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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73.보은

by 자한형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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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報恩) -하길남

나는 이 세상에서 좋아한다는 말을 제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말은 보은(報恩)’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이 보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 주었더니, 박씨를 물고 와서 보은을 했다거나,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가 위기에 처한 까치를 구해주었더니, 그 까치들이 머리로 종을 쳐서 역시 위기에 처한 선비를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옛날에 우리는 살기가 매우 어려웠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돌아가신 박정희 대통령께서 너무 밥을 많이 굶어서 키가 크지 않았다고 했겠는가. 외국인 원수를 접견할 때마다 자신의 키가 너무 작아 언제나 고개를 들고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나우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때 보릿고개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어려운 시대를 겪어왔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나는 경북 경주에서 살았다. 우리 집 부근에는 약방이 한 집 있었다. 한번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우리 집 앞에 새끼로 경계선을 그어놓고 아무도 출입을 금지한다고 했다. 그 당시 호열자라는 병이 창궐해서 사람의 왕래를 제한한다는 것이 아닌가. 아침에 학교에 갈 때 아무 일 없었던 어머니께서 반나절 동안에 그 호열자라는 병에 걸려, ‘피병원이라는 곳에 실려 간 뒤였다. 아버지마저 보호자 자격으로 같이 갔던 것이다.

그 당시 어려웠던 시기에 출입까지 통재당하고 보니 사실상 먹는 일이 문제였다. 그때 나를 도와준 분이 바로 그 약국 아주머니였다. 나는 그 후 그 고마운 은혜를 갚기 위해 그 약방을 찾아갔으나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약국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지금도 약방주인 아줌마를 생각하면 눈에 눈물이 어린다. 약국 이름이라도 기억하고 있었으면, 관계기관에 알아보아서 찾아보고 싶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으니, 마음만 아려온다.

사실상 사람이 사는 일은 결국 서로 알게 모르게 도와가며 살게 마련이 아닌가. 우리가 매일 먹는 쌀밥, 그 쌀만 하더라도 여든 여덟 번의 손을 거쳐서 형성된다고 한다. 쌀 미()자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오늘날까지 살아온 과정은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데이비드 브룩스가 지은 소설 에니멀을 보면 사랑과 성공 그리고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다름 아닌 관계의 힘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맺게 되는 수많은 관계와 경험을 통해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 됨됨이가 진정한 성공과 행복의 열쇠라고 주장한다.

있는 것은 다 친구다

존재의 입맞춤이다

용이야 이무기야

삼천갑자의 덧니 한 쌍

심청이가 베고 누운 요술 방망이

있는 것은 다 친구다

귀신이 놀다간 그늘 한 조각

있는 것은 다 친구다

존재의 입맞춤이다.

그래

고추친구.

<졸시 친구’>

30여 년 전에 일본에서 실지로 있었던 이야기다. 신도 수가 수만 명이나 되는 어느 큰 절에서 30억 엔 정도가 드는 불사를 이루려고 주지 스님이 시주를 부탁하는 내용을 공표했다. 그러자 이튿날 어느 큰 부자가 30억 엔이라는 많은 돈을 갖고 와서 스님 앞에 내어놓았다.

불사금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에게 올린 뒤 절하고 가십시오.’

부자는 시주금을 불단에 올리고 절을 한 뒤 다시 스님 앞에 내놓았다. 그러자 스님은 말했다. ‘이제 가지고 돌아가십시오. 부처님께 올리셨으니 받으셨습니다.’

그렇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 강물을 팔아먹어도 어찌 제 혼자 다 마셨겠는가.

나는 명함에 보은(報恩)’이라는 한자어를 먹 글씨로 크게 써서 수첩에 넣고 다니면서 가끔 지갑을 열 때마다 들여다보면서 웃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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