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면 – 박완서
그들은 그런 대로 재미가 있을지 몰라도 당하는 쪽에선 고문과 같았다. 나중에는 참다못해 느네들한테 노래할 자유가 있는데 나한테는 왜 안 할 자유가 없냐?고 외치고 말았다. 너무 진지하게 외쳤던지 나름대로 흥청거리던 분위기 일순 서먹해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아지는 게 아니었다.
(중략 : 유신 시절 남들이 자유를 외칠 때 이를 남의 일인 듯이 외면하고 있었다는 고백이 이어져 나온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데서 자유를 찾는 자신의 모습이 더 부끄럽다는 진술이 담겨 있다.)
나는 나의 유치함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그 고약한 기분은 다음날까지 계속됐다. 7,80년대를 끽소리 한 마디 못 하고 살아남은 주제에 고작 노래방에서 웬 자유씩이나, 그 생각만 하면 창피하고 혐오스러워 닭살이 돋을 것 같았다.[1970-1980년대 군부 독재 시대에 자유를 위한 문인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아무 탈 없이 넘겨 온 데 대한 부끄러움이 담긴 말로 자괴감을 표현함]
그런 자기 혐오는 나는 왜 노래도 못할까? 하는 열등감으로 이어져 온종일 우울했다. 그러고 있는데 고등 학교 동창한테서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왜 목소리가 그 모양이냐고 먼저 이쪽의 우울증을 짚어 내기에 나는 왜 노래도 못 할까? 하면서 하소연을 시작했다. 친구는 딱하다는 듯이 네가 노래까지 잘하면 어떡허게, 라고 말하는 게 하닌가. 나는 그 한 마디를 뛸 듯이 반기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재차 확인까지 했다. 기분이 담박 맑아졌다. 노래도 못 한다고 생각할 적엔 나 같은 건 이 세상에서 무용지물(無用之物)과 다름없더니, 노래까지 잘하면 어떡하느냐는 소리를 들으니까, 노래만 빼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줄줄이 떠올랐다.[사고 전환의 중요성, 심생즉 종종법생(心生則 種種法生)이요, 심멸즉 종종법멸(心滅則 種種法滅)이라. 일체(一切)는 유심조(唯心造)요, 만법(萬法)은 유식(唯識)이로다. '마음에 생기게 하면 모든 것이 생기고, 마음에서 그것을 없애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 모든 일은 마음이 만들고 마음에 따라 생긴다.'는 원효 대사의 깨달음]
10년 전 참척(慘慽 :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 앞서 죽음, 또는 그러한 일로 지은이 아들의 죽음을 말함)을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원망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는 거였다. 원망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부끄러움까지 겹쳤다. 저 여자는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에 저런 일을 당했을까? 수군거리면서 손가락질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나만 보고 흉보는 것 같아 두문불출(杜門不出 : 집 속에만 박혀 있어 세상 밖에 나가지 않음)하고 있어도 하늘이 부끄럽고 땅이 부끄러웠다. 슬픔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원망과 치욕감이었다.[자식을 앞세웠다는 슬픔보다도 왜 자신에게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야 하느냐는 하늘에 대한 원망의 마음과 자신의 잘못으로 그런 일을 당한 것 같아 남들 앞에 서기가 부끄러운 지은이의 솔직한 심정이 담겨 있다. 나중에 지은이는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사별하고 카톨릭에 귀의했다.] 하늘도 부끄럽고 땅도 부끄러웠고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피할 곳이 없으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때 만난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인간은 누구에게나 약점을 가지거나 불행을 만난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한 마디 말이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말의 토씨 하나만 바꿔도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 바닥의 앞과 뒤는 한 몸이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뒤집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가장 먼 사이이기도 하다.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싶지만, 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