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리 랑 별 곡 -한승원
1
안골 연안의 모래밭에 붙은 멧기슭의 손바닥만한 보리밭으로 허위허위 달려오는 할머니의 귀에 아리랑 타령 한 가닥이 서려 있었다.
재 너머 마을은, 아비와 함께 징용에 갔다가 억수로 돈을 벌어가지고 나온 달식이네 아버지가 마을의 회관 짓고 사장에서 넓바우 선창까지 신작로 만들 돈을 내놓고, 돼지 두 마리에 술을 내놓는 바람에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늙은 축은 달식이네 마당을 차지하고, 젊은 축은 아랫 골목의 사장을 차지한 채 노래하고 춤추고들 있었다. 이날의 주역인 달식이네 아버지가 자꾸 아리랑 타령을 부르자고 했고, 그를 둘러싼 또래의 노인들이나 사십대 오십대의 중년들이 모두 코 노래를 부르는 탓으로 마을 안은 온통 아리랑의 물결이 판을 쳤다. 이웃 마을인 삼리나 죽산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실카장 먹고 마시고 돌아가면서 추는 춤과 부르는 노래 넋두리 때문에 골목들은 물론 주변의 산과 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우렁우렁 노래를 하는 듯 했다.
그런 속에서 마을 아낙네들 사이에는 머리끝이 곤두서고 가슴을 저미게 하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장인 정 창호가 돈을 훔쳐 가지고 도망치는 큰 딸 영심을 잡아다가 방안에 가두어놓고 옷을 갈기갈기 찢어 벗긴 다음, 너무 깊이 박히지 않도록 송곳 끝 부분에 실을 많이 감아 들고 허벅다리를 밤새 쪼아댔다는 것이었다. 영심이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깔려달라고 하며 울부짖어 댔지만 영심이네는 귀를 막았는지 지레 어디로 도망을 쳤는지 그 방에 얼씬하지를 않았다더라고 했다. 거기 대하여 아낙네들은
"독살스런 놈, 지옥에도 못 가겄네."
"아무리 이녁 딸이라고 그렇게 빨가벳게서 작살내는 법이 어디 있단가."
"법만 없으먼 잡아서 회 쳐묵었을 놈이구만잉."
하고 정 창호를 욕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귀때기에 피도 안 몰라진 년이 이놈 저놈 붙어 묵다가 칼부림나게 해놓고, 그 새 또 어느 놈을 붙었는지 돈을 돌라서 달아난 것을 생각하면 맷독에다가 갈어뿌러도 싸겄네."
"옛날같으먼 두 가랭이를 확 찢어갖고 이 간짓대 저 간짓대 끄트머리에다가 달아놓고, 질가는 사람들한테 구경을 시켰드라네, 칼부림나게 한 그런 년들은."
하는 무리도 있었다.
밭둑에 선 할머니는 정말 그런 년은 육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때 같은 손자 철승이 바로 그 영심 때문에 칼부림을 내고 죽어갔으니 말이었다. 정 창호가 달식이네집 잔치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을 보고 숙덕거리는 아낙네들의 말을 들으며 할머니는. 왜 진즉 딸 간수를 잘하지 않고 있다가 탈이 나버린 뒤에야 늦게 잡고 되게 채고 있느냐고 속으로 볼멘 소리를 했다. 여느 때 길거리에서 만나면 흰떡 같은 얼굴에 까맣게 박힌 눈으로 이편을 바라보면서 허연 떡니를 내놓고 웃곤 하던 영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게 바로 그년의 화냥기였던 것을, 세상을 살만큼 산 자기도 그게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손자를 미처 타이르지 못했던 것이었다
할머니는 박살난 으등카리처럼 조각난 주름살들을 굳히면서 이를 물고 한숨을 쉬었다. 제 새끼 잡아먹는 호랑이 없다고 다 사정 두고 하는 짓일 뿐이지 자기 딸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죽이네 살리네 해싸도 죽어 흙 밥 된 놈만 불쌍한 것이었다.
밭귀에는 놀짱놀짱해지는 보리 까라기들 사이로 하얀 찔레꽃 한 떨기가, 소복한 채 상여 뒤따르며 함박눈 맞은 과수댁의 횐 얼굴처럼 맥없이 바닷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 쓴 지 한달 남짓한 새 무덤이 있었다. 덮인 잔디 사이로 붉은 황토흙이 드러나 있었다.
"육실헐 놈. 이르쿨로 찐득찐득 살고 있는 내 꼴 본께 씨언할 것이다."
할머니는 죽은 손자가 원망스러웠다. 넓바우 쪽에서 미역가공 공장의 양수기 엔진 소리가 부르르르 온 해안을 울리고 있었다. 고 소리가 할머니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바닷 귀신은 무얼 하느라고 저 놈의 미역 가공 공장을 쓸어가 버리지를 않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던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모두들 잘 먹고 잘 살아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색바랜 검정 치맛자락을 걷어 허리에 찌르고 밭고랑으로 들어섰다.
쪽빛 바다 물굽이에 부딪친 햇조각들이 찔레꽃 잎에 설핏 걸터앉았다가 하필 할머니의 눈으로만 날아오고 있었다. 손등으로 눈물 어려 흐릿해진 눈을 비비면서 밭고랑을 내려다보았다. 지고 새면 이 밭으로 달려나와 김을 매고 북을 주고 한 터라, 고랑이나 보리 그루 사이에는 검누른 흙이 있을 뿐 귀리는 물론이요, 이런 갯가 밭에 흔한 바랭이나 갈퀴덩굴 한 가닥이 없었다.
할머니는 보리밭 언덕으로 나와서 쪼그려 앉았다. 언덕에서 무성하게 자라 보리 그루로 잎을 뻗은 억새풀이나 띠풀 줄기를 뜯었다. 가슴이 멀미한 속처럼 울렁거렸다. 달식이네 아버지가, 영보의 아비하고 함께 일본 대판으로 끌리어가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에 피멍울이 맺힌다면서 억지로 끌어다가 부어준 술을 석 잔이나 거퍼 마신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달식이네 아버지가 무정하다고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손을 내어 저으며 술이고 뭐고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넓바우 선창까지 길을 내면, 우리 밭을 다 길로 잡아넣게 될 것이 아니냐고, 만일 그렇게 되면 아들과 손자의 무덤이 모두 길 한복판으로 튀어나오게 된다고,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아주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우리 밭은 한자 한치도 파먹어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로 하고 신작로를 낸다는 확약을 하여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신작로를 내기 시작하는 날이 나 죽는 날이라고. 할머니는 달식이네 아버지를 붙잡고 애원을 하여댔다. 달식이네 아버지는 (조선말)한 지가 하두 오래 되었기 때문에 서툴러졌다면서, 여부 있느냐고, 달식이한테 모든 것을 잘 부탁할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떠듬떠듬 말하면서 술을 권하는 바람에, 내리 석 잔이나 거듭 들었던 것이었다.
눈앞이 보얗게 흐려지면서. 가슴이 감태라도 한 입 잘못 삼켜서 걸린 듯 답답하여 왔다. 술을 마신 탄일까. 새삼스럽게 영보 아비 생각이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무정한 아비였다. 해방되면서, 함께 징용에 간 사람은 모두 돌아왔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고 해 쌓던 달식이네 아버지한테서는 육이오가 지난 이듬해부터 할 달이나 두 달만에 편지가 오곤 했었다. 그랬다가 이렇게 억수로 돈을 벌어 가지고 돌아온 것이었다. 한데 이 무정한 사람은 해방되던 때부터 이날까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달식이네 아버지는 일본 여자를 얻어 아들 딸 낳고 살림을 하느라고 이때껏 이 땅에 나오질 않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 무정한 사람도 제발 덕분에 그러기라도 하느라고, 정말로 얻은 일본 여자가 박꽃 같이 예뻐서 찰떡같이 정이 들어 버렸기 때문에 소식을 그렇게 끊어 버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저쪽(이북)으로 머리 쓰는 사람들하고 손을 잡거나 어쨌거나 했기 때문에 이때껏 이 땅엘 건너오지 못하던 사람들도 이 몇 해 들면서는 모두 올 수 있게 되었노라고 하던 것이지만, 이 막막하고 무정한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일본 어느 산골이나 해변 구석에 처박혀 살고 있기나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할머니의 머리 속에는, 해방되던 해 징용군들을 태운 배 두 척이 대마도 근처의 바다에서 가라앉아 버렸다던 말을 생각했다. 답답하게 차 오른 가슴속의 덩어리를 하아 하고 내뿜으면서, 죽는 게 그렇듯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라도 이 보리밭 고랑에 꿍 드러누워서 눈을 힘주어 감고 숨을 안 쉬어 버리면 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누워버린 몸뚱이에 누가 흙 한 줌 덮어 줄 것인가. 숨이 막혔다. 허리를 폈다.
산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 같은 어둠이 눈앞을 가렸다. 피용하고 귀가 울었다. 보리이삭을 헤치고 손자의 무덤 앞으로 나왔다. 무덤 위의 듬성듬성한 잔디에 기대앉으면서 할머니는 며느리를 원망했다. 손자가 죽은 것도 따지고 보면 며느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서방 까묵고, 새끼 잡어묵은 년, 어디 가서 얼마나 잘 산가 보자."
이렇게 중얼거리던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날벼락 맞을 소리를 하느냐고 했다. 며느리로 보아서는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쪽빛 물 구비에 잔물결이 일고 있었다. 아득하게 바라다 보이는 금당도와 소록도 뒤로 솜털 같은 구름이 피어올랐다.
술이 건들하게 취한 남자의 컬컬한 노랫가락이 산줄기를 타고 계곡을 감돌아서 할머니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였다. 그 노래 줄기를 따라, 퍼덕퍼덕 살아 날뛸 손자를 죽게 만든 것이 아무래도 며느리와 늙은 자기이거니 하는 생각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할머니는 혀를 깨물었다. 며느리 년이 어느 놈을 안고 돌든지 말든지, 또 소갈머리 없는 손자가 제 어머니를 안고 도는 바로 그 놈을 멋모르고 따르든지 말든지 그저 모르는 척하고, 손자의 허리 띠를 붙잡고 딴 생각을 못하게 하고, 사립밖에 나다니지 못하도록 얼싸안고 돌았더라면, 그렇듯 허망하게 놓치지 않았을 것을 그랬다 싶었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그 날 아침. 손자 철승이는 벽장에서 검붉은 피를 칠해 놓은 듯한 깡깡이(기이타)를 내려 안고 웃목 구석으로 두르고 앉아 줄을 퉁기고 있었다.
산신령이나 용왕님네가 알이라도 낳듯 뻥 낳아주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만 같이 다행스럽고 귀엽고 고마운 씨요, 아들 죽은 뒤, 네가 언제 커서 내 서방 되어주겠느냐고 아쉬워하는 코흘리개 신랑 키우는 생과부처럼, 놓으면 깨질까 불면 날아갈까 하며. 횃대에 매달아 늘일 수 있을 것 같으면 늘이고 싶을 만큼 어서어서 키우고 싶던 손자 철승이 이 해 스무 살이었다. 가을이나 겨울에는 마땅한 데가 생기는 대로 여의살이를 시킬 생각을. 늦봄의 묵은 김치 우거지 다독거리듯 다져오는 할머니는, 정초에 토정비결을 보니 삼사월 운수가 아주 불길하더라면서, 제발 재익의 아들 성삼이하고 더 (웬수야 악수야) 하고 다투지 말라고 타이르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이놈은 또 그게 듣기 싫어 깡깡이를 내려 안은 것이었다.
깡깡이 소리는, 이제 겨우 아리랑 타령 한 곡조를 배웠을 뿐이어서인지 어째서인지, 자꾸 들어보아야 그 소리가 그 소리였다. -똥 누러갔다, 오줌 누러갔다-를 몇 번 하는 듯하다가 아리랑 타령을 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놈은 싫증내지 않고 열심히 퉁겨댔다, 오죽한 손자라고, 그 손자가 퉁겨대는 깡깡이 소리가 귀아파 못 견딜 만큼 듣기 싫을 것인가. 얼핏 들어 코멍멍이 소리일 뿐이요, 거기에서 쌀 나오고 돈 나오지 않을 것이언만, 그렇게 퉁기고 있는 손자의 모습을 한없이 보고 싶어지는 할머니였다.
다만, 그 깡깡이를 하필 재익의 동생인 재술이 가져다가 준 것이라는 게 꺼림칙하고 싫은 정이 들뿐이었다. 기름장사 밑구멍처럼 미끄럽고, 소록도 가는 나그네의 콧구멍에서 마늘씨 뽑아 먹을 만큼 간사스러운 떠돌이 장삿군인 재술이 왜 자기 것 아까운 줄 모르고 이걸 철승이한테 선뜻 준 것인지를 할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툇마루로 나왔다. 검은 젓국이 앉은 널빤지가 삐그덕거렸다. 흙담 위로 맑은 공기를 뚫고 쏟아진 사월의 햇살에 눈이 부셨다. 이 해 마흔 살 되는 며느리는 넓바웃개의 모래밭가에 있는 손바닥만한 밭으로 김을 매러 나갔다. 그 며느리를 뒤쫓아가서 타이르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전날 밤, 할머니는 며느리가 잠을 못 이루고 자꾸 한숨을 쉬어 쌓다가 집을 나가는 것을 살금살금 뒤따라가 보았던 것이었다. 며느리는 넘가웃개로 가는 앞메 잔등을 넘더니 모래밭에 붙은 밭으로 가고 있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아파 왔다. 밭귀에는 제 서방의 무덤이 있었다, 오죽이나 복장이 터질 듯 아픈 멍울이 차올랐으면 저렇게 한밤중에 서방 무덤을 찾아가는 것이겠느냐고, 피둥피둥 젊은 시절을 한숨만 쉬며 살아온 할머니는 목줄이 대롱처럼 뻣뻣해지고, 가슴이 양잿물덩이라도 삼킨 듯 아리고 쓰리면서 화끈거리는 것을, 이 악물어 침 삼켜 삭히고 긴 숨을 들이쉬면서 눈살을 찌푸려 달랬다. 기둥서방 얻어 놓고 사는 꾀를 진즉 귀띔해 주었는데도, 저 불쌍한 것이 비틀걸음 한번 걸을 생각을 못하고 있다 싶었다. 이 시어머니가 파서 만든 옹달샘 물 길어 마시고, 거적문 늘어뜨린 부엌 드마들며 남비밥 지어 먹어온 며느리가 간덩이가 크면 얼마나 커서 계 서방 아닌 어느 남정의 허리 안고 돌만큼 잡되어 있을 것인가. 밤이면 암내낸 개같이 마을의 사랑방 문틈으로 사내냄새를 맡으러 다닌다더라는 터무니 업는 소문은 어느 년놈이 지어 퍼뜨린 것인지는 몰라도, 그 입놀리는 사람들은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벼락을 맞아도 칼벼락을 맞으리라.
울려는 사람 실컷 울게 해야지 못 울게 하면 안 되느니라하며 발을 돌리려는데, 밭귀에서 도란거리는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세웠다. 며느리가 귀신이 씌었는지도 모른다 싶었다. 귀신이 씌었다면 분명 아들 귀신일 것이었다. 머리끝이 쭈삣 서는 것이었으나, 바위 뒤에 몸을 숨기면서 발소리를 죽이고 밭귀쪽으로 다가갔다. 귀신이 되어 나타난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바위 모서리에 얼굴을 기댄 채 밭귀의 아들 무덤을 바라보았다. 넓바우 연안에서 앞메 잔등 위로 펼쳐진 설익은 먹딸기 빛깔의 하늘에 민들레 꽃가루 같은 별들이 줄레줄레 달려 있었다. 가득 밀려 오른 바닷물은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원시 양서류처럼 넘실거리면서 잠든 사람의 숨길처럼 불규칙적으로 게으르게 모래톱을 핥고 있었다. 그 물결에서 민들레 꽃가루 같은 별들이 덩어리지기도 하고 더욱 잘게 깨어지기도 하고 있었다. 아들의 무덤 주변은 바야흐로 흐드러진 보리 잎사귀들과 산기슭의 곰솔 숲이 드리운 암청색 어둠을 별빛이 눅여 놓고 있었다.
새로 맞춘 개량(2리터)되를 두 개 포개 놓은 것 만한 상자에 담겨온 아들의 허깨비 같이 가벼운 유골이 생각났다. 그 유골 묻힌 무덤 앞에 며느리는 엎드리거나 쪼그려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볼수록 그 무덤 주변의 별빛에 눅여진 암청색 어둠은 소용돌이치듯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 술렁거림 속에서 며느리는 울고 있었다. 할머니가 기대선 바위에서 스며드는 차갑고 딱딱함이 가슴을 차갑게 굳히고 있었다. 바위 모서리를 으스러뜨릴 듯이 잡아 쥐었다.
찰브락거리는 물결에 섞여 들려오는 며느리의 울음소리는 예사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며느리는 앓고 있었다. 그것은 숨 넘어갈듯이 헐떡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뱀에게 먹히는 개구리처럼 목줄이 눌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기도 귀고, 남자의 억누름에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쥐약 같은 것을 먹고 혀가 굳어서 버리적거리면서 내는 단말마의 비명 같기도 하고, 호랑이나 도둑에게 늦기는 꿈을 꾸는 사람이 발버둥치면서 낑낑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머리끝이 곤두섰다. 며느리가 팍팍한 이 놈의 세상 못살겠다 하고 쥐약이나 농약 같은 것을 먹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싶었다. 워따 어메, 이 일을 어째사 쓸꼬 하며 우르르 달러 나가려는 순간, 남자의 끙하는 안간힘 소리가 술렁거리는 어둠을 발끈 뒤집었다, 동시에 며느리의 외마디 비명 같은 여봇하는 소리가 할머니의 뒤통수를 때렸다, 머리속에 두 마리의 검은 구렁이가 그려졌다. 허벅다리처럼 굵고 소나무 껍질 같이 거무스레한 비늘이 엉긴 구렁이는 암수 한 쌍이 바다에 산다던 것이었고, 그것들은 늘어져 얽히고 섥힌 드렁칡처럼 한번 얽히어지면 이틀 밤낮을 꼬박 지낸 다음이라야 풀린다던 것이었으며, 그렇게 얽히어 있는 동안 그 구렁이 주변에는 짚불 연기 같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다던 것이었다. 그런 때 바다는 암내 전 미친 여자가 바위나 기둥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울어대거나 앓아대는 듯한 소리로 아악아악 하고 운다던 것이었고, 그러면 이튿날부터는 어김없이 샛바람이 기어들고 큰비가 내린다던 것이었다.
아들의 무덤 주변의 어둠 속에는 두 마리의 검은 구렁이가 늘어져 얽힌 드렁칡처럼 얽히어 있는 듯만 싶었다. 할머니는 제발 뱀으로 환생한 아들이 제 아내를 친친 감고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를 바랬다. 눈을 힘주어 감았다. 잠시 후, 남자의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고생하지 말고 나 따러 갑시다."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할머니는 미친 소처럼 모래밭을 내달렸다. 바위에 몸을 부딪쳐 주저앉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개울 속으로 곤두박질쳐 넘어지기도 하면서 재를 넘었다.
아비가 징용에 끌려간 뒤 혼자 사는 세상에 신물이 날 만큼은 난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수절을 하며 혼자 살아가라는 말을 한번 한 적 없었다, 몸 튼튼하고 마음씨 좋은 남자 하나를 골라서 기둥서방으로 보듬고 살면서 손자 여의살이 시킬 때까지만 고생하라고 한 터였다.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한다면 맑고 밝은 한낮에 날벼락을 맞아 앉고 못 일어날 것이었다. 약 좋고 기술 좋고 영리한 머리들 잘 쓰므로 바라지 않는 (삼시락) 오게 될까 걱정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세상인데,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다고 피둥피둥 젊은 세상 밤마다 허리 질끈 동여매고 한숨만 쉬며 살아가야 할 까닭이 어디 있느냐고. 몇 번이고 씹어 이른 터였다. 철승이 여의살이만 시키고는 너 알아서 가고 싶은 데로 가라고 당부를 한 터였다.
할머니는 두 주먹으로 앙가슴을 치며 널뛰듯이 뛰어 마을로 들어갔다. 다른 데도 아닌 서방의 무덤 앞에서, 하고 많은 남자들 다 던지고, 그 서방이 살았을 적에 그떻게 (웬수야 악수야) 해쌓던 재술이를 안고 나댈게 무어란 말인가. 다 긁어모아도 바지락 껍질 한 짝에도 못 찰 소갈머리여서인지 할머니는 그 꼴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본 척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년이 잡아죄어도, 하필 목줄을 훑어 죄며 버티는 것만 같아 분하고 억울했다. 그러나 그 억분을 담배 대통에 씨레기 재듯 눌러 재고 불붙여 연기를 빨아 뿜어 날리면서 밤을 새됐다, 그러다가, 이런 일 모처럼 저지른 홀어미 속이 오죽 울렁거릴 것인가 하며, 하룻밤이 지난 다음에 조근조근 씹어 타이르자는 매듭을 지었다.
한데, 엎친 데 덮친다고, 손자가 또 덩달아 재술이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꿈만 같이 공교롭게 얻어 가지고, 어려움과 쓰라림 속에서 얼마나 안타깝고 조급하게 얼르며 달래며 얼싸안고 키워온 손자라고, 그 손자가 좋아하는 재술이를 미워해야 할 건더기는 업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재술이 쪽으로 기우는 며느리와 손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도저히 없었다.
몽땅몽땅 쌓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타이르려는데, 밖에서 자고 들어온 손자 놈이 아침 밥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지게에 구럭을 짊기고 물옷을 구럭에 담은 뒤 점심밥을 싸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시키지도 않은 섬개엘 갈 모양이었다.
덕도에서 (섬개에 간다)고 하는 것은 금당도의 서남쪽에 있는 꽃섬이나 장구섬 같은 데로 갯것을 하러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 살지 않는 그 섬들엘 갈 경우, 사람들은 그 섬에서 귀한 파래, 톳. 참몰, 우뭇가사리, 돌김 등을 맘껏 뜯어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펄쩍 뛰었다. 손바닥만한 배를 타고 오가다가 바람을 만나면 배가 뒤집혀 죽기 꼭 알맞은 것이었다. 요행 살아온다 하여도 그 바람 속을 저어 오느라고 하는 고생은 입에서 닳고 닳은 쓴 내가 사흘동안은 내지른다고 하는 말이 있는 것이었다. 예전처럼 돛단배가 아니요, 노만 젓는 배도 아니며, 눈 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는 기계배가 있다고 하지만 그 배 또한 채취선의 크기와 같을 분이었다. 샛개 농장 생기지 않은 십여 년 전. 다음날 아침의 끼니 앉힐 거리가 없을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집 사람들이 목숨 걸어놓고 다니던 섬개였다. 그러나, 요 몇 해 들면서는 아무도 그 섬개엘 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섬개엘 가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애비가 월남 가서 죽어오는 바람에 나온 돈으로 논 두 필을 사서 벌어먹고 있는 터라, 세 식구가 노적더미 쌓아놓고 배 뚜드려 가며 먹고살지는 못해도 풀칠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처지에 그토록 먼 섬까지 갯것 하러 갈 까닭이 어디 있는가 말이었다. 그것도 옛말이지. 이 몇 해 사이로는 꽃섬 장구섬도 금당사람들이 자기들 땅이라고 말뚝을 박아 놓고 어촌계 청년들을 풀어 지키기 때문에, 눈치코치 없이 얼씬거리다가는 금당도로 끌려가서 한 이틀씩 발이 묶여 있다가 오기 일쑤라던 것이었다.
하긴, 처녀 총각들이 뱃놀이 겸하여 보는 사람 업는데서 실컨 노래 부르고 춤추고 놀다 올 생각으로 파래나 톳을 캐러간다는 핑계를 대고 더러 갔다오곤 하는 모양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첫마디에 못 간다고 했다.
입맛 껄껄해서 밥 한 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호미를 찾아 들던 할머니는 손자의 지게에서 물 옷을 빼앗아 팽개치고, 너보고 누가 섬개에 가서 파래 뜯어오라 하더냐고 소리쳐 말하고, 꼭 일을 하고 싶거든 안산에 가서 땔나무나 조금 긁어오라고 했다, 그 말에 철철승 눈쌀을 으등카리 같이 찌푸리고
"구경 삼어서 한번 갔다가 올락한께 그라요?"
하고 대들었다.
"워따 어메 이것이 뭔소리란가. 이 넓은 땅 낳두고 해필 그 멀고 험한 뱃길을 달려서 그 좁은 섬 구석에까지 구경을 가야? 그라고도, 금당도 사람들이 쫓아와 갖고, 한 이틀 붙잡어 놔두먼 어짤라고 그라냐, 이녁 것도 아닌 배타고 가갖고."
할머니의 말에 철숭이는
"큰 애기들만 실코 가먼 아무 일 없닥 합디다."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깡깡이를 보듬고 앉아버린 것이었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요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
손자의 깡깡이는 어쩌면 이 대목을 간신히 울어 넘기고 있는 듯 하더니, 또 거퍼 -똥누러 갔다, 오줌누러 갔다-를 늘어놓고 있었다.
손자가 미역가공 공장엘 나가기 시작한 것은 이 깡깡이가 생긴 뒤부터였다. 아무리 돈이 아쉽다 하기로, 어떻게 얻어 얼마나 귀하게 키운 손자인데 이놈의 등에 무거운 짐 지워 골병들게 하는 김 양식을 하겠느냐는 할머니의 생각에 따라, 농사철 외에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던 손자가 누구의 꾐에 빠져 거기에 발을 들여놓은 것인지 몰랐다.
재익이네 비역가공 공장엘 나간다는 것이 꺼림칙하였다. 휜 모래밭에 혀를 박고 죽는 한이 있어도 할머니는 이제껏 재익이네 사립 한번 얼씬해 보질 않고 살아오고 있었다. 할머니의 물자를 이날까지 혼자 허덕거리며 살지 않을 수 없도록 대막대기처럼 분지르고 꺾어놓은 게 바로 재익이네 아버지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손자의 마음을 들쑤실 필요는 없었다. 꺼림칙한 대로 두고 볼 수밖에 얼었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했다. 거기 가서 힘겨운 일 할 것을 생각해 보면 가슴이 아프고 짠한 노릇이었지만 할머니는 인제 죽더라도 눈감고 죽을 수 있겠다 싶었다. 무슨 일이든 해보려고 덤벼드는 손자의 마음가짐이 고마왔다.
한데, 그게 바로 동네 처녀들과 어울려 놀 생각에서였던 것이었다. 동네 처녀들은 겨울철의 김 거두어 들이기가 이른 봄 들면서 끝나면 곧 넓바웃개 안고랑에 생긴 미역가공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날품 드는 일 한가지로 들고나기가 자유스럽고 고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 칠팔 백원의 노임을 받으면서도 처녀들은 싫어하지 않고 잘 나다녔다. 또한 공장에서는 남자공원들을 예닐곱씩 쓰곤 하였는데, 처녀들은 공장을 오가는 걸음에 뒷골이나 앞메 잔등에서 어울려 놀곤 하였다. 손자는 바로 이 재미를 보느라고 가공 공장엘 나다니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며칠 동안은 낮에 내내 잠을 자고 밤에 나가 일을 하곤 하더니, 하룻밤에는 옷에 온통 피범벅이 되어 가지고 돌아왔었다. 할머니는 펄쩍펄쩍 뛰면서, 누구하고 싸웠느냐고, 누구한테 이렇게 두들겨 맞았느냐고 울부짖었다. 손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장으로 달려가서 일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공장 집 아들 성삼이하고 싸웠다고 했다.
성삼이하고 싸웠다면 따져 들어 보나마나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았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성삼이는 읍내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대학 예비고사에 떨어져서 집에 와 있는데, 공부하고는 이미 담을 쌓고 공장에서 일하는 처녀들하고 히히덕거리며 꼬집고 때리는 장난질이나 하는 것으로 재미를 삼고 있는 아이였다. 학교 다닐 때에, 하라는 공부는 않고 주먹질 발길질만 배우러 다닌다더라는 소문이 마을 안에 퍼져 있지 않던가. 할머니는 공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성삼의 멱살을 잡아끌면서 가슴이며 어깨며 할 것 없이 마구 꼬집고 두들겨댔다. 어떻게 얻어 가지고 얼마나 귀하게 키워온 자식인데, 내 자식 패 죽이려고 주먹질 배웠느냐고 소리쳐 댔다. 공장안 사람들이 몰려들어 말리는 바람에 성삼의 여드름 투성이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어 주지 못하고 밀려나온 것이 그렇게도 가슴 아픈 할머니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 내내 속은 아리고 쓰리는 것이었지만 할머니는 손자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틈이 있을 때마다 철승을 타일렀다. 이 바닥에 살지 않으려면 몰라도 살 바에야 끝끝내 성삼이하고 (웬수야 악수야) 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었다. 이날 아침에도 할머니는 손자의 무릎 앞에 앉으면서,
"악아, 내 말 조깐 듣고 그것 튕게라."
하고 말했다, 손자가 고개를 들고 할머니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을 흘끗 건너다보았다. 볼이 부풀어 있고 입술이 튀어 나와 있었다. 제 얼굴 하나 들여다본고 사는 이 할머니의 마음을 몰라주는 소갈머리가 야속했지만,
"성삼이하고 다시는 쌈하지 마라잉. 그쪽에서 멋이라고 하드라도 잘못했다고 말해 뿌러라. 싸우고 친구 사귄닥 안 하디야? 오히려 더 흠결 없이 대하고 살어라."
하고 타일렀다. 손자가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깡깡이 줄을 와드랑와드랑 신경질적으로 긁어댔다
"얼릉 밭에나 가소."
퉁명스럽게 내뱉고, 또 -똥누러 갔다, 오줌누러 갔다) 하는 소리를 내더니, 이어 아리랑 타령을 퉁겨갔다. 손자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생각되었다. 섬개에 갈 것을 포기한 듯 했다.
"섬개에 안 갈 것이지야?"
다짐을 주자, 손자는 걱정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며 깡깡이만 퉁겼다.
"나도 나지마는, 느그 어메는 참말로 너 한나 들고나고 하는 것 보고 산다잉. 그란디, 니가 혹시 섬개에 갔다가 섬사람들한테 붙잡히든지 바람이 불어서 못 오든지 하면 참말로 다 몰라져 죽을 것이다잉."
이 말을 남기고 사립을 나섰다.
골목길을 걸어나가는 할머니의 눈앞에, 간밤 아들의 무덤 주변에서 낙지 잡으며 파둔 구덩이 속의 느리게 소용돌이치는 갯벌물처럼 술렁거리던 어둠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앓아대던 며느리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앞메 잔등 위에 뜬 해의 보리까라기 같은 빛살이 눈 속에 시푸른 어둠을 담아 넣었다. 눈을 감았다. 간밤 일을 전혀 모른 체하고 며느리를 타이르리라 했다.
모래 언덕을 따라 좁다랗게 띠처럼 멧기슭에 둘러져 있는 밭은 두 마지기였다. 며느리는 북쪽 밭귀에 쪼그려 앉아 김을 매고 있었다.
빛 바랜 쪽물이 담길 듯한 바다는 살랑거리는 마파람에 잔물결이 일어나 있었다, 모래톱을 치는 물결이 햇살을 깨면서 철썩거렸다. 건너다 보이는 도리섬의 칼바위 주변에는 금빛 고기비늘을 깔아 놓은 듯 햇조각들이 떠서 반짝거렸다. 아니, 섬 주변에 사는 모든 물고기들이 일시에 물위로 솟아올라서 질펀히 깔린 금싸라기들을 쪼아먹느라고 날뛰어대는 것만 같았다. 넓바우 연안에 있는 미역가공 공장의 양수기 엔진소리가 하늬바람결을 타고 흩어져서 아득하게 들렸다.
할머니는 선창 쪽 밭귀에 있는 아들의 무덤 앞으로 갔다. 이게 바로 아들의 무덤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할머니는 도무지 그게 정말 같지가 않았다.
유골이라 하여 오는 나무 상자 속에는 기껏 손톱하고 머리카락 몇 가닥하고 가는 톱밥 같은 뼛가루 한 숟갈 정도가 들어 있을 뿐이라던 것이었다. 그걸 열어서 그게 아들의 것인지 아닌지 확인해 본들 무엇하랴 해서, 정말로 아들이 죽어 돌아온 것이거니 하고 장사를 지내기는 했지만, 아들의 무덤 아닌 가묘를 써 둔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곤 하는 할머니였다. 아들은 이 바다 안에서 가장 빠르다는 어협 조합의 대형 발동선을 타고 갈 경우, 이틀 낮과 밤을 내내 달려가고도 하루 낮을 더 달려가야 겨우 닿는다는 월남이란 데에서 그 흰자위 많은 눈을 껌벅거리고 살아 있을 것만 같았다. 무덤의 마른풀들 속에서 푸른 잎들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간밤 며느리가 재술이와 함께 무슨 일인가를 치렀을 자리를 눈짐작으로 가려 더듬으면서 모래 언덕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두 홉들이 삼학 소주병 한 개하고, 과자며랑의 비닐봉지 몇 개하고가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반짝하는 햇조각이 불을 확 당기어 놓기라도 한듯, 가슴에 화끈하는 뜨거움이 일어났다. 밭둑을 걸어서 며느리에게로 갔다.
검정 사각 무늬가 있는 가지색 통치마에 배추 꽃물을 들인 샛노란 스웨터를 입은 며느리의 얼굴은 반죽을 해놓은 밀가루같이 헤반주그레 했다, 눈두덩이 부석부석했다. 다가가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을 터인데도 며느리는 고개를 들지 않고 뿌리 깊이 박힌 바랭이 가닥을 호미 끝으로 파내고만 있었다.
할머니는 치맛자락을 걷어올리고 며느리가 앉은 옆 고랑에 쪼그리고 앉았다. 며느리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것을 생각하고, 어디 아프냐고 하며 며느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며느리는 흡사 귀머거리가 되어 버리기라도 한 듯 시어머니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호미질만 했다. 내리깐 눈의 검고 긴 눈썹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며느리의 마음이 이미 자기나 손자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간밤, 아들의 무덤 주변에서 술렁거리던 시푸른 어둠이 떠올랐고,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며느리의 앓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재미없이 팍팍하고 슬프기만 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며느리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 원망스러움을 말로 뿜어낼 수 없었다. 말로 뿜어내지 못하고 속에 묻어 삭힌다 하여, 한숨을 쉬거나 넋두리를 늘어놓거나 흥타령 같은 것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널려 있는 설움이란 설움은 모두 자기가 다 떠맡아 안고 지고 품고 머금고 있는 듯이 생각하고 있는 며느리이므로였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이 안골연안이 숫제 며느리의 울음바다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자기의 속이야 어떻게 곯고 아리고 쓰리어도 천연스럽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야 하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듣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말을 하여 가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세상 탁탁하고 맥없기는 할 것이다마는 그래도 철승이 조깐 타이르고 그래라이. 큰일났어야. 저 하는 대로 보고만 있어서는 못 쓰겄단 말다. 오늘 아침에는 먼놈의 섬개엘 간닥 해서 못 가게 몇 번 씹어 일러 놓고 나왔다. 너도 모른 척하지만 말고, 그 애기가 어디 가서 먼 일을 하는 가 보기도 하고, 혹시라도 누구하고 쌈을 하는지 미리미리 타이르기도 하고 그래라. 저번 참에도 안 나다녀도 될 미역공장엘 다닌다고 다니다가 그 일을 안 저질르디야?"
며느리는 보리그루에 얽힌 갈퀴덩굴 한 가닥을 뽑으며 한숨을 투우 하고 내쉬었다. 할머니는 얼른 말을 돌렸다.
"니 아픈 속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마는, 어쩔 것이냐. 너나 나나 웬 센놈의 팔자가 사나와서 안 그라냐? 내 말 잘 들어라."
몇 번이고 흘려준 말을 다시 곱씹어 흘려주었다. 마음씨 좋고 몸 튼튼한 기둥서방을 하나 얻어서 살아보라는 말이었다.
"다 눈감어 줄 것인게, 동네 사람들 눈에만 띄지 않게 쥐도 새도 모르게 한번 살아봐라. 고생이 어째서 안될 것이냐마는 저 새끼 여의살이 시키도록만 살어주라."
하고 난 할머니는 가슴이 꽉 막혀왔다. 머리카락 한 오라기 손톱 한 개가 묻혔더라도 그게 정말로 아들의 것이라면 분명 혼령이 들어 있을 아들의 무덤 앞에서 며느리에게 이런 소리를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었다,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면서 투우하고 막혔던 숨을 내뿜었다. 간밤,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며느리의 앓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 밭고랑에 두 발을 뻗고 주저앉아 한바탕 소리쳐 울어버리고 싶은 할머니였지만,
"그란디,"
하고 말을 뽑았다. 마치 남의 이야기라도 하여 가듯 말을 했다.
"나는 이참에 재술이가 철승이한테 깡깡이를 준 것이 암만해도 맘에 걸려 죽겄다. 내 속이 쪽박같이 좁아서 그란지는 몰겄다마는, 그 집 식구들하고는 절대로 정두고 살아서는 못쓴다. 이 얘기는 잘 들어갖고 니가 철승이를 조깐 잘 씹어 일러라."
할머니는 쪼그려 앉은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두둑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주저앉으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먼 바다에서 이랑진 물결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어쩌면 할머니의 가슴속으로 밀려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물결 같은 수많은 말들이 응어리져 있는 가슴을 폈다.
"재술네 아부지는 죽어갖고 어쩌먼 구렁이가 되었을 것이다. 살어서 남 못할 일을 그렇게도 많이 했는디 구렁이가 안되고 뭣이 될 것이냐? 내 팔재가 뭣 따물레 파싹파싹 깨져뿐 바가치같이 되어 뿌렀다냐? 하고 많은 사람 다 놯두고, 순사들 앞세우고 우리 집으로 달라들어갖고 느그 아부지 징용에 보내뿐 사람이 바로 재술네 아부지다. 알기를 그리 알고 살어가사 쓸 것이다. 그런다고 웬수야 악수야 하고 살어갈 것은 없는 일이지마는, 속은 두고 살어사 쓴다. 재술이네 아부지가 보통으로 간삽고 독하고 모진 사람이 아니드니라. 배급이 나오면 하필 우리 집만 쏙 빼뿔드니라. 철승이 애비가 살었을 때 어째서 재익이나 재술이하고 그렇게 쌈을 부커대고는 했는 줄 아냐?"
철승의 아비도 다 생각이 있어서였을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철승 아비가 월남에 다서 죽은 것도 재익이네 식구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재익이네 아버지는 자기가 서둘러 이편의 남편을 징용에 보내놓고도 가슴 절려하는 구석이 손톱만큼도 없던 것이었다, 오히려 한두 번의 노랑 설탕 배급을 주고, 안남미 배급에 차례를 넣어주고, 그 댓가로 이편의 몸을 요구했었다. 그게 철승의 애비가 다섯 살 되던 해의 봄이었다.
날품으로 밭을 매고 들어와 설핏 잠이 들었을 때, 대오리 문 창살을 가만가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쳐 일어나며 누구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낮게 새어 들어왔다
"뭔 잠이 그렇게 깊이 들었소? 사람들 모르게 배급 쌀 조깐 갖다 줄라고 왔소."
잠결이었지만 가슴이 짜릿하면서 뭉클 뜨거워졌다. 간사하고 표독스러운 그였지만, 이편의 남편을 징용에 보내놓고는 속이 편하지를 못한가 싶었다. 여느 때 밉고 저주스럽던 그가 고마왔다. 일어나 문고리를 따려고 했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한밤중에 홀어미가 혼자 자는 방엘 들어오려고 하는 그 남자의 속셈은 뻔한 것이었다. 여차하면 쓸 생각으로 아랫목 머리맡
에 놓아둔 방망이를 집어들었다. 그 배급 쌀 받지 않겠다고, 얼른 돌아가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겠다고 외쳐댔다.
"영보네는 어째서 내 속을 그렇게 몰라주요?"
남자는 이렇게 달래면서 대오리문 창살을 북 뜯고 손을 들이밀었다. 문고리를 벗기려고 했다. 눈앞이 아찔했다. 방망이를 내리쳤다. 그러면서 도둑이야 하고 소리쳐댔다. 그는 두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후후 불며 엄살을 떨다가 어물어물 돌아갔다. 철승 아비를 끌어안고 부들부들 떨면서 밤을 새웠다. 새벽녘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남자가 놓고 갔을지도 모르는 배급 쌀자루를 재익이네 집으로 가져다가 주어 버릴 셈으로였다, 그러나 남자가 놓고 갔음직한 배급 쌀자루는 거적문 늘어뜨린 부엌이나 손바닥만한 마당 어디에도 없었다,
재익이네 아버지는 그 뒤로도 몇 번이고 호젓한 데서 단둘이 만나 가주고는 손목을 잡으면서, 정이나 두고 살자고, 서로 입만 열지 않으면 정두고 사는 것을 누가 안다냐고 뵈었다. 한번은 밤늦게 김 이삭을 주워 가지고 재를 넘어오는데 이편을 솔숲 속으로 끌고 들어가러고 했었다. 만약에 소리 지르면 당신 죽고 나 죽고 해 버리겠다고 하면서 입을 막았다. 이편은 그편의 가슴을 물어뜯었다. 그가 나동그라졌을 때 사람 살리라고 외치면서 마을로 내달렸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그는 이편을 아예 배급 주는 차례에서 빼버렸다.
해방이 된 뒤로, 때려죽이겠다고 나대는 청년들을 피하여 한 일년 동안 어디선가 살다 들어온 그는 다시 마을을 휘어잡았다. 그를 죽여야 한다고 괭이나 낫을 내두르던 마을 사람들도 그의 대소가 사람들의 위세에는 꼼짝을 못했다. 무식한 마을 사람들은 다시 그에게 이장과 어협 총대를 맡겼다.
그러면서부터 그는 이편에게 더욱 괄시를 하여댔다. 울력이 났을 때 홀어미를 빼어주곤 하는 관례를 무시하고 이편에게 기어이 궐을 물게 하였으며, 마을에서 넓바우 선창까지의 길을 내는 데에 이편의 밭 언덕을 까뭉개어 내게 하는 억지 계획을 만들기도 하였다. 물론 자기 형님을 징용에 보냈다고 이를 갈던 억보가 경비대엘 간다고 갔다가 반란군이 되어 돌아와 가지고 총질을 하여 그가 죽은 뒤로, 성근지게 나서는 사람이 없어 길 내는 일은 세우나마나한 계획이 되어 버렸었다. 그러나 마을에서 넓바우 선창으로 큰길을 내기로 했다는 마을회의가 있은 뒷날 이편은 재익이네 집으로 쫓아가서 악다구니를 쓰면서 대들었던 것이었다. 그게 철승의 아비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문제는 그런 저런 꼴을 보고 자란 철승의 아비가 이편의 통사정에 따라 장가를 들고 영장도 나오지 않은 군대엘 자원하여 가기까지 재익이네 식구들을 보고 이를 갈곤 한 것이었다. 재술이하고는 동갑이었지만 서로 말도 주고받지를 않으려 했었다. 한번은 음력 대보름날 풍물을 치다가 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마당 밟기를 하면서 괜히 술바람에 한 짓거리들이기는 했겠지만, 따지고 보면 쌓인 원한이 터져 나와서 된 싸움이던 것이었다. 이 싸움에서 철승 아비는 코피를 한 바가지나 쏟을 만큼 재익이네 형제한테 두들겨 맞았던 것이었다. 입심이 셀 뿐 아니라 싸움이 붙었다 하면 떼로 몰려 덤벼드는 최씨네 형제를 때려눕힐 장사는 없었다. 만일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기라도 했다가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들은 보복을 하고 나섰다. 아버지가 죽은 뒤로 이장이나 총대를 대물려하는 그들은, 자기들을 건드린 사람이 허가 없이 솔가지 하나를 베면 대번 산림계를 불러들이고, 멸구 덤장이나 정치망 그물을 놓거나 삼마이 그물을 놓으면 오며가며 낫으로 쳐서 떠내 보내는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세금을 비싸게 먹이기도 하는 것이었으며, 마을의 규정을 어기고 김발 한 떼만 더 막아도 기어이 철거반을 들이밀던 것이었다. 철승의 아비가 자원입대를 한 것은 바로 그 싸움이 있은 후였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월남파병에 자원을 하여 갈 셈으로 자원입대를 하였던 것이었다. 돈을 벌어와서 재익이네 형제한테 보아란 듯이 살아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돈 도둑질해 가지고 바깥 바람쐬러 가기라도 나듯 훌쩍 밤새 도망질 쳐서 군대를 가버린 철승의 아비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혀올 뿐이었다.
할머니는 긴 한숨을 들이쉬면서
"내 말 잘 알어듣고 철승이한테 차근차근히 조깐 씹어 일러라."
천상 해 보아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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