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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 소설

89. 흑산도 갈매기

by 자한형 2022.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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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산 도 갈 매 기

-문순태

 

종배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그 흑산도 아가씨는 여객선 갑판 위에서. 승객들한테 홀랑 옷을 벗기게 되었거나 아니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싫도록 놀림을 당한 뒤 경찰에 넘겨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흑산도 관광을 온 서울 남자들 네댓 명이 선실에서 어울려 화투판을 벌이고 있었는데 담요 밑에 넣어둔 판돈을 훔쳤다는 것이었다.

저런 흉칙한 도둑 년은 한번 혼뜨게 당해봐야 한다고, 뱃사람들이 그녀를 갑판 위에 꿇어 앉혀놓고 옷을 벗기겠다고 땅땅 으르는 것을. 종배가 비대발괄 손이 발되게 빌어 가까스로 위기를 면하게 되었다.

종배 자신은 왜 그가 그런 불퉁스러운 여자를 감싸주고. 도둑 년의 서방이냐는 애매한 말까지 들어가면서까지 그 여자를 구해주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객선이 흑산도 예리항을 떠나 승객들이 선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지 않고. 저마다 상큼 짜릿한 기분으로 시원한 바닷바람에 감정을 추스리기에 어수선할 무렵, 상갑판에서 이 넌 저년 하는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터졌었다, 뒤이어 사십쯤 되어 보이는 키가 깡똥하고 두 어깨가 턱 벌어진 관광객 차림의 남자가 젊고 해반들하게 되바라진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잡고 갑판 한가운데로 끌고 나왔다.

이 씨팔 도둑 년아 ! 찰거머리같이 달라붙어선 치근덕거리더니 돈을 훔쳐?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잡은 남자는 큰 소리로 욕을 퍼부어 댔다.

이런 도둑 년은 단단히 버릇을 고쳐줘야 해!

갑판 위에는 구경거리를 만난 승객들이 빙 둘러쌌다. 키가 깡똥한 남자는 오른손으로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잡고, 입에 게거품을 품어내며 떠들어댔다.

여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깊숙이 가린 채 남자가 이끄는 대로 개처럼 질질 끌려 다녔는데, 갑판 위에서 이 광경을 구경하던 입 달린 승객들마다 여기 저기서들 도둑 년을 혼내주라고 한마디씩 내뱉었다.

여자의 머리끄덩일 휘어잡은 남자의 동행들인 듯싶은 관광객들이 더욱 성을 떨었다.

이 도둑 년아, 발리 안 내놔?

키가 훌렁하게 크고 턱 끝이 도끼 날처럼 날캄한 남자가 소리를 치며, 한사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푹 가린 여자 가까이 바짝 달려들어 왁살스럽게 여자의 팔을 붙잡아 얼굴에서 손을 떼어냈다.

얼굴은 해반들한 게 도둑 년 같지가 않구만.

휘주근한 옷차림에 참새새끼처럼 겁먹은 얼굴로 두 눈을 내리깐 여자다. 이따금 불컥불컥 얼굴을 치켜들어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넋 나간 사람모양 멍청하게, 햇빛이 요란스럽게 쏟아지는 하늘을 쳐다보곤 하였다. 그럴 때 그녀의 깔깔하게 느껴지는 입술 꼬리에는 알 수 없는 썰렁한 미소가 짧게 흘렀다.

씨팔 년아, 발리 내놔!

누구인가 승객 중 한 사람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녀에게 침을 뱉었다. 여자는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눈으로 침을 뱉은 남자를 오래도록 찔러보는 것이었다.

안 내놀 거야? 이 도둑 년이 글쎄, 암내를 살살 피우면서 내 무릎에 포개 앉아 거머리모양 늘어붙어 치근덕거리더니 노름 밑천으루다가 담요 밑에 넣어둔 율곡 선생 두 장을 쓱싹해 가지고선 갑판 위에 올라와 목에 힘주어 시치밀 뚝 떼고 먼 산 구경이라니까.

키가 깡똥한 사내는 구경 삼아 비잉 둘러선 승객들을 향해 머리를 까딱거리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옷을 홀랑 벗겨 ! 옷을 벗겨서 브라자, 빤스 속을 다 뒤져봐!

얼굴이 이순신 동상처럼 칙칙하게 타고 알록달록한 색깔이 요란한 반팔 T셔츠를 입은 제법 잘생긴 사내가 그녀에게 바짝 다가서서 킥킥 고양이 웃음을 웃우며, 정말 옷을 벗기기라도 할 것같이 손으로 여자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콱 쥐어 잡았다. 이러자 여기저기서,

벗기시요, 옷을 벗겨.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여자는 새우처럼 허리를 꺾은 채 서 있었다. 눈도 감았다.

-, 뱃고동이 울리면서 바다가 통째로 꿈틀거렸다.

종배는 뱃고물 쪽 드럼통 아래 혼자 나무토막처럼 피곤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들독을 들어올리듯 천천히 고개를 올려 하늘과 맞닿은 바다 끝에 희끄무레한 점으로 사그라지는 흑산도를 바라보았다,

크으 -

땡볕을 담뿍 받고. 아서라 세상사 쓸 것 없다 하는 폼으로 추레하게 두발을 뻗고 드럼통에 기대앉은 종배는 쿨럭쿨럭 병나팔을 불어 깡술을 목구멍 안에 털어 넣고 나서 - 다시 흑산도 쪽을 멀뚱한 눈으로 꼬나보았다.

지길헐눔에 섬!

그는 마치 손톱만큼한 하나의 점으로 사그라지는 흑산도가 영원한 바다 속으로 풍덩 잠겨버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어부생활 십여 년만에 흑산도를 떠나는 종배의 마음은 홍어 속만큼이나 느물느물 썩어 있었다.

처음 고깃배을 타고 혹산도에 들어왔을 땐 삼 년 안으로 논 여남은 마지기 장만할 만큼 왕창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갈 요령이었는데, 어부 생활 집어치우고 목포행 여객선에 몸을 실은 지금, 그는 십 년 전이나 진배없이 사추리 사이에 달그락거리는 그것 두 쪽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종배는 턱 끝까지 화끈거리는 속마음을 다독거려 가라앉히기라도 하려는 듯 소주병을 연신 기울고 나선 물거품이 소쿠라치고 용틀임하며 비 비꼬아대는 뱃고물 뒤꽁무니에 눈을 매달았다. 그 어지럽게 뒤틀리는 물거품 속에 만선으로 돌아와 예리 파시에서 흥청망청 계집들을 끼고 놀아났던 시절들이 겹겹으로 곤두박질해 오는 듯 싶었다.

빨랑 도둑 년을 발가벗겨서 배꼽 콤 봅시다!

도둑년 배꼽은 시컴하다며!

여기 저기서들 다시 킬킬 팔팔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은 약간 술에 취한 듯싶기도 하였다.

종배는 상갑판 쪽에서 시끌덤벙한 소리를 듣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가 소주병을 든 채 갑판 위로 갔을 땐 나이가 지긋한 남자 서너 명이 그 여자의 어깨와 팔을 찍어누르고 당장 웃옷을 벗길 기세였는데, 머리끄덩이를 잡힌 그녀는 두 손을 빗장걸이로 오그려 어깻죽지를 곽 움켜잡고는 고개를 깊숙이 꺾고 있었다.

종배는 힐끔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특특한 청바지 천의 긴치마에 살결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희읍스름하고 엷은 T셔츠를 입은 그 여자는 입성하며 몰골이 눈에 띄게 추레해 보였다. 어디선가 종배가 많이 본 얼굴 같았다.

종배는 여자를 기억에서 떠올리기라도 하려는 것같이, 불잉걸이 이글거리듯 햇살들이 따갑게 내려꽂히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환장하게도 맑고 먼 하늘이었다

무슨 일이 라우?

종배가 옆의 기타를 둘러멘 대학생인 듯싶은 젊은이에게 물었다

도둑년을 잡았답니다.

저거이 도둑 년여! 뭘 훔쳤길래?

선실 놀음판에서 돈을 훔쳤대요!

얼마나 훔쳤는디?

율곡 선생 두 장이래요 !

즈거멈 헐 년, 왜 잡히누!

그 말에 젊은이는 이상한 눈으로 종배의 몰골을 가볍게 훑어보고 나서.

훔친 돈을 안 내놓으니까 저 사람들이 도둑 년 옷을 벗겨 배꼽을 본대요.

하고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었다.

배꼽을? 워매애!

종배는 순간 여러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갔다.

어쩔래! 돈을 내놓을래, 옷을 벗길까?

머리끄덩이를 쥐어 잡은 남자가 손을 흔들며 말을 하자, 그녀는 머리가 아픈지 어깻죽지를 꽉 움켜잡은 두 팔을 풀어 남자의 손을 잡았다.

이년이 내 손을 잡았어?

선생님, 이 손 놓으씨요!

종배는 소주병을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박은 다음 성큼 달려들어 여자의 머리끄덩이를 휘어쥔 깡똥한 사내의 팔을 잡았다.

이거 왜 이대?

사내는 바쁘게 횐 눈자위를 까뒤집으며 종배를 몇 번 들었다놓았다 하더니 당장 주먹다짐 이라도 할 것같이 쏘아붙였다,

놓고 얘기허십시다요.

네가 누군데 놔라 마라 지랄이야?

사내는 종배의 헙수룩한 입성에 깔보는 말투였다.

이 도둑 년이 네 색씨라도 된단 말야? 오오라, 이것들이?

선생님, 말 함부로 맙시다. 이 여자허곤 아무 상관도 없소!

상관도 없으면서 끼어들어?

예의 키가 크고 턱끝이 날캄한 사내가 종배의 어깨를 잡아 밀쳤다.

약한 여자가 아닙니까.

도둑년야!

그렇다고 옷을 벗기다니, 너무들 허십니다요.

도둑 년 배꼽을 보건 구멍을 보건 무슨 상관이야?

왜들 이러십니까!

꺼져!

깡똥한 사내가 종배를 힘껏 떼미는 바람에 하마터면 갑판 위에 보기 좋게 엉성방아를 찧고 꼬꾸라질 뻔하였다.

지발 이러지들 마씨요 잉!

종배는 다시 달려들어 도끼턱 사내의 팔을 잡았다.

이런 거지같은 새끼 ! , 이 도둑 년 서방이야!

도끼턱의 사내가 종배의 뺨을 후려갈겼다. 눈에 마른 번갯불이 찌르륵 흘러가는 것 같았다.

이보기요덜, 이 여자 얼굴을 좀 찬찬히 보씨요. 여러분덜은 이 여자가 불쌍허지도 않소 ? 여자가 오죽했으면 돈을 훔쳤겄습니까요. 그런데두 여러분들은 꼭 이 여자를 옷을 벗기고 우세를 시켜야 허겄습니까? 이 배 안에서 어디로 째겄습니까! 그냥 내버려뒀다가 배가 목포에 닿으면 경찰에 넘기면 될 꺼이 아닙니까!

종배는 목에 힘을 주고 일장 연설을 하였다. 그것은 순전히 술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훔쳐간 돈은 내놔야 할 게 아냐?

깡똥한 사내가 종배의 팔을 잡으며 으르렁댔다.

아가씨, 돈을 훔쳤다면 좋게 내놓으슈 ! 안 그러면 내가 뒤져볼 텐께.

종배가 여자에게 조용조용히 말했다.

스카트 주머닐 뒤져봤는데 어디다가 감췄는지 없어!

다시 깡똥한 사내가 말했다.

빤스 속에다 감췄을 거야!

누구인가 큰 소리로 말하자 모두들 키득키득 웃었다

어디다 감췄어?

종배가 여자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허리에서 T셔츠자락을 끄집어낸 다음 오른손을 가슴에 쑤셔올리더니 뚤뚤 말은 지전을 꺼내 종배 코앞에 가만히 내밀었다.

젖통에다 숨겼구만!

여러 사람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이거이 맞소?

종배는 뚤뚤 말아진 지전을 펴서 깡똥한 사내에게 내밀었다.

이런 개 같은 도둑 년.

돈을 받아든 깡똥한 사내는 왕방울 눈을 희뜩거려 여자를 찔러보았다.

종배는 여자를 끌고 그가 지금껏 앉아 있었던 뱃고물 쪽으로 갈 요량으로 손목을 잡고 몸을 돌렸다.

이것봐. 어디로 가!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종배의 가슴을 툭 치며 가로막았다.

내가 데리꼬 갈랴고 그라요!

데리고 가! 어디로? 어디 가서 재미볼려고?

승객들이 또 와아 웃었다.

묶어두었다가 배가 목포에 닿으면 경찰에 넘겨.

묶어두다니, 건 안 됩니다요!

종배는 정색을 하고 승객들을 둘러보며 완강하게 잘라 말했다.

그냥 뒀다가 또 돈을 훔치면 어쩔 거여.

누구인가 쏘아붙였다.

건 염려 놓으씨요. 목포에 닿을 때꺼지 제가 꽉 붙들고 있겄습니다요.

한패가 아냐?

천만에 말씀 ! 저는 이 여자가 불쌍해서 그럽니다요.

종배는 말을 끝내자 여자의 손목을 잡아끌고 서둘러 상갑판의 계단을 내려갔다. 아무도 그들을 붙들거나 따라오지 않았다. 뱃고물 쪽 드럼통 뒤로 끌고 간 종배는 여자를 뿌리치듯 동댕이쳤다. 여자는 드럼통을 짚고 엉거주춤 구부리고 서서 찰 수 없는 눈초리로 종배를 찔러보았다.

앉어.

여자는 종배가 시키는 대로 드럼통 밑에 앉았다.

바보같이, 그따구 서툰 솜씨로 돈을 훔쳐!

종배는 버럭 고함을 지르고 나서 바지 뒷주머니에 찌른 두홉들이 소주병을 거내 종아 마개를 풀어 병나팔을 불었다.

저두 술좀 주시겠어요?

여자는 거리낌없이 아주 천연스럽게 말했다.

, 마셔

쁘드 -

여자는 빈 술병을 바다에 획 던지고 나선 손등으로 입언저리를 쓰윽 문질렀다.

담배두 있음 한대,,,,,,

여자는 윗니빨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묘한 웃음을 피우며 종배를 올려다보았다,

입만 가지고 댕기누먼

없어?

종배는 청자담배 한가치를 뽑아 여자에게 주고 치익 성냥불까지 붙여주었다.

투우-여자는 바다 위로 한숨섞린 담배연기를 길게 토했다. 종배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여자를 뚫어지게 되작거려 보았다. 등글납작한 얼굴에 답답할이만큼 이마가 찝찝하였다. 콧날은 그런대로 균형을 이루었으나 눈엔 피로가 가득 쌓여 해맑지가 않았다.

어디꺼정 가?

아무데 나요.

무슨 소려?

갈곳이 없걸랑요.

흑산도 어디에 있었어?

홍도집에요.

점백이 뚱오아줌마집?

왔었어요?

시절이 좋았을 때.

옛날 이야기군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구나 했더니만,,,,,,

아저씬 고깃배 사람이죠?

어뜨케 알지?

척 보면 구만리라구요.

여자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샐긋샐긋 웃었다.

나나 아저씨나 별 볼일 없는 처지네요!

여자는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이라도 더 연기를 빨아 마시려고 지지직 타들어 가는 필터를 여러 차례 고쳐 입에 물었다.

별 볼일 없는 처지?

종배는 여자의 말에 웃음을 뱉어내며 물었다.

조기가 안 잡히니 그렇죠 머!

여자의 말처럼 별 볼일 없는 종배였다. 그는 파도에 떼밀려 가는 물거품처럼 흑산도에서 쫓겨 나오는 것이었다.

징 꽹과리 두들기고 만선을 노래하며 예리항에 들이닥쳐서는 철새처럼 몰려온 파시 아가씨들을 밤마다 바꿔 끼고 자고, 위아래로 피를 쏟으면서까지 술을 퍼마시며, 젓가락 장단 속에 아침을 맞곤 하였던, 그 좋은 시절은 한바탕 흘러간 추억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바다에 나가도 조기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파시 아가씨들을 끼고 자는 것은 고사하고, 혼잣몸 입타작하기도 힘겨웠다.

엠병헐눔에 조기 떼가 다 워디로 가베렌는지 원.

조기가 잡히지 않은 것은 벌써 수 년째나 계속되었다.

조기가 안 잡히니깐 우리까지도 못살게 되었다니깐요.

그 대신 관광객들이 많지 않어?

. 말짱 헛거라구요. 그 사람들 우리를 똥파리 대하듯 헌다구요. 그래도 우릴 좋아헌 건 뱃사람들이라니깐요.

여자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지미럴.

흑산도 어업 전진 기지라는 것도 순전히 빛 좋은 개살구 격이었다. 어업근대화니 어민소득 증대니 하면서 최신장비를 갖춘 큰 고깃배들이 밀어닥치면서부터 흑산도가 망쪼들 낌새를 엿볼 수가 있었다,

속력이 빠르고 규모도 큰 동력어선들이 떼지어 밀어닥쳐 바다 밑바닥으로 끌고 다니면서 깊은 곳에 사는 새끼고기들까지 갈퀴질하듯 훑어버 리는 쓰레 그물 때문에 이미 어족이 말라가기 시작하였다. 아귀를 잡는 눈이 굵은 안강망의 목선으로 고기잡이를 할 때만 해도 흑산도 파시는 밤낮없이 흥청거렸다. 여름철이면 조기 한 궤짝으로 소주 한 병과 맞바꿔 먹을 만큼 고깃 값이 허룽허룽했으나, 그땐 그래도 여자와 술이 아쉽지가 않았었다.

쓰레 그물의 큰 고깃배를 처음 탔을 때야 돛배에 비해 속력도 빠르고 바다 밑바닥까지 샅샅이 훑어내어 가자미며 명태 새끼까지 몽땅 잡히는 판이라 기분이야 좋았었다. 허나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푼수로, 수많은 쓰레 그물로 수년 동안 바닥을 갈퀴질해댔으니 고기 씨앗까지 말라버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다.

가까운 어장에선 고기가 잡히지 않게 꾀자 조기 떼들이 회유를 시작하기가 바쁘게 소흑산도에서도 서남쪽으로 일백이십 마일이나 떨어진 동지나 깊숙이 출어를 하였고, 마지막에는 추위를 넘기는 겨울철에까지 조기를 덮쳐버렸다.

종배는 쓰레 그물이 바다 밑을 갈퀴질해대고 동지나 깊숙이 출어를 한데다가, 겨울 조기 떼까지 덮치기 시작할 때부터 머지않아 흑산도가 망할 조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다 농사도 농산디, 그렇게 벼락치기로 씨앗머리꺼정 샅샅이 훑어댔으니 조기가 안 잡히재!

종배는 갑판에 칵 침을 뱉었다.

갑판 위의 승객들은 이따금씩 호기심으로 힐끔힐끔 두 사람을 훔쳐보는 것 같았으나 아무도 그들 가까이로 오지는 않았다.

 

남 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

 

여자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햇빛과 갯바람에 씻겼음에도 뭇 사내들에게 시달려 누르무레하게 떠 보였다.

몇 년만에 귀양살이 풀렸어?

스물셋에 들어갔었으니까 사 년 만이네요.

한창 삼삼하던 때였구먼.

아저씬요?

십 년.

그 전엔 뭘 허셨어요?

고향에서 농사도 짓고 김도 뜯고------

땅이 있어요?

그랬음사 지랄났다고 고깃밸 타겄어?

고향에 가심 뭘 허시죠?

고향이라구 원 적막강산이야.

여자는 종배에게 다시 담배를 청했으며, 종해는 또다시 불까지 붙여주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여객선 위를 둥그렇게 맴돌고 있었다. 갈매기는 이따금 부리를 아래로 내리고 물갈퀴 달린 다리를 쭉 뻗으며 바다로 곤두박질하듯 꽂혀 내리곤 하였다.

담배연기를 푸우푸우 내뿜던 여자는 물끄러미 갈매기를 쳐다보더니,

저 갈매기가 흑산도에서부터 주욱 우릴 따나오네요.

하고 말했다,

뭍이 그리운가보구먼.

바보같이 ,,,,,

갈매기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바다가 아님사 못살 꺼인듸!

아저씬 십 년 동안이나 고깃배를 타서 번 돈 다 어쨌길래?

목구멍 X구멍에 다 쑤셔 박았재 ! 그거이 뱃놈 풍류란 거 아녀?

쓸 데 썼으니 후회 없겠어요!

종배는 담배에 불을 댕겨 입에 물고 필터를 질근질근 씹어 돌리며 여자를 보았다.

거긴 좀 챙겼더?

챙겼으면 남의 돈을 훔쳤겠어요? 이 한 몸뚱이마저 빛에 잽혀 있는 걸요!

기실 그녀는 배가 목포에 닿아 내린다 해도 당장 어디 가서 하룻밤 묵을 돈 한 푼 지니지 않은 알거지나 진배없었다.

좋은 시절 뱃놈들 단물 빨아 어쩌고?

엉덩이에서 피아노소리가 나게 휘돌려도 언제나 알거진걸요!

그래도 늙었을 때를 생각해서 독한 마음먹고 챙길 건 챙겨야재.

징그러! 늙을 때까지 살게요?

안그러면?

몸에 물 빠지면 빨랑 죽어야죠.

그래두 젊었을 때 돈을 모아야재.

빛에 매인 몸이라 도망쳐 나온 걸요

도망?

고기가 안 잡혀 조기 값은 금값이고 우리들 몸값은 똥값이니 어뜨케 돈을 모아요?

말을 하면서 여자는 버릇처럼 손가락으로 쌩쌩 바닷바람이 흐트러 놓은 찝찝한 이마 위의 머리칼을 긁어 올리면서 햇빛이 이글거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똥값이라,,,,.,

종배는 픽 웃으며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르무레한 여자의 얼굴에 반짝 반짝 햇빛이 튕겨 날아갔다.

갈매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여자가 머리 위에 맴돌고 있는 갈매기를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보 갈매기!

왜 고기를 못 잡지요? 우릴 똥값 맹글려고 부러 안 잡는 건 아녜요?

여자는 갑자기 앙칼진 목소리로 따지듯 다그혔다.

똥값 맹글라고?

그래요! 우리 몸값이 생조기 한 마리 값두 안된다구요

종배는 그 말에 크윽 웃었다.

똥값은 마찬가지여!

생조기 한 마리 값도 못되는 인생, 살아서 뭣하겠어요

지미럴, 바다 흉년 때문이구만!

종배가 고깃배를 타기 전엔 고향에서 면장네 도지 논을 부쳐 살았다. 도지를 내고 나면 겨우 흘태 밑에 남은 쭉정이뿐이었다. 물길이 좋지 않은 산다랭이 논이라 해마다 뼛속에 땀방울 고이도록 농사를 지어도 풋바심부터 낄낄대기가 일쑤였다.

거듭 이태 동안이나 하늘이 퍼렇게 말라붙어 쌀 한 톨 거두어들이지 못했었다. 흉년살이에 신물이 난 종배는 비가 오거나 안 오거나 고기가 잡히는, 흉년이 없는 바다로 나가서 어부가 되겠다고 이리저리 마음을 공글려 배를 탔던 거였다.

한낮 바다 위의 햇살은 바늘로 쿡쿡 쑤시는 것처럼 따가왔으나, 획획 불어오는 밍밍한 바닷바람이 촉촉하게 젖은 땀구멍을 막아주었다.

둘이는 잠시도 자리를 뜨지 않고 앞고물 쪽 드럼통 뒤에 붙어 앉아 있었다, 얼마 전 상갑판 위에서 한바탕 소동을 피운지라 승객들을 대하기가 부끄럽기도 했지만, 둘이서 속마음 툭 풀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 가는 것이 발랐다,

목포엔 깜깜해서 닿겠네요.

어디루 갈 껀디?

경찰에 넘길 건데, 경찰서 신셀 져야죠.

경찰에 넘기지 말라고 이야길 잘 해볼레!

또 나땜시 뺨 맞을려구요?

나헌티 맡겨!

간두세요. 목포에 내려봤자 갈곳도 없고, 경찰서 신세 지는 게 맘 편하겠어요!

그래도 경찰서엔 갈데가 못돼!

참 아저씨. 삼학도에 가봤어요?

작년 봄에. 근데 왜?

거기 도라지집이 있걸랑요.

꽃집인가?

종배의 묻는 말에 여자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더니.

친구가 있어요!

하고 생기가 도는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두 팔로 갑판 바닥을 짚고 다리를 쭉 뻗으며 먼 바다 끝을 보았다. 종배는 부룻한 여자의 아랫배와 스카트 자락에 흠이 패인 사타구니를 훔쳐보았다,

홍도로 들어가겠다고 편지가 왔었어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경기가 좋대요? 미친년이지!

그래, 홍도로 들어갔어?

모르겠어요. 절대루 섬엔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

꽃순이들이 갯바람 쐬면 금방 팍 썩는 거라구요.

썩어?

섬은 마지막 귀양지니깐요. 뱃놈들이 우릴 사람 취급하나요? 순전히 개 취급이지. 썩다 썩다 내장까지 문드러져 녹아버린다구요.

여자의 말이 맞았다. 종배 자신도 파시 여자들을 사람답게 대해준 적도 없거니와, 단 한번도 은밀한 감정을 주어보질 않았다. 마치 개 돼지를 사서 다루듯 욕을 퍼부어 대고 마구 욱대겨 곤죽을 만들어놓고 돌아서면 그것뿐이었다, 그래도 여자는 언제나 값이 쌌으며 어디에나 우글거렸다. 고기보다 흔한 게 여자였다.

그 친구 여적지 있으면 거기도 삼학도 꽃집을 들어갈려구?

쥐뿔도 밑천이라곤 그것뿐인걸요. 그래두 몸만 성하다면 굶어죽진 않걸랑요.

순간 종배는 속이 매슥매슥해디면서 답답한 마음에 벌떡 일어났다. 여자가 놀란 얼굴로 종배를 올려다보았다.

쐬주 한 병 사올께!

종배는 퉁명스럽게 내뱉으며 선실 쪽으로 걸어갔다.

갑판 위에는 알록달록 색깔들이 멋진 옷을 입은 피서객들이 떼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그들은 넓은 바다와 점점이 물위에 뜬 섬들에 대해 탄성을 연발하였다. 그들은 모두 먹고사는 벗 따위엔 담배씨만큼도 걱정이 없이 시원한 바닷바람과 자연의 아름다움에만 취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이 멋진 세상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을까 싶게 즐거워 보였다. 흑산도에서 조기가 잡히건 잡히지 않건 자기들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그들이 야속하기까지 하였다.

그들 살맛 나는 퍼서객들에 비해 종배 자신은 얼마나 초라하고 못난 사람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맑은 하늘 드넓은 바다까지도 얄미워 보였다.

배 안에서 앞으로 먹고 살아갈 걱정에 답답하게 얽매여 있는 것은 종배 자신과 돈을 훔치다 들통이 난 파시 아가씨 두 사람뿐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종배는 남의 돈을 훔치고, 그녀를 구해준 남자에게 술이며 담배를 달라고 불쑥불쑥 손을 벌리는, 뭇 뱃놈들에 시달리고 짭쪼롬한 갯바람에 씻겨 해반들하게 닳아진 그 흑산도 파시 아가씨가 그래도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잘 입고 잘생겨 살아가는 걱정이라고는 티눈만큼도 없어 보이는 피서객들에 비해 자신이 그지없이 못나고 초라해 보일수록, 이상하게도 그녀가 애잔하게 생각되면서 야릇한 정이 쏠렸다.

종배는 피서객들을 헤치고 두 홉들이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여자가 기다리고 있는 뱃고물 쪽으로 돌아갔다. 갑판 위의 승객들이 이상한 눈으로 종배를 훔쳐보며 그들끼리 키득거리는 것을 모르는 척했다.

왜 저 같은 도둑 년을 감싸주었죠?

여자가 술병을 받아 고개를 뒤로 잦히며 뚜벅 물었다.

클씨 ,,,,,, 보기가 딱허드구먼!

부끄러워서 그랬겠죠.

부끄러워서? 누가?

아저씨 가요.

내가 왜 부끄러워?

종배는 여자의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자라목처럼 걀쯤하게 배고 눈을 끔벅거렸다.

아저씨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저도 부끄러웠을 거로구먼요.

?

이 배안에서 처지가 같은 사람은 두 사람뿐 아녜요?

종배는 그제서야 여자의 말에 이해가 가는지 콧바람을 내며 킁 웃었다

종배는 어금니로 병마개를 따고 클럭클럭 마신 다음 여자에게로 넘겨주었다.

말없이 술병을 받아 단숨에 반쯤 남은 술을 거진 다 털어 넣고 나서는 그냥 얼굴을 똑바로 쳐들어 하늘만 보았다.

왜 매가리가 없어?

내 기분 모르실 거예요.

어떤 기분인듸?

기금 갑자기 내 기분이 거무욱죽해졌어요!

거무죽죽해?

난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런 기분이에요.

지길! 그거이 어떤 기분이여?

괜히 섬에서 도망쳐 나왔는가 싶네요!

그렇담 다시 들어가면 될꺼 아녀!

되돌아가기도 싫구------

내 참, 괜시리 나왔담서 들어가기는 싫다니!

그러길래 기분이 거무죽죽허대잖어요!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녀는 조기가 잡히지 않아 뱃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겨 벌이가 없었던 올 여름 살아온 것이 마치 더러운 수채통을 허부적거리며 뚫고 기어나온 것만큼이나 지긋지긋하였지만, 막상 섬에서 빠져 나오고 보니 갈 길이 막막한지라,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녀가 흑산도에서 빌붙어 살았던 홍도집의 점박이 뚱보아줌마는 손님을 끌어오라고 밥도 먹이지 않고 꽃순이들을 밖으로 내쫓곤 하였다,

뭍에서 관광객이 섬에 발을 들여놓으면 꽃순이들은 서로들 손님을 낚으려고 파리떼처럼 와글거리며 달라붙었다

어떤 때는 색시들이 서로 손님을 낚으려고 죽자살자 달라붙는 바람에 저들끼리 머리끄덩이를 휘어잡고 뒹굴며 싸움질을 하는데, 이럴 때 남자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엉뚱하게 창피를 당하기 일쑤였다.

어쩌다가 또 고깃배가 돌아올라치면 섬 안에 있는 수백 명의 파시 아가씨들이 서로 어부들을 낚기 위해 앞뒤 사정 가리지 않고 떼지어 덤벼드는 판이라, 온통 갯가가 수라장이 되곤 하였다. 극성스런 여자들은 밤에 나룻배를 빌어 타고 배에까지 쳐들어갔다. 그때마다 배 안에 있는 어부들은 여자들이 배에 기어오르지 못하게 긴 장대를 마구 휘젓곤 하였으며, 그래도 색시들은 박이 터지는 것도 불사하고 먼저 배에 기어올라 남자를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이었다.

창피한 생각일랑 손톱만큼도 없었다. 머리끄덩이를 휘어 잡히고, 어부들이 휘두르는 장대에 머리를 다치면서 죽을둥살둥 하여 가까스로 손님을 낚아와 눈이 싯벌개져서 아우성 같은 목소리로 젓가락 장단에 노래를 불러 제끼고, 밤새내 곤죽이 되도록 시달림을 당한 뒤 조기 한 마리 값도 못되는 꽃값을 받아 씽씽 갯바람이 간이 벌떡거리도록 연하게 불어오는 바다 끝을 맥없이 바라보는 그 거무죽죽한 기분이란, 칵 죽어버리고만 싶은 거였다.

하루하루 그 거무죽죽한 기분 속에서 흡사 죽은 듯 살았다. 어쩌다가 휑하니 허파에 구멍 뚫린 속없는 기분으로 비실비실 웃는 것은 마른 번갯불만큼이나 짤막한 순간이었다.

술에 취하면 취하는 대로, 맨숭맨숭하면 또 맨숭맨숭한 대로 그 거무죽죽한 기분은 언제나 두꺼운 그늘을 가득 덮어씌우고 있었다.

고향을 그리워한다거나, 첫번째 정을 주었던 남자를 생각한다든가 하는 것은 너무도 유치하고 치사했다.

고향엔 그리운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저년은 먹고 자고, 자고 먹고 하는 똥 만드는 기계라며 동네방네 나발 불고 떠들어대는 악바리 어머니와. 중학교 문턱도 안 밟은 주제 꼴에 죽은 아버지가 머슴살아 새경으로 알탕갈탕 장만한 논 서마지기를 홀랑 팔아서 취직을 하겠다고 도회지에 나갔다가, 일년도 못되어 두 손 탈탈 털고 거지꼴로 돌아와서 집안에선 걸핏하면 죽네 사네 찍짜를 부리며 어머니에게서 이년저년 욕 퍼붓고 대들기가 십상이고, 밖에 나가서는 돈이 어디서 나는지 날마다 곤드레가 되어 위아래 안 가리고 박이 터지게 싸움질을 하는 못된 남동생뿐이었다.

서울에서 흑산도로 들어오기 천에 그래도 이 세상에 피붙이라고는 어머니와 남동생뿐이라는 마음 약한 생각에 잠깐 얼굴이라도 볼 겸 고향엘 들렀더니, 뜬 골로 객지에 나가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는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어머닌 다짜고짜 한다는 소리가, 다른 집 딸들은 도회지에 나가서 돈을 벌어 다달이 부쳐오고. 검둥이서방 따라 미국 들어가서 뭉텅이 손을 보내오는데 어찌 너는 그리도 모지락스러우냐, 크면서 어미 애간장을 녹이더니 끝내 별 볼일 없구나, 서방복 없는 팔자에 자식복 바라는 년이 미친년이지. 하고 동네방네 떠들어댔으며, 삼 년만에 만난 남동생도 제 누이를 고양이 쥐 보듯 힐긋힐긋 째리며, 마을사람들 창피하니 어서 꺼지라고 혀끝에 가시 붙은 말투로 몰아 세웠다.

그녀는 고향에서 불편한 하룻밤을 새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와버렸었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 만번 밀려오는데

 

여자는 큰 소리로 감정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종배도 따라 불렀다. 여자가 목울대를 세워 노래를 부르며 종배를 보고 싱긋 웃었다.

씨팔 담배나 한대 꼬실릅시다.

노래를 끝낸 영자가 손을 벌렸다.

네미럴, 굴뚝을 삶어 묵었나. 웬 담배는 그리 자주 꼬실러?

종배는 싫지 않은 목소리로 툴툴거리며 담배를 갑째 내밀었다.

바다와 하늘이 한꺼번에 어두워졌다. 칙칙한 어둠이 안개처럼 밀려들자 이내 하늘이 바다 위로 내려앉은 듯싶더니 모든 공간에 먹물 같은 어둠이 곽 들어차 버렸다,

갑판 위에도 어둠이 빈틈없이 가득 찼다, 사방이 어두워지자 드넓은 바다 위에 두 사람만이 덩그렇게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 춰!

여자는 종배 곁으로 찰싹 다가앉아 머리를 종배의 어깨 위에 정답게 얹었다.

종배는 슬그머니 왼손을 풀어 잘 길들여진 폼으로 여자의 허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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