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99. 불국사 기행 불국사 기행 현진건 7월 12일, 아침 첫 차로 경주를 떠나 불국사로 향했다. 떠날 임시에 봉황대(鳳凰臺)에 올랐건만, 잔뜩 찌푸린 일기에 짙은 안개는 나의 눈까지 흐리고 말았다. 시포(屍布)를 널어 놓은 듯한 희미한 강줄기, 몽롱한(흐릿한) 무덤의 봉우리, 쓰러질 듯한 초가집 추녀가 눈물겹다. 어젯밤에 나를 부여잡고 울던 옛 서울은 오늘 아침에도 눈물을 거두지 않은 듯. 그렇지 않아도 구슬픈 내 가슴(객수)이어든 심란한 이 정경에 어찌 견디랴? 지금 떠나면 1년, 10년, 혹은 20년 후에나 다시 만날지 말지! 기약 없는 이 작별을 앞두고 눈물에 젖은 임의 얼굴! 내 옷소매가 촉촉이 젖음은 안개가 녹아 내린 탓만은 아니리라. 장난감 기차는 반 시간이 못 되어 불국사역까지 실어다 주고, 역에서 등대(等待.. 2022. 1. 29.
98. 두부 장수 두부 장수 최현배 서울의 명물―아니 진경의 하나는 확실히 행상들의 외치는 소리이다. 조석으로, 이 골목 저 골목에는 혹은 곧은 목소리로, 혹은 타목으로, 또 남성으로, 혹은 여성으로 제가끔 제 가진 물건들을 사 달라고 외친다. 이 소리에 귀가 닳은 서울 사람에게는 아무 신기할 것 없겠지만,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온 시골 사람의 귀에는 이 행상들의 외는 소리처럼 이상야릇한 서울의 진풍경은 없을 것이다. 오늘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꼭 13년 전의 일이다. 내가 시골서 백 여리를 걸어 겨우 경부선 물금역에 가서 생전 처음 보는 기차를 타고 공부차로 서울에 와 잡은 주인집은 관 훈 방청석골 정소사의 집이었다. 같이 온 동무도 있거니와 이 주인집에 묵는 학생들은 고향 친척도 있고, 또 영남 학생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 2022. 1. 29.
97. 가을의 여정 가을의 여정 전광용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리고 여름은 여름, 겨울은 겨울대로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그대로 다 새로운 즐거움을 가슴 속에 안겨다 주는 청신제라고나 할까. 그뿐인가.농촌은 농촌대로 전원의 유장한 목가적인 맛을 ,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것만이 지니는 독특한 자연의 시정을 선물하는가 하면, 새롭고 낯선 도시의 가로는 그것대로 흙 속에 파묻혔던 사람들에게 산뜻한 미지의 감각에 경이에 찬 눈동자를 뒹굴리게 한다. 그러기에 천하 명산 금강산도 계절에 따라 봉래,풍악,개골, 금강 등 그 때마다의 승경의 아치를 상징하는 이명들을 가지고 있다. 새 움 트는 봄의 정경이 산책이나 소풍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리듬이라면, 여름의 무르익은 녹음과 작열하는 태양은.. 2022. 1. 29.
96. 토속 연구 여행기 토속(土俗) 연구 여행기 손진태 3월 21일 조조(早朝)에 나는 겸이포역(兼二浦驛)에 내렸다. 도쿄(東京)서의 김군의 소개장을 가지고 중화군(中和郡) 어떤 춘중(村中)에 있는 '박사'를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박사'란 것은 황평(黃平) 양도(兩道)와 홍원(洪原) 이북의 함경도 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남성 무당을 가리켜 이르는 명칭이다. '박사'에 관해서는 진진한 흥미가 많으나, 지금 그 대략을 말하면, '박사'는 박사(博士)가 아니요. 소 아시아 키르기즈 초원 지방에 있는 목축민의 남성 무당의 명칭과 일치하는 것이다. 키르기즈에서는 남성 무당을 '박사' 혹은 '박세'라고 한다. 이 무당을 함경도에서는 '호새애비'라고 한다. '호새애비'라는 것은 시베리아의 동해안과 카라후토 섬(樺太島) 일부에 사는 오로코 .. 2022.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