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 40년 변영로
오 백주(白晝)에 소를 타고
역시 혜화동 우거(寓居)에서 지낼 때이었다. 어느 하룻밤 바커스(Bacchus)의 후예(後裔)들인지, 유명의 직손들인지는 몰라도 주도의 명인들인 공초, 성제, 횡보 주 삼선(三仙)이 내방하였다. 설사 주인이 불주객이란 대도 이런 경우를 당하여서는 별도리가 없었을 것은 거의 상식 문제인데, 주인이랍시고 나 역시 술마시기로는 결코 그들에게 낙후되지 않는 처지로, 그야말로 불가무(不可無) 일배주(一杯酒)이었다.
하나, 딱한 노릇은 네 사람이 주머니를 다 털어도 불과 수삼원, 그때 수삼원이면 보통 주객인 경우에는 삼, 사인이 해갈(解渴)함직하였으나 오배 사인에 한하여서는 그런 금액쯤은 유불여무(有不如無)였다. 나는 아무리 하여도 별로 시원한 책략이 없어 '궁(窮)하면 통한다'는 원리와는 다르다 해도 일개의 악지혜(惡智慧)-그실 악은 없지만 안출하였다. 동내에서 모인집 사동(使童) 하나를 불러다가 몇 자 적어 화동 납작집에 있던 동아일보사로 보내었다. 당시 동아일보사의 편집국장은 고(故) 고하(古下, 송진우)였는데, 편지 사연은 물을 것도 없이 술값 때문이었다. --- 좋은 기고를 하여 줄 터이니 오십 원을 보내 달라는 - 우리는 아이를 보내 놓고도 마음이 여간 조이지를 않았다. 혹, 거절을 당한다든지 하면 어찌나 함이었다. 십분, 이십분, 삼십분, 한시간, 참으로 지리한 시간의 경과이었다. 마침내 보냈던 아이가 손에 답장을 들고 오는데 우리 4인의 시선은 약속이나 한 것같이 한군데로 집중되었다. 직각도 직각이지만, 봉투 모양만 보아도 빈 것은 아니었다. 급기 뜯어 보니 소기(所期)대로, 아니 소청(所請)대로 50원, 우화(寓話) 중의 업오리 금알 낳듯 하였다.
이제부터 이 50원을 어떻게 유효 적절하게 쓰느냐는 공론이었다. 그 때만 해도 50원이면 대금이라 아무리 우리 넷이 술을 잘 먹는대도 선술집에 가서는 도저히 비진(費盡)시킬 수 없었던 반면에, 낮부터 요정에를 가서 서둘다가는 안심 안 될 정도였다.
끝끝내 지혜(선악간에)의 공급자는 나로서 나는 야유(野遊)를 제의한 바, 일기도 좋고 하니 술 말이나 사고 고기 근이나 사 가지고 나 있는 곳에서 지척인 사발정 약수터(성균관 뒤)로 가자 하니 일동 낙(諾)타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은 명륜동에 있는 통신중학관(고 강상희 군이 경영하는)으로 가서 그곳 하인 어서방(魚書房)을 불러 내어 이러저리 하라, 만사를 유루(遺漏)없이 분부하였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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