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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원주/이영"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대나무 숲에 누웠더니 임금께서 800리나 되는 강원도를 맡기셨다. 아아, 임금의 은혜야말로 갈수록 망극하다. 영추문으로 달려들어 경회루의 남문을 바라보며 하직하고 물러나니 옥대목의 임명장이 앞에 있구나. 평구역에서 말을 갈아 타고 흑수로 돌아서니 섬강이 어디메요, 치악이 여기로구나"조선시대 최고의 가사작품으로 손꼽히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첫 구절이다.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는 송강 정철을 강원도관찰사로 임명했고, 관동별곡>은 정철이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기까지 한양에서부터 강원도를 유람한 내용을 적은 일종의 여행기이다. 관동별곡>의 첫 구절에 나오다시피 임금께 인사를 하고 한양을 떠난 정철이 강원도에 도착해서 부르는 첫 마디가 '섬강이 어디메요, 치악이 여기로구.. 2025. 5. 17.
탕평 내세운 소론 영수 명재 윤증 탕평 내세운 ‘소론 영수’ 명재(明齋) 윤증/송의호스승 우암 송시열의 경직된 사상을 비판하다노론에서 배웠지만, 영수 우암의 편벽주의와 실질 없는 북벌 비판 가해병자호란의 수치 잊지 않고 근신하며 초야에서 제자 양성한 백의정승윤완식 후손이 명재고택 사랑채에서 편액 ‘離隱時舍(이은시사)’ ‘桃源人家(도원인가)’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가운데 보이는 담장 뒤편이 노성향교다. / 사진:송의호"그해 겨울 오랑캐가 대거 침입하자 공(公)은 모부인을 모시고 강도(江都, 강화도)로 들어갔고, (아버지) 팔송공은 어가를 배종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란했다. 공이 동지들과 함께 (…) 자청해 (강화도) 성을 수비하는 곳에 나누어 예속되었다. 이듬해 정축년(1637) 성이 함락되었다.”우암 송시열이 1674년(현종 15) 지은.. 2025. 5. 17.
주자의 일점익획까지 따른 우암 송시열 주자(朱子)의 일점일획까지 따른 우암(尤庵) 송시열/송의호춘추대의 신념으로 난세의 질서를 세우다대군 시절의 효종과 사제 인연, 북벌(北伐)과 존주(尊周)를 대의로 설정노론 영수로 군림, 예송논쟁 여파로 유배된 뒤 원자 책봉 반대하다 사약남간사유회 송준빈 회장이 대전 남간정사 앞에서 우암 송시열 선생의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송의호1689년(숙종 16) 6월 8일. 금부도사 권처경이 정읍으로 내려왔다. 사약을 들고서다. 거적자리로 83세 노인이 들어섰다. 사약을 받기 위해서다. 그는 사약을 마시기 전 따라온 제자들에게 말했다. 죽음을 앞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마지막 유언이다. 문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적었다. “학문은 마땅히 주자(朱子)를 주(主)로 할 것이며, 사업은.. 2025. 5. 17.
730년 전 이 땅에 성리학 도입한 회헌 안향 730년 전 이 땅에 성리학 도입한 회헌(晦軒) 안향/송의호동방 예학 왕국 이끈 사상적 좌표 제시고려말 이념 공백기에 [주자서] 들여와 미신 타파하고 국풍 쇄신선비 양성에 전념, 소수서원은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소수서원을 이끌어가는 류준희(왼쪽)·권기열 도감이 강학당 앞에 걸린 편액 ‘백운동’ 앞에 섰다. / 사진:사공정길 학예사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일대가 선비 문화의 요람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을 비롯해 건너편에는 지역 명가(名家)를 재현한 선비촌과 인성교육장 선비문화수련원이 있다. 또 한쪽에는 ‘충(忠)’을 기리는 금성단(錦城壇)이 있다. 9월 17일 소수서원은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했다. 서원 소수박물관에서 사공정길 학예사를 만났다. 소수서원 두 도감(都.. 2025.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