는 풍경이 한없이 하뭇하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멍석의 내음을 실어 온다. 그의 체취가 살포시 감겨온다.

15회 천강문학상수필부문 심사평

예년보다는 적은 수의 작품이었지만 400편에 가까운 작품들이 투고되 었다. 적잖은 작품이다. 의령 관련 소재 작품 한 편을 투고의 조건으로 한 것이니 여타의 문학상에 비해 응모 조건이 현격히 까다로운 게 사실 이다. 문학상을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지역에 대한 응모자 들의 관심을 요청하는 셈인데, 문학상이 이례적으로 천강홍의장군天降 紅衣將軍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장군의 이름을 걸고 있으니 문학상 운 영의 이유를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나름의 합리적 인, 흥미로운 조건인 셈이다. 이 대목은 투고자들이 생각해볼만한 지점 이다. 주지하는바 수필은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한 발견과 성찰의 글이 지만, 적잖은 글들이 의령 소재 관련 지식 정보를 바탕으로, 혹은 형식적인 방문 체험을 기초로 하여 적당한 구성과 문장력으로 직조해낸 것 이 상당수이다. 대개의 글들이 고만고만하고 내용도 거기서 거기이다. 소재로 활용되고 있는 내용들이 대체로 유사한데다 특별한 자기 체험이 나 사유, 상상력이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면한 문제인 챗GPT 시대 우리가 수행하는 글쓰기 정체성의 핵심은, 자기 체험과 사유의 개성일 수밖에 없다. 자료와 데이터에 기반한 AI 글쓰기에 부재한 것, 그것이야말로 문학적 글쓰기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이지 않을까. 수필은 소소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작가의 발견과 성찰, 그것의 깊이와 밀도를 생명으로 한다. 소재를 자기화하는 능력, 그것이 개성을 만들어내고 다른 글과 차별화되는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좋은 글이 만들어내는 감동과 감응의 능력은 본질적으로 소재를 자기화 하는 이 점착력, 그 점성粘性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대상 수상작인 멍석은 좋은 글이 갖추고 있는 중요한 자질, 즉 소재를 자기화하는 능력, 체험의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그것은 이 글을 구성하는 문장들이 기본적으로 필자의 감각적 체험을 매우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라는 점에서 명증하게 확인된다. 멍석이 수많은 응모작들 중에 단연 돋보였던 것은, 이 감각적인 글을 이루고 있는 문장들이 다채로운 어휘들과 자기-시선에 의해 구성되고 있다는 점, 이는 사물 세계를 경험하는 작가의 감각이 그만큼 촘촘하고 섬세함을 의미한다. 간결하면서도 맛깔스런 어휘들로 구성된 문장은 독자들을 작가의 감각과 경험의 세계로 어느새 젖어들게 한다. 충분히 매력적이고, 읽을수록 견결한 아름다움을, 화려함마저 느끼게 하는 글이다. 동봉한 작품들은 작가가 갖춘 역량과 만만치 않은 내공을 넉넉히 짐작하게 한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은 서사의 구성력과 성찰의 역량이 돋보이 는 작품이다. 일상의 경험을 한 편의 서사로, 그리고 경험의 서사를 삶 에 대한 보편적 성찰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서사와 성찰을 조화시키고 연결하는 능력이 발군인 작품이다.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사적 체험의 감동과 이에 기인한 감응력은 좋은 수필들이 갖추고 있는 수월성의 중요한 핵심, 어찌 보면 모범적인 수필들의 전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심벌즈 연주자의 역할에서 조연이 갖는 사회 적 의미와 의의를 이끌어내는 이 글의 구성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라 는 점에서 발견의 경이로움의 내재적 한계는 있어 보인다. 또 한편의 우 수작 붉은 땅이 온다는 의령을 소재로 한 여타의 글들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대개의 투고작들이 큰 서사, 혹은 익히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다소 뻔한 주제의식을 성급히 표면화하고 있는데 반해, 이 글은 성황리 소나무에 대한 소소한 감각적 묘사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상상력과 체험을 두루 조화시킴으로써 많은 글들이 노정하고 있는 상투성의 늪에서 벗어나고 있다. 천강문학상에 투고할 응모자들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새로움과 개성은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려는 의지와 욕망 위에 건설된다. 상투성과 관성은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들이 맞서야 할 부정적 상대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올해의 수상자들이 15회를 맞는 천강문학상을 더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수필 부문 수상자, 멍석의 황진숙, 의 김애자, 붉은 땅이 온다의 홍윤선 님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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