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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2

149. 그 수평선을

by 자한형 2022.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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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평선을 김남조 숙대명예교수. 시인

 

오늘 보고 싶은 건 하늘까지 맞닿은 수평선이다.

 

하늘이 바다요 바다가 하늘이라 할 만큼 둘은 한 가지 색조에 풀어져 시야의 끝머리에 가로누워 있으리라. 그 꿈속 같은 광경을 능히 현실인 듯이 상상해낸다. 한 필의 연이은 비단 피륙처럼 머리 위 공중에서 아슴푸레한 저편까지 포물선을 그으며 높이 멀리 이어져 있을 그 수평선을.

눈에도 굶주림이 있어서 오랫동안 못 본 것에게 목마름을 탄다. 언제쯤 수평선을 봤던가 싶게 그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어려운 지경에서 나는 오늘 불현듯 치받는 충동에 겨워 간절히 바다 생각에 집중한다.

삶의 영광이여!

언제나 생각하는 일이지만 우리의 주변엔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종교와 자연과 예술만 하더라도 이에는 제약이 없고 특권자도 없으며, 원하는 이가 원하는 만큼을 누려도 좋은 전적인 허용만이 있을 뿐이다.

어려운 시대, 삭막한 감정들에 기름 바를 자연과 식어가는 심장의 피를 데워줄 예술심과 그리고 만유 위에 계시옵신 조물주 하나님. 이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혼자 있으되 혼자가 아니며 쫓겨난 듯이 마음 추운 날에도 깊고 달가운 윈안의 악수를 받곤 한다.

산의 장쾌함과 바다의 무량함도 기실 위대한 관현악 안에서 호흡을 맞추는 악기들 같이 서로 도와 완미한 조화에 나아가고 있음을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바다에 가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면 오늘도 역시 그 수평선은 유순한 양떼들 처럼 드러누워 느리고 유장한 심호흡을 하고 있으려니 그 맥동 가히 손에 잡히는 듯하다. 거기에 선 사람의 지친 몸도 커다란 요람 속에서 처럼 포근히 쉬게 될 것임을, 천천히 흔들어주는 손길로써 온갖 긴장과 피로를 만져 치유해줄 것이리라.

수평선이 보고 싶다.

배를 타고 한없이 바다 위를 흘러가면서 바다와 하늘이 마주 보는 광활한 공간에 안기고 싶다. 하늘 청청, 바다도 청청, 그 풍경을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씻어주고 새롭게 해줄 거대한 세척장.

바다와 하늘은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 같은 것일까? 산울림 같은 것일까? 육지에는 하늘의 모습이 비치지 않는데 물 위에 언제나 선명히 피어오르는 하늘의 그림자가 있다. 작은 호수거나 허리띠처럼 가늘고 긴 실개천이나 심지어는 두메의 우물속에서도 하늘은 고요히 내려 잠기어 그림자를 지운다.

석양 머리엔 화선지처럼 선주황의 염료가 번지고 서서히 은자(銀紫)로 바뀌었다가 다시 수묵색으로 갈아입은 빛깔들의 층계. 밤이되면 순금빛 불티를 뿌리는 억천만 개의 별들까지 고스란히 물 위에 얹히는 그 놀라움이라니!

비단실 스치듯이 미풍이 지날 때도 섬세히 그 모습 비추는가 싶은, 그토록 영롱한 명경(明鏡). 바다여! 바다여!

하늘의 거울로 생겼는가,

하늘의 산울림으로 생겼는가,

바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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