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야구방망이 정진권
어느날 퇴근을 해 보니, 초등학교 5학년의 개구쟁이칠팔 명이 마루에 둘러앉아 있었다. 묻지 않아도 막내의 동무애들이었다.
그날 저녁에 막내는 야구 방망이 하나만 사 달라고졸랐다. 조르는 대로 다 사 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너무도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나는 사 주마고약속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을 할 때 방망이 하나를 사다 주었다.
그 다음날부터 막내는 늦게 돌아왔다. 어떤 때는하늘에 별이 떠야, 방망이에 글러브를 꿰어메고 새카만 거지 아이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 삼 년 굶은 놈처럼 밥을퍼 먹었다.
"왜 이렇게 늦었니?"
"야구연습 좀 하느라고요."
"이캄캄한 밤에 공이 보이니?"
"……."
"또이렇게 늦으면 혼날 줄 알아."
"……."
그러나그 다음날도 여전히 늦었다. 나는 좀 걱정이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들이 야구를 한다면그건 취미 활동쯤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무엇에 쏠려서 별이 떠야 돌아오는 것일까?(막내의지나친 야구 연습에 대한 글쓴이의 우려와궁금증)
"왜이렇게 늦었니?"
"……."
"말못하겠니?"
"내일모레가 시합이에요."
"무슨시합?"
"5학년각 반 대항 시합인데 우리가 꼭 이겨야 해요."
<중략>
그런데시합 날이라던 그날, 막내는 우승을 못한 모양이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그냥 잠자리에 들어가이불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나는 지나치게승부에 민감한 것이 좋지 않을 듯해서,
"다음에또 기회가 있지 않니? 갑자기 서두르면 못써. 느긋하게 연습을 해야지." 하고는 이불을벗겨 주었다. 그러나 막내는 무슨 대단한 한이라도맺힌 듯 누운 채로 면벽을 하고 있었다.(패배에대한 실망감이 매우 큼.)
그런데 막내는 이튿날도 여전히 늦었다. 나는 아무래도이 아이가 자기 생활의 질서를 잃은 듯해서
"왜또 늦었니? 시합 끝나면 일찍 오겠다고 하지않았니?" 하고 좀 심하게 나무랐다. 그제야막내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막내의 담임 선생님은 마흔 남짓한 남자분이신데, 무슨 깊은 병환으로 두어 달 쉬시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막내의 반 아이들을 이 반 저 반으로나누어 붙였다. 그러니까 막내의 반은 하루 아침에 해체되고 아이들은 뿔뿔이 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배치해주는 대로 가 보니 그 반 아이들의 괄시가 말이 아니었다. 괄시를 받을 때마다 옛날의 자기 반이 그리웠다. 선생님을 졸졸 따라 소풍을 가던 일, 운동회에서 다른 반 아이들과 당당하게 겨루던 일, 그런 저런 자기 반의 아름다운 역사가 안타깝게 명멸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편찮으신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길도잘 모르는 병원에도 찾아갔다.
그러는 동안에 아이들은, 선생님이 다 나으셔서 오실때까지 우리 기죽지 말자 하고 서로서로 격려하게 되었고 이러한 기운이 팽배해지자 이른 바간부였던 아이들은 자기네의 사명을 깨닫게되었다. 그래서 몇 아이들이 우리 집에 모였던것이고, 그 기죽지 않을 방법으로 채택된 것이야구 대회를 주최하여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연습은 참으로 피나는 것이었다. 뱃속에서 쪼르락거리는소리가 나도 누구 하나 배고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연습이 끝나면 또 작전 계획을 세우고검토했다. 그러노라면 어느 새 하늘에 별이떠 있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결승에 진출했다. 이 반 저 반으로헤어진 동무애들은 예선부터 한 사람 빠짐없이 응원에 나섰다. 그 응원의 소리는 차라리처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열광의 도가니처럼들끓던 결승에서 그만 패하고 만 것이다.
"……."
"아빠, 우린 해야 돼. 선생님이 다 나으실 때까지우린 한 사람도 기죽을 수 없어."
나는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망국민의 독립운동사라도 읽은 것 같았다. 치기(稚氣)인지모르지만 감동 비슷한 것도 가슴에 꽉 차 오는것 같았다. 학교라는 데는 단순히 국어 · 산수만 가르치는 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들었다.
이튿날밤, 나는 늦게 들어오는 막내의 방망이를 미더운마음으로 소중하게 받아 주었다. 그때도 막내와그 애의 동무애들의 초롱초롱한 눈 같은 맑고푸른 별이 두어 개 하늘에 떠 있었다. 나는그때처럼 맑고 푸른 별(꿋꿋하게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상징)을일찍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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