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일순(靜寂一瞬) -최정희
꽤 평탄한 길이 쭈욱 제대로 빠져 올라가다가 막닿는데 가서 등성이를 붕긋이 이룬 여기에 30여 간 짜리 2층 양옥이 서 있다.
정원은 6백평이 넘는다. 마치 이 집 한 채를 짓기 위해서 마련된 모양으로 등성이는 꽉 차 있었다.
김병욱이네가 사변 전 해에 지은 집이다.
김병묵이네는 그의 가족과 함께 해방 직후 3년 되던 가을에 38선을 넘어와 성북동에 셋방을 얻어 살다가 친구의 알선으로 토건업을 해오던 중 돈을 잡게 되어 이 집을 짓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벼락 부잣집이라고 불렀으나 그들이 고향에서 몇째 안 가는 지주로 살았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토지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살던 집만 하더라도 60간이 넘었던 것이다.
김병묵이가 돈을 잡게 되자 이어 집 짓기에 착수한 것도 잘 살던 행색을 보이고 싶은 충동에서였던지 모른다.
지금 이 큰 집에는 김병묵의 어머니 70노파가 혼자 남아 있다.
다른 가족들은 20여일 전에 피난을 떠났다.
6.25땐 미처 몸을 빼지 못해서 김병묵의 아우 병욱이가 잡혀가고 김병묵은 뒷곁 움 속에 숨어 있었는데 폭격에 그만 다리를 다치게 되었다.
『몸쓸 놈의 불한당들 땜에…….』
노파는 줄곧 입 속으로 혹은 입 밖으로 이런 말을 뇌까리곤 했다. 이것은 고향에서도 뇌까려 오던 말이다. 고향에선 입밖에 내어 뇌까릴 수가 없었지만…….
그 많던 토지를 토지개혁으로 해서 빼앗기고 또 집을 빼앗기고 그러고도 노파의 영감인 김치선 씨가 어느 날 밤 몰래 동맥을 끊고 세상을 떠났으니 그런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몸쓸 놈의 불한당 땜에.』
라고 줄곧 한숨을 쉬면서도 노파는「그 몹쓸 놈의 불한당」을 마음 내키는대로 원망하고 저주하지 못했다. 그 불한당이 다시 서울에 몰려든다고 서울 시민이 온통 피난을 떠나건만 노파는 서울을 떠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맏아들네가 피난 가던 날만 하더라도 아들이 어머니를 부축해 추럭에 태우려 서둘렀을 때
『늙은 것이야 어쩔라구…… 너희들이나 어서 떠나거라. 나는 집이나 보며 있으마』
라고 했다. 아들이 어머니가 안 가심 우리도 안 가겠노라고, 그까짓 집이야 대수로울게 뭐냐고 실었던 짐짝을 도로 내릴 자세를 보이자 노파는 아주 조용히 내 걱정을랑 말구 어서들 떠나라. 그 불한당 놈들이 또 몰려온다는데 어쩔라구 그러느냐. 나는 남아 있겠다. 이북은 폭격에 말이 아니라는데 살아 있기나 한지…….행여 그것들이 돌아오게 되면 집이 비어서야 쓰겠냐고 했던 것이다.
노파가 그것들이라고 부른 것은 잡혀간 노파의 작은 아들 외에 딸 하나를 겹쳐 말한 것이다.
딸은 3남매 중에 둘째였다. 사변 나기 이태 전에 월북했다. 노파들이 넘어올 때까지 딸네는 서울서 살았다. 알몸으로 38선을 넘으면서도 딸네를 만난다는 기쁨이 가슴에 충만했는데 사위는 무슨 연유로 노파들이 오자 피해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월북했다. 사위는 넘어가서 이태만에 저희들 처자를 보내달라고 기별해 보냈던 것이다.
못 살 데라고 빠져 도망해온 땅으로 딸을 보낼 생각을 하면 금방 숨이 지는 것같이 아찔했으나, 바늘이 가는 데 실이 안 갈 수 있으랴 싶은 마음에서 노파는 마음을 달래며 딸을 떠나 보냈다. 딸네가 떠나는 날 노파는 38선 근방 XXX에까지 따라갔다.
딸은 이남과 이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돈벌일 하는 장사치를 따라 떠났다. XXX에 도착하기는 해가 있어서였다. 여관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밝는 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했다.
노파는 눈을 붙쳐 못 보고 밤을 새웠다. 밤새껏 외손자들의 궁둥이를 만지고 이마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손을 꼭꼭 주물러 주기도 했다.
『끌끌끌 지지리두 몰리다가 가는구나…….』
더 많은 말이 있었으나 막혀서 나오지 않았다.
사위가 월북하자 딸은 친정에 와 살았다. 두 간 짜리 방 하나를 포장으로 어간을 막아 포장 이쪽은 딸네 식구와 노파의 작은 아들이 거처했고, 포장 저쪽은 큰 아들네 식구가 살았다. 도합 열세 명의 식구가 들끓는 일이 눈치 뵈는데 외손자들은 왜 그렇게도 극성이었던지 모른다.
아이 넷이 번갈아 가며 울기도 잘했으려니와 아들 손자들하고는 앗차 하는 사이에 맞붙었다.
코피가 터진다. 이맛전이 깨어진다, 할퀸 자국이 난다, 하기는 아들 손자였다.
주인네가 심어놓은 채마나 화초를 건드리는 것도 외손자들이요, 유리창 깨뜨리고 문구멍도 잘 뚫었다. 저희들도 개 몰리듯 했지만 죽어나는 것은 딸이나 노파였다. 더구나 보아낼 수 없는 것은 며느리의 낯이었다. 며느리는 공산당의 새끼들이라 극성스럽다고 쨍알대었다. 이런 말을 하는 때마다 노파는 가슴이 꿈틀꿈틀 했다. 노파는 사위가 공산당이라는 말을 아무보고도 하지 못했다.
주인댁에서 사위는 어디 가고 딸이 혼자 저 고생이냐고 할 적이면 사위는 이북에서 미처 넘어오지 못했다고 하며, 이제 곧 넘어온다고 얼버무려 버리곤 했던 것이다.
동이 트기 전에 일행은 여관을 나섰다. 큰 놈은 걸리고 둘재는 장사치가 업고 세째는 노파가 업고 네째는 딸이 업었다. 걸리는 큰 놈의 손목을 노파가 잡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것들 넷을 죄다 업거나 손목을 잡아 주었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딸이 어머니는 여관에 누워 계시다가 날이 밝거든 집에 돌아가시라고 굳이 만류했으나 노파는 끝내 따라나서고야 말았다. 별 조차 드문드문 뜬 초 여름밤이었다. 삼라만상이 칠흑색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햇빛 아래선 곱던 연두 빛이 어쩌면 그다지 거무칙칙할 수 있을까? 미리 당부해 둔 때문인지 어둠이 짙은 탓인지 어린 것들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서투른 길에 잘 못 밟는 발자취 소리만이 칠흑색 공기를 흔들어 줄뿐이었다.
『할머니는 인제 더 못 가십니다.』
얼마 안 가서 안내인 장사치가 발을 멈추며 낮은 소리고 속삭였다. 세째가 등에서 다리를 뻗쳤다. 내려야 한다고 알았던 것이다. 큰 놈도 잡힌 손목을 빼었다.
『어머니 잡술 게랑 생기거든 후딱후딱 잡숴 버리세요. 딴 사람들 생각은 마시구…….』
딸이 한 말이다.
너무 낮아서 어음이 분명치 않았으나 몇 번이고 한말이므로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오냐. 오냐. 그러마. 내 걱정을랑…….』
할 말이 이것뿐이 아니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 장사치는 재빠르게 서둘러 두째를 내려놓고 세째를 바꿔 업었다. 그리고 큰 놈의 손목을 잡는 모양이었다. 두째는 에미에게로 가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그들은 가야 할 방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서투른 길을 밟는 발자취가 차차 멀어져 갔다.
노파는 통곡을 터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럴 수가 없었다. 쫓아가고 싶었으나 가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럴 수가 없었다.
노파는 꽉 막히는 숨을 확확 내뿜어 가며
『내사 인제…… 너희들을 다시 보아 내겠냐…… 거기나따나 가서…… 잘 살아라…… . 저 놈이 뭣이 어쨌다구 하필 공산당은 되가지구…… 에구 에구…….』
그러나 입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딸을 데리고 간 장사치는 그 뒤로 오지 않다가 한번 다녀갔을 뿐이다.
이남 장사도 전처럼 재미가 없어서 통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딸네는 거기 가서 생활이 잡혔다고 일러주었다. 재봉틀도 사고 이부자리도 상치로 말짱 장만했다는 것이었다. 사위가 웃자리에 서는 공산당이라 소시민하고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이야길 하고 나서 부스럭거리더니 호주머니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노파 손에 쥐어 주었다. 거기 가서 난 외손녀의 백날것이라 했다.
『저 에미 어릴 때 같구나. 에밀 닮았구나』
노파는 말썽꾸러기 사내녀석들 틈에 외손녀 하나쯤 끼게 된 것을 흡족히 생각했다. 손 심부름을 들어도 어디냐고 노파는 진정 좋아했다.
노파는 서쪽 창을 열어 보았다. 어저께 아침 이후로 아마 수십 차도 더 열어 보았을 것이다. 어저께 아침까지는 덕근 할멈이 같이 있어 주어서 괜찮았다. 덕근 할멈은 있어 낼 수가 없다면서 인천 고모 아들네 집으로 떠나갔다. 덕근 할멈과는 이틀 밤을 같이 지낸 셈이었다.
『망할 놈의 늙은이 같으니라구 그렇게도 사람의 공을 모른담. 쯧쯧쯧…….』
그그저께 이른 아침. 그때까지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잿빛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기만 했었다. 그날 아침 노파가 서쪽 창을 열었을 때 덕근네가 피난을 떠나는 모양으로 큰 딸애가 보퉁이를 이고 한길에 나서 있고 그 뒤로 덕근 아범이 짐 위에 어린 것 하나를 얹혀서 짊어지고 나오고 노파만이 이지도 짊어지지도 않았는데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그들의 뒤를 따라 나왔다. 이고 짊어지고 한 사람들이 우물께로 돌아가자 덕근 할멈은 땅바닥에 풀썩 주저 앉아 울었다.
노파는 창을 닫지도 않고 언덕 아래로 재빨리 내려갔다. 그 길로 덕근 할멈을 이끌어 올려 왔던 것이다.
덕근 할멈은 울면서 아들 며느리를 원망했다. 늙은 것을 혼자 버려두고 가는 년놈들이 바로 못 가리라고 저주도 했다. 벌써 떠났을텐데 동네 빈 집에 들어가서 쌀이니 나무니 김치니 장이니 하는 것들을 실컷 갖다 먹느라고 이제사 떠난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나서 덕근 할멈은 노파와 둘이서 같이 살겠노라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것이다.
눈이 내리지 않았더면 덕근 할멈도 말한 대로 노파와 같이 살아 주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눈이 오더라도 하루나 하루 반쯤 오고 그쳤더면 떠나지 않았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틀째나 줄곧 내리고 있고 더 계속해 내리니까 개 한 마리 남지 않은 텅 비인 동네가 공동묘지와 흡사하게 되어가자 덕근 할멈은 그 동안 줄곧 보아온 시체들이 온통 몰려오는 것만 같다고 어린애처럼 겁을 냈다. 늙은이가 뭐 그런게 무서울까보냐고 말하니까 덕근 할멈은 울음을 내지르며
『공산당보다도 난 귀신이 무섭구만. 난 도깨비가 무서워요』
했다.
덕근 할멈이 밟고 나간 발자국도 인제 눈 속에 아주 파묻혀 버렸다. 조금 전까지도 어린애 주먹만큼 한 흔적이 남아 있더니 눈은 그새로 그것까지 덮어 버렸었다.
뜰 안이 한없이 넓어 보인다. 담장과 키 큰 나무와 키 작은 나무와 그 밖의 일체의 것이 온통 다 눈 속에 묻혀 있었다. 뜰 안은 바깥과 잇닿아 있었다. 지평선과도 잇닿아 있고 하늘과도 잇닿아 있었다.
노파는 가느다란 한숨을 흘리며 눈을 들어 먼 데를 보았다.
하얀 산이 시야로 들어온다.
높고 낮은 산들이 온통 봉우리를 하나로 이루고 서 있었다. 하늘인지 땅인지 구별 못 짓게 천지일색을 이루고 있었다. 노파는 다시 한숨을 크게 내쉬며 눈을 언덕 아래 동네로 돌렸다. 거기도 흰 것으로 일색을 짓고 있었다. 비인 집들이 주검처럼 잠잠했다.
노파는 더 가까운 데로 눈을 이동했다. 자기 집 뜰 안 바로 덕근 할멈의 발자국이 났던 데였다. 행여나 발자국이 약간이라도 보이나 싶어서 살폈던 것이다.
『아까 벌써 없어진 발자국이 있을 리 있을라구…….』
노파는 혼자 있으면서부터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곁에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크게 중얼거렸다. 그새 나무들도 더 많은 눈을 떠 이었다. 목을 들지 못하게 떠 이었다. 노파는 제 목이 움츠러드는 것을 깨닫는다. 전 몸뚱어리가 눈 속에 폭싹 가라앉는 것을 깨닫는다. 차츰 안계까지 뿌우연해져 왔다. 꾸불텅 꾸불텅 파도 같은 것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노파는 창턱을 꽉 붙잡았다. 어릴 때 외삼촌과 먼 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갔을 때같이 어지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에이구 어지러워. 아무도 없는 데서 아무도 없는 데서 그것들두 못 보구 죽는가부지. 그것들두 못 보구. 이북 땅은 폭격에 말이 아니라는데 살아 있기나 한지…….』
노파는 끝내 창턱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 버렸다. 그러나 노파는 쓰러져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한참만 이렇게 하고 있으면 어지러운 증세가 가시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노파는 무엇을 가누어 듣고 있기도 했다. 창턱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 버린 뒤로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얼굴을 들어 소리나는 방향을 살피려다가 더 확실한 것을 알아 가지고 살피려는 참인데
『땡그렁 땡그렁』
소리가 들려왔다.
차츰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노파는 기운을 얻었다. 어지러운 증세가 가시는 듯했다.
『교회당 종소리 같구나. 교회당에서 치는구나. 서울 장안에 사람이 남아 있기는 하구나』
노파는 그래도 머리를 들지 않았다. 얼굴을 파묻은 채 큰 소리로 중얼거리기만 했다. 땡그렁 소리가 교회당 종소리라면 얼마나 좋을까보냐고 부르짖었다. 혹 다른 소리라 치더라도 다행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교회당 종소리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당에 가본 일이 없으나 교회당 종소리는 즐거웠다.
다랫골 마을에 시집오기까지는 줄곧 종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것이다. 열일곱까지 길러준 친정 집이 바로 교회당을 쳐다볼 수 있게 교회당은 앞산 중턱에 있었다. 주일이나 삼일 예배 때면 종이 땡그렁 땡그렁 울렸다. 부흥회 대에 종을 쳤다. 종각은 교회당 건물보다 놓았다. 종을 치게 되면 얼마 크지 않은 골 안 동네가 휘감기듯 요란했다.
구레선이라는 선교사가 교회당과 종각을 세웠던 것이다. 구레선은 학교도 세웠다. 교회당을 기점으로 백미터 가량 되는 바른 편 쪽엔 남학교, 같은 거리의 왼편 쪽엔 여학교를 지었다. 여학생은 열 명이 되나 마나 했으나, 남학생은 60명이 넘었다. 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조부가 한문을 배우는 것이 낫다고 우겨서 끝내 못 가고 말았다. 장닭이 늘어지게 홰를 치며 우는 권태로운 여름 한낮에도 한문을 읽으면서 앞산 중턱에 있는 학교를 얼마나 동경했던지 모른다.
『여학생 되시오. 여학생 되고 싶지 않소? 저기 저 경치 좋은 학교에서 창가 배우고 글 배우고 하면 좋지 않소?』
거리에서 혹은 논둑길에서 구레선은 여자 아이들을 만나면 이런 말로 학교에 오기를 권했다. 구레선은 마을 사람들에게 전도하러 다니기도 했다.
병을 보아주기도 했으며 논에서나 밭에서 일하는 농부와 함께 모를 심고 김을 매는 일도 있었다. 조부도 구레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구레선을 찾은 대는 첫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아이가 병이 들어 앓자 구레선을 생각해 냈다. 구레선을 뵈우면 꼭 나을 것만 같았다.
시집에서 친정 다랫골 마을까지는 짜장 십 리 길이었다. 큰 고개 하나와 꽤 높은 산허리를 넘고 긴 모롱이를 돌아야 했다. 큰 고개를 넘고 산허리를 넘고 긴 모롱이 길에 들어서자 종이 땡그렁 땡그렁 울려왔다.
주일인 것을 알았다.
종소리를 향해 발을 옮기는 마음 속엔 아이의 병이 나으리라는 신앙이 생겼다. 산치성 부치는 때 가지던 그러한 것이었다.
구레선은 교회당에 올라가고 없었으나 환자가 있다고 전하자 이어 와 주었다. 복사꽃 살구꽃이 한창이어서 산길은 노을이 깔린 듯 고왔다. 구레선은 노을을 타고 내려오는 것같이 보였다. 넥타이가 바람에 몹시 휘날렸다.
복사꽃 살구꽃잎들도 휘날리고 있었다.
『분명한 종소리야. 이층에 올라가 봐야겠다. 높은데 올라가 봐야겠다.』
힘을 다 하여 얼굴을 들었다. 창턱을 짚고 일어섰다. 어떤 힘이 자신을 엄습해옴을 깨달았다. 층층계를 올리밟는 걸음걸이가 아주 순조로운 것도 알았다. 젊은 사람의 걸음걸이나 다름없다고 노파는 스스로 만족해했다.
그 동안 줄곧 2층에 올라가 더 먼 데를 살피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다리가 아파서 두 번인가 밖에 올라가 보지 못했다. 노파는 본래 각통이 있었다. 서쪽, 북쪽, 남쪽이 환히 보이는 큰 방으로 노파는 들어갔다. 두 겹의 유리문을 열어 젖뜨렸다.
『저게 뭔가? 저게?』
소리의 방향을 살피려던 노파는 손수건만한 물체가 아스라이 움직이고 있는 데로 시선을 박으며 외쳤다. 손수건만한 물체는 서북쪽 언덕길 저쪽에 움직이고 있었다.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차차 치마폭 만큼커져왔다. 그러자 노파는 큰 소리로
『사람이야 사람…….』
하고 외쳤다. 노파는 지체하지 않고 아래층에 내려와 자켓을 걸친 다음 밖으로 내달았다.
눈이 발을 묻었다. 어드메가 길인지 분간할 수 없으나 그래도 노파는 움직이는 물체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간신히 등성이에 올라섰다. 치마폭만하던 물체는 보이지 않고 사람의 내왕한 자국과 구루마의 바퀴 자국만이 깊게 나 있었다.
『사람이 옳긴 하구나. 사람이 구루말 끌구 왔다 갔다 했구나』
가슴이 뛰었다. 구루마와 발자국을 따라 노파는 걸었다. 생눈을 헤치기 보다 한결 쉬웠다. 자국들은 어느 대문 안으로 쏠려 들어갔다. 노파는 대문 앞에서 안으로 기웃거렸다. 사람의 기척은 없고 구루마가 놓여 있고 주위에 사람의 발자국들이 널려 있었다. 한 사람의 것이 아니고 한 사람 이상의 것임에 분명했다. 발자국은 더 안으로 연장되어 있었다. 구루마에서 부리운 짐들을 안으로 옮긴 것이라고 짐작이 갔다.
『빈 집에 가서 도둑질 해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언덕 아래 덕근네가 줄곧 그렇게 해 먹다가 떠났다는 소리를 덕근 할멈한테서 들은 일이 생각난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광활한 눈 세상 속에 사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 몰랐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아무 소리가 없었다.
『여보시오. 여기 계신 어른들 말씀 좀 물읍시다.』
노파는 발자국을 따라 안으로 더 들어가며 소리를 쳤다.
그제사 검정 양복 저고리에 군복 바지를 받쳐입은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여기 사람이 계신걸 모르구 있었구만. 댁에선 피난을 안 가셨어요?』
노파는 어린아이와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바싹 다가갔다.
『안 갔소다. 노인은 왜 피난 안 가셨소?』
시뻘건 눈이 노파를 쏘아보았다. 노파는 등골이 오싹 해옴을 깨달았다. 틀림없이 빈 집에 들어 도둑질하는 도둑인 것을 알아차렸다. 덕근네가 언덕 아래 있을 때 노파가 내려가면 덕근 아범이나 그의 아낙은 이 남자와 비슷한 말투로 노파를 냉대했다. 그래서 노파는 두 번 그들 집에 내려가 보고는 다시 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저 언덕 위 저 집에 사는 늙은이라오. 사람이 반가와서 왔지요』
노파는 머리와 어깨의 눈을 털면서 말했다.
『노인은 그래 혼자 계시오?』
『아니……. 둘이 있소』
라고 했으나 이제 곧 알게 될 걸 하는 생각에서 침을 한번 삼키고 나서
『한 사람은 어디 좀 갔지요』
거짓말도 아니요 정말도 아닌 말을 얼버루려 버리곤 검정 양복 저고리가 무엇을 더 물을까 싶어 노파는 바삐 돌아서 나왔다.
돌아오는 길은 가던 때보다 빨랐다.
밟고 간 발자국을 밟는 탓도 있겠지만 참 빨리 달렸던 것이다. 집에 들어서자 곁방에 있는 살이며 아들과 딸과 사위와 외손자들에게 주려고 마련해 둔 옷과 옷감들이며 그 외의 것들을 다른 데로 옮기기 시작했다.
2층, 지하실, 아랫방, 건넌방, 곁방, 곳간만은 제외하고 방 전부에 분배해둘 생각이었다. 먼저 쌀을 자루에 넣어 2층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지하실보다 2층에 오르내리기가 더 고되니까고된 데부터 치우리라는 생각도 있고 또 2층이 다른 데보다 안전하다는 생각이었다. 그 녀석이 와서 뒤진다면 아래층을 먼저 뒤지지 2층부터 뒤질까 보냐는 생각이었다.
2층 작은 아들 방문을 열었다.
아들의 체취가 훅 끼쳐 들었다. 방에 들어가 <오시이레>를 열었다. 거기 들어 있는 책들이 대가리를 들고 나섰다.
『에구 이것아. 배고파서 어쩌냐? 글쎄 모시 주우적삼 그대루 갔더랬구나. 형은 그대로 움 속에 있었길래 다리는 다쳤을 망정 끌려가진 않았지. 하두 움 속이 침침하구 덥다구 하길래 그날 아침따라 잠깐 나와 밥먹으라구 한 에미가 잘못이었구나. 얘야, 그래 어디 있느냐, 어디 가서 살아 잇기나 하냐? 병욱아 어서 오려무나. 네 방이 이렇게 있지 않느냐? 좁은 방에 들끓느라구 책을 볼 새가 없다가 새집을 짓고 와서부터 책을 사들이구 맘대루 보구 하더니 그 놈의 불한당 패들이 여기까지 몰려와 가지구 이 지경을 만들었구나. 얘야 병욱아 어서 오너라. 에미가 여기서 기다리느라고 이 무서운 집에 혼자 있다. 동네두 온통 비었다. 언덕 저쪽에 도둑놈 한 녀석밖엔 아무도 없다. 그 놈이 온통 가져갈까 봐서…….』
노파는 자기 소리에 깜짝 놀라며 이렇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얼른 두 손으로 눈을 이리 저리 씻은 다음 분주히 책을 사방으로 쌓아 올려 궤짝처럼 만들어 논 다음 그 속에 쌀자루를 넣고 역시 책으로 뚜껑을 덮었다.
이 방 외에도 여섯 방이나 있어서 노파는 자루에 그 곳에 혹은 종이 봉지에 보자기에 적당히 싸고 넣고 하여 감춰 두었다. 2층이 끝난 뒤엔 지하실로 옮겼다. 역시 힘드는 데부터 먼지 하려는 마음에서였다. 아주 캄캄할 때까지 노파는 이런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행히 안방이나 건넌방 아랫방은 가깝기도 하려니와 발 익은 곳이 되고 보니 더듬어가며 할 수 있었다.
불을 켜야 하겠는데 불이 켜지면 밖에서 들여다 볼 것만 같아서 참았다. 그렇잖아도 검정 양복 저고리가 시뻘건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노파는 빈 속으로 자리에 들어갔다. 시장기와 오한이 이빨을 딱딱 쪼았으나 군불 지필 기력이 나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져서 눈보라가 문과 창을 부딪고 지나갔다. 깨어진 채로 창살에 붙어 있는 유리들이 짱그랑 짱그랑 했다. 훌쩍 들으면 꼭 교회당 종소리에 흡사했다.
『그러니까 낮에 교회당 종소리로 들린 건 바로 저 유리 조각들 부딪는 소리였나부다.』
노파는 실망적인 소리로 지껄였다.
노파가 이튿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방안에 햇빛이 쫙 깔려 있었다.
『눈이 안 오나부다. 해가 떴다. 해가 떴어』
노파는 큰 소리로 지껄이며 뛰어 일어났다. 그의 가슴 속에도 햇빛이 쫙 퍼지는 것이었다. 눈만 그치면 아들과 딸이 오는 길이 열리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아들과 딸만 오게 되면 검정 양복 저고리 같은 것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열 시 가량 되었구나. 해가 저 금 안으로 들어옴 열 시가 되지. 일어나 조반을 지어야지. 싫더라두 부지런히 먹구 기운을 차려야지』
노파는 찬방쪽 장판지의 잇닿은 금에까지 들어온 햇발을 부시는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방안에 들어온 빛으로서 시각을 짐작하는 것이었다. 햇발이 어디까지 들면 몇 시고 어디까지 나가면 몇 시라는 것을 노파는 알고 있었다. 평소부터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이 시계 보는 일보다 거추장스럽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했다.
노파는 쌀을 어디서 떠낼까 하고 한참 망설였다. 2층과 지하실의 것은 깊이 두었으니 안심이 되나 건넌방이나 웃방 것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했다.
『건넌방 것부터 먹자, 그 녀석이 뒤지려 오면 손 가까운데 것부터 뒤질지 모른다. 처음부터 건넌방에 적게 갖다 두었다. 적은 것부터 먹는 게 좋을 게다.』
라고 노파는 중얼거렸다. 쌀을 씻어 앉히고 달걀을 한 개 꺼내왔다. 달걀은 며느리 양복장 속에 감췄던 것이다. 달걀을 그만 두려다가 어제 저녁도 굶어 잤는데 먹지 않으면 기운을 잃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늙은이는 먹어야 기운을 차린다고 딸이 줄곧 일러주던 소리를 노파는 잊지 않았다. 김도 꺼냈다. 김이 영양분이 많다는 말도 잊지 않고 있었다. 조반을 먹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서남쪽이 화안히 보이는 큰 방 두 겹의 유리문을 열었다. 교회당의 종소리를 듣고자 한 것도 아니요. 언덕 아래 동네나 먼 동네를 보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언덕 길 저 쪽을 살펴보고자 했던 것이다. 문이 열리자 다사로운 볕이 왈칵 들이 밀었다. 눈이 흠뻑 내린 뒤여서 그런지 겨울 볕 같지 않았다.
바람에 불리기도 했겠지만 나무에 얽힌 눈이 녹기도 한 모양이었다.
그새 벌서 상록수니 잣나무니 소나무니 하는 것들이 얼마의 푸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들은 햐얀 바탕에 무늬를 놓아주고 있었다.
노파는 한층 마음이 부드러워 오는 것을 깨닫는다.
높아진 하늘엔 구름이 뭉치를 지어 떠 있었다. 노파는 까딱하면 어지럼증이 생길 것 같았으나 언덕길 저쪽을 살피려고 목을 길게 빼었다.
예상한 바대로 검정 양복 저고리가 구루마를 끌고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어저께와 같은 거리건만 구루마와 사람이 완연히 보였다.
눈이 부시면 눈물이 더 잘 고이는 눈을 양 손등으로 비벼가며 노파는 구루마의 거동을 살폈다. 구루마는 어느 집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만에 짐짝을 잔득 싣고 구루마는 내려가던 길을 되돌아 왔다.
『어저께두 그렇게 한 모양이지. 오늘 하루를 또 저렇게 할 모양이구나. 내일두 모래두…….』
노파는 유리문을 닫아 버린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 달렸다. 어제 저녁에 옮겨놓은 것들을 모두 한 군데 갖다 감춰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실의 것을 올려왔다. 2층의 것을 내려왔다. 건넌방 웃방 찬바 며느리의 양복장 속의 달걀까지도 옮겨다 놓았다. 여러 군데 갈라두고 마음을 쓰느니 한 군데 두는 편이 애가 덜 쓰일 것 같았다.
어디다 두어야 마음이 놓일지 생각하다가 본래 두었던 곁방에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쉽게 다룰 수가 있고 그 녀석이 와서 가져가게 되는 때 쉽게 알아 챌 수 있을 테니까
『한 군데다 몰아두었다가 몽땅 가져가 버리면 그만 아니야. 2층에 올려다 놓는 게 낫겠다. 아래층 보다 2층이 훨씬 든든하다. 아래층을 거쳐야 2층에 올라가니 말이다.』
곰곰히 생각하던 끝에 다시 곁방에 한데 몰아 놓아두었던 것을 2층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다 옮겨놓고 저녁거리를 2층에 올라가 떠가지고 내려오다가 노파는 다리가 아파서 신음소리를 마구 쳤다.
『그 녀석 땜에 이 고생이구나. 그 놈이 멀찌감치 가기나 했음 얼마나 좋으랴. 남에걸 자꾸 날라드리기만 하는데 언제 갈라구…….』
저녁을 먹고 나서도 채 어둡지 않았다. 언덕길 저쪽의 기색을 살피자면 살필 수도 있었지만 노파는 다리가 아파서 2층에 올라가 낼 수가 없었다.
내일 아침거리를 어떻게 내려오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자리에 들어갔다. 잠이 좀체 오지 않았다.
눈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가 뻐득뻐득 나는 것만 같았다. 숨을 죽이고 밖에 귀를 보냈다.
무서운 마련을 해선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싶었으나 귀를 막지 않으려고 목을 내 놓았다.
『저 놈이 이 캄캄한데 들어와 죽여 버리면 어쩌나. 죽일지도 모르지. 죽으면 그것들두 못 보구 마는구나. 그 놈이 오면 저기 2층에 있는걸 다 가져가라구 하지. 죽이지만 말구 다 가져가라구 그러지. 병욱이 기순일 한번만 보구 죽게 해 달라구 빌지. 이북 땅은 폭격이 말이 아니라는데 살아 있기나 한지. 에구 에구우』
밖에서 들을까봐 속으로 중얼거렸다.
공포의 밤이 아무 일 없이 다시 밝았다. 이튿날 아침 노파는 층층계를 기어올라갔다. 아침쌀을 뜨러 간 김에 아주 언덕길 저 쪽의 기색을 살피기로 했다.
유리문은 열지 않았다. 문이 열리면 사람이 있는 걸 일깨워 준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노파는 어저께랑 그저께랑 문을 연 일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 녀석이 있는데 쫓아간 일을 더욱 뉘우쳤다.
『저게 뭐야?』
그 집 앞에 추럭이 서 있다. 검정 양복 저고리가 짐짝을 내다 싣는다. 또 다른 남자 하나도 있다. 그것도 짐짝을 짊어지고 차에 싣는다. 어디 가나보다. 시원하긴 하나 아주 가면 혼자 어쩌나 하는 마음이 노파를 엄습했다.
무서우면서도 그녀석이 있거니 하면 한편 든든하기도 했는데 노파는 유리문을 열고 그 쪽을 살폈다.
떠나는 녀석이 이제 어쩌랴 싶었던 것이다.
짐짝을 무수히 실은 추럭이 언덕길 저 쪽으로 뒤퉁뒤퉁 내려갔다. 추럭은 얼마 안 가서 눈 속에라도 자자든 듯 자취를 감춰버렸다.
『남의 걸 도둑질 해 드리더니 잘두 갖구 가는구나. 저리 될 줄 모르구 너맘 없이 애꼈지. 그 애끼던 것들이 온통 남의 밥이 되니 기가 차는 일이지. 쯧쯧쯧』
노파는 남의 일 같지 않게 가슴이 뻐근해 왔다.
노파는 추럭이 사라진 방향을 눈을 빗씻으며 다시 살폈다.
아무 것도 없다. 아득히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할뿐이었다.
노파는 어깨를 축 내려뜨리고 퀭하니 보는 데를 보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 내렸다. 떠나간 검정 양복 저고리가 부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노파는 이어 부럽다는 생각을 해선 안 된다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었다.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다시 결심했다. 이북 땅엔 폭격이 말이 아니라는데 그것들이 무사하기나 한지 알아 봐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다.
노파는 아침거리를 들고 겨우 내려오면서 그 녀석이 떠나갔으니 도로 곁방에 옮겨 놔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을 지나고 노파는 2층의 것부터 내려오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살피자는 생각도 없이 언덕길 저 쪽에 눈이 갔다.
『저게. 저것이?』
검정 양복 저고리가 또 구루마에 잔뜩 싣고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저 녀석인 안 가고 짐만 가졌나부다. 실컷 도둑질 해다 실어 보내군 또 실어 드리는구나. 무서운 짓두 하는군 그래. 하긴 그냥 둬뒀댔자 불한당들이 들어 옴 다 가져가게 될게니 일찌감치 가져가는 것두 무방하지. 그까짓 물건쯤이야 뭐랴. 집이 부서지구 사람이 죽어 넘어지구 사람이 어딜 갔는지 모르게 없어지구 하는 판국인데 그것쯤이 대수로울게 무어 있을라구』
노파는 아침을 먹고 나서 2층으로 기어올라갔다.
문을 열지 않고 구석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휘이 현기증이 생기는 것이나 일어서 있기보다는 나았다. 그냥 바닥에 앉아서는 언덕길 저쪽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검정 양복 저고리는 연신 실어 들였다. 구부러진 등성이로 올라가는 꼬락서니가 어지간히 힘이 들어 보였다. 뒤로 다리를 뻗치며 모가지를 앞으로 쑤욱 내 뽑았다.
『저 녀석이 저쪽 마을을 다 훑고 나선 이쪽으로 넘어올 작정인거야. 이쪽으로 넘어 오면 다른 델 갈 데가 있나. 덕근 아범이 모조리 뒤져다 먹었으니 우리 집 밖엔 없지. 이쪽으로 넘어 오기만 함 올데 갈데 없이 우리 집이야. 나를 두고사 가져갈 도리가 없으니 죽이겠지. 아무리 이런 판국이기로서니 눈이 퍼런 사람을 앉혀놓고 두둑질을 해 갈라구……. 암만 해도 저 녀석이 나를 죽이지. 그것들을 못 보구 죽다니 에구 에구우.』
노파의 눈에선 눈물이 줄을 지어 흘러 내렸으나 울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닌 것을 노파는 깨달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그것들에게 주려고 아끼는 것을 끝까지 감춰 보자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곁방은 안심치가 않았다.
『그 녀석이 오면「할머니 계시오」하고 이 방으로 들어올 거 아니냐. 이 방에 들어오면 건넌방에 뭐가 있다는 냄새를 켤 것이다. 도둑질만 하는 녀석이 그걸 모를라구……. 어간 미닫이만 열면 그만인 걸. 더구나 어간 미닫이에 자물쇠를 잠글 수도 없이 되어 있지』
이 곁방은 벽장 비슷이 쓰이던 곳이었다. 평소엔 장롱이나 구절부레한 것들이 들어 있었지 쌀이니 달걀이니 김이니 하는 것을 둬 보지 않던 곳이었다.
이번에 그것들을 뒷곁 움 속에 갖다 둬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무래도 거기가 제일 안전한 것 같았다. 처음부터 거기를 생각해 냈더라면 그 동안 고생을 안하고 아예 거기 갖다 뒀을 걸 공연한 고생을 했다고 노파는 생각했다. 움은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숨어 있던 곳이다.
큰 아들은 붙임성이 좋게 잘 참았으나 작은 것은 그렇지가 못했다. 밥을 넣어 줄 때마다 더워서 어떻게 먹느냐는 둥 흙 냄샌지 밥 냄샌지 모르겠다는 둥 짜증을 더럭더럭 내었다. 잡혀가던 날은 비가 오시려고 그랬던지 몹시 무더웠다. 노파는 아들의 짜증을 받아 내기가 어려워서라기보다 한번 밥맛이 나게 밥을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작은 것만 나오고 맏아들은 나오지 않겠노라고 했다. 나중 폭격에 움이 무너져 다리를 다치긴 했으나 잡혀가기보다야 낫지 않느냐고 노파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무너진 움은 이어 다시 말짱히 고치고 계속하여 맏아들이 있던 데라 쓰기에 불편하지 않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그러나 거기까지 옮겨가야 할 생각을 하니 다리가 저절로 오그라 붙었다. 노파에겐 무엇보다도 괴로운 것이 다리를 쓰는 일인 것이다. 다리가 아프더라도 그 녀석에게 온통 뺏기고 싶지가 않았다.
뺏기지 않기 위해선 어떤 고생이더라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너깐 놈에게 빼앗길 줄 알어? 너 녀석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견데 보자』
노파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을 시작했다.
움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에 들어앉아 있던 아들들의 환영이 왈칵 쓸어 나왔다. 그러나 노파는 애써 그들의 환영을 지워버리려 들었다.
힘을 잃은 눈, 가만 내버려 둔 머리와 수염, 동생이 잡혀간 뒤에 형의 몰골은 더 볼 모양이 못되었다. 귀신과 같았던 것이다. 노파는 그러한 환영을 떠올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지금은 싸움판이라고, 싸움판에선 이겨놓고 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앞을 가로막는 환영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노파는 자꾸 도리를 흔들어 아들네 환영을 털어 버리며 끝내 할 일을 끝마치고야 말았다.
『제가 아무리 날쌘 도둑이기로서니 여기사 알아 낼 재주가 있을라구. 저보다 더 한 그 불한당패거리두 끝내 모르구 말았는데……. 그 놈들이 우리 집을 열 고패도 더 뒤졌지만 끝내 여기만은 모르고 말았다…….』
큰 아들은 이 집을 지을 때 이 움에 힘을 들여 팠던 것이다. 마치 공산당이 몰려 나올 줄을 알고나 있는 것처럼
폭격에 무너진 것을 다시 말짱히 고쳐 놓은 것도 노파는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검정 양복 저고리가 남아서 도둑질 할 것을 알고나 있은 것처럼
『하는 일이 모두 됐단 말이야. 온통 미리 알구 하는 것 같단 말이야』
노파는 새삼 큰 아들 병묵의 하는 일이 고맙고 믿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 미치니까 노파는 또 큰 아들이 다친 다리를 끌며 낯선 곳에 가서 고생하는 일이 가슴이 아파왔다.
『부산은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게 빽빽해서 사람이 다닐 수 없다는데 그 다릴 가지구 그런 데서 어찌 고생하느냐. 그 놈의 공산당들 땜에 모두 이 고생이구나. 아, 그 놈의 공산당 땜에 에이구……. 그렇더라두 빨리 들어오기나 했음. 그래야 그것들을 만날게 아니냐. 어느 날 오려는지? 한번만 보구 죽었음. 꼭 한번만이라도 봤음 눈이 번쩍 띄겠다. 하느님, 내 새끼들을 한번만 보게 해 주십소서……. 이북 땅은 폭격으로 말이 아니라는데. 하느님, 그것들이 무사하기나 합니까?』
노파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울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울고 있었던 것이다.
노파는 눈을 뜨자 주위를 두루 살폈다.
『내 방이었구나』
하는 의식이 돌았다.
방바닥을 더듬더듬 만져 보았다. 뼈저리는 냉돌이 손바닥에 집히었다.
『에그 차거워라』
손을 얼른 떼어 이불 속에 집어 넣었다. 그러나 뼈저리는 냉돌이 노파의 의식을 빨리 회복시키는 촉진제가 된 것만은 틀림없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누웠던가?』
방 바닥을 더듬더듬 만져 보듯이 지난 일을 더듬더듬 더듬어 보았다. 언제 어떻게 자리에 누웠던지 그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동안에 얼마만한 시간이 지나갔는지 그것도 알지 못한다. 하루가 갔는지 이틀이 갔는지, 노파는 갑자기 쌀이랑을 움 속에 감추던 생각이 났다. 언덕길 저 쪽의 도둑놈의 일도 떠올랐다.
『쌀이랑 어찌 됐을까? 그 놈이 가져가지나 않았는지?』
이렇게 중얼거리긴 했으나 혀가 돌아가지 않았다. 죽을 때며 혀가 굳어진다더니 죽느라고 이러는 것이 아닌가고 노파는 왈칵 겁이 났다.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다리도 뻗뻗했다. 노파는 한층 더 겁이 났다.
『죽어선 안 된다. 죽지 말자』
고 다리를 벋디디고 바른 손으로 기껏 방바닥을 누르며 베개에서 머르를 들어 보았다. 머리가 약간 들렸다가 몸 전체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도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아, 죽는 거구나. 이럴 줄 알았음 아들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걸 그랬지. 그것들을 못 보고 죽는구나』
노파는 눈물이 쏟아지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것들을 못 보고 죽는단 말도, 부산 내려갈걸 그랬단 말도 수없이 했다. 그러다가 노파는 깜짝 아까까지 혀가 돌아가지 않았는데 말이 마구 나온다는 것을 의식했다.
『죽는 건 아닌가보다. 죽지 않는가보다.』
고 노파는 소리를 크게 질렀다. 죽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 친 소리였다. 노파는 울음을 그치기로 했다. 다리를 벋디디고 바른 손으로 방바닥을 기껏 누르며 베개에서 머리를 들어보았다. 먼저 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았다.
『내가 그새 아무 것도 먹지 않아 이렇구나. 늙은이는 먹는 게 힘이라는데. 딸이 늘 그렇게 일러주던 걸…….』
노파는 일어나 무엇을 끓여 먹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다리와 팔과 머리를 같은 방법으로 해 보았다. 이번엔 벌떡 일어나졌다.
『됐다.』
고 노파는 소리치면서 서쪽 창으로 갔다. 일어나 놓고 보니 먹기보다 언덕 아래 동정이 알고 싶었던 것이다.
분주히 창을 열었다. 바람이 휘익 들이쳤다. 그런데 바람만이 아닌 듯한 어떤 소음이 한테 들이쳤음을 노파는 감각했다.
『저게 무슨 소릴까?』
노파는 펄쩍 뛰고 싶었다. 소음은 단조하지 않았다. 말발굽 소리 같은 것, 바퀴 소리 같은 것, 사람의 웅성거리는 소리, 그것은 정지해 있지 않고 행진하는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지난 9월 28일. 거리에서 떨어진 노파의 집에선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한 것을 저녁 무렵에사 알았다.
더구나 온 가족이 움 속에 들어가 있는 관계로 더 더디었다. 이 집 가족들은 포탄과 장거리 포탄 때문에 26일부터 움 속에 살았다.
『유엔군이 들어왔어요. 국군도 들어왔어요. 택수야 택수야』
저녁 무렵에 작은 손자 놈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움속 가족들의 귀가 온통 밖으로 쫑긋 내솟았다.
『택수야. 택수야. 유엔군이 들어 왔어. 택수 엄마 어디 계셔? 유엔군이 들어왔어요』
『반장이야. 반장 떠들면 안돼』
큰 손자 놈의 낮은 소리였다. 반장은 사변 전에도 반장이었으며 사변 중에도 반장을 한 이웃 아낙네이었다. 사변 중에 인민공화국 기를 달아라, 붉은 기를 달아라, 의용군으로 나갈 청년을 조사한다, 불침번으로 나오너라, 노력동원을 나오너라, 복구작업을 나오너라, 방공호를 파라, 하고 성화를 먹인 일이 있느니 만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냐, 유엔군이 들어왔다고 하잖아…….』
누이동생이 오라범을 치란하는 눈치였다. 반장의 역성을 들자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지 모른다. 식기 뚜껑만한 통풍 구멍 네 개가 그것도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숨겨 있기 때문에 햇볕구경은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만들 있어』
어멈이 낮은 소리로 아이들을 죽질렀다. 아이들은 침을 삼키며 밖에 귀를 내어뜨렸다.
『택수야. 아니 어디 계셔? 다들 나왔는데. 동네가 온통 다 쓸어 나왔는데…….』
다시 들리는 다급한 이 소리에 잠잠히 귀만 기울이던 큰 아들이
『나가자』
고 외쳤다.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는데 만세를 부르고 밖으로 내달렸다.
『거기 그런 존 데가 있었구만요. 우린 부엌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구 나흘 동안 꼬박 지냈어요. 그런 존 데가 있는 줄 모르구……. 지하실이나 부엌에라두 계신 줄 알구 그리다 대구 소릴 쳤구만요. 모두들 부엌 지하실에 들어 백혀 있다가 나왔어요. 어떻게들 반가운지』
반장은 길게 수선을 피고 나서도 우물쭈물하다가
『택수 어머니 인제 맘 개운하게 살아 보겠어요. 놈들 세상은 뭐가 그따윈지 모르겠어요. 도무지 무서워 못 견디겠던 걸요. 제가 반장을 하구 싶어했겠어요? 무서워서 했죠. 죽일까봐……. 그 동회서 사무보던 청년이랑 총살당하는 걸 보구 나선 뭐래두 하람네네 하구 했지 어떡합니까?』
반장은 자기 변명을 섞어가며 떠들어 댔다.
그러나 반장의 변명을 듣고 섰을 때가 아니었다. 모두 언덕 아래로 내어 달리는 마음뿐이었다. 아이들은 벌써 내달리고 없었다. 병묵이도 며느리도 내려 달렸다. 노파는 그들의 뒤를 따르면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틈에 행여 병욱이가 정 나오나 싶어 발을 멈추기도 하고 달리기도 했다. 큰 길엔 어느 새 양쪽 연변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군대가 그 속을 행진하는 것이었다. 탱크도 지나가고 말을 탄 군인도 지나가고 총을 멘 군인도 지나갔다. 모두 땀에 옷이 푹 젖어 있고 아직 더 젖도록 땀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군대를 향하여 손뼉을 치고 태극기를 한사코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그냥 소리를 치기도 했다.
벌써 목이 쉰 사람도 있었다. 석 달 동안 다물었던 입을 마구 터뜨려 놓은 것이었다.
군인 중에 어떤 이는 같이 만세를 불러 주기도 했다. 만세를 성화같이 부르고 있는 노인이나 아이들을 덥썩 껴안고 죽을둥 살둥 몰라 하는 군인도 있었다.
『왔다 왔어. 구이 팔 그 때하구 같구나. 같구나』
노파는 서쪽 창을 닫지도 않고 밖으로 내달렸다. 무엇을 먹어야 한다던 생각도 잊어버렸다. 전신이 가눌 수 없게 후들거리던 것도 잊어버렸다. 눈이 그 동안에도 더 내린 모양으로 새 발자국 하나도 있지 않고 마당은 은반 같았다. 노파가 도둑놈의 집에 오고가고 한 발자국도 눈 속에 묻혀 버리고 없었다. 언덕을 내려 달리다가 노파는 몇 번 넘어졌다. 그러나 노파는 이어 일어나곤 했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덕근네 앞 전봇대가 가까와 오지 않았다. 걷다간 전봇대를 보고 걷다간 전봇대를 보곤 했다.
평지에 내려서면선 좀 낫긴 하나 발자국 하나 쓰러진 채로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을 일어나곤 해서 끝내 큰 길이 바라뵈는 어귀까지 다달았다.
『정말 왔구나. 바루 저것이야』
노파는 달려가서 행진하는 군인 하나에게
『지금사 오는군 그래. 대통령두 오시나요?』
하고 물었다. 9.28때의 감격적인 광경만이 머리에 떠올랐던 까닭이다.
『이 노친네가 정신이 빠졌군. 아직두 XXX일 기다리고 있어? 놈들은 또 밀려가지 않았어. 그래두 기다려?』
이 냉혹한 대꾸에 노파는 멍청해졌다. 다시 더 물어 볼 용기도 없었다. 멍청해 서 있노라니까 저 쪽 처마 밑에 서 있던 중노인이 그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노파는 구원이라도 받은 듯 반가워 달려갔다.
『할머니 오늘 큰일 날 뻔했소. 이 군대는 인민군이라오. 우리 군대가 온다면야 이렇게 한산하겠어요?』
듣고 보니 연변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국군인 줄만 알았지요』
『국군과 인민군은 보면 벌써 다른 걸요. 저것 보세요. 저 사람들을 총끝에 칼을 꽂잖았어요. 저런 건 인민군이죠』
노파는 중노인의 설명을 들으며 총 끝에 눈을 보냈다. 과연 등줄기가 써늘해지는 뾰족한 칼이 총 끝에 꽂혀 있었다.
『그럼 저게 평양서 오는 군대요?』노파가 중노인에게 물었다.
『그렇죠. 평양서도 오고 원산서도 아무튼 이북군대죠』
『이북 군대요? 이북 땅은 폭격으로 말이 아니라는데 다들 저렇게 살아 있구만. 우리 아이들두 무사할지 모르겠다. 무사할지 모르겠다…….』
이북이라는 말에서 그 동안 잊어버렸던 아들과 딸의 생각이 머리를 들었다.
그러자 노파는 집을 비워 놓고 나온 일이 생각났다. 그것들이 그 동안이라도 찾아 왔다 도로 가지 않았을까. 딸은 집짓기 전에 갔으니 집을 모르지만 병욱인 집을 알고 있다. 제 누이를 만나 같이 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달렸다.
문간에 이르자 노파는 바삐 안을 들여다보았다. 대문이 열려 있고 현관문도 열려 있었다.
『너희들이 왔느냐? 병욱아! 기숙아!…….』
노파는 자기가 열어논 생각은 못했다. 눈 위의 발자국을 보아서라도 알 일인데 그런 것은 미처 볼 새가 없었다.
『병욱아! 기숙아!』
아무리 불러야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안 왔구나. 발자국두 없이 날아들어 왔겠다구 야단을 쳤담
노파는 그제사 마당에 자기 발자국 이외엔 새 한 마리 어릉기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러나 노파는 낙심하지 않았다. 이북 군대가 왔으니까 이젠 곧 아들과 딸이 뒤를 쫓아오리라고 믿었다. 아들과 딸이 올라온다면 움 속에 넣어둔 것들을 내놔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길 저 쪽 도둑놈이 있더라도 그깐 놈이 이제사 제가 어쩌랴 싶었다.
움 속에 쌀이랑 넣을 때 차근차근 넣지 못했던 것도 마음에 걸리고 해서 노파는 이어 서둘고 움으로 가는 길을 내놓고 그 속의 것을 곁방으로 옮겨 왔다.
그것들이 오면 손 가까운데서 쉽게 쌀을 떠내고 찬거리를 꺼낼 일이 노파는 즐겁기까지 했다.
『여보오, 여보시오』
부르는 소리에 노파가 눈을 떴다. 노파는 기다리기에 지쳐서 그 동안 잠이 들었던 것이다.
『일어나요. 일어나』
누비 군복을 입은 청년이었다. 구두를 신은 채여서 노파는 가슴이 털렁 내려 앉았다. 작은 아들을 잡아간 사람들이 구두를 신은 채 방에 들어왔던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젊은 양반. 내 아들두 같은 인민공화국 군인이라우. 지난 번 사변 때 인민군으로 나갔우다. 딸 사위는 지금 이북에 가서 웃자리에 앉아 있답니다.』
노파는 이런 말을 불쑥 했다.
『사위가 이북에 있어? 사위가 누군데?』
노파는 사위의 이름을 대주려다가 사위의 이름을 대주면 자기들의 과거가 탄로될까 싶어 고향에서 마름으로 있던 황백수란 자의 이름을 대주었다. 황백수는 이북에 있을 때 자기들에게 가장 악독하게 굴던 자였다.
『황백수 동무요? 아니 노인이 황백수 동무 장모란 말이지요?』
누비 군복의 표정이 대뜸 달라졌다.
『예, 그렀소다.』
-잘두 착취해 먹었구나. 잘해 먹었어-.
-이놈들이 다들 부산으로 뺑소닐 친 셈인게지-.
-며칠 후에 어디 보자. 현해탄 바다 맛을 보여 줄테니-.
누비 군복 외에도 더 온 모양이었다. 문 밖에서 이런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그 패들도 우루루 안으로 쓸어 들어왔다. 그 패들 중에도 누비 군복이 있었다. 여자도 있었다.
여자는 스무 살을 많이 넘지 않아 보였다.
『노인. 당신 본래부터 이 집에 살았소?』
나중 들어온 누비 군복이 노파에게 대들며 물었다. 노파가 대꾸하기 전에 먼저 들어온 누비 군복이 얼른,
『김 동무! 이 노인이 황백수 동무의 장모래』
하고 대꾸해 주었다.
『뭐? 그래? 그런데 노인은 어째서 여기서 살아요? 북반부에서 살지 못하구』
『인제 가 살지요』
이 말도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이 존 집을 두고 발이 제려 어떻게 가?』
나중 들어온 누비 군복의 말이었다. 그의 태도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노파는 아무래도 잡혀가나 보다고 짐작했다.
『우리 기관에서 이 집을 쓰게 됐소다. 어머니는 저짝 아래 조고만 집에 내려가 계시오. 짐은 우리 동무들이 날라다 드리지요』
잡혀가는 줄 알고 있던 노파는『어머니』라고 붙여 주는 누비 군복 말에 펄쩍 뒤고 싶었다. 적적한 이 집에 같이 있겠다는 말도 반가웠다.
『고마워라. 짐이사 내가 날러 내지요』
노파는 떨어진 아랫채에 내려가 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되었다. 웃채에 있던 세간 무엇 무엇 할 것 없이 모조리 아랫채로 옮겼다. 석탄광 김치광 헛간방도 세 개나 되었으나 어디나 꽉 찼다. 쌀이랑은 거처하는 방에 두고 싶었으나 장롱 양복장을 들여놓고 나니 은신 할 데가 없어 쌀만은 비인 방에다 두었다. 쥐가 들까봐 독에 넣어 두었다. 큰 독 셋에 차고도 서말 가량은 됨직 했다.
누비 군복 외에 여자도 노파더러『어머니』라고 불렀다. 여자의 이름은 정채혜라고 했다. 그들 사이에선 정동무로 불리웠다. 노파는 그들에게 거짓말 한 것이 탄로될가봐 불안했다. 작은 아들이나 딸이 오는 것도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황백수를 알고 있는 그들이 황백수의 아낙을 모를 리 있으랴 싶었던 것이다. 하필 황백수의 이름을 불쑥 대준 일이 후회되었으나 이제와선 쏟아진 물이니 하는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변소에 가는 외엔 노파는 방에서 통히 발을 내밀지 않고 줄곧 누워 있었다.
정채혜가 노파 방에 하루 한번씩 나왔다. 며느리 경대에 와서 화장품 찌꺼기를 바르느라고 아침 세수가 끝나면 오곤 했다.
『그새 얼굴이 뿌옇게 한창 필 텐데 고생들이 심해서 그만…….』
그들이 와서 4,5일 되던 날 아침 경대 앞에 앉아 분을 찍어 바르는 정채혜더러 노파가 한 말이었다.
『그래요? 어머니』
정채혜는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반색을 했다.
『본래 고운 얼굴이야. 지금 몇 살이지?』
『스물 셋이에요. 전쟁 나기 전엔 얼굴이 아주 하얀 했어요』
정채혜는 아직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전쟁 나기 전에 어디 있었나?』
『충청도 논산에요. 지금 어머니 아부지 형제들이 다 거기 있어요』
거울 속의 정채혜 얼굴이 흐려지는 것을 노파는 훌쩍 보았다.
『혼자 왔구나. 부모들이 이 난리통에 어린 딸을 내놓구 얼마나 애가 씌울까』
노파는 정채혜 부모의 마음도 자기와 같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그런 말씀 말어요. 속이 지글지글 타들어가요』
정채혜는 벌떡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더니 시선을 방바닥에 떨어뜨리며 머엉해 있는 것이었다.
『스물세 살임 우리 기숙이가 첫아일 낳던 나이로구만』
노파는 혼잣소리처럼 그리고 정채혜가 듣지 않게 중얼거리며 정채혜를 올려다보았다. 스물세 살 때의 딸의 모습을 더듬는 것이었다. 딸이 첫아들을 났을 때 사위는 감옥에 들어가 있었다. 딸은 어린 것을 업고 감옥살이를 하는 남편의 뒤추배를 했다. 복실복실 하던 딸의 얼굴에 검버섯이 피기 시작했다. 그때 피기 시작한 검버섯이 점점 퍼지기만 했다.
딸네가 월북하던 때 여관 방에서 잠이 들었는지 그저 눈을 감고 있는지 모를 딸의 얼굴엔 검버섯이 빈틈없이 퍼져 있었다.
『에이구, 고생두 무던히두 하지. 쯧쯧』
노파가 딸을 생각하고 한 말에 정채혜는 절더러 한말인 줄 알았던지
『어머니 이 발좀 보세요. 이게 모두 얼부풀어서 이래요』
양말을 벗어 노파에게 보였다. 퉁퉁 부은 발에 진물이 찔쩍찔쩍했다.
『이래 가지구 어떻게 돌아다니는가?』
노파는 진실로 딸의 아픔을 보는 듯한 마음으로 진물이 찔쩍찔쩍하는 발을 어루만져 주었다. 정채혜는 이런 발을 가지고 전 날 밤에는 인천까지 가서 식량 배급을 받아 왔다고 노파에게 호소했다. 낮엔 비행기에서 내려 퍼붓는 폭탄 때문에 갈 수 없다는 말도 했다. 그래서 밤이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노파가 알고 있으나 이 가녀린 여자가 인천까지 가서 식량 배급을 받아 왔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이 발을 해가지구 인천까지 갔다 왔단 말이냐? 쯔쯧, 전쟁 땜에 젊은이들이 이 고생이구나. 전쟁 땜에…….』
정채혜는 식량 배급을 받아 올 뿐만 아니라 밥을 짓고 빨래를 했다. 해가 저물어서 타오는 식량이 겉보리나 겉벼인 경우엔 이것을 절구에 찧어 밥을 지었다.
『어머니 이런 고생은 아무 것두 아니예요. 구 이팔 이후 산에 들어가 가지고 당한 고생이란 말할 수 없어요』
정채혜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가 날마다 아침이면 한번씩 나오곤 하지만 노파와 이야기 해본 일이 없었다.
『산엔 왜 들어갔던가? 그러니까 육 이오까진 부모 슬하에 있었던가?』
『그래요. 육 이오 때 제가 좌익으로 돌았어요』
이때까지도 조용조용히 말했지만 이 말은 낮게 속삭이듯 하면서 바깥을 살피는 것이었다.
『사랑하던 남자가 육 이오 때 절더러 빨치산으로 들어가라고 그러잖아요. 나야 뭘 압니까? 그 때까지 국민학교 선생 노릇만 했지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걸 통 몰랐거던요. 그 남자두 나하구 비슷했는데 그만 그렇게 됐어요』
『그래 그 사람이 여기 같이 왔나?』
『아뇨. 그 사람은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보급투쟁을 나갔는데 다시 돌아오잖아요』
『그래 다시 못 만났단 말인가?』
『예에』
정채혜는 긴 한숨을 섞으며 대답했다.
『지금 저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들이냐?』
『우리 동무들이요』
정채혜는『우리 동무들』이라는 자기 말에 깜짝 깨달은 듯
『들어가 봐야 하겠군』
혼잣소리를 치면서 양말이랑 거두어 가지고 발딱 일어났다.
정채혜는 그 뒤 며칠 안 되어 떠나갔다. 군인으로 나가노라고 하더니 <룩자크>를 메고 떠나면서야
『서울에 오게 됨 어머닐 제일 먼저 찾겠어요. 어머니 저 사실은 빨치산으로 나가요』
노파에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정채혜는 떠나기 전 날 노파더러 <룩자크>가 없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대답했더니 이불 호청 뜯은 걸 가지고 와서 <룩자크>를 만들어 주었다. 생전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연구를 하고 해서 탄탄하고 짊어지기 쉽게 만들었다.
멜빵은 헝겊을 몇 번이나 겹쳤다. 몇 번이나 겹친 헝겊은 두꺼워서 바늘이 들어가지 않았다. 노파는 바늘에 몇 번 찔렸는지 모른다. <룩자크>를 만들어 놓으니까 정채혜는 제가 매일 아침 찍어 바르던 분이니 크림이니 하는 것들을 그 속에 넣어 가지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노파는 그러라고 쾌히 승낙했을 뿐 아니라 경대 서랍 속에 들어 있는 것 중에 필요한 것이 있거든 더 가져가라고 일어주고 그리고 또 그가 가지고 갈만한 것이 있거든 더 가져가라고 일러주고 그리고 또 그가 가지고 갈만한 게 더 없는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노파가 미워하는 공산당의 편이란 것도 잊어버리고 오직 딸을 떠나 보내던 때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파는 정채혜에게 부모에게 꼭 들려보라고 일러 주었다.
이불 호청으로 만든 <룩자크>를 짊어지고 언덕을 내려가는 정채혜의 뒷모습을 노파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눈물이 고이곤 해서 노파는 몇 번 씻기도 했다. 정채혜가 떠난 뒤로 집안은 덜썩 떠나가듯 벅적거렸다. 부상자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폭격에 상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무를 보는 방을 제하곤 아래 위층 전부에 부상자들이 꽉 찼다. 밤이나 낮이나 신음소리 고함소리에 집이 떠날 지경인데다가 마당에 외양간을 짓고 소와 말을 들이 매었다.
부상자를 실어올 때도 소나 말에게 달구지를 매어가지고 실어오곤 했다. 석탄이나 또 다른 것들을 실어 들이는 것도 달구지를 사용했다. 그들은 이러한 일을 전부 은근히 해치우려는 눈치였다. 노파 쪽에서 바깥에 잘 나오지 않기도 하지만 혹시 변소에라도 가게되는 경우가 있어서 나오면 그들은 노파를 꺼려하는 눈치를 보였다.
노파는 문구멍을 조그맣게 뚫어 놓고 밖을 살피기 시작했다. 밖에선 뚫은 것이 보이지 않게 작게 뚫었다.
문구멍이 뚫린 뒤엔 심심치가 않았다. 무엇이 바싹하기만 해도 벌떡 일어나 문구멍에 눈을 들여대었다.
얼마 안 되어 그들은 며칠을 두고 마당에 큰 구덩이를 팠다. 외양간과 이 구덩이를 파기 위해서 뜰 안에 서있던 나무들을 죄다 베어냈다. 하긴 땔나무로 벌써부터 돌아가며 베어내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석탄광에 석탄, 장작 광에 장작이 그득 차 있었건만 얼마 못 되어 다 때고 나선 가까운데 서 있는 나무를 베어냈던 것이다. 작은 것들인 경우엔 그렇지가 않았는데 큰 놈을 도끼로 찍고 톱으로 켜 넘어뜨리는 때면 천지가 온통 한데 넘어지듯 하게 요란스러웠다. 그 바람에 담장까지 한꺼번에 넘어가기도 했다.
아카시아 같은 것은 생나무라도 쉽게 타지만 다른 것은 좀체 타 주지 않았다. 타지 않는 나무일수록 불쏘시개가 많이 들어야 했다.
불쏘시개는 아들의 책이 희생되곤 했다. 책을 그렇게 하는 때마다 노파는 뼈가 바서지는 듯 견딜 수 없었다. 더구나 작은 아들은 그 책을 생명처럼 아꼈던 것이다.
『책은 불쏘시갤 말았음. 가까운 데서 마른 잎사귀를 긁어다 땜 잘 붙을 텐데…….』
참다못해 노파가 이런 말을 하면 그들은
『이런 건 못 써요. 이게 모두 반동서적인데 뒀다 뭣에 쓰게요.』
하면서 아무 날도 마찬가지 짓을 했다. 움 속엔 무엇이나 가져다 처넣었다.
다발로 묶은 삽을 갖다 넣는 때도 있었다. 가마니에 싼 것을 넣는 때도 있었다. 무엇이나 연방 처넣었다. 밤이면 쉴새 없이 갖다 넣는 소리가 들렸다.
밤엔 문구멍을 사용해도 소용없었던 관계로 노파는 누워서 귀를 기울였다. 성철 어머니라고 부르는 여인네가 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40세 가량 되어 보였다. 남편은 딴 기관에서 일하고 아들은 전쟁에 나갔다고 했다. 이 여인네가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식량 배급을 받아 왔다. 정채혜가 하던 일을 하는 셈이었다. 소같이 크게 생긴 여인네는 틈만 생기면 어디 가서 무엇을 얻어왔다. 그것을 노파더러 숨겨달라고 부탁했다. 첫 시작에 가져온 것들은 헛간 노파네 것들이 들어 있는 한구석에 몰래 숨겨 두었으나 차차 양이 많아지니까 더 어쩔 수가 없었던 지 노파에게 호소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저 웃채에 있는 우리 동무들이 모르게 숨겨야겠어요. 알면 가만 놔두지 않아요』
노파는 아들이 숨어 있던 움을 가리켜 주었다. 이왕 버린 집이니 다 내준다는 심산이었던지 모를 일이었다. 인제 집은 그대로 불한당 놈들의 밥이 된 것이다. 마당에 나무 한 그루 서 있지 않은 엉망진창인 집일 바에야 움쯤 내놓는 것이 뭐가 대단하랴. 부산에 피난간 아들네는 다시 올라와 살아 볼까 싶지도 않았다. 작은 아드로가 딸이 온다 치더라도 오붓하게 살아 보긴 다 틀린 일이다. 노파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인네한테 움을 쓰라고 말했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다 어두웠는데 이 여인네가 재봉틀을 이고 들어왔다. 저녁을 지나고 나갔던 모양이었다. 웃채 동무들이 잠든 뒤에 움에 갖다 넣을 터이니 위선 노파 방에 놓아 달라는 것이었다.
노파는 재봉틀을 보자 이어 딸을 데려다 준 장사치가 딸네는 재봉틀이랑 사놓고 산다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 어머니, 이북엔 그런 재봉틀이 없소?』
이때까지 이 여인네한테는 노파가 무슨 말이건 묻지 않았다. 그럴 새가 없었다. 이 여인네는 틈이 있으면 어디 가서 무엇을 날라 오는 일에 분주했던 것이다.
『있기사 있지만 우리네사 어디서 이런 걸 만져 봅니까』
여인네는 겁에 뜬 얼굴로 그러나 대견해 하는 표정을 부이며 노파가 묻는 말에 대꾸했다.
『그럼 어떤 사람이 그런 걸 가지구 사나?』
몰라서가 아니었다. 한번 듣고 싶은 말이었던 것이다.
『우리네 같은 사람이 이런 걸 만지려면 하늘에 별따기랍니다.』
이 소리에 노파는 딸을 데려다 준 장사치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딸네는 괜찮게 사는 것이 분명하나 이 난리통에 그것이 성해 있으리라고 누가 보장할까보냐는 생각이었다.
『그런게 열 개 없어지더라두 목숨이나 붙어 있었음』
노파의 이 말을 여인네가 알아들을 리 없었다.
『염려 마시우. 어머니네 건 하나 안 다쳐요』
여인네가 흘깃 노파를 보았다. 눈매가 범상치 않았다.
노파의 것을 안 다칠 꼴이 아니었다. 벌써 다쳤는지도 모를 눈매였다. 노파는 좀 더 어둡기를 기다렸다.
다 어두우면 웃채의 것들이 밖에 나가기를 잘했다. 그것들은 밤이면 부상자만 남겨두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가면 늦어서야 들어왔다. 돌아오는 땐 소랑 말이랑 이것들이 허리가 끊어지게 잔뜩 실은 달구지를 끌고 오는 것이었다.
벌써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수 십 번을 중얼거리고 나서 노파는 호롱불을 들고 거처하는 방 이외의 두 방과 헛간을 조사해 보았다. 예상하던 대로였다.
방의 것이나 헛간의 것이나 그대로 있지 않았다. 쥐가 먹을가봐 독에다 넣어둔 쌀이 자리가 났다. 한 독만이 아니고 세 독에 다 자리가 났다. 한 독은 절반이나 내려갔다. 독에다 넣고 신문지로 위를 덮은 다음 그 위에 다시 헝겊을 씌우고 끄나풀로 독 아가리를 동여 매었을 뿐 아니라 뚜껑을 덮은 뒤에 한 독엔 못이며 자루가 빠진 곡괭이며 자물쇠며 자질부레한 쇳조각들이 담긴 궤짝을 올려놓고 다른 두 독은 보퉁이며 책들을 얹어 놓았던 것이다.
『소같이 생긴 년이 도둑질만 하는구나. 빌어 먹을 년. 그것들을 주려구 먹지두 않구 애끼는 걸…….』
입 밖으로 나오려는 소리를 놀아 넣으면서 노파는 쌀독을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쌀독을 들여다보는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인제 귀신이 다 됐어. 뻐꾸기가 다 됐어. 쌀을 이렇게 퍼내도록 모르고 있다니. 그 년이 쌀독을 살필까봐 밖에 못 나오게 하느라구 밥이랑 주며 얼렁거렸구나』
노파는 쌀을 퍼내 옮길 차부새를 했다. 이번엔 자루에 넣고 보자기에 따서 거처하는 방에 갖다 두기로 작정했다. 웃채의 것들이 돌아오기 전에 독 셋의 것을 옮기느라고 노파의 이마에는 땀방울까지 내 솟았다.
쌀을 옮긴 두에 노파는 끼니를 건느지 않고 밥을 지었다. 변소 출입도 자주 했다. 소 같은 여인네가 외출하고 없으면 몰라도 그 여인네가 있기만 하면 미닫이 구멍에 한참씩 눈을 들여 대고 내다보았다. 방안이 온통 쏟아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한밤중이었다. 끝내 소 같은 여인네가 헛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드러냈다.
『여보 젊은이, 그게 무슨 행세란 말이오? 쌀이랑 온통 다 퍼냈더군요. 인제 쌀이 없으니까 방으룬 안 들어가구 헛간으로 드나들기 시작이군 그래?』
『아니우다 어머니. 뭘 갖다 둔 걸 꺼내자구 그래요. 어머니 떠들지 말아 주세요』
『그렇거들랑 나 보는 데서 빨리 꺼내구 다시 헛간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요』
여인네는 우물쭈물 하다가 웃채로 올라갔다.
웃채의 것들은 점점 어렵게 사는 눈치였다. 먼저 들어온 누비 군복이 어느 날 쌀 너 말을 꾸어 달라고 했다.
노파는 꾸어 주겠노라는 말이 안 나왔다. 눈을 내려 뜨고 잠잠히 있으니까 누비 군복이
『왜 쌀이 없다는 말이요? 그 쌀은 당연히 우리가 먹을 거요. 노인이 북반부에서 넘어 왔다는 것두 알구 있소. 노인 아들 김병묵이가 반동자란 것두 알구 있소』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는『어머니』라는 말도 빼어 버렸다. 노파는 당장 전신이 버들버들 떨려왔다. 동회에 있던 청년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알았다. 모두 모를 사람들뿐인데 한 사람이 눈에 익었다. 이 청년이 동회에 있은 건 미리 생각해 내지 못하고 어디서 본 사람이던가 하고 노파는 내쳐 생각해 오다가 겨우 알아냈던 것이다.
9.28때였다. 이 청년은 동회에 있노라고 하면서 두 번이나 찾아와 병욱의 행방을 걱정하며 공산당을 무수히 욕한 일이 있었다.
노파는 병욱을 생각해 주는 이 청년에게 담배랑 주며 용케 무사했다고 치하를 해 주며 부러워했다.
『그렇지만 황백수 동물 봐서 노인을 대접하는 거요. 그런 줄이나 알구 쌀을 꿔줘요. 식량 배급을 받음 물어주겠소』
떨고 있는 노파에게 누비 군복이 다시 말했다.
노파는 자루의 것을 먼저 내어 준 다음 독의 것을 꺼내서 너 말을 채워 주었다. 쌀 너 말이 이렇게도 많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노파는 몇 번이나 했다.
한 구석을 차지했던 쌀자루가 나가고 나니 식구 하나 없어진 것만큼 허전하기도 했다.
노파는 남은 쌀을 이불 속이니 양복장 속이니 자리 밑에 숨겨 놓았다.
그 뒤에도 그들은 몇 번 쌀을 가져갔다.
말로야 주겠노라고 했으나 갚는 일이라곤 없었다.
노파의 쌀을 갚긴 고사하고 그들은 줄곧 겉보리를 절구에 찧어 먹었다. 많은 수량이라면 방앗간에 가 찧어 오겠는데 한 말이나 두 말 밖에 안 되는 양으로선 방아에 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겉보리 한 말로선 죽 밖에 돌아가지 않았다. 성한 사람보다 부상자들이 안됐다는 생각을 노파는 줄곧 했다.
눈이 약간 내리다 그친 날 저물 무렵이었다.
소같은 여인네가 노인 방에 들어와 창자가 끊기는 울음을 숨겨가며 울었다. 다른 기관에서 일보던 남편이 며칠 전에 죽고 또 뒤를 이어 일선에 나간 아들이 전사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모두 한테들 모여 살자구 했더니 이렇게 됐수다. 어머니 쌀이랑 떠낸 것두 그래서 한 짓이우다.』
이렇게 하던 여인네도 하루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소같이 일하던 여인네가 없어지고 보니 웃채 사람들의 곤란이란 말이 못되었다. 웃채 사람들은 여인네가 폭격에 죽은 모양이라고 서로들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 날도 쌀 배급을 받아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상자들이 날마다 둘 셋 죽어 나간다고 했다. 노파는 부상자들이 죽어 나간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이불 속이니 양복장 속이니 자리 밑에 갈아 숨겨논 쌀을 내줬더며 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작은 아들이 어디 가서 그 지경이 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줄곧 이러한 날만 계속되었다. 날씨는 왜 그렇게도 매운지 땅이 딱딱 들어 붙고 뺨은 모래에 쌔리우는 듯 아팠다. 공산당들이 들어온 뒤로는 이런 추위가 연이어 들었다. 겉보리 찧는 절굿공이가 얼음 기둥이 되기가 일쑤였다.
그러던 추위도 세월의 흐름을 타고 가 버렸다. 버들에 잎이 돋고 개나리가 노오랗게 내미는 따사로운 계절이 왔다. 양력 3월 12일이라고 했다. 누비 군복이 노파 방으로 내려오더니 피난을 떠나자는 것이었다.
쌀 뒤지러 오는 줄 알고 떨던 노파는
『피난을?』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폭격 때문에 피난을 가야 해요』
노파는 암담했다.
『평양으루 갑시다. 사위랑 있는데 못 가구 왜 반동질만 하오』
노파는 6.25때 그들이 밀려가면서 많은 사람을 학살했다는 소문을 듣기도 하고 작은 아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 손에 죽은 시체를 보기도 했다.
안 간다고 하면 누비 군복은 자기를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느니 보다 고생스럽더라두 평양가서 그것들을 만나보는 게 낫지』
『며칠이나 걸림 평양까지 갈까요?』
『사나달 가믄 되지요. 노인은 부상자들과 같이 달구지를 타구 가시오』
『이북 땅은 폭격으로 말이 아니라는데 다들 무사할까요?』
『그런 염려는 하지두 마오. 다 살아 있소. 놈들이 하늘에서 아무리 때려 봤댔자 소용 없어. 방공호가 얼마나 튼튼하다구. 황백수 동무랑은 괜찮게 있을 걸』
『높은 사람들은 안전한테 두는가요?』
『그럼요. 그런 동무들의 생명은 국가에서 보호하니까요. 그런 동무들이 죽는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거든요』
노파는 사위가 황백수란 자보다 나은 자린지 못한 자린지는 모르나 장사치의 말이 맞는다면 자기 사위도 상당한 자리에 있으리라고 믿었다.
노파는 정채혜가 떠날 때와 같은 <룩자크>를 만들어 쌀이랑 옷감이랑 중요한 것을 넣어 가지고 가리라는 생각을 했다. 달구지가 좁으면 깔고 앉아도 무관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불 한 채를 뜯었다. 호청과 안과 거죽으로 <룩자크> 세 개를 만들었다. 누비 군복이 이것을 보더니 자기들도 이불 호청을 뜯어 가지고 와서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을 가르치곤 해서 십 여 개의 <룩자크>를 만들었다.
소가 울고 말이 외치고 달구지가 구르고 사람이 웅성거리고 난리 중에도 다시없는 난리가 아닐 수 없었다.
밤이 밝으려면 아직 멀건만 떠나는 것이었다. 누비 군복이 노파더러 달구지에 먼저 타라고 했다. 놔는 그의 말대로 쫓았다. 노파가 탄 달구지엔 부상자가 열한 명이 탔다. 다른 달구지에도 그만큼 탔다.
『짐을…… 짐을 실어야 하잖아요?』
달구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노파는 소리를 치며 <룩자크>쪽에 양팔을 벌려 들었다.
『짐은 우리 동무들이 싣구 뒤를 쫓을테니 먼저 떠나시오. 거기 어디 짐 실을 데 있어요?』
누비 군복이 목청을 높였다. 누비 군복의 말을 신용해서가 아니라 달구지가 구르기 시작하니 노파는 그냥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미아리 고개를 넘으니까 동이 터서 훤해 왔다.
길 위엔 달구지, 사람, 소, 말, 길이 미어지게 같은 방향으로 쏠리고 있었다.
『젊은 양반 이렇게 가면 평양까지 며칠이나 걸릴 것 같소?』
부상자의 한 사람에게 노파가 물었다.
『평양까지요? 글쎄요. 폭격 땜에 길에서 죽겠는지 알 수 없어요』
노파는 그럴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다가 죽으면 아무도 못 보고 말지 않는가. 숫제 집에 돌아가 큰 아들을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 자들이 밀려가고 나면 피난 내려간 사람들이 모두 서울로 올라올 것이 아닌가. 9.28때만 보더라도 알만한 일이다. 노파는 달구지꾼에게 소리를 쳐 소를 세웠다.
노파가 내리는 것을 아무도 막잡지 않았다. 달구지꾼은 가벼워지니 말이 없을 것이고 부상자들은 자리가 넓어지니 놓을 것이었다. 노파는 가던 길을 되돌아섰다. 그러다간 달구지 가는 쪽을 향해 다시 돌아섰다.
『죽지 않고 가 내기만 함 그것들을 보겠건만…….』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달구지 가는 쪽으로 몇 발 다시 옮겨 놓기도 했다. 그러나 노파는 끝내 갈 수가 없었다. 노파가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땐 날이 채 밝지 않았다. 노파는 걸음을 급히 하여 세 개의 <룩자크>가 놓였을 아랫채 마루로 갔다. 세 개가 몽땅 없을 뿐 아니라 떠나면서 자물쇠를 잠가둔 방에까지 무엇들이 들어가서 장롱이니 양복장이니 하는 것들을 뒤지느라고 발을 들여놀 데가 없이 만들어 놓았다.
『날도둑 놈들. 불한당 놈들. 도둑질 하려구 나를 떠나자구 했구나』
노파는 이런 소리를 마구 중얼거리며 방안 그득히 널려 있는 것들 위에 앉아 엉엉 울었다.
그 사이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나 아무튼 날이 활짝 밝은 것만은 분명했다. 웃채 마당에서 사람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파는 눈물도 씻지 않고 열린 채 있는 미닫이로 내다보았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모두 생소한 얼굴이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온통 야단법석을 쳤다.
벌써 짊어지고 가는 장정도 있고 이고 가는 여인네도 있었다. 모두 제 것 모양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노파가
『왜들 이래요? 남의 집에 왜들 함부로 들어서 이러는 거요?』
소리를 쳤으나 아무도 깜뜰해 하지 않았다.
『우린 우리 걸 가져 가요. 그 놈들이 빼앗아온 걸 찾아가는 거요』
책상이니 침대니 하는 것들을 짊어지고 나가며 점잖이 말하는 축도 있고
『공산당 놈들이 훔쳐온 걸 가져가는데 노인이 무슨 상관이오? 공산당을 쓸어 넣구 한 몫 보구두 부족해서 그래요?』
대드는 축도 있었다.
소금, 고추장, 된장, 간장, 책상, 이부자리, 담요, 침대, 독, 의류 등을 모조리 날라가고 나서도 행여 무엇이 더 없나 해서 몇 곱씩 쓸어 들어 뒤졌다.
그러더니 누가 먼저 알아냈던지 그들이 파고 넣은 움 속에 달려들어 그 속의 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나오고 재봉틀이 나오고 선풍기 전화기 트렁크 망원경 사진기 궤짝 할 것 없이 막 나왔다.
이렇게 막 나오고 있을 때 동회 청년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이어 같은 또래의 청년 7,8명이 우르르 쓸어 들었다. 목총을 가진 자도 있고 곤봉을 든 자도 있었다.
『왜들 이러는 거요. 다들 놔더요. 우리는 청년단이요. 가져간 것들을 모조리 갖다 놓아요. 갖다 놓지 않음 재미없어』
청년단이란 말에 다들 겁이 난 모양이었다.
안고 들고 이고 지고 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에 바빴다.
『가져간 것들을 청년단에 갖다 놔. 안 가져옴 재미없을 줄 알아. 인제 가택수색을 할 테니까 그 전에 갖다 놔요』
꽁무니를 빼는 뒤통수에다 대고 한 청년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공산당들이 파고 넣은 움 속의 것들이 다 나왔다. 산더미만한 무더기에 청년들은 짚을 덮어놓고 다른 데를 더 뒤지기 시작했다.
노파네 것까지도 죄다 밖으로 나왔다. 장롱, 양복장, 찬장, 며느리의 것 아들의 것 할 것 없이 다 나왔다. 그것이 또 집더미만 했다.
『아니 젊은 양반들 이건 우리 건데 왜 가져 갈려구 그러시오?』
노파가 이런 말을 해가며 말리니까 동회 청년이
『왜 이 늙은이가 이래? 늙은이가 부역행윌 했으니까 이건 다 역산이야. 집두 역산이야』했다.
노파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그저 젖은 눈을 껌벅껌벅 하고 있었다.
산더미만한 것과 집더미만한 것을 청년단에서 다 실어 갔다. 노파도 끌려가서 진종일 심문을 받았다. 그들은 노파의 사위가 공산당이란 것도 알고 있고 노파가 공산당이 들어온 뒤에 그들에게 <룩자크>를 만들어 주고 쌀을 꾸어 주고 그들이 주는 밥을 먹은 것 그들에게『어머니』라고 불리운 것 등을 알고 있었다.
동회 청년이 알려준 것이라고 노파는 알고 있었다.
『자네가 그럴 수가 어찌 있느냐. 자네는 공산당의 앞잡이가 아니었더냐? 큰 아들네가 피난 내려 갔다는 것, 우리가 이북에서 월남했다는 것까지도 자네가 고해 바쳐서 날 괴롭히지 않았더냐?』
노파는 속으로 이런 말을 몇 십 번 되풀이하면서도 그냥 힐난을 당했다.
노파는 그 뒤에도 몇 군데에 끌려가서 문초를 당했다. 문초를 당하는 일도 진이 빠지는 일이지만 먼 거리를 오고 가고 하느라고 다리를 옮겨 놓을 수 없게 되어 갔다.
또 어디서 왔노라 하고 집을 뒤지는 사람들이 끊지 않고 달려들었다. 노파는 사람의 소리만 나면 기절을 하여 자빠질 지경이었다.
집이 커서 집안이 한없이 넓은 것도 질색할 노릇이었다. 그대로 셋방살이를 했더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걸 하고 뉘우치기도 했다. 집을 지을 때 크게 짓는 일이 좋아서 줄곧 뛰고 싶어 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노파는 집안에 무엇이 있으면 찾아내다가 없앴다.
무엇이 어디 남아 있지 않나 하고 찾아내기에 골몰했다. 무엇이 한 가지라도 나오면 몰리울 일이 겁이 났다. 곰곰히 생각하던 끝에 하루는 뒷곁 움 속에 소 같은 여인네가 숨겨둔 것들이 깜짝 생각났다.
아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 가만 내버려 둘까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노파는 반장이 거기를 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작년 9월 28일 저녁 무렵 반장은 유엔군이 들어 온 것을 알리러 왔다가 식구가 거기서 나오는 것을 목격했던 일을 생각해 냈다.
노파는 대문을 닫아걸고 뒷곁 움으로 갔다. 검불이 바싹해도 소스라쳤다.
뚜껑에 덮힌 흙을 긁다가도 노파는 그 소리에 또한 소스라치며 손을 멈추기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움 속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쌀, 참깨, 버선, 여자옷, 남자옷, 재봉틀, 흰실, 색실, 상보, 트렁크, 남비, 대야, 코트, 축음기, 우장옷, 유기그릇, 자개상, 병풍.
『이걸 어쩐담. 어디다 어떻게 내버린담』
노파는 누가 들을까봐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쌀과 참깨는 쥐가 날라간 자취가 보였다. 사람도 모르는 것이건만 쥐란 놈은 용케도 알아냈던 것이다.
『소 같은 년 같으니라구. 살아서 쓰구 먹지 못하면서 온통 걷어들여다 날 골탕을 먹이는구나』
노파는 죽은 사람을 욕하기가 안 되어 하면서도 이런 말을 하고야 말았다.
움에 오래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노파는 거기서 나와 그 속의 것들을 버릴 만한 곳을 찾았다.
버선과 옷들은 태워 버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쌀과 참깨는 변소에 넣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가 쌀과 참깨는 변소에 다 넣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깨만 넣고 쌀은 솥을 들어내고 고래 속에 깊이 넣어 두자고 마음을 먹었다.
당장 먹을 쌀이 없지 않은가. 쌀은 자기의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되니까 그렇게 해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축음기 유기그릇 대야 재봉틀 트렁크등을 처치할 곳을 찾았다.
움 구더이에 쓸어 넣고 덮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산당들이 파놓은 움을 살펴보았다. 그 속에 쓸어 넣고 움을 허물어뜨리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움은 대목이 가로 놓여서 노파의 힘으로 움찍 할 수가 없었다.
노파는 대문밖에 나가 살폈다. 누가 볼까 조심조심 돌아 다녔다. 버릴 만한 데라곤 없었다. 나무나 울창했으면 숲 속에 처넣을텐데 나무는 거진 베이고 약간 남은 것들도 아직 활짝 내돋지 않고 있었다.
노파는 밤이 어둡기를 기다려 움 속의 것들을 날라 내왔다. 모두 부엌에다 처들이고 참깨는 변소에 넣고 버선, 옷, 레코드, 양산, 우장옷 등은 아궁이에 때기로 했다. 재봉틀, 축음기, 유기대야, 트렁크는 위선 공산당들이 판 움에 갖다 넣었다. 그리고 노파는 아궁이에 넣을 것들을 집어넣고 불을 지폈다.
헝겊 타는 냄새가 유난히 코를 찔렀다. 내를 맡고 누가 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전신이 떨렸다.
높은 데 동그라니 올라앉은 집이어서 더 잘 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아궁이에 가뜩 쓸어 넣은 탓인지 잘 타지도 않았다. 레코드는 타는 놈도 있고 타지 않고 맹숭거리는 놈도 있었다. 양산은 헝겊만 타고 살은 그냥 남아 있었다. 우장옷 타는 내는 헝겊 타는 내보다 더 심했다. 고무 타는 내와 비슷했다.
노파는 자기가 움직이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부지깽이가 아궁이에 부딪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이튿날이 밝기 전에 노파는 움의 것들을 꺼냈으나 역시 처치할 데라곤 없었다. 다시 쓸어 넣었다. 트렁크만 남기고―― 트렁크는 노파의 것이었기 때문에 노파는 넣을 것을 넣은 뒤에 있는 힘을 다하여 움에 걸쳐 논 대목을 한 개라도 빼내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났다.
몇 시간을 애쓴 결과 노파는 대목 세 개를 빼내니까 움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약간 마음이 놓였다. 노파는 트렁크를 들고 방에 들어와 트렁크를 열었다. 딸에게 주려던 옷감이 그 속에도 들어있었다.
강낭콩 완두콩 씨도 들어 있었다. 강낭콩과 완두콩은 지난 가을 그 난리통에도 잊지 않고 받아 두었던 것이다. 아들과 딸은 유별나게도 강낭콩과 완두콩을 즐겼다.
노파는 외손녀의 사진을 들고 들여다보았다. 사진이 약간 웃었다.
『제 에미 어릴 때야. 꼭 그렇구나』
노파는 사람이라도 끌어안듯 사진을 와락 가슴에 갖다 안았다. 그러다가 다시 손에 쥐고 들여다보았다. 사진이 웃었다.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노파는 점점 딸과 외손녀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내사 이제 너희들을 다시 보겠느냐. 이북 땅은, 이북 땅은…… 폭격으로 말이 아니라는데 다아들 무사하기나 하냐. 기숙아, 병욱아, 병욱아, 기숙아, 병욱아…… 이북 땅은…….』
노파는 아들과 딸을 자꾸 불렀다. 누가 찾아와서 울러메며 어쩌랴 하는 불안도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몽롱히 깨닫고 노파는 광 속에 가서 호미를 찾았다.
강낭콩과 완두콩을 심자는 생각에서였다. 채마밭은 공산당들의 발과 마소에 밟혀 무척 굳었다. 노파는 호미로 땅을 찍어 파헤치며 콩씨를 심었다. 호미 끝에 찍히는 흙에서도 흙냄새는 훅훅 끼쳤다. 따사로운 햇빛은 내려 퍼붓고 바람이 훈훈히 쉬지 않았다.
콩씨를 심으면서 노파는 지난 여름 그 난리통에서도 완두꽃과 강낭콩 꽃이 피어 있던 광경을 생각한다. 강낭콩 꽃은 파랗고 완두꽃은 하이야 했다.
서로 엉키며 뻗어 올라가는 그것들은 마치 형제와도 같이 다정했다.
노파는 이런 생각을 자꾸 하고 있는 사이에 차츰 졸음 같은 것이 엄습해 오는 것을 깨닫는다. 앉았을 수가 없었다. 호미를 쥔 채 다사로운 흙 위에 누워 버렸다. 누가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노파의 집을 뒤지러 오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노파는 그런 것을 모르고 있다. 아들과 딸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북 땅은 폭격으로 말이 아니라는데 그것들이 무사하기나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멀어져 가기만 하는 것이다.
노파는 낙화가 마구 흩날리는 길에 마차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꽃잎이 깔린 길엔 말발굽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머니랑 같이 살던 집에서 내다보이는 앞산 중턱에 우뚝 올라 앉은 학교와 통하는 길인 것이다. 꽃이 질 무렵이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이 길엔 꽃잎이 마구 흩날렸던 것이다.
마차는 노파가 시집 올 때 탄 보교와 비슷했다.
최정희(崔貞熙: 1912-1990)
함남 단천 출생. 호는 담인(淡人). 여류 소설가. 숙명 여고를 거쳐 서울 중앙 보육학교 졸업. 1931년 <삼천리>사 기자 역임. 1935년 단편 {흉가(凶家)}로 문단에 등단함. 그는 여성 특유의 감각을 살려 치밀한 심리 묘사를 통한 자기 고백 내지 자기 폭로적인 분위기로써 독자들에게 감명을 준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인맥}, {지맥}, {천맥}, {녹색의 문}, {끝없는 낭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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