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 -최인준
지저분한 울타리.
혼탁한 공기.
그 속에서 성적으로 난숙한 수컷과 암컷-두마리의 도야지가 XX이고 있다.
신작로 옆, 울타리 밖에는 주인이 지키고 있다.
고 주인이 울타리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뒷짐을 지고 제 딴은 점잖게 왔다갔다하면서 -울타리 안의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 울타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야지의 교미로 말미암아 장차 자기에게 돌아올 어떤 -이익-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이따금 아지랑이가 뽀얗게 낀 먼 산을 바라본다. 번지레한 얼굴에 역시 -번지레한 미소-가 흘렀다.
만 넉 달-날짜로 계산해서 넉넉히 일백이십 일 후면 암컷이 여덟 마리로부터 열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최소한도로 여덟 마리를 낳는다고 하고 한 마리에 삼 원씩만 쳐도 삼팔이 이십사.
그렇다. 이십사 원의 이익을 낳아주는 것이다. 그 -이십사 원-의 이익을 주기 위하여 지금 지저분한 울타리 속에서 두 마리의 도야지가 헐떡이고 있는 것이다. -이십사 원-의 이익이 또한 주인이 가지는 -번지레한 미소-의 내용인 것이다.
그 광경을 본 사람 중에 그도 하나이었다. 읍에 장보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그 광경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피곤한 다리도 쉬일 겸 울타리 옆으로 가까이 갔다. 그리고 눈앞에 벌어진 장면에 이상한 흥미를 느끼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도야지의 교미-그것은 극히 평범한 사실이다-그러나 그 평범한 사실이 그에게는 가장 -평범치 않은 감상-을 일으키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자기 주인의 의지대로 뿐만 아니라 어떤 이익을 주기 위해서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행위한다는 단순한 지점에서-이 한가지 점을 도야지 자신은 판단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는 사람이었다.
고래서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고리고 자기 옆에 서 있는 주인을 흘낏 돌아다보았다. 번지레한 미소가 흐르는 그 얼굴에서 -어째서-파는 의문을 풀어보려는 것처럼.
뚱뚱한 몸집 -대체 뚱뚱하기도 한, 그래서 누구에게나 도야지 같은 인상을 주는 그런 종류의 사십 줄이 넘어선 사람이었다.
도야지 같은-그래서 그의 눈이 무섭게 커졌다. 그 눈이 커질수록 그 눈동자 속에 비치는 주인의 -도야지 같은 부분-이 보다 크게 확대되어갔다.
순간 그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주인을 보기 좋게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에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그는 다시금 냉정한 자기로 돌아갔다. 그는 주인을 후려갈길 아무 권리도 없거니와 어떠한 이유도 발견치 못하였다.
「물론 -」
그가 중얼거리었다. 도야지는 도야지이기 때문에 자기 주인에게 어떤 이익을 제공하며, 주인은 주인이기 때문에 그 이익을 차지하는 것은 차라리 당연 이상의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그럼 -사람-인 자기는?
자기를 생각할 때 그는 어덴지 암담해졌다. 암담한 얼굴로 그가 슬며시 울타리 옆을 떠났다.
다시 신작로로 걸어갔다. 여기서도 집에 가려면 이십 리를 더 가야만 된다. 읍에서는 오십 리 길이 훨씬 넘는다. 오늘 새벽 동트기 전에 쌀 한말을 줬어지고 융에 가서 팔아 가지고 골아오는 길이다, 한 말 값 1원 20전은 호세를 치를 것이었다.
그는 피곤한 다리를 질질 끌면서 -보다도 그 암담한 생각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질질 끌면서 무겁게 발자국을 떼어놓았다.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열아홉 해 동안이나 -아버지의 아들-로서 살아왔다.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관계가 아버지에 대한 그 아들의 인격의 대립을 허락하지 않았다.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의지-대로만 살아왔다,
그가 열살 나던 해 -그 아버지가 한문 서당에서 사략 초권을 읽던 그를 보통 학교에 입학시키었다. 완고한 아버지의 두뇌에도 역시 한문 서당에서 보통학교.-- 옮기지 않으면 안될 -시대 의식-이 반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문 서당에서 보통학교--의 진보-그 이상의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하였다. 그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보통학교에 보낸 것은 결코 -진보된 생각-에서가 아니었다. 아들에게 보다 더 큰 기대-효도 같은 것을 받으려면 보통학교가 유리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이 보통학교의 오 학년을 진급하던 패 가을에 장가보냈다. 그 아버지는 보통학교의 위험성도 잘 알았다.
요새 소위 신식공부를 했다는 아이들이 -보통학교 졸업 정도에 불과하지만 -부모를 배반하고 봉건도덕을 배반하고 엉치에 뿔이 나서 -그 아버지의 눈으로 본다면-제멋대로 꺼떡거 리다가 도회지로 달아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위험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자기 아들만은 졸업하기 전 철부지 적에 미리 장가를 보내서 집안에 얽어매어 두자는 의도에서 그리 한 것이다. 그도 아내 때문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도 제 맘대로 못하고 집안에 주저앉은 사람 중의 하나이었다.
그러나 집안에만 주저 앉히는 것이 그 아버지의 전부의 희망은 아니었다. 그러면 애당초에 보통 학교 보낼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 아버지의 희망은 직접 손과 발로 일해먹지 않고 부모를 봉양할 수 있는 그런 아들이었다. 하다못해 면사무소의 규지(급사)라도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 인 -효도-라고 생각하였다.
그 아버지는 농사꾼이다. 남의 논을 소작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가를-오십평생의 뼛골이 녹도록 경험한 고 아버지의 희망이 아들만은 농사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들을 월급쟁이가 되라고 보통학교에 보냈고, 아들을 도회지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장가를 보냈다.
그러나 아들이 보통학교를 졸업하던 해 봄에 그 아버지의 기대는 완전히 개어졌다. 졸업하면 마디나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월급쟁이-자리가 아무 데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태 동안이나 그냥 놀고 먹었다.
그래도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결코 일 시키지 않았다. 자기는 늙은 몸이 고달프도록 김을 매고 밭을 갈고, 애쓰며 일해도 아들은 그냥 삔둥삔둥하게 놀리었다. 지금 일손을 잡으면 고냥 일꾼이 되어버리고 말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태 동란 놀아도 월급쟁이 자리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는 일없이 놀기만 하는 것이 일상 그를 암담하게 만들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읍에 나갔다오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라고 할까?
「나와 도야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며 그가 신작로로 걸어갔다. 또다시 울타리 안의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며 자기와 도야지는 어떤 의미에서 같은 처지에 놓였다고도 생각하였다.
도야지가 주인의 -의지-대로 조그만 울타리 안에만 있는 것처럼 자기도 아버지의 뜻대로 집안에만 주저앉아 있는 것이다. 도야지가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서 있는 것처럼 자기도 -효도-하기 위해서 아내를 얻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그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될 수 없는 일이다.」
어느덧 서산에 해가 넘어졌다.
주위가 차츰 어두워졌다.
산을 끼고 내를 건너서-그는 마을 가까이 걷고 있었다. 어둠에 싸인 마을
이 눈앞에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마을이 가까워올수록-그의 얼굴이 더한층
암담한 빛을 띄었다.
집에는 허수아비 같은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그날 밤.
밤이 깊어서야 그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희미한 등잔불을 어깨에 받고 도사리고 앉아서 버선코의 볼을 박고 있었다. 남편이 들어오는 줄, 알면서도 얼굴을 쳐들지 않았다. 산 인형이었다.
방안에 들어온 고도 윗목에 펄썩 주저앉았다. 그도 역시 아내를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정해준 아내에게 한번도 -애정-이라는 것을 느끼어본 적기 없다. 아내는 다만 성적 대상일 뿐이었다. 성적 흥분이 이따금 그를 아내에게 접근시킬 뿐이었다,
거기에 무슨 행복이 있을 리도 없었다. 행복 없는 가정-보다도 우울한, 어디다 떼어메칠 수 없는 분노에 가까운 감정에 그가 두 어깨를 떨고 있었다.
아내의 등허리를 노려보며 -고리고 그의 입술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나왔다.
「괴롭다.」
무엇이 어떻게 괴롭다고 확실히 지적할 수 없는 괴로움이 -그렇다. 지금 그의 괴로움은 막연한 괴로움이다. 막연한 생활환경에서 그리고 막연한 생활의식 매서 자기의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불안에 싸여 허둥지둥등 헤매는-말하자면 막연한 불안에서 빚어나오는 -막연한 괴로움-이었다.
이 -막연한 괴로움-이 그를 초조하게 만믈었다.
「어쩔까?」
어쨌든 현재의 생활은 그에게 절망을 줄 뿐이다, 절망을 가슴에 붙안고-
「멀리 달아나 버릴까.」
그러나 아내가 있지 않으냐? 제 몸 하나도 주체하기 어려운 처지에 아내까지 어떻게. 아내-그렇지만 부모가 정해준 아내는 내 아내가 아니야 ! 아버지나 어머니의 아내겠지. 내게는 아무 책임도 없는 물건이야!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아내는 살며시 남편을 곁눈질해 보았다. 뒤로 와서 껴안아주지 않나 하는 기대에 얼굴을 붉히고 있던 그 아내는 암만 기다려도 남편이 먼저 동하지 않을 것을 깨달았는지 소리 없이 일어나서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가까이 걸어갔다.
퍽이나 대담한 짓이었다. 그러나 청춘이 아니냐?
-청춘-을 억제하지 못하는, 그리고 떳떳한 아내가 아니냐 ?
「여보.」
모기소리처럼 가느다란 아내의 목소리에 비로소 그가 아내의 존재를 발견하였다.
아내 -그것은 시뻘건 하나의 고깃덩어리다. 이 고깃덩어리를 마음대로 향락할 수 있는 특권이 지금 그에게 무제한으로 허락되어 있는 것이다.
그가 거의 본능적으로 아내를 끌어안았다.
입술과 입술이 -그리고 게슴츠레한 그의 야수적인 눈초리가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아악.」
그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고 아내의 떨리는 육체를 와락 밀쳐버리었다.
순간-순간이었다. 아까 낮에 울타리의 광경이 번개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그는 아내의 얼굴에서 확실히 씨근거리는 도야지의 암컷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가 야내를 무섭게 노려보며 벌떡 일어났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아내가 붙잡았다
「왜 일어나요?」
「놔!」
그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하였다, 별 많은 하늘을 쳐다보며 암담한 그 얼굴이 커다랗게 탄식하였다.
「나와 도야지는--」
최인준(崔仁俊: 출생 및 사망 연대 미상)
1926년 <조선 농민>에 <대간선(大幹線)>이 입선하고 1934년 <동아일보>에 <황소>가 당선되어 등단함. 그는 일제 식민지하 민족 현실의 삶을 사회주의적 시각으로 보고, 유산자와 무산자의 갈등을 주로 다루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암류>, <폭양 아래서>, <여점원>, <춘잠>, <우정>, <두 어머니>, <호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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