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한무숙
너무나 많은 「나」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웃옷의 포켓만 뒤져보더라도 시민증이라는 것이 있어, 마포구 용강동 번지에 사는, 당년 서른 네 살의「신승균」이라는 자가「나」이고, 같은 케이스 속에 끼워 있는 제2국민병 수첩에는 소집 대상자로서의「나」가 꼬박꼬박 점호를 받아야 한다.
이사 때마다 시끄러운 수속을 면치 못하는 기류계에도「나」가 있는 것이고 직장엘 가면 건축기사 과장이「나」인 것이다. 그러한 등록된 나를 젖혀놓더라도 나는 무던히 발호하고 있는 것 같다.
내 방에는 헐 값으로 사 온 날림 거울이 걸려 있는 데 수은(水銀)이 고루 칠해지지 못했는지, 경면(鏡面)에 두덕진 곳이 있는지 그 앞에 설 때마다 틀려 보이는 모습을「나」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 전번 토요일 저녁의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거울 앞에 서본 일이 있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한 번도 보 못한 말상(馬面)이 거기 나타나, 무심했던 만큼, 적지 않게 당황하였다.
비켜서려다가 별스러운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목을 옴츠려 보았다. 허니까 경면의「나」가 갑자기 길이를 줄이고 폭을 퍼뜨렸다. 재미가 나서라기보다 거의 무의식 중에 고개를 늘이웠더니, 이번에는 코의 길이만이라도 한 뼘이 넘는 것이다.
얼굴을 옆으로 돌이키고 곁눈질을 해보았을 때는, 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쓴 웃음이 일었는지, 거울 속 찍배기 얼굴의 입이 쭉 찢어졌던 것이다.
의식해서 성난 표정을 지어 보았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뜻밖에도 단정한 슬픈 얼굴이 이 쪽을 잠잠히 건너다보고 있는 것이다. 창으로 새어드는 햇살이 어느 덧 황혼으로 옮겨가고 있었던 모양으로 거울 속의 눈은 분노를 태울만한 빛을 얻지 못하고 있어, 부릅뜬 것이 올빼미의 눈처럼 차라리 험악하고 서글펐다. 언제나 지나치게 꼭 다물어 그것이 험상궂은 인상을 주던 입술이 힘 없이 반쯤 열려져 어렸다. 진정 거기에는, 힘없고 외로운 사나이가 그렇게 방심한 얼굴을 흐리고 서 있는 것이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웬지 낯설은 그 얼굴은 정녕「나」인 것만 같았다. 그러자 나는 무심하게 시작한 장난이 갑자기 무슨 의미를 띠우게 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난 얼굴과 슬픈 얼굴은 어느 쪽에서 먼저 표정을 허트렸는지 다음 순간에는 거울 속의 얼굴이 이지러지기 시작하여 비웃는 듯이 입귀를 쳐뜨렸다.
다시 애써 먼저 지었던 성난 표정을 꾸며 보았다. 그리고는 거울속을 노렸다. 분명 같은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전과는 다른「나」가, 이것은 또 지나치게 넓은 이마 너머로 침울한 눈길을 이리로 던지고 있다. 좀 전에는 그렇게도 애절하게 보이던 입 모습이 악의를 품고 옥물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모습은 역시「나」였던 것이다.
형수가 식사를 권하며 방문을 열지 않았던들 나는 더「나」의 여러 모습을 보았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장지가 벌떡 열리더니, 이내 호들갑스러운 그녀의 음성이 울렸던 것이다.
『아――니, 누구허구 약속을 허셨기에, 저녁 때에 그렇게 모양을 내시는 거에요?』
나는 쓴 웃음이 입가에 경련처럼 이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었다.
계(契) 친구만 해도 이십여 명이 넘는 사교가인 형수다. 폭격으로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은 후, 형의 집 방 한 칸에서 이내 혼자 견디어 온 나는, 그네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존재이다. 그녀들 사이에 화제가 진하면,
『우리 시동생 말이야, 중병을 치루고 나더니, 심경에 변화가 생겼나봐. 전에 없이 모양을 낸다우. 저번에도 글쎄 넋을 잃구 거울을 들여다 보구 있군 그래, 퍽 막막했던 거지?』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어쩌면 개구 일번, 벽두에 화제가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또 하나의「나」가 너무 벅차다. 다섯 자 일곱 치 열여덟 관의 육체가,「나」의 전 내용이라고 끊어 생각해 온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나」가 이렇게 벅차고 보니, 어떤 것이 짜장「나」인지 흐리텅해지는 것이다.
언젠가 해질 무렵, 강에 비낀 무지개를 본 일이 있는데, 그렇게도 치밀하게 결합되었던 빛이 일곱 가지 색으로 찬란하게 허트러지는 것에 넋을 잃었다. 그것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황홀하였다.
아침 해에 아롱지는 풀 이슬같이, 불안한 아름다움이기도 하였다. 무지개는 오 분의 그대로 지탱하고 있지 못하여, 이내 사라지고 무지개가 사라진 하늘에, 엷은 구름이 모래처럼 흐르고 있었다.
허전하고 아쉬우면서도, 무지개가 사라지고, 언제나 같은 하늘이 거기 그렇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체념이라고 할까, 무슨 안도(安堵) 같은 느낌을 가슴에 번져갔던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것이 삶인지도 모른다고, 그런 우발(偶發)된 현상을 삶에 비겨 본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지만, 사실 삶이란, 허멍한 하나의 과제(課題)이고,「나」라는 것이 없어져도, 결코 공간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 내가 사라진 후에도, 해는 빛나고, 바다는 출렁거릴 것이라는 것, 말하자면「나」라는 것은, 있어도 없어도 좋은 존재라는 것, 그런 상념이 참기 어려웠었다.
그러기에 지난 몇 해를 텅 빈 꺼풀 같이 살아 왔던 것이 아닌가. 장성한 조카와 아내와 어린 아들의 죽음을 한꺼번에 겪으면서도 여전히 먹고 입고 잔다는 것,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죽음을 시인(是認)하다는 것, 그들의 죽음에 익어버린다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하여 나는 나을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겄이다.
형수는 농삼아 흔히 열부(烈夫)라는 말을 하는데, 여지껏 재혼할 의사를 가져보지 않았던 것을, 그렇게 참혹하게 죽은 아내에의 추모와 수절로 해석 받는다는 것은 오히려 귀살맞다. 털어 말하여. 어머니의 눈에 들어, 싫도 좋도 않은 평탄한 심정으로 맞은 아내다. 고운 정 미운 정 다 들이기에는, 두 해가 채 못 되는 부부 생활이 너무 짧았다. 아이로 말하더라도 백날 전이 핏덩이니, 눈에 밟히는 재롱을 받아 본 일도 없다 사실 이제 와서는 그들의 얼굴조차 아슬할 때가 많다.
다만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임종시의 그 신음 소리인 것이다. 그토록 많은 출혈을 하면서도, 스물 다섯 살의 젊음이 사흘을 뻗쳤다. 쌩쌩거리는 포탄 속에서 죽어가는 그들은, 나는 지켜보는 이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나 역시, 어깨에 입은 총상으로, 의식이 흐려지곤 하였던 것이다.
아내가 숨을 거둔 것은, 음력 팔 월 보름날 밤이었다고 추측된다. 조카와 갓난이는 이미 주검으로써, 옆방에 굴러 있는데, 자신도 심한 부상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나이가, 옆에서 죽어가는 아내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폭격으로 펑 구멍이 뚫린 지붕 위에 차도록 맑은 달이 비껴 있었다. 무서운 고요였다. 시간이 인간과 더불어 시작한 것이라면, 그 시간조차 시작되지 않았던 태고에나 있음직한 그런 공백(空白)의 밤이었다. 그 고요 속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신음 소리가 흐르는 것이다. 의식을 잃은 지 오래인 아내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그 신음 소리는, 육체의 고통을 하소연하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영혼이 앓고 있는 소리였다. 무력한 인간의 서글픔과 의지 없는 외로움이 마지막의 표현을 거기 실리는 것 같아, 가슴이 뻐개지는 것이었다.
아내는 내가 의식을 읽은 후에도 얼마쯤 그렇게 신음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며칠만인가, 내가 어느 병원인 듯한 이 층에서 정신을 돌렸을 때에는, 이미 그녀는 이 세상의 사람은 아니었고, 창 아래 선착로를 국군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얄궂게도 우리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UN군의 입성을 사흘 앞두고, 그들의 포격을 받아 쓰러졌던 것이다.
무거운 군화 소리, 육중한 탱크 바퀴의 울림――만세 소리가 와――하고 일어났다. 그러자, 그러한 거리의 소음을 막기나 하려는 듯이, 창을 가리고 서 있던 형수가 왁 하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렷다.
돈암동에서 쉬어와서 그때껏 차마 끈을 못 푼 채 있는 모양인 그녀도, 어지간히 초췌해 있었다. 들먹이는 어깨가 앙상하였다. 그러나 나는 흐느껴 우는 그녀를 보고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뚫어진 지붕 위에 비껴 있던 달이――그 태고의 공백의 달밤이, 내 위에 휭하니 펼쳐져 가고만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 공백감을 뒤이은 몇 해 동안의 나의 진실이었고, 동시에 경력이기도 하였다. 사실 어두운 재갈이 식어버린 가슴에는, 절망에 필요한 만한 정열도 없었고 보니 공백만이 진실이 아니고 무엇이었던가.
언젠가 청상과부로 늙어온 큰 누님이 유복녀 외딸을 여위는데, 내가 그 결혼식장에 참례를 하지 않았다고 호되게 야단을 친 일이었다.
『온, 사람이면 그럴 수가 있나, 사람이면.』
하고 큰 누님은 자못 분개를 하였는데, 그런 의리 치레의 입장에서보다, 행복에의 의욕을 끊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런 견지에서 볼 때, 나는 이미 인간으로서, 실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는 살아왔다. 아침이 오면 어쩔 수 없이 하루 해가 저물고, 그런 날이 쌓여서, 몇 해가 흘렀던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생각하기 전에, 살아가는 것인가 보다. 아니면 산다는 것은, 온갖 비참한 것들을 제해 버리더라도 더욱 남는, 알지도 못할 무엇을 가진 것인가.
얼마 전부터 형수는 걸핏하면 앓고 나더니, 사람이 달라졌느니 옥수암(玉水唵)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라느니 하고, 곧잘농을 하려 드는데, 중년 여자의 그런 천한 호기심이, 젖은 넝마쪽처럼 감기는 것은, 징그러운 일이었으나, 그녀의 말은 바른 곳을 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옥수암을 떠난 것은 타는 노을 속에서였는데, 서울에는 깊어가는 거리에 가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행장을 풀지도 않고 자리에 누운 나에게는 그렇게 피로해 있었으면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 나의 마음에 밤비가 뿌리다가는 멎고, 멎은 틈을 타서 언덕아래 강물이 높이 출렁거려 들어오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 형수가 그날 밤의 일을 놀란 듯이 말해 주었는데, 늦게 먼 길에서 돌아온 내 소행이 하도 심상치 않아 이슥해서 몰래 장지문을 열어 보았더니, 자기는 않는 모양인데, 감긴 눈귀에 눈물이 줄을 지어 었었더라고 한다. 나는 울고 있었던가? 아니다. 나는 나를 던지고 있었더라고 한다. 그렇게 마구 던져진 내 발 밑에는 출렁거리는 강물이 있었고, 내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사라진 뒤의 그 하늘이――언제나와 같이 무심한 그 하늘이 펼쳐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전에는 그렇게도 견디기 어려웠던 상념――즉 내가 없어져도 이런 것들은 변함이 없으리라는, 그런 상념이, 지금은 오히려 마음을 메꾸어 가는 것만 같은 것이었다.
사실 그러한 불역(不易) 속에――인간의 생사라든가 희노애락에 대한 그러한 완전한 무관심 속에, 우리들 약한 인간의 구원이――또한 지상 생활의 운행과 완성이 깃들어 있는 것일는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안타깝게 아쉬운 사람들을 잃고도, 살아가기 마련이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형수의 말 같이 나는 이미 달포 전에 집을 떠나던 내가 아니었다. 나는 내용을 가졌던 것이다. 설사 그것은 결국은 불가해(不可解)라는 인간의 중핵(中核)에 부딪쳐 버린 것이라 할지라도, 나는 사랑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체험했다는 것은, 목숨을 체험한 것이고, 주체스러운「나」를 모아 완전한「나」를 갖추는 것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아무도 완전하게 자기 자신이었던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 앞에서 완전히「나」였었고, 또한 그 「나」는 상기, 내 내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나」이기에 이제 와서 허망한 것을 허망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선(善)도 역시 악(惡)과 같이 벌(罰) 받는 것이라는 역리(逆理)를, 몸부림치는 일없이 딸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울퉁불퉁 거울에 어린 모습처럼, 「나」가 흐트러질 때가있어, 그럴 때마다, 내 눈 앞에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것이「돌」인 것이다. 그녀는 이미「나」에게는 시계(視界) 밖의 사람이고, 「돌」은 그녀와 나와의 사이에――나의 시계의 끝에 숙명처럼 서있기 때문인가?
돌은 장자못을 굽어보는 언덕 모퉁이 늙은 느티나무 밑에 서 있었다.
언덕 너머 천마산(天馬山) 중허리에 있는 옥수암(玉水庵)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돌이 서 있는 산모퉁이에서부터 옥수암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솔 숲 사잇길을 잡아들 때가지, 언덕 등성이를 탄 거운 평탕한 길이다. 그러므로 암자를 나서 숲 속 길을 벗어나면, 한참은 그 느티나무와 돌을 바라보며 걸어야 한다.
혹, 이른 아침 풀 이슬이 반짝거리는 언덕길을 거닐며 눈을 앞으로 던지면, 저만치 서 있는 느티나무 밑의 그 돌은 무엇인지 숙명적인 것을 느끼게 하였고, 낙조 때 장자못에 지는 석양을 역광(逆光)으로 받은 모습은, 저물어 가는 하늘 아래, 그리움과 고독이 그대로 굳은 것 같았다.
이 돌이 내 마음 한 구석에 호젓이 서 있게 된 것은 바람이 몹시 불던 그 늦가을 어스름부터인가 보다. 스물 네 살――마을에서 옥수암까지 십 리 산길을 삼십 분으로 걸어 올라가, 숨결 한 번 거세진 일이 없는 육체였다. 지난 팔월에 맞은 해방의 감격과 흥분이 채 사라지지 않아 희망은 차라리 벅찼다.
그러나 모진 바람 속을 옥수암으로 향하는 마음은 패잔자(敗殘者)의 그것이었다. 실컷 고문(拷問)이라도 받고 싶은 심경이었기에, 마구 광란하듯, 불어제치는 바람에 함부로 몸을 맡기는 것은 오히려 흐뭇하였다. 패잔자니 고독이니 하는 비통(悲痛)한 가설(假說)이, 술보다 마음을 취하게 하는 나이였다. 툭 하면, 홀연히 서울집을 나서, 옥수암 산길을 그렇게 더듬곤 하였던 것이다.
바람은 동풍이니 남풍이니 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동에서, 서에서, 남에서――마구 불어 일어나, 서로 부딪치고 악물고 미끄러지고 하며 언덕에 타오른 풀 단풍을 헤쳐 흔들고 짓이기고, 풀포기 아래에서 다시 일어 회오리를 그리며, 뛰어 올라가, 다른데서 불어오는 바람과 맞부딪쳐 엉엉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바바리 깃을 귀밑에서 누르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뒷걸음질을 하고 있었다. 천마산을 내려 훑는 성난 바람이 정면에서 얼굴을 때렸기 때문이리라.
지나온 쪽 하늘에는 아직 노을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 바라다 보이는 장자못에는 거센 바람이 일으킨 파도가 잔광 속에서 마치 산 것이나처럼 팔딱거리고 있었다.
해는 넘어가 보이지 않았으나, 못에 어린 잔광이 언저리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어, 모진 바람에 느티나무가 마구 물어뜯기고 있는 것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들과 언덕길을 제멋대로 뛰어다니던 바람은 그 가지에 가 걸려 빠져 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바람이 가지에 가 엉클릴 때마다 언제나 또렷이 서 있는 나무 밑의 돌의 윤곽이 흩어지곤 하였다. 등으로 바람을 밀고 가며, 그런 것들에게 무심히 눈길을 던지고 있던 나는 점점 이상스러운 상념에 사로잡히기 시작하였다. 즉 느티나무가 바람에 찢기어 허덕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돌이 형용키 어려운 고뇌와 절망으로 몸을 꼬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드는 것이다.
하나의 몸짓, 하나의 미음(美音)이 신화(神話)를 꾸며내는 경우가 있다. 이 비정(非情)의 돌에, 전설이 감도는 것은 누구인가가 어느 신비의 순간, 돌의 생명을――돌의 감정을 보았던 까닭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런 순간을 가졌던 것이다.
아득한 옛날 장자못 자리에 박장자라는 간악한 일족이 번영하여, 그 영화가 사위에 떨쳤다. 금력과 권세는 동요가 되어 무심한 초동의 입에까지 오르곤 하였으나, 박장자 집에서는 좁쌀 한 줌의 적선도 한 일이 없었다.
어느 날 지나던 늙은 중이 시주를 청함에, 박장자는 크게 노하여, 하인을 불러 손찌검까지 하였다. 장자는 거지 중이, 감히 자기 집 문전에 서려던 소위가 괘씸하였던 것이다. 무지스런 하인의 발킬에 채여 넘어 쓰러졌던 중이 몸을 채 일으키지도 못하고 있었을 때, 고운 젊은 한 여인이 옆에 와서, 몹시 죄스러운 듯이, 고개를 수그리며 무엇인지 수건에 싼 것을 내미는 것이었다. 여인은 장자일족 중, 단 하나의 어진 마음을 가진 며느리이며, 수건에 싼 것은 자기 몫으로 정하여 진 보리밥 덩어리였다.
궁상스럽던 중의 얼굴에 갑자기 위엄이 서렸다. 사흘 후, 한낮 좀 지나, 해무리가 있을 것이니, 그 조짐을 보거든, 일순의 여유도 말고 , 혼자 집을 뛰어나가,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결코 돌아보지 말라는, 늙은 중의 말은 그대로 명령이었다.
그 사흘 동안을 장자집 며느리가 어떻게 지냈다는 것은 전설에는 없다. 다만 그는 대사의 영을 그대로 지켜 과연 해무리가 시작되자 어쩔 수 없는 힘에 끌리어, 집을 뛰쳐 나갔던 것이다. 허위단심, 느티나무까지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천지가 깨어지는 듯하는 벽력소리가 뒤에서 일어났다.
찰나, 그녀는 대사의 당부를 잊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자기가 버리고 온 집――고래등 같은 와가는 간데 없고, 보지 못하던 못이 음침하게 하늘의 해무리를 어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자기는 그 순간의 충격을 그대로, 돌로 굳어가며 있었다.
「돌」의 전설은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이 없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모르는 대로, 내려 이야기하고 보니, 한꺼번에 지난 몇 해 동안에 한 말 전체보다 더 많은 말을 한 것 같다. 갑자기 고요가 몸에 사무쳐, 나는 그제야 옆에 서 있는 영란에게 시선을 돌렸다.
영란은 나뭇잎을 새는 햇빛으로, 표범의 껍질처럼 아롱진 땅에눈을 떨어뜨리며, 긴 이야기가 끝나도, 단정한 옆 얼굴을 보인 채 말이 없었다. 긴 이야기가 끝나도, 단정한 옆 얼굴을 보인 채 말이 없었다. 말없이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꽤 높이 떠오른 해를 받아, 짤막한 그림자를 이쪽으로 기울이고 서 있는 돌을, 마치 체온이나 더듬듯이 조심스럽게 만져보는 것이었다. 놀랄만큼 가는, 비치도록 흰 손이었다.
그 바람 불던 늦가을 어스름부터 어언 십 년이 지난 이 언덕에는 지금 꽃찔레가 한창이고, 칡넝쿨이 얽힌 바위는 태고 이래의 해와마주 앉아, 묵묵히 스스로의 위치를 지키고 있을 따름, 들새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장자못을 굽어보며, 돌의 전설을 영란에게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찔레와 풀향기를 싣고 스쳐가는 오월의 바람이, 상기된 뺨에 싱그러웠다.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자기가 아직 그렇게 흥분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스러웠고, 어느 한 구석에 재워 두었던 무엇이 포시시 머리를 드는 것 같은 즐거움과 놀라움이 몸에 감기는 오월의 바람처럼 신선하였다.
그런 느낌은 오랜, 정신의 공백 속에, 다시 깃들기 시작한 그림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된 후로, 처음 맛보는 짜릿한 향기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였을는지 모른다. 확실히 나에게는 하나의 계절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패잔자로서, 거품 같은 몸을 옥수암으로 이끌어 왔던 나였기에, 돌이켜 보면, 십 년 전, 이 언덕길을 옥수암으로 향하며, 도취하던 고독과 패잔자의 심경――그것은 어쩌면 청춘의 가설이 아니고, 다가오면서 있었떤 것들의 재빠른 투영(投影)이었을는지도 몰랐다.
해석할 수 없는 것은 모두 기적(奇蹟)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녕 「나」를 버리는 셈으로 왔던 옥수암에서, 영란을 만났고, 그런 생명의 열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놀라움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사변 이후, 이내 심신에 금이 갔던 나는, 금 년 들어 건강 상태가 몹시 나빴다. 나뭇가지에 물 오를 무렵부터, 원인 모르는 고열이 계속되어,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수양가지가 제법 멋드러져 있었다.
열이 내리기는 하였으나, 다리에 힘이 없어 집에서 딩굴고 있는데, 뜻밖에도 옥수암의 혜정(惠貞) 스님이 찾아왔던 것이다. 승려에 흔히 있는 좌골 신경통을 참다 못해, 젊어서 버린 서울 땅을 다시 밟았노라고, 그는 겸연쩍게 웃음을 지었다.
혜정 스님은 속세의 척분으로는 나의 작은 누님의 시누이 뻘이 되었다. 사돈 집 부인이었지만, 돌아간 어머니가 만 년에 불교에 귀의하신 까닭에 형수들과도 친분이 자별하였다.
혜정 스님은 업고(業苦)도, 그럭저럭 다해가는 모양이라고,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의미를 비쳤으나, 몹은 오히려 전보다 부해 보였다. 나의 처지도 풍설로 들어 알고 있음 직한데, 그는 짐짓 그러는지, 그런 일에는 저촉지 않고 그저,
『젊은이가 몸이 너무 수척했구먼――나무관세음보살.』
하며, 초췌한 나의 얼굴을 측은한 듯이 보는 것이다.
혜정 스님은 흔히 불문에 있는 사람들이 입버릇 같이 외우는「관세음보살」이란 말을 독경 때나, 배례 때 이외에는, 입에 올리는 일이 없었다. 적어도 나와의 대화에 있어서는――나무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하루를 묵은 후, 혜정스님은 어떻겠느냐고 권하고, 늘 와 있던 정자 밑 별당을 치워놓겠노라고 하며, 서울을 떠났다.
심부른꾼 계집애 하나를 데리고 병구완까지 해주는 형수의 수고가 민망스럽던 차이라, 혜정 스님의 말이 나는 고마웠다.
혜정 스님이 떠난 후에도, 나의 건강은 시원치 않았다. 흔히들 말하는 신경쇠약이랄까, 두드러진 병은 없었으나 깨끗지가 못하였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으니, 신경만 날카로워 지는 것 같아, 차라리 옥수암으로 가서, 숨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홀연히 집을 나섰던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옥수암을 안 것은, 혜정 스님의 조카인, 북으로 가버린 영민이를 통해서인데, 당시 스님은 사십을 바라볼까 말까 한 어중된 나이의 조용한 여인이었다. 회색 바지 저고리에, 포르므리하게 머리를 깍은 승형(僧形)이었기에, 웃으면 덧니가 드러나는 귀염성스러운 입매하며, 비치듯이 맑은 살빛이 무언지 세상을 등진, 이 여인이 걸어 온 길을 더듬어 보고 싶게 하는 충동을 주었다. 옥수암에는 삭발한 사람이라고는 혜정 스님 이외에, 갑자기 일어난 화재로 어린 것을 둘이나 한꺼번에 잃었다는, 관자놀이에 불덴자국이 있는, 스님 또래의 여승이 한 사람 뿐이고, 나뭇단 같은 것을 해들이는 늙은 더부살이와, 정짓간에서 일하는 중년 여인은, 속세대로 읍(揖)하고 사람을 맞았고, 불반(佛飯)을 짓는 손으로, 합장하며 관세음보살을 외웠다.
절이라기보다는, 박행의 가인이 인생을 비켜사는 산장(山莊)이라는 느낌이 더욱 짙어, 우리는 곧잘 거기가 법당이라는 것을 잊곤하였다.
혜정 스님이 치워놓겠다고 약속한 정자 밑 별당은, 암자 뒤를 흐르는 이름 그대로 옥수같이 맑은 계두를 낀, 정자로 올라가는 오솔길목에 외따로 있는 초암이었다. 어떤 고덕한 여승의 수양처였다는, 두 칸 남짓한 방으로, 한쪽 벽에 낡은 불화(佛畵)가 붙어 있었다.
남성 금제의 여승방인 까닭도 있었지만, 한갓져서 좋을 것이라고, 옥수암엘 갈적마다 혜정스님은 으레히 그방에서 묵게 해 주었다.
외따로 있다 해도, 돌 틈마다 파랗게 돋나물이 돋아 있는 장독대 다음은, 바로 불두화, 철쭉, 국화, 축희화, 나리꽃 같은 꽃들이 철마다 피었다. 지는 화개였고, 비가 올 듯 말 듯한 습기를 머금은 날이면, 문을 닫은 방에까지 나리, 국화 향기가 스며들도록, 방은 그화개와 다가 있었다. 장독대 있는 무렵에서부터, 저쪽으로 물러나 흐르고 있는 계류가, 여기서는 초암(草庵)의 기둥을 씻다시피 하였다. 방앗간 집 아이, 어쩌다 문 닫는 날이면, 오히려 잠들기 어려워한다는 격으로, 옥수암에서 한 달 동안을 묵고 난 후면, 그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서울 집이 덤덤하게 느껴질 만큼, 나에게는 정든 방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방을 치워 놓겠다고 약속한 혜정스님은 자기가 그렇게 오기를 권했으면서, 나를 반기는 태도에 어색한 빛을 보였다.
그녀는 피로했을 터이니, 좀 쉬어야 한다고, 수다그러울 만큼 전에 없이 서둘러 법당 옆, 약방에 자리를 깔아, 나를 눕게 하고, 밖으로 나갔다.
언덕 위에 피어 흐트러진 산철쭉 속을 헤치고, 아련한 추억처럼 송진 냄새가 풍기는 솔 숲 사잇길을 걸어온 피로가, 나는 오히려 쾌적하였던 모양이었다. 어느 덧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잤는지, 어렴풋이 깨어가는 귀에, 옆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이렇까 저럴까 망설이고, 난처해하는 어조들이다.
나는 그 바람에 완전히 잠이 깨었다.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나 옆방 말소리는 이내 그치고 두 사람이 다 밖으로 나가는 모양이었다.
기침소리 한 번 새어 본 일이 없는 여승들이었다. 나는 부쩍 궁금증이 났다. 자리 위에 앉아 보았다. 아찔해진다. 역시 먼 길을난 것은 무리였나보다고, 도로 드러누우려는데, 그새 몰라 보게 늙은, 관자놀이에 불덴 자국이 있는, 그 여승이 부시시 문을 열었다.
불을 켜 줄까 하고 묻는 것을 대답치 않고,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덮어 물어 보았다. 그런 말은 왜 또 하느냐고, 시치미를 떼는데, 기척이 수상하니 께름칙 해서 있을 수 있겠느냐고, 몰아 붙였더니, 그제서야,
『전 선생님 방(이 무던히도 순박한 여승은 정자 밑, 그 별당을 전에는 학상 방이라고 했었는데)에 말이유, 며칠 전부터, 서울 손님이 와 계시데유――.』
하고 말 끝을 얼버무렸다.
스님이 서울서 돌아오시자, 오래 비어 두었던 그 방을 여럿이서 깨끗하게 치워 놓았는데, 난데없는 사람들이 가로채어버렸다고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스님의 조카 따님 양주라나요. 부잔가봐유.』
하고 못마땅한 듯이 고개를 흔들고 유경에 불을 다렸다.
이, 나를 앞질러 장자 밑 별당을 차지한 사람들이, 즉 혜정 스님의 조카 딸인 영란이와 그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부터, 다시 열이 오르지만 않았더라도, 거처를 잡지 못한 나는, 나는, 옥수암을 떠났을 것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몹시 몸이 쇠약해졌던 모양으로, 그만 여행을 이기지 못하여, 몸살열이 심하게 났던 것이다. 혜정 스님의 처지가 딱했지만, 나는 하는 수 없이 법당 옆방에, 앓아 누울 수밖에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몸만 추스르게 되면, 곧 떠나려고 마음먹고 있던 중에, 서울서 왔다는 사나이가 찾아와, 별당이 수선하더니 갑자기 영란이의 남편이 떠나게 되고, 뒤에 처진 영란이는 고모 옆으로 옮겨, 별당을 나에게 내어 주었다.
영란이는 나의 작은 누님의 전실 딸이어서, 나는 움으로, 그의 외삼촌이 되는 셈이었다. 누님은 중성적인 걱실걱실한 성격을 가진 부인이라, 내 배 앓아 낳은 딸이 아니라고, 구박을 하거나 들볶거나, 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들이비치듯이 흰 피부에, 간들간들한 못을 가진, 푸러 보이도록 검은 눈동자의 어린 영란은, 보기에 애련한 느낌을 주었다. 온순하고 말수가 적은, 다정한 소녀여서 계모에게나, 배다른 아우들에게나, 끔찍히 굴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 깐으로, 그렇게 마음을 쓰는데, 오히려 어느 감정의 굴절(屈折)을 짐작할 수도 있다고, 그때의 나는 생각하곤 하였던 것이다.
서로의 나이가 들어서부터는, 작은 누님의 집이라기보다는, 친우인 영민이의 집으로, 그의 집에 자주 드나들던 나는, 어쩌다가 누님이 나를 가지고「네 외삼촌이…….」 따위의 말을 할 때면, 적지 않게 어색스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내가 영란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영민이가 북으로 넘어간 지 얼마 후니깐, 그럭저럭 칠팔 년이 되나보다.
매부가――그러니깐 영란이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를 하고, 화병이 났다는 소문이 퍼뜩 퍼뜩 퍼질 때인데, 갑자기 뇌일혈로 쓰러졌다는 기별이 와서 달려가 보니, 누님은 뒷마루에 걸터앉아, 넋이 빠져 있고, 어린 것들은 문 밖에서, 흙강아지가 되어 뒹굴고 놀고 있는데, 영란이는 수돗가에서 쌀을 씻고 있었다. 얼마 보지 않은 동안에, 약간 야윈 것이 더욱 애련해 보이는 얼굴을 옆으로 보이며, 말끔히 씻겨진 쌀을 자꾸 되씻고 있었다. 누님의 처지라든가, 멀거니 허공을 보고 있는 매부의 정상도 딱하고 무거운 일이었으나, 가냘픈 어깨와 야윈 얼굴을 옆으로 보이며, 쌀알이 불어지도록, 자꾸자꾸 물을 갈아 헹구고 있던, 영란이의 모습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영란이가 어느 부잣집 후취로 출가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은, 그후, 반 년쯤 지난 뒤였는데, 그 결혼식에 참례하였던 형수들의 말을 듣는 것이 까닭 없이 고통스럽던 생각이 난다.
병든 아버지와, 나이 어린 두 아우 때문에 몸을 팔다시피 한 것이라고 수군수군들 하였는데, 그의 결혼 후 얼마 가지 않아서, 아버지가 돌아가고 이 년쯤 지나 작은 아우가 지브스로 죽어, 폭삭해버린 나의 누님이 중학교 사학 년이 된 큰 아들 하나를 믿고 쓸쓸하게 지내고 있었다. 불 꺼진 집 같이, 을씨년스러웠으나, 그래도 영란이가 어지간히 돌보아 주는 모양으로 헐벗거나 굶주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아들 하나를 힘으로 살아가던 누님도, 그 아들이 의용군으로 끌려간 채 소식이 끊어지자, 이내 속병을 얻어 시원치가 않다가, 피난 곳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말하자면 영란이의 희생――협잡과 방탕으로 유명하다는, 아버지만큼이나 나이가 틀리는, 그 징그러운 뚱뚱보에게 꽃다운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녀의 희생은,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그녀의 큰 집이 아들 형제의 사상 때문에, 흩어져 버리고 만 지금에 와서는, 영란이는 혈육이라고는, 속세를 등진 이 혜정 스님 한 사람밖에 남지 않고 있어, 생각하면 외롭고 서글픈 여인이었다.
그러나 희생이라고 생각하던 것은, 나의 착오였었는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다시없는 불쾌한 사실이었으나, 남녀의 결합이라는 것은, 한쪽이 남자이고, 다른 한쪽이 여자란,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조건만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인 모양으로, 얼마 동안, 그들 부부의 생활을 엿보아왔는데, 개기름이 흐르는, 더럽게 늙어가고 있는 남편을 섬기는 영란이의 태도는 그렇게도 정성스러운 것이엇고, 자기 위치에 불만이라든가, 회의를 품어본 일은 한 번도 있었을 듯싶지가 않았다. 그런 영란이를 볼 때마다, 나는 무슨 배신이나 당한 것 같은, 노여움에 가까운 느낌을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럴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언제나 몸을 곱게 거두고, 또 언제나 천연하고 명랑하여, 시름이 있어 보일 때가 없는 그녀를, 나는 긍정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꼭 서글프게 설레야만 된다는 이유는 없다. 허지만 영란이의 경우, 그녀가 그렇게 자족하고 안주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서투른 일인 것만 같았다.
생활이 윤택한 까닭인지, 성격이 그래선지, 영란이는 무척 차림새에 마음을 쓰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영란이가 나는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그런 풍유한 외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을, 젖혀 버렸단 말인가?
그러나 어쨌든간에, 한 번도 생산을 한 일이 없는 까닭인지, 소녀같이 가냘픈 몸을 그렇게 곱고 거두고, 한 무릎을 세워 약간 몸을 꼬으듯이 앉을 때라든가, 독특한 손 놀림으로 치맛자락을 감쌀 때의 그녀에게는, 서른이 갓 된 성숙한 여인의 자태가 무르녹아, 나는 그런 영란이를 보는 것이 괴로운 것이었다.
몸이 몹시 쇠약해져서, 옥수암의 약수를 먹으러 온 것이라는 혜정스님의 말이었으나, 약스터에 나가도, 영란이는 그리 물을 마시는 일이 없었다. 큰 살림을 맡아 하는 사람으로 듣고 있었으므로, 정짓간 노파의 말을 들을 때까지는, 나는 그녀의 태도를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묻지 않는 말을 정짓간 노파는, 이렇게 늘어놓았던 것이다.「영감」이란 자가 너무나 난봉이 심해, 계집이 두름으로 묶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요즘 와서는, 그 대머리가 따겁지도 않은지, 그야말로 손주 딸 같은 여자대학생한테 넋이 빠져, 사흘에 한 번 집에 돌아오기가 어려웠다는데, 자기가 아쉬우니깐 흥――하고 곡절이 있다는 것을 비치고, 이어, 꽤는 희떱게 살아 온 모양이지만, 예까지 비켜온 것을 보면, 뭐 곧 알아 볼 일이 아니냐고 하는 것이다. 댁네가 지나치게 뼈 없고 무던해서――하고 뒤를 흐린 말은, 칭찬인지 아타까움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제껏 남은 헐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만큼, 심산 속, 이름 없는 낡은 절간에서 늙어 온, 이 어리석고 착한 노파의 말에는, 오히려 무게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러한 남편에게 대한 영란이의 정절(貞節)이란 그의 결혼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하물며 결혼 후, 칠팔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입적(入籍)도 시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눈치로 안 일이지만, 전번에 찾아왔던 사니이라는 것이, 실은, 영감이 일본으로 뺑소니를 칠 수 있도록 서두른 자인 모양인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일이 절박하게 된 것 같은, 아랑곳 없는 일이지만,
『글쎄 뒤 일을 댁네헌테 틀어 맽기구 간 모양이라유, 어쩌자구 글쎄――.』
하고 체머리를 흔들었다. 댁네는 어떻게 할 작정일지는 몰라도, 전실 며느리들이 오히려 시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아, 뜨세가 이만저만해야지, 하고 또 머리를 흔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약수터에서 만난 영란이는, 언제나처럼 곱고 단정하고 명랑하였다. 그렇게 끔찍한 일에 눌려 있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보여지지 않는, 싱그럽고 맑은 얼굴에 귀염성스러운 웃음까지 띄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영란이가 새삼스럽게 기이하게 보였다. 여자란 그렇게 부자연한 부부생활에서도,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물질적인 여유라는 것은 그렇게도 인간성을 흐리게 하는 것인가?
몸을 추스리면 이내 떠나려던 나는, 열이 내린 후, 오히려 한 달남짓이 남은 어머니의 제사 때까지 쉬어야 겠다고, 마음을 늦추었다. 사실 오월의 옥수암에서 얼마를 지나는 동안, 나의 건강은 눈에 뜨이도록 좋아져가고 있어, 서울을 떠난 보람이 확실히 있었던 것이다. 가물 가물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독경소리에, 물소리와 산새소리가 와 얽히는 외진 산 절의 적멸위락(寂滅僞樂) 그대로의 아침 저녁은, 나의 황폐한 심신을 고이 지켜주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웬지 나는 자꾸만 외로워가는 것이었다. 이 몇 해를 텅비어 두었던 가슴에, 무엇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고독이――그리고 나의 경우, 고독이란, 천상과 지상의 모든 것을 자기 가슴 깊이 끌어 두기 위한 스스로가 마련한 수도자의 준엄한 고독이 아니고, 길 가다 쓰러진 나그네가, 쓰러지는 순간에, 자각하는 고독――그것은 차라리 무한한 공간 속에 팽개쳐져 있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무로 그 두려움에 물려 버리는 것보다는, 자기를 해하려는 적이라도 있어주기를 원할 만큼, 타협적이고 애끓는 고독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였기에 수유(須유)에 엿본, 그녀의 절망과 슬픔이 그렇게도 내 것처럼 사무쳤던 것이 아니었던가. 진정 영란이는 그때부터, 나에게 있어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기보다, 오히려 또 하나의「나」 를 품는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은 유달리 노을이 붉었다. 우리는――혜정 스님과 영란이와 나는 어스름해 가는 법당에 앉아, 언제나처럼 말없이 저마다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분향 냄새가 흐르는 법당은 언제나 어둡기 마련이었는데, 그날 저녁 따라, 타는 노을이 법당 안을 기웃거리는 것 같았다. 그 무렵이면, 으레껏 스며드는 어둠에, 잠겨가는 벽의 불화의 오백라한(五百羅漢)이 어렴풋이 떠 보이는 것이었다. 낙조는 거기서 그렇게 망설이더니, 갑자기 불단 위에 서 있는 관세음상에 가서 딱 머물렀던 것이다. 불도 켜지지 않은 어스름 속에서 관세음보살을 우러러 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째선지 나는 그 찰나의 관세음보살을 눈으로 보았다기보다, 전심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것은 정녕 합장한 자세의 불상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열어젖힌 법당 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다 낙조를 정면으로 받은 그 모습은, 죄 많은 중생(衆生)에게, 자비를 베푸는 지선(至善)의 보살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번뇌를 석자가 못 되는 전신에, 그대로 서려 넣은 아름다운 여인의 그것이었다. 반안(半眼)으로 내려다보는 눈도 인자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슬픔을 담은 것이었고, 세월에 낡아 도금(鍍金)이 후락된 모습은, 어쩔 수 없이 늙어가는 서글픈 여인의 운명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능라(綾羅) 밑으로 끝만 보이는 발이, 연화대(蓮花臺)를 밟고 섰는데, 발톱이 보일 듯 말 듯 안 쪽으로 꾸부린 양은, 밟고 선 것이 꽃이 아니라 가시라고 이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아니 그렇게 인간의 괴로움을, 그대로 괴로워하는 모습이기에, 그 찰나의 관세음상은 그지없이 나의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합장하고 있었나보다. 그러기에 내 옆에서 속삭어리듯이 외우는 염불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그것이 자기가 외우고 있는 소리인 것처럼, 착각이 갔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내 마음과 자세가, 새어 흐르는 소리였었기도 하였기 때문이리라.
――나무 관세음 보살――
얼마만큼 괴로운 영혼이면, 그토록 비원과 체념과 탄식이 얽힌 애절한 음성을 가지는 것인가.
그것은 염불이 아니고 신음이었다. 언젠가의 그「공백의 달밤」에 들은, 죽어 가는 사람의 입에서 의식 없이 새어나오던 신음이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법당에 찼던 낙조가 물러가고 있었다. 낙조가 물러가고 있는 법당에, 영란이의 흰 얼굴이 떠 보였다. 연화대 위의 관세음보살처럼, 눈을 게슴츠레하게 반쯤 감았다. 약간 뒤로 젖힌 얼굴은 우러러보는 모습이었고, 잔광 속에서, 빛을 잃어 보이는 입술이「ㄹ」을(音)을 발음 한 채로 다무는 것을 잃고 있었다.
그러면 여태껏「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있었던 것은 영란이었던가? 순간 또 하나의 여보살이 가슴을 파고드는 것을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얼굴에서 바로 전에 관세음상에서 느껐던 것과 같은 것을 읽었던 것이다.
백팔번뇌(百八煩惱)라 한다. 구태여 인간 번뇌가 백여덟 개 있으라 법이 있을 것인가. 다만 백(百)이라면, 어지간히 끔찍한 하나의 단위(單位)인데, 그 단위를 채우고도, 상기, 여덟이나 남음이 있다는데, 여운(餘韻)이 큰 것이 아닐까. 그 벅찬 번뇌를, 나는 이 두 여인――하나는 시간을 초월한 연화대 위의 불상이고 다른 하나는 덧없는 비린 육신을 지닌, 길 잃은 여인이었지만 그녀들의 우러르며, 내려다보며, 하는 얼굴에서, 꼭 같이 느껴 받았던 것이다. 이윽고 그녀들의 번뇌는, 또 한 내 자신의 것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나」를 가지는 것이라는 말은 진담인가보다. 그러기에 그 순간 나는 분명히, 영란이에게「나」를 느꼈던 것이고, 그녀가 외우는 여물소리를, 그녀의 그 애절한 음성을, 내 것으로 알았던 것이 아닌가.
공백감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패잔의 사나이와, 무의미한 희생에 목숨을 깎아 가는 여인을, 이 외진 산절에 쓸어 붙인 것은 무엇이었는지 모를 일이었으나, 어쨌든, 혈연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할지라도, 그녀와 나와의 관계는 속세의 척분으로 따져, 숙질이 되는 것이었고, 그런 속병(續炳)이, 다른 남녀들 사이 같으면, 주목을 받을 만한 행동까지도 어물어물 놓쳐주어 그것이 다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서로가 사랑을 자각하였을 때는, 이미 그녀는 내 자신조차, 거기까지는 보지 못한 내 내부 깊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진실로 몇 해만에, 나는 살 의욕을 가진 것이었고, 또한 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그녀와 더불어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월 중에도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새삼스럽게 태양이 찬란하였다. 바람이 살랑 언덕의 풀을 쓰다듬고 지나간 끝을 쫓으면, 저만치 못가에 서 있는 미루나무가 살짝 하늘을 쓸었다. 그러면, 하늘은 더욱 푸르게 맑아 가는 것 같았다.
영란이는 전에도 옥수암에 온 일이 없지는 않을 텐데, 장자못과 돌의 전설을 모르고 있었다. 오월의 바람이 일으킨 잔물결이, 따가운 햇살을 되받아 반짝거리는 것을 가리키며, 산 것이 가물거리고 있는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거기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겠노라고 꺼냈던 것이, 못과 돌의 전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란이는 거운 듣지 않고 있었는지 몰랐다. 아무런 대꾸 없이, 조심스럽게 돌을 더듬고만 있는데, 그런 동작조차, 거운 방심한 태도로 하는 것이었다. 부드러운 잔 머리가 바람에 불려, 이마 위에서 하늘거린다. 그런 그녀를 보자, 나는 그제서야 흥분한 것이 좀 겸연쩍어 쑥스럽게 덤덤히 서 있노라니깐, 영란이가 장자못쪽으로 몸을 고쳐 앉으며, 이쪽은 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그 전설은 교훈(敎訓)인가요?』
『교훈이라구? 그런 요소두 있겠지. 권선징악이랄까…….』
『권선징악일 것 같으면, 며느리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버리지 않아요?』
『참 그렇군.』
『그 전설의 주인공은 돌인데――그렇지요?』
하고 영란이는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정면으로 보는 것이었다.
『물론이지요. 오자불구(傲者不久)라든가,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관념으로 뭉친, 그 전설 중에서 단 하나의 사람이니까.』
『단 하나의 어진 자구요.』
『난 하나의 어진 자라기보다, 선(善)이란 관념 자체겠지.』
『…….』
영란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내려 깔고, 한참을 잠잠히 앉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좀 전과는 달라진 음성이었다.
『그럼――그럼, 선도 악과 같이 벌을 받은 거군요.』
나에겐 영란이의 말이 뜻밖이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얼굴로 눈길을 모았다. 그러나 영란이는 나의 그런 눈길을 피하려는 듯이, 돌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그 며느리를 단 하나의 사람이었다구 하셨지요, 왜?』
『그럼, 그 며느리가 뒤를 돌아보았으니깐――.』
『뒤를 돌아보았으니깐――.』
영란이는 나의 말을 그대로 받아 뇌이고, 이어 나오려는 말을 삼키는 모양이었다.
『뒤를 돌아봄으로써, 그 며느리는 사람이 된 것이지요. 허지만 교훈을 완성시키지 못한데 이 전설의 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몰라.』
옆에서 보는 돌은, 사람 키만한, 어떻게 보면 목 같이도 보이고, 팡파짐한 허리 같이도 보이게, 들어가고, 나온 데가 있을 따름, 그저 밍숭한 돌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돌이라도 좋았다. 진흙더미라도 좋았다. 영란의 옆에서, 같은 사물을 앞에 두고, 더불어 생각하는 것만이 즐거웠던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그 며느리는 행복했을까――.』
나지막한 영란이의 말이었다. 남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자신에게 묻는 그런 속삭임 같은 말이었다.
『행복의 의미가 뭣인지 모르지만, 적어두 이 전설에선 뒤만 돌아보지 않았더라면, 이루어지는 무엇이 있었을 것 아닐까?』
영란이는 대꾸가 없다가 한참 후에야 말하는 것이 무척 힘이나 드는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끊어가며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착한 사람이었지만――그런 돌이 되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었나 보지요.』
딴 사람처럼, 낮고 쉬인 듯한 음성으로 던져버리듯이, 하는 말이었다. 나는 까닭 없이 섬찍하며 눈을 들어 그녀를 응시하였다. 순간 그제서야 그의 시선을 포착한 것 같았다.
오월의 강한 햇살을 비스듬히 받은 야윈 얼굴에 음영이 짙었다. 그리고 그늘진 눈은 돌 쪽으로 향하고 있었으나, 그는 돌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 그런 자세로 자신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한 걸음 그의 옆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왜 인생을 잣밟는 것만을 운명이라구 불러? 그러면 운명은 처벌(處罰)이란 말인가?』
내 어조가 격렬했던지, 영란이는 대답이 없이 눈을 내려 깔고 웃고름만 만지작거렸다.
『영란이, 나는 운명을 전능하다구 보구 싶지 않어. 처벌은 물론아니구. 오히려 운명은――우리에게 부채(負債)를 지구 있다구 생각해.』
하며 나는 더욱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옷자락이 스치려는 순간, 영란이는 젊은 표범이나처럼, 미끄럽게 몸을 일으키고, 머리를 뒤로 젖히듯이 흔들었다. 이윽고 엉뚱한 말이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던 것이다.
『그래. 옥동 살 때였으니까. 아직 제가 국만학교 때 일이군요. 한 번은 영민이 오빠를 찾아오셔서, 막 떠들어대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정신의 부채란 말씀을 자주 허셨어요.』
아까와는 아주 딴판으로 명랑한 음성이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정신의 부채란 무슨 뜻인가 허구――정신이 흐릿해졌을 때 부치는 부챈가 허구――호호…….』
갑자기 영란이는 높은 소리로 히스테리칼하게 웃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가늘고 높은 웃음소리에는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 같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순간, 나는 이 몇 주일 동안, 내 내부에 가득히 서리고 있던 무엇이, 하나의 의지로 굳어 가며 있는 것을 또렷이 느꼈던 것이다.
그를 통하여――그의 불행과 슬픔을 통하여, 인생과 화해(和解)하고, 그와 더불어 인생과 재회(再會)를 해야겠다는 희망과 의지가――
사흘 후 어머니의 제삿날을 이틀 앞두고, 나는 옥수암을 떠났다. 절 문 밖까지 배웅하는 절 사람들 팀에 끼어 섰던 영란이가, 자연스럽게 나의 뒤를 따랐다. 언덕길까지 배웅을 하겠다고, 그 앞날 약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영란이에게, 혜정 스님은 흘깃 눈을 던졌다가 시선을 나에게로 옮겼다. 인자한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으나, 눈에는 빛나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없는 당부를 잘 알았다는 표시로, 역시 말 없이 고개만 끄떡여 보였다. 웃는 모습이 영란이를 연상시켜, 어쩔 수 잆는 혈연을 깨닫게 하는, 이 수업의 여승이 인생을 헛 딛은 젊은 조카딸을 자기가 몸을 던진 불문에 끌어들이지 않고, 그렇게 다른 길을 가게 해 두는 것이, 나에게는 흐뭇하였던 것이다.
간밤에 내린 비로 돌이 드러난 언덕길을 우리는 말없이 걷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말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지난 며칠 동안의 그녀와의 대화가, 그대로 가슴에 남아 있었다. 하필 나라는 특정(特定)한 사람이 아니었더라 해도, 일찍 어머니를 잃은 외롭고 다감한 소녀가, 자주 집에 드나드는 청년을 그리운 사람으로써 가슴속에 간직하게 되었던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이었다. 소녀 같이 애잔한 얼굴이었으나 그런 말을 하는데, 여하간 인생의 경험자라는 느낌을 주어,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게 하였다. 그녀는 곧잘 옛말을 하였는데, 놀랄 만큼 상세한 그 기억은 또한 사랑의 고백이기도 하였다. 웬일인지「모래」를「몰래」라고 발음하는 버릇이 있었던나를 기억하고 있어, 혀끝으로 그 말을 굴려 보곤, 그럴 때마다, 밀회나 하듯, 가슴이 설레었다고도 했다. 항상 가슴 한편에 나라는 존재가 서 있어, 그 죄악감 때문에, 그런 결혼 생활을 배겨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 이외에는, 지난 일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으나, 그녀의 환경을 알고 있는 나는 그 한 마디만으로 그의 과거를 집작 할 수가 있었다. 그 이상한 명랑성과 만족한 빛은 절망에서 온 것이었던 것이다.
소생 하나 없고, 장남한 전실 자식들까지, 계모 대접을 거부하는, 버림받은 아내인 영란이는, 또 그만큼 매인 곳이 없는 신분이기도 하여, 그런 것이 지금 와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내가 앞서 서울로 돌아가고, 며칠 후에 그녀가 내 뒤를 쫓아오기로 되어 있는데,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와 시일가지 이미 짜여져 있었던 것이다.
흐렸던 날이 개어 가는 모양으로, 여기 저기 푸른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 하늘에, 바람에 쫓기는 구름이 거세고, 간간이 마른 천둥이 울리기도 하였다. 간밤의 비바람에 떨어졌는지, 언덕에 피어있었던 찔레는, 푸른 잎만이 무성해 보이고, 거센 하늘에 간간이 강렬한 해가 비껴, 그럴 때마다 풀꽃들이 확 타오르듯 시야에 들어왔다간 다시 음산하게 그늘지곤 하였다. 그러면 엷게 화장을 하고, 새하얗게 소복한 영란이의 단아한 옆 얼굴도 역시 그늘졌다 밝아졌다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영란이를 보며, 어째선지는 몰라도 자기가 대학 공과를 나온 건축기사이고 학생시대부터 남들에게 어지간히 촉망을 받아 본 일도 있었다는 것들이 상기되어, 새삼스럽게「나」가 고쳐 보여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학생시대에는 제 나름으로 이상도 가져 보았던「나」를 그녀의 앞에서 다시 느꼈던 것이다.
장자못이 눈 아래에 눕고, 멀리 흰 물거품을 물은 동해가 트였다. 우리는 느티나무 밑에 이르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돌 옆에 걸음을 멈추었던 것이다.
돌 옆에 서면, 자연 장자못을 굽어보게 되는 것은, 돌의 위치 때문이었지만, 잠시나마 이별을 앞두고 말이 거두어졌던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여 그쪽으로 눈을 던졌다. 장자못에는 바람이 일으킨 잔 물결 위에, 바람에 쫓기는 구름과, 얼굴을 내밀었다가는 이내 가리워지는 처참한 하늘이 어리어 있었다. 못에 어리는 그림자가 그렇게 달라져가곤 하는 중에, 꼭 하나, 그것이 제일 무서운 것이었던지, 바람도 쫓지 못하고 있는 먹구름이 가운데 뻗치고 있어그 뒤에 해가 숨은 모양으로 엄청난 그 구름 언저리가, 금빛 선이나 두른 것처럼 찬란하였다.
소나기가 올지도 모른겠다고, 영란이 쪽으로 시선을 옮기려는데, 먼 곳에서 또 뇌성이 울렸다. 순간, 영란이의 전신을, 어떤 전율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절박한 음성으로 그녀를 불렀다.
『영란이!』
『네?』
영란이는 눈에 뜨이도록 오므리며, 이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생각하면, 그렇게 절박하게 그녀를 불러야 할 일이 없어, 나는 싱겁게 몇 번이나 되풀은 말을 다시 뇌었다.
『그럼 토요일 날 하오 두 시에 에서 응?』
영란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거기서부터 모퉁이를 돌아야 했다. 날씨도 험상하니 그만 돌아가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입술만으로 웃으며, 오히려 나의 길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얼마를 가면, 길이 다시 되돌아, 산골짜기 너머로「돌」과 마주 서게 된다. 영란이는 내가 그 건너 길에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려는 모양이었다.
한참 후, 나는 땀에 젖으며 건너편 길에서「돌」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마을까지의 길은 발아래 바다를 끼고 가게 되어, 비 온 뒤의 바다 냄새가 짙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달았던 몸을 식히며, 나는 두 손으로 나팔을 지어, 영란이의 이름을 불렀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건너편에 소리가 들렸을 리는 없지만, 그녀도 나를 보자, 손을 흔들었다.
금시 한 줄기 할 것 같던 날씨가 어느새 개어, 기울어져 가는 해를 역광으로 받아, 이미 옆에 서 있는「돌」과 지내없이 실루엣만 보이고 있었으나, 나는 그녀가 그 자리를 떠날 때까지 머물 양으로, 길섶에 주저앉았다. 그러니까, 건너편의 실루엣이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무슨 내기나 하듯, 건너편에서도, 영란이가 돌에 기대앉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에겐 그런 영란이의 태도가 귀엽다는 생각보다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상념이, 자꾸만 머리를 드는 것이었다――웬지는 몰라도 그녀는 절대로 나에게로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념이――그것은 거운 확신이었다. 왜? 내 내부에서, 무엇이 소리 없이 허물어져 갔다. 이윽고 나는 달포 전에 이 길을 옥수암으로 걸어갈 때의 그 허망감이 되살아오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바람이 다시 일기 시작하여, 발 밑에서 출렁이는 단조한 바닷소리가 높아져 갔다. 길섶의 풀이 유록색으로 보여,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둘레에는 황혼이 내리고 있다.
나는 눈을 들어 건너편을 바라다보았다. 무수한 가지로 노을이 타는 하늘을 조각 지고 있는 늙은 느티나무 밑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여,「돌」에 기대어 앉은 여인의 모습을,「돌」속에 몰아 넣기나 한 것처럼, 이쪽에서 보는 눈에는「돌」만이 호젓이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일어서서, 말없이 걷기 시작하였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언젠가 영란이가 하던 말이 입에 떠올랐다.
――선도 악과 같이 벌 받은 거지요――
발부리에 돌이 자꾸만 채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둠이 짙어온 탓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무숙(韓戊淑: 1918- )
서울 출생. 부산 고녀 졸업. 1942년 장편 <등불 드는 여인>이 <신세대> 현상 모집에 당선되어 등단. 그의 소설이 지닌 특성은 장인 의식을 통한 삶의 고통과 허무의 세계를 전아한 문체로 깊이 있게 탐구한 데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역사는 흐른다>, <감정이 있는 심연>, <빛의 계단>, <유수암(流水庵)>, <어둠 속에 갇힌 불꽃들>, <만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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