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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

28. 달밤

by 자한형 2021.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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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밥 윤오영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윗마을 김 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 달밤의 외출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엔 웬 노인이 한 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달을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는 내가 가까이 가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좀 쉬어 가겠습니다."
하며 걸터앉았다. 그는 이웃 사람이 아닌 것을 알자,

"아랫마을서 오셨소?"
하고 물었다.

", 달이 하도 밝기에······."

"! 참 밝소."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푸른 하늘은 먼 마을에 덮여 있고, 뜰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노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안으로 통한 문 소리가 나고 얼마 후에 다시 문 소리가 들리더니, 노인은 방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소반에는 무청김치 한 그릇, 막걸리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마침 잘 됐소, 농주(農酒) 두 사발이 남았더니······."
하고 권하며, 스스로 한 사발을 죽 들이켰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술을 먹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지만 그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따라 마셔 버렸다.

* 노인과의 우연한 만남

이윽고,

"살펴 가우."
하는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 노인과의 작별

*낙향 : 거처를 시골로 옮김.

*농주 : 농사일을 할 때에 일꾼들을 겪기 위하여 농가에서 빚는 술.

*내가 잠시 낙향해서 있었을 때의 일 : 서술격 조사 '-이다'를 생략했을 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 등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생략한 표현법

*나는 밖에서그대로 돌아섰다. : 김 군을 찾아간다고 갔으나 정작 만날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데다가 대문은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한지라, 그냥 돌아섰다.

*웬 노인이 한 분보고 있었다. : 노인과 밝은 달빛, 곧 인간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동화, 거기에 노인의쓸쓸함과 외로움이 배어 있다.

*나는 그런 큰 사발의 ~ 마셔 버렸다 :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나도 따라 마셨다기보다는 달밤이 주는 분위기와 노인의 과묵한 인정 등이 어우러져 일어난 일이라 보는 것이 좋을 듯함.

*얼마쯤 내려오다 ~ 그대로 앉아 있었다 : 달밤의 정경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노인의 자태를 볼 수 있음. 이미 노인의 심경은 물아일체의 경지에 접어든 것처럼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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