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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2

11.수정비둘기

by 자한형 2022.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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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비둘기 김동인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끝없이 무겁게 하는 어떤 가을날이었다.

 

가슴을 파먹어 들어가는 무거운 병에 시달린 외로운 젊은이는, 어떤날 저녁. 어떤 해안의

 

조그만 도회의 거리를 일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저녁해가 바다에 잠기려 하는 황혼이었다. 죽음을 의미하는 불치의 병에 걸린 이 젊은이는 무거운 다리를 골목으로 끌고 있었다.이렇게 일없이 돌아다니던 젊은이는, 어떤 집 문앞에서 그 집 대문턱에 걸터앉아 있는 소녀를 하나 보았다. 열 두세 살 난 소녀였다. 소녀는 젊은이를 쳐다보았다. 젊은이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소녀의 눈은 수정과 같이 맑았다. 진주와 같이 보드라웠다. 젊은이는 소녀에게 가까이 갔다.

 

"너 몇 살이니?"

 

"열두 살"

 

"이름은?"

 

"영애."

 

병 때문에 감격키 쉬운 젊은이는 황혼에 빛나는 그 소녀의 맑고 아름다운 눈에 감격되었다. 젊은이는 지갑을 꺼내어 소녀에게 얼마간 주려다가, 그 맑은 소녀의 마음이 돈 때문에 사념이 생김을 저어하여 다시 지갑을 넣고 시계줄에서 수정으로 새긴 비둘기를 떼어서 소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다시 무거운 다리를 끌고 그 자리를 떠났다. 길 모퉁이를 돌아설 때에, 젊은이는 뜻하지 않고 또 돌아보았다. 소녀의 맑은 눈은 감사하다는 듯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태가 지났다. 젊은이의 병은 차차 무거워갔다. 아무 친척도 없는 이 젊은이는 한 사람의 의사와 한 사람의 간호부와 한 사람의 노파를 데리고, 이 해안에서 저 해안으로 고치지

 

못할 병을 행여나 고치어 볼까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또 이태가 지났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저 세상으로 갔을 병이지만, 그의 성심의 덕으로 아직까지 끌기는

 

끌었다. 끌기는 끌었으나 다시 회복할 가망은 없었다. 남쪽 해안, 임시로 지은 그의 요양소에서 그는 고요히 죽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때때로 사 년 전 가을, 어떤

 

작은 도시회지에서 본 황혼의 소녀의 눈을 환각으로 보았다. 그는 소녀의 얼굴도 잊었다.

 

그러나, 자기를 쳐다보는 그때의 그 소녀의 두 눈알뿐은 아련히 이 젊은이의 눈에 남아서

 

젊은이의 마음에 아름다운 추억을 주었다. 몹쓸 꿈에서 깨어나면서, 식은 땀에 젖은 괴로운 몸을 침대 위로 돌아누우면서도 그는 뜻하지 않게. "영애!"하고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어떤 날 황혼, 이젊은이는 간호부를 불렀다. 그리고 제 침대를 바다로 향한 문앞으로 하고, 머리를 바다 쪽으로 두게 옮기어 놓아 주기를 청하였다. 간호부는 젊은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침대를 그의 지시대로 밀어다 놓았다. 젊은이는 침대에 누운 채로 도로 나가려는 간호부를 불렀다. 그리고 바다를 가리켰다.

 

"저어기 배가 하나 있지요?"

 

"어디요?"

 

"저어기 돛단배."

 

"."

 

"그걸 봐요."

 

간호부는 그 배를 보았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서 눈을 도로 젊은이에게 돌리었다.

 

"하안참, 오 분 동안만 봐요."

 

간호부는 다시 배를 보았다. 배를 바라보는 눈을 젊은이는 누워서 쳐다보았다. 젊고 예쁜

 

얼굴이었다, 그리고 젊고 예쁜 눈이었다. 그러나, 젊은이는 그 간호부의 눈에서 사 년 전

 

어느 저녁에 본, 그 소녀의 눈에서와 같은 아름다움은 발견치를 못하였다. 젊은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간호부에게 도로 나가기를 명하였다.

 

 

젊은이의 최후가 이르렀다. 환혼의 해안 --천하가 붉게 물들여져 잇었다, 그리고, 그 반사

 

광은 젊은이의 누워 있는 방 안까지 새빨갛게 물들여 놓았다.

 

사 년 전 어떤 황혼에 본 소녀의 그 눈을 마음으로 보면서 이 젊은이는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서가 피로되었다. 그 유서에는 사 년 전에 XX XX고을에 살던, 그때 열두 살 났던 영애라는 처녀을 찿아서, 그 처녀가 그 때 어떤 과객이 준 수정으로 만들은 비둘기를 가지고 있거든, 자기의 유산 전부를 주어서 비둘기를 사서, 자기와 같이 묻어 달란 말이 있었다. 그리고, 젊은이는 그때의 그 소녀가 아직껏 그 비둘기를 가지고 있을 것을 의심치 않고 믿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의 주검은 수정 비둘기와 함께 무덤으로 갔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있던 나는, 한 번 기지개를 하고 일어났다.

 

바야흐로 무르익은 봄날, 곳은 모란봉 중턱에 있는 어느 조용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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