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219 주자의 일점익획까지 따른 우암 송시열 주자(朱子)의 일점일획까지 따른 우암(尤庵) 송시열/송의호춘추대의 신념으로 난세의 질서를 세우다대군 시절의 효종과 사제 인연, 북벌(北伐)과 존주(尊周)를 대의로 설정노론 영수로 군림, 예송논쟁 여파로 유배된 뒤 원자 책봉 반대하다 사약남간사유회 송준빈 회장이 대전 남간정사 앞에서 우암 송시열 선생의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송의호1689년(숙종 16) 6월 8일. 금부도사 권처경이 정읍으로 내려왔다. 사약을 들고서다. 거적자리로 83세 노인이 들어섰다. 사약을 받기 위해서다. 그는 사약을 마시기 전 따라온 제자들에게 말했다. 죽음을 앞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마지막 유언이다. 문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적었다. “학문은 마땅히 주자(朱子)를 주(主)로 할 것이며, 사업은.. 2025. 5. 17. 730년 전 이 땅에 성리학 도입한 회헌 안향 730년 전 이 땅에 성리학 도입한 회헌(晦軒) 안향/송의호동방 예학 왕국 이끈 사상적 좌표 제시고려말 이념 공백기에 [주자서] 들여와 미신 타파하고 국풍 쇄신선비 양성에 전념, 소수서원은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소수서원을 이끌어가는 류준희(왼쪽)·권기열 도감이 강학당 앞에 걸린 편액 ‘백운동’ 앞에 섰다. / 사진:사공정길 학예사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일대가 선비 문화의 요람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을 비롯해 건너편에는 지역 명가(名家)를 재현한 선비촌과 인성교육장 선비문화수련원이 있다. 또 한쪽에는 ‘충(忠)’을 기리는 금성단(錦城壇)이 있다. 9월 17일 소수서원은 코로나19 여파로 한산했다. 서원 소수박물관에서 사공정길 학예사를 만났다. 소수서원 두 도감(都.. 2025. 5. 17. 일제에 비타협 불복종으로 맞선 유학자 심산 김창숙 일제에 비타협·불복종으로 맞선 유학자 심산(心山) 김창숙/송의호“세상을 구하려 하지 않으면 거짓 선비다”항일운동 자금 마련하다 고문당해 앉은뱅이 됐어도 꺾이지 않은 저항정신… 67세에 해방 맞은 뒤 이승만 독재에 저항, 남북분단 막기 위해 헌신성주청년유도회 김균섭 회장이 대가면 사도실 마을 청천서당에서 심산 김창숙의 집안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1925년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 선생은 중국에서 동지 이회영을 만났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국·내외 독립운동이 시들해지던 시기였다. 심산이 구상을 밝혔다. ‘일본의 힘이 미치지 않는 중국 변방의 황무지를 얻어 만주 일대 동포를 이주시키고 땅을 경작하자’는 안이었다. 그곳에서 군대를 기르면 독립을 달성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 2025. 5. 17. 세한도 남긴 동아시아 지성 추사 김정희 ‘세한도’ 남긴 동아시아 지성 추사(秋史) 김정희/송의호유배 시련을 학예일치 경지로 꽃피우다권문세가 태어나 박제가에게 배운 뒤 금석학·고증학 등 개척한 실학자형조참판까지 올랐으나 당쟁 휘말려, 9년 제주 유배 기간에 추사체 완성김광호 추사 선생 6대 주손이 충남 예산 추사고택에서 추사영실의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송의호"지난해는 [만학]과 [대운] 두 문집을 보내더니 올해는 우경의 [문편]을 보내왔다. 세상에 흔한 것도 아니고 천만리 먼 곳에서, 그것도 여러 해가 걸려야 비로소 얻을 수 있으니 단번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은 오로지 권세와 이익만 좇는 것이 상례인데 그대는 숱한 고생으로 겨우 손에 넣은 책을 권세가에 기증하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초췌한 나에게 보내주었.. 2025. 5. 17. 이전 1 2 3 4 5 ··· 80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