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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

78.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by 자한형 2022.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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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 말 도 할 수 없 었 다  -최 창 학

 

딸의 매음으로 살아가는 어미의 하품에 관하여

 

아무리 급박할 경우라도 글이라는 걸 쓰기 위해 집을 놓아두고 여관 생활을 한다는 건, 적어도 내 경우는 분에 넘치는 일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집과 직장 사이가 멀어 출퇴근으로 최소한 두 시간 사십 분 이상이 소모되어야 하는 데다가(차를 탐으로 해서 와지는 피로는 그만두고라도) 남들처럼 서재니 뭐니 해서 내 방을 따로 갖고 있지 못한 관계로 집에 와서도 쉽게 내 일에만 집착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를 못하니 어떻게 하랴. 체력이라도 좋아 몇 날 며칠 밤을 꼬박 새워도 끄떡없는 몸이라면 어떨지 모르나 하룻밤만 새워도 이튿날 직장 근무에 당장 표가 나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가 단편 같은 것이라도 청탁을 받아 써 주겠다고 약속을 해 놓았는데 그 약속 일자가 앞으로 일주일 또는 닷새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때까지도 손을 못 대게 되었을 전(게으름 때문일 경우도 있으나 글쓰는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경우가 더 많다) 별 수 없이 나는 직장 가까이 있는 싸구려 여관을 이용하는 버릇이 있다. 직장에서 걸어 오 분 정도 걸리는 곳에 방을 잡아 놓고 부근에서 싸구려 밥을 사 먹으며 직장 근무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을 글쓰는 일에 바치되 평균 세 시간 내지 네 시간 정도는 잠을 잘 수 있도록 비상의 방법을 써 보게 된다.

언젠가 그때도 그랬는데, 그때야말로 정말 어떻게든 써 주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었다. 한번 써다 주고 고료가지 타다 써 버렸는데, 시국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지나치게 그려 있어 곤란하니 다른 걸로 바꿔달라는 잡지사의 요구였던 것이다. 처음엔 안 쓰고 고료를 반환할 계획으로 미뤄 갔으나 그 정도의 여유(엄살이 아니다)도 잘 생기지 않았고 잡지사의 성화로 더 이상 미뤄 갈 수 없게 되어, 마누라에게 졸라 쓰다 남은 고료의 일부를 타내어 쾌 비참해져 가지고 그 길을 택했었다.

싸구려 여관치고는 좀 조용한 곳으로 알려진, 전에도 간 일이 있어 아는 집을 택했지만 그래도 역시 여관은 여관인지라 여관만의 그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여행자들의 숙소로서보다는 비밀스런 남녀들의 성 유희장으로 더 활발히 쓰이는 그 분위기가 거기에도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약혼한 사이처럼 보이는 젊은 남녀도 있지만,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의 쌍, 젊은 남자와 늙은 여자의 쌍, 나이가 비슷하더라도 결코 부부처럼은 보이지 않는 중년 남녀의 쌍이 흘끗흘끗 주위에 신경을 쓰며 드나드는 광경을 수 차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렇든 좋았다. 화장실에서, 또는 세면장에서 나오다가, 그곳으로 막 들어서는 나와 맞닥뜨렸을 때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는, 겉으로는 아주 순진해 보이는 여자를 보고도 태연할 만큼 나는 단련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역시 옆방에서 들리는 높은 숨소리와 신음 섞인 교성에는 신경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럴 줄 알고 미리부터 제일 조용한 이층의 구석방을 골라 잡았는데 (맨 구석방은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 있어 그 다음 방을 잡았다.) 오히려 더 심한 것 같았다. 시설이 형편없는 싸구려 집이라 방음 장치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지르는 소리의 주인공이 젊은 여자인지 늙은 여자인지, 또는 놀아나는 여자인지 처녀에 가까운 여자인지까지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자정이 넘어 새벽 한 시경에 가장 심했는데 보통 두 시경에 자 다섯 시나 여섯 시쯤에 일어났던 나는 대개의 경우 듣기 싫어도 그 소리를 다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전 하도 신경이 쓰여 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별로 가고 싶지도 않은 화장실을 가거나 세면장에 가 머리에 찬물을 끼얹고 오곤 했는데 언젠가 하루는 그러다가, 무얼 하려고 그러는지 그 늦은 시각에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방(내가 들어 있는 옆 구석방)으로 들어가는 가냘픈 여자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무언가 어색했던지 나와 마주치자 희멀겋게 웃음을 보였는데 약혼자를 따라온 순진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많이 되었어야 스물 일곱, 여덟의 나이인데 화장기가 있는 얼굴인데도 병색이 보였고 거친 세월을 견뎌 온 사람들에게서만이 볼 수 있는 피곤과 끈질김의 그늘이 어려 있었다. 술집이나 다방 같은 델 나가는 여자로서 손님을 따라온 게 뻔할 것 같기도 했으나 술집 여자라기엔 얼굴이 너무 창백했고(술집 여자들의 경우 술을 한두 잔 정도는 할 줄 아는데다가 안주 같은 걸 잘먹어 그렇게 창백하지는 않다) 다방 여자라기엔 너무 가늘었다(다방 여자들의 경우 다리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다리가 그렇게 빈약하지는 않다-그렇다고 전적으로 몸을 파는 창녀라고 단정을 내릴 수도 없는 것이, 그 여관 부근이 창녀 소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다음 다음날 나는 그 여자가 그 방에 계속 기거를 하면서 전적으로 몸을 파는 여자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한밤중 비슷한 시각에 높은 숨소리와 신음 섞인 교성만이 들리던 그 방에서 느닷없이, 개쌍년,,,,,,어쩌고 하는 남자의 소리와, ? 사람을 쳐? 야 이 새끼야, 돈이라고 그것 내놓고 빨아달,,,,,, 어쩌고 하는 여자의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엔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여관 앞 큰 길거리에서 통금에 쫓기는 사람들 틈에 오락가락 서성거리는 그 여자를 실제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글이 씌어지지는 않고 답답해서 술이나 한잔 마시고 잘 생각으로 나갔다가 보았는데 나는 알아보았지만 그 여자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여자뿐만이 아니고 비슷한 부류로 보이는 여자들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창녀의 소굴로 유명한 곳에서처럼 그렇게 아무나 붙잡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손님들로 하여금 접근을 해 오도록 차를 못 타 큰일났다는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여인 행색을 하고 있었으나 그 얕은 수작에 쉽게 빠져들 만큼 세상살이에 순진한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엔 공을 친 듯 새벽 한 시, 두 시가 되어도 높은 숨소리며 신음 섞인 교성은 물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새벽 여섯 시쯤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좀 씌어질까 하고 끙끙거리던 나는 이제까지는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어떤 노파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꺼떡허면 공을 치니 이러다간 어디 살겠냐?"

창녀한테 흔히 내뱉음직한 포주의 소리 같은 노파의 말에 여자는 갑자기 소리를 높여 말했다.

"나도 이제 지긋지긋해요. 우리 이렇게 살지 말고 모두 다 죽어요."

누군 뭐 살고 싶어 사냐? 우리가 죽으면 어린것들은 어떡허고---"

단순히 포주와 창녀의 대화라기엔 좀 이상한 이런 대화를 듣고 나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설마 친어머니와 딸 사이리라고 까지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고 다시 이틀 후였다. 전날 밤엔 괜찮은 손님이 들었던 듯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들어가는 슬리퍼 끄는 소리에 이어, 높은 숨소리와 신음 섞인 교성이 새벽 한 시경에 한 차례 들리고 여섯 시쯤 내가 눈을 떴을 때 또 들렸는데 거기에 대한 신경 쓰임도 쓰임이지만 소변도 보고 싶어 방밖으로 나선 나는 머리끝이 쭈뼛해질 정도로 섬뜩함이 따른 이상한 광경을 목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별로 늙지도 않은 오십대의, 결코 악독함이라고 할 수 있는 면이 남달리 심하게 보이지도 않는, 전형적인 이 땅의 어머니상이나 마찬가지로 보이는 평범한 한 노파가, 방금 전까지도 높은 숨소리와 신음 섞인 교성이 들렸던 바로 내 옆 구석방을 열쇠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틀림없이 엊그제 그 방에서 들렸던 목소리의 주인공 노파인 것 같았다.

내가 유쾌하지 못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노파는 민망했던지 곧 시선을 거두고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이빨 몇 개가 빠져 있다면 오히려 어울릴 것 같은데 이빨은 너무 깨끗하고 촘촘했다.

여덟 시쯤 되어 옆방 남자 손님은 떠나갔고, 내가 출근을 하려고 나설 즈음엔 노파와 여자 사이에 이런 대화가 들려왔다.

"얼마나 받았냐?"

"얼마 못 받았어요. 그렇지만 다른 손님들이 다 이 손님만 같으면 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빨리 좀 내놔라. 애가 지금 기성회비 때문에 오늘도 학교를 안 갈 작정을 하고 있더라,"

"엄마두 참,,,,, 나야 죽든지 살든지 그 애 학교만 보내면 장땡이우?"

포주한테도 엄마라는 소리야 보통 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역시 좀 이상해서 출근길에 열쇠를 맡기면서 나는 카운터한테 물었다.

"내 옆방에 들어 있는 그 여자하고 노파는 어떤 사이요?"

어색한 표정으로 한동안 웃기만 하다가 카운터는 말했다.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 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녜요?"

"그럴 수도 있다니 ? "

"몸을 팔아 식구들 먹여 살릴 수도 있지 않느냐구요.

"그럼 그 노파가 친어머니라는 이야기요?"

"그런 모양이에요."

카운터의 젊은이는 남의 일에 뭐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있느냐는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전쟁 때라면 또 혹시 모르겠다. 그리고 실제로 전쟁 때엔 이 땅만이 아니라 다른 땅에서도 여자들이 그보다 훨씬 더한 짓을 강요당해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도 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때가 아닌가, 마땅히 모든 게 달라졌어야만 옳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자 값싼 감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일종의 분노 같은 게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뭐라고 흥분할 수도 없어 (나 같은 약자가 지금 세상에 마누라를 제외한 다른 사람한테 무슨 큰소리를 칠 수 있겠는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걸음을 빨리 해 여관을 나서자 젊은이가 등뒤에서 투덜거렸다.

"남이야 딸버지를 팔아먹고 살든 에미버지츨 팔아먹고 살든 자기가 무슨 상관이야."

 

전동차에서 본 불구청년의 원맨 쇼에 관하여

 

'구걸을 하거나 구걸 행위에 귀를 기울이지 맙시다. 물건을 팔지도 말고 사지도 맙시다.' 마이크에서 들리는 이런 소리 때문인지 요즈음엔 전동차 안에서 구걸을 하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버스 안내서와 마찬가지로 전동차 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 다리가 잘라져 목발을 짖은 사람이 '한많은 대동강아,-어쩌고 하는 노래를 부른 후 손을 내민다든가, 늙은 맹인이 어린 소녀와 함께 다니며 손을 내민다든가, 중학교 교복을 입은 소년이 '일찌기 부모를 잃은 천애 고아로서 오로지 배우기 위한,,,,,,' 어쩌고 하는 글뤼가 쓰인 카드를 돌린 후 그 카드 내용보다 더 화끈거리는 내용의 웅변을 하고 나서 볼펜을 판다든가, 영화배우를 흉내낸 청년이 '조용한 차내에 소란을 끼쳐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 물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쩌고 하는 연설을 꽤 유창하게 하고 나서 비닐지갑을 판다든가, 반실성한 것 같기도 하고 막걸리를 한잔 걸친 것 같기도 안, 기동이 불편해 뵈는 할머니가 '어린 것들이 집에서 밥 달라고 졸라 그려,,,,,-어쩌고 하는 말을 반말로 해대며 껌을 파는 등등-,,,,, 삼사십 분 전동차를 타는 동안에도 평균 열 명은 넘게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거의 매일 하도 많이 보게 되어 그런지 어떤 사람이 어떤 식으로 어떤 말을 하건 대개의 경우 차내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한두 닢의 동전을 던져 주거나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동정을 해주고 싶거나 그 물건이 필요해서가 아니고 마지못해서 어쩔 수 없이 또는 싫다는 대꾸를 해주는 일조차가 귀찮아서 그러는 것 같이만 보여졌다. 그러니까 그들이 구걸을 하거나 물건을 팔기 위해서 쓰은 어떤 수단에도 사람들은 감동 당하지 않을 만큼 모두가 세상살이에 단련이 되어 있거나 지쳐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두 다리가 무릎 부근까지 몽땅 잘라져 두 손으로 걸어다니며 열심히 빨랫줄(빨래집게 포함)을 팔고 있는 청년을 보고도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여러 딱한 사람들 중 내가 이 청년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더 가진 건 물론 이 청년이 불구자 중에서도 아주 심한 불구자인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이 청년한테는 몇 가지 남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주 보았던 사람들인데 이 청년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점, 다른 사람들은 뭔가 속임수가 있을지도 모를 물건들(잉크가 잘 안 나오는 볼펜이라든가 쉽게 망가지거나 잘 들지 않는 손톱-이라든가 '새마을'이라는 금 글씨가 박힌 비닐지갑 등등)을 파는데 이 청년은 누가 봐도 불량품인지 아닌지를 쉽게 판별할 수 있는 빨랫줄을 판다는 점, 다른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구걸을 하거나 물건을 팔되 반 동정을 바라는 조의 비열한 표정을 짓는 것이 보통인데 이 청년은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당당한 표정(자기가 심한 불구자라는 걸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으로 일관한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런데 차내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약해 내가 산 것을 포함해 꼭 두 명한테 팔았나, 물론 다른 칸에서도 팔긴 팔았겠지만 내가 타고 있었던 칸이 마지막 칸인데 아직 물건이 많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가방 속의 것은 그만두고 손에 들고 있는 것만도 많았다) 보나마나 빤했다. 저녁 여덟 시가 넘었으니 다른 차로 옮겨 판다고 해도 겨우 한 번이나 더 옮겨 팔 수 있을까.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필수용품으로 쓰고 있는 빨랫줄, 집게 열 개를 포함해서 백 원입니다, 일금 백 원,,,,,,'

떳떳하긴 하나 역시 지쳐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목소리로 맨 끝 자리까지 다가간 청년은 이제 더 이상의 외침은 필요 없다고 판단했는지 돌아서 두 손으로 걸어 느릿느릿 가방을 놓아두었던 가운데쯤으로 거슬러 왔다. 굶주린 새끼들의 아가리처럼 흥하게 벌어져 있는 때 묻고 낡은 가방 속에 물건들을 집어넣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아니 실제로는 그랬을 리 없겠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가방의 지퍼를 잠근 후 차내를 둘러보는 일도 없이 묵묵히 앉아서(다리가 없으니 서있는 셈이지만) 초점 없는 시선을 창밖으로 보냈다, 불구자라는 것 외에는 다른 차내 손님들이나 조금도 다를 게 없는 승객이 된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초조하고 긴장된 상태에서 이제껏 그를 지켜보던 나도 시선을 거두고, 보다 말았던 문고를 다시 펼쳤다.

그런데 그러고 자서 얼마쯤 지났을까. 아마 두 정거장쯤 더 지나서였을 것이다. 승객 중 누군가의 입에서 '어머, 저런!' 소리가 터져 나왔고, 승객들의 눈은 일제히 한 곳으로 쏠렸. 웅성웅성 앉았던 사람까지 일어나 다가가기도 했다. 따라서 자연히 나도 다가갈 수밖에 없었는데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 그 불구청년이 두 눈을 까뒤집고 누운 채 입으로 게거품 비슷한 침을 흘리며 꼬여진 두 손과 잘라져나간 다리를 발발 떨고 있는 것이었다.

"지랄병이군. 에이, 재수 없이!"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데 이어

"어떻게 손을 써야죠."

나는 다른 누군가의 말이 들렸으나

"괜찮아요. 저 병은 조금 있으면 괜찮아져요."

라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말이 들렸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속에서뿐만이 아니라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또 실제로 직접 본 일도 있어 그것이 어떤 병인가를 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그런 꼴까지 보이니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들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리고 그러리라고 나 역시 믿었던 것처럼 청년은 한참 후 원상태대로 돌아왔다. 서서히 떨림이 멎더니 다시 일어나 앉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두 눈을 껌벅거렸다.

"쯧쯧, 다리까지 그런 데다 그런 병조차 앓고 있으면 어쩌라는 거요? 옛수, , 빨랫줄 하나 주슈."

무슨 장사꾼인 듯한 아낙네 한 사람이 돈 백 원을 내밀자 청년은 말없이 가방의 지퍼를 열고 비닐포장이 되어 있는 빨랫줄 하나를 내어주었다. 그걸 보자 모두들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였을까. 다른 사람이 또 하나 백 원을 내밀었고, 이어서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해서 청년의 가방이 바닥나기에까지 이르렀다. 불과 몇 분 사이에 그렇게 많이 남아 있던 빨랫줄이 모두 돈과 교환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청년은 몇 차례 고개만 꾸벅거렸지 별로 만족해 하는 표정 같은 건 짓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다음 정거장에 차가 닿자 곧 내려버렸다.

그런데 그가 내린 후, 그의 간질 발작에도 꿈쩍 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빨랫줄도 끝까지 사지 않은, 내가 서 있는 부근에 앉아 있던 한 사내가 말했다.

"자식, 잘해 쳐먹는군. 다들 속았어요. 그놈 쑈에 다들 속았다구요. 인생이 불쌍해서 내가 그냥 두긴 했지만,,,,,,"

"무슨 소리요?"

"두 다리가 잘라졌다고 해서 누가 동정들 해 줍니까? 그러니까 간질까지 앓고 있는 것처럼 쑈를 한 거죠. 언젠가 한번 다른 차에서 그래서 나도 속아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이 자식이 집에 갈 시간만 되면 상습적으로 해먹는 거 아뇨?"

'원 세상에,,,,,,' 어쩌고 하는 소리들과 함께 어처구니없어 웃는 사람까지 있었으나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한 속임수를 써가며 살다가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제까지의 일거일동으로 보아 그 청년의 경우만은 그렇지 않

을 것 같은 자신이 섰다. 그런데 이때 또 두 사람이나 나서서 나의 이 자신감을 무너뜨렸다.

"나도 보았어요. 오늘가지 세 번째나 봤는데 아주 웃겨요. 아무리 살아가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런 꼴을 하면서까지 살아갈 베 뭐예요?"

직장 여성인 듯한 왜나 교양을 갖추고 있는 듯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이렇게 말한 데 이어 한 젊은이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두 다리가 잘라진 데다 간질 쑈라,,,,,, ? 다음엔 모가지를 베어 보이는 쑈를 할 셈인가?"

 

유치해지이 못해 슬픈 극작가의 팔에 관하여

 

시골에 묻혀 있는 어떤 무명시인의 싯귀에 '묶여져 걸려 있는 저 시래기를 보셔요, 어머니! 우리는 좀더 유치해져야겠어요.'라는 게 있다. 건방진 소리라고 할지 모르나 오늘의 세월을 살아가면서 이따금 나는 이 귀절을 떠올리고 또 어떤 전 실제로 일부러 유치해지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는데 비단 나만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의외로 많다는 걸 알았다,

내가 다닌 대학을 중퇴한 후배로서 꽤 뛰어난 몇 편의 희곡을 써낸 극작가가 있다, 신문의 장막희곡 모집에 당선이 되어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잡지에 더러 발표도 되었고, 다방이며 카페 테아트르 같은 데서 단막이 공연된 일도 있었다. 아직 유명한

존재는 못 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극작가임에는 틀림없는 이 후배가 아주 오랜만에 직장으로 나를 찾아왔다. 원래 초췌한 면이 있는 몰골이 더욱 초췌해 보였다. 다방에서 무얼 들겠느냐고 하자 반숙을 들겠다고 말했다.

"결혼식 때 만나고 처음이군. "

". 그 동안 새끼가 두 개나 생겼죠."

"?"

"마리라고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요?"

"핫하, 아들하고 딸?"

"아들만 둘인데 정신 못 차리겠어요. 아주 낳지를 않아 버리는 건데 정관수술이라는 건 생리적으로 싫고, 고무주머니는 쓰기가 귀잖고, 질외 사정이라는 건 너무 맛대가리가 없고,,,,,, 낳았으니 결국 키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요즈음 같아선 환장하겠어요."

"?"

"좀더 유치해져야겠는데 유치해지지가 않아서요. 삼 단계, 사 단계까지도 유치해졌는데 그 이상은 도저히,,,,,,"

이야기가 아무래도 길어질 것 같아 내가 퇴근할 때까지 삼십여 분 동안 다방에서 기다리게 한 후 다시 만나 소주를 마셨다. 작은 것 두 병을 비우고도 더 마시려고 하면서 후배는 자꾸 격렬해졌다. 이야기의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대학 졸업이 아니고 중퇴라는 학력 때문에 마땅한 데 취직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직장 생활이라는 게 체질적으로도 맞지 않아 그 동안 나(후배)는 그냥 버틸 수밖에 없었다. 결혼 전엔 부모 덕으로 그럭저럭 견뎠고 결혼하고 나선 아내 덕으로 그럭저럭 견뎠다. 희곡 나부랑이나 쓰고 연극관계 일(연출을 도와주는 등의)에 조금씩 종사를 한다고 해도 그것 가지고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어 전셋방을 월셋방으로 줄여 가면서가지 견뎠다. 그런데 이제는 견뎌가려고 해도 더 이상 견뎌날 길이 없어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작품보다는 생활 위주로 살려고 했다. 텔리비전 방송극이라도 써서 먹고 살려고 아는 사람을 통해 제작자를 만났다. 그런데 텔리비전 극이라는 것이 너절하다, 너절하다 해도 그렇게까지 너절한 것일 줄은 미처 몰랐었다. 국영방송은 조건이 까다로울 것 같아 민영방송을 택했는데 민영방송도 마찬가지였다, 단막극을 한 편 써오라고 해서 써 가지고 갔더니 너무 차원이 높다고 했다, 이오네스코나 베케트 흉내라도 냈다면 그 친구는 아마 놀라 나자빠지기라도 했을 것이다. 너절하지 않고 깔끔하게 마지막 장면 같은 걸 좀 싯적으로 다듬었을 뿐 이야기 자체는 아주 대중적인 것인데, 그걸 눈물과 웃음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이유로 딱지를 놓고 수준을 낮춰 다른 걸로 하나 가져와 보라고 했다.

기분이 나빠 당장 욕이나 한바탕 해주고 말고 싶었으나 형편이 형편인 만큼 한번 굽히기로 하고 다른 걸로 써 가지고 갔다. 좀 상투적이긴 하나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는, 그쪽에서 요구하는 방향에 어느 정도 맞춰 써 가지고 갔다. 그런데 이번엔 주인공이 죽는 것 때문에 퇴짜를 맞았다. 지난주 단막극에서도 주인공이 죽는 이야긴데 이번 주에도 주인공이 죽는 것이 나가면 시청자들이 이놈의 방송국에선 늘 사람이 죽는 것만 방송하냐고 할 게 아니냐고 말하면서 주인공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든지 아니면 다른 걸로 가져오라고 미안해하는 기색조차 없이 말했다. 역시 욕이나 해주고 그냥 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한번 더 굽히기로 하고 꾹 참았다. 한번 써 놓은 걸 고치려고 하니까 전체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럴 바엔 차라리 다른 걸로 써 가자고 해서 이번엔 광산촌 이야기를 썼다. 갱 속에서 생사를 걸고 일하는 광부의 이야기를 너무 어둡지만은 않게 전개시켜 갔다. 그런데 이번엔 또 이야기 내용이 어두운 게 아니라 화면이 너무 어두워 곤란하다는 것이다. 갱 속 장면이 계속 나오는 데다가 시커먼 탄 덩이만 화면을 차지하니 그렇게 되면 텔리비전 화면이 뭐가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당장 따귀라도 갈겨 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나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길이 없을 것같아 이번엔 다른 아는 사람을 통해 국영방송을 찾아가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땅한 작품이 없어 고민하던 참인데 잘됐다고, 제작자는 의외로 반겨 맞으면서 내가 예상한 대로 새마을운동이나 반공을 주제로 한 것을 써와 보라고 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협을 하려면 아주 철저하게 타협을 하자는 생각에서 유치하고 유치하게 나로선 더 이상 유치해질 수가 없게 반공물을 한 편 써 가지고 갔다. 그런데 어떻게 된 놈의 것인지 그걸 가지고도 그 제작자는 수준이 너무 높아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가 힘들 것 같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너무 끔찍한 학살 장면은 구체적으로 보여 주지 않고 넘어가면 되겠지만 목사의 행동 같은 건 그냥 넘어갈 수 없고 방송을 해야 전체 이야기에 대한 설득이 갈 텐데 그렇게 되면 재미있는 장면이 없이 관념만이 살아 남게 되어 곤란하다고 그 사람딴엔 아주 세밀히 지적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놈의 글을 써먹겠다고 아직도 제가 미련을 가지고 있다면 개자식이 되겠죠. 이제 글은 안 쓸 생각입니다. 제겐 남 못지 않은 팔이 있다는 걸 왜 진작에 생각을 못했는지,,,,,, 앞으론 육체노동을 해서 먹고 살 생각입니다."

"나도 오히려 그 편이 되기를 바라고 싶군. 그런데 그 체력으로 육체노동이 가능할까?"

후배는 열이 오르는지 크게 한숨을 쉰 후 잔을 마저 비우고 나서 말했다.

"사실 그래서 오늘 형을 찾아온 건데 아무 일자리나 일자리 하나 구해 주십시오. 신축 공사판에 가 며칠 일을 해 고았는데 더 버티다가는 결국 쓰러지고 말 것 같아 육체노동이라도 제 힘으로 너무 부치지 않는 곳,,,,,,형이라면 인쇄소나 제본소 같은 곳에 선이 닿을 법한데,"

원래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남들한테 무슨 부탁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미인데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그냥 말수가 없어 반 응낙을 하고 돌려보낸 후 우리 직장과 거래 관계가 있는 몇 군데를 옆 동료를 통해 알아보았다. 일이 잘되려고 그랬는지 못되려고 그랬는지 제본소 한 군데가 나타나긴 나타났다. 재단하는 일을 도와주는 자리인데 박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생활은 될 것 같아 즉시 소개를 해주었다. 보기와는 달리 사람이 아주 성실하다고 제본소 사람은 평을 해 왔고, 이 후배도 스스로 찾아와 나한테 술을 살 만큼 만족해 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갔다. 그런데 흔히 불행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말하듯이 '하늘도 무심할 일이지' 이게 무슨 짝인가. 어느 날 대낮에 이 후배한테 사고가 났다고 해서 병원으로 가 보니 오른팔이 붕대에 감겨져 있지 않은가. 철야를 하는 등의 격무에 시달린 나머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재단 칼에 팔목 부근이 잘렸는데,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내 생애를 통해 겪은 많은 비통한 일 중에서도 상당히 잊혀지지 않는 꽤 비통한 일의 하나인데 나는 그 누구에게도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치료가 되어 갈 즈음 후배가 쓰게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머리로 살 수 없어 팔로 살려고 했더니 팔마저 이렇게 끊어 놓았으니 이제 무엇으로 살죠?"

 

기어다니면서 바닥을 핥는 동료의 광증에 관하여

요즈음엔 사람이 미치는 게 하나의 무슨 유행처럼 된 것 같다. 한 때는 자살이라는 게 소설이나 영화 같은 데 걸핏하면 등장했는데 요즈음엔 그에 못지 않게 정신병이 등장한다. 그리고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만이 아니고 실제로도 그렇다. 내가 잘 아는 사람 중에서도 불과 이삼 년 동안에 다섯 명이나 미쳤다. 두 명이야 잘 알려진 이름 있는 시인들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고, 세 명 중 하나는 친구의 부인, 또 하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로서 최근엔 지방 대학에 재직해 있었던 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직장의 동료이다,

친구의 부인이 미친 건 물론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가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기 시작한 지 삼 년 째 되던 해부터 그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도 느닷없이 심장이 뛰고 머리가 아파와 견딜 수가 없다고 하며 곧잘 진정제를 사먹곤 했었는데 나중엔 누가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면서 저년 죽이라고 소리치는 강박의식으로 방에 앉아 있다가도 벌벌 떨며 다락 속으로 숨어 들어가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끝내는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그의 가족을 따라 병원으로 직접 나도 문병을 간 일이 있는데 그전의 그 맑던 눈과는 너무나 달라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우리를 붙잡고, 살려줘요, 살려줘요,,,,,, 소리만을 계속 질러댔다.

지방 대학에 재직해 있던 내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가 미친 건 지난 번 교수 재임명에서 탈락된 때문이라는 설이 결정적이다. 대학교수의 인격으로 그만한 일에 그 지경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안 가지만 워낙 꽉 막힌 분이라 어느 면으로는 그것이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 교사 경력까지 치면 이십 년 이상을 교직에 몸담아 왔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선 누구나 인정해 주는(아무 세미나에나 자주 참석한다든가 신문 귀퉁이에 잔글을 써내는 짓을 하지 않아 일반한테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분인데 업적이 빈약하고 품성이 온건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탈락이 되었다니 이만저만한 충격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 병원에 입원시키지는 않은 모양이나 날마다 술타령으로 헛소리와 함께 별별 사고를 다 저지르고 다니며 집에 들어가지 않고 거리를 떠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고 보면 미친다는 것도 폐병이나 장티푸스 같은 병에 걸리는 것이나 비슷하게 사람살이에 따르게 마련인 일상사 같긴 한데 그러나 직장 동료의 발광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그 증세에 있어서 기어다니며 바닥을 핥는다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혹 모

파상이라는 작가를 좋아하여 그의 흉내를 내느라고 그런 건 아닐까. 자세히는 몰라도 작가 모파상이 말년에 미쳐서 그와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는 글을 나도 읽은 일이 있지만 어쨌든 엉뚱했다.

이 동료의 발광이 상당히 노골화된 건 어느 공휴일이었다. 제헌절인지 광복절인지 국경질 중에서도 큰 국경일이라 어지간한 직장은 다 놀았는데 우리 직장은 별로 바쁜 일도 없으면서 놀리지 않았다. 날씨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무더운데 낡은 선풍기 하나 없으니 근무가 제대로 되어질 리 없었다. 그런데도 기업주는 또 골프장으로 해서 호텔 풀장을 다녀오기 위해 운전수로 하여금 집에 가서 골프채를 가져오게 시킨 후 직장 길 건너 이층 다방에 앉아 마담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하필 창가에 앉아 있어 환히 보였는데 마담의 손을 잡고 계속 껄껄대었다. 그걸 보고 직장 동료가 이쪽 창에서 소리쳤다.

", 이 개새끼야! 말뚝 박다가 복상사할 새끼야! "

물론 상무네 부장이네 하는 간부는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고 평사원들만 있던 때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갑작스런 외침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우리 중엔 아무도 없었다. 평소에 성격이 활달하다든가 실성기 비슷한 게 있던 사람이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소 같은 친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점잖게 앉아서 일만 하던 동료가 그랬으니 도저히 보통으로 넘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날은 기업주가 그 소리를 듣지 않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또 하루는 밤 열 시까지 야근을 하고 있던 판인데 자료로 쓸 책을 가지러 기업주 방에 갔던(그때 기업주는 없었다) 그 동료가 자료로 쓸 책은 안 가져오고 엉뚱하게 일본판 에로잡지 (발가벗은 두 여자가 발가벗은 한 남자를 위 아래에서 주무르고 빨고 있는 등의 사진이 천연색으로 나와 있는)를 들고 와서는 또 소리쳤다.

"이런 개새끼! 아니 그래 우리한텐 밤 열 시가지 일을 시키면서 자기는 이런 거나 숨어서 보고 있어 7이런 개새끼가 하는 회사는 망해도 돼! 나는 일 못 하겠어!"

그러고는 그 잡지를 우리가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런데 이 광경을 부장이 보게 되었고, 이때부터 미움을 사기 시작해서 결국 얼마 못 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당장이야 부장도 화를 못 내고 어색하게 웃고 말았지만 또 그와 비슷한 일이 발생하자 참지 않았던 것이다. 망년회라고 해서 사무실에다 술 몇 병에 싸구려 안주 몇 가지를 곁들여 기업주 이하 전사원(전사원이라야 이십 명이 못 된다)이 모여 회식을 하는데 이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 끝엔가 불쑥 고리대금 운운의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기업주가 불경기 운운의 이야기와 함께 보너스를 많이 주지 못해(연말인데 이십 프로밖에 안 주었으니 준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면목없다는 이야기를 하자, 큰 소리는 아니지만

"개새끼, 기집질하러 뻔질나게 외국을 드나들고 고리대금해 먹느라 정신이 없는 놈이 뭐, 불경기 ?,,,,,,"

라는 식의 소리를 중얼거렸는데 이 소리를 기업주는 못 들었지만 부근에 서 있던 부장이 듣게 되었고, 따라서 당장 밖으로 끌려나가게 되었다. 그러고는 그후부터 회사를 못 나오게 되었는데 잊어버릴 만하면 어쩌다가 한번씩 나타나서 실성실성 우리들을 웃겨 놓고 가곤 했다. 몇 억 짜리 회사를 차리려고 사무실을 알아보는 길에 들렀다느니 자기가 출원 중에 있는 특허가 나오기만 하면 자기를 만나 보기 힘들 거라느니 무슨 고위층에 있는 사람이 점심을 하자고 해서 함께 하고 오는 길이라는 등의 소리를 농기가 전혀 섞이지 않은 진지한 표정으로 하면서 느닷없이

"나도 개새끼가 되어야겠어. 개새끼들처럼 살아야 되겠다구."

라고 내뱉고는 사라져 가곤 했다. 그러다가 한동안 쭉 소식이 없더니 어느 날 동료 한 사람이 그가 볼링장에서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광경을 보았다고 했다. 볼링장에 들어가 볼링을 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 이 연놈들아, 할 짓 없으면 집에 가서 발바닥이나 긁어!"

라고 소리쳤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정통한 소식은 아주 끊기고 말았는데 풍문에 듣기엔 그가 자살을 했다느니 뱀 장사를 따라다닌다느니 미쳐서 역 대합실 같은 데를 헤맨다느니 별별 소리가 다 들렸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풍문이 아니라 또 동료 한 사람이 실제 목격담이라고 하면서 들려주는데 그가 바깥 출입을 일체 않고 방에 들어앉아 개처럼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여기저기를 핥는 짓을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고 웃어 버렸으나 거짓말이면 내가 자네들 속에서 나왔다는 직설적인 말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져 그중 몇 사람이 한번 찾아가 보자고 제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를 문안 간다는 생각보다 그 꼴을 한번 눈으로 직접 보자는 호기심들이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나포 그들 속에 끼여 삼양동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동료가 들려 준 대로 세 방을 살고 있었는데 (두 간 짜리) 노부모와 처와 어린 자식 그렇게 모두 다섯 식구였다. 한마디로 아찔했다. 그가 혼자 한 방을 차지하고 문조차 걸어 잠그고 있어 나머지 네 식구가 한 방으로 쫓겨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며 노부모와 처는 울먹거렸다.

밥도 안 먹느냐고 하니까 아주 안 먹지는 않고 하루 한 끼 정도 먹는데 상만 받으면 받는 즉시 문을 걸어 잠가 먹는 광경을 본 지 오래라고 했다.

"기어다니면서 바닥을 핥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

우리들 중의 누군가의 물음에 처는 울먹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친구, 멀쩡해 있으면서 세상살기 귀찮으니까 괜히 그러는 거 아냐? 한번 들어가 보지."

한 동료가 문을 당기자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모두 함께 큰소리로 열라고 소리쳐도 마찬가지였다. 종이 문이 아니라 베니어판으로 된 문이어서 들여다보기도 곤란했는데 그렇다고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도 없어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포기하고 나오다가

한 동료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부인한테 의자를 달라고 하더니 뒤 울안으로 갔다. 창을 통해 들여다보려는 것이라는 걸 곧 알 수 있었으나 나는 차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 동료가 그런 식으로 들여다보고 와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주고받았다.

"사실이긴 사실인데 참 이상하지? 증상이 갖가지라고는 하지만 왜 하필 그런 증상을 보이는 거냐구?"

"그가 언젠나 말했던 대로 개새끼가 되고 싶어서가 아닐까? 개새끼처럼 살아야 되겠다고 큰소릴 치곤 했지 않아?"

실제 광경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가 그러는 것이 일시적인 현상이기만을 바랐을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동료 하나가 웃지도 않고 약간 겁먹은 어조로 다시 말했다.

"늘어진 개팔자라는 말이 있긴 까지만 그래도 어쨌든 개보다는 사람이 낫지 않을까?"

 

지쳐 있는 자들의 의식을 긁는 확성기에 관하여

 

우리 동네에서 까딱했으면 살인 사건이 날 뻔했다. 동네 사람 한 분과 반장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동네 사람이 반장을 삽으로 쳤는데 불행 중 다행히도 죽지는 않고 부상으로 그친 것이다. 싸움의 전말은 이러했다. 다른 동네도 그러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 동네는 언제부턴

가 동네 곳곳 몇 군데 나무 위에 확성기를 장치해 놓고 동네 사람들한테 전달할 사항이 있으면 반장이 일일이 집을 찾아다니지 않고 그 확성기를 통해 전달을 해 왔다. 동네 길을 고쳐야 되니 몇 시까지 나오십시오, 잇세를 납부하지 않은 분은 며칠까지 반드시 납부하십시오, 예비군 비상이 있으니 몇 시까지 나오십시오, 반상회가 있으니 한 분도 빠짐없이 나오십시오,,,,,,

일일이 찾아다니는 불편이 덜어져 반장으로선 좋을지 모르나 동네 사람들로서는 좋게 생각하는 쪽보다는 나쁘게 생각하는 쪽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전달 사항만 간단히 전달하고 만다면 또 모르겠는데 이건 그렇지가 않았다. 새벽 다섯 시도 되기 전에 기상 나팔을 녹음한 걸 방송하여 잠을 깨운 후 온갖 노래를 들려주다가 동네 길을 고쳐야 되

니 나오라고 하면서 일일이 몇 호의 누구, 몇 호의 누구.... .집의 홋수와 호주 이름을 불러 이분은 한번도 안 나왔다느니, 이분은 언제 나오고 안 나왔다느니 하면서, 그것도 작은 소리가 아니라 동네가 온통 찌렁찌렁 울리도록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비교적 새벽잠이 적은 편인데도 그 소리들을 듣고서야 깨어날 때가 많으니 새벽잠이 많은 사람들은 어떨까가 가히 상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골이라 일들을 하느라 거의가 일찍 일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다가 저녁 일이 많아 늦게 잠든 사람들한텐 고역일 게 분명했다.

문제의 인물 김 천동씨도 그래서 화카 난 모양이었다. 돼지를 스무 마리 가량 키우는 분인데 구정물을 시내까지 가서 자전거로 실어 나르느라 나날이 벅차게 피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가 동네 길 고치는 일이 한창일 때 몸이 어디가 아파 며칠 동안을 앓아 누운 적이 있었다 한다. 그런데 반장이 그걸 알았는지 몰랐는지 며칠을 두고 새벽마다 계속 떠들어 대었다. 삼십 칠호 김 천동씨, 삼십 칠 호 김 천동씨 ! 이분은 이제껏 한번도 나오지 않으셨는데 오늘은 꼭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문제는 며칠을 두고 새벽마다 외쳐 온 이것 때문만도 아니었다. 어느 날인가는 대낮부터 밤늦게까지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민 여러분들한테 죄송한 말씀이오나 오늘은 복날이라 하루 노는 날로 정했습니다. 제가 막걸리를 대접하겠사오니 이민 여러분들 중 오십 세가 넘으신 분들은 동네 앞 가게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동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는데,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부터는 별별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민 여러분들께 대단히 죄송하오나 동네 어르신들께서 약주를 잡수시오 노래를 한마디씩 하시겠다고 하오니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더니 취한 목소리로 먼저 반장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아라암아 부울어라아 석다알 열흐을만 부울어라아,,,,,, 그야말로 돼지 울음소리나 다를 바 없는 소리를 질러대더니, 어떠십니까? 들을 만들 하십니까? 껄껄껄,,,,,, 웃고 나자 이어서 다른 사람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쑤욱대머어리 망고오강산,,,,,,을 끝까지 다하고 나자 또 다른 사람의 ,,,,,,황서엉 옛터에 바암이 오오니 워얼색만 고오요해------가 들렸고 끝나고 나자 또 다른 사람의 ,,,,,,두우마안강 푸우른 물에 노젓는 뱃사고옹------이 들렸고, ,,, ,가아기 전에 떠나아기 전에 하고 싶은 마알 한마디를,,,,,,이 연이어 들리더니 계속 밤이 어두워질 때까지도 그치지 않았다. 노랫소리만이 아니라 기침소리, 심지어는 토하는 듯한 구역소리가지도 다 들렸다.

그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집에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다 들었는데 그 소리들에 신경이 거슬려 책은커녕 신문조차 읽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동네 어른들이 즐겁게 노는 자리라고 하지만 그것을 동네 사람 전체에게 그렇게 방송을 한다는 건 나만이 아니고 상당히 많은 사람

들이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반장이 머리가 좀 이상해진 때문이라고도 했고,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마누라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일은 그날뿐만이 아니고 종종 있었다는 것이었다. 가령 몇 호 집 누구 부인이 애를 낳다가 잘못되어 수술을 받게 되었으나 형편이 곤란해 그러니 일금 오백 원 이상씩 희사를 바란다든가 누구 집에 초상이 났으니 문상들을 오란다든가 심지어는 동네 사람 누가 생선장사를 하는데 아주 물이 좋은 고등어를 지금 막 가져왔으니 사시고 싶은 분들은 가게 앞으로 나오라는 등

물론 한 동네 사람들이니까 한집안 식수처럼 허물없이 이해하고 돕는다는 거야 군소리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건 그 경우와도 완전히 달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 왔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상회 때도 누구 한 사람 강력히 이야기를 해 오지 못했는데 드디어 김

천동씨가 며칠 동안 몸져누워 앓다가 일어났던 모양이었다. 아니 아직도 완전한 회복은 되지 않았는데 새벽마다 하도 ,,,,,,삼십 칠 호 김 천동씨, 삼십 칠 호 김 천동씨, 하는 바람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일어나 쫓아갔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처음에 가서는 좋은 말로 몸이 회복되면 나갈 테니 제발 그 호명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막걸리 값을 내기로 했으니 막걸리 값을 내라고 반장은 말했고, 김 천동씨는 아주 안 나가겠다는 게 아니고 몸이 회복되면 나가겠다는데 막걸리 값이 무슨 막걸리 값이냐고 대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옆 사람들이 말리는 바람에 아무 사고 없이 지나갈 수 있었는데 그 며칠 후 드디어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김 천동씨가 막걸리 값도 내지 않고 계속 나가지를 않자 반장이 그날 새벽엔 아주 노골적으로 사적인 감정이 있는 어조로 방송을 했었다. 내가 듣기에도(나는 그날 순번이 아니어 나가지 않았다),삼십 칠 호 김 천동씨! 라는 소리를 열 번도 더 질렀는데 바로 그러던 찰나였다. 확성기에서 분명히 컥! 하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의 욕설과 침 뱉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웅성거리는 소리뿐,,,,,,삼십 칠 호 김 천동씨! 라고 부르는 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떠들썩하며 뛰어가는 소리와 함께 사고가 났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나갔을 때는 사고를 일으킨 두 사람은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만이 떼로 몰려 있었는데 김 천동씨가 방송을 하고 있는 반장을 삽으로 치면서 그렇게 외쳤다는 것이다.

", 이 더러운 놈의 자식아! 사람을 못 살게 굴어도 분수가 있지 지쳐 죽게 생긴 사람들 새벽마다 잠마저도 못 자게 굴어 의가 시원할 게 무엇이 있단 말이냐? 반장이 된 것도 큰 위세냐, 이 돼지만도 못한 놈아! !"

서로 돕고 열심히 일해서 좋은 동네를 만들어 모두가 다 잘살아 보자는 많은 사람들의 애씀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해 나는 뭐라 중얼거릴 말조차도 잊고, 희부옇게 트여오는 새벽 하늘만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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