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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71. 밀어내기와 끌어안기

by 자한형 2022.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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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내기와 끌어안기/ 이향아

1.벌집 이야기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일층이다. 일층이라서 불편한 점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살아보니 좋은 점이 더 많다. 무엇보다도 앞뒤 뜰의 수목들을 내 집 정원처럼 즐길 수 있는 게 좋다.

단풍나무, 모과나무, 백일홍나무, 산수유, 전나무, 은행나무, 덩굴장미, 사철나무... 이들을 앞뒤로 거느리는 내 마음은 평화롭고 윤택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성가신 것은 벌 떼들이 자꾸만 꾀어드는 점이었다. 꽃들도 져버리고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특히 서재의 남쪽 문을 열었다 하면 벌떼들이 윙윙거리며 나를 겁에 질리게 하였다. 그들은 마치 출격 명령을 받은 병사처럼 와와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던 것이다.

바로 사흘 전 휴일이었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고 있는데, 벌들이 프로펠러 소리를 내면 서 나를 배회하였다. 왜 이렇게 극성일까. 그 날은 마음먹고 근원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베란다 오른쪽 끝으로 유리문을 가리고 서 있는 단풍나무 가지 속에 꽤 큰 벌집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벌집은 연밥 주머니 모양의 꽤 큰 것이었다. 나는 즉각 없애 버리기로 하였다. 전지가위로 나뭇가지를 잘라내기만 하면 되니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팔을 있는 대로 다 뻗고도 발돋움을 해야만 겨우 손이 닿았다. 혹시 작업 도중 벌들의 기습을 받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벌집을 단풍나무 가지에서 성공적으로 잘라냈다. 나는 황급히 유리문을 닫았다.

잘려진 벌집은 하고 꽤 무거운 소리를 내면서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느닷없이 추락한 벌들은 예상치 않았던 천재지변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하나씩 둘씩 집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리고는 정신을 차려서 방향을 가늠하더니 점점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선회하였다. 그리고는 바로 아까까지 그들 의 집이 있었던 바로 그 아래 가지에 하나씩 돌아와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용케 집터를 찾아 모여드는 것인지, 잠시 후에는 수백 마리 아니, 수천 마리가 모두 집합을 하였다. 그들은 거기 새로 정착을 하려는 듯,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두려웠다. 저들이 총궐기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이 나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아내어 모종의 조처를 취할 것만 같았다. 하필이면 그날 오후부터 비바람이 몹시 쳤다. 공연한 짓을 하였음을 후회하였다.

저녁식사 시간 나는 이 말을 털어놓았다. 듣고 있던 그는 벌에 부대꼈던 내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특히 작가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대상을 부정하고 두려워하면서 사랑을 말할 수 있겠느냐고-.

껴안지 못한 행동이야.”

그가 나를 객관적으로 비판하고 있을 때 나는 너무 창피하여 신경질이 났다. 그는 다시 덧붙였다.

어디서 읽은 이야긴데 이런 일이 있었대.”

2. 제비집 이야기

제비가 해마다 처마 밑에 집을 지었다. 제비는 새끼를 치고 그 새끼들을 길렀다. 그들은 가을이 되면 강남으로 돌아갔다가 이듬해가 되면 다시 찾아오곤 하였다. 처음에는 제비를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던 집주인이 차츰 귀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해 봄, 제비가 다시 집을 지었을 때 주인은 그것을 헐어버렸다. 밖에서 돌아온 제비가 집이 헐린 것을 보더니 다시 흙을 물어다가 새집을 지었다. 주인은 또 제비집을 부수었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번인가 여섯 번을 했다고 했다. 저녁나절 자기 집이 또 없어진 것을 안 제비는 주인 집 대들보에 스스로 머리를 부딪쳐 자살을 해 버렸다.

소름끼치는 얘기다.

나는 요즈음 아침저녁 반성하는 마음으로 벌들을 관찰한다. 마치 거기가 아니면 어디에도 기거할 곳이 없는, 졸지에 쫓겨난 난민처럼. 그 공간은 그들 소유로 등기가 났으며, 누군가에 의해 부당하게 철거당한 집을 다시 그 토지 위에 건설해야 할 것처럼 그들은 집단을 이루어 계속 지키면서 그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아마 며칠 후면 바로 전에 있던 그 자리에 벌들의 새 집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는 벌집을 없애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왜 지레 겁을 내는가? 왜 벌들이 나를 공격할 것이라고만 생각하는가? 벌들은 나를 하나의 자연으로 알고 찾아왔을지도 모르는 것을. 지난여름 내 엄지발가락 위에 앉아 놀던 보리잠자리처럼 나와 이웃하고 싶었는지 모르는 것을.

벌이, 많은 집과 숱한 나무를 다 두고 하필 우리 집 단풍나무에 거처를 정했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고마운 일인 것이다.

3. 눈 맞추기

더위를 식히려고 가까운 변두리 계곡에 갔었다. 별 생각 없이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데 제법 큰 보리잠자리 한 마리가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더니 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내 엄지발가락에 가만히 내려앉는 것이었다. 나는 발을 뻗을 수가 없음은 물론이고 말도 크게 할 수 없었다. 아니, 나는 잠자리가 날아갈까 봐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 넓은 산천경계 아름다운 곳 다 두고 하필 내 발가락 끝에 내려와 쉬다니, 나는 자랑스러웠다. 잠자리와 이렇게 친근한 교분을 맺고 있는 나를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보아주었으면 싶었다.

잠자리는 나를 믿고 오래오래 쉬다가 갔다. 투명하고 정교한 두 쌍의 날개를 나란히 펼친 그대로. 그리고 가느다랗고 긴 몸을 반듯하게 세운 그대로.

나는 내 몸에 와서 쉬고 있는 잠자리를 보면서 이 세상의 수많은 곤충 중에서 잠자리처럼 깨끗하고 잠자리처럼 우아한 곤충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잠자리 말고는 내가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곤충이 없다는 생각도 하였다.

사랑스럽고 예쁘기로 말하자면 단연 나비를 꼽을 수 있지만 나비는 사람의 나비가 아니라 꽃의 나비다. 나무 그늘에서 여름내 울어대는 매미는 높은 나무위에 있기 때문에 사람 가까이 다가올 일이 별로 없다. 땅에 엎드려 종신토록 일하는 개미는 사교와는 무관한 근로자일 뿐이다. 개미에게는 날개가 없으므로 아름답고 우아한 꿈보다 현실이 우선일는지 모른다.

내가 한낱 작은 곤충을 생각함에도 이처럼 가리고 차별하거늘 네 발 달린 큰 짐승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진실로 의젓하지 못한 고백이지만 나는 동물과는 눈을 맞추는 일도 두렵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그 속에 빨려들 것 같아서 얼른 시선을 피한다. 시선을 피하는 것은 부정한다는 뜻이며 밀어낸다는 뜻이다.

눈도 맞추지 못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어떻게 그들을 껴안을 수가 있겠는가.

대상을 두려워하고 부정하면서 사랑을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하던 그의 말을 가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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