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신선 윤현식
늘 가는 곳이지만 목계의 돌밭을 거닐고 있으면 먼 산이 푸르게 보이듯이, 깊은 물 속이라거나 땅 속에는 수없는 명석(名石)이 묻혀 있을 것만 같아서 흐르는 물소리보다도 가슴이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탐석(수석을 찾는 일)을 가면 으레 물속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 놓아야만 탐석에 대한 미련이 남지 않는다. 탐석의 성과는 전적으로 우연과 안목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곳이 사실상 가장 기대가 되는 장소이니 늘 변하는 물 속의 돌밭은 나를 유혹하는 일종의 신상품 공간이다.
가랑비가 내리는 초봄의 목계는 날씨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탓에 탐석이 쉽지 않다. 그래서 가게 탐석이나 할 겸 충주 목계에 있는 한 수석 가게에 들렀다. 버릇이지만 나는 수반이나 좌대에 연출된 수석보다는 바닥에 깔려 있는 돌을 뒤집어 보기를 더 좋아한다.
필시 바닥에 놓여 있는 돌은 주인장의 눈 밖에 난 녀석들이라 값도 쌀 테고 연출된 수석에 비해서 돌의 종류도 물형석(사물의 형상을 닮은 돌), 산수경석(산, 들, 호수를 닮은 돌), 문양석(무늬나 형상이 그려진 돌), 추상석(추상미를 느끼게 하는 돌), 미석(남한강에서 나오는 매끄러운 청색돌), 옥석(옥이 함유된 돌)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고르는 아이라도 되는 양 달그락거리며 섭취돌을 보고 있는데 주인이 권하는 따뜻한 커피가 잠시 내 손을 멈추게 한다. 가게의 대표작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섭취돌에만 빠져 있는 나에게 주인장은 이런 날씨에 가게에 들러 줘서 고맙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손님에게 건네는 인사말이겠지만 "천천히 고르세요."라는 그의 한마디가 길손의 마음을 더없이 편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잘 됩니까?"
"웬 걸요, 요즘에는 너무 손님이 없다 보니 재미가 덜해요."
주인장은 내가 던진 한마디에 수석인이 점점 줄고 있고, 수석을 사는 사람도 많지가 않아서 수석 가게가 다들 어렵다고 말한다.
옛글에 보면 충주의 반질거리는 오석(烏石 남한강의 질 좋은 검은 돌)이 아름다워서 수레에 얹혀서 싣고 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곳의 돌은 사랑을 받아 왔다. 밥보다 돌을 앞세울 수야 없겠지만, 밥 먹고 난 뒤에 돌을 완상할 여유가 없다면 그 또한 뭔가 부족한 것이다. 이런 내 소견을 듣고 나서 주인장은 한결 밝아진 표정이다. 그의 모습으로 보아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마치 우리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웃이라도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집의 명석은 어떤 것입니까?"
"명석이요? 자기가 좋아하는 돌이 명석이 아닐까요? 자기가 좋아하면 그만이니까요. 여기에 있는 돌은 그러니까 일종의 자기 표현인 셈이죠. 오시는 손님이 얼마나 알아줄지는 모르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어요. 저도 수석이 좋아서 그 재미로 가게를 연 것이니까요."
빗속에 손님이 뜸해서일까 그의 목소리는 수석도 인생도 이미 초월한 도인처럼 느긋하고 한가롭기만 하다. 오고 가는 수석인과 석담(石談)을 나누는 것이 즐거워서 천상의 신선이 잠시 물 좋고 산 좋은 목계 나루에 내려와서 이렇게 앉아 있다고 나는 믿고 싶었다(제목인 '목계신선'과 관련되며, 결국 제목은 수석가게 주인장을 가리키는 말임). 그러고 보니 주인장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실청석(미석, 남한강에서 나오는 매끄러운 청색돌)도 그 문양이 천상의 구원을 떠올리게 하는 명석이다.
히말라야에 가더라도 가지고 오는 것은 기억일 뿐이다. 돌밭에서 허리를 만 번을 굽혀야 겨우 하나쯤 손에 넣는다는 명석은 가랑비 내리는 목계에서 한가로운 돌 가게 주인장과 나눈 석담으로 대신하면 되지 않겠는가. 아마도 '다래 수석(多來水石)'이란 간판은 사람들의 이런 심정을 훤히 꿰뚫어 본 주인장의 선수(先手, 남이 하기 전에 앞질러 하는 행동)이리라. 자주 오다 보면 일생일석(一生一石)은 아니더라도 주인장의 구수한 성품을 닮은 수석이 눈에 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