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 나무가 있는 풍경(風景) -최인훈
1969년이 다 가는, 동지 달 그믐께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아침, 소설가 구보씨는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는 참에 그의 머릿속에 무엇인가 두루마리 같은 것이 두르르 펼쳐졌다가 곧 사라졌다. 구보씨는 그것을 곧 알아보았다, 그것은 오늘 하루 그가 치러야 할 일과였다. 다른 누구도 알아보랄 것 없고 구보씨만 알면 그만이었던 만큼 그 두루마리는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졌다. 구보씨는 잠에서 깬 다음에도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짹짹짹 하고 까치가 운다, 침대에서 서너 걸음 떨어진 창문 밖에서 이 아파트의 잔디밭에 몇 그루 심어놓은 오동나무의, 지금은 잎 떨어진 가지 끝에 앉아서 목청이 울릴 때마다 꼬리를 까딱까딱하고 있을 고 새의 모습을 구보씨는 떠올렸다. 그러자 역시 늘 그런 것처럼 구보씨는 서글퍼졌다. 구보씨는 대단히 과학적 인 소설가였는데도 아침에 우는 까치소리에는 매우 미신적이었다. 구보씨는 시골에서 자란 것도 아닌 자기가 그와 같은 토속(土俗)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쩐 일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서글펐던 마음은 사라지고 말았다. 늘 이렇단 말이 야, 하고 구보씨는 다른 모양의 서글픔을 느꼈다. 까치소리가 서글프다는 것은 이런 뜻이었다.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있다고 한다.
구보씨는 까치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계적으로, 언제나, 틀림없이, 그 생각이 떠오른다. 떠오른다기보다 절로 그렇게 된다. 그 느낌은 구보씨의 어떤 사상보다도 뚜렷하다. 자기가 정말 믿고 있는 것이란 까치소리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하는 감상적인 생각을 그때마다 하는데, 영락없이 그러면 구보씨는 가슴인가 머릿속인가 어느 한군데에 까치 알만한 구멍이 뽀곡 뚫리면서 그 사이로 송진 같은 싸아한 슬픔이 풍겨 나오는 것을 맡는 것이었다, 이런 감상을 생활에 그대로 옮기려고 할 만큼 구보씨는 젊지도 않고, 그렇게까지 비과학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그 슬픔은 그저 그만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별 탈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만한 미신까지도 캐어내 보면서 내 속의 토속은. 하고야 마는 또 한 사람의 구보씨의 차가운 마음이 다른 한 사람의 구보씨를 슬프게 한 것이었다. 벌거숭이 된 내 마음, 진실이란 병에 걸려 벌거숭이 된 내 마음, 하고 구보씨는 중얼거렸다. 그만하자. 구보씨는 오늘 하루에 기다리고 있는 많은 일을 생각하고, 아침의 이때를 더는 까다로운 생각의 놀이를 위해 쓰지는 말기로 마음먹었다. 3.는 침대 머리에 붙은 시렁 위에서 청자갑을 집어서 한대를 피워 물었다. 대한민국 전매청은 백원 스무 개비의 그 맛 속에서 아직은 공신력을 지키려는 안간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구보씨는 오 원어치의 연기를 조심스럽게 점검하면서 민주 국가의 시민다운 책임감을 가지고, 오 원어치의 테두리 안에서 전매 행정에 대한 비판을 즐겼다. 별다른 탈이 없었으므로 그는 전매청을 용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지난 밤, 걷어놓지 않은 커튼 사이로 별이 반짝이던 창가에는 이 아침. 미안하리만큼 새파란 하늘이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구보씨는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다. 좋은 눈약을 한방을 떨어뜨린 다음처럼. 그리고 하느님도 용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자기를 다스리면서 화해(和解)에 가득 찬 마음으로 아침을 맞은 구보씨는 아파트를 나와 버스 정류장에 닿았을 때 이미, 그와 같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하루를 보내기가 힘들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구보씨와 마찬가지로 급히 어디론가 가야 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제쳐놓고 좌석버스란 이름의 입석버스를 타고 수없이 떠났는데도 구보씨는 좀처럼 차를 잡을 수 없었다. 왜 전차를 없애야 했을까, 하고 구보씨는 생각하였다. 대형 전차를 더 늘리는 것이 이 교통난을 푸는 길이 아니었을까, 하고 구보씨는 생각하였다. 또 자동차만 하더라도 택시 대신에 이층버스 같은 것을 만들어 쓴다면 이렇게 거리가 자동차로 곽 차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아니, 전차의 댓수를 자동차의 몇 분지 일만 늘렸더라면 이 버스와 택시는 없어도 됐을 것이다. 그러면 떠들썩한 소리와 매캐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됐을 것이 아닌가. 전차만 해도 평등, 공(公)적인 터 -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 자동차란 것은 남을 밟지 않고선 살지 못한다는 마음보를 가르치는 데 꼭 알맞을 만큼밖에는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다. 자동차는 앓는 이, 불난 데, 싸움터, 짐 싣기, 이런 것에만 쓰면 될 것이 아닌가. 나머지 사람은 모두 전차를 타면 된다, 대통령에서 유치원 어린이까지 전차를 타고 다닌다면 세상살이도 썩 부드러워질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보씨는 더욱 뒤로 처졌다. 마침내 그는 허둥거렸다. 열 시까지 자광 대학에 닿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대학의 문학과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기로 돼 있다. 여기서 자광 대학까지 차로 가면 십 분이면 될 것이었고, 지금 시각은 아홉 시 반이니 아직 늦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다가는 언제가 될지 몰랐다. 그는 택시를 기다리는 줄에 들어섰다. 길게 뻗은 그 줄도 구보씨를 넉넉히 절망시켰지만 그래도 여기는 질서가 있었다. 더구나 택시조차도 어울려 탄다는 그 운전사와 손님 사이의 야합(野合)의 버릇 덕으로 구보씨는 이윽고 시간에 늦지 않고 자광 대학에 닿을 수 있었다. 그는 학보사를 찾아서 이 신문의 주필이며 시인인 친구 오적을 만난다. 오적은 그 자광(慈光)어린 부드러운 얼굴로 그를 맞으면서 바쁠 텐데 와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는 오적과 둘이 마주앉아 전기난로를 쬐면서 친구들 소식이며 문단 얘기를 주고받았다. 오랫동안 만,지 못했지만 곧 어제도 만났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궁금하던 일도 대단치 않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는데 다른 연사 두 사람이 왔다. 시인이며 평론가인 이동기씨와 김관씨다. 시간이 되었으므로 그들은 강당으로 갔다. 강연 장소는 이 대학의 대학 극장이었다. 그것은 약 백 자리 가량의 작은 굿터였다.
김관씨부터 시작했다. 그는 60년대에 나온 신인들의 문학 세계를 솜씨 있게 소개하였다. 60년대. 십 년이 지났으면 이제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를 할 수는 있을 만한 일이었다. 김관씨는 그 자신이 뒷받침한 십 년의 시간을 <감수성의 혁명>, <의식의 의식화>, <자아의 확산> 따위의 구보씨로서는 익히 알 수밖에 없는 말을 써가면서 풀이하고 있었다. 구보씨는 이 자기보다 약간 후배이지만 거의 문단 생활을 같이 시작한 불란서 문학 전공의 비평가를 새삼스레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십 년 전보다는 훨씬 책임 있는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이론적 이상(理想)으로서의 주장과 그와 같은 이상을 옮긴 예로써 그가 옹호한 작가들의 업적 사이의 묘한 거리를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끝냈다.
다음에는 이동기 시인이 했다. 그는 지난 십 년의 한국시가 여러 문학 세대의 연립(聯立))이었다고 말하면서, 자기로서는 그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 양식(樣式)상의 대립과, 양식상의 대립보다 더 포괄적인 세대간의 대립이 구별되어야 하며, 같은 세대간에서의 양식상의 대립은 다른 세대간의 양식상의 동일성보다 더 가까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음이 구보의 차례였다. 구보는 정작. 지난 십 년에 관한 한 앞의 두 사람의 이야기보다 훨씬 다른 어떤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의 환경론의 기본입장을 설명하고 문학의 미학적 구조는 영원 불변하지만 그와 같은 구조에 이르게 하는 매개체인 환경은 바뀌기 때문에 작가는 이 환경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하며, 그 지식 자체는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는 환경에 대한 정보를 익힌 다음에는 그것을 노래로 바꾸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끝맺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이 있었다. 김관씨보다 별로 더 늙게는 보이지 않는 한 학생이 일어났다. 그는 김관씨의 주장 가운데에서 -감수성- 의 내포에 대한 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구보씨에 대해서도 아픈 데를 찔렀다. -감수성-이란 것이 문학의 경우, 순수한 감각의 뜻에만 머물 수는 없고 -윤리-에까지 나가야 된다고 생각되는데 과연 어떤 혁명이 있었단 말인가. 하는 것이었고 그 질문 속에서, 구보씨는 요즈음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있는데, 라고 지나가는 말로 인사를 한 것이었다. 김관씨는 자기는 동시대의 신인들의 문학적 성격을 뚜렷이 하기 위하여 방법적 도식화를 하는 과정에 어쩔 수 없는 과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그 문제는 그들 신인들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구보는 자기에 대한 언급은 대답할 성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가만히 있었다. 구보는 학생들이 일어서서 나가는 사이를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스님 차림을 한 사람이 뜰을 지나간다. 이 학교는 불교 재단이 움직이는 학교였다. 구보는 불교, 하고 뇌어봤다. 그 정묘한 관념의 체계의 한 부분을 가지고 그럼직한 미학의 이론 하나 만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천 년이요, 이천 년이요를 들여 몸에 익힌 버릇에서 실오라기 하나 건지지 못하고 시대가 바뀌면 미련 없이 -팔만대장경-을 나일론 팬티 하나와 바꿔버리는 풍토. 구보는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벌거숭이 된 내 마음. 오, 초토에서 이방인들의 넝마라도 주워 입어야 했던 벌거숭이 된 내 마음. 문화사(文化史)적인 분노의 전사(戰士)라는 포즈를 지어보는 감상(感傷)에 젖으면서 구보는 겨우 그 부끄러움에서 빠져 나왔다. 어쩌란 말인가. 그렇지 못할 내 인연이기에 이렇게 법(法)의 울타리 밖에서 그나마 멀리 우러러보는 것으로 용서해 달라. 그는 적반하장을 샤카무니에게 슬쩍 들어 보였다.
대학을 나와 세 사람은 퇴계로 어느 음식점으로 갔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던 것이다. 가져온 음식은 맛이 없었으나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얘기하기에는 좋았다. 거기서 그들은 몸을 녹이고 밖으로 나왔다. 세 사람은 저마다 갈 데로 헤어졌다. 구보는 그들이 가는 모습을 보았다. 매우 점잖은 어투로 십 년의 시간에 대해서 이러저러하게 이야기한 사람들이 그 시간이 지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뿔뿔이 갈라진다는 사실이 어쩐지 섬뜩했다. 어쩌란 말인가. 강연을 같이 했다고 해서 의형제라도 맺어야 한단 말인가. 에잇, 구보는 보이지 않는 칼을 들어 마치 백정처럼 사정없이 자기의 그, 독신자다운 어리광의 미간을 푹 찔렀다. 소는 원망스러운 눈을 치뜨면서 매짠 동지 달 그믐 무렵의 바람 속에 산화(散華)했다.
그는 가까운 다방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충무로와 퇴계로를 잇는 골목에 있는 -커피 숍-이라고 간판을 단 다방이었다. 불빛이 어두웠다. 전에 한번 들른 적에도 그랬던 것 같지만 밖에서 갑자기 들어온 눈에는 아주 캄캄할 지경이었다. 잘 보이지 않는 자리를 찾던 그는 이층 계단을 올라갔다. 거기도 어둡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눈이 익어서 좀 나았다. 그는 창 옆 자리에 가 앉았다. 한 시까지 틈이 있었다. 한 시에 월간잡지인 <여성 낙원(樂園)>사에 가서 현상 소설 당선자를 뽑아야 했다. 고개를 돌리면 창 밖으로 저 아래를 그 좁은 거리가 미어져라 사람이 지나간다.
물론 그들에게는 구보 자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바쁘게 다닐 권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는 눈을 돌려 다방 안을 보았다. 거기에도 역시 구보 자기와 다름없이 그렇게 앓아서 한잔의 차를 마실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 논자서, 둘이서, 혹은 셋이서, 이야기하고 혹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들과 자기와의 사이에 있는 공간이 깊은 낭떠러지처럼 아래와 위로 벌어지는 것을 구보는 보았다. 그들이 저 겨울옷 속에 지니고 있는 시간. 그리고 구보의 시간. 그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구보야, 너는 아까 어린 학생들 앞에서 우리들은 모두 떨어질 수 없는 연대(連帶) 속에 살고 있으며, 인간의 일은 모든 인간에게 무관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물론. 물론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르다.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학교의 강연에서와 너의 마음속의 진실은 다르단 말인가. 아니다. 말해 봐. 구보는 다그치는 물음에 약간 비켜서는 투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말하는 것은, 하고 구보는 천천히 생각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무슨 어렵지도 신기하지도 않은 이야기다. 동네 시어머니란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어울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아니, 어울림 속에 끊어짐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아니, 끊어져 있기 때문에 이어지는 것이라고나 할까. 흑은 커다란 연대 속에 작은 단절이 들어가 있다고나 할까. 이 막은 단절은 집단 속에서의 공상(空想)의 한때일 수도 있고 또는 심하면 죽음일 수도 있다. 공상과 죽음은 집단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지 않은가. 공상과 죽음이라는 단절 위에서의 연대 - 그게 사람의 어울림이다. 그것을 바로 본 위에서의 연대가 정말 어른스런 연대다. 한발 잘못하면 자기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그 허무의 공간 속에 떨어지게 할 위험을 막기 위한 약속 - 그게 연대다. 목숨의 이어짐 ? 자연의 뜻에 의해 이미 연대되어 있지 않느냐고? 그런 -밖-의 이어짐-나-와 상의함이 없이 그 옛날 누군가가 팽이에 시동(始動)을 주듯이 결정해버린 목숨의 타성 -그것은 -나-가 아니다. -나-는 그 목숨의 연속의 밖에 있는 어떤 -깨어남-이다. 그 목숨의 거울, 그림자다. 목숨이 있는 멋처럼 그림자도 -있다-. -나-란 그렇게 약하고 그렇게 아슬아슬하다. 약하고 아슬아슬한 것이 발을 헛디디지 않으려면 굳세고 든든하게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물론. 그런데 그 굳세고 든든하다는 것은 -소망-이긴 하지만, 결코 그 -소망-만큼한 -실현-은 없는 법이다. 덜 이룬 -실현-을 다 이룬 -소망-의 실현이라고 우긴다면 하루 이틀이면 몰카도 너무 오래면 그것은 틀림없이 탈이 된다. 할 수 있는 테두리에서의 정의(正義)를. 그런 정의가 무서운 정의다. 나머지 정의는 시(詩)에서 위안 받는 길밖에 없다. 칼 빛에 어리는 안개 -그게 시다. 칼이 없는 시도 가짜고 시가 없는 칼도 가짜다-여기까지 말을 쫓아가다 말에 쫓겨온 구보는 문득 제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자고 있는 동안의 자기의 얼굴은 틀림없이 미친 사람 아니면 살인범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그 가냘픈 연기의 건너편으로 구보는 무서운 말이 빚어낸 그 어질머리와 섬뜩함을 건너다보았다. 그 순수한 것들은 연기를 싫어하는 모양인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흩어져버렸다. 구보는 그런 말들과 놀다가 이제는 꼼짝없이 그것들에게 잡혀버린 자기의 지난 십 년을 생각했다. 비록 지금, 담배 연기 때문에 사라졌을망정 말들은 결코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신이 내려버린 무당처럼 비참하다고 자신을 생각하였다. 게다가 그는 진자 무당처럼 돈도 받는 것이었다. 그의 안주머니에는 얼마 안 된다고 하면서 오적이 건네준 오천 원이 들어 있었다. 내가 그 대학에서 지내고 온 굿은 무슨 굿인가. 그러자 아까 그 학생이 요즈음 구보씨의 소설은 신비적인,,,,,,하던 말이 언뜻 생각났다. 얼마나 잘 맞춘 말인가. 맞춘다? 그러면 그 학생도 무당이란 말인가. 그는 갑자기 우스워졌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예술의 발생사가 가리키듯이 그것은 사실이다. 내가 아까 말한 이론을 따른다면 환경에 바르게 계산해내는 무당이면 될 것이 아닌가. 미(美)의 사제(司祭)라고 하면 그럴듯한데 미의 무당이라고 하면 섬뜩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마 이 땅의 무당들이 게을렀기 때문이었으리라. 집단과 더불어 힘들여 자라는 힘을 가지지 못한 탓이었으리라. 그래서 죽은 돼지대가리나 겨누었지, 그 칼춤은 아무도 두렵게 하지 못한 것이리라. 흠. 또 칼이다. 또 칼의 그림자구나. 죽은 돼지대가리보다 훨씬 그럴만한 대가리를 겨누는 칼춤을 추면 되겠지. 그래, 무당이라. 그는 푸닥거리를 마치고난 무당처럼 남아 있는 커피를 조금씩 마셔가면서 목을 축였다. 이런 순간에 끄는 자기자신의 현실적 신분을 그다지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한 월남 피난민으로서, 서른 다섯 살이며, 홀아비고, 십 년의 경력을 가진 소설가라는 그의 현실적 신분보다 훨씬 높은 데를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모든 직업인이 자기 일에 들어서는 참에 갖추어지기 마련인, 어떤 엄숙함의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 그는 말려 들어갔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그 -말의 공간-은 노동자의 일터처럼 그에게 든든함을 주었다. 그는 한참 후에 일어서서 변소로 갔다. 이 다방의 변소는 아래층에 있었다. 그는 소변을 보고 올라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구보씨가 걸음을 멈춘 곳은 계단의 꺾임목이었다. 거기에 난 창문으로 구보씨는 한 풍경을 보았다. 그 곳은 자리로 보아서 화교 국민학교의 뒷마당임이 분명하였다. 이층 시멘트 집의 뒷모습이 보이고 작은 창고 같은 집이 있고, 느릅나무 큰 그루가 몇 서 있었다. 구보가 놀란 것은 그 풍경이, 그의 북한 고향의 그가 다니던 국민학교 뒤뜰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옆으로 여러 번 사람이 지나갔지만 그는 그대로 서 있었다. 많은 세월을 사이에 두고 문득 마술처럼 눈앞에 나타난 풍경에 구보씨는 홀렸던 것이다. 그는 다방에 올라가서 자리를 옮겼다. 그쪽에 붙은 창문으로 그는 지금 발견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진작 이 자리에 오지 않았던 것을 뉘우치면서 그는 뒷마당을 내려다보았다. 구보씨의 고향은 동해안의 이름난 항구 완산이다. 전쟁이 났을 빼 그는 고등학교 일 학년이었다. 전쟁이란 거의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이지만 더구나 고등학교 일 학년 짜리에게는 그것은 어떤 어질머리였다. 피난. 월남. 이십 년의 세월, 그 이십 년은 구보에게 있어서 그 어질머리의 실마리를 풀어 가는 일이었다. 어질머리. 삶은 어질
머리를 가만히 앉아서 풀어 가는 가내수공업 센터 같은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긴 하였다. 풀어간다는 것도 살아서 풀어 가는 것이고, 산다는 일은 어질머리를 보태는 일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콩쥐의 일감. 어느 사람이 이 어질머리에서 풀려난단 말인가. 사람들은 그래서 사노라면 어느덧 누에처럼 그 어질머리 속에 들어앉아 버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구보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어질머리라는 누에 집을 풀어서 그것이 대체 어떤 까닭으로 그렇게 얽혔는가를 알아보아야 했다. 그것이 소설이라는 것이 라고 그는 생각했으므로. 그는 자기 집을 헐고 자기 껍질을 벗겨서 따져보는 그러한 누에였다, 벌거숭이 된 내 마음. 오, 진실을 찾다가 벌거숭이 된 내 마음. 그 어질머리가 자기의 한군데라는 것을 알났을 때는 이미 자기 몫의 어질머리를 갈가리 찢어 발겨놓은 다음이라는 발견. 모든 슬픈 사람들이 뒷사람을 위해 충고의 말을 적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겪지 않고는 풀어 읽지 못하는 너무나 단순한 비문(碑文) 그런데 여기 그의 어린 시간이 있었다. 어질머리를 어질머리로서 살 수 있는 오직 한번의 기회로서의 한사람의 소년의 시간. 그는 세계라는 어질머리와 자기 사이에 책이라는 완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책을 음악처럼 읽었다. 등장인물이라는 이름의 선율들이, 그의 책의 페이지 위에서 아름다운 어질머리를 풀어나갔다. 아름다움을 남보다 더 누린 사람은 반드시 그 갚음을 해야 한다. 월남 후 그는 그 갚음을 하기에 이십 년을 허비했다. 그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슬픔이었고, 그가 어질머리라 생각했던 것이 무서움임을 알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구보에게는 이 삶은 한 견딤, 한 수고였다. 그는 눈 아래 뜰에 선 느릅나무의 헐벗은 가지를 바라보았다. 보고 있자니 그의 눈에는 그 가지들이 담뿍 잎이 달려 보였다. 속삭이는 듯한 모양을 한, 그 독특한 느릅나무 잎새가 간간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도 보였다.
한 시에 구보씨는 여성 낙원사에 닿았다. 함께 심사를 맡은 이홍철씨도 와 있었다. 구보씨는 이 동향의 선배를 오랜만에 만났으므로 반가왔다. 구보씨는 이흥철씨에게 당선이 될 만한 것이 있더냐고 물어보았다. 편집장은 자리를 옮기자고 말했다. 그들은 회의실인 듯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스팀이 들어와서 훈훈한 방이었다. 구보-이홍철 -편집장 세 사람은 가운데 놓인 넓고 긴 탁자의 한 모서리에 자리를 잡았다. 한 사원이 차를 가져왔다. 책상 위에는 응모소설 원고가 놓였다. 그것은 구보가 먼저 읽고 이흥철씨가 받아 읽은 다음 오늘 가지고 나온 원고였다,
「어떻습니까. 뭐 좋은 거 있습니까?」
하소 편집장이 한 손으로 듭시다. 하는 시늉을 하면서 다른 손으로 자기 찻잔을 들며 말하였다,
구보는 먼저 쉬운 일부터 마친다는 듯이 찻잔을 들어 상징적으로 마시는 시늉을 한 다음, 말하였다.
「글쎄요, 이 형은,,,,,,」
이홍철은 한번 웃더니 입을 꽉 다물었다가 말했다.
「네, 이거,,,, ,」
하면서 원고뭉치에서 하나를 뽑아냈다. 구보와 편집장은, 한 구유에 머리를 디미는 돼지새끼들처럼 동시에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검은 에덴-이라는 소설이었다. 구보도 별다른 의견이 없으면 그것이리라 한 소설이었다, 구보는 말했다.
「그렇겠군요.」
「그래요?」
편집장은 원고를 넘겨보면서 또 말하였다.
「어떤 소설입니까?」
「근친상간(近親相姦) 얘기예요.」
하고 이흥철씨가 말했다.
「근친상간요?」
편집장은 이홍철씨가 근친상간을 했다는 고백이나 한 듯이 물었다. 그것이 우스웠으므로 구보씨는 어허허 하고 웃었다.
「괜찮아요.」
하고 이흥철씨가 근친상간이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근친간도 다루기 나름이지만.」
하고 편집장은 좀 생각하다가,
「우리 잡지가 여성지라, 상식적으로 너무 동떨어진 건------」
「말씀대로 다루기 나름이지요.」
차고 이홍철씨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검은 에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쪽 빠졌잖아.」
「그래.」
「이야기가 확실해.」
「검은 에덴이라고 제목을 붙인 작가의 판단은 들어 있는 셈이지.」
「그런데 좀 생각하게 하더군.」
「뭐요.」
「옛날 소설가 같으면, 간통 이야기를 다를 때 이런 분위기가 되지 않겠소 그런데 지금은 근친간이나 해야. 옛날 간통만한 분위기가 되는 거구나. 이런 생각 말이오.」
「저항력(抵抗力)이 생겨서 옛날 십만 단위가 백만 단위가 된 거지 뭐.」
「뜨끔한 일 아니오?」
「어제 오늘 일인가. 하. 구보씨 꽤 낡은데.」
「낡다니?」
「그러니 구보씨는 아직 장가도 못 갔단 말이오.」
「아니, 내가 낡았으면 누가 새롭겠소?」
「그럴까 ?」
「형편없어요. 싹 썩었어요.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에 흐물흐물하는 바닥이야.」
「바닥?」
「이 바닥 말이야.」
「흐음.」
「그러니까 소재는 근친간이지만, 작가는 그걸 비판하고 있다. 이런 얘기가---」
「그렇죠.」
「그럼 상관없겠군요.」
「상관없다니깐요.」
「네, 상관없습니다.」
「그럼 결정된 걸로 하겠습니다,」
일을 끝내고 그들은 잡담을 하였다. 이흥철씨는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역사 소설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는 전에도 역사 소설을 쓴 적이 있었는데 구보는 대단히 부럽게 생각했다. 그 어질머리를 용케 풀어서 앞뒤를 맞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역사 소설에 대한 얘기가 발전해서 소설과 역사의 본질론으로 나아갔다. 이홍철씨는 자기 생각을 말했다. 대체로 역사와 소설이 엄청나게 달라지고 그 둘 사이에 차별이 문제시되는 시대는 지배 계급이 정치에 대한 믿음을 잃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다. 왕조의 양반 계급은 역사 외에 가공의 진실이라는 소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지금 소설이라고 부르는 예술의 몫을 맡은 것은 시였는데, 그들은 시에서 굳이 역사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현실의 짐에서 벗어난 놀이로 생각했다. 그들은 사서(史書)를 읽는 것으로 족히 현실에 대한 눈과 책임을 느꼈기 때문에 거짓말 역사로서의 소설이란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이 사실은 건강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처럼 정치와 예술의 분열이 없었던 것이다 - 이흥철씨는 이렇게 말했다. 구보씨는 거기다 자기 의견을 말했다. 사실과 오락을 그렇게 두붓모 자르듯 가른다는 것은 그들 양반계급이 자기들의 세습적 신분에 대해서 거의 의사 자연적인 안전감을 가진 탓이었겠지, 그러나 세습적 지위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인정되긴 않는 근대 이후의 세계에서는 사실과 상상(想像) 사이에 그와 같은 구별은 있을 수 없지, 이십세기 문학의 상징적 경향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폐단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 단단한 것은 없다는 세계관의 표현으로서, 사람이 늘 거기서부터 출발하고 거기로 돌아와야 할 발판이 아닐까, 아니 - 발판 없음의 인식 -이 아닐까? 구보씨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얘기를 한 다음 그들은 심사료 각 X만원씩을 받아들고 잡지사를 나왔다. 이 잡지사는 대법원 골목에 있었는데, 그들은 덕수궁 뒷담을 오른편에 보면서 광화문 쪽으로 고개를 넘어갔다. 덕수궁 뒷문 앞을 지날 때 열린 문 사이로 석조전 오른쪽 옆구리가 보였다. 그러자 구보는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구보는 어떤 여자와 이 길을 가다가 꼭 지금처럼 그 석조전을 들여다봤던 것이다. 그의 기억의 앙금으로 가라앉아 있는 서울의 한 건물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어떤 감회를 안겼다. 이렇게 한 도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고, 기억의 눈길에 얽혀 있으려니 생각하였다. 마치 밤하늘에서 비행기를 잡는 탐조등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그들의 기억의 하늘에서 집을, 거리를, 나무를, 우체통을, 어느 다방을 밝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바라보던 머릿속의 풍물은 전류가 끊긴 전기 알처럼 물질의 백치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구보는 중얼거렸다. 대단한 일이야. 산다는 건 대단한 일이야. 이홍철씨가 뭐야? 하고 물었다. 구보는 머저리처럼 웃었다. 이흥철씨도 머저리처럼 웃었다. 구보는 그 웃음이 이흥철씨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잡지 같은 데 나던 사진, 그의 이십 대의, 좀 마른 얼굴에 어려 있던 웃음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고등 학교의 선배라는 실감이 났다. 고등 학교.
그때의 고등 학교라는 그 이상한 삶을 지금으로서는 거의 떠올릴 수 없다.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 아무 것도 모르면서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삶의 이 불량 소녀 같은 엉터리없음. 그들은 구세군 서대문 본영을 지나 경기 고녀와 덕수 국민학교 앞을 지나서 광화문으로 나왔다
「약속 있어?」
하고 이홍철씨가 물었다
「없어.」
하고 구보는 대답하쳤다.
「9(나인)에 가볼까?」
「그러지. 」
9다방에는 소설가 남정우가 가끔씩 들르는 곳이었다. 그들은 구름다리를 올라서서 건너편에 내려섰다. 남정우는 혼자 앉아 있었다. 남정우는 -정토(淨土)-라는 소설을 써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와.」
남정우씨는 자기 집처럼 말했다. 아마 자주 오는 집이어서 집처럼 생각키는 모양이었다.
「어디서 쏘는 길야, 둘이서?」
「음, 병아리 감별을 하고 오는 길야.」
「뭐?」
「병아리 암수 가리는 것 있잖아.」
하고 이홍철씨가 말했다.
「뭐?」
「응, 저, 현상 소설 심사를 하고 오는 길이야.」
「아, 그래.」
「암컷인가, 수컷인가, 레구홍인가, 토종인가, 잘 크겠나, 못 크겠나.」
하고 이홍철씨가 말했다.
「허, 과연 그래.」
하고 남정우씨가 가장 유쾌한 일 다 듣겠다는 것처럼 웃었다. 구보지는 그 순간, 확 풍기는 닭똥 냄새를 맡았다. 과연 그래, 그는 넌지시 손을 코에 갖다댔다. 훅 끼치는 닭똥 냄새. 그럴 것이었다. 껍질을 깨고 나와서 살겠다고 삐악삐악거리는 숱한 병아리들을 만지지 않았는가. 현상소설의 원고지 사이에서 풍겨 나오는 그 비릿한 냄새는 분명히 닭똥 냄새였다. 자. 이번에는 병아리 감별사가 됐군.
구보씨는 (9)에서 두 사람과 헤어져 나와 광화문 지하도 쪽으로 가다가 극작가 배걸씨를 만났다. 지하도 입구 신문팔이 옆에서 그들은 악수를 나누고. 오랜만이니 어디 가서 얘기를 하기로 하자고 뜻이 맞았다. 구보씨와 배걸은 지하도를 내려가 동아일보 앞에서 땅 위로 올라왔다. 그들은 오른쪽으로 걸어가서 길을 건너 소방서 앞을 지나 -궁(宮)- 다방 모퉁이를 돌아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조금 가면 중국 집이 있었다. 여기가 좋겠다고 끄덕이면서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홀을 지나 깊숙한 통로로 그들은 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좀 이르지만 배갈을 좀 하기로 했다. 그들은 배갈을 마시면서 연극 얘기를 했다.
「베케트가 탔지.」
「음.」
「알아주는 모양이지.」
「그야.」
「연극 어때?」
「연극.」
「맘대로 되나.」
「연극적 감수성이 문제야.」
「자네 거 좋더군.」
「뭐.」
「대사 주고받는 식은 곤란하지.」
「대사?」
「응.」
「안되지. 극적 공간의 조형(造型) 그게 있어야지.」
「극적 시간의 전달.」
「그래그래, 조형된 시간을 주고.」
「받는다?」
「그럼. 자 받아.」
「천천히 하지 그래.」
「응.」
「사실(事實)극의 밑거름도 없는데 좀 무리하잖을까?」
「뭐 농사짓는 건가?」
「농사야 농사지.」
「공간을 간다(경(耕))?」
「갈아야지.」
「공간.」
「인간적 공간.」
「 - 을 가는 거지,」
「간(行)다?」
「응 밀어가며, 미는 거야, 밀어내는 거야.」
「그 저항이, 응?」
「그럼, 그럼.」
「타인의 인식, 그 사이.」
「옳지, 사이와 사이의 골짜기.」
「뛰어넘는 거야.」
「빈 골짜기지?」
「비었구말구. 차 있다고 생각하는 게 통속이야,」
「옳지, 그렇게 규정하면 되겠군.」
「암마. 비었다, 어질머리,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다.」
「없다?」
「없지. 그걸 온몸으로. 」
「온몸으로 말이지.」
「미는 거야.」
「맨몸으로.」
「맨몸이지, 뭘 입었다고 생각하면 안돼.」
「알몸으로?」
「벌거숭이지.」
「벌거숭이, 벌거숭이 된 내 마음.」
「그래그래. 벌거숭이 된 마음이 벌거숭이의 공간을 밀고 나가는 거야.」
「밀고 나간다.」
「나가야지.」
「괴롭군.」
「살아보니 그렇잖아?」
「그래그래. 그런데 괴롭다고 징징 우는 게 죄가 된다니 괴롭지?」
「징징거리는 건 안돼.」
「그럼.」
「괴로운 건 괴로운 거야. 그러나 징징 짜는 건 안돼.」
「안되긴 안되지.」
「안돼.」
「왜 안돼?」
「짜증이 나잖아?」
「아니, 왜 죄가 되나 말야?」
「징징거리면서 일은 언제 해? 징징거릴 시간을 착취하고 있는 거야.」
「착취?」
「그럼. 먹어야 짤 거 아냐? 남도 울고 싶단 말야.」
「맞았어 맞았어. 실연하고 하소연하는 거 말야.」
「그래그래, 죽이고 싶지.」
「죽여야 돼. 죽여야 돼.」
「그런데 베케트처럼 안 해도 되잖아.」
「어떻게?」
「체홉처럼.」
「그건 달라.」
「달라?」
「다르고말구. 끝까지 가면 베케트가 되는 거야」
「흠.」
「돼. 그렇잖아? 예술이 예술을 의식하게 되면 그리 되는 거지.」
「그게 예술의 쇠약해진 증거가 아니야?」
「에이 시시한 소리 말아. 왁찐을 연구하기 위해 제 몸에 실험을 하는 게 생명력이 약해서 그런 거야?」
「왁찐이라 - 」
「병균을 제 몸에 심는 의학자는 왜 과학이구. 박애구 순수 정신을 제 몸에 심는 예술가는 왜 타락이야?」
「순수 - 」
「순수를 남에게 심어보려는 게 나쁘지.」
「남에게 -라?」
「남이지. 남에게만 세균을 넣고 자긴 말짱하고. 죽어야 돼.」
「남이라. 취하지?」
「하나 더 할까?」
「그만해.」
「그만?」
「하나 더 할까?」
「하나 더 -」
「하나만 더 해.」
손뼉을 친다.
「부르셨습니까」
하면서 문이 결리고 심부름하는 아이가 얼굴을 들이 민다.
「하나」
「네」
소년의, 나이에 비해 잘 발달한 손이 술병을 받아 가지고 문을 닫는다.
「가만, 식사할까?」
「천천히 하지 뭐, 바빠?」
「아니야, 이따 저녁에 약속이 있어.」
「여자야 ?」
「아니야. -성남동 까치-라구」
「응, 김광섭씨 시집?」
「그래. 출판기념회가 있어.」
「건강이?」
「응, 나도 잘 모르는데, 그 동안 병 문안도 못했고.」
「그렇겠군, 평이 좋지?」
「안 읽었나?」
「응.」
「서로 좀 읽고 했음 좋겠어.」
「그렇구 말구.」
구보씨나 배걸씨나 모두 술을 잘하는 편은 못되고 말 안주로 삼는 편이었기 때문에 지금 마시고 있는 병이 두 번째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대략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추상(抽象)과 구상(具象)은 서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는 것/시대(時代)에 따라서 역사(歷史)는 열려 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닫혀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현재 인간의 문명(文明)은 그러한 명암(明暗)이 2항 대립식으로 널뛰기를 하면서 번갈아 집권(執權)한다는 표현(表現)을 하기에 어울리는 고비는 지났다는 것 / 추상(抽象)과 구상(具象)도 한 시공(時空)에 동시(同時)에 공존(共存)하는 생(生)의 얼굴이라고 봐야지, 한쪽만으로 결판내려면 생(生)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일그러뜨릴 때는 그것이 언어(言語)의 전개(展開) 형태(形態)인 계기적(繼起的) 서술(敍述)의 한계(限界)에서 오는 방법적(方法的)단순화(單純化)임을 자각하는 여유(餘裕)가 있으면 좋지만. 그런 허구(虛構)의 조작(造作)을 실체화(實體化)하려들면 교조주의(敎條主義)가 된다는 것 / 예술(藝術)은 현대문명(現代文明)에서 단일(單一)한 양식(樣式)을 가질 수 없다는 것 / 의식 전범(典範)을 통일(統一)하려 할 것이 아니라 분파(分派)가 택한 전범(典範) 각기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나 감상(感傷)을 극복(克服)했는가를 가지고 신심(信心)을 저울질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 / 문학(文學)이 그 가운데서도 특별한 장벽(障壁)을 가진 것은 인정(認定)해야 한다는 것 / 감각(感覺) 예술(藝術)과 같은 순수(純粹)한 음계(音階)의 설정(設定)이 불가능(不可能)하다는 것 / 문학(文學)의 음계(音階)는 복합(複合) 음계(音階)로서 풍속(風俗)의 지시(指示)를 포함(包含)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 그러나 예술(藝術)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면 다른 예술(藝術)과 다름이 있을 수 없다는 것 / 아마 시심(詩心)의 높이가 그 가늠대일 것이 라는 것 / 명월(明月)이나 오동(梧桐)나무에는 발정(發情)하는 시심(詩心)이 人事의 正邪에는 發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원리(原理)의 일관성(一貫性)에 모순(矛盾)된다는 것 / 현실(現實)의 어느 당파(黨派)를 지지(支持)할 것이냐 하는 입장(立場)을 버리고 가장 높은 시심(詩心)의 영역(領域)에서 추(醜)한 것은 무차별(無差別) 사격(射擊)할 것 / 우군(友軍)의 행동(行動) 한계선(限界線)이라고 해서 사격(射擊)을 연신(延伸)하지 말고 시심(詩心)이 허락할 수 없는 지대(地帶)에는 융단(絨緞) 폭격(爆擊)을 가(加)하여 이기심(利己心)에 대한 살상(殺傷) 지역(地域)을 조형(造型)할 것 / 그렇게 해서 시(詩)가 인사(人事)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인사(人事)가 시(詩)를 두려워하게 할 것 / 읍참마속(泣斬馬謖)에서 읍(泣)도 버리지 말고 참(斬)도 버리지 말 것 / 읍(泣)이냐 참(斬)이냐 하는 허위(虛僞)의 2항대립의 악순환(惡循環)에서 벗어 날 것 / 읍(泣)은 조강지처(糟糠之妻)에게 참(斬)은 참(斬)망나니수(手)에게 돌리고 공명(孔明)은 읍참(泣斬)할 뿐이라는 것 / 예술은 인간이다, 라는 까닭에서가 아니고 예술이라는 칼을 들었으면 칼이 가자는 대로 가야 한다는 것 / 그런 장인(丈人) 의식(意識)/인연(因緣)으로 흐린 자기(自己)의 이해타산(利害打算)의 눈을 스스로 안맹(眼盲)케 하여 실명(失明)을 얻은 다음 시(詩)의 물레를 돌릴 것 / 눈먼 손이 뽑은 시(詩)의 명주실을 풀리는 대로 버려둘 것 / 그러면 카이자의 몫은 카이라가 가져갈 것이고 하느님의 몫은 하느님이, 이방인(異邦人)들과 단군 열두 지파(支派)도 제 길이만큼 잘라갈 것이라는 것 / 그런 물레질.
구보씨는 5시 반에 성북동에 있는 -유정-이라는 술집에 닿았다. 거기가 -성남동 까치-출판기념회 자리였다. 여느 술집과 마찬가지로, 가로가 긴 아크릴간판을 단 한옥이었다. 이 집의 위치를 초청장 뒤에 그린 지도를 보고 찾아왔던 것인데 쉽게 찾았다. 쉽게 못 찾을 만하면 하긴 술집도 아닐 것이었다, 벌써 와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구보씨는 앉은 사람 모두에 대하여 막연히 인사하고 빈 자리에 가 앉았다. 대청마루와 건넌방 사이의 문을 걷어내고 상을 여러 개 붙여 놓은 자리에 앉아서 살펴보니, 둘러앉은 얼굴은 모두 선배들이었다. 사람들이 이어 들어왔다. 새로 온 사람들이 자리에 앉다가 말고 김광섭씨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을 보고서야 구보씨는 김광섭씨가 아까부터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공교롭게도 그가 앉은 줄 몇 사람 건너에 앉아 있어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인사하러 가야 했으나 이미 사람이 들어찬 자리가 몹시 좁아져 있었으므로 그는 그만뒀다.
상을 둘러앉았다기보다 상과 뒷 미닫이 사이에 끼어 앉았다는 것이 마땅할 만큼 좁았던 것이다. 그 있지도 않은 등과 뒷 미닫이 사이를 음식을 든 술치는 여자들이 다니면서 시중을 들었다. 구보씨는 한 옆에 시인 윤석경씨, 다른 쪽에 시인 한유학씨 사이에 끼어 앓았는데 사람들이 연이어 들어서고 자리는 그때마다 좁아졌다. 구보씨는 가끔 몸을 돌릴 때마다 옆으로 김광섭씨를 바라보았다. 김광섭씨는 머리가 아주 백발이었고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은 딴 사람 같았다, 술이 돌아가고 농담이 돌아가고 하는 사이에도 그의 목소리는 한번도 들리지 않았다. 이만한 부드러운 모임에도 간신히 견디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술슬 권하지도 않았다. 그것도 보통 술자리와의 대조를 뚜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김광섭씨가 건강하던 때 모습을 떠올렸다. 느리고 완강한 데가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언젠가 명동의 바아 -다비-에 데리고 가주던 일을 구보는 떠올렸다. 웬일인지 그때 그 바아의 풍경이며 마담의 얼굴이 너무 확실하게 떠올랐다. 그때 마담은 김광섭씨더러 무정한 애인이라고 하면서 외상 술 마실 때만 오느냐고 했다. 김광섭씨는 외상이 아니라 공짜라고 하였다. 마담은 공짜라도 좋으니 매일 오라고 하였다. 그때 구보씨는 저만한 시인이 되면 명동의 이만한 바아의 마담을 애인으로 가지고 있는 법이고 술도 여자 쪽에서 대는 것이구나 하고 몹시 감동했다. 십 년 전 구보씨가 처음 소설을 쓰고 김광섭씨가 내는 잡지에 실었을 때의 일이었다. 구보씨는 술집에서의 그 흔한 농담의 정석(定石)을 실전(實戰)처럼 생각한 자기의 그때 젊음보다. 그런 자기를 데리고 술집에 가준 씨의 젊음을 생자하고 조금 슬퍼졌다. 씨의 지금 얼굴은 사실은 없어도 좋은 여러 선(線)들을 지우개로 모두 지워버린 다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는 -성남동 까치-에 실린 시들을 생각하였다. 그 시들에게는 말로만 듣던, 삶의 겨울의 그 무서움이 있었다. 닳아빠지도록 징징 운 적이 없는 사람이 나 정말 봤소. 하고 보고하는 그 삶의 겨울의 얼굴이 있었다. - 옆에 앉았던 한유학씨는 거의 구보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구보는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슬기롭게도 일찌감치 선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나온 이철봉씨가 마담을 데리고 무슨 얘기를 하고 앉아 있었다.
「여기가 편하군.」
「응, 성황이어서 잘됐어,」
구보씨는 이철봉씨가 앉아 있는 아랫목 벽장 아래 가 앉았다. 그 옆으로 사진사가 둘, 보자기를 씌운 사진기를 옆에 세워놓고 앉아 있다. 대청과 방은 미닫이로 막혀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이봐. 」
하고 이철봉씨가 마담에게 말했다.
「여기도 한 상 차려와.」
「곧 가져옵니다. 미안합니다.」
「어딜 가는 거야.」
「네, 다른 방에 좀.」
「다른 방?」
「네.」
「돌려보내, 돌려보내.」
「어머. 거기도 손님인데.」
「손님? 아뭏든 여기 발리 가져와, 자리가 없어 나앉았는데 술까지 나앉으란 말야?」
작은 자개 상에 술과 생선 구운 것이 얹혀서 왔다.
「이거 뭐 행랑아범 상 같잖아?」
「아이, 무슨 말씀을.」
「회계는 내가 하는 거야.」
하고 이철봉씨는 마담의 어깨를 안았다.
「응, 돈은 이 양반이 가졌어.」
하고 구보씨도 무책임한 거짓말을 했다. 마담은 그래서만도 아니고 이철봉씨의 평론가다운 고상한 풍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웃몸을 맡기고 가만히 있었다.
「마담 몇 살이야.」
하고 철봉씨가 물었다,
「맞혀보세요.」
「글쎄.」
하고 철봉씨는 나이 맞혀보는 건 양보해도 좋다는 듯이 구보씨를 돌아보며 마담을 좀더 겨드랑 밑에 집어넣었다. 구보씨는 마담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기도 한 얼굴이 있었다. 그것은 얼굴을 이루는 많은 선(線)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서 제 자리에서 잠간씩 망설이고 있는 듯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눈을 가운데로 뺨은 부분이 비옥해 보였다. 눈의 흰자위가 성(性))의 비겟살처럼 살쪄 보였다.
「글쎄.」
하고 구보씨가 모처럼의 권리를 낭비해버렸다. 그러자,
「서른다섯.」
하는 철봉씨.
「꼭 맞혔어요.」
마담은 서른다섯 살을 철봉씨가 주기나 한 것처럼 반가와했다. 그것으로 봐서 몇 살 더 먹었을 것이라고 구보씨는 생각했다
「서른 살쯤이 아닐까?」
「그러면 좋게요.」
하고 마담은 말하면서 일어서려고 했다.
「어딜 가는 거야.」
「좀 나가 봐야죠.」
하고 마담이 대청마루 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애들이 있잖아?」
철봉씨가 고렇게 말했으나 마담은 잠깐만이라고 손가락 하나를 들어 표시를 하면서 일어서 나갔다. 대청마루에서는 돌아가면서 축사를 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까치><까치>하는 소리가 말 가운데서 자주 들렸다.
「늙었지?」
하고 철봉씨가 말했다.
「응, 머리가 다 세었다.」
「머 리는 갑자기 세는 것이라는군.」
「응.」
「<성남동 까치>좋지?」
「응.」
<성남동 까치>는 이번에 나온 시집의 이름이자 그 속에 실린 한 편의 이름이었다. 김광섭씨의 앓기 전의 시는 존 단을 연상케 하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의 기사(騎士)>가 투구를 쓰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기생방 병풍 냄새 같은 것이라든지. 청상(靑孀)의 안스러움 같은 것이 대체로 주류를 이룬 시단에서 그의 시풍은 쇳소리가 울리는 특이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 그는 그 투구를 벗고 있었다. 그리고 구보가 놀란 것은 투구를 벗은 그의 머리가 그 사이에 세어 있었다 는 사실이었다, 그 투구 안에서 -는 다른 싸움을 싸웠던 모양이었다. 모은 사람들이, 그가 투병하는 동안 그에게 씌우고 있었던 옛날의 그의 시풍의 투구를 고는 스스로 벗고, 지금도 그러리라고 생각해온 그와는 너무 다른 얼굴을 드러냈던 것이다. 투구보다는 더 튼튼한, 그러나 가벼운 싸움을 치른 그의 체력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함과 무게 사이의 비례관계를 벗어나 그런 옷을 입고 그는 서 있었다. 아기 저기 앉아 있다.
「당신들 여기 있었군.」
사회를 보고 있는 시인 김정문씨가 들어서면서 말했다.
「자리를 내 드리느라구.」
하고 구보가 말했다.
「자, 당신들두 한 마디 하시오.」
하고 그는 구보씨와 철봉씨를 두 마리의 까치 새끼처럼 손바닥으로 몰아가지고 대청으로 나왔다.
구보는 이런 얘기를 했다.
-김광섭 선생의 -성남동 까치-는 60년대의 끝에 와서 문득 우리 문학의 하늘에 올린 길한 소리였습니다. 우리는 헤매는 한국시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국시는. 거짓을 버린다는 이름으로, 우리가 시라고 생각하던 옷을 하나씩 벗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시가 저 옛 얘기의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기는 원치 않습니다. 임금님은 임금님다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벌거숭이냐, 옷이냐 하는 양자택일적인 물음이 사실상 감상(感傷)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선택은 벌거숭이와 옷 사이에 있지 않고, 어떤 옷과 어떤 옷 사이에 있습니다. -성남동 까치-는 시에게 위엄과 점잖음의 옷을 되찾아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옷은 번쩍거리지도 절그럭거리지도 않는 - 목숨처럼 자유무애하고 자유인답게 점잖은 그런 옷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러나 김 선생님의 옷을 뺏어 입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뺏어지지도 않습니다. 이 시인의 싸움을 우리도 싸우는 것, 그렇게 해서 우리도 자유인이 되는 일이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건강을 빌어 마지 않습니다.
이철봉씨는 보다 간단한 그러나 정에 넘친 연설을 하고 나서, 구보씨와 철봉씨는 다시 별실로 왔다. 그때 구보씨는 자기가 각설이 타령을 하고 나오는 거지처럼 느껴졌다. 그럴싸한 일이었다. 음식을 한 상 받고 앉은 대감들 앞에서 각설이 타령을 한마디하고 별실에 물러나와 한 상 얻어먹는 거지같다고 생각하고 구보씨는 슬퍼졌다. 이번에는 거지가 됐군, 하고 부보씨는 생각했다.
대감들 방에서는 노래가 시작됐다. 이제 남은 일은 기념사진을 찍는 일뿐이었다.
「이형은 집이 어디요?」
하고 구보가 물었다.
「여기서 가까와.」
「자기 집이지?」
「응.」
「용한데.」
「오막살이 야 오막살이.」
「아무튼.」
「애기 둘이랬지?」
「둘이야.」
「더 낳을 생각인가?」
「응 길러보니 하나쯤 더 있어도 좋을 것도 같고.」
「둘이면 되잖을까?」
「남의 걱정 말조. 자넨 뭐야?」
「응 나야 뭐.」
「뭐라니.」
그들은 내년 PEN대회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이 두 사람의 의견이었다. 자본이건 정치건 국제적인 -빽-이 있어야 하는 세상에, 문학에도 그런 게 있어서 나쁘기까지 야 하겠는가, 하는 점에 그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그것이 과연 -빽-구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의심스럽다는 점에 대해서도.
8시에 기념 촬영을 하고 모임이 끝났다.
구보씨는 버스 정류장에서 혼자 차를 기다렸다. 낮에도 매짠 날씨더니 지금은 어지간히 떨렸다. 한 시인을 축하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에익, 또. 구보씨는 사랑에 굶주린 거지같은 자기 몰골을 생각하고 화가 났다, 벌거숭이 된 내 마음. 오, 거지같은 내 마음. 그는 하늘을 쳐다봤다. 까맣게 갠 하늘에서 벌거숭이의 그 숱한 것들은 그래도 고왔다. 사람도 헐벗으면서도 저럴 수 있다고 잘못 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모한 짓을 하다가 삶의 이 엄동설한에 얼어죽었을까, 하고 구보씨는 생각하였다. 빛나는. 하늘의 그 고운 것들 사이에 놓인 공간이 아름다움이면서 무서움인 것처럼 한 시인을 축하한 사랑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무서움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아저씨.」
누가 옆에 와 선다. 그는 돌아보았다. 머리끝이 쭈뼛했다. 정말 헐벗은 한 여자가 그에게, 밤처럼 캄캄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어쩐 일이었던지, 그 여자의 얼굴에서 벌써 옛날에 갈라진 한 여자를 보았다고 헛갈린 것이다. 그는 백 원 짜리 한 장을 꺼내주었다. 죄인처럼.
「고마와요. 」
그녀가 말했다. 비웃음처럼.
버스가 왔다.
구보씨는 황황히 이십 원 길의 나그네가 되어 밤 속으로 외마디소리처럼 사라져갔다. -
탁. 탁. 탁. 아카시아 가지가 차를 때린다. 좁은 길. 아주 좁은 길. 이런 데서 자동차들은 어떻게 비켜갈까. 어머 그게 무슨 상관야. 나 좀 봐. 아이 어쩜 이럴까. 이런 생각밖에 안나, 내 세상이 끝났는데 왜 이렇게 아무 일도 없담. 왜 이렇게. 왜 이렇게,,,,,, 아아. 텅 비어 있을까.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 모든 것이. 모두가. 모두가. 다. 다. 다. 아이 어쩜 이럴까.
그녀는 창 밖의 가을을 본다.
속이 알차 가는, 부듯하게 익은 철이 자신 있게 유유하게 거기 서 있다. 앓아 있다. 웃고 있다. 개솔린 냄새보다 짙은 송진냄새. 아아 어쩜 이럴까.
고원(高原)의 마루턱에서 차는 멎는다. 네 사람의 손님들은 차를 내려가서 차 머리 쪽으로 간다. 그녀는 맨 뒤 자기 자리에 앉은 채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그늘이 바뀌어 있다. 타고 오던 때와 거꾸로 햇빛이 곧바로 들어온다. 그녀는 놀란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다. 운전사 옆자리 덩그마하게 솟은 기관부 위에 북어 짝이 장작개비처럼 수북이 일려 있다. 허름한 시골 버스다. 마루(?)를 본다. 판자가 들썩한 사이로 자갈이 내려다보인다. 그녀의 구두는 보얗다. 그녀는 웃는다. 어머. 죽으러 가면서도 교태야. 그녀는 웃는다. 구두한테 ? 구두한테야 뭐 어쩔려구. 뭐가. 뭐가? 무슨 말이었드라? 그녀는 깜박 잊어버린다. 무엇을? 무엇을? 무얼 잊어버렸을까, 무얼 잊어버렸는지 알면 잊어버리지 않았게? 그런데 이 사람들이 웬일일까. 일어선다. 차 밖으로 나온다. 그녀는 비로소 와 있는 곳을 안다. 다 트였다. 구불구불 산길. 이 차가 올라온 길이 저기까지 보인다. 아카시아가 많은 길이다. 주욱 올라와서 여기다, 다 트였다, 사방이, 제일 높은 곳. 운동장만한. 클로버. 클로버. 클로버,,,,,,
클로버 보료 위에 뭇 들꽃들이 꽃밭을 만들고 있다. 거의 완전한 원형의 산마루. 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높은 가을 구름이.
부르릉. 돌아본다. 운전사는 자리에 올라앉아 핸들을 잡고 비죽이 창 밖으로 목을 내밀고, 손님들은 밭 갈다 넘어진 황소 들여다보듯 엔진 주위에 몰려 서 있다.
「거기를 잘 봐요. 」
운전사가 밖에다 대고 소리친다. 부르릉 부릉.
그녀는 돌아서서 들꽃 속으로 절어 들어간다. 네 잎사귀의 클로버. 경망스런. 정말 경망스런 사랑의 장난. 한 푼 짜리 사랑의 장난. 한푼 두 푼 모아서 목돈을 만들려던 것일까. 손이 퍼렇게 되게 클로버를 따고 그는 말짱한 손을 뒷짐지고 웃는다. 보고만 있다. 나는 그의 머리며 가슴 호주머니며 단추 구멍에 꽂아 주고. 저요? 제 행운은 당신이 맡아 가지고 계시잖아요. 싫어. 생각하기 싫어. 생각하기 싫어. 생각하기. 깨끗한 손으로 물러설 궁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 내 눈에는. 장님이 된 내 눈에는. 싫어. 싫어. 다. 모두. 그럴 수 없어. 그럴 리가. 고럴 리가 없어.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그녀는 클로버를 밟고 걸어간다. 끝이다.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어머, 안 오셨어요?」
이러저러하게 궁리를 했던 말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받아버린다.
「엇갈리신 모양이구만.」
늙은 바깥주인은 혀를 끌끌 찬다.
「어쩌나.」
깜빡, 거짓말이 참말 같다. 울고 싶다.
「어쩌나.」
어디 딴 남이, 호숫가의 산장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 때문에,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를 듣는다. 정말 어쩌나. 아아 정말 어쩌나.
「허허 참. 아무튼,,,,,,」
들어가자고 주인은 앞장선사. 뒤뜰 정자에 가서 앉는다. 노인은 마누라를 부르면서 부엌 쪽으로 돌아간다. 노인의 모습이 칡넝쿨 저쪽으로 돌아가자 그녀의 고개는 고리가 열린 기계처럼 돌아간다.
거기 호수가 있다.
호수에는 금(金)의 화살들이 수없이 꽂혀 있다. 해질 무렵의 햇빛이 호수에 기름처럼 흘러 있고 물가에서부터 시작하여 훨씬 안쪽까지 자라 있는 갈대들은 그렇게 보인다.
늙은 부부가 나오는 기척에 그녀는 휘딱 고개를 돌린다. 호수를 보고 있는 자기를 들키면 그녀의 마음이 들킬 것처럼 느껴져서.
늙은 마나님 앞에서 그녀는 또 한번 정말이고 싶은 거짓말을 다시 한번 걱정해보아야 했다. 철이 지나서 손님이 없다 한다. 기찻길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늘 그럴 것이라고 한다. 오기로 했으면 어련히 오겠느냐고 말한다. 냄새가 독특한 산차(山茶)를 권한다.
노파와 둘이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그 인자하게 늙은 얼굴의 주름이 점점 분간차기 어려워지고 끝내 말소리만 남는다. 잠깐 사이에 해가 넘어가 버린다. 지난 여름에 정이 든 늙은 부부는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오질 않는 것이 자기들 탓이나 되는 젓처럼 미안해한다.
포마드 통에 심지를 단 기름불이 밝히는 밥상에 둘러앉아서 식전 기도를 드리면서 노인들은 주님의 어린 딸이 먼길을 무사히 닿은 것을 감사한다. 그리고 그녀와 여기서 만나기로 한 청년이 내일 차편으로 무사히 오게 되기를 간절히 빈다. 그녀는 끝내 울음소리를 입밖에 내고야 만다.
「이러면 안돼요. 하룻밤만 꾹 참으면 될 걸 가지구서, 자자, 몸에 해로와요. 이럴 땔수록 끼니를 제대루 해야지.」
모두 산나물뿐인데 늙은이가 호수에서 잡았다는 붕어도 올라 있다. 그녀는 속이 올라왔다. 문득 보인다. 어두운 호수의 밑바닥에 누워 있는 자기의 입으로 드나들고 있는 고기떼들이. 그녀는 더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늙은이들은 말리지 않는다.
작년과 같은 그 방에서 그녀는 호수를 내다본다. 원래 숙박은 받지 않고 철에 찾아오는 인근의 소풍객들에게 차와 식사를 대접하는 집이라 크지도 않다. 혼지 있고 싶은 마음을 알고 있는지 주인 부부는 잠자리를 보아주고는 자기들 방에 돌아가서 찬송가를 부른다. 많이 불리는 곡이어서 귀에 익은 그 노래를 그들은 조용히 같이 불렀던 것이다. 이 방에서 지난 여름에. 아아. 그러고도 이렇게 될 수 있다니. 우리는 호수에 나갔다. 작은 배를 타고 저어나갔다. 그는 물론 노 젓는 것이 서툴다. 기우뚱기우뚱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얼마를 젓다가 돌아보면 우리 배는 그저 그만한 언저리를 빙빙 돌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 배가 남겨놓은 물 이랑이 달빛 속에서 또아리를 풀어 가는 뱀처럼 구불거려 보인다.
나는 소리 없이 일어서서 물가로 내려간다. 노인들의 노래 소리도 그만하게 들릴 만큼 가깝다.
우리는 갈대 사이로 배를 저어간다. 갈대가 있는 데는 빠져가기가 더 어렵다.
달빛은 갈대 사이로 쏟아져 내린다. 가냘픈 창대처럼 갈대는 달빛을 튕겨내고 물 위에 그만한 수의 그림자를 눕여 놓고 있다. 서 있는 은빛의 창대들을 헤치고 물 위에 쓰러진 그림자를 깨뜨리면서 배를 몰아간다, 처벅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처벅처벅거리면서. 갈대가 뱃전에 부딪치는 탁탁탁 하는 소리를 내면서. 단단하면서 약간 물기 있는 소리. 노가 갈대를 헤치는 팔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한바퀴 들리는 소리 사이에서 뱃전에 부딪치는 갈대소리는 한결 잦다. 사그락 사그락 할 때는 스칠 때. 지금 그 소리가 들린다.
지금도 배 세 척이 물가에 매여 있지만 저기 보인다. 우리가 탄 배가 갈대 사이를 지나는 것이. 훨씬 들어간 곳이지만 배 가는 소리도 들린다. 탁탁탁 부딪치는 소리만이 아니고 은밀한 사그락 사그락 소리까지도. 자기 귓속의 귀지가 무너앉는 소리처럼 가깝고 가깝게.
좋지?
좋아요, 참, 좋아요.
내 친구가 여기 한번 가보라는 거야. 전혀 알려지지 않은 명승지라는 거야.
그분도 이렇게 했나요 ?
그건 말 안 하더군.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린데 어때 ?
그런 말 싫어요.
응? 내가 나빴어, 화났어 ?
처벅 처벅. 타 탁 탁. 그 사이로 살그락거리는 숨소리를 그는 자기 입술로 막는다.
사랑해.
사랑해요.
영원히.
영원히.
어떻게 사랑하면 다 사랑할 수 있을까?
다 사랑하는 것 싫어요.
-무-슨 소리지?
다 사랑하면 어떡허게요?
우리 죽을까?
어머 왜 죽어?
죽기가 무서워?
당신하고 살고 싶어요.
살아야지.
이담에 죽으면 같이 파묻혀요 네?
왜 파묻히는 소릴---
어머 자기는?
그들은 웃는다. 서투른 노 끝에서 빛나는 물방울이 튀어나간다.
인제 그만 나가요.
얼마 오지도 않았어.
그래도 많이 왔어요.
난 헤엄 못하니까 당신만 믿어.
저도 못해요.
온 누리에 은빛이 넘쳐흘러서 서먹할 만큼한 크낙한 행복. 그들은 다시 노를 저어 그녀의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끝에서 끝이 보이는 호순데 그들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기슭에도 닿지 않았는데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갈대 숲에서 그들의 배가 쑥 나온다. 부인이다. 그의 부인이다. 아아. 나쁜, 나쁜 사람. 그녀는 한발 물가로 다가선다. 사라졌다. 그들이 타고 있던 배는 어느 기슭에도 없는데. 갈대 숲은 아무 것도 감춘 것이 없는데. 그의 목소리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 그 밤에 부르던 노래. 나쁜 나쁜 사람. 거짓의 호수로 나를 부른 사람. 그녀는 한 발 더 다가섰다. 어느 기슭에도 배는 없고 호수로 부르는 젊은 노래 소리 대신에 늙은 목소리들이 신(神)을 부르고 있는 평화스런 소리를 등뒤에 듣는다.
노인들 방에 가 앉는다. 대단찮은 가구들이 모두가 잘 닦아놓은 곱돌 솥처럼 참하다. 시렁에 얹어놓은 산차 꾸러미가 언뜻 보기에 시래기 널어놓은 모습이다. 그 밑에서 노인들은 산차 같은 이야기를, 시래기 같은 이 야기를 들려준다. 눈으로 듣는다. 고개로 듣는다. 제 속의 환상을 보면서 제 슬픔에 혼자 주억거리면 노인들에게는 고즈넉한 말동무가 되어준 것이 된다. 그래서 산차 같은 이야기고 시래기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도 자리를 뜨고 싶지는 않다. 생명이 멍해지고 노인들의 얘기꼬리도 놓치면 벌레소리가 몰려온다. 포마드 통에 심지를 단 기름불은 창호지를 적시며 밝혀주는 달빛보다 훨씬 못하다. 창호지 너머로 그녀에게는 보인다. 은빛의 갈대들이 창창하게 꽂힌 호수가. 노인들은 그녀가 참하다고 한다. 덕이 있어서 남편 복이 있겠다고 한다. 달빛이 번쩍이는 호수에 그들이 탄 배가 미끄러져 간다. 두 사람이 탔는데 세 사람이다. 얼굴이 셋인데 몸은 둘이고 한 몸뚱이에 얼굴은 하나씩이다. 갈대가 배를 때린다.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참한 청년이라고 노인들은 말한다. 요즈음 세상에는 시골 젊은이들이라고 참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내일은 꼭 온다고 한다. 그러면 교회에 나가보자고 한다. 건너 마을에 있는 교회에 셋이서 가자고 한다. 셋이 탄 배에 두 사람이 앉아서 그녀를 도고 웃는다. 어쩜. 그녀는 노엽다. 노인은 자기 말이 통해서 즐겁다. 노인은 아들 셋을 앗아간 전쟁이 노여웁다. 늙은 마나님은 성경책을 편다. 치마꼬리를 눈에 가져가는 형국으로 성경책을 편다. 늙은 여인도 그녀의 호수를 본다. 그녀의 호수에서는 주님께서 물위를 걸어가신다. 그녀는 알릴락말락 몸을 흔들면서 주님을 따라 중얼중얼 호수를 건너간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온다. 앉지 않고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다. 벌레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오랫동안 서 있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그렇게 아득하게 벌레소리에 잠겨 있다가 다시 노인들에게로 간다, 혼자서 자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노인들은 그녀를 아랫목에 눕히고 자기들은 웃목에 밤송이처럼 오그라 붙는다. 기름불이 꺼지고 방안에 싯부연 달빛이 가득 찬다.
한 해를 호수에서 살았다. 어디를 가나 호수가 있었다. 무슨 일을 하나 호수가 있었다. 그녀의 스물네 시간에 호수는 그녀의 속에 있고, 밖에 있고, 거기서 그들은 늘 배를 타는 것이었다. 호수에서의 삶. 사그락 대는 갈대 숲의 목소리 속에서 도시의 해가 뜨고, 호수에 어울리지 않는 도시의 부분들은 호숫가에서 산등성이에서 스르륵 움직이던 반딧불보다도 못했다.
그녀는 창문으로 내다본다.
밤의 호수. 묵화처럼 둘러선 산 그림자 속으로 밖으로 차단한 여린 빛의 티끌들이 스르륵스르륵 떠돈다. 그것들은-반딧불들은 홀수 위에도 흐른다, 갈대 숲 사이사이로 인불처럼 흐르고 줄기에 매어달린다. 깜박 내려앉은 태양을 미처 따르지 못하고 달은 뜨기 전 한결 어두운 하늘에 은하수가 흐른다. 별들은 호수로 떨어져 내려와 물 속에 잠기고 갈대 숲 사이사이로 인불처럼 흐르고 묵화처럼 둘러선 산 그림자 속에서 밖에서 차단한 여린 빛과 티끌이 되어 스르륵 스르륵 떠돈다.
이윽고 달이 뜬다. 호수는 빛의 거울이 된다.
갈대 사이로 배가 지나간다. 밑바닥에 문둥이가 누워 있고 여자가 곁에 앉아서 남자의 허물어진 이마를 짚고 있다. 문둥이 얼굴에서는 여기저기 은빛의 고름이 배어 나온다. 여자는 거기다 입맞추고 핥아먹는다. 여자가 문둥이가 된다. 달처럼 환한 남자가 누워 있고, 얼굴이 허물어진 여자가 곁에 앉아 있다. 여자는 세 손가락만 남은 손으로 근심스럽게 남자의 이마를 짚는다. 남자는 몸서리치며 일어난다. 가만있어야 해요, 하고 여자가 말한다. 나를 만지지 말아. 남자가 그렇게 말한다. 제가 만져야 나아요. 나를 속였지, 하고 남자는 말한다, 억설을 한다고, 그 자리에-없는 내가 발을 동동 구른다. 당신이 그래도 좋다고 하지 않았어요? 하고 여자는 말한다. 나 아닌 패가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하고 있다, 얼굴이 왜 그렇게 됐어 ? 하고 남자는 말한다. 어디서 그렇게 많이 고름을 빨아왔어, 하고 남자는 말한다. 내게서 ? 내게 어디 고름이 있어. 여기 있잖아요 ? 그녀는 은빛 나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허물어진 얼굴에 흐르는 고름을 찍어 보인다. 여기 있잖아요 ? 하고 여자는 말한다. 네가 나를 망쳤어, 남편이 있으면서 나를 유혹했지? 하고 남자가 말한다. 아아 거짓말을. 당신도 아내가 있으면서, 하고 웃는다. 그것이 정말인데. 내 남편은 저기 있어요. 여자는 은빛의 손가락을 물 속에 잠그면서 가리킨다. 호수의 밑바닥에 달 같은 남자가 누워 있다. 손짓한다. 저이가 불러요. 가야 해요. 그녀는 물 속으로 내려간다. 남자와 여자가 탄 배는 어디론지 가버렸다, 어느 언덕에도 닿지 않고 그들의 배는 먼 항구로 가버렸다. 그녀는 그들이 웃으며 가는 것을 본다
호숫가에 매어놓은 세 척의 배는 그때처럼 그녀의 눈 아래 있고, 그런데도 내 세상은 끝난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한밤내 자지 못했는데도 머릿속이 은종이처럼 맑다. 늙은 주인은 그녀와 마주앉아 호수를 둘러싼 산을 가리킨다. 한가한 틈이면 마누라와 둘이 여기 앉아서 서로 무덤자리를 짚어본다고 한다. 그들의 의견은 아직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한다. 저기 눈에 띄는 소나무 아래가 좋지 않느냐고 한다. 할아버지는 오래 사신다고 말한다. 늙은 주인은 그래도 여기저기 산비탈을 가리켜 보이면서 그들이 오래 살 집터를 이야기한다. 소나무 저편이 차(茶)밭이라 한다. 작년에 그들은 어찌어찌 하다가 가보지 못하고 만 곳이고. 차 이야기가 나온다, 차는 까다로운 식물이라 한다. 자리가 바뀌면 여간해서 살지 못한다고. 그래서 혼인 예식에 다례식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 지아비 한 지어미를 섬겨 해로 백년하자는 뜻이라 한다. 서로를 떠나서 서로의 삶은 없으리라는 정절의 맹세라 한다. 가냘픈 나무 포기보다 못한 사람의 이야기가 슬프다. 집에 데리고 가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가족을 알자고 하지도 않았다. 약혼식을 하자고도 않았다. 도장 찍고 주고받는 것이 싫어서. 세상을 얕보면서 살리라 했다. 속고 속이는 험한 꼴은 유행가에나 있는 것이었다. 뭐 애써 그리 생각한 것도 아니겠다. 사랑하기에 태일 바빠서. 당신하고 죽고 싶지만 내 몸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고. 나를 남편이라 애비라 부르는 것들이 나를 묶는다고. 땅을 옮겨 앉아도 안 죽겠노라는 사람. 나무에 목숨을 걸었던 내 바보.
높은 구름이 하늘에 비껴 있고 호수는 고요하게 빛난다. 허깨비들은 다 어디 갔는가. 그 추한 것들은. 어지러이 뛰던 그것들은. 노인이 일어서든 기척에 퍼뜩 다른 정신으로 돌아온다.
늙은 부부는 그녀를 두고 건너 마을 교회로 갔다.
빈집에서 서성거리다가 정자에 와 앉는다. 누렁이가 곁에 와 엎드린다. 털이 수북한 늙은 개다. 같이 갔으면 좋겠지만 그 사이 사람이 올까봐 집에 있으라고 늙은 부부는 말했다, 사람이 온다고. 정말 올 것 같은 환상에 가슴이 미어진다.
그녀가 찾아온 시간에 그 사람도 불현듯 달려오고 싶은 마음이 솟기를 바라는 마음. 방에 가서 시계를 본다. 정말 약속한 것처럼 사무친다. 반딧불보다 약한 우연을 바라는 마음이 해바퀴만한 환상이 된다.
호수의 겉에서 반짝이는 햇빛 알알들을 낟알 줍듯 헤아리면서 기다린다. 그 숱한 낟알을 다 주워도 사람은 오지 않는다.
뒤뜰에 가서 닭 모이를 준다,
그늘에 널어놓은 산차를 뒤적인다.
부엌에 가본다. 반지르르한 솥뚜껑을 들어본다. 찐 고구마, 찬밥이 들어 있다. 뚜겅을 닫는다. 찬장을 열어본다. 고사리 접시가 하나, 도라지 무친 것이 하나, 이름 모를 산나물이 두어가지 더 있고, 말짱하게 씻은 그릇들. 어디 한군데 손댈 데가 없다.
정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산에 오른다. 나무 같은 것들이 서 있고, 풀 같은 것들이 자라 있달 뿐 아랑곳없는 마음이 산을 오른다. 벌레 소리가 짜증스럽고 맨 종아리는 쓸데없이 따끔거린다.
내려와 버린다.
도로 정자로 온다. 방으로 가서 시계를 본다. 물가로 내려간다. 누렁이가 따라온다. 호숫가에는 세 척의 배가 매어져 있다. 닻줄을 푼다. 올라간다. 기우뚱하면서 그녀든 배 가운데 선다. 노가 없다. 다시 내려서 뒤꼍으로 간다. 노 한 개를 들어다 배에 얹는다. 누렁이가 의아스럽게 쳐다본다. 하나를 마저 가져다가 싣고 탄다. 노 하나를 들어 물밑을 민다. 천천히 모로 틀어지면서 배가 쑥 나간다. 두 팔에 힘을 주어 노질을 해본다. 안 나간다. 씨애질을 한다. 누렁이가 짖는다. 어느새 누렁이는 발을 반쯤 잠그고 물 속으로 들어와 있는데 그녀의 배는 누렁이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은 나와 있다. 누렁이는 또 짖는다. 그녀는 또 젓는다. 앞으로 나가는 대신에 호수는 그녀의 배를 모로 핑그르 돌려놓는다, 저만큼 앞에 물 속에 잠긴 구름의 머리까지 아무리 애를 써도 닿지 못한다.
갈대숲 사이에서 배가 나온다. 배에 탄 두 사람의 남녀는 얼굴이 허물어진 그 사람이다. 그들은 칼을 들고 그녀 쪽으로 쏜살같이 저어온다. 그녀는 죽을 힘으로 달아나는데 물에 잠긴 구름의 머리는 아직 그만하고 쏜살같이 칼 든 사람들은 고만한 데서 그만하게 그대로 저어온다.
저 사람들이 무섭다. 무서워. 이 호수에서 발리 빠져나가야지. 그녀는 살고 싶다. 배는 자꾸 맴을 돌고 팔은 이제 노처럼 뻣뻣하다.' 안되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배로 도망하기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허물어진 사람들이 칼을 높이 든다. 창던지기 선수처럼. 그녀는 결심한다. 호수를 떠나기로. 그이도 없는 호수. 자기도 없는 호수. 허깨비들이 사는 호수에서 잔해를 살아온 호수. 영원히 살아야 할 호수. 떠나고 싶지 않은 호수. 그래도 떠나는 길밖에 없다. 그녀는 노를 버리고 뱃전을 찬다. 물위를 달려간다, 물에 잠긴 구름의 머리를 깨뜨리면서 달려간다. 울면서. 호수여 안녕.
빈배를 향해 짖으면서 누렁이가 물가를 따라 달려간다.
느릅 나무가 있는 풍경(風景)
-최인훈
1969년이 다 가는, 동지 달 그믐께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아침, 소설가 구보씨는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는 참에 그의 머릿속에 무엇인가 두루마리 같은 것이 두르르 펼쳐졌다가 곧 사라졌다. 구보씨는 그것을 곧 알아보았다, 그것은 오늘 하루 그가 치러야 할 일과였다. 다른 누구도 알아보랄 것 없고 구보씨만 알면 그만이었던 만큼 그 두루마리는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졌다. 구보씨는 잠에서 깬 다음에도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짹짹짹 하고 까치가 운다, 침대에서 서너 걸음 떨어진 창문 밖에서 이 아파트의 잔디밭에 몇 그루 심어놓은 오동나무의, 지금은 잎 떨어진 가지 끝에 앉아서 목청이 울릴 때마다 꼬리를 까딱까딱하고 있을 고 새의 모습을 구보씨는 떠올렸다. 그러자 역시 늘 그런 것처럼 구보씨는 서글퍼졌다. 구보씨는 대단히 과학적 인 소설가였는데도 아침에 우는 까치소리에는 매우 미신적이었다. 구보씨는 시골에서 자란 것도 아닌 자기가 그와 같은 토속(土俗)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쩐 일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서글펐던 마음은 사라지고 말았다. 늘 이렇단 말이 야, 하고 구보씨는 다른 모양의 서글픔을 느꼈다. 까치소리가 서글프다는 것은 이런 뜻이었다.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있다고 한다.
구보씨는 까치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계적으로, 언제나, 틀림없이, 그 생각이 떠오른다. 떠오른다기보다 절로 그렇게 된다. 그 느낌은 구보씨의 어떤 사상보다도 뚜렷하다. 자기가 정말 믿고 있는 것이란 까치소리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하는 감상적인 생각을 그때마다 하는데, 영락없이 그러면 구보씨는 가슴인가 머릿속인가 어느 한군데에 까치 알만한 구멍이 뽀곡 뚫리면서 그 사이로 송진 같은 싸아한 슬픔이 풍겨 나오는 것을 맡는 것이었다, 이런 감상을 생활에 그대로 옮기려고 할 만큼 구보씨는 젊지도 않고, 그렇게까지 비과학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그 슬픔은 그저 그만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별 탈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만한 미신까지도 캐어내 보면서 내 속의 토속은. 하고야 마는 또 한 사람의 구보씨의 차가운 마음이 다른 한 사람의 구보씨를 슬프게 한 것이었다. 벌거숭이 된 내 마음, 진실이란 병에 걸려 벌거숭이 된 내 마음, 하고 구보씨는 중얼거렸다. 그만하자. 구보씨는 오늘 하루에 기다리고 있는 많은 일을 생각하고, 아침의 이때를 더는 까다로운 생각의 놀이를 위해 쓰지는 말기로 마음먹었다. 3.는 침대 머리에 붙은 시렁 위에서 청자갑을 집어서 한대를 피워 물었다. 대한민국 전매청은 백원 스무 개비의 그 맛 속에서 아직은 공신력을 지키려는 안간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구보씨는 오 원어치의 연기를 조심스럽게 점검하면서 민주 국가의 시민다운 책임감을 가지고, 오 원어치의 테두리 안에서 전매 행정에 대한 비판을 즐겼다. 별다른 탈이 없었으므로 그는 전매청을 용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지난 밤, 걷어놓지 않은 커튼 사이로 별이 반짝이던 창가에는 이 아침. 미안하리만큼 새파란 하늘이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구보씨는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다. 좋은 눈약을 한방을 떨어뜨린 다음처럼. 그리고 하느님도 용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자기를 다스리면서 화해(和解)에 가득 찬 마음으로 아침을 맞은 구보씨는 아파트를 나와 버스 정류장에 닿았을 때 이미, 그와 같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하루를 보내기가 힘들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구보씨와 마찬가지로 급히 어디론가 가야 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제쳐놓고 좌석버스란 이름의 입석버스를 타고 수없이 떠났는데도 구보씨는 좀처럼 차를 잡을 수 없었다. 왜 전차를 없애야 했을까, 하고 구보씨는 생각하였다. 대형 전차를 더 늘리는 것이 이 교통난을 푸는 길이 아니었을까, 하고 구보씨는 생각하였다. 또 자동차만 하더라도 택시 대신에 이층버스 같은 것을 만들어 쓴다면 이렇게 거리가 자동차로 곽 차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아니, 전차의 댓수를 자동차의 몇 분지 일만 늘렸더라면 이 버스와 택시는 없어도 됐을 것이다. 그러면 떠들썩한 소리와 매캐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됐을 것이 아닌가. 전차만 해도 평등, 공(公)적인 터 -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 자동차란 것은 남을 밟지 않고선 살지 못한다는 마음보를 가르치는 데 꼭 알맞을 만큼밖에는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다. 자동차는 앓는 이, 불난 데, 싸움터, 짐 싣기, 이런 것에만 쓰면 될 것이 아닌가. 나머지 사람은 모두 전차를 타면 된다, 대통령에서 유치원 어린이까지 전차를 타고 다닌다면 세상살이도 썩 부드러워질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보씨는 더욱 뒤로 처졌다. 마침내 그는 허둥거렸다. 열 시까지 자광 대학에 닿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대학의 문학과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기로 돼 있다. 여기서 자광 대학까지 차로 가면 십 분이면 될 것이었고, 지금 시각은 아홉 시 반이니 아직 늦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다가는 언제가 될지 몰랐다. 그는 택시를 기다리는 줄에 들어섰다. 길게 뻗은 그 줄도 구보씨를 넉넉히 절망시켰지만 그래도 여기는 질서가 있었다. 더구나 택시조차도 어울려 탄다는 그 운전사와 손님 사이의 야합(野合)의 버릇 덕으로 구보씨는 이윽고 시간에 늦지 않고 자광 대학에 닿을 수 있었다. 그는 학보사를 찾아서 이 신문의 주필이며 시인인 친구 오적을 만난다. 오적은 그 자광(慈光)어린 부드러운 얼굴로 그를 맞으면서 바쁠 텐데 와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는 오적과 둘이 마주앉아 전기난로를 쬐면서 친구들 소식이며 문단 얘기를 주고받았다. 오랫동안 만,지 못했지만 곧 어제도 만났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궁금하던 일도 대단치 않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는데 다른 연사 두 사람이 왔다. 시인이며 평론가인 이동기씨와 김관씨다. 시간이 되었으므로 그들은 강당으로 갔다. 강연 장소는 이 대학의 대학 극장이었다. 그것은 약 백 자리 가량의 작은 굿터였다.
김관씨부터 시작했다. 그는 60년대에 나온 신인들의 문학 세계를 솜씨 있게 소개하였다. 60년대. 십 년이 지났으면 이제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를 할 수는 있을 만한 일이었다. 김관씨는 그 자신이 뒷받침한 십 년의 시간을 <감수성의 혁명>, <의식의 의식화>, <자아의 확산> 따위의 구보씨로서는 익히 알 수밖에 없는 말을 써가면서 풀이하고 있었다. 구보씨는 이 자기보다 약간 후배이지만 거의 문단 생활을 같이 시작한 불란서 문학 전공의 비평가를 새삼스레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십 년 전보다는 훨씬 책임 있는 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는 이론적 이상(理想)으로서의 주장과 그와 같은 이상을 옮긴 예로써 그가 옹호한 작가들의 업적 사이의 묘한 거리를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끝냈다.
다음에는 이동기 시인이 했다. 그는 지난 십 년의 한국시가 여러 문학 세대의 연립(聯立))이었다고 말하면서, 자기로서는 그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 양식(樣式)상의 대립과, 양식상의 대립보다 더 포괄적인 세대간의 대립이 구별되어야 하며, 같은 세대간에서의 양식상의 대립은 다른 세대간의 양식상의 동일성보다 더 가까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음이 구보의 차례였다. 구보는 정작. 지난 십 년에 관한 한 앞의 두 사람의 이야기보다 훨씬 다른 어떤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의 환경론의 기본입장을 설명하고 문학의 미학적 구조는 영원 불변하지만 그와 같은 구조에 이르게 하는 매개체인 환경은 바뀌기 때문에 작가는 이 환경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하며, 그 지식 자체는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는 환경에 대한 정보를 익힌 다음에는 그것을 노래로 바꾸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끝맺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이 있었다. 김관씨보다 별로 더 늙게는 보이지 않는 한 학생이 일어났다. 그는 김관씨의 주장 가운데에서 -감수성- 의 내포에 대한 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구보씨에 대해서도 아픈 데를 찔렀다. -감수성-이란 것이 문학의 경우, 순수한 감각의 뜻에만 머물 수는 없고 -윤리-에까지 나가야 된다고 생각되는데 과연 어떤 혁명이 있었단 말인가. 하는 것이었고 그 질문 속에서, 구보씨는 요즈음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있는데, 라고 지나가는 말로 인사를 한 것이었다. 김관씨는 자기는 동시대의 신인들의 문학적 성격을 뚜렷이 하기 위하여 방법적 도식화를 하는 과정에 어쩔 수 없는 과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그 문제는 그들 신인들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구보는 자기에 대한 언급은 대답할 성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가만히 있었다. 구보는 학생들이 일어서서 나가는 사이를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스님 차림을 한 사람이 뜰을 지나간다. 이 학교는 불교 재단이 움직이는 학교였다. 구보는 불교, 하고 뇌어봤다. 그 정묘한 관념의 체계의 한 부분을 가지고 그럼직한 미학의 이론 하나 만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천 년이요, 이천 년이요를 들여 몸에 익힌 버릇에서 실오라기 하나 건지지 못하고 시대가 바뀌면 미련 없이 -팔만대장경-을 나일론 팬티 하나와 바꿔버리는 풍토. 구보는 문득 부끄러움을 느꼈다. 벌거숭이 된 내 마음. 오, 초토에서 이방인들의 넝마라도 주워 입어야 했던 벌거숭이 된 내 마음. 문화사(文化史)적인 분노의 전사(戰士)라는 포즈를 지어보는 감상(感傷)에 젖으면서 구보는 겨우 그 부끄러움에서 빠져 나왔다. 어쩌란 말인가. 그렇지 못할 내 인연이기에 이렇게 법(法)의 울타리 밖에서 그나마 멀리 우러러보는 것으로 용서해 달라. 그는 적반하장을 샤카무니에게 슬쩍 들어 보였다.
대학을 나와 세 사람은 퇴계로 어느 음식점으로 갔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던 것이다. 가져온 음식은 맛이 없었으나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얘기하기에는 좋았다. 거기서 그들은 몸을 녹이고 밖으로 나왔다. 세 사람은 저마다 갈 데로 헤어졌다. 구보는 그들이 가는 모습을 보았다. 매우 점잖은 어투로 십 년의 시간에 대해서 이러저러하게 이야기한 사람들이 그 시간이 지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뿔뿔이 갈라진다는 사실이 어쩐지 섬뜩했다. 어쩌란 말인가. 강연을 같이 했다고 해서 의형제라도 맺어야 한단 말인가. 에잇, 구보는 보이지 않는 칼을 들어 마치 백정처럼 사정없이 자기의 그, 독신자다운 어리광의 미간을 푹 찔렀다. 소는 원망스러운 눈을 치뜨면서 매짠 동지 달 그믐 무렵의 바람 속에 산화(散華)했다.
그는 가까운 다방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충무로와 퇴계로를 잇는 골목에 있는 -커피 숍-이라고 간판을 단 다방이었다. 불빛이 어두웠다. 전에 한번 들른 적에도 그랬던 것 같지만 밖에서 갑자기 들어온 눈에는 아주 캄캄할 지경이었다. 잘 보이지 않는 자리를 찾던 그는 이층 계단을 올라갔다. 거기도 어둡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눈이 익어서 좀 나았다. 그는 창 옆 자리에 가 앉았다. 한 시까지 틈이 있었다. 한 시에 월간잡지인 <여성 낙원(樂園)>사에 가서 현상 소설 당선자를 뽑아야 했다. 고개를 돌리면 창 밖으로 저 아래를 그 좁은 거리가 미어져라 사람이 지나간다.
물론 그들에게는 구보 자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바쁘게 다닐 권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는 눈을 돌려 다방 안을 보았다. 거기에도 역시 구보 자기와 다름없이 그렇게 앓아서 한잔의 차를 마실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 논자서, 둘이서, 혹은 셋이서, 이야기하고 혹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들과 자기와의 사이에 있는 공간이 깊은 낭떠러지처럼 아래와 위로 벌어지는 것을 구보는 보았다. 그들이 저 겨울옷 속에 지니고 있는 시간. 그리고 구보의 시간. 그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구보야, 너는 아까 어린 학생들 앞에서 우리들은 모두 떨어질 수 없는 연대(連帶) 속에 살고 있으며, 인간의 일은 모든 인간에게 무관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물론. 물론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르다.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학교의 강연에서와 너의 마음속의 진실은 다르단 말인가. 아니다. 말해 봐. 구보는 다그치는 물음에 약간 비켜서는 투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말하는 것은, 하고 구보는 천천히 생각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무슨 어렵지도 신기하지도 않은 이야기다. 동네 시어머니란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어울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아니, 어울림 속에 끊어짐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아니, 끊어져 있기 때문에 이어지는 것이라고나 할까. 흑은 커다란 연대 속에 작은 단절이 들어가 있다고나 할까. 이 막은 단절은 집단 속에서의 공상(空想)의 한때일 수도 있고 또는 심하면 죽음일 수도 있다. 공상과 죽음은 집단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지 않은가. 공상과 죽음이라는 단절 위에서의 연대 - 그게 사람의 어울림이다. 그것을 바로 본 위에서의 연대가 정말 어른스런 연대다. 한발 잘못하면 자기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그 허무의 공간 속에 떨어지게 할 위험을 막기 위한 약속 - 그게 연대다. 목숨의 이어짐 ? 자연의 뜻에 의해 이미 연대되어 있지 않느냐고? 그런 -밖-의 이어짐-나-와 상의함이 없이 그 옛날 누군가가 팽이에 시동(始動)을 주듯이 결정해버린 목숨의 타성 -그것은 -나-가 아니다. -나-는 그 목숨의 연속의 밖에 있는 어떤 -깨어남-이다. 그 목숨의 거울, 그림자다. 목숨이 있는 멋처럼 그림자도 -있다-. -나-란 그렇게 약하고 그렇게 아슬아슬하다. 약하고 아슬아슬한 것이 발을 헛디디지 않으려면 굳세고 든든하게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물론. 그런데 그 굳세고 든든하다는 것은 -소망-이긴 하지만, 결코 그 -소망-만큼한 -실현-은 없는 법이다. 덜 이룬 -실현-을 다 이룬 -소망-의 실현이라고 우긴다면 하루 이틀이면 몰카도 너무 오래면 그것은 틀림없이 탈이 된다. 할 수 있는 테두리에서의 정의(正義)를. 그런 정의가 무서운 정의다. 나머지 정의는 시(詩)에서 위안 받는 길밖에 없다. 칼 빛에 어리는 안개 -그게 시다. 칼이 없는 시도 가짜고 시가 없는 칼도 가짜다-여기까지 말을 쫓아가다 말에 쫓겨온 구보는 문득 제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자고 있는 동안의 자기의 얼굴은 틀림없이 미친 사람 아니면 살인범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그 가냘픈 연기의 건너편으로 구보는 무서운 말이 빚어낸 그 어질머리와 섬뜩함을 건너다보았다. 그 순수한 것들은 연기를 싫어하는 모양인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흩어져버렸다. 구보는 그런 말들과 놀다가 이제는 꼼짝없이 그것들에게 잡혀버린 자기의 지난 십 년을 생각했다. 비록 지금, 담배 연기 때문에 사라졌을망정 말들은 결코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신이 내려버린 무당처럼 비참하다고 자신을 생각하였다. 게다가 그는 진자 무당처럼 돈도 받는 것이었다. 그의 안주머니에는 얼마 안 된다고 하면서 오적이 건네준 오천 원이 들어 있었다. 내가 그 대학에서 지내고 온 굿은 무슨 굿인가. 그러자 아까 그 학생이 요즈음 구보씨의 소설은 신비적인,,,,,,하던 말이 언뜻 생각났다. 얼마나 잘 맞춘 말인가. 맞춘다? 그러면 그 학생도 무당이란 말인가. 그는 갑자기 우스워졌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예술의 발생사가 가리키듯이 그것은 사실이다. 내가 아까 말한 이론을 따른다면 환경에 바르게 계산해내는 무당이면 될 것이 아닌가. 미(美)의 사제(司祭)라고 하면 그럴듯한데 미의 무당이라고 하면 섬뜩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마 이 땅의 무당들이 게을렀기 때문이었으리라. 집단과 더불어 힘들여 자라는 힘을 가지지 못한 탓이었으리라. 그래서 죽은 돼지대가리나 겨누었지, 그 칼춤은 아무도 두렵게 하지 못한 것이리라. 흠. 또 칼이다. 또 칼의 그림자구나. 죽은 돼지대가리보다 훨씬 그럴만한 대가리를 겨누는 칼춤을 추면 되겠지. 그래, 무당이라. 그는 푸닥거리를 마치고난 무당처럼 남아 있는 커피를 조금씩 마셔가면서 목을 축였다. 이런 순간에 끄는 자기자신의 현실적 신분을 그다지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한 월남 피난민으로서, 서른 다섯 살이며, 홀아비고, 십 년의 경력을 가진 소설가라는 그의 현실적 신분보다 훨씬 높은 데를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모든 직업인이 자기 일에 들어서는 참에 갖추어지기 마련인, 어떤 엄숙함의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 그는 말려 들어갔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그 -말의 공간-은 노동자의 일터처럼 그에게 든든함을 주었다. 그는 한참 후에 일어서서 변소로 갔다. 이 다방의 변소는 아래층에 있었다. 그는 소변을 보고 올라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구보씨가 걸음을 멈춘 곳은 계단의 꺾임목이었다. 거기에 난 창문으로 구보씨는 한 풍경을 보았다. 그 곳은 자리로 보아서 화교 국민학교의 뒷마당임이 분명하였다. 이층 시멘트 집의 뒷모습이 보이고 작은 창고 같은 집이 있고, 느릅나무 큰 그루가 몇 서 있었다. 구보가 놀란 것은 그 풍경이, 그의 북한 고향의 그가 다니던 국민학교 뒤뜰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옆으로 여러 번 사람이 지나갔지만 그는 그대로 서 있었다. 많은 세월을 사이에 두고 문득 마술처럼 눈앞에 나타난 풍경에 구보씨는 홀렸던 것이다. 그는 다방에 올라가서 자리를 옮겼다. 그쪽에 붙은 창문으로 그는 지금 발견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진작 이 자리에 오지 않았던 것을 뉘우치면서 그는 뒷마당을 내려다보았다. 구보씨의 고향은 동해안의 이름난 항구 완산이다. 전쟁이 났을 빼 그는 고등학교 일 학년이었다. 전쟁이란 거의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이지만 더구나 고등학교 일 학년 짜리에게는 그것은 어떤 어질머리였다. 피난. 월남. 이십 년의 세월, 그 이십 년은 구보에게 있어서 그 어질머리의 실마리를 풀어 가는 일이었다. 어질머리. 삶은 어질
머리를 가만히 앉아서 풀어 가는 가내수공업 센터 같은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긴 하였다. 풀어간다는 것도 살아서 풀어 가는 것이고, 산다는 일은 어질머리를 보태는 일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콩쥐의 일감. 어느 사람이 이 어질머리에서 풀려난단 말인가. 사람들은 그래서 사노라면 어느덧 누에처럼 그 어질머리 속에 들어앉아 버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구보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어질머리라는 누에 집을 풀어서 그것이 대체 어떤 까닭으로 그렇게 얽혔는가를 알아보아야 했다. 그것이 소설이라는 것이 라고 그는 생각했으므로. 그는 자기 집을 헐고 자기 껍질을 벗겨서 따져보는 그러한 누에였다, 벌거숭이 된 내 마음. 오, 진실을 찾다가 벌거숭이 된 내 마음. 그 어질머리가 자기의 한군데라는 것을 알났을 때는 이미 자기 몫의 어질머리를 갈가리 찢어 발겨놓은 다음이라는 발견. 모든 슬픈 사람들이 뒷사람을 위해 충고의 말을 적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겪지 않고는 풀어 읽지 못하는 너무나 단순한 비문(碑文) 그런데 여기 그의 어린 시간이 있었다. 어질머리를 어질머리로서 살 수 있는 오직 한번의 기회로서의 한사람의 소년의 시간. 그는 세계라는 어질머리와 자기 사이에 책이라는 완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책을 음악처럼 읽었다. 등장인물이라는 이름의 선율들이, 그의 책의 페이지 위에서 아름다운 어질머리를 풀어나갔다. 아름다움을 남보다 더 누린 사람은 반드시 그 갚음을 해야 한다. 월남 후 그는 그 갚음을 하기에 이십 년을 허비했다. 그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슬픔이었고, 그가 어질머리라 생각했던 것이 무서움임을 알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구보에게는 이 삶은 한 견딤, 한 수고였다. 그는 눈 아래 뜰에 선 느릅나무의 헐벗은 가지를 바라보았다. 보고 있자니 그의 눈에는 그 가지들이 담뿍 잎이 달려 보였다. 속삭이는 듯한 모양을 한, 그 독특한 느릅나무 잎새가 간간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도 보였다.
한 시에 구보씨는 여성 낙원사에 닿았다. 함께 심사를 맡은 이홍철씨도 와 있었다. 구보씨는 이 동향의 선배를 오랜만에 만났으므로 반가왔다. 구보씨는 이흥철씨에게 당선이 될 만한 것이 있더냐고 물어보았다. 편집장은 자리를 옮기자고 말했다. 그들은 회의실인 듯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스팀이 들어와서 훈훈한 방이었다. 구보-이홍철 -편집장 세 사람은 가운데 놓인 넓고 긴 탁자의 한 모서리에 자리를 잡았다. 한 사원이 차를 가져왔다. 책상 위에는 응모소설 원고가 놓였다. 그것은 구보가 먼저 읽고 이흥철씨가 받아 읽은 다음 오늘 가지고 나온 원고였다,
「어떻습니까. 뭐 좋은 거 있습니까?」
하소 편집장이 한 손으로 듭시다. 하는 시늉을 하면서 다른 손으로 자기 찻잔을 들며 말하였다,
구보는 먼저 쉬운 일부터 마친다는 듯이 찻잔을 들어 상징적으로 마시는 시늉을 한 다음, 말하였다.
「글쎄요, 이 형은,,,,,,」
이홍철은 한번 웃더니 입을 꽉 다물었다가 말했다.
「네, 이거,,,, ,」
하면서 원고뭉치에서 하나를 뽑아냈다. 구보와 편집장은, 한 구유에 머리를 디미는 돼지새끼들처럼 동시에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검은 에덴-이라는 소설이었다. 구보도 별다른 의견이 없으면 그것이리라 한 소설이었다, 구보는 말했다.
「그렇겠군요.」
「그래요?」
편집장은 원고를 넘겨보면서 또 말하였다.
「어떤 소설입니까?」
「근친상간(近親相姦) 얘기예요.」
하고 이흥철씨가 말했다.
「근친상간요?」
편집장은 이홍철씨가 근친상간을 했다는 고백이나 한 듯이 물었다. 그것이 우스웠으므로 구보씨는 어허허 하고 웃었다.
「괜찮아요.」
하고 이흥철씨가 근친상간이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근친간도 다루기 나름이지만.」
하고 편집장은 좀 생각하다가,
「우리 잡지가 여성지라, 상식적으로 너무 동떨어진 건------」
「말씀대로 다루기 나름이지요.」
차고 이홍철씨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검은 에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쪽 빠졌잖아.」
「그래.」
「이야기가 확실해.」
「검은 에덴이라고 제목을 붙인 작가의 판단은 들어 있는 셈이지.」
「그런데 좀 생각하게 하더군.」
「뭐요.」
「옛날 소설가 같으면, 간통 이야기를 다를 때 이런 분위기가 되지 않겠소 그런데 지금은 근친간이나 해야. 옛날 간통만한 분위기가 되는 거구나. 이런 생각 말이오.」
「저항력(抵抗力)이 생겨서 옛날 십만 단위가 백만 단위가 된 거지 뭐.」
「뜨끔한 일 아니오?」
「어제 오늘 일인가. 하. 구보씨 꽤 낡은데.」
「낡다니?」
「그러니 구보씨는 아직 장가도 못 갔단 말이오.」
「아니, 내가 낡았으면 누가 새롭겠소?」
「그럴까 ?」
「형편없어요. 싹 썩었어요.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에 흐물흐물하는 바닥이야.」
「바닥?」
「이 바닥 말이야.」
「흐음.」
「그러니까 소재는 근친간이지만, 작가는 그걸 비판하고 있다. 이런 얘기가---」
「그렇죠.」
「그럼 상관없겠군요.」
「상관없다니깐요.」
「네, 상관없습니다.」
「그럼 결정된 걸로 하겠습니다,」
일을 끝내고 그들은 잡담을 하였다. 이흥철씨는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역사 소설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는 전에도 역사 소설을 쓴 적이 있었는데 구보는 대단히 부럽게 생각했다. 그 어질머리를 용케 풀어서 앞뒤를 맞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역사 소설에 대한 얘기가 발전해서 소설과 역사의 본질론으로 나아갔다. 이홍철씨는 자기 생각을 말했다. 대체로 역사와 소설이 엄청나게 달라지고 그 둘 사이에 차별이 문제시되는 시대는 지배 계급이 정치에 대한 믿음을 잃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다. 왕조의 양반 계급은 역사 외에 가공의 진실이라는 소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지금 소설이라고 부르는 예술의 몫을 맡은 것은 시였는데, 그들은 시에서 굳이 역사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현실의 짐에서 벗어난 놀이로 생각했다. 그들은 사서(史書)를 읽는 것으로 족히 현실에 대한 눈과 책임을 느꼈기 때문에 거짓말 역사로서의 소설이란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이 사실은 건강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처럼 정치와 예술의 분열이 없었던 것이다 - 이흥철씨는 이렇게 말했다. 구보씨는 거기다 자기 의견을 말했다. 사실과 오락을 그렇게 두붓모 자르듯 가른다는 것은 그들 양반계급이 자기들의 세습적 신분에 대해서 거의 의사 자연적인 안전감을 가진 탓이었겠지, 그러나 세습적 지위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인정되긴 않는 근대 이후의 세계에서는 사실과 상상(想像) 사이에 그와 같은 구별은 있을 수 없지, 이십세기 문학의 상징적 경향은 그것이 결과적으로 폐단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 단단한 것은 없다는 세계관의 표현으로서, 사람이 늘 거기서부터 출발하고 거기로 돌아와야 할 발판이 아닐까, 아니 - 발판 없음의 인식 -이 아닐까? 구보씨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얘기를 한 다음 그들은 심사료 각 X만원씩을 받아들고 잡지사를 나왔다. 이 잡지사는 대법원 골목에 있었는데, 그들은 덕수궁 뒷담을 오른편에 보면서 광화문 쪽으로 고개를 넘어갔다. 덕수궁 뒷문 앞을 지날 때 열린 문 사이로 석조전 오른쪽 옆구리가 보였다. 그러자 구보는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구보는 어떤 여자와 이 길을 가다가 꼭 지금처럼 그 석조전을 들여다봤던 것이다. 그의 기억의 앙금으로 가라앉아 있는 서울의 한 건물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어떤 감회를 안겼다. 이렇게 한 도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고, 기억의 눈길에 얽혀 있으려니 생각하였다. 마치 밤하늘에서 비행기를 잡는 탐조등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그들의 기억의 하늘에서 집을, 거리를, 나무를, 우체통을, 어느 다방을 밝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바라보던 머릿속의 풍물은 전류가 끊긴 전기 알처럼 물질의 백치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구보는 중얼거렸다. 대단한 일이야. 산다는 건 대단한 일이야. 이홍철씨가 뭐야? 하고 물었다. 구보는 머저리처럼 웃었다. 이흥철씨도 머저리처럼 웃었다. 구보는 그 웃음이 이흥철씨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잡지 같은 데 나던 사진, 그의 이십 대의, 좀 마른 얼굴에 어려 있던 웃음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고등 학교의 선배라는 실감이 났다. 고등 학교.
그때의 고등 학교라는 그 이상한 삶을 지금으로서는 거의 떠올릴 수 없다.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 아무 것도 모르면서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삶의 이 불량 소녀 같은 엉터리없음. 그들은 구세군 서대문 본영을 지나 경기 고녀와 덕수 국민학교 앞을 지나서 광화문으로 나왔다
「약속 있어?」
하고 이홍철씨가 물었다
「없어.」
하고 구보는 대답하쳤다.
「9(나인)에 가볼까?」
「그러지. 」
9다방에는 소설가 남정우가 가끔씩 들르는 곳이었다. 그들은 구름다리를 올라서서 건너편에 내려섰다. 남정우는 혼자 앉아 있었다. 남정우는 -정토(淨土)-라는 소설을 써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와.」
남정우씨는 자기 집처럼 말했다. 아마 자주 오는 집이어서 집처럼 생각키는 모양이었다.
「어디서 쏘는 길야, 둘이서?」
「음, 병아리 감별을 하고 오는 길야.」
「뭐?」
「병아리 암수 가리는 것 있잖아.」
하고 이홍철씨가 말했다.
「뭐?」
「응, 저, 현상 소설 심사를 하고 오는 길이야.」
「아, 그래.」
「암컷인가, 수컷인가, 레구홍인가, 토종인가, 잘 크겠나, 못 크겠나.」
하고 이홍철씨가 말했다.
「허, 과연 그래.」
하고 남정우씨가 가장 유쾌한 일 다 듣겠다는 것처럼 웃었다. 구보지는 그 순간, 확 풍기는 닭똥 냄새를 맡았다. 과연 그래, 그는 넌지시 손을 코에 갖다댔다. 훅 끼치는 닭똥 냄새. 그럴 것이었다. 껍질을 깨고 나와서 살겠다고 삐악삐악거리는 숱한 병아리들을 만지지 않았는가. 현상소설의 원고지 사이에서 풍겨 나오는 그 비릿한 냄새는 분명히 닭똥 냄새였다. 자. 이번에는 병아리 감별사가 됐군.
구보씨는 (9)에서 두 사람과 헤어져 나와 광화문 지하도 쪽으로 가다가 극작가 배걸씨를 만났다. 지하도 입구 신문팔이 옆에서 그들은 악수를 나누고. 오랜만이니 어디 가서 얘기를 하기로 하자고 뜻이 맞았다. 구보씨와 배걸은 지하도를 내려가 동아일보 앞에서 땅 위로 올라왔다. 그들은 오른쪽으로 걸어가서 길을 건너 소방서 앞을 지나 -궁(宮)- 다방 모퉁이를 돌아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조금 가면 중국 집이 있었다. 여기가 좋겠다고 끄덕이면서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홀을 지나 깊숙한 통로로 그들은 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좀 이르지만 배갈을 좀 하기로 했다. 그들은 배갈을 마시면서 연극 얘기를 했다.
「베케트가 탔지.」
「음.」
「알아주는 모양이지.」
「그야.」
「연극 어때?」
「연극.」
「맘대로 되나.」
「연극적 감수성이 문제야.」
「자네 거 좋더군.」
「뭐.」
「대사 주고받는 식은 곤란하지.」
「대사?」
「응.」
「안되지. 극적 공간의 조형(造型) 그게 있어야지.」
「극적 시간의 전달.」
「그래그래, 조형된 시간을 주고.」
「받는다?」
「그럼. 자 받아.」
「천천히 하지 그래.」
「응.」
「사실(事實)극의 밑거름도 없는데 좀 무리하잖을까?」
「뭐 농사짓는 건가?」
「농사야 농사지.」
「공간을 간다(경(耕))?」
「갈아야지.」
「공간.」
「인간적 공간.」
「 - 을 가는 거지,」
「간(行)다?」
「응 밀어가며, 미는 거야, 밀어내는 거야.」
「그 저항이, 응?」
「그럼, 그럼.」
「타인의 인식, 그 사이.」
「옳지, 사이와 사이의 골짜기.」
「뛰어넘는 거야.」
「빈 골짜기지?」
「비었구말구. 차 있다고 생각하는 게 통속이야,」
「옳지, 그렇게 규정하면 되겠군.」
「암마. 비었다, 어질머리,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다.」
「없다?」
「없지. 그걸 온몸으로. 」
「온몸으로 말이지.」
「미는 거야.」
「맨몸으로.」
「맨몸이지, 뭘 입었다고 생각하면 안돼.」
「알몸으로?」
「벌거숭이지.」
「벌거숭이, 벌거숭이 된 내 마음.」
「그래그래. 벌거숭이 된 마음이 벌거숭이의 공간을 밀고 나가는 거야.」
「밀고 나간다.」
「나가야지.」
「괴롭군.」
「살아보니 그렇잖아?」
「그래그래. 그런데 괴롭다고 징징 우는 게 죄가 된다니 괴롭지?」
「징징거리는 건 안돼.」
「그럼.」
「괴로운 건 괴로운 거야. 그러나 징징 짜는 건 안돼.」
「안되긴 안되지.」
「안돼.」
「왜 안돼?」
「짜증이 나잖아?」
「아니, 왜 죄가 되나 말야?」
「징징거리면서 일은 언제 해? 징징거릴 시간을 착취하고 있는 거야.」
「착취?」
「그럼. 먹어야 짤 거 아냐? 남도 울고 싶단 말야.」
「맞았어 맞았어. 실연하고 하소연하는 거 말야.」
「그래그래, 죽이고 싶지.」
「죽여야 돼. 죽여야 돼.」
「그런데 베케트처럼 안 해도 되잖아.」
「어떻게?」
「체홉처럼.」
「그건 달라.」
「달라?」
「다르고말구. 끝까지 가면 베케트가 되는 거야」
「흠.」
「돼. 그렇잖아? 예술이 예술을 의식하게 되면 그리 되는 거지.」
「그게 예술의 쇠약해진 증거가 아니야?」
「에이 시시한 소리 말아. 왁찐을 연구하기 위해 제 몸에 실험을 하는 게 생명력이 약해서 그런 거야?」
「왁찐이라 - 」
「병균을 제 몸에 심는 의학자는 왜 과학이구. 박애구 순수 정신을 제 몸에 심는 예술가는 왜 타락이야?」
「순수 - 」
「순수를 남에게 심어보려는 게 나쁘지.」
「남에게 -라?」
「남이지. 남에게만 세균을 넣고 자긴 말짱하고. 죽어야 돼.」
「남이라. 취하지?」
「하나 더 할까?」
「그만해.」
「그만?」
「하나 더 할까?」
「하나 더 -」
「하나만 더 해.」
손뼉을 친다.
「부르셨습니까」
하면서 문이 결리고 심부름하는 아이가 얼굴을 들이 민다.
「하나」
「네」
소년의, 나이에 비해 잘 발달한 손이 술병을 받아 가지고 문을 닫는다.
「가만, 식사할까?」
「천천히 하지 뭐, 바빠?」
「아니야, 이따 저녁에 약속이 있어.」
「여자야 ?」
「아니야. -성남동 까치-라구」
「응, 김광섭씨 시집?」
「그래. 출판기념회가 있어.」
「건강이?」
「응, 나도 잘 모르는데, 그 동안 병 문안도 못했고.」
「그렇겠군, 평이 좋지?」
「안 읽었나?」
「응.」
「서로 좀 읽고 했음 좋겠어.」
「그렇구 말구.」
구보씨나 배걸씨나 모두 술을 잘하는 편은 못되고 말 안주로 삼는 편이었기 때문에 지금 마시고 있는 병이 두 번째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대략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추상(抽象)과 구상(具象)은 서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는 것/시대(時代)에 따라서 역사(歷史)는 열려 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닫혀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현재 인간의 문명(文明)은 그러한 명암(明暗)이 2항 대립식으로 널뛰기를 하면서 번갈아 집권(執權)한다는 표현(表現)을 하기에 어울리는 고비는 지났다는 것 / 추상(抽象)과 구상(具象)도 한 시공(時空)에 동시(同時)에 공존(共存)하는 생(生)의 얼굴이라고 봐야지, 한쪽만으로 결판내려면 생(生)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일그러뜨릴 때는 그것이 언어(言語)의 전개(展開) 형태(形態)인 계기적(繼起的) 서술(敍述)의 한계(限界)에서 오는 방법적(方法的)단순화(單純化)임을 자각하는 여유(餘裕)가 있으면 좋지만. 그런 허구(虛構)의 조작(造作)을 실체화(實體化)하려들면 교조주의(敎條主義)가 된다는 것 / 예술(藝術)은 현대문명(現代文明)에서 단일(單一)한 양식(樣式)을 가질 수 없다는 것 / 의식 전범(典範)을 통일(統一)하려 할 것이 아니라 분파(分派)가 택한 전범(典範) 각기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나 감상(感傷)을 극복(克服)했는가를 가지고 신심(信心)을 저울질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 / 문학(文學)이 그 가운데서도 특별한 장벽(障壁)을 가진 것은 인정(認定)해야 한다는 것 / 감각(感覺) 예술(藝術)과 같은 순수(純粹)한 음계(音階)의 설정(設定)이 불가능(不可能)하다는 것 / 문학(文學)의 음계(音階)는 복합(複合) 음계(音階)로서 풍속(風俗)의 지시(指示)를 포함(包含)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 그러나 예술(藝術)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면 다른 예술(藝術)과 다름이 있을 수 없다는 것 / 아마 시심(詩心)의 높이가 그 가늠대일 것이 라는 것 / 명월(明月)이나 오동(梧桐)나무에는 발정(發情)하는 시심(詩心)이 人事의 正邪에는 發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원리(原理)의 일관성(一貫性)에 모순(矛盾)된다는 것 / 현실(現實)의 어느 당파(黨派)를 지지(支持)할 것이냐 하는 입장(立場)을 버리고 가장 높은 시심(詩心)의 영역(領域)에서 추(醜)한 것은 무차별(無差別) 사격(射擊)할 것 / 우군(友軍)의 행동(行動) 한계선(限界線)이라고 해서 사격(射擊)을 연신(延伸)하지 말고 시심(詩心)이 허락할 수 없는 지대(地帶)에는 융단(絨緞) 폭격(爆擊)을 가(加)하여 이기심(利己心)에 대한 살상(殺傷) 지역(地域)을 조형(造型)할 것 / 그렇게 해서 시(詩)가 인사(人事)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인사(人事)가 시(詩)를 두려워하게 할 것 / 읍참마속(泣斬馬謖)에서 읍(泣)도 버리지 말고 참(斬)도 버리지 말 것 / 읍(泣)이냐 참(斬)이냐 하는 허위(虛僞)의 2항대립의 악순환(惡循環)에서 벗어 날 것 / 읍(泣)은 조강지처(糟糠之妻)에게 참(斬)은 참(斬)망나니수(手)에게 돌리고 공명(孔明)은 읍참(泣斬)할 뿐이라는 것 / 예술은 인간이다, 라는 까닭에서가 아니고 예술이라는 칼을 들었으면 칼이 가자는 대로 가야 한다는 것 / 그런 장인(丈人) 의식(意識)/인연(因緣)으로 흐린 자기(自己)의 이해타산(利害打算)의 눈을 스스로 안맹(眼盲)케 하여 실명(失明)을 얻은 다음 시(詩)의 물레를 돌릴 것 / 눈먼 손이 뽑은 시(詩)의 명주실을 풀리는 대로 버려둘 것 / 그러면 카이자의 몫은 카이라가 가져갈 것이고 하느님의 몫은 하느님이, 이방인(異邦人)들과 단군 열두 지파(支派)도 제 길이만큼 잘라갈 것이라는 것 / 그런 물레질.
구보씨는 5시 반에 성북동에 있는 -유정-이라는 술집에 닿았다. 거기가 -성남동 까치-출판기념회 자리였다. 여느 술집과 마찬가지로, 가로가 긴 아크릴간판을 단 한옥이었다. 이 집의 위치를 초청장 뒤에 그린 지도를 보고 찾아왔던 것인데 쉽게 찾았다. 쉽게 못 찾을 만하면 하긴 술집도 아닐 것이었다, 벌써 와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구보씨는 앉은 사람 모두에 대하여 막연히 인사하고 빈 자리에 가 앉았다. 대청마루와 건넌방 사이의 문을 걷어내고 상을 여러 개 붙여 놓은 자리에 앉아서 살펴보니, 둘러앉은 얼굴은 모두 선배들이었다. 사람들이 이어 들어왔다. 새로 온 사람들이 자리에 앉다가 말고 김광섭씨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을 보고서야 구보씨는 김광섭씨가 아까부터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공교롭게도 그가 앉은 줄 몇 사람 건너에 앉아 있어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인사하러 가야 했으나 이미 사람이 들어찬 자리가 몹시 좁아져 있었으므로 그는 그만뒀다.
상을 둘러앉았다기보다 상과 뒷 미닫이 사이에 끼어 앉았다는 것이 마땅할 만큼 좁았던 것이다. 그 있지도 않은 등과 뒷 미닫이 사이를 음식을 든 술치는 여자들이 다니면서 시중을 들었다. 구보씨는 한 옆에 시인 윤석경씨, 다른 쪽에 시인 한유학씨 사이에 끼어 앓았는데 사람들이 연이어 들어서고 자리는 그때마다 좁아졌다. 구보씨는 가끔 몸을 돌릴 때마다 옆으로 김광섭씨를 바라보았다. 김광섭씨는 머리가 아주 백발이었고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은 딴 사람 같았다, 술이 돌아가고 농담이 돌아가고 하는 사이에도 그의 목소리는 한번도 들리지 않았다. 이만한 부드러운 모임에도 간신히 견디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술슬 권하지도 않았다. 그것도 보통 술자리와의 대조를 뚜렷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김광섭씨가 건강하던 때 모습을 떠올렸다. 느리고 완강한 데가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언젠가 명동의 바아 -다비-에 데리고 가주던 일을 구보는 떠올렸다. 웬일인지 그때 그 바아의 풍경이며 마담의 얼굴이 너무 확실하게 떠올랐다. 그때 마담은 김광섭씨더러 무정한 애인이라고 하면서 외상 술 마실 때만 오느냐고 했다. 김광섭씨는 외상이 아니라 공짜라고 하였다. 마담은 공짜라도 좋으니 매일 오라고 하였다. 그때 구보씨는 저만한 시인이 되면 명동의 이만한 바아의 마담을 애인으로 가지고 있는 법이고 술도 여자 쪽에서 대는 것이구나 하고 몹시 감동했다. 십 년 전 구보씨가 처음 소설을 쓰고 김광섭씨가 내는 잡지에 실었을 때의 일이었다. 구보씨는 술집에서의 그 흔한 농담의 정석(定石)을 실전(實戰)처럼 생각한 자기의 그때 젊음보다. 그런 자기를 데리고 술집에 가준 씨의 젊음을 생자하고 조금 슬퍼졌다. 씨의 지금 얼굴은 사실은 없어도 좋은 여러 선(線)들을 지우개로 모두 지워버린 다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는 -성남동 까치-에 실린 시들을 생각하였다. 그 시들에게는 말로만 듣던, 삶의 겨울의 그 무서움이 있었다. 닳아빠지도록 징징 운 적이 없는 사람이 나 정말 봤소. 하고 보고하는 그 삶의 겨울의 얼굴이 있었다. - 옆에 앉았던 한유학씨는 거의 구보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구보는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슬기롭게도 일찌감치 선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나온 이철봉씨가 마담을 데리고 무슨 얘기를 하고 앉아 있었다.
「여기가 편하군.」
「응, 성황이어서 잘됐어,」
구보씨는 이철봉씨가 앉아 있는 아랫목 벽장 아래 가 앉았다. 그 옆으로 사진사가 둘, 보자기를 씌운 사진기를 옆에 세워놓고 앉아 있다. 대청과 방은 미닫이로 막혀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이봐. 」
하고 이철봉씨가 마담에게 말했다.
「여기도 한 상 차려와.」
「곧 가져옵니다. 미안합니다.」
「어딜 가는 거야.」
「네, 다른 방에 좀.」
「다른 방?」
「네.」
「돌려보내, 돌려보내.」
「어머. 거기도 손님인데.」
「손님? 아뭏든 여기 발리 가져와, 자리가 없어 나앉았는데 술까지 나앉으란 말야?」
작은 자개 상에 술과 생선 구운 것이 얹혀서 왔다.
「이거 뭐 행랑아범 상 같잖아?」
「아이, 무슨 말씀을.」
「회계는 내가 하는 거야.」
하고 이철봉씨는 마담의 어깨를 안았다.
「응, 돈은 이 양반이 가졌어.」
하고 구보씨도 무책임한 거짓말을 했다. 마담은 그래서만도 아니고 이철봉씨의 평론가다운 고상한 풍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웃몸을 맡기고 가만히 있었다.
「마담 몇 살이야.」
하고 철봉씨가 물었다,
「맞혀보세요.」
「글쎄.」
하고 철봉씨는 나이 맞혀보는 건 양보해도 좋다는 듯이 구보씨를 돌아보며 마담을 좀더 겨드랑 밑에 집어넣었다. 구보씨는 마담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기도 한 얼굴이 있었다. 그것은 얼굴을 이루는 많은 선(線)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서 제 자리에서 잠간씩 망설이고 있는 듯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눈을 가운데로 뺨은 부분이 비옥해 보였다. 눈의 흰자위가 성(性))의 비겟살처럼 살쪄 보였다.
「글쎄.」
하고 구보씨가 모처럼의 권리를 낭비해버렸다. 그러자,
「서른다섯.」
하는 철봉씨.
「꼭 맞혔어요.」
마담은 서른다섯 살을 철봉씨가 주기나 한 것처럼 반가와했다. 그것으로 봐서 몇 살 더 먹었을 것이라고 구보씨는 생각했다
「서른 살쯤이 아닐까?」
「그러면 좋게요.」
하고 마담은 말하면서 일어서려고 했다.
「어딜 가는 거야.」
「좀 나가 봐야죠.」
하고 마담이 대청마루 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애들이 있잖아?」
철봉씨가 고렇게 말했으나 마담은 잠깐만이라고 손가락 하나를 들어 표시를 하면서 일어서 나갔다. 대청마루에서는 돌아가면서 축사를 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까치><까치>하는 소리가 말 가운데서 자주 들렸다.
「늙었지?」
하고 철봉씨가 말했다.
「응, 머리가 다 세었다.」
「머 리는 갑자기 세는 것이라는군.」
「응.」
「<성남동 까치>좋지?」
「응.」
<성남동 까치>는 이번에 나온 시집의 이름이자 그 속에 실린 한 편의 이름이었다. 김광섭씨의 앓기 전의 시는 존 단을 연상케 하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의 기사(騎士)>가 투구를 쓰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기생방 병풍 냄새 같은 것이라든지. 청상(靑孀)의 안스러움 같은 것이 대체로 주류를 이룬 시단에서 그의 시풍은 쇳소리가 울리는 특이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서 그는 그 투구를 벗고 있었다. 그리고 구보가 놀란 것은 투구를 벗은 그의 머리가 그 사이에 세어 있었다 는 사실이었다, 그 투구 안에서 -는 다른 싸움을 싸웠던 모양이었다. 모은 사람들이, 그가 투병하는 동안 그에게 씌우고 있었던 옛날의 그의 시풍의 투구를 고는 스스로 벗고, 지금도 그러리라고 생각해온 그와는 너무 다른 얼굴을 드러냈던 것이다. 투구보다는 더 튼튼한, 그러나 가벼운 싸움을 치른 그의 체력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함과 무게 사이의 비례관계를 벗어나 그런 옷을 입고 그는 서 있었다. 아기 저기 앉아 있다.
「당신들 여기 있었군.」
사회를 보고 있는 시인 김정문씨가 들어서면서 말했다.
「자리를 내 드리느라구.」
하고 구보가 말했다.
「자, 당신들두 한 마디 하시오.」
하고 그는 구보씨와 철봉씨를 두 마리의 까치 새끼처럼 손바닥으로 몰아가지고 대청으로 나왔다.
구보는 이런 얘기를 했다.
-김광섭 선생의 -성남동 까치-는 60년대의 끝에 와서 문득 우리 문학의 하늘에 올린 길한 소리였습니다. 우리는 헤매는 한국시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국시는. 거짓을 버린다는 이름으로, 우리가 시라고 생각하던 옷을 하나씩 벗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시가 저 옛 얘기의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기는 원치 않습니다. 임금님은 임금님다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벌거숭이냐, 옷이냐 하는 양자택일적인 물음이 사실상 감상(感傷)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선택은 벌거숭이와 옷 사이에 있지 않고, 어떤 옷과 어떤 옷 사이에 있습니다. -성남동 까치-는 시에게 위엄과 점잖음의 옷을 되찾아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옷은 번쩍거리지도 절그럭거리지도 않는 - 목숨처럼 자유무애하고 자유인답게 점잖은 그런 옷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러나 김 선생님의 옷을 뺏어 입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뺏어지지도 않습니다. 이 시인의 싸움을 우리도 싸우는 것, 그렇게 해서 우리도 자유인이 되는 일이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건강을 빌어 마지 않습니다.
이철봉씨는 보다 간단한 그러나 정에 넘친 연설을 하고 나서, 구보씨와 철봉씨는 다시 별실로 왔다. 그때 구보씨는 자기가 각설이 타령을 하고 나오는 거지처럼 느껴졌다. 그럴싸한 일이었다. 음식을 한 상 받고 앉은 대감들 앞에서 각설이 타령을 한마디하고 별실에 물러나와 한 상 얻어먹는 거지같다고 생각하고 구보씨는 슬퍼졌다. 이번에는 거지가 됐군, 하고 부보씨는 생각했다.
대감들 방에서는 노래가 시작됐다. 이제 남은 일은 기념사진을 찍는 일뿐이었다.
「이형은 집이 어디요?」
하고 구보가 물었다.
「여기서 가까와.」
「자기 집이지?」
「응.」
「용한데.」
「오막살이 야 오막살이.」
「아무튼.」
「애기 둘이랬지?」
「둘이야.」
「더 낳을 생각인가?」
「응 길러보니 하나쯤 더 있어도 좋을 것도 같고.」
「둘이면 되잖을까?」
「남의 걱정 말조. 자넨 뭐야?」
「응 나야 뭐.」
「뭐라니.」
그들은 내년 PEN대회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이 두 사람의 의견이었다. 자본이건 정치건 국제적인 -빽-이 있어야 하는 세상에, 문학에도 그런 게 있어서 나쁘기까지 야 하겠는가, 하는 점에 그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그것이 과연 -빽-구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의심스럽다는 점에 대해서도.
8시에 기념 촬영을 하고 모임이 끝났다.
구보씨는 버스 정류장에서 혼자 차를 기다렸다. 낮에도 매짠 날씨더니 지금은 어지간히 떨렸다. 한 시인을 축하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에익, 또. 구보씨는 사랑에 굶주린 거지같은 자기 몰골을 생각하고 화가 났다, 벌거숭이 된 내 마음. 오, 거지같은 내 마음. 그는 하늘을 쳐다봤다. 까맣게 갠 하늘에서 벌거숭이의 그 숱한 것들은 그래도 고왔다. 사람도 헐벗으면서도 저럴 수 있다고 잘못 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모한 짓을 하다가 삶의 이 엄동설한에 얼어죽었을까, 하고 구보씨는 생각하였다. 빛나는. 하늘의 그 고운 것들 사이에 놓인 공간이 아름다움이면서 무서움인 것처럼 한 시인을 축하한 사랑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무서움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아저씨.」
누가 옆에 와 선다. 그는 돌아보았다. 머리끝이 쭈뼛했다. 정말 헐벗은 한 여자가 그에게, 밤처럼 캄캄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어쩐 일이었던지, 그 여자의 얼굴에서 벌써 옛날에 갈라진 한 여자를 보았다고 헛갈린 것이다. 그는 백 원 짜리 한 장을 꺼내주었다. 죄인처럼.
「고마와요. 」
그녀가 말했다. 비웃음처럼.
버스가 왔다.
구보씨는 황황히 이십 원 길의 나그네가 되어 밤 속으로 외마디소리처럼 사라져갔다. -
탁. 탁. 탁. 아카시아 가지가 차를 때린다. 좁은 길. 아주 좁은 길. 이런 데서 자동차들은 어떻게 비켜갈까. 어머 그게 무슨 상관야. 나 좀 봐. 아이 어쩜 이럴까. 이런 생각밖에 안나, 내 세상이 끝났는데 왜 이렇게 아무 일도 없담. 왜 이렇게. 왜 이렇게,,,,,, 아아. 텅 비어 있을까.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 모든 것이. 모두가. 모두가. 다. 다. 다. 아이 어쩜 이럴까.
그녀는 창 밖의 가을을 본다.
속이 알차 가는, 부듯하게 익은 철이 자신 있게 유유하게 거기 서 있다. 앓아 있다. 웃고 있다. 개솔린 냄새보다 짙은 송진냄새. 아아 어쩜 이럴까.
고원(高原)의 마루턱에서 차는 멎는다. 네 사람의 손님들은 차를 내려가서 차 머리 쪽으로 간다. 그녀는 맨 뒤 자기 자리에 앉은 채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그늘이 바뀌어 있다. 타고 오던 때와 거꾸로 햇빛이 곧바로 들어온다. 그녀는 놀란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다. 운전사 옆자리 덩그마하게 솟은 기관부 위에 북어 짝이 장작개비처럼 수북이 일려 있다. 허름한 시골 버스다. 마루(?)를 본다. 판자가 들썩한 사이로 자갈이 내려다보인다. 그녀의 구두는 보얗다. 그녀는 웃는다. 어머. 죽으러 가면서도 교태야. 그녀는 웃는다. 구두한테 ? 구두한테야 뭐 어쩔려구. 뭐가. 뭐가? 무슨 말이었드라? 그녀는 깜박 잊어버린다. 무엇을? 무엇을? 무얼 잊어버렸을까, 무얼 잊어버렸는지 알면 잊어버리지 않았게? 그런데 이 사람들이 웬일일까. 일어선다. 차 밖으로 나온다. 그녀는 비로소 와 있는 곳을 안다. 다 트였다. 구불구불 산길. 이 차가 올라온 길이 저기까지 보인다. 아카시아가 많은 길이다. 주욱 올라와서 여기다, 다 트였다, 사방이, 제일 높은 곳. 운동장만한. 클로버. 클로버. 클로버,,,,,,
클로버 보료 위에 뭇 들꽃들이 꽃밭을 만들고 있다. 거의 완전한 원형의 산마루. 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높은 가을 구름이.
부르릉. 돌아본다. 운전사는 자리에 올라앉아 핸들을 잡고 비죽이 창 밖으로 목을 내밀고, 손님들은 밭 갈다 넘어진 황소 들여다보듯 엔진 주위에 몰려 서 있다.
「거기를 잘 봐요. 」
운전사가 밖에다 대고 소리친다. 부르릉 부릉.
그녀는 돌아서서 들꽃 속으로 절어 들어간다. 네 잎사귀의 클로버. 경망스런. 정말 경망스런 사랑의 장난. 한 푼 짜리 사랑의 장난. 한푼 두 푼 모아서 목돈을 만들려던 것일까. 손이 퍼렇게 되게 클로버를 따고 그는 말짱한 손을 뒷짐지고 웃는다. 보고만 있다. 나는 그의 머리며 가슴 호주머니며 단추 구멍에 꽂아 주고. 저요? 제 행운은 당신이 맡아 가지고 계시잖아요. 싫어. 생각하기 싫어. 생각하기 싫어. 생각하기. 깨끗한 손으로 물러설 궁리를 하고 있는 사람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 내 눈에는. 장님이 된 내 눈에는. 싫어. 싫어. 다. 모두. 그럴 수 없어. 그럴 리가. 고럴 리가 없어.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그녀는 클로버를 밟고 걸어간다. 끝이다.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어머, 안 오셨어요?」
이러저러하게 궁리를 했던 말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받아버린다.
「엇갈리신 모양이구만.」
늙은 바깥주인은 혀를 끌끌 찬다.
「어쩌나.」
깜빡, 거짓말이 참말 같다. 울고 싶다.
「어쩌나.」
어디 딴 남이, 호숫가의 산장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 때문에,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를 듣는다. 정말 어쩌나. 아아 정말 어쩌나.
「허허 참. 아무튼,,,,,,」
들어가자고 주인은 앞장선사. 뒤뜰 정자에 가서 앉는다. 노인은 마누라를 부르면서 부엌 쪽으로 돌아간다. 노인의 모습이 칡넝쿨 저쪽으로 돌아가자 그녀의 고개는 고리가 열린 기계처럼 돌아간다.
거기 호수가 있다.
호수에는 금(金)의 화살들이 수없이 꽂혀 있다. 해질 무렵의 햇빛이 호수에 기름처럼 흘러 있고 물가에서부터 시작하여 훨씬 안쪽까지 자라 있는 갈대들은 그렇게 보인다.
늙은 부부가 나오는 기척에 그녀는 휘딱 고개를 돌린다. 호수를 보고 있는 자기를 들키면 그녀의 마음이 들킬 것처럼 느껴져서.
늙은 마나님 앞에서 그녀는 또 한번 정말이고 싶은 거짓말을 다시 한번 걱정해보아야 했다. 철이 지나서 손님이 없다 한다. 기찻길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늘 그럴 것이라고 한다. 오기로 했으면 어련히 오겠느냐고 말한다. 냄새가 독특한 산차(山茶)를 권한다.
노파와 둘이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그 인자하게 늙은 얼굴의 주름이 점점 분간차기 어려워지고 끝내 말소리만 남는다. 잠깐 사이에 해가 넘어가 버린다. 지난 여름에 정이 든 늙은 부부는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오질 않는 것이 자기들 탓이나 되는 젓처럼 미안해한다.
포마드 통에 심지를 단 기름불이 밝히는 밥상에 둘러앉아서 식전 기도를 드리면서 노인들은 주님의 어린 딸이 먼길을 무사히 닿은 것을 감사한다. 그리고 그녀와 여기서 만나기로 한 청년이 내일 차편으로 무사히 오게 되기를 간절히 빈다. 그녀는 끝내 울음소리를 입밖에 내고야 만다.
「이러면 안돼요. 하룻밤만 꾹 참으면 될 걸 가지구서, 자자, 몸에 해로와요. 이럴 땔수록 끼니를 제대루 해야지.」
모두 산나물뿐인데 늙은이가 호수에서 잡았다는 붕어도 올라 있다. 그녀는 속이 올라왔다. 문득 보인다. 어두운 호수의 밑바닥에 누워 있는 자기의 입으로 드나들고 있는 고기떼들이. 그녀는 더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늙은이들은 말리지 않는다.
작년과 같은 그 방에서 그녀는 호수를 내다본다. 원래 숙박은 받지 않고 철에 찾아오는 인근의 소풍객들에게 차와 식사를 대접하는 집이라 크지도 않다. 혼지 있고 싶은 마음을 알고 있는지 주인 부부는 잠자리를 보아주고는 자기들 방에 돌아가서 찬송가를 부른다. 많이 불리는 곡이어서 귀에 익은 그 노래를 그들은 조용히 같이 불렀던 것이다. 이 방에서 지난 여름에. 아아. 그러고도 이렇게 될 수 있다니. 우리는 호수에 나갔다. 작은 배를 타고 저어나갔다. 그는 물론 노 젓는 것이 서툴다. 기우뚱기우뚱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얼마를 젓다가 돌아보면 우리 배는 그저 그만한 언저리를 빙빙 돌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 배가 남겨놓은 물 이랑이 달빛 속에서 또아리를 풀어 가는 뱀처럼 구불거려 보인다.
나는 소리 없이 일어서서 물가로 내려간다. 노인들의 노래 소리도 그만하게 들릴 만큼 가깝다.
우리는 갈대 사이로 배를 저어간다. 갈대가 있는 데는 빠져가기가 더 어렵다.
달빛은 갈대 사이로 쏟아져 내린다. 가냘픈 창대처럼 갈대는 달빛을 튕겨내고 물 위에 그만한 수의 그림자를 눕여 놓고 있다. 서 있는 은빛의 창대들을 헤치고 물 위에 쓰러진 그림자를 깨뜨리면서 배를 몰아간다, 처벅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처벅처벅거리면서. 갈대가 뱃전에 부딪치는 탁탁탁 하는 소리를 내면서. 단단하면서 약간 물기 있는 소리. 노가 갈대를 헤치는 팔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한바퀴 들리는 소리 사이에서 뱃전에 부딪치는 갈대소리는 한결 잦다. 사그락 사그락 할 때는 스칠 때. 지금 그 소리가 들린다.
지금도 배 세 척이 물가에 매여 있지만 저기 보인다. 우리가 탄 배가 갈대 사이를 지나는 것이. 훨씬 들어간 곳이지만 배 가는 소리도 들린다. 탁탁탁 부딪치는 소리만이 아니고 은밀한 사그락 사그락 소리까지도. 자기 귓속의 귀지가 무너앉는 소리처럼 가깝고 가깝게.
좋지?
좋아요, 참, 좋아요.
내 친구가 여기 한번 가보라는 거야. 전혀 알려지지 않은 명승지라는 거야.
그분도 이렇게 했나요 ?
그건 말 안 하더군.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린데 어때 ?
그런 말 싫어요.
응? 내가 나빴어, 화났어 ?
처벅 처벅. 타 탁 탁. 그 사이로 살그락거리는 숨소리를 그는 자기 입술로 막는다.
사랑해.
사랑해요.
영원히.
영원히.
어떻게 사랑하면 다 사랑할 수 있을까?
다 사랑하는 것 싫어요.
-무-슨 소리지?
다 사랑하면 어떡허게요?
우리 죽을까?
어머 왜 죽어?
죽기가 무서워?
당신하고 살고 싶어요.
살아야지.
이담에 죽으면 같이 파묻혀요 네?
왜 파묻히는 소릴---
어머 자기는?
그들은 웃는다. 서투른 노 끝에서 빛나는 물방울이 튀어나간다.
인제 그만 나가요.
얼마 오지도 않았어.
그래도 많이 왔어요.
난 헤엄 못하니까 당신만 믿어.
저도 못해요.
온 누리에 은빛이 넘쳐흘러서 서먹할 만큼한 크낙한 행복. 그들은 다시 노를 저어 그녀의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끝에서 끝이 보이는 호순데 그들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기슭에도 닿지 않았는데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갈대 숲에서 그들의 배가 쑥 나온다. 부인이다. 그의 부인이다. 아아. 나쁜, 나쁜 사람. 그녀는 한발 물가로 다가선다. 사라졌다. 그들이 타고 있던 배는 어느 기슭에도 없는데. 갈대 숲은 아무 것도 감춘 것이 없는데. 그의 목소리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 그 밤에 부르던 노래. 나쁜 나쁜 사람. 거짓의 호수로 나를 부른 사람. 그녀는 한 발 더 다가섰다. 어느 기슭에도 배는 없고 호수로 부르는 젊은 노래 소리 대신에 늙은 목소리들이 신(神)을 부르고 있는 평화스런 소리를 등뒤에 듣는다.
노인들 방에 가 앉는다. 대단찮은 가구들이 모두가 잘 닦아놓은 곱돌 솥처럼 참하다. 시렁에 얹어놓은 산차 꾸러미가 언뜻 보기에 시래기 널어놓은 모습이다. 그 밑에서 노인들은 산차 같은 이야기를, 시래기 같은 이 야기를 들려준다. 눈으로 듣는다. 고개로 듣는다. 제 속의 환상을 보면서 제 슬픔에 혼자 주억거리면 노인들에게는 고즈넉한 말동무가 되어준 것이 된다. 그래서 산차 같은 이야기고 시래기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도 자리를 뜨고 싶지는 않다. 생명이 멍해지고 노인들의 얘기꼬리도 놓치면 벌레소리가 몰려온다. 포마드 통에 심지를 단 기름불은 창호지를 적시며 밝혀주는 달빛보다 훨씬 못하다. 창호지 너머로 그녀에게는 보인다. 은빛의 갈대들이 창창하게 꽂힌 호수가. 노인들은 그녀가 참하다고 한다. 덕이 있어서 남편 복이 있겠다고 한다. 달빛이 번쩍이는 호수에 그들이 탄 배가 미끄러져 간다. 두 사람이 탔는데 세 사람이다. 얼굴이 셋인데 몸은 둘이고 한 몸뚱이에 얼굴은 하나씩이다. 갈대가 배를 때린다.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참한 청년이라고 노인들은 말한다. 요즈음 세상에는 시골 젊은이들이라고 참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내일은 꼭 온다고 한다. 그러면 교회에 나가보자고 한다. 건너 마을에 있는 교회에 셋이서 가자고 한다. 셋이 탄 배에 두 사람이 앉아서 그녀를 도고 웃는다. 어쩜. 그녀는 노엽다. 노인은 자기 말이 통해서 즐겁다. 노인은 아들 셋을 앗아간 전쟁이 노여웁다. 늙은 마나님은 성경책을 편다. 치마꼬리를 눈에 가져가는 형국으로 성경책을 편다. 늙은 여인도 그녀의 호수를 본다. 그녀의 호수에서는 주님께서 물위를 걸어가신다. 그녀는 알릴락말락 몸을 흔들면서 주님을 따라 중얼중얼 호수를 건너간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온다. 앉지 않고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다. 벌레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오랫동안 서 있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그렇게 아득하게 벌레소리에 잠겨 있다가 다시 노인들에게로 간다, 혼자서 자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노인들은 그녀를 아랫목에 눕히고 자기들은 웃목에 밤송이처럼 오그라 붙는다. 기름불이 꺼지고 방안에 싯부연 달빛이 가득 찬다.
한 해를 호수에서 살았다. 어디를 가나 호수가 있었다. 무슨 일을 하나 호수가 있었다. 그녀의 스물네 시간에 호수는 그녀의 속에 있고, 밖에 있고, 거기서 그들은 늘 배를 타는 것이었다. 호수에서의 삶. 사그락 대는 갈대 숲의 목소리 속에서 도시의 해가 뜨고, 호수에 어울리지 않는 도시의 부분들은 호숫가에서 산등성이에서 스르륵 움직이던 반딧불보다도 못했다.
그녀는 창문으로 내다본다.
밤의 호수. 묵화처럼 둘러선 산 그림자 속으로 밖으로 차단한 여린 빛의 티끌들이 스르륵스르륵 떠돈다. 그것들은-반딧불들은 홀수 위에도 흐른다, 갈대 숲 사이사이로 인불처럼 흐르고 줄기에 매어달린다. 깜박 내려앉은 태양을 미처 따르지 못하고 달은 뜨기 전 한결 어두운 하늘에 은하수가 흐른다. 별들은 호수로 떨어져 내려와 물 속에 잠기고 갈대 숲 사이사이로 인불처럼 흐르고 묵화처럼 둘러선 산 그림자 속에서 밖에서 차단한 여린 빛과 티끌이 되어 스르륵 스르륵 떠돈다.
이윽고 달이 뜬다. 호수는 빛의 거울이 된다.
갈대 사이로 배가 지나간다. 밑바닥에 문둥이가 누워 있고 여자가 곁에 앉아서 남자의 허물어진 이마를 짚고 있다. 문둥이 얼굴에서는 여기저기 은빛의 고름이 배어 나온다. 여자는 거기다 입맞추고 핥아먹는다. 여자가 문둥이가 된다. 달처럼 환한 남자가 누워 있고, 얼굴이 허물어진 여자가 곁에 앉아 있다. 여자는 세 손가락만 남은 손으로 근심스럽게 남자의 이마를 짚는다. 남자는 몸서리치며 일어난다. 가만있어야 해요, 하고 여자가 말한다. 나를 만지지 말아. 남자가 그렇게 말한다. 제가 만져야 나아요. 나를 속였지, 하고 남자는 말한다, 억설을 한다고, 그 자리에-없는 내가 발을 동동 구른다. 당신이 그래도 좋다고 하지 않았어요? 하고 여자는 말한다. 나 아닌 패가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하고 있다, 얼굴이 왜 그렇게 됐어 ? 하고 남자는 말한다. 어디서 그렇게 많이 고름을 빨아왔어, 하고 남자는 말한다. 내게서 ? 내게 어디 고름이 있어. 여기 있잖아요 ? 그녀는 은빛 나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허물어진 얼굴에 흐르는 고름을 찍어 보인다. 여기 있잖아요 ? 하고 여자는 말한다. 네가 나를 망쳤어, 남편이 있으면서 나를 유혹했지? 하고 남자가 말한다. 아아 거짓말을. 당신도 아내가 있으면서, 하고 웃는다. 그것이 정말인데. 내 남편은 저기 있어요. 여자는 은빛의 손가락을 물 속에 잠그면서 가리킨다. 호수의 밑바닥에 달 같은 남자가 누워 있다. 손짓한다. 저이가 불러요. 가야 해요. 그녀는 물 속으로 내려간다. 남자와 여자가 탄 배는 어디론지 가버렸다, 어느 언덕에도 닿지 않고 그들의 배는 먼 항구로 가버렸다. 그녀는 그들이 웃으며 가는 것을 본다
호숫가에 매어놓은 세 척의 배는 그때처럼 그녀의 눈 아래 있고, 그런데도 내 세상은 끝난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한밤내 자지 못했는데도 머릿속이 은종이처럼 맑다. 늙은 주인은 그녀와 마주앉아 호수를 둘러싼 산을 가리킨다. 한가한 틈이면 마누라와 둘이 여기 앉아서 서로 무덤자리를 짚어본다고 한다. 그들의 의견은 아직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한다. 저기 눈에 띄는 소나무 아래가 좋지 않느냐고 한다. 할아버지는 오래 사신다고 말한다. 늙은 주인은 그래도 여기저기 산비탈을 가리켜 보이면서 그들이 오래 살 집터를 이야기한다. 소나무 저편이 차(茶)밭이라 한다. 작년에 그들은 어찌어찌 하다가 가보지 못하고 만 곳이고. 차 이야기가 나온다, 차는 까다로운 식물이라 한다. 자리가 바뀌면 여간해서 살지 못한다고. 그래서 혼인 예식에 다례식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 지아비 한 지어미를 섬겨 해로 백년하자는 뜻이라 한다. 서로를 떠나서 서로의 삶은 없으리라는 정절의 맹세라 한다. 가냘픈 나무 포기보다 못한 사람의 이야기가 슬프다. 집에 데리고 가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가족을 알자고 하지도 않았다. 약혼식을 하자고도 않았다. 도장 찍고 주고받는 것이 싫어서. 세상을 얕보면서 살리라 했다. 속고 속이는 험한 꼴은 유행가에나 있는 것이었다. 뭐 애써 그리 생각한 것도 아니겠다. 사랑하기에 태일 바빠서. 당신하고 죽고 싶지만 내 몸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고. 나를 남편이라 애비라 부르는 것들이 나를 묶는다고. 땅을 옮겨 앉아도 안 죽겠노라는 사람. 나무에 목숨을 걸었던 내 바보.
높은 구름이 하늘에 비껴 있고 호수는 고요하게 빛난다. 허깨비들은 다 어디 갔는가. 그 추한 것들은. 어지러이 뛰던 그것들은. 노인이 일어서든 기척에 퍼뜩 다른 정신으로 돌아온다.
늙은 부부는 그녀를 두고 건너 마을 교회로 갔다.
빈집에서 서성거리다가 정자에 와 앉는다. 누렁이가 곁에 와 엎드린다. 털이 수북한 늙은 개다. 같이 갔으면 좋겠지만 그 사이 사람이 올까봐 집에 있으라고 늙은 부부는 말했다, 사람이 온다고. 정말 올 것 같은 환상에 가슴이 미어진다.
그녀가 찾아온 시간에 그 사람도 불현듯 달려오고 싶은 마음이 솟기를 바라는 마음. 방에 가서 시계를 본다. 정말 약속한 것처럼 사무친다. 반딧불보다 약한 우연을 바라는 마음이 해바퀴만한 환상이 된다.
호수의 겉에서 반짝이는 햇빛 알알들을 낟알 줍듯 헤아리면서 기다린다. 그 숱한 낟알을 다 주워도 사람은 오지 않는다.
뒤뜰에 가서 닭 모이를 준다,
그늘에 널어놓은 산차를 뒤적인다.
부엌에 가본다. 반지르르한 솥뚜껑을 들어본다. 찐 고구마, 찬밥이 들어 있다. 뚜겅을 닫는다. 찬장을 열어본다. 고사리 접시가 하나, 도라지 무친 것이 하나, 이름 모를 산나물이 두어가지 더 있고, 말짱하게 씻은 그릇들. 어디 한군데 손댈 데가 없다.
정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산에 오른다. 나무 같은 것들이 서 있고, 풀 같은 것들이 자라 있달 뿐 아랑곳없는 마음이 산을 오른다. 벌레 소리가 짜증스럽고 맨 종아리는 쓸데없이 따끔거린다.
내려와 버린다.
도로 정자로 온다. 방으로 가서 시계를 본다. 물가로 내려간다. 누렁이가 따라온다. 호숫가에는 세 척의 배가 매어져 있다. 닻줄을 푼다. 올라간다. 기우뚱하면서 그녀든 배 가운데 선다. 노가 없다. 다시 내려서 뒤꼍으로 간다. 노 한 개를 들어다 배에 얹는다. 누렁이가 의아스럽게 쳐다본다. 하나를 마저 가져다가 싣고 탄다. 노 하나를 들어 물밑을 민다. 천천히 모로 틀어지면서 배가 쑥 나간다. 두 팔에 힘을 주어 노질을 해본다. 안 나간다. 씨애질을 한다. 누렁이가 짖는다. 어느새 누렁이는 발을 반쯤 잠그고 물 속으로 들어와 있는데 그녀의 배는 누렁이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은 나와 있다. 누렁이는 또 짖는다. 그녀는 또 젓는다. 앞으로 나가는 대신에 호수는 그녀의 배를 모로 핑그르 돌려놓는다, 저만큼 앞에 물 속에 잠긴 구름의 머리까지 아무리 애를 써도 닿지 못한다.
갈대숲 사이에서 배가 나온다. 배에 탄 두 사람의 남녀는 얼굴이 허물어진 그 사람이다. 그들은 칼을 들고 그녀 쪽으로 쏜살같이 저어온다. 그녀는 죽을 힘으로 달아나는데 물에 잠긴 구름의 머리는 아직 그만하고 쏜살같이 칼 든 사람들은 고만한 데서 그만하게 그대로 저어온다.
저 사람들이 무섭다. 무서워. 이 호수에서 발리 빠져나가야지. 그녀는 살고 싶다. 배는 자꾸 맴을 돌고 팔은 이제 노처럼 뻣뻣하다.' 안되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배로 도망하기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허물어진 사람들이 칼을 높이 든다. 창던지기 선수처럼. 그녀는 결심한다. 호수를 떠나기로. 그이도 없는 호수. 자기도 없는 호수. 허깨비들이 사는 호수에서 잔해를 살아온 호수. 영원히 살아야 할 호수. 떠나고 싶지 않은 호수. 그래도 떠나는 길밖에 없다. 그녀는 노를 버리고 뱃전을 찬다. 물위를 달려간다, 물에 잠긴 구름의 머리를 깨뜨리면서 달려간다. 울면서. 호수여 안녕.
빈배를 향해 짖으면서 누렁이가 물가를 따라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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