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해설

7.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by 자한형 2021. 11. 27.
728x90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백석 by jinphil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詩人

평안북도에서 출생한 백석(1912~1996)시인은 1930, 19세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와 아들]로 등단했다. 그의 시는 토속적인 방언으로 시적(詩的) 분위기와 맛을 한층 심화시켜 친근감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모더니즘한 느낌을 살리는 특징이 있다. 연작시 [서행시초(西行詩抄)]를 비롯하여 [사슴] [여우 난 곬족] [고야] [가즈랑집] [정주성]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등, 많은 시편들이 있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시인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제목 풀이

 

평안북도의 도시인 남신의주(신의주 남쪽)’ ‘유동(동 이름)’에 사는 박시봉(朴時逢)’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집()이라는 뜻이다.

132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자유시이며, 1948년에 발표된 시인의 대표작이다. 시인이 다른 작품에서도 보여주었듯, 민속적이고 토속적이다. 이 시의 특징은 서술적인 독백체에 호흡이 길고 느긋하지만 운율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잦은 쉼표를 사용하며 내면을 진솔하게 드러내어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바람, , 나무 등의 자연을 중심 소재로 삼은 이 작품은 자기 성찰적이며 차분한 어조로 이미지를 선명하게 제시한다. 따라서 자연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며 화자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극복한다. 즉 자연을 객관적 상관물로 삼아 삶의 깨달음과 지향점을 찾는다. ​​

 

백석 시인이 작품마다 자신의 고향인 평안도 사투리를 시어(詩語)로 차용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고향을 떠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모국어를 지키려는 의지와 애향심으로 볼 수 있다. 창작 측면에서 보면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 백석 시인만의 구수함이 진정성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시인의 작품은 마당놀이 같기도 하고, 구성진 판소리 같기도 하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2019 - 이제 곧,

막막하고 절망적인 방황(1~8)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헤매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주인)을 붙이었다.

 

* ; 갈대를 엮어 만든 자리

* 살뜰한 ;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자상하고 지극함

 

화자는 어찌 하다 보니(어느 사이에) 아내와 집을 잃었다. 부모형제와도 멀리 떨어져 객지에서 혼자 떠돌게 됐다. 마땅한 거처가 없어(집도 없어지고) 바람 부는 거리를 떠돌다 날도 저물고 추위도 점점 심해지는데 목수(박시봉)네 집의 허름한 방 하나를 얻었다(쥔을 붙이었다). 박시봉이라는 사람은 목수 일도 하고 세도 놓는 모양이다.

 

현실적 고난과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감(9~19)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계속하여) 쌔김질(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 습내 ; 습기 냄새

* 누긋한 ; 축축한 기운이 약간 있어 눅눅함

* 딜옹배기 ; 질옹배기.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벌어진 작은 질그릇

* 북덕불 ; 북데기(짚이나 풀 따위)로 피운 불

* 굴기도 ; 뒹굴다(누워서 이리저리 구르다 / 빈둥빈둥 놀다)

 

시적 화자는 혈혈단신이 되어 객지를 떠돌다 겨우 춥고 습기 차는 방 하나를 얻어 지내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슬프다. 혼자인 처지가 너무 쓸쓸하고 막막하여 나 혼자도 많은 것 같이여기며 무기력한 상태에서 하릴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 왜 이런 처지가 됐는지 계속 곱씹어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슬픔은 커지고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내적 갈등을 심하게 겪으며 자책한다. 다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여겨지는 커다란 슬픔과 부끄러움 때문에 심적 고통이 너무 크다. 그래서 죽음까지 생각한다.

 

내적 갈등 해소를 위한 운명론(20~23)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19행까지 화자는 참담한 지경에 이른 것을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여겨져 부끄러워하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20행의 그러나로 시상이 전환된다. 화자는 자신이 바라고 뜻하는 대로 인생이 끌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이것들(자신의 뜻과 힘)보다 더 크고 높은 것(운명)이 자신의 의지와 뜻과는 상관없이(마음대로) 인생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며 내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한다. 이는 스스로 이겨내기 힘든 절망적인 현실에 계속 빠져 있으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그 상황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자기위안이자 극복의지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1 - 무언의 힘이,

절망적인 현실극복을 위한 표상(24~32)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나줏손 ; 저녁 때

* 쌀랑쌀랑 ; ‘살랑살랑의 센 말(음성 상징어. 의태어)

* 바우섶 ; 바위 옆

* 하이야니 ; 하얗게(시적 허용. 색채어)

* 정한 ; 하다(맑고 깨끗함)

* 갈매나무 ; 갈매나무 과의 낙엽활엽 관목

 

여러 날을 보내며 화자는 차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외로운 생각도 들고 당장 처해 있는 고난과 시련이 문득문득 떠오르면(싸락눈이 문창을 치기도) 괴로운 심정을 이겨내려는(화로를 다가 끼며) 의지를 갖는다. ‘싸락눈은 고난과 시련을 상징한다.

 

그리고는 당면해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객관적 상관물인 갈매나무를 떠올린다. 혼자 외롭게(먼 산~따로 외로이) 바람 속에서 눈을 맞으면서도 곧게 서서 추위를 이겨내는 갈매나무를 표상으로 삼는다.

어리석은 삶에 대한 자책만 하고 있는 무기력한 화자에게 있어 갈매나무는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희망의 표상이었다. 그리하여 화자는 혼자 외롭게 추위를 이겨내는 갈매나무처럼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는다. 갈매나무처럼 굳세고 정결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는 서정적 자아의 가족해체 문제, 혈혈단신 집도 없이 남의 집에 세를 들어 살아야 하는 고난과 수난, 슬픔과 절망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상징하여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 객관적 상관물 (客觀的相關物)

 

화자의 감정을 심화시키는 대상으로 예를 들면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에서는 이 객관적 상관물이 되고,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에서의 객관적 상관물은 청포도이다.

 

2021 - 언제나 한결같이,

 

백석 시인의 다른 작품 감상하기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러퍼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가즈랑집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짐승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닭 개 짐승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에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산()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안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밑구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아 하루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에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와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도봉  (0) 2021.11.27
8. 당신을 보았습니다.  (0) 2021.11.27
6. 꽃덤불  (0) 2021.11.27
5. 껍데기는 가라  (0) 2021.11.27
4. 그날이 오면  (0) 2021.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