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牛]-안회남
작년 9월 26일에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북구주 입천탄광(포개볕뼛)으로 백삼십사 명이 징용되어 갔다.
그 일행 중에 삼룡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별명이 -소-였다. 그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그를 보면 그냥 「이러어」 또는 「어디어」 하기도 했다.
어째서 소냐 하면 그의 생김생김이 꼭 소 같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두 눈(참 하릴없는 소의 눈이라. 선량한, 유순한 -긴 얼굴과 길다란 코. 홀쪽 들어간 뺨. 우묵한 입, 그 중에서도 길다란 콧등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를 연상하게 하였다.
키가 큰데다가 어깨와 등까지 꾸부정해서 그가 걸어가고 있는 모양은 사실 어슬렁어슬렁 가는 소 그대로이다.
그는 사람과 말을 잘 안 했다. 동작도 소처럼 느렸다. 부지런하고 성실하포 늘 묵묵불언으로 자기 일만 꾸준히 해나가는 것도 그랬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점과는 정반대로 퍽 신경질적인 점이 한가지 있었다. 그것은,
「글쎄. 그러지 말어!」
불끈 성을 내며 하는 소리였다.
동무들이 삼룡이를 붙들고,
「소야. 이놈의 소」
「어디어 디이」
「어어, 이러 ,,,, 」
「소 -」
할라치면 그렇게 느리고 무겁고 묵묵부답이던 그가 일일이,
「글쎄, 그러지 말어!」
「글쎄, 여기선 그러지 말어!」
「나 소 아녀.」
부리나케 야단인 것이다.
이것으로 보면 그는 소를 대단히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니다. 삼룡이는 소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소의 별명을 듣고. 소라고 불리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후 나는 그 소로 불리어지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실과 그 이유를 직접 삼룡이한테 들어서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탄광에 도착한 후 훈련을 받고 갱내 견학을 한 다음 인제 직접 석탄을 파게 되었을 때 삼룡이는 며칠간 아주 넋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갱내 작업을 모면하기 위하여 훈련소 소장에게 갖은 애원을 다 하였고 별별 수단을 다 썼으나 필경 나와 함께 우에산자쿠 레이가타에서 사이탄을 하게 되었다.
「으흐흐 ,,,,,,」
「응,,,,,, 나 죽네 -」
그는 지하 수천 척 되는 갱내를 아주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모양으로 늘 입갱할 때면 이렇게 중얼거리며 부르르 떠는 것이었다.
그가 할 수없이 엉덩이를 쑥 뺀 채 시꺼먼 아구리로 끌려 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도소장으로 가는 소를 연상하고 하였다.
「어머님두 못 뵈옵구!」
「후.,,,,, 나 죽네!」
바람 들어오는 소리가 쏴 나고,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길이 질척거리고, 지축(地軸) 밑에서 무슨 괴악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고, 무한히 길고 어둡기만 하고, 머리 위에서 석탄덩이가 바위와 함께 쉴새없이 떨어지고 있는 굴 속에서 그의 이런 목소리를 들으면. 그것은 사람의 비명이라느니보다도 무슨 유령의 신음 같았다. 그리고 탄광은 분명히 지옥이다.
그후 내가 연기대 하장으로 추천되어 사무실에 앉게 되었을 때 삼룡이는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쫓아와서 나의 손을 붙들고 울었다. 그는 연기군 사람이 한 사람 사무실에 앉게 된 것을 무한 하례하는 동시에 자기를 굴에서 구원해 내주기를 애원했으며, 나는 또 구원해주마고 맹서하였다. 그때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제가 징용오기 한달 전에 우리 집 소가 식용으로 공출이 되어 갔세유,,,,,, 이사장(理事長) 놈의네 소가 갈 것인데 그것 참,,,,,, 소 나이로 보나 일하는 품으로 보나 즈이네 소는 안 갈 거거든유. 똑 이사장 놈 소가 갈 텐데 대신 가서 도수장에서 죽었에유,,,,,, 참 억울합니다. 그런데 제가 또 이렇게 징용왔거든유. 집에서 떠날 때부터 소가 나가 죽더니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두 나가 죽나부다 하는 생각이 들더먼유. 사실 다 뭐 죽으러 온 셈이지유, ,,, 소가 도수장 안으로 끌려 들어가 도끼 등으로 골을 맞어 죽는 것이나 사람이 굴속에서 일하다가 큰 바위에 등골이 치어 죽는 거나 똑 마찬가지 아닙니까?,,,,,, 전 굴 속에서 늘 소 생각입네다,,,,,, 똑 죽을 거만 같애유. 그런데 이건 다른 사람은 남 속도 모르구 자꾸 날 보구서 소라구,,,,,, 날보구 소라는 건 소처럼 죽으라는 것 아닙니까 ? -그저 안상 어른만 믿습니다,,,,,,」
나는 이 삼룡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 잘 이해할 수가 있어 고개를 연해 끄덕거렸다.
소와 삼룡이, 아니 고의 별명에 좇으면 소와 소, 그것은 서로 모양새도 같으며 그 운명도 같은 것 같았다. 삼릉이는 하루 이틀 점점 피로해지는 꼴이었다. 그는 딴사람들처럼 도망을 갈 용기도 가지지 못했다. 내가 도당을 가라고 권고하면,
「아아녜유 ,,,,,, 제가 도망을 가면 조선 있는 식구들은 다 죽게유 ? --- 죽어도 안상 어른 앞에서 죽을 텝니다,,,,,, 또 도망하면 전 붙잡혀유,,,,, 」
도망을 가면 여기 회사에서 조선 군청으로 통지를 하고 군청에서는 도망한 사람의 가족에게는 양식 배급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삼룡이는 이것을 꼭 믿고 만약 자기가 도망을 간다면 그것은 저 혼자 살기 위해서 늙은 어머니도 아내와 아이들도 다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도망갔던 사람들이 잡혀와서 긴 포승으로 손목을 묶이어 그야말로 말이나 소처럼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가고 하는 벗을 보고는 더욱더 그것을 단념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까지 소처럼 묵묵히 운명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루는 삼룡이가 일을 하고 있는 우에산자쿠 레이가타 하라이(채탄장)에서 낙반(落盤)이 되었다고 통지가 왔다, 그 동안 나는 삼룡이를 갱외로 끌어올리려고 운동을 해봤으나 효과가 없었다.
<삼룡이에게 기어이 올 운명이 왔나부다!>
하고 나는 한참동안 어찌할 줄을 모르고 망연히 서 있었다.
부상자가 많다고 떠들면서 밖에서는 사람들이 왔다갔다 달음질을 쳤다. 당가(담가, 들것)를 가지고 일면 쫓아갔다. 가보니까 갱구 차도로 사람들이 하나 빽빽이 서 있고 부상자를 하코로 나르는 판이었다. 「들들들들-」 하는 무거운 소리를 내며 굵은 철선(鐵線)이 지하에서 올라올 때 모여 선 수백의 군중은 일제히 갱구의 시커먼 아가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급기야 하코가 보였다. 숨도 쉴 수 없이 가슴이 벅찬 가운데 부상자의 모양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얼굴도 몸뚱이도 까맣게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부상자는 하코 한복판에 누워 있고 피도 석탄가루와 함께 까맣게 흐르고 있다.
얼굴을 다친 사람, 다리가 부러진 사람 하여 중상자가 세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말을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눈물조차 사람의 눈물 같지 않은 꺼먼 흑루였다. 나는 누가 삼룡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한사람은 병원 진찰대 위에 올려놓자마자 절명하고 말았다. 제천 사는 박이동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얼굴이 검고 넓적하고 수염 털이 거친 그의 모양을 나는 몇 번이고 생각해보았다.
삼룡이는 기적적으로 살았다. 나는 그가 꼭 중상자 속에 누워 죽은 줄만 알았었다. 스코프로 석탄을 떠서 실은 다음 마악 그 자리를 뜨자마자 천장에서 바위가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판이었다.
「박이동이가 제 대신 죽은 것 같애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박이동이는 일변 가족에게 전보로 알리며 화장을 해버렸다. 박이동이의 장례 때 삼룡이는 그 길다란 얼굴에 길다랗게 눈물을 흘리며 흑흑 느껴 울었다, 그후로 그는 꿈에 박이동이가 보인다는 등, 소가 도끼를 맞고 죽는 꿈을 꾸었다는 등, 오늘은 꼭 보다(선탄 하고 남은 돌)가 떨어져 사람이 상할 게라는 등 하며 일을 잘 안 내려갔다. 다는 그의 비과학적인 생각과 미신을 깨쳐주기 위해 반대하고 싶었으나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요, 뭣보다도 살고 무사한 것만 수라 하는 생각에 될 수 있는 한 그의 청을 들어 쉬게 하였다.
그러나 어느덧 삼룡이에게는 새로운 신념이 하나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소가 제 대신 죽었에유,,,,,, 그러니까 저는 괜찮어유------안 죽어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소가 공출 나가 도끼에 맞아 죽은 것처럼 자기는 징용이 되어 탄광 속에 가서 바위에 치여 죽을 것이다. 소가 먼저 나가 죽어서 주인대신 죽음에 대한 액운을 때워버렸으니까 인제 자기는 죽지 않고 소의 운명과는 반대로 산다는 것이었다. 그 좋은 증거가 바로 박이동이가 죽던 그때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글쎄, 제사 비켜나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 떨어졌세유. 박이동이는 그냥 꾸부리구 있구유 ---」
「참 이상두 해유 ,,,,,」
삼룡이는 딴사람에게는 말을 잘 안 하나 내가 사무실에 혼자 앉았는 것을 보면 슬며시 와서 이죽이죽 이야기를 곧잘 했다.
딴은 그래서 그런지, 그런 후로는 삼룡이는 태연하게 일을 잘 다녔고 다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동무들이 소라고 놀리면 그것은 여전히 기급을 해서 말렸다. 왜 그러냐 하면 자기는 소가 아니어야만 소 대신 액운을 벗어난 주인이 될 수 있으니까 ,,,,,,
그러자 잊지 못할 8월 15일이 우리의 머리 위에 찾아오고 한달 열흘 후 우리 연기대 일행은 꼭 만 일년 후인 9월 26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공교한 일이다 삼룡이가 자기 집에 부디 한번 와달라고 여간 짓궂게 청하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마를 만나서 담과 지붕이 몹시 후락했다. 그러나 집 모양과는 반대로 그의 가정은 화기애애하고 단란하고 즐거운 빛으로 가득했다.
식구로는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이 둘이 있는데 그의 어머니는 칠십이 넘은 백발 노인이었다. 삼룡이가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은 흡사히 내 덕인 것처럼 그들은 나에게 수수히 차하를 하며 술을 받아온다, 안주를 장만한다 하였다.
그들도 무한히 기쁘고 나도 무한히 기쁘다. 나는 삼룡이와 술잔을 나누면서 그의 길다란 얼굴에다 대고.
「소」
「이러 ,,,,,,」
「워 ,,,,,,」
하며 농담까지 퍼부었다. 삼룡이는 그 싫어하는 농담을 달게 받으며 웃었다. 1러나 내가 돌아갈 때 삼룡이가 열어주는 싸리문을 나서며 나는 가슴이 내려◎는 듯 놀란 일이 있다.
텅 빈 외양간은 보송보송했다. 그것은 보기 드문 부자연하고 불유왜한 모양이었다, 쇠죽을 담는 구유는 바싹 마르고 먼지조차 보야니 앉았다.
내가 그 앞에 멍하니 섰으려니까 삼룡이는 그제서야 소 생각이 난 모양.
「흥, 소가 있어야지유. 개가 ,,,,, 소가 제 대신 나가 죽었으니까유 ,.....」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말이 나의 마음에 다시 꼭 스며들지를 않았다 -아아니, 소가 죽은 것처럼 삼룡이도 역시 죽었다.-
하는 생각이 났다.
「박이동이가 죽은 것을 생가 못하오?」
나는 삼룡을 쳐다보면서 이 말을 입밖에 내었다.
박이동이가 죽은 것이 삼룡이가 죽는 것과 뭐가 다른가, 도수장에 끌려가 도끼로 머 리를 맞고 쓰러지는 소를 생각하며 굴속에서 일하다가 등골이 바위를 맞고 죽는 사람을 연상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넉넉히 빈 소 외양간을 보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그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 빈 방을 생각할 수 있었다.
연기대 속에서도 일터에서 쓰러진 사람이 7,8명 된다. 세상이 모두 즐겁고 기쁘되 지금 어디어디서는 저 보송보송하고 마른 소 외양간처럼 먼지 앉은 빈 방문을 닫아둔 채 늙은 어머니와 그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은 문밖에 서서 헛되이 기다리며 울고 있을 것이 아닌가. 나는 문득 삼룡이를 쳐다봤다.
-역시 소다. -
「자아- 잘 있으시오. 」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만천가지 애연한 생각에 젖으며 산모퉁이를 돌아서려니까,
「저 눔의 소, 저 눔의 이사장 눔의 소를 내가 끌어와야지......」
삼룡이는 한편 언덕 소 있는 곳을 가리키며 험악한 낯빛으로 내 생각과는 딴판인 말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