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 道峯 (박두진, 1916~1998)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 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人跡)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 올 뿐.
산 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서울 근교의 산중에서 특히 도봉산(740m)은, 경치도 좋고 코스도 다양하고 길어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산입니다. 오래전 주말에 회사 산악회를 따라 도봉산에 올라간 적이 있는데 그 때만해도 여유로왔지만 요새는 산을 찾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수도권 근교의 산들의 경우 평일임에도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끼어 정신없이 오르내리다 끝난다고 하는군요.
詩는 청록파 시인의 한사람인 박두진 시인이 일제시대 말기인 1940년 전후에 쓴 작품이며 그 때의 암담한 현실로 인해 삶이 괴롭고 울적할 때면 도봉산에 오르며 사색하고 자연과 교감하던 느낌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당시 신록으로 물들어 있는 가을의 도봉산은 아주 한적하고 인적도 드물었을 것이며 경치도 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활동한 분들의 詩들은 시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대개 어둡고 침울한 것들이 자신의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詩 역시 시인이 경치를 감상하지 못한 채 헛되이 누군가를 불러보고 삶과 사랑을 괴로운 것으로 여기며 절망하는 한편 슬픔이 지나면 쉴 수 있는 희망도 기대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1946년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공저로 간행된 <청록집> (을유문화사 간)에 발표되었으며,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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