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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

59. 날개와 사슬

by 자한형 2022.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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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와 사슬  -한수산

 

글자가 지나갔다. 흐리고 비가 내리겠습니다. 객차 통로 위에 설치된 전광판에서 오늘의 날씨를 알리고 있었다. 그는 일본이 자랑하는 특급열차 신칸센의 의자 등받이를 뒤로 넘겨 몸을 편안히 하며 차장 밖을 바라보았다. 전광판이 전하는 날씨는 맞았다. 아침에는 이미 흐렸었고 그리고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가 늙은 것인가. 비 내리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그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었다. 소년 시절의 일이었다. 고향의 할머니는 언제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여름방학에 들었던 말을 그는 또 겨울방학에 들었다. 작년에 한 말을 내년에도 또 듣게 만드는 사람 그것이 노인이라고 그는 그때 일기에 적었었다. 그러나 그 후 더 자랐을 때 그는 그 생각을 버렸다. 늙은이가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사람이라면 젊은이는 아무 것도 들려줄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그러므로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고. 그렇다면, 그때의 내 생각이 아직 유효하다면 나는 늙지는 않았다. 되풀이한다는 것은 늙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와서 한 주일을 보내고 났을 때였다. 이미 술을 마시는 것에도 그 동안 더욱 상스럽게 변해 있는 일본을 바라보는 일에도, 너도나도 달려와 도둑처럼 베껴다 한국에 팔아먹은 그 많은 것들, 건축에서 디자인에서 아이디어에서 패션까지의 그 일본적 원형을 보는 불편과 불쾌에도 그는 이미 지쳐 있었다. 밤늦게 호텔 침대에 누워 흘러간 영화를 보며 냉장고에서 양주를 꺼내 마시다가 잠이 들었던 날 아침 그는 잠이 깨어 욕실에 가 물을 틀다가 코피를 쏟았다. 켜 놓은 채 잠이 든 텔레비전이 어느새 아침의 뉴스들을 전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욕실로 갔고 두통을 느끼며 욕조에 물을 받기 위해 몸을 구부리고 샤워의 손잡이를 돌렸다. 그 순간 이마가 갑자기 선득해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희디흰 욕조바닥으로 붉은 코피가 떨어져 내렸다. 코피는 그가 흘려 놓는 샤워물에 풀리며 욕조의 구멍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가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묘지를 찾아간 것은 그날이었다.

처음부터 누구를 만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하고 시작한 여행이었다. 그렇다고 어디를 찾아가기 위해 관광안내서를 뒤적이지도 않으리라는 것도 혼자 가지고 있던 작은 약속이었다. 혼자일 것. 그것이 이 여행에서 그가 정해 놓은 유일한 규칙이었다. 그런 그였는데, 그날 아침 욕조바닥에 떨어지며 물에 섞여 흘러 내려가는 코피의 선연한 빛깔을 바라보다가, 전연 식욕을 느끼지 못하며 커피숍에 내려가 신문을 펼쳐들고 앉았다가, 일면에 나와 있는 문고판 책들의 광고를 무심히 들여보다가, 그는 문득 다자이 오시무라는 일본의 작가를 기억해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가슴 어딘가에서 무엇인가 둔중한 것이 두웅 울리면서 자신의 내면에 켜를 이루며 쌓여 있는 시간을 흔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저 과거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먼 곳에 자리한 시간, 소년 시절이 끝나는 한때를 일으켜 세워 갑자기 그의 기억 속에서 마치 석양빛을 이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갈대처럼 흔들리게 했다.

[인간실격], [사양]으로 대표되는 작품을 남긴 다자이 오사무가 한 여인과 함께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것은 1948년의 일이었다. 그의 시체가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일 주일 후, 그가

서른 아홉 살이 되는 생일날이었다. 바다에 빠지거나 약을 먹거나 목을 매면서 여섯 번에 걸쳐 시도했던 자살미수. 그렇게 죽음으로 향해 간 것이, 그것이 그의 생애였던가. 이미 차게 식어 버린 커피를 내려다보면서 기억 속에 있는 다자이를 그는 떠올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것만이 그의 생애일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나가는 웨이터에게 커피를 더 가져오게 하고 나서 담배를 피워 물었을 때 그는 갑자기 오늘 하루가 이제부터 신선하게 아침을 열며 개어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자이의 묘지를 찾아가기로 한 것은 그때였다.

몇 년만에, 두 번째 오는 길이었다. 그는 역을 빠져 나와 옛 생각을 하며 다자이의 묘지가 있는 센린지(神林地) 절간까지 걸었다. 주변 주택가의 집들이 변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옛날을 잊게 할 정도의 변화는 아니었다. 시간의 때가 묻어 보이는 까아만 일본식 목조주택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집들이 모두 양옥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가 전에 여기에 왔던 것은 한 일본 여인의 안내를 받아서였다. '한국 산수화의 오늘'이라는 기획전이 열렸을 때 그의 작품도 거기 전시가 되었었다. 그녀는 그 화랑에서 일을 하는 여인이었다. 그때 어쩌다 이야기 끝에 그는 자신이 지금 화가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청년 시절 한때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했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차를 마시던 한가한 자리에서였다. 그때 그 여인이 놀라듯, 그럼 '오토키'를 아시나요? 내일이 바로 그날입니다. 하고 말했다. 우리말로 읽으면 앵도기가 되는 그날은 바로 다자이 죽은 후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그를 기리는 기일의 이름이었다. 날짜는 죽은 그의 시체가 발견된 날이었다.

다음날 그는 시간을 내준 그녀와 함께 다자이의 묘지를 찾았었다. 저녁 빛이 길게 그림자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아마 무슨 전야제처럼 어두워지면서부터 행사가 있나 보다 그는 생각했다. 밤에 누군가를 기리는 행사를 한다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은 아닐까 상상해 가면서. 그이 무덤이 있다는 절 앞에 닿았을 때였다. 저녁 무렵이었는데도 꽃을 든 젊은이들이 몇 명 절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행사가 몇 시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여자는

"종일이에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며 웃었다. 이해하기 힘든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절 안에 도착하며 이내 풀렸다. 일본의 절이라는 것이 우리와는 달리 세속과 깊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특히 장례식을 거의 도맡아 하는 곳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었는데도 절 구내에서는 다자이 독자들이 하는 낭독회 행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묘지는 절 뒤편에 있었다. 절에서 관리하는 묘원에는 몇 백 기는 되어 보이는 묘지가 줄을 맞추어 늘어서 있었다. 다자이의 묘지가 어디인지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묘지 입구에 그이 묘가 어디인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묘지에는 사람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참 이상한 사랑이었어 하고 그는 훗날 몇 번이나 그날의 모습을 떠올렸다. 조그마한 묘지는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꽃바구니로 뒤덮인 어느 장례식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송이 또는 몇 송이의 꽃을 갖고 와 바친 사람들의 꽃이 모여서 다자이의 묘지 전체를 하나의 꽃다발로 만들고 있다고 해야 할 그런 모습이었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참배를 하러 온 사람들의 거의 전부가 젊은이들이 아닌가. 그들은 묘소 앞에 꽃을 바치고 나서 향을 피웠고 서서 묵도를 하거나 합장을 했으며 술을 올렸다. 그들은 술을 잔에 부어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술을 병째 비석의 위에서부터 그의 이름에 들이부었다. 흘러내린 술에 향이 젖어 꺼지고 그러면 다음 사람은 또 향에 불을 붙이고

…… 묘소 주변은 비석에 부어댄 술과 끊임없이 피워대는 향으로 하여 술 냄새와 향내로 뒤덮여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비석의 모습이었다. 돌에 새겨진 그의 이름의 획을 따라 무언가 빨간 색깔의 조그마한 과일들이 잔뜩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비석의 글씨는 그렇게 해서 그 열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오토(앵두)라는 것을 안 것은 동행한 여자의 설명을 듣고서 였다.

"다자이가 쓴 작품 이름에 [오토]라는 것이 있어요. 이 행사의 이름도 거기서 딴 것이죠."

그때 한 젊은이가 아주 기묘한 행동을 했다. 친구가 다자이의 묘소에 꽃을 놓으려고 하자 그 비석 앞에 무더기로 놓여 있는 꽃 가운데 시든 것을 몇 다발 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러곤 그것을 앞쪽에 있는 묘지에 갖다 놓았다. 아무리 꽃이 더 놓을 자리가 없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쪽에 있는 꽃을 왜 남의 묘지에 놓는 것일까. 그때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 묘지는 모리 오가이의 것이에요."

그랬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었다. 죽은 후 그는 자신이 늘 원했던 대로 평소 존경했던 모리 오가이의 묘소 옆에 묻혔다고 일본의 근대문학을 연 대작가는 죽어서 다자이에게서 넘쳐나는 시든 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싶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향내음에 실리면서 지나갔다.

"종일 이렇게 계속되는 겁니다."

그가 말했다.

"이건 존경이 아니라 사랑이군요."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는 센린지까지 걸었다. 처음 이곳을 찾았던 그때는 저녁 무렵이었는데 지금은 여름햇볕이 뜨거운 한낮이었다. 묘지도 죽은 자의 집이긴 하지만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변화를 겪지는 않는 것인가.

몇 년만에 만나는 그의 묘지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누군가가 찾아와 놓고 간 것이리라. 그의 비석 앞에는 캔맥주며 일회용의 조그만 정종병들이 놓여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비스킷과 껌과 담배도 놓여있었다. 시들어 가는 꽃이 정종병에 담겨 여름햇빛에 고개를 꺾고 있기도 했다.

그는 꽃을 가지고 오지도 않았고 사들고 온 술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놓고 나서 그는 앵두가 가득 꽂혀 있던 그의 비석을 매만져 보았다. 이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 사랑일까. 그의 무엇이 이토록 젊은이들을 껴안는 힘이 되는 것일까. 나 또한 젊은 날의 한때를 그가 만든 감옥에서 다리에 족쇄를 차고 살지 않았던가. 잠자리 하나가 날아와 그의 비석 위에 앉았다. 문득 그가 쓴 에세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가을. 잠자리 투명하다.' 가을이 되면 잠자리의 모습이 가을햇살에 투명하게 보이고 그것은 마치 잠자리도 쇠약하여 육체는 죽고 정신만 너울너울 날아다니는 것만 같다는, 가을의 이미지였다. 그는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고도 썼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생가, 그가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일본이 전쟁에 광분해 있던 시절, 폭격이 쏟아지는 도쿄를 떠나 가족을 끌고 피해 가 지내다가 다자이가 항복의 그날을

맞았던 그곳의 그 집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은 절을 나오다가 사무실에서였다.

자이 오사무의 묘에 왔다 간다는 말에 직원은 말했다.

"아오모리에는 안 가 보십니까? 아직 그가 태어난 집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그 순간 이상한 충격으로 그 말을 들었다.

"지금은 여관이 되어 있습니다. 거의 옛날 모습 그대로 입니다. 워낙 잘 지은 집이니까요. 거기서 하룻밤 주무시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가 병약했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다자이는 유모의 손에서 길러졌고 후에는 숙모

의 손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작문과 외국어에 재능을 보였고 소년 시절의 학교성적은 우수했다. 그러나 열 아홉이 되는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그는 최초의 자살미수 사건을 일으킨다. 그는 이미 그때 공창이라고 말해도 좋은 유곽에 드나드는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작하는 다자이의 생애는 그에게 하나의 불가해한 삶의 전형처럼 느껴졌었다. 다자이는 일본의 명치유신 이후 대금업으로 돈을 모으면서 신흥 상인이며 대지주가 된 집안에

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소작인들이 쟁의를 벌이며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해 높이 4미터의 벽돌 담장을 둘러친 6백평 대지의 대저택을 신축했다. 그는 그 새 집에서 태어난 첫아기였다. 집안에는 일하는 사람만도 서른이 넘었다고 알려진 그 저택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말을 들으며 그는 햇빛이 들끓고 있는 절 마당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저 과거라는 이름의 늪이 성큼성큼 걸어와 눈 앞에 서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그의 죽음에서부터 탄생까지 그가 다자이를 알고 나서부터 품어 왔던, 길고 긴 읽어낼 수 없었던 모순이 있었다. 어둠의 기둥과 어둠의 기와를 얹고 서 있은 거대한 집을 그는 그 늪과 모순 속에서 보았다. 아오모리를 향해 떠나기 사흘 전의 일이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떻게 그 삶이라는 나날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행복할까. 어느 날 동북 방향에서 귀인이 나타나며 서쪽으로

가면 손재수가 있을 것이라는 식의 운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때의 예상이란 자산의 삶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을 말한다. 나는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어떤 여자와 만나 사랑을 시작할 것이며, 마흔이 되었을 때는 어디에서 어떤 형태의 나날을 보내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흔히 사람들이 꿈이라고 말하는 미래에 대한 바람들 말이다. 그것이 사교이든 경찰관이든, 철도기사여도 마찬가지다.

열 아홉 살에 나는 무엇을 꿈꾸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그것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확실한 형태로서의 그 무엇도 그 시절의 그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다만 그때의 자신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다는 것만을 그는 기억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아버지가 기침을 하며

돌아오는 저녁 집에서,

"김장순이네가 마당골 색시를 메누리로 본대."

하는 마을사람들에게서, 서울 강릉간을 오가는 금강버스가 뿌리며 가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옥수수가 자라고 개구리가 놀라 달아나는 그 논밭 풍경에서, 그랬다 그는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서 떠나고 싶었다. 그 행위는 도망을 친다거나 달아난다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아마 버린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그때 그는 자신이 견고한 껍질 속에 웅크리고 물밑을 기고 있는 달팽이처럼 생각되었었다. 달팽이가 어디로 떠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 나선형의 그 껍질을 무겁게 끌고 물 밑 모래밭을 기어나가면서도 그 속에서 달팽이가 하루살이가 날아다니는 저 강 언덕의 저녁 무렵을 꿈꾸고 있지 않으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그것이 그의 열 아홉 살이었다. 그리고 그때 만나 소설이 [사양]이었다. 그것은 읽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그에게 있어 [사양]은 한 눈부신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그것은 적어도 살아가는 일이란, 농부가 되어 밭을 갈거나 우편집배원이 되어 하루 몇 십리를 걸어야 하거나 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하면서 알사탕을 파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는, 사람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눈뜸을 가르치는 감동이었던 것이다. 무엇을 쓴다고 하는 행위의 자유, 자신의 삶이란 자신이 재단하고 수를 놓으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그는 거기에서 읽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인가를 창조한다는 일의 그 눈부신 아름다움까지를.

모리오카에서 신칸센을 내려 갈아탄 열차는 그 객차의 모습과 정비례하며 느렸다. 의자 시트커버는 사람들이 손길로 낡아 있었고 재떨이는 더러웠으며 바닥에는 누군가의 우산에서 흘러내린 듯 물이 떨어져 있었다. 주위의 승객들을 둘러보며 그는 열차 안이 낡아 있는 것만큼이나 타고 있는 승객들도 낡은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습부터가 어딘가 반짝거리고 번들거리는 일본의 한가운데에서 밀려난 것 같은 느림과 한가함과 후줄그레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열차는 그 객차의 낡음만큼이나 느린 속도로 조금씩 산악지대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모리오카를 떠나 얼마를 지났을까. 창 밖으로 이어지는 산들을 바라보다가 잠시 잠이 들었던 그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눈을 떴다. 열차는 서 있었다. 빗물자국이 얼룩져 있는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열차가 선 역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제복을 입은 역원이 한 사람 바라보였지만 그 또한 마치 텅 빈 플랫폼의 기둥이나 의자 같았다. 그 모습은 마치 무엇을 위해 지어 놓은 세트 같았다.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거나 혹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맞이하는 역이 아니었다. 버리기는 아까운 그러나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어진 장소에 와 버린 것인가. 그는 자신이 잠시 잠이 든 사이에 사람들은 갑자기 어디론가 다 떠나 버린 것 같은 플랫폼의 건너편으로 비 그친 역사 건물과 젖은 선로를 어둡게 바라보았다. 움직이는 것은 아무도 보이진 않는 역에 멈추어 서서 어느 곳으로도 떠날 것 같지 않게 열차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생각했다. 아마 어느 객차엔가 지금 이곳 명물인 도시락이 실리고 있으리라. 그것이 일본의 열차이니까. 일본 승객들은 열차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하니까. 멀리 역사 너머로 광고판이 바라보였다. '아오모리­맛의 임금님'하고 시작되는 어느 식당의 입간판이 바라보였다. 그 간판이 갑자기 그에게 아오모리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실감시켜 주었다.

그리고 열차는 떠났다. 차창 밖으로는 산이 이어졌다. 옥수수 밭이 보였고 담배가 자라고 있는 밭이 가지런히 줄을 지어 나타났다. 산악 지대로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은 이따금씩 나타나는 농가 건물이 알려주고 있었다. 눈이 많이 와서인가, 높고 경사가 급한 지붕을 풀로 해 덮은 민예풍 농가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그 모습들 위로 푸른빛이 도는 안개가 엷게 퍼져 있었다. 안개가 푸른빛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먼 산과 그 사이사이를 헤집고 있는 밭들이 모두 푸른색이었으므로 그 모든 푸른 빛 위에 드리워져 있는 안개까지도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그 푸른 안개를, 아니 푸른 산에 드리워진 희디흰 너울을 바라보면서 그는 갑자기, 이 여행의 모든 것이 덧없어지는 허탈함에 빠져들어 갔다.

서울에서의 나날들이 수초가 너울거리는 바닷속처럼 다가 왔다. 자신의 나날들은 그는 매음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단지 안에 두 개의 아파트를 가지고 그는 살았다. 한쪽 아파트 자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거실에 서서 멍하니 단지 안을 바라보곤 했었다. 불 꺼진 고층 아파트들 그것은 어둠에 싸인 성채처럼 드높아 보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안에도 저와 같은 높이의 어둠을 가진 성들이 우뚝우뚝 서있는 것을 보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인가. 왜 나는 삶을 살지 않고 그리고만 있는가. 삶은 그림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삶은 내가 만들어 내는 그 많은 산이나 새나 꽃이나 여인들 그 어느 것과도 닮아 있지조차 않지 않은가. 나는 왜 이 생명을 살지 않고 남들이 사는 삶을 그들의 어깨너머로 구경하면서 그들이 집을 사면 들여놓은 장롱과 다를 것 없이 가구처럼 생각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가. 거기에 얼마만큼의 진실이 있으며 그렇게 써도 좋은 시간이 나에게 남아 있다고 나는 믿는 것인가.

화가 누군가는 똑같은 값의 그림인데 왜 저 사람의 그림에는 참새가 다섯 마리인데 내 것에는 세 마리뿐이냐는 항의를 받고 두 마리를 더 그려 넣어 주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자신도 웃었지만 그와 내가 무엇이 다를 것인가. 현대니 오늘이니 젊은 물결이니 내일이니 중견이나 평론가 선정이니 새로운 조형이니 하는 이름을 앞에 붙이고 얼러대는 그룹전에 빠지지 않고 그림이 끼어 들어감으로써 그 첫날과 끝나는 날에 얼굴을 내밀다가 한 달 내내 술을 마셔야 했던 때도 있었다. 주장만 있고 조형이 없는 그림도 미학에 대한 폭력이었지만 모색이 없는 반복도 폭력이 아니겠는가. 팔린다는 것이 죄악인가. 아니다. 그것은 성실과 재능이 만들어낸 정당한 보상일 수 있었다. 그러나 파괴와 변화에 대한 몸부림이 없는 반복도 창조란 말인가.

작년에 그렸던 꽃, 지난달에 그렸던 산, 언젠가 그렸던 여인을 그리고 앉아서 그는 아파트를 샀고 전주 가까운 곳에 땅을 샀고 압구정동에 상가를 샀으며 몇 점의 갖고 싶었던 골동도 손으로 쓰다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은 매춘이었다. 정신의 스트립쇼였다. 그에게 있어 정신과 육체는 이원론 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매음이 사랑이 아닌 것은 거기에 나누어 갖는 환희나 상대를 향한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열정조차도 없는 장사일 뿐이다. 육체를 파는 것과 정신을 파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똑같은 추악이 아닌가. 정신의 자궁이 정신의 젖가슴이 정신의 성감대가 썩어가고 있는 나. 죽은 그림 속에서 함께 죽어가는 나. 그것이 자신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이를 닦다가 그는 하나의 말을 떠올렸다. 그린다고 하는 자유가 그리웠다. 그것은 그가 대학을 졸업한 후 젊은 화가로서는 드물게 동양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던 때한 말이었다. 그가 스물 여섯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그날 그는 오래 잊고 있던 그 말을 갑자기 떠올렸던 것이다. 그린다는 것. 화가. 그것은 자유였을까. 그는 그때 그렇게 믿었다고 마치 그 말을 한 사람이 자신이 아닌 그가 그 무렵 사숙하던 어떤 화가의 말인 것처럼 생각했다.

눈앞의 거울 속에는 칫솔을 물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술에 찌들고 과로에 지친 그 사내를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그 사내에게 중얼거렸다. 칫솔만도 못한 새끼. 칫솔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 곧은 솔로 주인의 치아를 닦아내며 상쾌하고 청결하게 주인의 치아를 부패에서 지켜준다. 솔이 닳고 구부러지면 칫솔은 또 그 주인의 운동화를 빠는 일로 스스로의 생명을 다해 온몸에 비누칠을 해 가며 봉사를 거듭한다. 그리고 끝내는 그 몸뚱이마저 두 동강이 나서 존재의 당위성이 끝난 후에도 주인집 아주머니가 수채 구멍의 덮개를 열 때는 또 그 반 토막의 몸으로까지 헌신하지 않는가.

화가의 자유가 그리웠던가 그대여. 칫솔만한 신선함이라도 잃지 않고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존재성을 가지고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가 그대여. 너는 지금 죽음 속에 서 있다.

며칠 후 그는 화실에 앉아서 소리 없이 자신에게 말했다. 떠나자. 어디든 떠나야 한다. 물론 내가 떠나지 않고 버리면 된다. 버리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떠나야 하는 자리는 형

태가 없다. 집어서도 끌어내서도 버릴 수 가 없다. 길은 내가 떠나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서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일본이라도 며칠 갔다와야겠어."

"왜 일본에는요?"

"가까우니까."

여행이란, 그랬다. 보고 느끼고 먹는 일이었다. 그것은 찾아간 곳을 보는 일이었고 찾아간

곳의 무엇인가를 먹는 일이었고 그리고 찾아간 곳을 느끼는 일이었다. 단순히 먹고 보고 느낀다는 그 행위는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의 곁에 있어 온 일상적인 나날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여행이란 바로 그런 일상적인 행위를 일상적인 장소가 아닌 곳에서 일상적인 시간의 틀을 깨고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에 와 한 주일을 보내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같은 악몽에 시달렸다. 그것은 더한 혼란이었다.

왜 나는 여기에 와 있는가. 차를 타고 앉으면 늘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순간 문득 그는 자신이 떠나고 있는 이 여행의 시작이 어디에서 있었던가를 생각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떠나게 했던가. 도대체 나는 무엇을 찾아보려고 했던가. 내 나날 속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일까. 나의 어디가 곪아 있었던가. 문득문득 죽음을 생각했다. 무엇무엇을 버려두고 무엇을 찾아서 여기에 와 있는가 하는 자성이 아니었다. 아무 것도 치유될 성질의 것을 자신은 가지고있지 못하다는 또 다른 염증이었다. 그 고름이 흘러 내리는 염증이 끝에서 생각하는 죽음은 차라리 구원처럼 달콤하게까지 느껴졌다.

아오모리에 내리면서 그는 어쩔까 망설였다. 일단 오늘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면 여기서 잠시 쉬어가고 싶었다. 비는 이미 그쳐 있었다. 일단 역사를 나가 한적한 찻집에라도

좀 앉아 있고 싶었다. 시계를 보았다. 두 시가 넘어 있었다. 아침에 탄 기차였다. 이제는 열차가 설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그 한결같은 플랫폼의 모습에도 지쳐 있었다.

여기서 또 아오모리와 후쿠시마를 오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는 일정이 그를 더욱 지치게 했다. 밖으로 나가기로 일단 결심을 하고 그는 역원에 다가갔다. 어디에서 몇 시에 떠나는 열차를 갈아타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역원에게 다가간 그는 츠가루 철도를 갈아타는 고쇼가와라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가야 하나요?"

군청빛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쓴 역원은 들고 있던 붉은 색의 삼각형 깃발로 바로 앞에 있는 열차를 가리켰다.

"이걸 타십시요."

"이걸요?"

". 지금 바로 떠납니다."

그냥 타야 할까 아니면 다음 열차가 언제 있는지를 물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망설이는 그에게 역원은 아마 이 사람이 일본말을 잘 알아 듣지 못하나보다 생각한 듯 그의 어깨를 밀며 말했다.

"어서 타십시오."

그때 어디선가 길게 벨이 울렸다. 그것은 마치 어쩌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화재경보 신호가 잘못 울렸을 때 나는 소리와 같았다. 그는 열차에 올랐다. 젊은 역원이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시가지를 빠져나가면서 창 밖의 풍경은 이제까지와는 또 다르게 변했다. 선로 주변으로는

끊임없이 이어진 과수원이 펼쳐졌다. 사과 과수원이었다. 차창 밖으로 손에 잡힐 듯 익어가고 있는 사과가 눈에 들어왔다. '사과라면 아오모리지요. 하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았다. 미소라 히바리가 부르는 그런 유행가도 있었다. 푸른 과수원과 그 너머로 바라보이는 농가의. 지붕들을 그는 무심히 바라보았다. 비로소 어딘가 멀리 떠나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허다. 그것이 열차 때문이 아닐까 그는 생각허다. 열차는 아오모리에서 내릴 때 탔던 열차보다 조금 더 낡아 있었다. 대학에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던 때, 추위로 얼어들어 오는 발을 오므려 가며 그는 아마 이런 열차를 탔었을 거라고 기억했다. 그때 자신이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이란 무엇이었을까. 밖의 까아만 어둠이 차창에 비추어 주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앉아 있던 그 열차에서, 그때 열 아홉 살의 소년이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서울이라는 낯선 세계였다. 그곳은 달팽이의 껍질 밖이었다.

"태어나서 미안해요."

소년은 그때 다자이가 한 그 말을 꿈꾸듯 떠올렸었다. 태어나서 미안하다는 그 말보다 더한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을 수 있으랴. 소년의 의식은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 서울에서 그는 다자이가 그에게 채워 놓고 있던 사슬을 풀었다. 한 사람을 떠난다는 것은 구슬펐지만 청년에게는 발전이었다. 그것은 키가 자라고 몸의 여기저기에 한 남자로서의 체모가 자라는 것과 같았다. 다자이라고 하는 한 작가가 가졌던 고통이나 불행이나 광기보다도 이 세계는 더 깊고 무겁고 어두운 고통과 광기 속에 잠겨 있다는 것에 눈뜨는 것으로 그는 그를 떠났다. 그건 엄살이야. 그는 더 치열해야 했어. 이거야 마치 소녀아이가 치르는 첫 멘스의 아픔과 같은 것이 아닌가. 어느 날 그는 다자이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그렇게 중얼거릴 수도 있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따금 헤어진 옛 여자를 바라보듯 그를 생각했다. 너와 함께 넘은 그 소년과 청년 사이의 언덕은 그러나 아름다웠고 아주 달콤한 감상에 젖으면서.

그리고 그는 이따금, 결국은 헤어져야 했던 여자의 뒷소식을 궁금해하듯, 지금은 누구와 결혼을 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듣는 심정으로 다자이를 생각했다. 그는 그에게 있어 최초로 삶을 가르친 은사였고 독약이었으며 깨어 나온 조그만 알껍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었다. 그가 몸으로 산 하루하루와 그가 남겨 놓고 간 작품과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과 환희와 그리고 젊은 날을 휘어잡는 사랑의 마약이란 무엇이었을까. 그의 자살을 이해하지 않고는 풀릴 수 없는 그것은 깊고 어두고 습기찬, 다자이라고

하는 지하실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자살에 얽매이게 했을까. 그에게 드리워졌던 그리고 끝내 떠나지 않은 자살에의 유혹은 무엇이었을까. 다자이의 생애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는 경쟁심과 섹스라는 굴레를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 느끼는 고통이지 다자이만이 껴안아야 했던 고통은 아니었다. 청춘을 넘어서며 인간이 가지는 고통이란 대개 섹스라고 하는 굴레와 경쟁심에서의 열등감이라고 하는 두 가지가 아닌가 그는 생각했었다. 경쟁심이란 얼마나 사람을 초라하게도 또는 비참하게도 하찮게도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인가. 인간의 욕망이라고 이름 붙여진 모든 것은 결국 경쟁심인 것이다. 그것은 열등감이든 우월감이든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힘도 그것이다. 공산주의의 결점은 결국 이러한 인간의 본능인 경쟁력을 사회구성의 힘으로 삼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전쟁도 착취도 모험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행위의 근저에는 이 경쟁심이라는 본능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심성 가운데 가장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이 경쟁심인지도 모른다. 진다는 것은 고통이 된다. 그리고 이긴 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언제 스스로가 뒤떨어진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진 평화일 뿐이다.

다자이라는 작가야말로 바로 이 경쟁심과 섹스 속에서 때로는 환희의 불이 켜지고 때로는

칠흑의 어둠 속에서 헤맨 작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은 그의 전시회를 보고 나오면서였다. 그랬다 그의 생애를 남다르게 지배하고 있는 섹스를 그때 그는 느꼈었다. 다자이의 삶의 굽이에는 어디에나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는 언제나 어제의 여자가 아닌 또 다른 여자였다. 그러나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이 죽음이 환희 속에서 이루어진 발작적인 삶의 포기가 아닐진대 무엇이 그를 그다지도 죽음에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을까.

그가 다자이의 생애가 가진 모순을 이해하려고 했던 과정 속에는 몇 번의 굽이가 있었다. 그 두 번째 만남을 그는 기억했다. 그의 묘지를 찾아간 후 몇 년이 지나 있었다. 그것은 그의 죽음이 있은 지 사십 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열린 전시회였다. 한여름의 동경 근대문학관에서였다.

유럽 여행에서 돌아오다가 이틀의 여유를 내어 동경에 내린 것은 친구의 도자기 초대전이

열리고 있어서였다.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일본이 마라푼다처럼 세계의 땅을 사고 건물을 사고 미술품을 사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대학가의 서점을 들렀다가 다자이의 전시회를 알리는 작은 포스터를 보았다. 그 때의 그로서는 작가의 전시회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형태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화가의 유작전이나 회고전은 그의 작품을 모아 전시하면 된다지만 작가에게 있어 더구나 죽은 지 사십 년인 사람의 무엇을 모아 놓고 보여 준다는 것인가. 일본에는 그런 유의 자연인에 대한 전시회가 많다는 것을 그는 그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을 내려 다시 주소를 적은 쪽지를 택시 운전사에게 보여 가며 그가 근대문학관이 있는 공원에 닿았을 때 밖에는 등에 땀이 흐르게 하는 더위가 한창이었다. 굵은 모래를 숲길을 걸어서 그는 그 전시장에 닿았다. 흰 전시장 건물 앞에서 입장권을 사 가지고 안으로 들어서면서야 그는 아 하고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그것은 이런 전시회도 있을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놀라움이 아니었다. 그 순간 이것은 우리 나라라면 결코 열릴 수 없는 전시회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누가 이미 죽은 지 몇 십 년이 되는 사람의 편지를 모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작가 시인의 어느 부인이 죽은 지 몇 십 년이 되는 남편이 쓰던 만년필이며 살아서 아끼던 작은 불상이며 그가 읽던 책들을 보관한단 말인가. 다자이의 전시회는 바로 그러한 물건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전시장을 들어서서 처음 만난 것이 다자이가에서 사용했다는 길고 큰 장의자였다. 그것은

마치 사진관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한쪽에만 팔걸이가 있는 의자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국민학교 때의 성적표가 있었다. 성적은 모두가 최고였다. 중학교 때 영어단어를 외우

던 조그만 단어장도 색이 바랜 채 미이라처럼 유리관 속에 담겨져 있었다.

한국의 한 작가의 유족과 한 서예가의 아내가 머리에 떠오른 것은 그 순간이었다. 작고문인들이 발자취를 찾아가는 문학기행을 신문에 연재했던 신문기자인 선배가 언젠가 그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 너 이장희라는 시인 알아?"

선배님도 그 사람이야 대학입시에 맨날 나오는 시인 아닙니까. 나도 대졸이라구요."

"이번에 내가 그 시인의 취재를 갔다왔거든. 물론 죽은 지가 아주 오래된 신인이다만 말이다 그 유족이 그 사람의 사진 한 장 도 가지고 있지 않은거야."

그는 그 선배의 말에 놀라기는 했다. 어떻게 해서 독사진 하나가 남아 있지 않을까. 아니 일제시대라면 졸업사진을 단체로 찍은 관습들도 있던 시절인데 그런 사진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단 말인가. 아니면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이 가난했던 사람이었던가.

"아니야. 그 집은 그 지방에서는 부호였어."

"그런데 왜 사진 한 장이 없단 말입니까?"

그의 말에 선배는 무슨 비밀결사의 내용을 누설하기라도 하는 표정으로 말했었다.

"집안에서 그가 죽자 다 태워 버렸대. 결혼도 못한 나이에 요절을 했으니까, 그 부모가 애비보다 먼저 가는 이런 불효가 어디 있느냐. 그래가지고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없앴다는거야. 사진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

과연 충과 효가 삶의 근간이었던 나라, 아 금수강산 삼천리 우리 나라여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옛일만은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무렵 갑자기 타계한 원로 서예가 한 분의 댁을 삼우제가 끝난 다음날 찾아갔을 때였다. 집안이 아주 달라져 있었다. 그분이 앉아서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던 거실에는 소파마저 치워진 채였고 서예를 하던 묵향 가득한 방 '관채당'은 이사를 간 하숙생의 방처럼 깨끗했다. 무늬와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다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던 방이었다. 낯선 집안을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미망인은 말했다.

"다 꼴도 보기 싫어서 없애 버렸어요. 그 양반 생각이 날 만한 건 모두요."

그 표정이나 말투가 어딘가 눈에 안 뜨이는 곳으로 치웠다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 돈이 될 만한 작품이나 물건들만 남겨두고 그분의 체취가 어린 것이라면 모두 아주 태워 버렸거나 어느 고물장수를 불러 휴지값에 치워 버렸다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로서는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분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분이 만지작거리던 조그마한 수석이나 아니 늘 곁에 놓고 보던 한적 한 권이라도 그 분에 대한 사랑으로라도 받아 간직하고 싶었던 그였다.

사랑을 기리고 간직하는 방법이 달라서겠지. 이런 걸 귀신단지처럼 닦고 위하는 사람들과

불효라는 이름으로 없애 버리는 민족성의 차이겠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전시회를 돌아보았다. 거기에서 그는 이십대의 다자이가 쓴 편지들을 보았고 집안의 유산을 포기한다고

형에게 쓴 각서를 보았으며 잡지사의 기자가 붉은 잉크로 조판의 내용을 지정한 그의 친필 원고지를 보았으며 그가 묵었던 온천과 그가 자살을 꾀했던 해변과 그가 함께 술을 마셨던 사람들의 사진들을 보았다. 마악 끝낸 것같이 먹물이 묻어날 것 같은 붓글씨도 있었다. 그러나 다자이의 체취가 묻어 있는 그 무엇보다도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그림들이었다. 유화도 있었고 문인화도 나와 있었다. 그림을 그렸어도 무엇인가가 되었을 사람, 그 그림들은 다만 그렇게 그에게 말했다. 태어나서 미안합니다 하고 말하며 외롭게 미쳐 갔을 그의 영혼이 무엇이 색채와 형태가 있는 세계가 아닌 사다리 같은 원고지와 활자를 선택하게 된 것일까.

전시장의 맨 마지막 방에는 그가 쓰던 만년필과 그가 아끼던 불상과 그리고 읽던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 속에서 그는 모서리가 낡은 모리 오가이의 전집 한 권을 보았다. 그의 묘지와 기일에 모여들던 사람들과 꽃과 그리고 다자이의 묘지에서 시든 꽃이 옮겨가던 모리의 묘지를 그는 기억했다.

전시장을 나와 발 밑에서 사그락거리는 모래를 밟으며 숲길을 걸었다. 전시장에는한 사람의 총체적인 생애가 비늘처럼 떨어져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곳 어디에서도 그는 다자이의 그 수없이 시도했던 자살에 대한 유혹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다자이의 생애가 품고 있는 모순 가운데 죽음이 가진 무게를 납득할 수 없었다. 죽어야 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전시장이 보여 주는 것은 다자이의 생애를 가득 차 있는 모순점이었다.

동경대학 불문과에 입학하면서 그는 선배의 권유로 공산당운동에 가담한다. 대지주의 아들이 아닌가, 지주인 부호의 아들을 무엇이 무산대중을 위한 공산당운동에 참여하게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거기에는 없다. 그리고 그는 그런 와중에서 또 긴자의 술집여자와 함께 바다에 투신을 하면서 자살을 꾀한다. 이것은 삶이 아니라 혼란이 아닌가. 이 땅 위의 질서가 바로 혼란이라 해도 그러나 혼란에도 혼란의 질서가 있는 것이다. 그는 광대인가, 아니면 그는 스스로의 삶을 유희의 대상으로 살았던 것일까.

그러나 그는 그 두 가지의 의문에 대하여 다 고개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작가였다.

그의 작품 곳곳에 스며 있는 그 해맑은 감성이 어떻게 광대의 몸짓이란 말인가, 그리고 또한 아무리 불가해한 인간이라 해도 스스로의 목숨 그 시간을 가지고 유희를 벌인다는 것은 인간의 몫은 아닌 것이다. 신이 그의 목숨을 우롱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인간의 생이 유희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시선일 뿐이다. 어떻게 인간의 목숨을 가지고 놀이를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츠가루'라는 그 고향의 지명으로 그가 고향에 대해 쓴 작품에 대해 눈을 뜬 것도 전시회의 도움이었다. 그것은 그가 고향에 대해 처음으로 쓴 본격적인 사소설이었다. 그러나 [순례]라는 소제목이 붙은, 고향으로 떠나는 그 첫장은 얼마나 가공할 모순인가, 그는 소설 속에서 말하고 있었다. 'A는 서른 여섯에 B는 서른 일곱에 C는 서른 여덟에 D는 서른 여덟에 E는 서른 일곱에 아쿠다가와는 서른 여섯에 G는 서른 일곱에 죽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죽어들 갔다. 이 나이야말로 작가에게는 중요한 나이다.' ABCD도 아쿠다가와도 EG

일본의 문인들이었다. 이 말을 들으며 그의 아내가 묻는다. 그래서, 괴롭다는 건가요. 누가 몇 살에 죽은 그것은 그 사람의 목숨이 만들어낸 형태일 뿐이다. 한 천재가, 한 광란의

시인이, 구름을 헛딛어 땅 위로 떨어진 시선인 듯한 표표한 화가가 스무 살에 죽었기로 그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자신도 스무 살에 죽는다고 천재가 되고 광란의 삶을 산 것이 되고 구름을 헛딛은 신선이 되는가, 전시장을 뒤돌아보며 나는 묻고 싶었다. 그의 아내가 한 것과

똑같은 말을, 그래서 당신은 괴로웠나이까.

"저걸 타십시요."

역원은 마주 보이는 철제계단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흉물스레

세워진 육교였다. 다만, 지붕이 있을 뿐이었다. 그 다릿발 밑으로 수없이 많은 선로가 무슨 자국처럼 기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리킨 건너편에는 마치 공중변소 같은 건물이 하나 눈에 뜨였을 뿐, 열차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오후도 기울고 있었다. 아오모리를 떠나 또 갈아탄 열차가 선 곳이 고쇼가와라였다.

"열차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쪽에 있지 않습니까?"

어디에 열차가 있다는 것인지. 분명 '츠가루 철도'라고 쓰여진 한문글씨가 창고 같은 건물벽에 바라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열차는 보이지 않았다. 난감한 얼굴로 건너편을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역원이 말했다.

"저쪽에 있지 않습니까, 건너가서 빨리 타세요. 떠날 시간이에요."

역원이 가리키는 손끝은 마주보이는 건너편의 가건물과는 멀리 떨어진 뒤편이었다. 거기에 단 한 량의 객차가 마치 이제는 폐기처분이 되어 버려진 고철처럼 서 있었다.

"저기 있는 저걸 탑니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

대답은 한마디였다. 육교를 건너가서, 공중변소 같은 건물 앞을 지나서, 그 고철 같은 한 칸짜리 객차 앞으로 걸어가다가 그는 책가방을 뜬 채 제복을 입고 서서 무어라 떠들고 있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가나기엘 가는데 저걸 타면 됩니까"

그는 차라리 묻고 싶었다. 저 한 칸짜리 고철이 움직인다 말입니다? 학생 하나가 대답 대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만한 작은 기차가 시야를 가리는 것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푸른빛뿐인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 여행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장소에의 이동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서, 흘러가 버린 손때 묻은 시간 속으로 돌아가는 시간에의 여행은 아닐까 하는 환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것이 다만 환각이 아닌 현실이라고 가장 확실하게 설득해 주고 있는 것이 아침부터 타고 온 열차의 모습들이었다. 아침에 그가 도쿄를 떠나며 탄 열차는 초현대식이었다. 냉방이 된 차내는 여름을 잊게 시원했으며 열차에서 어디로든 전화를 걸 수도 받을 수도 있었으며 전광판으로는 시간 시간 뉴스를 전해 주었었다. 그것은 오늘이었다.

그러나 그 열차가 아오모리에서 특급으로 바뀌었을 때 그것은 이제 좀 좋은 것으로 바꿔도 좋은 한물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라져 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와베까지 또 거기에서 갈아타고 고쇼가와라까지 오는 동안 그가 올랐던 열차는 이제는 박물관으로 돌아가도 좋게 옛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열차들은 더웠고 냄새가 났으며 의자는 더러웠다. 그것은 과거였다. 그리고 만난 이 츠가루 한 칸 짜리 기차. 사전 속에서나 그 이름과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어느 철도박물관에서 마악 트레일러에 싣고 온 것 같은 이 열차는 오늘도 아니었고 어제는 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문헌 속에서나 살아 있을 시간이었다. 어느새 햇빛이 기울고 있었다. 사람들이 옛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속에 자신이 몸으로 산 시간들이 고여서 익어 있기 때문이리라. 열차는 옛이야기 같았다. 열차의 이름도 '풍경열차'였다. 천장 여기저기에 풍경을 달아 놓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조그맣고 여러 가지 색깔이 칠해져 있는 풍경을 달아 놓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조그맣고 여러 가지 색깔이 칠해져 있는 풍경들이었다. 천장에서는 선풍기가 돌고 열어 놓은 창문으로는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바람을 받아 풍경들은 일제히 댕강댕강 당강당강 쟁강쟁강 울렸다. 승객들은 모두들 이웃이었다. 풍경소리보다 더 크게 웃었고 떠들어댔다. 여름에는 승객들이 조금이라도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풍경을 매달고 겨울에는 열차바닥에 무쇠로 된 난로를 놓는다고 했다. 학생들의 귀가시간인가. 자갈이 구르듯 웃어대면서 그들을 내리고 또 탔다.

"안녕."

"내일 또 만나."

그들이 열차를 내리며 주고받는 인사말들이 저 먼 과거에서처럼 들려 왔다. 열차를 내린 그들의 머리 저편으로는 여전히 푸른 들판이 이어지고 그사이로 아스팔트가 까아맣게 깔린 길을 흰 승용차들이 오가는 모습이 그림처럼 바라보였다. 이곳이 다자이의 고향인가. 이것이 다자이가 보고 걷고 자란 들판인가. 일본의 농업을 지키자. 크지 않은 글자로 써붙인 그런 팻말이며 현수막이 보인다. 그 글씨를 읽기 좋을 만한 속도로 열차는 느리게 간다. 농산물 수입개방 때문에 세께 곳곳에서 들려 오는 농민들의 소리는 일본도 마찬가지인가. 과수원이나 논에 세워져 있는 그런 표어가 겨우 이 열차를 현실 속의 열차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무엇이 이 들판의 평화 속에서 씨가 떨어진 다자이를 그렇게 혼란 가득한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 것인가. 인간은 그가 자라는 것의 땅과 바람과 풀과는 무관한 생명체인가. 그는 다자이의 생애를 말하는 그의 연보에 언제나 올라 있는 여자들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와 바다에 빠지는 동반자살을 했다 혼자 죽은 여자. 재학시절 그와 결혼함으로써 다자이가 집안으로부터 파문을 당하는 원인을 만들었고 끝내는 간통사건까지 일으키다가 중국의 청도에서 죽은 게이샤. 그 후 그가 결혼하여 그에게 두 딸을 갖게 하는 부인. 만년에 작품 {사양}을 쓰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 자신의 일기를 그에게 주었고 그의 딸 하나를 낳아 기른 문학지망생인 이혼녀. 결국은 결핵으로 건강을 해친 그를 도와주다가 함께 투신자살을 한 간호부이며 전쟁 미망인이었던 또 다른 마지막 여자.

저 들판이 그에게 묻고 있었다. 무엇이 들판에서 자란 자를 그렇게 여자에게서 여자에게로 탐닉하게 했는지를 너는 알겠는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 들판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다자이가 가진 극단의 그늘과 극단의 양지가 느껴질 것도 같았다. 그는 정말 이 들판을 이해했을까. 풀이 자라고 시들며 철을 바꿔 벌레가 울고

비나 내리면 또랑을 만들어 소리내어 물이 흐르고, 눈에 덮이면 길고 긴 정적 속으로 빠져드는 이 들판의 진실을.

기차가 가나기 역에 가 멎었을 때는 저녁이 다 되어 있었다. 풍경열차를 내렸다. 제방처럼

높게 만들어진 서로 밑으로 조그마한 역사의 지붕이 내려다보이고 그 뒤편으로 크지 않은 시가지가 바라보였다. 다자이의 고향이었다.

역사를 나왔다. 자전거가 십여 대 줄을 서 있는 옆으로 택시 두 대가 서 있었다. 가나기의

택시운전사는 이렇습니다. 운전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문을 열어 놓고 비스듬히 누워서 프로야구 중계를 듣고 있었다.

역 앞에서 곧게 뻗어 있는 길 맞은편에 새로 지은 듯싶은 슈퍼마켓이 바라보였다. 거리는 한적했다. 단층이 대부분인 낮은 집들이 조는 듯 늘어서 있었다. 하얗게 차선이 그어져 있었지만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시간의 이끼가 끼어 있는 옛 모습을 한 건물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 거리에는 어딘가 잘 늙어서 은퇴를 한 사람의 안온함 같은 것이 있었다. 결코 은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척박함이 느껴지지도 않는 여유가 거기에는 있었다.

여관에 전화를 했다. 차를 탈 것도 없어 걸으면 바로라는 대답이었다. 그는 천천히 저녁 무렵의 거리를 걸었다. 자전거가 시장바구니를 앞에 달고 지나갔다. 집 앞을 쓸던 길인가.

앞치마를 두른 주부가 집 앞에 나와 비를 든 채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길옆의 이발소는 손님이 없이 흰 가운을 입은 이발사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언젠가 한번 왔던 거리처럼 그는 다자이의 고향을 걸었다.

우체국 앞을 지난 길이 한번 꺾어졌을 때였다. 그는 길 저편으로 솟아올라 있는 그 건물을 보았다. 저녁 햇빛을 등지고 있어서 인가. 솟아올라 있는 건물의 붉은 벽돌이 어두운 자줏빛으로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샤요칸'이었다. 다자이의 소설{사요}의 이름을 딴 그 여관 이름을 그는 한국어로

"사양관(斜陽館)....."

하고 불러 보았다. 아주 먼 거리를, 시간과 공간을 거쳐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소년 시절에 조금씩 삶에 눈떠 가던 시절에 만나 사랑했던 작가의 집이었다. 그리고 그도 이제 아무 희망 없는 꿈을 뒤척이고 있던 소년이 아니었다. 이 집에서 태어나 살다 죽어간 그 작가보다도 그는 더 나이가 들어 있었다.

건물은 늠름했다. 붉은 벽돌담이 둘러쳐진 이층건물이었다. 1906년에 시작해 다음해에 지어진 일본의 메이지 시대 말년의 건물이었다. 그렇다면 이 건물의 나이는 몇이 되는가. 당당하고 우람한 전경을 가지고 있는데도 무거운 느낌을 전연 주지 않는 그 여관 건물을, 아니 다자이가 태어난 집을 그는 오래오래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저녁 바람이 불어와 옷자락을 날리고 그의 머리칼을 이마로 쏟아 부었다. 건물의 풍모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크고 흉한 사양관'이라는 입간판이, 어서 들어와 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방은 전에 서양식으로 지어 응접실로 사용했다는 아래층 양실이었다. 외국인이라는 배려에서 그렇게 한 것 같았다. 일본식 공동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다자이의 집 가문과는 아무 관련이 없이 손에 손을 거쳐 이제는 여관이 된 건물이었지만 곳곳에

옛날의 그 영화가 손에 잡히는 집이었다.

외관만이 아니었다. 내부도 옛 영화를 말해 주듯 위풍당당했다. 이층으로 오르는 장중한 계단은, 노송나무로 정교하게 짜여진 계단에 길이 들어서 금빛으로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집안에서 창고로 향하는 문은 계단 위에 있었다. 그 문의 두께가 두 뼘이 넘게 육중했다. 그 문을 열면 여관답지 않게 옛 다자이의 집에서 쓰던 유물들이며 이 지방의 생활용품이 박물관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이제는 멈추어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의 크기가 또한 이 집안의 영화의 부피를 그 덧없음을 말해 주고 알이 엄지손톱보다 큰 주판이 대지주로서 옛 권세를 들려준다.

그 드넓은 집에서 그러나 그는 다자이의 그 어떤 체취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이 떠올려 주는 다자이는 이 집의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면 수많은 하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을

도련님은 그러나 이 대저택에서 오히려 천애의 고아처럼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저녁과 아침을 먹는 일본식 여관 풍습에 따라 그는 여관에서 주는 저녁을 먹었다. 다다미가 깔린 강당같이 드넓은 방에서 손님들은 동행끼리 차려진 각자의 상을 받았다. 건물의 뼈대가 그대로라고는 해도 여관으로서의 방은 낡아 있었다. 방에는 에어컨이 없이 선풍기가 놓여져 있었다. 모기향과 부채가 모기장을 친 창문과 함께 여름밤을 함께 나야 할 도구였다.

여관에서의 밤이 깊어갔다.

처음으로 중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때, 마차에 흔들리면서 이웃 마을의 숲을 지나니 몇 십 리 밖으로 푸른 들판이 바다처럼 펼쳐지고 있었고 그 푸른 들판의 끝에 붉고 우람한 지붕이 솟아 있었다고 다자이는 [추억]에서 쓰고 있었다. 그는 그 글을 읽으며 다자이의 대저택을 그려보았고 그것은 그 자신의 추억이 되었었다. 다자이는 그때 잠시 떨어져 집을 나가 있던 시간이 십 년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도 쓰고 있었다. 이제는 여관이 된 그 집에 누워 있는 그의 머리맡을 모기가 앵앵거리며 날았고 정원에서는 물이 흐르는 소리가 밤이 깊어가며 점점 커져갔다.

방을 나왔다. 강당 같던 그 넓은 방 옆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조그만 스탠드바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끝낸 여관은 조용했다. 낮게 집안에 틀어 놓은 음악이 철딱서니 없이 때로는 일본이었다가 때로는 서양이었다가 해 가면서 유행가를 번갈아 틀어대고 있었다. 바에는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가 없이 술을 시키면 안에서 가져다주었다. 더위를 잊으려고 맥주를 시켰다.

이 집 지붕에는 새알이 없었다고 다자이는 적고 있었다. 참새알은 창고의 기와를 벗겨내면 나왔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벗새나 까마귀알을 그는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자이는 자신의 책을 몇 권씩 무더기로 주면서 그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는 알을 다른 아이들과 바꾸곤 했었다. 새가 알을 까지 않던 집이었다. 이 드넓은 집에서 하녀들과 함께 자라며 이루어졌을 다자이의 성품도, 여기 와서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밤이 되어 이부자리를 펴주고 난 하녀는 그가 잠들 때까지 그를 보살펴야 했었다. 그 하녀가 불쌍해서 그는 눈을 감고 자는 체했고 하녀가 돌아가고 난 후에는 제발 잠을 좀 자게 해 달라고 기도하곤 했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제일 먼저 이성을 느낀 것도 그 많은 하녀들 가운데 하나였다. 어린 마음에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했던 하녀도 있었고 형제가 같이 좋아한 하녀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연모의 상대가 된 하녀는 집안에서 어느 날 모습을 감추었다. 내보내자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추억 속에 앉아 있는 것인가. 그의 글을 읽으며 보냈던 젊은 날의 한때, 다자이의 글 여기저기에 나타나 있던 집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이제는 그의 추억이 되어 있었다. '그 다음해 봄, 아직 눈이 깊이 쌓여 있던 무렵 아버지는 동경의 병원에서 피를 토하며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유해는 큰 썰매에 뉘어져서 돌아왔다. 나는 마을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웃마을 어귀까지 마중을 나갔다. 이윽고 숲 사이로 여러 대의 썰매차가 줄지어 달빛을 받으며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 집을 지은 아버지가 유해가 되어 돌아오는 모습을 다자이는 그렇게 적고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달빛, 눈 덮인 숲, 여러 대의 마차 그리고 아버지의 유해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아, 아름답구나 하며 서 있는 소년.

그는 어쩐지 어린 다자이가 그랬듯이, 아 아름답구나 하고 말하고 싶었다. 서울의 집을 작정 없이 떠나온 후 처음으로 그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를 생각했다. 시간의 힘, 그 망각의 벌레는 파 먹히고 또 파먹혀도 그러나 우리는 허무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자유이다. 족쇄를 끊어라. 생명에 무슨 사슬이 있으랴.

술에 조금씩 취해 가면서 그는 이 집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방과 방을 뛰어다녔을 어린 다자이에게 가만히 말했다. 너는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 드넓은 집에서 너는 거미가 줄을 치는 가슴으로 자랐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너는 안과 밖이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가장 살고 싶을 때 살아 있다는 것의 속살이 만져지는 그런 때에 죽음을 꿈꾸게 되었을 것이다. 안과 밖이 언제나 다른 가면의 삶. 네 안에서 피가 튈 때 너는 저 노오 무대의 표정 없는 가면을 썼으며 네가 쓴 가면이 흐드러지게 웃고 있을 때 너는 그 속에서 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맥주를 더 시켰다.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 학생 둘과 혼자인 여자, 손님은 그렇게 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여자는 혼자 계속 담배를 피웠다. 맥주를 따라 주며 여관의 여인은, 이 집이 여관으로 쓰기 위하여 입구에서부터 몇 곳을 고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그대로라고 했다. 양식의 바가 선물 코너

옆에 있는 것이 그것을 느끼게 했다. 이층에는 다자이가 어렸을 때 공부방으로 썼던 방이 아직 그대로 있는데, 내일 아침 그 방에 든 손님이 나가고 나면 방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제 되었다. 그 방까지 돌아보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야말로 관광객의 악취미이다. 집과는 다르다. 방은 다만 방일뿐이 아닌가. 유전이란 말의 실체가 있다면 이것이 아닐까 싶게 음험하고 비극적인 집. 너무 우람하고 튼튼하게 지어서 오히려 이 집의 주인들은 다 떠나갔는데도 집만이 살아남아 그 사람들의 오욕을 전하는 집. 한 못난 아들의 작품 이름을 따서 여관 이름까지 그렇게 되어 버린 집. 그러면서도 살아 있는 유기물처럼 느껴지는 집.

그때였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여자 손님이 말했다.

"제가 그 방의 손님이에요."

담배연기를 서로의 얼굴 가운데 놓고 그들은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자이를 너무 오랜 전 사람으로 생각해요. 그건 기찻길이 멀어질수록 작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우리 의식의 착각이 아닐까요."

"그가 쓴 글이 낡아서인가요?"

"아니에요. 그가 너무 일찍 죽었기 때문이에요. 그보다 먼저 작품을 썼던 작가 가운데 아직 살아 있는 사람도 있는 걸요."

"서른 여섯 살에 죽는다는 것은 서른 여섯 살밖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서른 여섯 살에서 더 늙지 않는다는 뜻도 되는군요."

"오래 살고 싶으세요?"

"그건 이루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합니다. 생명은 쓰고 가는 것이라고요."

그의 잔에 거품이 넘치며 술이 따라졌다.

"나는 열 아홉에 그의 [사양]을 처음 읽었고 그리고 스물 넷에 그를 떠났습니다."

"다섯 해의 사랑이군요."

"주인공 가즈코로 보자면 그렇지요."

"그녀가 좋으세요?"

"그때는 그랬습니다. 친구가 레닌의 책을 빌려 주자 가즈코는 읽지 않고 돌려주면서 말하지요. 표지 색깔이 싫어서 못 읽었어라고 말입니다. 열 아홉 살 때 나는 그 여자가 좋았었습니다."

"영원히 어른이 못 될 분이로군요."

"다자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양]의 모델이 된 실제 여자는 다자이의 딸을 기르며 혼자 살았지요. 그 딸이 커서 쓴 책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만년필] 말입니까?"

"아 알고 계셨군요."

그들의 말투에서는 어딘가 조금씩 다자이 소설의 주인공들 냄새가 났다. 그녀가 저는 하루코라고 합니다 하고 말했을 때, 그녀의 술잔에서 얼음이 잔에 부딪히며 투명한 소리를 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가나기의 아침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여전히 한산했고 깨끗했다. 이따금 승용차들이 지나가고 개를 끌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녁의 모습과 아무 것도 다르지 않은 거리가 아침을 맞고 있었다. 들판의 한가운데 그 들판보다 높지도 낫지도 않게 마을은 있었다. 저 옛날 다자이의 집은 성처럼 높아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숲을 나오면 드넓은 푸른 들판에 바라보이는 빨간 지붕의 집…… 다자이의 표현이 현실로 느껴졌다.

슬픔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그러나 어딘가 정한한 것이 거기에는 있었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이 츠가루 반도는 얼마나 황량하고 드넓을 것인가. 사람들은 떠나고 떠나고 또 떠나게

만들고 싶을 정적이 거기에는 있었다. 소리 없이 나무들이 열매를 키우고 잎을 피웠다 떨어뜨려 가는 과수원과 들판에 세워진 들판 같은 마을이 주는 깊고 무딘 일상성, 시간의 변화에도 아무 것도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무덤 속에 가슴을 에게 하는 외로움이 거기에는 있었다. 그 속을 쟁강쟁강 풍경을 울리며 무쇠난로를 벌겋게 달구며 한 칸 짜리 열차가 오가리라. 조그맣게 살다가 소리 없이 죽을 것만 같은, 그리고 그 삶에 대하여 '다행이었어.' 하고 중얼거릴 것 같은 평화도 거기에는 있었다. 그리고 그 평화를 견디어내기 힘들어 할 사람들의 피가 끓는 신음소리도 들려 올 것 같았다.

여관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손님들은 서둘러 여관을 떠나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있어 이 여관은 여행의 종점이었던 것이다. 그는 어제 역을 나오며 들고 온 여행안내서를 따라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다. 여관을 나와 그는 다자이의 문학비가 있다는 아시노 공원으로 향했다. 휑뎅그레 넓기만 한 고원을 가로질러간 호숫가에 그의 문학비는 서있었다.

그것은 존경의 마음은커녕 그에 대한 이해도 사랑도 없이 세워진 조잡한 돌 구조물이었다. 게다가 비면에 새겨 놓은 것은 프랑스의 시인 베를렌 시였다. 향토문화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가 좋아했던 베를렌의 시를 새겼다는 것이었다. 다자이가 그의 고향에서, 다만 여기서 태어났다는 그것만으로 이제는 모욕을 당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공원을 나오면서부터였다. 여기까지 올 때 탔던 택시운전기사의 말도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여기는 다자이가 어렸을 때 잘 놀러 오던 것입니다."

그는 시키지도 않는 말을 그렇게 했었다. 택시를 타고 와야 하는 거리를 어린 다자이가 놀러 오곤 했다는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는가 싶었다.

우체국에서 하고 있다는 다자이 전시회로 발길을 옮긴 것은 혹시 무슨 향토적인 자료라도

나와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였다. 그러나 우체국의 한쪽벽면을 채우며 붙여져 있는 자료라는 것은, 이제는 동네 문방구에도 비치해 놓고 노트 필기한 것도 주욱 복사해 주는 그런 복사기로 베껴낸 그의 육필원고와 신문기사와 사진들이었다. 다자이의 고향 전체가 손에 손을

잡고 다자이를 모욕하고 더럽히고 찢어 가지기로 합심한 듯한 모습들이었다. 선물가게에 나와 있는 조잡한 기념품들에도 찍혀 있는 그의 얼굴을 대할 때 그리고 거기에 새겨져 있는 '태어나서 미안해요'라고 쓰여진 말을 읽으며 그는 조금씩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가련한 다자이여. 너는 몇 살에 고향을 떠났던가. 살아서 안과 밖이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한 소설가가 죽어서는 또 그가 살아서 붙안고 미쳐갔던 삶과는 전연 다른 도덕군자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는 마치 일본에 밀향을 하여 갖은 고생을 하며 돈을 모아 제주도의 고향 마을에 아스팔트 길을 닦아주는 독지가 같았다. 그의 모순은 삶에서만이 아니었다. 이제 그는 불가해의 혼란으로 점철된 생애만이 아니라, 살아서와 죽어서가 서로 배반하는 모순으로 고향을 먹여 살릴 모양이었다. 브루터스여 너마저. 그런 심정으로 역사민속자료관이라는 곳으로 향하면서 그는 풍경열차의 차 시간을 알아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다. 다자이를 팔기 위해 은전 한닢을 놓고 눈을 부릅뜬 거리에 눈을 흘기며 그는 기본요금밖에 안 나오는 거리를 택시로 갔다.

이름은 역사 민속 자료관이었지만 그것은 환경정리가 잘된 국민하교 교실 같았다. 전시실 셋 가운데 하나가 다자이의 자료실이었다. 우체국과 다를 것 없는 복사된 친필원고가 벽에 나붙고 그의 외국어 번역도서들이 유리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그가 입었었다는 옷이, 그가 쓰고 다녔다는 모자가, 그가 사용했다는 책상이 또한 거기에는 있었다. 옷은 미이라가 입었던 듯 쥐면 바스러질 듯 낡아 있었고 모자는 어느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듯했다. 이것은 또 무슨 위선인가 싶었다. 그가 입었던 옷이 어떻다는 것인가. 누가 쓰다가 내다버린 것인지 모를 그 낡은 옷이며 모자며 의자가 저벅저벅 걸어다니며 다자이를 오히려 능욕하고 있지 않은가. 불쌍하게도 이제 다자이는 이 지방에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상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다자이를 팔고 [사양]을 팔고 고향을 팔고 있었다. 부채에도 일회용 라이터에도 맥주병 따개에도 종이 등 죠찡에도 다자이는 그 손으로 턱을 괸 수심에 찬 얼굴을 내밀고 '태어나서 미안해요.'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살아서 날개와 사슬을 함께 가지고 스스로를 묶고 풀었던 사람, 그는 어젯밤 그가 태어난 집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창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앵앵거리는 모기에 시달리면서 그렇게 다자이를 이해했었다. 처음으로 다자이를 이해할 수 있었었다. 날개로 사슬을 끊으며 그 사슬로 또 날개를 묶으며 살아가야 했던 모순 가득한 생의 실타래를 그렇게 풀어 가며 잠이 들었다.

고향은 다자이에게 무엇이었나. 동경이 폭격을 맞고 있을 때 그는 마지막 까지도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피했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그가 소개되어 있던 집마저도 폭격에 불타고 난 후였다.

입장권을 사기 당한 것 같은 심정으로 서서 그는 자료관에서 준 팜플렛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다자이의 부인 미치코의 한마디가 실려 있었다. <다자이에게 있어 도쿄라고 하는 것은, 나그네 길의 하늘이었고 몇 년을 살아도 뿌리가 내리지 못하는 땅이 아니었을까. 밤이면 밤마다 그의 꿈은 츠가루를, 가나기를 향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면 그는 상스럽게 농담이라도 하고 싶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물에 빠져 죽도록 내버려두었던 여자가...... 남편의 꿈을 알기나 했을까. 드넓은 주차장과 거기 깔린 흰 모래위로 쏟아지고 있는 한낮의 햇빛을 그는 바라보았다.

그때 자료관 현관 옆에 심어진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나무 앞에는 작은 안내판 하나가 정성스럽게 세워져 있었다. 햇빛 속에 서서 그는 그 안내문을 읽었다. 갑자기 햇빛이 소리를 내며 그에게로 달려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다케'의 집에서 옮겨다 심은 벚꽃나무였다. 그는 심한 갈증을 느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두 손으로 움켜쥐면 손 안에 잡힐 것 같은 굵기의 아직 어린 벚꽃나무의 몸통을 따라 눈길을 옮겨가 한여름의 햇살을 받고 있는 잎사귀까지를 바라보았다.

다케는 그를 기른 하녀였다. 다자이가 두 살일 때 그 집에 들어와 그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그를 돌봐주었다. 다자이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친 사람도 다케였다. 책을 좋아한 다자이에게 그녀는 읽을거리가 떨어지면 마을의 일요학교에 가 책을 빌려다 읽혔으며, 도덕을 가르쳤다. 그녀는 다자이를 데리고 절에 가서 불화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불을 내는 사람은 지옥에 가서 불바구니를 짊어지고 있게 하고 첩을 두는 사람은 머리가 둘 달린 구렁에게 칭칭 감겨 몸부림을 쳐야 한다는 지옥도를 설명해 준 것도 그녀였다. 피로 된 연못이나 바늘로 된 산 혹은 팔열지옥의 하나인 무간나락에 떨어져서 뼈만 앙상한 인간들이 울부짖고 있는 그림을 가리키며, 거짓말을 하면 저렇게 된다는 말을 해 어린 다자이에게 울음을 터뜨리게 한 것도 다케였다. 이 세상의 질서와 인과의 고리를 그는 다케를 통해 배웠던 것일까. 다자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난 어느 날 다케는 사라졌다. 시집을 간 것이지만 어린 다자이가 따라가겠다고 보챌 것을 염려해 그녀는 말없이 떠났던 것이다.

그 다케를 다자이가 다시 만난 것은 일본의 패전을 앞두고 있던, 그의 나이 서른 다섯 되던 해였다. 풍토기를 펴내고 있던 출판사로부터 츠가루 편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떠난 여행에서였다. 그는 어촌으로 시집가 살고 있다는 소문만의 그녀를 찾아 나선다. 묻고 물어 찾아간 집에 그녀는 없었다. 아이의 운동회에 갔다는 것이었다. 땀을 흘리며 운동회장까지 찾아가 만난 삼십여 년만의 만남에서 다케는 그의 얼굴을 보며

"……"

하고 한마디뿐, 웃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아이들의 운동회를 바라보면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잠자는 것 외에는

언제나 다케와 함께 어린 시절을 지냈기 때문에 '고향……이라고 하면 언제나 다케가 떠오른다.'라고 썼던 다자이였다.

말을 잃은 다케의 옆에서 그도 말없이 아이들의 운동회를 바라본다. 다리를 뻗고 앉아서 멍하니 아이들의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가슴속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평화라고 하는 것이 이런 마음을 말하는 것일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평화라는 것을 체험했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다자이는 젖 한 방울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기품 있는 여인이었지만 한평생 지금 다케의 곁에 앉아서 느끼는 이런 편안함을 한번도 어머니에게서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어버이를 따르는 것은 자연이지 윤리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 이 바로 자식과 어버이의 교감일까. 자신을 돌봐 주기 위해 다케가 들어왔을 때 다케는 열 네 살의 소녀였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생각해도 그때의 다케가 소녀로 생각되지가 않았다. 그의 의식 속에서 다케는 지금과 같은 나이를 가진 여인이었다. 긴 시간이 흐른 후 다케는 일어서며 벚꽃구경을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둘은 천천히 걸어서 벚꽃을 보러 갔다. 그녀는 벚꽃 한가지를 꺾어들고 앞서 걷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디마디 끊기며 다자이에게 들려 온다. 오랜만이야. 처음 보았을 때 누구인가 했어. 설마 했지. 이름을 말했을 때도 아 하고 생각했을 뿐 입이 떨어지지가 않더군. 이렇게 어른이 되어 날 보러 오다니, 기뻐해야겠지. 고마운 일이겠지. 내가 네 집에 갔을 때 넌 아장아장 걸었을 때였다. 그런 너를 나는 밥그릇을 가지고 뒤쫓아 따라다녔지. 그때 창고의 돌계단 밑에 앉아 네게 밥을 먹이는 게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 혼잣말을 하면서 다케는 손에 든 벚꽃을 하나씩 따내어 땅바닥에 버리고 있었다. 그 꽃잎이 다 없어졌을 때 꽃가지를 부러뜨리면서 다케는 물었다.

"애들은?"

"하나."

"사내아이? 계집애? "

"."

순간 다자이는 자신이야말로 다케와 닮아 있다고 느낀다. 형제들 가운데 자신만이 저질스

럽게 번잡한 구석이 있는 것도 이 어머니의 영향이다. 나는 결코 품위 있게 자란 사내도 아니며 부잣집 아들 같은 구석도 없지 않은가. 내 성장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 내가 이제까지 잊지 못하는 고향사람들도 다들 우리 집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 아닌가.

다 허물어져 버린 사내가. 술과 마약과 끝없는 자살미수와 불륜과 병으로 허물어져 가고 있는 서른 다섯 살의 사내가 비로소 느껴 본 생애 처음의 평화. 그것을 주었던 여인 다케. 혼란과 모순과 거짓으로 가득 찬 삶의 나날 그리고 그런 글 속에 오직 하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다케와의 만남이 있는 작품 [츠가루]의 마지막 절창을 남기게 한 여인…… 그 다케의 집 앞에 심어 있던 벚꽃이 옮겨져 이제 여기 와 있다니.

안내판의 내용은 전하고 있었다. 다케는 다자이가 자살한 후에도 오래 살았다. 이 자료관을 세우며 고향의 이야기를 쓴 다자이의 명작 [츠가루]를 기념하여 다케의 집에 심어져 있는 벚꽃 한 그루를 여기에 옮겨 심는다. 그는 벅차 오르는 감동 속에서 그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다케는, 그의 작품 속의 다케는 실제 이름 그대로 그를 길러 주었던 여인이었단

말인가. 다자이의 그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모순 속에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다케일 수밖에 없었다. 다자이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 하나가 금빛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젊은 날, 다자이에게 사슬이 채워져 있던 시절의 [사양] 속의 말이 다가 왔다. '파괴는 서럽고 슬프고 그립고 아름다운 것이다. 파괴하고 다시 세워서 완성 하고자 하는 꿈. 한번 파괴하면 영원히 완성의 날이 안 올지도 모르는데도 그런데도 달려가는 그리움 때문에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룻밤을 묵은 여관, 다자이의 생가가 아니었다.

그는 어쩐지 이 한 그루의 나무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래오래 벚나무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잠자리 하나가 날아와 바람에 잎을 흔들고 있는 가지 위에 앉았다. 잠자리, 투명하다. 다자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며칠 전 그의 묘지에 갔을 때 비석에도 잠자리가 날아와 앉았었다. 잠자리는 날아가지도 않고 그를 위해서인 듯 오래오래 그렇게 앉아 있었다. 순간 그는 도쿄의 묘지에 날아와 앉았던 잠자리는 바로 이 잠자리라고 믿었다. 그 자신이 여기에 와 있듯이.

"여기 계셨네요."

여인의 목소리에 그는 몸을 돌렸다. 어제 여관에서 만났던 하루코였다.

"아 다케의 사쿠라를 보고 계셨군요."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츠가루]에 나오는…… 그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동상으로 만들어 세웠는데 그 제막식날 다케는 참석했었어요. 그날이야 그녀가 주인공이 었으니까요."

그래,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는 마치 다자이가 다케를 만나듯 혼자 중얼거렸다.

시계를 보았다. 풍경이 쟁강거리는 열차는 한 시간에 한 번 있었다. 역으로 나가야 할 시

간이었다. 마침 하루코도 역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시즈오카에서 학교 교사를 하니까요. 내 방에 서는 늘 후지 산이 보여요."

그들은, 차도 얼마 다니지 않는데 왜 이렇게 넓은 길이 필요했을까 싶은 한적한

길을 천천히 걸었다. 태어나서 미안하다는 말이 껴안고 있던 생명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있어 그것은 미안함보다 더 소중했다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루코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연 아니예요."

더 놀란 것은 하루코보다도 그였다.

"그건 그의 말이 아니예요. 친구의 사촌이 쓴 시예요. 물론 다자이가 찾던 말이었겠지요. 그는 말을 찾아갔던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그 말을 처음 한 사람은 그가 아니예요. 그도 그 말을 찾았으리라고는 나도 생각해요."

태어나서 미안해요가 아니었다. 그는 이런 말을 들어서 미안합니다. 하고 말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슈퍼마켓을 끼고 돌았다. 역이 마주 보였다. 역사 건물이 조그맣게 엎드려서 여름햇살에 말라가고 있었다. 하루코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자이의 말로 유명해진 그 태어나서 미안해요라는 말, 그건 다자이가 표절한 거예요. [이십세기의 기수]라는 글을 쓰면서 그 부제목으로 썼지요. 그러나 그건 친구의 사촌 가운데 시를 쓴 청년이 있었는데, 친구에게서 그 사촌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자신의 작품에 썼던 거에요."

들판에 서있는 들판 같은 도시를 나는 바라보았다. 나도 들판 같았다.

"다자이가 그걸 작품에 써 버리자 그 무명시인은, 그건 내가 유서로 써 가지고 있던 글인데 나는 유서를 도둑맞았다…… 그런 말을 해요. 그의 항의를 들은 사촌이 말했대요. 잘된 거 아닙니까. 유서를 도둑맞았으니 당신은 이제 죽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이건 이미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있어요. 작가의 작품과 그 인간을 같은 것으로 바라보려는 건 독자의 우매함이에요. 그것도 아주 슬픈 우매함이겠지요."

역 앞에는 여전히 자전거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택시운전사는 야구중계를 듣고 있었고

자전거를 탄 여인이 지나갔고 역사 벽에는 '다자이의 고향――가나기'라고 쓴 현수막이 때묻어 걸려 있었고 여행안내서가 놓인 좌대에는 팜플렛이 가득했다. 그는 그 가운데 하나를 집어들었다. 다자이는 거기서도 여전히 전속모델처럼 손으로 턱을 고인 채, 태어나서 미안해요 하면서 수심 어린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는 그 위에 써 있는 캐치플레이즈를 내려다보았다. '다자이가 살았던 거리가 있다. 그곳은, 소설의 거리 가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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