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튜아리 변영로 (樹 州)
사사로운 슬픔을 밖에 내이는 것은 고상치 못한 감정일 뿐만 아니라 어리석기까지도 하다. 따라서 극도의 슬픔은 밖에 내이려야 내여지지도 않는다. 깊은 물은 소리나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이제 나는 고상치 못하다는 말을 듣고 우치(愚痴)하다는 기소(譏笑, 남을 조롱하여 웃음)를 들으며, '깊이 느낄 줄 모르는 자'의 낙인 찍힘을 돌아보지 않고, 간 나의 아내에 대하여 몇 줄을 적어보려 한다.
이제로부터 이십삼 년 전이다. 그와 내가 결혼하던 때가. 그는 나이 열여섯이었고 나는 중학 삼년에 다니던 열네 살 적이었다. 그런데 그는 나보다 나이는 두살 밖에 위가 아니었으나 숙성한 폭으로는 오, 륙세의 차이가 있어 보였다. 동생같이 어려보이는 남편이 무엇이 그리 부끄러웠던지 결혼 후 수년 지나도록 남 보는 데서는 물론 단둘이 있을 때에도 고개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리운 옛날이여!
피차에 어린 터이었으니 무슨 짙은 애정이 있었을 리 없었지만은 잠시만 눈에 뜨이지 않아도 보고싶었다. 아니 미웁기까지 하였다. 만나야 할 이야기조차 별로 없으면서도 만나기만 조였다. "괜히 사람을 꼼짝도 못하게 해..." 이것은 꽤 흉허물이 없어진 몇 해 뒤에 그가 나에게 처음으로 핀잔삼아 한 말이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리운 옛날이여!
그가 나와 결혼한 뒤로 일분(一分)의 낙(樂)이 있었다면, 나머지 구분(九分)은 고초였었다. 일분의 낙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그를 잠시라도 미워해 본 적이 없음이다. 어느 뉘 망인을 두고 거짓을 말하리! 나는 사실 그를 미워한 적이 없었다. 물론 말다툼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말다툼이 쇄서 싸움을 한 적도 많았지만, 늙을 때까지 동행할 줄만 알고 그랬던 것이 슬프다. 이제 와선 뉘우침의 싹만 되고 말았다! 그러면 구분의 고초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이루 다 들 수 없다. <삼국지>를 다시 쓰고 <트로이 병화기(兵火記)>는 뜯어고칠지언정 나의 불민으로 그를 고초시킨 것은 적을 길이 바이없다. 가엾은 나의 아내여!
하루아침 꿈결같이 거짓말같이 허황하게 여의고 나니 슬픈지까지도 모르겠다. 나의 마음 모질어 그러한지 남 보기에는 평상시나 다름없어 보이지만 누우나 이나 자나 깨나 그리움과 뉘우침이 바늘같이 박히고 좀같이 썬다. 집안에서 디굴디굴 구는 물건마다가 행여 잊을세라 일깨워주고 다니던 상점 앞을 지나도 불현듯 하여지며 늘 드나들던 골목을 당도하여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해로(偕老)는 이미 틀렸으나 꿈보다는 좀더 뚜렷하게 한번 만나서 말 한마디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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