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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

82. 지맥

by 자한형 2022.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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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맥 -최정희

 

아무래도 나는 아이들 보는 데서 짐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설주는 그래도 내가 타이르고 달래고 하면 혹 그런가 보다고 곧이 듣는 일도 있겠지만 형주만은 고 약삭빠르고 눈치 빠른 것이 세간 전부를 뒤져 내놓고 서두르는 것을 보더라도 벌써 저희들한테 내가 서울 가서 아기인형과 소꿉놀이 장난감을 사 가지고 곧 돌아온다 한말이 거짓이라 알 것이고 그렇게 아노라면 그는 대개 어떤 슬픈 질문을 들이댈지 또는 그 질문에 얼마를 가슴 아파야 할지 모르므로 나는 미리 그런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 형주를 먼저 동생네 집에 데려다 두고 설주는 방 아랫목에 재워 놓고 세간 정리를 시작했다. 세간 정리라기 보다 과거 팔 년간의 내 생활의 기록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다 거둔대야 얼마 옷 되는 세간이었다. 고리짝 두어 개와 책상, 책들을 넣은 궤짝, 남편이 입던 옷, 아이들 옷, 내 옷가지가 들어있던 작은 농짝 한 개, 보꾸러미 몇 개, 김칫독, 장독 몇 개와 부엌에서 쓰던 약간의 그릇, ――이런 것들 외엔 다른 것이 없었다. 말하자면 대단히 너저부레한 것들이었다. 칠팔 년 동안을 나와 낯이 익고 내 손때 묻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도깨비 동물같이 버리고 떠날 것을 생각하면 또한 가슴이 죄어들고 손 끝까지 매시시해 지도록 전신에 힘이 탁 풀리지만 나는 그보다 더 소중하고 한 시간을 떼어 놓을 수 없는 아이들까지 버리고 가는 몸인 것을 생각하고 아쉬운 대로 내가 가지고 떠날 것 이외의 것은 전부 주섬주섬 싸고 동이고 한 후 동생한테 팔아버리도록 부탁한 김칫독, 장독, 항아리들, 부엌에서 쓰던 솥――이런 것들과 함께 마루에 들어내다 놓았다. 내가 떠난 후 팔든지 누구를 주든지 버리든지 나는 다시 거기에 관해서 생각지 않기로 결심하고――.

세간을 다 들어낸 방은 몹시 허성했다. 내 여장인 고리짝 한 개가 밝지 않은 전등 아래 유난히 댕그랗고, 아랫목에 자는 설주의 모양이 한결 호도도 해 보였다. 허리를 꼬부리고 벽을 향해 돌아누운 양이 매우 추운 듯해서 나는 헌 잡지, 신문, 휴지쪽들――짐을 꾸리고 난 뒤에 남은 모든 것들――을 한 아름 안고 부엌에 나가 한 단 넘어 남은 장작을 죄다 대놓고 불을 그었다. 쉽게 안달리던 장작이었건만 불쏘시개가 많은 탓인지 수월히 훨훨 붙으며 시뻘건 불길이 무서운 짐승의 혀끝 같이 널름거리는데 그것이 내 전신을 아궁이 속에 삼키려는 것 같아서 어떻게 무서웠던지 모른다. 솥의 물도 이내 끓어 번져서 소리와 불길이 함께 나를 위협했다. 나는 부지깽이를 집어던지고 허둥지둥 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마는 눈에 널름거리는 불길이 보이고 끓어 번지는 물소리가 여전히 귀에 들렸다.

내가 왜 간다구 했을까

나는 또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것은 결코 내가 처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동무의 동생의 친구인 형인 서울 기생 김연화 집에 침모겸 그 집 살림 전부를 맡아보기로 하고 한 달에 월급 십오 원씩에 결정하던 날부터 보름 넘어를 날마다 떠난다고 하면서 못 떠나고 하루에 몇 번씩 마음 속에 혼자 부르짖던 말이었다. 아이들의 자는 양에도 웃는 양에도 노는 양에도 대수롭지 않는 대화에도 어쨌든 나는 이런 작은 변화에까지 가슴이 금방 터지려는 화산같이 뒤틀리고 마음의 균형을 잃고 어릿광대 질을 해온 것이었다. 동무는 내게 남의 집살이를 가거니 생각 말고 내 생활의 재출발을 도모하는 좋은 기회로만 알면 그만 아니냐고 용기를 돋아 주었으나, 나는 도무지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세상이 두렵고 용기가 없었던지 모르겠다.

동경 M대학에 학적을 두었을 때는 나는 물론 문학을 해보려고 마음먹었다. 하늘에 피어 오르는 구름을 좋아하고 지평선을 넘어서 그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꿈 같은 세상에 언제고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스물도 못 되는 낭만적 처녀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과 이 학년 여름방학에 귀성했을 때 동무의 소개로 어느 독서회에서 죽은 남편 홍민규와 알게 되면서부터 문학보다 정치를 알고 사회를 아는 것이 긴급한 문제 같아서 나는 여름방학에 귀성한 채 다시 동경 건너가지 않고 홍민규라는 씩씩하고 건강하고 믿음직한 청년을 만나서 그에게 정치를 배우고 사회과학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 그래서 섹스피어, 톨스토이, 입센, 모파상을 제쳐놓고, 홍민규가 읽었다는 책이면 무엇이나,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읽으려 했고 또 읽었다. 의미를 통할 수 있어서 읽었던지 모르나 그 어려운 사회주의 이론, 노동조합 조직론 등의――어쨌든 그 시대의 가장 진보적 서적을 다는 몰라도 읽을 만큼 읽어서 누가 노동조합 문제를 말하고 사회주의 이론에 관해 운운하면 나는 얼른 알아들었고 또 몇 마디씩 참견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민규에게 큰 놀람이자 기쁨이었던 모양으로 그는 내가 동경 들어가는 것을 극력 말리곤 곧 나와 동의정 자기 하숙방에 적은 살림을 시작하자고 했다. 나는 물론 그의 말대로 학교에 안 갈 것과 그와 살림을 시작할 것을 승낙했다. 어머님의 반대나 남의 웃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이야 어떻게 되었든 그가 있음으로 기쁘고 그를 도와주는 것으로 유일의 즐거움을 삼을 수 있었음이다. 뒤를 이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재난――남편이 옥에 가고 남편의 아내가 찾아와서 해괴스레 굴고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고 생활곤란이 심하고――했으나 나는 낙망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았다. 세상이 모두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았다. 그러기에 남편이 그 아내와 정면 대결을 하고자 서울의 우리 적은 살림을 대구로 옮기자고 할 때도 나는 내가 가장 무서워하고 꺼리고 하는 그의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곧 남편의 의사를 좇았던 것이고, 대구에 가서의 파란곡절도 많았으나 나는 그가 죽지 않고 있는 날까진 그의 아내로 아이들의 행복된 어머니로서 당당히 살아왔다. 마는 남편이 금방 숨이 지면서부터 나는 세상에 가장 불행한 운명의 소유자인 것을 알았다. 남편이 죽던 날부터 나는 헌신짝 같이 비지발 없는 여자가 되었다. 세상의 도덕이 나를 버리고 인습이 나를 버리고 법규가 나를 버렸다. 남편이 살아서 그처럼 무섭고 싫어하던 큰 마누라는 당당히 남편 시체 앞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윽실득실 모여든 일가 친척들에게 아주 자긍스런 자세로 남편의 죽음을 혼자 설워하는 체 남편이 살아서 자기를 싫어한 것은 전연 내 탓이라 나를 조소하고 힐난을 했으나 나는 거기에 대꾸할 자격도 용기도 없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서 스무 날만에 남편의 부친이――즉 시아버지가 뇌빈혈로 돌아갔을 때도 그는 내가 혹시 넘겨보는가 싶었음인지 재산 전부를 자기 앞으로 넘겨 놓으며 호기를 피웠으나 나는 또한 아무런 말도 할 자격이 없음을 알았다. 그것도 그러려니와 조수와 같이 밀려드는 생활 위협을 면해 보려고 남편이 돌아간 후 두 해를 두고 직업을 구하려 했으나 그것 역시 남의 동록 없는 아내요 어머니라는 탓으로――다시 말하면 나를 증명해 주는 관청의 공증이 없는 까닭에 나는 보통학교 촉탁에서 학원 선생에서 회사 은행 사무원에서 다 거부를 당했다. 그런고로 내게는 팔 년 전 시꺼먼 남학생들과 한 교실에 글을 배우며 구름을 좋아하며 지평선 너머의 신비한 세상을 생각하던 꿈도, 자본론이니 노동조합 조직론이니 하는 어려운 책을 읽어가며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이 오고 내가 생각하는 즐거움이, 행복함이, 쉬이 올 것 같은 희망도, 모든 고난을 대항하던 용기도 다 없어졌다. 내게 옛날과 같은 무엇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와 능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는 그다지 아이들을 두고 떠난다는 사실이나 기생의 침모로 간다는 사실이 병적으로 싫고 무섭지 않았을 것이다.――어쩐지 나는 아이들을 쉬이 데려갈 것 같지 못하고 취직이 쉬이 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들고 기생집에서 기생의 뒤치닥거리 하는 초라한 내 꼴만이 눈 앞에 선할 뿐이었다.

밖에서 들어온 탓인지 방은 더 한층 휑―― 하니 넓고 높은 것 같고 방이 넓은 까닭에 설주의 누운 양이 한결 더 오똑했다. 나는 그 오똑한 양을 도저히 그저 볼 수 없으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들 앞에――눈물을 안 보이려던 내 신조가 그만 깨어지고 말았다. 아이의 이마며 뺨이며 엉덩이며를 전부 눈물 속에 더듬어 어루만져가며 나는 어린 아이 같이 엉엉 크게 울었다.

엄마 와 그러노?

설주는 벌컥 일어나 앉으며 눈이 둥그래졌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듯이,

아냐 지금 엄마가 불을 때서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래도 설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황소 눈 같이 벌려 뜨고 입을 쩍쩍 벌리며 눈물을 삼키는 내 얼굴을 말끔히 쳐다만 보는 것이었다.

설주야 자자 응

나는 또 한 마디 목메인 소리를 했다. 설주는 내 말에 대꾸하려고 안하고 여전히 내 표정을 살피다가,

울긴 왜, 불을 때서 그래

『…….

설주는 말이 없으나 어쩐지 눈에 눈물이 글썽해진 것 같았다.

설주, 엄마가 네 밤 자구 안 와두 잠자코 있어요 응

나는 그들에게 네 밤 자고 온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가슴 아파서 이렇게 말했더니 설주는 어떻게 알아들었던지,

정거장에 가 기다릴 테다.

하고 대답했다. 이것은 더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금방 정거장에 오돌오돌 떨고 섰는 그의 작은 형상이 보여서 그의 머리맡에 놓인 장난감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이나 울음을 잔줄군 후,

엄마가 과자랑 장난감이랑 많이 사올테니 정거장에두 나오지 말어요. , 정거장에 나갔다가 누가 붙잡아 가면 어떡해

하고 타이르듯 말한 즉,

엄마 참말 네 밤 자구 올래?

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인제 서울 가서 형이랑 너랑 데려 갈테야

은제? 네 밤 자구?

글세 엄마가 편지할 때까지 기다려 응

하마 엄마가 네 밤 자구 온닥칸 거 거짓말이구나

그래

나는 바른대로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

나 순이네 집에 안 있을란다.

?

순이 가스내가 고 아주 못됐다이까. 난 참말 안 잘라네

나는 목에 생선가시 걸린 것처럼 목을 길쭉이 빼 든 채 말이 없었다.

엄마 난 형아캉 있을 란다.

설주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어지간하면 제가 있기 원하는 대로 형주와 함께 있게 했으면 내 맘도 덜죄이고 좋으련만, 동생한테 형주 하나를 맡기는 것도 여러 번――오히려 설주를 맡기려는 순이네 집보다 더 고려를 하고 다시 한 것이다. 그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동생의 남편이 봄부터 보통학교 훈도를 아주 그만두고 몸져누운 것이 아무 날도 차도가 없으므로 집안에 경황이 없을 뿐만아니라 가세도 넉넉지 못하고 또 그 위에 시어머니가 있어서 형주까지도 순이네 집에 맡기려고 했는데 순이네 집 역시 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실직된 후로 그 아내인 보통학교 훈도의 월급 오십팔 원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형편이니 둘씩 맡길 수가 도저히 없었다.

설주 너 왜 간다구 그르더니 그래?

엄마가 네 밤 자구 온다카이 그랬지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묵묵히 앉아 있다가 몹시 낮을 목소리로 그러나 좀 위엄이 있게

너 서울 가는 거 안 좋아? 서울 가서 학교랑 댕기면 어떻게 좋을텐데 그래

서울 가면 보통학교 가나…… 엄마 참말이가?

그럼

그란데 순이 고 가스내가 나캉 형아캉은 보통학교 몬댕긴닥 하디

?

아부지 없어서 안 된닥카디라.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순이는 듣고 아마 무슨 척이 날 대면 설주를 골려 주노라고 한 모양인데 나는 이 비참한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또 몰랐다. 나는 그의 앞에 얼른 돌아앉아 그를 내 잔등에 업히라고 손짓만 했다. 그에게 내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함에서였다. 그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잔등에 덥썩 업혔다. 내가 왜 저를 업는지 그는 매우 궁금한 양이었으나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방안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자꾸만 얼굴이 달아오르고 전신이 화끈거려서 아이에게 씌우고 싸고 한 후 마당에 나갔다. 불을 땔 적에 안 보이던 흰 달이 마당 복판에 차게 떨고 싸르륵 싸르륵 울타리 수숫대 이파리를 거쳐서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아이 업은 내 우습광스런 그림자를 밟으며 마치 미친 사람과도 같이 말없이 장시간을 아래위를 거닐었다. 설주는 이러한 내 태도와 또 내가 저를 업어 주는 이유를 알고 싶다는 듯, 자못 의심스런 어조로,

엄마 와 나 업는기요

하고 물었다. 나는 이유를 바른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설주가 한 여러 말――순이네 집에 가 있고 싶잖다는 말, 아버지가 없어도 보통학교에 다니느냐는 말이 괴로워서 업었다고 안하고,

네가 업고 싶어서 업었다.

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설주는 궁금하던 것, 의심스럽던 것이 죄다 풀린 양으로 거기 대한 말은 다시 없고,

그람 춥은디 들어가자그마

하곤 내 잔등에 머리를 파묻으며 엎디어 버렸다. 방에 들어가더라도 그는 곧 누워서 잤으면야 문제없지만 그는 도 무슨 말을 할지 몰랐으므로 나는 여전히 걷고 있었다. 마당 복판의 하얀 달도 어느새 옆집 오동나무 엉성한 가지 너머에 희미해지고 난데없던 검은 구름이 갑자기 쭉 퍼졌다. 내 우습광스럽던 그림자도 없어지고 바람이 싸르륵 싸르륵 더 매서웠다. 설주는 더 춥고 또 어두운 밤이 싫었던지 더욱 잔등에 거머리같이 찰싹 들어 붙으며 방에 들어가자 했다.

설주는 방에 들어가 내려놓자 이내 잠이 스르르 들었다. 나도 한잠 자려고 그 옆에 그의 손목을 꼭 잡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아서 친정과 방안에 놓인 처량한 물건들――설주 머리맡에 장난감통과 가지런히 놓인――나 없는 사이에 입을 한 벌 옷과 웃목에 댕그란이 놓인 내 짐짝을 살피고 있으려니까, 시계가 네 시를 쳤다.

땡 땡 땡 땡!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 시간만 하면 떠나가야 할 시각! 비참한 최후를 가진 사람과도 같은 마음을 잔줄구며 사르시 일어나서 머리를 빗고 그 밖에 다른 준비를 한 후 설주를 깨웠다. 늦게 든 단잠이 곤 할 것인데 그는 겁결에 곤두박질 해 일어나며,

엄마 가나, 나두 정거장에 갈라네

하는 것이었으나, 정거장에 그를 떨어뜨리고 나 혼자 훌쩍 떠난다면 가는 나나 남아 있는 그나 피차에 못할 일이겠으므로,

순이네 집에 가 있으면 엄마가 정거장에 짐을 부치고 곧 돌아오겠다.

고 나는 이렇게 달래인 다음, 머리맡에 놓았던 한 벌 옷과 장난감 상자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양쪽 옆구리에 한 개씩 끼고 일어서서 허청허청 문 앞쪽을 걸었다. 여느 때 같으면 아무불평 없이 어른의 말 듣는 양이 오직 귀엽기만 할 텐데 엄마가 정거장에 짐을 부치고 돌아오려니 하고 고스란히 나가는 양을 나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달이 숨기자 곧 눈이 내리기 시작했던 모양으로 밖은 어느새 마당이 하얗게 눈이 한 벌 덮이어 있었다. 설주는 마루 아래 내려서서 흰 눈이 덮인 마당에 고향이발 같은 작은 발자국을 조롱조롱 지으며 살짝 문 밖으로 사라졌다. 나도 말이 없고 저도 말이 없었다. 저는 어째 한번 돌아다보지도 않고 그냥 가버렸는지 모르나 나는 몇 천번을 부르고 몇 만번을 부르고 싶은 것을, 아니 그보다도, 눈 위를 아장아장 걷는, 옷 보퉁이와 장난감 상자를 끼고 나가는 설주의 회색 맵시를 부둥켜안고 뒹굴고 싶었다.

 

정거장엔 동생과 순이 어머니가 벌서 나와 있었다. 동생은 나를 보자 이내 입을 비죽비죽 눈물이 글썽해지며 외면을 했다. 나는 그들――동생한테는 어제 저녁에 데려다 준 형주의 이야기가 듣고 싶고 순이 어머니한테는 금방 떠나간 설주의 이야기가 천 년 전 같이 궁금스러웠다. 마는 그저 서 있는 것도 자칫하면 울음이 폭발될 것 같아서 큰 숨을 여러 번 쉬며 눈 덮인 산, 아득한 저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라구, 호적등본을 사용해 보란 말이야

이것은 전에도 동무가 내게 한번 권해 보던 말이었다. , 서울에 있는 내 호적――아직 결혼 안한 처녀대로――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님의 딸로 그냥 있는 호적등본을 사용해서, 다시 말하면 처녀행세를 해서 직업을 구해 보라는 말인데 나는 두 해를 두고 생활난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집을 세울 것 없어요. 그깐 놈의 세상을 좀 속이구 살면 어때

속이구래두 잘 살 수 있다면 모르지만

위선 보통학교 촉탁이나 학원 선생을 하더래두 생활은 그대루 해 나갈 수 있잖어

언제까지?

하는 때까지 해 보지 뭐

안될 말이야. 그건 비극을 또 한 개 지어내는 것밖에 안 돼. 법률이 인정하지 않는다 치더래두 나는 이미 남의 아내였고 또 현재 당당한 어머닌데 어떻게

그게 고집이라는 거야. 제발 좀 그 고집을 집어치워요. 글쎄 그렇게 한다구 어머니가 못 될 거 어디 있수

고집이라면 고집일지 모르지만 아무리 살기 위해서의 한 개의 수단이라 치더래두 그것은 결국 내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되구 마니까. 혹 당신 말대루 그런 방법을 써서 생활난을 면한다구 하더래두 내 마음이 밥을 굶는 이상으로 괴롭다며 안 하는 게 오히려 낫지 않겠어

동무는 다시 말이 없고――. 경성행 열차가 꺼먼 연기를 뽑으며 들이 닿았다. 어느 때 어디서난 그렇지만 차가 닿자 여러 사람들은 매우 분주하게들 차에 올랐다. 나도 그 사람들 속에 그 사람들과 같이 분주히 차에 올랐다. 오르자 얼마 안 되어 차는 움직였다. 나는 곧 창에 덧창을 내려버렸다. 눈이 푹푹 내리는 날이 더욱 서글프기도 했지만 차창 밖에 전개되는 그 아득히 넓은 눈 세상에 고양이같이 작은 발자국을 지으며 가기 싫은 순이네 집에서 짐을 부치고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는 설주의 모양, 네 밤만 자면 엄마가 아기인형과 좋은 장난감을 사다주려니 하는 형주의 모양, 차가 움직이자, 어린애처럼 엉엉 울던 동생, 이러한 괴로운 그림자들이 어리었던 까닭이다.

서울엔 정오가 훨씬 넘어서 내렸다. 서울 하늘도 흐리고 서울에도 서글프게 눈이 퍼부었다. 나는 역 앞에서 인력거 한 대를 잡아타고 낙원정 XX번지 김연화 집을 찾기로 했다.

어딜 가시랍쇼?

나는 동무가 적어 주던 종이쪽을 주어 버리려다가――전에 어릴때 종종 거리에서 주소 적은 종이쪽을 들고 남의 집살이를 가는 허줄한 여자들이 그 행방을 묻던 일을 본 일이 있어서――나는 꼭 그 허줄히 보이던 여자들과도 같은 감이 있어서 쪽지는 내어 안주고 말로 일러주었다. 인력거꾼은 내 말이 떨어지자 속짐작이 있는 듯, 하얀 길을 껑충껑충 뛰기 시작하고――나는 흔들리는 인력거 안에 작게 뚫린 팬한 구멍으로 나를 열아홉까지 곱게 길러준 고향의 거리를 살피며 팔 년이란 세월이 짧지 않음을 알았다. 그 동안에 내게 일어난 변화보다도 고향의 거리는 활짝 변했었다. 내가 서울을 떠나던 때 없던 교통신호대가 거리 거리의 주지처럼 서 있고 불쑥불쑥 높이 웅장한 건축들이 휘황했다.――고향이 찬란하게 단장하는 사이에 나는 이렇게 처참한 꼴을 하고 고향에 돌아오는구나――.

혼자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데 인력거는 머물었다.

다 왔는뎁쇼

인력거에서 내린 나는 꼭 도둑질하려는 사람처럼 가슴을 두근거리며 김연화란 문패 붙은 대문 안에 머리를 약간 들이밀고 주인을 찾았지마는 주인 찾는 소리가 너무 작고 떨려서 내 자신도 그 소리가 내 소리 같지 않게 들렷으니까, 나는 다시 몇 번 역시 떨리는 소리로 그러나 좀 크게 불러 보았다. 그제야 안에서 작은 계집 아이가 중문을 빠끔히 열고 누구를 찾느냐고 묻는데 심부름하는 아이인 듯해 보였다.

너 이 댁에 있는 애냐?

네 그렇습니다.

아이는 영남 사투리로 매우 겸손하게 대답해 주었다. 나는 그 겸손한 태도보다 그 아이의 말씨가 반가웠다. 형주나 설주의 말소리를 듣는 듯 했다.

아가 이게 김연화씨 집이냐?

, 그른데 어디서 오싯는기요

쥔댁 안 계시냐?

네 엊저녁에 나가셨는디 안 들어오싯구마! 그런데 어디서 오싯는기요

나 대구서 왔어

아이교 대구서요? 정말 대구서 오싯는기요, 나두 대구서 왔는디요

아이는 몹시 반가운 양이었다.

대구서 어찌 오싯는기요

쥔댁이 뭐라구 말이 없든?

뭐 말인기요? 대구서 침모가 온다카니 안즉 안 왔구마

나야

?

계집애는 의아한 시선으로 내 전신을 훑어보고 난 뒤 위선 안으로 안내하더니 다시 돌아서서

참말인기요…… 아인상 싶구마

하고 또 물어보았다. 나는 대답 대신에 그에게 웃어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애가 안내하는 건넌방에 나는 작고 초라한 그 애의 이불인 듯 한 것과 반지그릇과 또 그 외에 허줄한 것들이 너저부레하게 널린 것을 두루 살피며 다못 얼마라도…… 다른 데 직업을 구하기까지는 그 을씨년스런 방에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고 마음이 쇳덩어리 같이 가라앉았다. 꼭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시골 일가집에 가서 집이그리워 잠을 못 이루고 일가집 낯설은 방과 벽과 천정들이 그저 서글프게만 생각되던 때보다 더한 심정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김연화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귀를 대문 밖에 기울기를 잊지 않았다. 바람에 대문이 삐-꺽 할 때마다 몇 번을 우뚤우뚤 놀랐는지 모른다. 하나 그는 밤 열두 시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문 열어라

바람소리와 함께 들리는 갈갈이 찢긴 음성, 나는 그것이 확실히 김연화의 소리라 알았을 때 얼마나 낙망을 했던지 소리를 들어서 그의 성품을 알고 교양을 알았음에서였다. 그가 제 방에 들어가기까지 나는 그 자에게 관한 일체를 귀로 알려고 노력을 했다. 그리하고 있는데

왔으면 건너올 거지…… 일루 건너오라구 해

라는 역시 찬 물을 끼얹는 듯한 싫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아마 계집애가 온 것을 이야기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가 건너오기 전에 건너갔다. 미닫이를 열자 고쟁이 바람으로 경대 앞에서 화장을 지우던 김연화는 나를 한번 힐끗 보자 다짜고짜로,

저 빌어먹을 년이 미쳤던가, 얌전한 사람 하나 얻어 보내랬더니 <하이칼랄>보냈구먼! 아이참 속상해 죽겠어

나는 세상에서 처음 받는 이 모욕에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러한 내 태도를 또한 어떻게 해석을 했던지,

아니 그래 남의 집 살이를 온 사람이 <히사시개밀>하구 야단이니…… 여보 당신 어디 부레먹겠소.하는 것이 아닌가. 동무가 내게 처음 해준 이야기를 들어보면――김연화는 기생은 기생이라도 요새 햇내기――까불고 모양내고 그저 아무런 비판 없이 웃음을 팔아 남자들의 돈만 빼어내려는 기생들과는 달라서 교양 있고, 춤 잘 추고 소리 잘하는 서울에서도 몇째 안 가는 고급기생으로 본래 심성이 좋을 뿐 아니라, 나이가 삼십 고개를 넘자니까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다 짐작할 수 있는 좋은 기생이라 했으나 너무도 교양――교양이란 말을 차마 붙일 수 없는 그의 말과 행동을 본다면 무엇이 고급하며 교양이 있으며 성품이 좋으며 세상을 아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원래 기생의 교양이란 그런 것이고 고급하다는 기생이 그렇고 성품 좋다는 기생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나 참 언어도단이 아니랄 수 없었다.

나는 개 곶감 먹은 입같이 입맛만 다시어질 뿐 말이 안 나와서 그야 뭐라든 말든 건넌방에 건너와 버리고 말았다. 날이 밝으면 곧 떠날 예산에서였다. 하나 밝는 아침을 기다려 정작 떠나려고 한즉 김연화는 제가 밤늦게 사내들한테 시달려서 오고 나면 자연 신경질이 되어지는 것이라 하며 제가 전날 저녁에 한 일을 뉘우치고 하므로 나는 그만 주저앉았는데, 그는 정말 제 말과 같이 사내들한테 밤늦게까지 시달려서 그러는진 모르나 어쨌든 내가 자기 집에 있는 동안 종종 예의 그 갈갈이 찢긴 음성에 무교양한 언사를 써가며 그것도 나한테 직접 하는 일은 없고, 행랑어멈이나 심부름하는 아이를 빙자해 가며 욕설을 퍼붓는 데는 웃어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 팔자가 기구한 년이라 부리는 년한테까지 눌리워 산다는 둥

―― 남의 집을 사는 꼴에 아니꼽게 책은 웬 책이며 책을 들구 앉으면 누가 크게 무서워 할 줄 아느냐는 둥

―― 옷이 됐으면 왜 재 손으로 못 건네다 주구 계집애 년만 시키는 거냐, 안방에 송장이 썩는다더냐, 똥이 들어 찼다더냐는 둥.

이 밖에도 그는 내가 심부름하는 아이를 아침마다 머리를 빗겨주고, 내버선을 줄여서 신기고 나와 한 자리에 재우고 하는 일등―― 모두 생선가시 같이 아플 정도였던 모양이니 내가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가는 마음이란 기생 김연화 앞에 밤낮 콩 볶이우듯 달달 볶이우는 어린 모양이 가엾고 또 그가 하던 말―― 아버지가 돈 십 원을 받고 보내온 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몇 백번 있었는지 모르나 기차 탈 돈이 없고 어떤 기차를 타는지 몰라서 매일같이 대구 하늘이 어디쯤 되나 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지내왔다는―― 말이 설웠던 까닭이고, 다린 옷이거나 새로 지은 옷이거나 내 손수 안방에 들고 가서 바쳐드리지 못한 것도 사흘이 멀다고 갈아들이는 사내가 자던 방이라 생각하면 그 방에 건너가기는 고사로 그런 방과 한 지붕 밑에 붙은 방에 사는 것이, 그의 옷을 매만지는 것이, 꺼림칙하고 큰 치욕 같아서 하루바삐 자리를 바꾸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렇다고 남의 일을 맡아 하는 이상 나는 정말―― 그가 매일같이 갈아입는―― 갑정 삼팔 모본단 <하부다이>이런 보드라운 등 속에 고쟁이 안까지 삼팔이나 명주를 받쳐입는 호사스런 옷치장을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해들이댔다. 본래 기생 옷이란 그런 것인지 모르나 어쨌든 아이들 옷과 마찬가지로 잘 더러워지는 것으로, 사내들과 껴안고 비벼대고 해서 회색이나 오동색 등의 옷은 매일 빨아 짓지 않는다 하더라도 꼬깃꼬깃 꾸겨져서 하루를 안 빼고 다려야 했고, 흰 옷은 매일 빨아도 술 먹은 사내들의 손 때는 좀 체 벗어 안져서 언제 빨든 삶아서 빨아야 했다. 이렇게 하느라고 나는 실상 책 한 권 바로 읽지를 못했다. 내가 바쁜 틈틈에 혹 책을 들었다면 그것은 책을 읽기 위해서라기보다, 피곤과 내 자신에 대한 환멸을 잊어 보자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결코 김연화를 골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차라리 내게 그러한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오죽 좋으랴. 너무나 나약한 나, 너무나 주접사니 없는 나, 그날그날 닥치는 생활에 얽매여 자신을 썩은 개고기처럼 비지발 없이 굴리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내 몸을 칼로 푹푹 찔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더구나 아이들의 꿈을 꾸고 난 이튿날이면 나는 완전히 전신의 맥을 읽고 시력까지 어지러워서 문창이 누렇게 씰룩거리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한 달 넘어를 똑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글쎄 괜히 속을 태우실 거 뭐란 말씀이예요

하늘이 몹시 푸르던 날―― 해 저물녘이었다. 이것은 내게 전부터 좋은 델 조처 못하고 왜 사서 고생이냐고, 화신상회 같은 데 여점원으로도 좋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으면 전남 부호―― 큰 자동차회사를 한다는 사람의 첩집에서 가정교사를 가도 좋지 않겠느냐고 두어번 권해 본 일이 있는 행랑어멈이 내가 김연화와 맞장구를 기어이 치고야 말던 때 다시 권해 보느라고 한 말이었다. 전 날 부호 자동차회사 주인집에 삼 년을 행랑을 살다가 딸 계집애 하나를 기생에 넣은 후 김연화가 소리와 춤이 이름났다는 말을 듣자 정말 그런 집 행랑을 산다면 딸 동기가 기생 김연화로부터 소리거나 춤이거나 배우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 자기가 삼 년이나 기분 좋게 살던 집을 나와서 김연화 집으로 옮아왔다는 이 행랑어멈은 사람이 도무지 무지하지 않고 또 마음씨도 좋고 알뜰하고―― 돈만 있다면 남부럽지 않게 사내나 자식이나 제 몸을 조히 거둬갈 여자로 그는 내가 김연화의 뒤치닥거리 하는 일을 안타까우리만치 걱정을 해서 며칠 전에도 김연화의 인력거가 한길에 사라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내게 전 주인 여자의 인품 좋은 것과 또 자기가 내 사정을 종종 가는 때마다 그 주인 여자에게 이야길 하는 까닭에 그 전남 부호의 첩이라는 여자가 내게 대단한 호의와 동정을 가지고 가정교사라기보다 자기와 동무 삼아 같이 와 있자고 한다는 말까지 했으나, 나는 하루바삐 아이들 데려올 조처를 하는 것이 문제지, 내 편리를 돌봐서 자리를 옮길 마음은 없노라고 말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하나 김연화에게 당장 나갈 것을 선언한 이상―― 제가 데려들이는 사나이들과 내가 눈조화질 친다는 데는 견딜 수 없는 일이어서 그렇지 않아도 김연화와 맞장구 질 하는 때부터 나는 행랑어멈의 하던 말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여자 말이예요. 그 영애 어머니 이야기하던 집 말이예요.

내 쪽에서 먼저 그 말을 끄집어냈다.

! 참 좋아요, 마음씨가 꼭 침모아씨 비슷하다니까요, 제발 좀 가세요, 지금이래두 가신다면 제가 가 알아보구 오죠. 가신다면 여북 좋아하실까. 참 가엾어요. 먼젓 남편한테 난 애가 못 잊혀서 늘 우시군 하는데 볼수가 없어요.

마음 어진 어멈은 진실로 자기 일같이 내 사정이나 그먼젓 쥔 여자의 사정을 살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몇 살이나 됐는데―― 본 남편은 어떻게 됐기에?

글쎄요. 자세한 건 모르구요. 본 남편이 있기는 한가부드군요, 쥔 영감 육춘 아우가 거게 와서 있는데 그 사람 말을 들으면 본 남편이, 지금 영감이 참 색시가 눈에 들어하는 눈치를 알아채군 슬그머니 어디 피해 줬드라나요. 그리구 돈을 수백 원 받아 먹었다구 그러는데, 당자의 말은 남편이 어딜 갔다구 해요. 어쨌든 변변찮은 사낸 모양이드군요. 그 맘 존 솜씨에 뿌리치구 떠나 올 적엔. 접대두 침모 아씨 얘길 했더니 참 안 됐다구 하면서 애들이 얼마나 보구 싶으랴구, 그러는군요. 웬만하시면 애기들까지 데려다 같이 있으랄지두 몰라요. 영감만 말을 들으면야. 당장 그러라구 할 거예요. 그 아씨두 글재주가 있나 부든데요. 늘 책을 보구 그러세요

영감이란 이는 늘 집에 있는가요?

아뇨. 분주해서 집에 있는 때가 적어요. 늘 어디루 댕겨 오시드군요. 식구라군 얼마 안되죠. 영감 육춘 아우 양반하구 큰 마누라 아들하구 쥔 아씨뿐이죠. 영감 육춘 아우란 양반이 집안 일을 전부 맡아 본대요. 아이들 가르칠 사람을 여러 사람이 청을 해 왔는데 영감이 사내들은 마단대나요

나는 행랑어멈의 말을 들어서도 그 전라도 부호의 첩이란 여자의 생활 윤곽을 대강 짐작할 수가 있었으므로 더 다른 것을 캐묻지 않고 또 저녁이 자꾸 늦어지는 까닭에 물을 여가도 없었지만―― 행랑어멈을 시켜서 청진정에 있는 그 집에 보내오기로 했다.

어멈은 갔다 얼마 안 되어 한 장의 봉투편지를 들고 왔다.

―― 영애어멈한테 말씀을 듣고 벌써부터 한번 찾아가 뵙고 싶었습니다마는 이럭저럭 오늘까지 미루었습니다. 지금부터래두 누추한 제 집이오나 와 계신다면 다행히겠나이다――.

매우 간단하나 요령 있게 잘 쓴 편지였다. 나는 이 고마운 편지에 뭉쳤던 불안이 그만 사라지고, 미지의 동무를 한시 급히 만나고 싶은 마음이 불편듯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곧 영애어멈의 뒤를 따라 저물은 저녁 길을 걸어 청진정 그 집에를 갔다. 가면서 수없이 그 여자에게 관한 것을 생각하고 상상했다.

―― 가 본즉 그 여자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편지보다도 더 요령 있고 영애어멈의 이야기 보다도 고운 여자였다. 이름은 부용이라 하는데 용모와 자태에 맞는 이름이었다. 하나 그 고운 몸과 마음에 영애어멈이 이야기한 이상의 쓸개보다 더 쓰거운 슬픔이 깃들인 것을 나는 그 집에 가서 한 댓새 되던 날―― 눈비가 줄줄 내리는 오후에 알아내었다.

부용은 아무 말 없이 내게 그림 한 장을 쥐어 주곤 눈물이 글썽해지는 것이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밀레의 만종도 또 어느 화가가 잘 그린 솜씨의 그림이 아닌 도화용지에 아무렇게나 그린 서투른 그림이었다. 흰 도화용지에 크레용으로 쭉쭉 가로 세로 갈긴 검정 비행기와 또 그보다 더 시꺼먼, 비행기 아래의 대포를 자꾸만 들여다보며, 이모저모 뜯어보며, 부용이가 내게 그것을 보여준 의미를 알아내려고 무한히 애를 썼으나 아무리 봐야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다. 이게 뭐냐고 얼른 물어보아도 좋을 것이었으나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지으며 쥐어준 그림이길래, 나도 거기서 그와 똑같지는 못하더라도 그가 왜 슬퍼하는 까닭쯤은 알아내야 할 것 같아서 도화지를 몇 십 번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자꾸만 그렇게 들여다 보고 있으니까, 부용은 또 한 가지 내 마음을 더 의아스럽게 할 것을 내어주었다. 나는 진실로 이 여자는 못 잊을 기억을 가진 것이라고 이렇게 단정을 해버린 후 그가 주는 둘째 번의 ―― 봉투를 받아 읽었다. 그림과 같이 서툴고 또 말을 붙여 읽을 수 없는 글이었는데 떠듬떠듬 겨우 붙여서 끝까지 읽어본즉 그것은 내가 상상하고 예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내용을 가진 글이고 또 그림이었다. 그러나 가장 슬픈 글이고 슬픈 그림이었다. 베르테르의 슬픔보다―― 그것과는 아주 다른 의미에서의 큰 비극을 지닌 글과 그림이었다. 나는 부용에게 무엇이라 할 말이 없어서 묵묵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을 부용을 내 무릎 위에 마구 엎드려,

형 나는 어쩌면 좋아요하고 울어버렸다. 정말 어쨌으면 좋을지 알 바를 모를 일이었다. 어쨌으면 좋겠느냐고 흑흑 느껴가며 마구 우는 부용이도 한없이 슬프고, 또 비행기와 대포를 그려놓고―― 그것과 함께 어머니한테 보내는 슬픈 편지―― 아버지의 첩을 대포로 쏘아 죽이고 비행기를 타고 어머니한테로 빨리 가고 싶다는 보통학교 육 학년생인 열 세 살 먹은 부용의 남편의 아들 아이의 글과 그림도 나는 똑같이 슬펐던 까닭이다.

인제 하는 수 없잖아. 운명이거니하구 살밖에 없지부용은 내가 이렇게 말하자 내 무릎에서 벌컥 일어나 아주 얼굴을 바싹 치켜들고 그 검실검실한 눈에 눈물을 흠뻑 담은 채로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모두 내 죄예요. 내가 잘못했어요. 정말 대포루 쏴 죽일 년이예요. 아침에 걔 방을 좀 치워 주구 책상 정리를 해주려니까 글쎄 그 편지가 책상 속에서 뚝 떨어지는군요. 다른 데 하는 거라면야 볼 리 있어요. 제 어미한테 하는 거라 떼 봤더니 글쎄 그렇군요. 난 어떡하면 좋아요. 그것두 지난 밤에 영선이 꿈만 안 꾸었더면 걔 방에 들어두 안 갈텐데 밤새두록 영선일 안구 뺨을 맞추구 부비구 껴안구 하니 이건 도무지 죽겠군요. 추운데 뒷곁으루 앞마당으루 미친 것처럼 서성거리다가 걔한테라두 잘 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겠죠. 그래서 뛰어 들어가 방을 쓸구 책상을 치운다구 한 노릇이 그렇게 됐어요. 난 죽어야 해, 죽는 수 밖에 없어요.

영선이란 건 누구예요

영선이요, 영선이요, 영선이가 시굴 있어요

부용은 목이 메어 몇 번을 꺽꺽거리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는 그가 누구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그의 태도와 표정으로써 넉넉히 영선이란 아이가 부용이가 시골 두고 온 자기가 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미리 영애어멈 말도 들었으려니와 내가 아이를 낳아 봤고 또 아이를 길러 봤고, 그 아이들을 떼어놓아 보기 때문이었다.

데려다 같이 있을 순 없어요? 몇 살인데?

다섯 살이라우. 어떻게 데려와요. 못 데려와요. 보구 싶어서 잠깐 뵈달래두 안 뵈주는걸요―― 지난 가을에두 하두 미칠것 같애 시굴 내려 갔댔지요. 열흘이나 사람을 사이에 넣어서 앨 좀 보게 해 달래두 안 듣는군요. 나중엔 염치를 버리구 내가 그 집엘 갔군요. 그랬더니 마침 아이 아부진 없구 아이 할머니와 세 예편네가 있는데 저 할머니가 문안에 들어서게나 하겠어요. 그러는데두 막 뛰어 들어가 저 할머니 앞에서 뭐라구 지껄이는 아이를 달려들어 안았지요. 그런데 이 놈의 아이가 글쎄 일 년이 겨우 넘었는데 나를 몰라 보구 내가 암만 눈물을 닦고 정색을 하며 내가 엄마야 내가 엄마야 해두 울면서 저 할머니한테루마 가는군요. 저 할머닌 아이가 그러니까 더 야단스레 무슨 염치로 왔느냐, 아이를 아주 죽이려 왔느냐구 소리소리 지르며 벌벌 떠는군요. 글쎄 왜 그래요. 그놈의 아이가 왜 제 에미를 몰라 본단 말예요. 아이구

부용은 다시 방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갈 순 없어?

아이 아버지가 잘못 했다매

부용은 벌떡 일어나며 이렇게 외쳤다. 그리고 다시 계속해서

내가 죽일 년이예요. 내가 죽일 년이예요. 곤란을 참을 줄 몰라서 그랬어요. 돈만 있으면 사는 줄 알구 그랬어요. 돈이 무슨 필요가 있는 거예요. 내겐 영선이 밖에 없어요. 아무 것두 없어요. 다 없어요. 이 지옥 같은 생활이 내게 왜 있는 거예요. 사랑하지두 않는 사람을 왜 따라왔을까. 난 참말 이 생활이 지긋지긋 해요. 모두가 거짓 뿐예요.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거짓을 쌓아가는 것 밖에 없어요. 그러게 나는 대포루 쏘아 죽여두 싸요. 걔가 잘 봤어요. 걘 낵 진정 사랑해 본 적이 없구려. 밥을 안 먹구 학교에 가두 가슴 아파 본 일이 없구. 걔가 병들어 앓을 때두 아이 앓는 것은 둘째루 걔가 죽으면 내가 잘못 서둘러서 죽였다구 하면 어쩌나, 그러면서두 오히려 걔가 죽기나 했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니 죽일 년이 아니구 뭐겠어요. 걜 사랑하구 걔 장래를 위한다구 하는건 다 거짓말이예요. 한 구석엔 언제나 걜 미워하는 마음이 늘 꿈틀거리구 있어요. 그 맘을 없앨려구 끔찍이 노력해두 그게 안 돼요. 다른 아이라면 사랑할 수 있을 것두 같은데 걔만은 그리 안되는군요. 내가 낳지 않았더래두 사랑하는 사람의 자식이면 그렇지두 않을 것 같애요. 영선일 대신해 걜 사랑해 보려구 그렇게 앨 쓰건만 안 되는군요. 시켜볼려구 생각두 했지만 결국 거짓을 더 하게 되는데 되구 말겠기에 사람을 구하기루 한 거랍니다. , 난 어쩌면 좋수. 이 공허한 마음을 뭣으로 챌 수 있을지…… 우리 영선이두 그 지금 있는 여자가 내가 걜 미워하는 것처럼 미워할까…….

부용은 말을 이을 수 없이 입에 경련이 생겼다. 루소의 참회록을 다 읽던 날보다 더한 긴장과 흥분에서 나는 그의 아픈 가슴과 경련이 더 심해가는 슬픈 얼굴을 쳐다보며 여기에도 한 개의 비극이 있었댔구나 하고 부르짖었다. 너무나 큰 비극임에 틀림이 없었다. 오래지 않아서 그는 아이를 낳아야 할 어머니로 배가 뭣봉오리같이 불룩해 있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아이를 얼마 안 있어 낳을 참이었다.

, 저하구 삽시다. 전 이 집을 뛰쳐나가겠어요. 형을 그 - 연 오시게 한 것두 그래서였어요

나는 이 급작스런 문제의 제출에 어떤 답안을 내려야 할지 어리벙벙했다. 얼른 생각하면 하루라도 견디어 있을 수 없을 듯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는 수 없이 그 생활을 계속해야 할 것 같고-. 어쨌든 나는 부용을 위해서 내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이 생각되었다. 아름다운 그 마음 속에 뿌리박은 아픔을 파 내주고 싶었다. 하난 아무리 해야 내 힘과 내 능력으로선 어떻게 하는 재주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아이가 낳기를 기달려서 아이를 기르고 아이가 자라는 걸 보면서 사는 수 밖에 없을 거야이것은 어느 날 그의 죽은 듯이 조용하고 커다란 방에서 내가 그에게 한 말이었으나 그와 나는 둘이서 몇 시간을 모든 소설에 나타난 슬픈 운명을 가진 여주인공을 이야기하고 또 그 밖에 내가 아는 수없이 많은 불우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나서 한 말이었다.

그러다가 죽으란 말이군요

중등교육을 받았고 또 자기의 과거를 뉘우칠 줄 알고 세상에서 가장 아픈-아이를 떠나는 괴롬을 받고 그리고도 남보다 더한 쓰린 생활을 하고 책을 많이 읽는 그는 나 이상으로 자기 앞에 벌어진 비극을 수습 못할 것을 잘 알면서도 이렇게 한 마디 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가 너무 세상을 잘 알기 때문에 하는 말 이거니 들어버리고 더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꾸가 없더라도 그는 또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 둘이는 십 년지기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하나 사이가 가까워가면 갈수록 괴로울 뿐이었다. 나는 그의 마음의 아픔이 커가는 것을 보는 때문이고 그는 또 해결지을 수 없는 생활문제, 아이들의 입학문제를 잘 알고 있는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이 사람하구 갈라지면서 얘는 길러 줄테니 애 양육빌 달라면…….

부용은 하루 어느 날은 또 이런 새 문제를 끄집어냈다. 아주 큰 발견이나 한 듯 벌떡 일어나 앉으며 외쳤다. 그럴 법도 한 일이었다. 그는 나를 보아서도 그러려니와 자기의 능력을 알고 또 여자가 세상을 혼자 살아간다는 사실, 더구나 아이까지 있고서는 어렵다는 것을 무척 잘 알고 있는 까닭에 현재 남편과 갈라질 때 돈만 얼마 타낼 수 있다면 그에서 다행한 일은 또 없을지 모를 것이다. 하나 그는 일분도 안 돼서 다시 시무룩해지며,

안 될 거야, 자기가 싫다면 몰라두…… 전에 큰 마누란 위자료를 줘서 보낼려구 했지만…… 안 되지 안 되. 밖에 못 나가게 지키느라구 육촌 아울 갖다뒀는데……가정교사두 남잔 안 된다구 했는데…….

하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아무 날도 아무런 해결을 못 지은 채 세월만 흘러서 나는 아이들 입학시켜야 할 시기가 닥쳐오고 부용은 뱃속의 아이가 커가고 했다.

 

그래서 몹시 초조하던 날―― 음력설을 지난 지도 훨씬 오랜 뒤였다. 나는 기어이 이상훈을 찾기로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남편의 옛 동지들을 생각해 봤으나 그 사람들의 거처를 알 바 없었고 또 그들은 현재 나를 도와 줄 만한 열과 힘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정말 그들의 전부가 그 많던 열과 힘의 전부를 가버린 시대와 함께 흘려 버리고 오직 꺼풀뿐인 몸뚱이 한 개를 주체 못해서 주린 개처럼 허둥지둥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찾아서는 안 될 상훈을 찾기로 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를 잘 모른다. 전년 가을에 꼭 한번 남편이 돌아간 것을 위문해서 편지 온 일이 있고서는 전혀 소식 없이 지내왔다. 생각하면 내가 상훈을 찾는다는 것은 크게 거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학소녀이던 동경시대―― 세익스피어, 입센을 읽을 때 내 구름같이 피어나는 공상을 곱게 받아 주던 그를 나는 여름방학에 귀향한 후 이래로 살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을 죽이고 그리고 온갖 풍파를 겼느라고 편지 한 장 없이 소식 한번 전한 일 없이 팔 년이란 긴 세월을 지내왔던 것이다. 작년 가을에 한 편지에도 회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를 그 동안 아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나는 그이 까닭에 외로워하고 멍청해서 시야의 촛점을 잃고 하염없이 앉아 있는 일도 읶긴 했지마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남편이 살아있는 까닭에 그를 생각지 말자고 했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남편이 죽은 까닭에 더욱 그를 생각지 말자던 사람이다.

내가 해 저물녘 길을 미끄러지며 찾아낸 명치정 구십팔 번지는 <고마도리>라는 찻집이었다. 년 전에 한 편지에 다방을 한다는 이야긴 없었지만 명치정 거리란 데가 다방 거리고 또 그가 함직한 일인 것 같기도 하기에

나는 <고마도리>라는 다방 앞에서 얼마 망설이지 않고 홀에 들어갔다. 들어서자 심부름 하는 사내 아이가 곧 가까이 오므로 나는 빈 테이블 한 자리를 잡아 앉은 후 상훈을 찾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상훈은 곧 나왔다. 듬성듬성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체격과 얼굴로 가까이 내 앞에 와서,

웬일이십니까?

역시 전과 다르지 않은 깊숙하게 검은 눈을 내 얼굴과 그리고 내 전신에 던지며 놀라는 기색도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앉으십시오. 변하지 않으셨군요

그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있었다.

나는 그 시선에 수없이 쏠리고 있는 것을 아이가 차를 갖다 놓아줄 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언제 오셨습니까?

벌써요. 한 두어 달 되나봐요

그런데 인제야 찾아줍니까

어디 계신걸 알아야지요

오늘은 어떻게 아시구…….

전에 언젠가 편지 하셨지요. 주소가 갈렸으면 어쩌나 하면서 찾아왔어요

편질 받긴 받으셨군요. 주소를 전혀 모르다가 어떤 동무가 알아다 줘서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디 계셔요?

동무 집에요

혼자요?

아이들은?

나는 그가 아이들 있는 것을 어떻게 알까, 그는 내 생활을 죄다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나를 생각하고 있음에설까, 그렇지 않으면 내게 복술 하지 위해설까. 나는 맘 속으로 혼자서 이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해보다가,

어떻게 애들 있는 걸 아셨어요?

하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는 한번 그 예의 독특하게 웃는 묵직한 웃음을 빙그레 웃은 다음,

왜 몰라요, 뭐든지 다 알구 있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쓰레기통 같이 지껍지한 내 생활을 그가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이 싫었다. 하나 한편으론 기쁘기도 했다. 어떻게 됐든간에 그가 무슨 심사에서였던지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무한히 기뻤다.

그럼 왜 가만히 계셨어요?

하지 않으려던 말이 불쑥 나와 버렸다. 그를 찾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그에게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으려 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을 자신했던 것인데 옛날과 똑같이 호수의 저 밑바닥까지 흔들어 놓는 그 음성과 산림 같이 깊숙한 눈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조산 꽃구경으로, 갈대밭이 우수수 하는 데를 숱한 가을 벌레들의 울음을 들으며 다니던 때에로 내 마음을 이끌고 말았다.

가만 안 있구 어떻게 합니까. 떠나간 사람을, 헌신짝 같이 버리구 간 사람을

그는 무슨 연극의 <세리프>외우듯 이렇게 중얼거리곤 허공에 시선을 굴리고 있었고,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숙인 채 내 구두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편지두 여러 번 했지요. 회답이 없길래 편치 않으신가 해서 처음엔 퍽 궁금했지요. 그러다가 소식을 알군 그저 가만 있기루 작정해서 팔 년을 꼬빡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불행히 됐단 말을 들었을 때 곧 뛰어가 보구 싶었지만, 경솔한 태도 같기에 그만 뒀지요. 지나간 이야긴 할 것 없구……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나는 고개만 들어 그를 쳐다볼 뿐으로 말은 못했다. 가장 옳다고 자신했던 과거의 내 생활 전체가 너무 무비판적이었던 것 같고 경박했던 것 같음을 그의 말을 듣는 사이에 알려졌다.

서울서 사시겠습니까?

그는 다시 물었다.

글쎄요

나는 내가 찾아 온 뜻을 이야기하려다가 그만 두고 간단히 이렇게 대답해 두었다. 나는 그이 앞에서 처참한 한 내 생활 전부를 이야기하기가 점점 더 두렵게 여겨졌다.

무슨 <플랜>이 있으면 이야기 하시오. 도와드린다구까진 못하지만 힘 자라는 대루…….

『…….

말 못할 사정이 있습니까?

아뇨.

그럼.

『…….

지금 계신 데가 동무 집이라지요

그는 내가 말 안 하는 뜻을 다른 데 두는 모양이었다. 혹시 개가라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가진 듯했다.

실례지만 정말 동무 집입니까?

정말입니다.

그럼 왜 혼자 그렇게 오래 와 계셔요

『…….

은영씨, 어떤 말씀이든 해주시면 어떻습니까. 지금 계신 데가 영구히 사실 집이 아닙니까?

그는 내가 추측하던 마음을 드러내 놓았다.

영구히 살 집이요?…… 아녜요. 다 아녜요

그럼 뭡니까? 왜 그리 달러지셨어요. 전엔 퍽 명랑했는데…….

그렇게 일러 놓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전엔 나는 종달새처럼 명랑하기도 했다. 어느 대 그는 내 조잘거리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간, 이름을 아주 종달새라구 짓구 말지-한 일도 있다. 그러면 나는 그의 황소같이 느리고 또 말이 적은 그를 복수하잔 마음에서 굼벵이라 별명을 지어주곤 했다. 그러던 일이 어제 같고 또 그리웠다.

굼벵일 아세요?

나는 참말, 어린애가 되어 바로 그를 굼벵이라고 불러보던 대와 같이 오히려 더 수줍은 소리로 그러나 매우 어리광스럽게 말을 했다. 내가 듣기에도 내게 이렇게 어린애 같은 데가 남아 있었던가 싶은 소리였다. 아마 일찍이 남편 앞에서도 이러한 소리와 또 마음을 가져 본 일이 없던 것 같다.

글쎄 그래 종달새지……가끔 잘 그렇게 조잘거리던 양반이 왜 그런가 말이요.

어떡해요, 달라지는 걸. 세월이 가구 나이를 먹구하면…….

다른 덴 조금두 안 달라졌어요, 그냥 그대루 있는데……맘두 그냥 있을 것 같애요

그냥 있을 리 있어요, 변하는 것이 원칙인데…….

원칙을 무시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잖아요

어떻게요

변했는데 변하지 않은 거루 보아지는 거

그건 뭐예요?

나는 이렇게 반문했으나 그의 말의 의미를 해득치 못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그를 전에나 똑같이 보는 마음도 말하자면 일종 원칙을 무시하는 마음의 소위가 아닌가 하는 것까지도 나는 생각해 봤다.

은영 씨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이 아름다운 거, 앞으로……영원히 그렇게 있을 거 말입니다.

<피닉스>던가요

<피닉스>지요. 내 맘 속에 영원히 안주할 <피닉스>입니다. 나는 이 <피닉스> 까닭에 외롭고 또 즐거울 수 있습니다.

전 그런 신비한 존재가 못 돼요

나는 또 내 신변에 눈을 돌렸던 까닭이다. 구중중한 현실이 내 앞에 큰 짐승처럼 가로 누워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던 까닭이다.

그건 상관 없겠지요. 은영 씨가 남편과 아이들과 유쾌히 살적에두 난 혼자서 생각하고 외로워하고 어느 때든지 내 앞에 나타날 때가 있으려니 하는 기적을 기다리구 있었으니까요

나는 겁이 덜컥 났다.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보는 때처럼 무서운 것이 없느니라고 사람들이 하던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나는 일찍이 이처럼 엄숙히 내 맘과 몸을 한테 떨게 하는 진실은 당해본 일이 없었다.

아녜요, 저를 옛날의 알던 동무로 알아주십시오. 저는 도무지 그런 말을 들을 자격두 없어요. 제가 얼마나 괴로운 형편에 있는가를 들어주십시오

나는 부르짖듯 애원하듯 그의 앞에 정말 정당한―― 내가 조금도 거리낌없다고 하는 자세―― 즉 설주와 형주의 어머니의 태도를 지은 후 나는 그를 찾을 때에 하려던 생활문제, 아이들 입적에 관한 문제 등 이야기를 전부 다 했다.

상훈은 이야기를 참말 조용히 반문이나 질문 한번 없이 말하자면 나와 다른 이야기하던 때와 똑 같이 태연히 듣고 나서,

내게 전부 맡겨 주십시오

역시 태연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감사하단 인사하기도 쑥스럽고 해서 다만 엄숙한 자세 그대로,

굼벵일 아세요

하던 때와는 아주 다르게 앉아만 있었다.

주솔 적어주시든지, 틈이 계시면 나와 주셔두 좋구요, 이층에 언제든지 있습니다.

나는 청진정 주소를 적어 놓고 그리고 틈 있는 대로 나와서 만날 것을 약속한 후 숙소에 돌아왔다. 숙소엔 동생한테서 편지가 와 있었다.

―― 언니 이월이라는데 이렇게 날씨가 쌀쌀합니다. 몸이나 건강하십니까? 그런데 언니 어쩌면 좋습니까. 송의 병이 점점 더쳐서 이삼일 내로 입원치료를 하라는 의사의 명령이 내렸는데 형주 때문에 야단입니다. 언니가 데려갈 형편이 못 되는 것은 잘 알지만 여기 형편도 그렇고 또 아이들도 벌써 석 달이나 엄마 보고 싶은 맘에 그만 풀이 푹 죽었습니다. 형주는 날마다 그 추운데 세 번씩 정거장에 엄마 마중을 나가는데 아무리 나가지 말래도 언제 나가는지 모르게 빠져 갑니다. 종종 설주가 와서 같이 가는 때도 있습니다. 설주는 엄마가 인제 형아캉 나캉 서울 데려간다구 하면서두 정거장엔 나가는군요. 형주는 정거장에만 나갈 뿐이지 밥을 안 먹거나 잠을 안 자거나 하지 않는데 설주는 순이 어머니 이야길 들으면 초저녁엔 눈을 꼭 감고 자는 체하다가도 밤이 들어서 집안 식구가 다 잠든 눈치가 뵈면 이불 속에서 혼자 울 뿐 아니라 엄마가 몹시 그리운 날이면 밥을 통 안 먹는다는군요. 저두 어제사 그런 이야길 들었습니다. 순이 어머니도 이때까지 이런 말을 언니가 가슴 아파할까 봐 하지 않았다구 하나 아이들 일이 너무 가엾어서 그만 죄다 써버렸습니다. 어제 저녁 서울서 학교 다니던 사촌 시누가 몸이 아파서 왔는데 무슨 이야기 끝에 자기 동무 이야기가 나서 자세히 물어 봤더니 하순이가, 그 하순인지 아닌지 모르나 어쨌든 지금 성화여학교에 정하순이 그런 아이는 있다는군요. <하와이>어머니한테서 학비가 온다는 거며, 나이가 열아홉이라는 거며, 아버지가 없다는 거며, 성격이 이상하다는 거며, 하순이와 흡사한 점이 있아오니 꼭 가 보십시오. 저는 그 애가 그 하순이라면 한 달에 백 원턱이나 되는 학비가 온다니 언니가 데리구 계시면 피차에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럼 언니 얼른 꼭 가 보십시오. 언니 몸 안녕하십시오.

동생 선영 올림

 

이튿날 아침, 나는 성화여학교엘 하순을 찾아 나섰다. 하순은 전에-내가 여학교 다니던 때니까 벌써 십 년도 훨씬 넘는-옛날 일이다. 그의 어머니가 아메리카영사관 서기로 있던 사람과 하와이로 떠날 적에 아홉 살 먹은 하순을 이웃에 사는 아주 타남인 우리 어머니한테 맡겨서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부탁한대로 석 달만 맡아 기르자고 하던 덧을 오 년 동안-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때까지 기른 아이다.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동생과 함께 대구에 살림을 옮기게 되어서 하순을 충청도 저의 고모 집에 보낸 이후로 전혀 소식이 없었다. 나는 그가 기운 없이 아이들 축에도 안 끼고, 우리 어머니가 그처럼 귀해 하셨건만, 도무지 따르지 않고, 내 동생 선영이와 싸우기만 하면 이내 주먹 같은 눈물이 그 맑고 크고 까만 눈에서 뚝뚝 떨어지고, 사람의 눈을 기이고 도둑질을 가끔 해내고, 거짓말도 잘 하고―― 그러면서도 마음씨가 모질지 못하던 것을 생각하며 성화여학교 사무실 안에 들어섰다. 마침 교장이 여자분이어서 나는 교장과 하순에게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정하순은 과연 그 하순이었다. 교장은 하순이가 우리 집에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고모 집에 가서부터 하순은 어머니한테서 오는 돈을 그 고모부가 죄다 받아쓰곤 보통학교 육 학년에서 그만 둔 아이를 마저 마쳐 줄 생각도 없이 집에 죽 박아 두고 심부름이나 시켰으며 하순이가 그 고모 집을 도망해서 서울 와서 이리저리 전전하다가 성화여학교에 온 뒤에도 그 고모부라는 시골 사람은 가끔 술이 취한 채로 하순을 찾아와서 시골 내려가자고 한다는 것이었다. 마는 하순이가 성화여학교에 입학한 후 하와이에 있는 그 어머니는 교장한테 긴 편지를 보내어 하순의 장래를 부탁한다고 했기 때문에 교장은 어머니 없는 하순이도 가엾지만 먼 곳에서 딸의 신변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살펴서 학교에서나 기숙사에서 선생과 동료들 사이에 평이 좋지 못한 것을 날마다 타이르고 책망을 하고 때로는 때리기까지 한다고 했다. 중에도 딱 질색인 것은 동무간에 말썽을 일으키고, 거리의 유행을 잘 거둬들이고, 군것질을 잘 하고, 한 달에 백원씩 오는 돈을 아무리 안 쓰게 하려 해도 요리조리 어떻게든 공교스레 구실을 꾸며서 백원 돈을 거진 쓰게된다는 것을 이야기한 후 교장은 내게 하순이 같은 아이는 기숙사에 두기 보다 차라리 잘 관리하는 사람만 있으면 혼자 있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내가 그에게 내 뜻을 미리 말했던 까닭에 한 말인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도 하순에겐 좀 더 따뜻한 환경과 부드러운 손길이 필요할 것은 알았다. 더구나 그가 우리와 떠난 후 여러 가지로 고생했다는 이야길 듣고 나니 퍽 안 되었다. 하순은 교장의 안내로 곧 내게로 왔다. 어떻게 자랐는지 옛날 면목이라곤 별로 없고 까마잡잡하던 얼굴이 환히 윤이 나고 검고 맑던 눈이 더욱 빛났다.

언니 웬일이겠수

그는 나를 곧 알아 본 모양으로 지져 올려서 굽실굽실 한 머리를 내 가슴에 파묻고 어깨를 들먹거렸다. 나는 옛날 어머니 밑에 같이 자라던 그를 눈 앞에 그리며,

너 날 알겠니?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왜 몰라요, 은영 언니 아니우

하며 이내 젖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반가워했다. 나는 곧 교장에게 말한 대로 그에게 나와 같이 있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내 말을 채 듣기도 전에 아주 기뻐서 펄쩍펄쩍 뛰며,

언니 정말이우? 난 기숙사에서 나가는 날이면 춤을 추겠어

하는 것이었다. 교장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가 기숙사를 싫어할 것은 미리 짐작하고 있은 바이었으니 놀랄 것까진 없지만 어쨌든, 교장이 옆에 앉았는데 그런 말을 함부로 막 내뱉어 하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은 성화여학교와 부용이 집 가까운데 하느라고 수송정에 얻었다 .나는 살림을 장만하고 아이들과 하순을 데려 오느라고 한 보름동안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상훈이도 만나지 못했고 부용이와 조용히 이야기할 사이도 통 없었다. 그러한 어느 날 저녁, 부용이가 편지 한 장을 들고 왔다. 낮에 <멧센저>가 가져온 것이라 했다.

사연은 간단한데-한번 다녀간 후 도무지 소식이 없길래 어디 편치 않은지 그렇지 않으면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서 벌써 좀 알아보고 싶었으나 어떤 형식으로 알아보는 것이 좋을지 몰라서 이때까지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 이 이가 누구래요?

내가 글발에서 눈을 떼었을 때 부용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 상훈을 만나고 오던 저녁부터 알리자던 문제였다. 그랬는데 어쩐지 마음이 떨려서 무슨 큰 죄를 짓는 사람 같기도 하고 또한 귀한 보물을 간직한 것처럼 즐겁기도 하고-어쨌든 나는 이러한 마음인 까닭에 부용에게 이야기를 못했다. 그리고, 또 상훈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어색했다. 바른 대로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부용이! 이 사람이 동경 있을 때 알던 사람이야

나는 그의 앞에 숨기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에 어색스럽게 그의 이름까지 부르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형은 좋겠어요부용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이?

그런 이가 있으니까

내 맘을 모르시구 하는 소리지

돌아가신 이를 생각하는 것두 좋지만, 그렇지만…….

그것두 그렇지만 그보다 더 딱한 일이 있어. 부용이가 직접 당해 보기 전엔 설명을 해두 몰라

그이가 지금 어디 있수?

서울에

저의 집이 서울인가요?

아니지, 마산 사람이야

저의 집은 마산 있겠군

그런가 봐. 지금 찾점을 하는데 그 이층에 혼자 있나봐

몇 살인데, 장간 갔나요?

안 갔을 걸, 동경 있을 때 안 갔댔으니까, 내가 여름방학에 나왔다가 다시 안 들어가구 그렇게 된 뒤로 쭉 나만 생각했대. 앞으루두 그렇게 한다는군. 그리구 뭣이나 죄다 자기한테 말하라는군요

아이, 형은 참 좋겠어요. 그럼 그이와 결혼하시지 왜 그러세요

안 되요.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어. 못해

왜 못해요. 그이가 부인이 없겠다. 형은 남편이 없겠다, 피차에 사랑하겠다, 형이 지금 처지로 봐선 참 좋을 것 같고만. 애들두 그이 앞으루 입적시킬 수 있잖어요. 그런 다행한 일이 어디 있길래 그러세요

그 다행한 속에 큰 불행이 있을 것을 어떡하구

뭔데

난 그이를 만나려는 생각을 가질 때부터 그땐 더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맘 먹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내가 만약 그를 좋아하게 되면 어쩔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하게 되면 어때요, 좋지 뭐. 그것 보세요, 형이그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나는 거 아니겠수

그럴는지 모르지…… 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내가 좋아한다구 결혼할 수 없는 일이구, 애들을 입적시키려고―― 그런 외부적 조건을 살리자고 큰 비극을 지어낼 순 없어. 안되지 안돼 못해요.

암만 그래두 결혼하구 말 걸

부용은 내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어떻게 보았던지 이렇게 말하곤 그 애수가 담뿍 잠긴 눈을 내게 쓸쓸히 던졌다.

부용이 이것 봐

나는 그를 또 이렇게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다시 아주 낮은 소리로,

부용은 내가 뭘 무서워하고 뭘 불행하다구 하는지 모르지? 모를 거야. 그것만 아니면 내가 그의 이야길 그를 만나구 오던 길로 부용한테 했을 거야. 그리구 그이를 자꾸 만날 수 있을 거야. 지금도 이야기한 대루 그일 만나러 갈 때부터 떨면 가질 않았을 거야. 또 그이가 온갖 것을 다 맡기라구 했음에두 불구하고 나는 다시 아무런 일언반구도 없이 하순을 데려다가 살림을 채리구 아이들을 데려오구 그리구두 아무 말 없이 보름 넘어를 있은 거야.

그게 대체 뭘까

가만있으라구, 내가 말할께. 내가 만약 이상훈이란 사람을 몰랐더라면 그를 생각하지 않았더면 이런 걸 못 깨달았을 거야. 부용이, 걜 말이야, 큰 마누라앨 부용이가 못 사랑하잖어, 암만 사랑하재도 안 되잖아. 그것과 마찬가지루 제 자식이 아닌 아니―― 아니지, 제 자식이 아니래두 관련이 없는 남의 자식은 귀해할 수 있구 사랑해 줄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참으로 기기묘묘한 것이어서 제가 낳지 않고 남편의 자식이든지 제 자식이 아닌 아내의 자식―― , 여편네가 데리구 들어온 자식이고 보면 좀체 생각해―― 생각해 주긴 고사하구 미워하게 되는 것이 통롄것 같애. 가만 보라구, 의붓자식을 미워 안 했단 사람이 별루 있는 가구의붓애비 묘에 벌초란 말두 이런데서 생긴 것일 거야. 가만 보라구, 의붓자식을 의붓아버지가 미워했으니까, 그 묘에 벌초를 잘할 리가 있겠어…….

그런 경우도 있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자식이라면 안 그럴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의 자식인 때문에 더 하다니까. 실례를 들래두 들 수 있어…… 하순이 어머니 남편 말이야. 하와이 가기 전에 바로 우리 이웃에서 살았는데 그 아내는――그러니까 하순 어머니지……그렇게 사랑하면서도 하순인 어떻게 미워하는지 참 하순 어머니가 울기두 많이 했다우. 난 그 땐 그걸 통 몰랐지. 그랬는데, 차츰차츰 접때 상훈을 만나고 나서부터 하순 어머니 남편인 그 사내가 하순이 땜에 늘 싸우고 하순 어머니가 울고 하던 일이 어제 같구만. 어쨌든 교양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간에 그 표현방법이 다를 뿐이지 심리상태는 다 일반일 것 같애

그래서 하순일 두구 떠났나요?

그럼, 데리구 갈 수 있어야지. 사내가 찡찡해서…… 그 어린 걸 떼 두구 가는 어머니 마음이 어쨌겠수. 석 달만에 곧 데려갈 도릴 하겠노라더니 아직 못 데려가구 그 멀리서 딸 때문에 가진 앨 쓰는 구려. 참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집의 어머니한테 온 편지를 보면 눈물 안 흘릴 사람이 없을 거야. 아무 것두 모르는 나두…….

나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부용이가 얼굴에 수건을 가리우는 것을 보고 그만 끊어 버렸다. 그는 필경 시골 있는 영선일 또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내게 상훈의 이야길 권하려고도 물으려고도 하지 않고 가린 수건 밑에서 어느 때까지 울었다.

이러한 일들이, 다시 말하면 나도 슬픈 사람인데 부용을 보고, 하순을 보고, 또 거기에 대한 책을 더 읽게 되고 그래서 아이들한테 가는 마음이 더하는 까닭에 나는 상훈의 편지 답장으로――답장이라기보다, 그를 다시 만나지 말자는 마음에서, 아이들도 데려다가 학원에 넣고, 생활문제도 아는 동무의 알선으로 안정되게 되었다는 것과 일전 돌연히 찾아가서 쓸데없이 오래 있다가 온 것을 뉘우치고, 앞으로 아이들 입학 때문에 바쁘겠고, 먼저 있던 집에서 이사를 했다는 것등을 적어 보낸 후, 나는 정말 한결 더 상훈에게 대한 내 마음을 조종해가며 오직 아이들을 입학시킬 준비에만 분망했다.――마는 나는 서울 안에 있는 사립학교란 학교는 죄다 돌아다니며 사정을 이야기하고 입학을 애원했으나, 아무 데서도 내원을 용납해 주지 않았다.

――사생아를 애호하자, 사생아를 구출하자, 보모들의 비합법적 경합의 죄(?)가 그 자식에게 미치게 되어 있는 것은 그릇된 법이라는 논의가 분분하나 그것은 한 개의 공론으로 흘러가고 수없이 많은 사생아는 어느 날이나 이 거리 저 거리에 물에 기름처럼 떠돌아야 하니 이 책임은 과연 누가 지어야 할 것인가.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숫자에 달하고 있는 그들 사생아, 그들은 언제까지 사회의 냉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인가. 사회는 그들의 불량을 꾸짖고 법률은 그들의 범죄를 응징하기보다 그들에게 안정한 처소와 따뜻한 애무를 주어야 할 것이 아닐까

나는 내 잘못을 뉘우치는 한 편 이러한 사회에 대한 불평 불만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세상의 온갖 규율, 풍속, 인습, 도덕에 반발이 생기고 증오가 생겼다. 이것은 내가 한 때――분별없이 남이 하니까 나도 하고, 남이 좋다니까 나도 좋거니 하고, 남이 싫다니까 나도 그렇거니 하던, 즉 다시 말하면 분위기에 휩싸여서 기분적 행동을 하던――그런 때에 가졌던 반발이나 증오가 아니었다. 이것이야말로 한 대의 그러한 경솔과 무분별한 행동으로 해서 받은 보수――그 쓰라린 체험에서 단련된 내 의지의 눈으로 정확히 보아서 하는 반발이었고 증오였다. 그런 까닭에선지 반발과 증오는 해동적이 못 되고 심하면 심할수록 점점 풀이 죽고 용기가 더 줄어들고 아무래도 그 세상과 타협해 살아나갈 가망이 없을 것 같은 생각만 들어서 나는 때때로 아이들과 함께 죽음을 생각해 보는 미련한 여자가 되는 일도 있었다. 마는 그러한 것은 생각뿐이고 날마다 하루 이틀 그대로 살아가긴 했으나 이렇게 사는 생활이란 불안과 공포밖에 가져 올 것이 없었다. 죽음보다 무섭고 싫은 일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세상의 온갖 소음이 죄다 내 귀로만 쏠려 오는 것 같고――, 그러다가도 귀를 더 기울여 그 소란한 소리의 전부를 경청하려 들면 그것들은 모두 꿈속같이 멀리 사라져 가고 내 소리까지도 그 사라져 멀어진 소리와 함께 아득해 지는 것이었다. 이럴 때면 천정에 뚫린 작은 구멍이 무슨 아귀의 눈같이 벌름거려서 괜스레 무서워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곁에 있어도 쓸데없고――그럴수록 나는 혼자 가만히 언제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 좋았다. 아니 그것은 거짓말일지 모른다. 그것보다도 나는 무엇을 붙잡을 것이 있었으면 싶었다. 아무 것이나 휘어잡았으면 싶었다. 그렇다고 부용을 불러올 생각도 상훈을 찾아갈 생각도 다 없었다.

 

이렇게 된 나는 신을 생각해 보는 때가 있었다. 마음의 넓은――비인 자리를 신앙으로 채울 수 없을까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나는 개나리꽃도 거진 져가고, 세상은 녹음으로 푸른 단장을 하게 되던 어느 날 학원에 집어넣었던 형주 설주를 데리고 다짜고짜로 남산정에 있는 성모학교에 간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아이들을 단지 그 학교에 넣자는 마음에서만이 아니었다. 나와 아이들과 함께 신의 품에 고달프지 않고자 함에서였다. 그런 까닭에 검은 복장 입은――십자가와 염주를 늘인 신부 앞에 내 맘 전부를 이야기하고 신부가 아흔 홉 마리의 앙보다 한 마리의 잃어졌던 양을 사랑한다는 성경 귀절을 읽고 십자가를 그어 기도할 때 정말 신 앞에 나는 내 맘 전부를 바치기로 맹세했던 것이다. 진실로 나는 세상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자의 슬픔과 괴롬을 신만이 알것 같고 초조한 마음과 불안한 생각을 신만이 없애 줄 것 같아서 오직 신 앞에 즐겁자고 노력을 했다. 다른 책을 읽지 않고 성서를 읽고, 안식일이 아니더라도 회당에 가서 신 앞에 꿇어 엎디곤 했다. 어쩐지 마음은 조금도 가볍지 못하고 여전했다.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던 때보다 날마다 즐거워하고 그들이 성서를 외우고 찬송가를 부르고, 마리아를 알고 예수를 알고, 신을 두려워하는 맘과 함께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보는 때면 다시 한번 내 마음 준비의 부족함을 스스로 꾸짖고 다시 자세를 고치곤 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불안이 커지고 전보다 한층 더 자신에 대한 환멸을 느낄 뿐이었다. 그것 뿐 아니라 정 심한 때는 아침 저녁 미사 올릴 적에 울리는 종소리조차 거룩하지 못하고 무슨 서글픔을 못이겨 흐느끼는――아픈 소리 같았고 신 앞에 무릎을 꿇은 신부와 수녀의 검은 복장 속엔 신을 저주하는 마음이 독사와 같이 꿈틀거리는 것같이 보였다. 종종 까닭 없이 눈물이 핑그르 돌고, 손가락하나 까딱 하기 싫게 사흘이나 나흘이라도 한 모양으로 앉아 있을 것만 같기도 했다. 전에 한번도 없던 일이었다. 나는 어째서 이런 마음이 생기는지 나도 몰랐다. 백양 나무 잎이 하늘 높이 푸르게 흔들리는 것이 싫어서 쩔쩔 끓는 한낮에도 문을 닫고 앉았는 일이 있고 그러다가는 벽에 걸린 마리아 초상에 시선이 가기만 하면 나는 무엇에 놀란 듯 똥그랗게 눈을 그리로 모으로 한숨을 후――길게 내쉬곤 했다. 이렇게 내가 마음의 갈등과 오뇌를 안고 허덕이던 어느 날――나는 한 장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당신이 다시 안 오시는 마음을 잘 압니다. 당신의 보고서 비슷한 편지를 보던 날부터 더욱 당신을 생각지 말고 가만히 곱게 당신을 그대로 나 혼자 몰래 옛날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하자고 노력했습니다. 당신을 괴롭게 하는 것이 제 본의가 아닌 까닭입니다. 마는 저는 아마 당신을 생각해야할 운명을 가진 듯합니다. 전 생애를 당신을 위해 바친 듯합니다. 아무런 주저 없이 자신 있게 대답할 말이라면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이외엔 없을 것입니다. 저열한 사나이라고 나무람하시겠지만 저의 마음은 신에 가까운 마음인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더구나 현대인에게 있어서 믿는다는 사실은 극히 곤란한 것이니까요. 만나 뵈었을 적에도 말씀 한 것과 같이 당신은 마음 속에 언제나 깃들일 <피닉스>입니다. 당신이 팔 년 전 여름 방학에 저를 떠나가서 다시 소식이 없던 때보다 저는 지금 더 외롭습니다. 당신으로 해서 얻는 외로움이니 즐겁게 감당하는 수밖엔 없습니다. 마는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받는 외롬이란 세상에 가장 괴로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괴로운 일을 왜 하는지 저도 모릅니다. 신밖에 알 이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확실히 전세의 숙연입니다. 다시 말씀 드린다면 마음의 고향을 찾자는 것입니다. 저를 언제까지 방황하게 하시겠습니까?

다방에서 이 상 훈 올림

 

편지를 쭉 내려 읽고 나니 가슴이 꽉 죄어드는 것이 질식이라도 할 것 같았다. 다리가 후둘거리고 전혀 마음이 허공에 뜬 것처럼 허둥지둥 방안을 서성거려 보다가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보다가 입가에 웃음을 띠어 보다가 갈피를 찾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누가 보면 미친 사람이라 할 만치 그만큼 당황했다. 당황했다기 보다 즐거웠다. 한 밤을 꿈속에서 그이에게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내 마음 전부를 고백하던 이튿날 성모마리아 앞에 꿇어앉아 내 마음을 뉘우쳐 보던 일도, 성당 신부에게 신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경우에도 구원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신부가――사람은, 더구나 젊은이는 애욕에서 발을 빼는 날이라야 완전히 이 말을 끔찍이 신봉하려고 하던 일도 다 내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북악산 근처의 푸른 경치도 나를 위해 있는 것 같고――태양이, 푸른 숲이, 아니 온 우주가 전혀 나를 위해서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끝내 나는 상훈을 찾아가고야 말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이들께 복습을 시켜놓고 아홉 시나 되어 하순에게 아이들을 재워달라고 이르고 거리에 나섰다. 거리는――더구나 다방 거리인 명치정 길은 낮과 같이 밝고 사람들이 오고가고 와글와글 끓었다. 나는 그 길을 안나카레니나의 안나가 눈 오는 날 기차에서 내려서 우론스키와 불행한――하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상봉을 하게 되던 일을 생각하면서 <고마도리>이층, 상훈의 방문을 노크했다. 문이 곧 열리며 공기와 함께 방안의 흐뭇한 냄새가 전신에 풍겨왔을 때 돌기둥이 되어 있는 그와 나는 똑같은 자세와 표정을 지었다.

서울에 계시긴 했군요

한참만에야 그는 말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서울에 계시긴 했군요

방에 들어가 앉아서도 그는 다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그 물음에 어떤 해석을 내려야 할지 내가 서울에 있었다는 사실만이라도 신기해서 그러는지 그렇지 않으면 서울에 있으면서 소식 없이 있었다는 것이 괘씸해서 그러는지 원체 시무룩해 있는 그의 표정이라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 대신에 잠깐 웃어 보이고, 그리고 나는 방안을 휘――돌아 살폈다. 동경시대나 다름없이 단조한 방 차림새였다. 삼면에 쭉 돌아가며 책이 쌓여 있고 책상이 있고, 철필, 잉크병, 재떨이, 이런 것들이 있는 외에 책장 위에 놓인 화병에 하얀 작은 꽃이 꽂혔을 뿐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방이었으나 아늑하고 마음 드는 방이었다. 방안의 물건들, 그와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것들이――심지어 벽장 속에 들어 있는 이부자리, 그가 기대어 있는 벽까지도 나는 무척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하-얀 작은 꽃은 바람이 들어올 적마다 전등불 아래 하늘거리며 하얀 웃음을 내뿜었다.

저 꽃이 참 좋아요

그거요, 그걸 다방애들이 사온 걸 이름이 좋아서 갖다 꽂았지요. 원체 게을러서 꽃을 좋아는 하면서도 물 주구 어쩌는게 싫어서…….

이름이 뭔데요?

『「명일이라나요, 하이네인가 괴테인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어쨌든 사람은 내일을 기다리다가 그 내일에 묘지로 간다는 말이 있지요. 저 꽃이 이름이 내일이라구 들었을 때 이내 그 시가 생각이 나서 갖다 꽂아 놓긴 했는데…… 어쩐지 내 운명을 더 또렷이 설명해 주는 것 같아서 그만 빼버려야겠어요.

운명을 설명하다니요

너두 내일 내일 하다가 그 내일에 죽느니라 하구 일러주는 것 같단 말씀입니다.

죽지 말지요

나는 그가 담배를 피워 물로 연기를 길게 내뿜는 것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아무렇게나 한말이 아니었다. 그는 죽음을 초월한 것 같고 그가 죽는다는 사실은 영원히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음에서였다. 하나 다시 그도 죽고 나도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은영 씨!

죽는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잔뜩 흥분하고 있는 때였으므로 그의 부름에 그를 쳐다보는 내 시선이 범상치 못했음인지 상훈은 말이 더 없고 나를 그 검고 깊숙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어서 내 전신이 죄다 그 눈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듯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아 버리고야 말았다. 그의 눈을 주체할 수 없었다기 보다 내 얼굴에 일어나는 경련을 막기 위해서였다. 눈을 감았으나 상훈의 심원한 표정, 목조와 같이 이지적인 고상한 얼굴, 그 얼굴이 움직일 때면 쏟아져 넘치는 정열을 주체못해 하는 양이, 부드러운―― 뜨먹뜨먹 떼어놓는 말소리, 풍부한 체구, 이 모든 것이 더 한층 또렷해지고 방안의 공기와 색과 기온과, 그 방에만 있는 특유한 냄새까지 전부 내 피부 속에 스며들었다.

제가 한 편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 오래 뒤였다. 주위의 소음도 안 들리고 영원에서 영원으로 흐르는 시간까지도 정지되어 그와 내가 그 영원한 시간 속에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엄숙한 긴장 속에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일종 현기증을 일으킬 것 같은 위태스런 기분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오직 고개만 들었다.

저를 나무램 하시자구 오시진 않으셨지요

사실 그렇긴 했으나 솔직하게 그렇습니다 하고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가 없어서 역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랬더니 상훈은 조금도 어색치 않은 자신 있는 어조로,

미망인의 재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이번엔 아주 생퉁 같이 딴 문제를 끄집어 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꿈에서 놀라 깬 듯 정신없이.

?

하고 반문했다.

미망인의 재혼을 승인하십니까?

그는 다시 더 똑똑히 말하는 것이었다.

아뇨

몹시 당황한 대답이었다. 상훈의 태도와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자신의 당황함이 나는 스스로 부끄러웠다.

왜요? 승인 안 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사실 듣고 본즉 승인 못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현대의 법률이 용허한다는 것가지 나는 알고 있으므로 이렇다 하고 내세울 조건이 없었다.

그럼 부인하신단 말씀이군요

그는 내 대답 없는 것이 갑갑하단 듯이 또다시 이렇게 물었다.

경우에 따라선

어떤 경우에?

특수한 경우 말씀이예요

어떤 경우가 특수할까요?

예를 들자면 저 같은…….

뭐가 특수하지요, 특수할 거 도무지 없어요. 특수하다고 생각하는 건 은영 씨의 고집입니다. 다녀가신 뒤루 저두 은영 시 마음을 짐작하구 참 은영 씨의 현숙한 마음을 침범치 않으려구 무척 노력했습니다마는 그것이 은영씨를 생각하는 참된 길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할 일이 아니란 걸 다시 알았습니다. 편지에두 말씀했지만 당신을 생각하는 건 내게 숙명적 의무 같이만 생각돼서 당신이 혼자 애들을 데리구 고생하는 걸 도무지 볼 수 없어요. 비오는 거리에 우산 없이 나선 사람을 보는 것같이 초조해요

그렇지만 안 돼요

그럼 혼자 사신단 말씀입니까?

영원히?

혼자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이 편하니까요

편하세요? 제가 당신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단 말씀이군요

아뇨

그럼 뭡니까?

전 괴로우면서두 그대루 제 앞에 던져진 운명과 싸워가며 사는 것이 즐거운 때문입니다. 거기서 벗어난다는 것은 제 양심에 다시없을 고통일 것 같아요

양심의 기준이란 게 어디 있습니까……자기를 파멸시키라는 양심이 어디 있습니까. 그건 자기를 속이는 양심입니다. 언제나 불안과 공포에서 떨어야 할 양심입니다.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 나는 그의 이 말과 함께 내 귀에, 무슨 쇳덩어리와 쇳덩어리가 부딪치는 때 생기는 그런――아주 내 신경 전부를 일으켜 세우는 소리가 또 하나 들려왔으니 그것은,―― 애욕에서 발을 빼는 날이라야 완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던 검은 복장을 입은 엄숙한 신부의 음성이었다. 나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영문을 모르는 상훈은 아마 내게 여러 번 까닭을 물었을 것이나 나는 그의 여러 마디의 말을 다 못 듣고 그냥 뛰어서 도망하듯 집으로 왔다.

 

집에는 아이들만 자고 하순은 없었다. 여느 때보다도 하순의 밤 외출이 내게 더 한층 염려가 되었다. 내가 밤에 나갔던 까닭에 하순이도 나간 것 같게 생각되었다. 나는 상훈을 찾아갔던 것을 무수히 뉘우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형주 설주가 덥다고 몸에 하나 가리지도 않고 차버리고 자는 양이 견딜 수 없었다. 그것들에게 입ㄹ을 가리워 주며 베개를 베워 주며 하노라니까, 이건 또 베개 밑에서 편지 한 장이 나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곧 하순의 글발인 줄 알고 어쩐지 심상치 않은 예감에서 가슴이 선뜩 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편지엔 다른 말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서울서 살 수 없으므로 북행차를 타고 만주로 떠난다는 것과 내게 벌써 이야기 못한 것은 내가 그 사람을 나무람할까 봐서 나 몰래 떠나는데 그 사랑하는 사람이란 사람은 동화백화점 점원으로<로버트테일러>와 같이 멋장이로 생긴 미남잔데 그 이가 없으면 세상에 살 맛이 없기 때문에 함께 떠난다는 것만 적혀 있었다. 편지를 읽고 그제야 살펴보니 그는 방 웃목에 놓았던 트렁크와 버들상자와 그 외에 못에 걸었던 제 옷들을 하나 배지 않고 다 가져 갔었다. 오직 책상 위에 학교에 가지고 다니던 책과 책 가방 등 필통 이런 것들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나는 여기에 대한 사건을 어떻게 수습을 해야 옳을지 몰랐다. 수사원을 제출할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그렇게 된다면 더구나 일이 우습게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기고, 그렇다고 그냥 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편지에 쓴 것으로만은 그 생대 되는 남자가 어떤 성격자며 또 생활환경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하순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순을 사랑해서 데리고 떠났는지 도무지 윤곽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북행이라고만 했으니 북선인지, 그렇지 않으면 만주 지방인지, 돈이 없어서 떠났는지, 사랑의 도피행을 했는지, 어쨌든 밤새도록 꼬박 생각을 하며 행여 그래도 돌아올까 하고 문 밖에 귀를 수없이 기울였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내가 팔 년 전 어머니 몰래 집을 떠나가던 밤일을 생각해 냈다. 나도 하순이와 꼭 같이 밤에 나갔고, 내가 동경 가지고 다니던 트렁크와 버들상자를 어머니 몰래 마루에 미리 내어놓았다가 어머니가 잠든 눈치를 살펴서 인력거에 걷어 싣고 홍민규의 작은 하숙방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날 밤 어쨌든 어머니는 내가 떠난 것을 알았을 때 내가 하순이 나간 것을 걱정하는 이상으로 걱정을 하시고 염려를 하셨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하순이의 출분은 팔 년 전의 내 자신을 비춰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었다. 다르다면 팔 년 전의 나는 홍민규의 씩씩한 모양이 좋았다기보다 그가 하는 일, 그가 전 인류를 위해서――말하자면 남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 좋아서 따라나섰으나 팔 년 후의 하순은 <로버트테일러>와 비슷한 멋장이인 미남자가 좋아서 그가 없는 세상엔 살맛이 없어서 따라 떠난―― 그것만이 다를 것이다.

하순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못해 나는 하순이가 떠나서 사흘째 되던 날 하순의 학교 교장을 찾아가 만났다. 교장은 오히려 내게 미안하다고 하며, 하순에겐 언제든지 그런 일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과 같이 잘 다니던 학생한테서 벌써 하순의 이야길 다 알고 있노라는 것을 이야기하므로 나도 그 하순의 친구라는 학생을 만나 하순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는데…… 그의 말인즉 하순은 <로버트테일러>와 같다는 남자와 알게 된 지 한 스무날밖에 안 된다는 거며, 처음에 알기는 동화백화점에 향수 사러 갔다가 비로소 피차에 좋아지게 되어 어떤 날은 학교를 조퇴까지 해 가며 그 백화점에 가서 바로 <로버트테일러>와 같은 사람이 팔고 있는 화장품부의 물건――크림, , 그 외에 그곳에 진열되어 있는 거개를 샀다는 거며, 이번 그 남자와 같이 떠난 데 대해선 자기도 전혀 모르나 며칠 전에 하순은 자기에게 그 남자가 어딜 같이 떠나자고 한다는 이야길 하고 내가 걱정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염려를 하더란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위에 더 첨부해서 그 녀석이 <로버트테일러>니 뭐니 해 가지고 그 백화점에 화장품 사러 오는 젊은 여자들을 바람낸다는 것과 그 백화점에선 그것을 알면서도 그 녀석을 쫓아내긴커녕 오히려 더 우대를 해서 꼭 화장품 진열부에만 두는데 이 녀석 인제 아주 꾀가 늘고 수단이 늘어서 어렵지 않게 여자들을 훌긴다는 것을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하순의 길이 더 염려스러워서 마치 하순은 내가 불행하게 만든 것 같이도 생각되었다. 내가 상훈을 찾지 않았던들 안 떠났을지도 모르는 아이고 떠나더라도 나는 그에게 여러 가지 주의를 시켜 줄 것을 그랬다고 마음에 뉘우쳤다.

 

하순의 출분은 마음의 괴로움 뿐 아니라 생활에까지 큰 변동을 주었다. 내가 해주로 떠나게 된 것은 전혀 그 까닭이었다. 하긴 해주에 꼭 가야만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신부에게 내 사정――하순의 출분이며 도 그 외의 여러 가지 사정, 하나 나는 상훈의 이야기만은 못했다. 실상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나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상훈이와 멀리 떨어져 있어 보자는 것이었다――을 전부 이야기 했을때 신부는 서울에도 몇 군데의 취직자리를 말해 줬으나 나는 신부의 가장 친한 친구가 경영하고 있다는 해주 요양원을 부디 택하게 된 것이었다. 해주에 가서도 아이들은 곧 해주 성모학교에 전학할 수 있고, 또 다른 직업보다 가장 내 마음에 드는 폐병환자의 동무가 되어 주는 재미 있는 직업이고 또 신부의 친구인 요양원장은 무척 사람이 좋아서 마음이나 육신이나 병들어 괴로운 사람이면 누구나 고쳐주기에 노력을 한다는 신부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해주로 가려고 아주 작정하던――바로 상훈이가 찾아와서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 형주와 설주를 자기 앞으로 입적시키겠다고 말하고 가던――날 밤 또 나는 종종 꾸던 꿈을 꾸었다. 나는 그의 말이 고맙고 슬프고 질식할 만치 목이 메었으나 아이들을 그의 앞으로――홍가를 이가로 하라는 말이 분하고 어이가 없어서 그만 성을 펄쩍 내었다. 그래서 상훈은 더 두 말을 못하고 무안해 하며 돌아갔다. 나는 그것이 미안하고 못 잊어서 그랬던지 상훈의 가슴에 내 얼굴을 파묻고 흑흑 느껴가며 울고 그 이는 나를 머리와 어깨짬을 어루만져 주고 쓰다듬어 주는데 나는 무엇이 슬퍼서 울었는지 자꾸만 울다가 깨고 보니 초생달이 진 검은 밤, 천정도 벽도 보이지 않고 오직 어둠이 공허한 방안을 배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허공을 눈으로 더듬으며 그가 쓰다듬은 내 머리와 어깨짬을 얼마를 만져 보았던지 모른다. 그를 잊으려고 멀리로 떠나는 노력을 하는데도 그 이는 왜 내 꿈속에서까지 나를 괴롭게 하는지 나는 그를 원망하고 수 없이 찾았던 것이나, 신이 아닌 이상 그가 어떻게 내가 그를 만났을 때 알으켜 주지 않은 사실을 알 리 있으랴.

 

차에 올라서도 마음은 여전했다. 마는 달리는 창턱에 턱을 고이고 검은 세상을――아니 깊은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오-래 쳐다보는 사이에 나는 내가 가진 슬픔, 내가 가진 적막, 내가 가진 번뇌, 이것은 나만이 가진 것이 아니고 또는 지상에만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온 우주에 태양과 별과 달과 그 모든 것에까지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별은 정말 하늘에서 모진 슬픔 속에 오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잃어버린 무엇을 찾고자 헤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별들은――그 무수한 별 중에 어느 하나도 땅에 떨어지거나 몸부림을 치거나 하지 않고 오직 제 몸을 불사르며, 아픔을 견디어가며, 눈물을 삼켜가며 캄캄한 밤하늘의 궤도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이도 보였다. 나는 그러한 별들을 보는 사이에 문득 엄숙해져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받았다. 별이 하늘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듯이 나는 지상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을 인내와 극기와 성실과 용기를 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생각을 가질 뿐 아니라 나는 결심을 굳게 하고 형주 설주가 엄마와 처음 타 보는 기차가 즐거워서 바깥 세상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손가락질을 하며, 재깔거리며 웃어대며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던 때 나는 만족하게 그들 질문에 대답을 못해 준 일을 뉘우치며 그것들이 자는 곁에서 그들을 잘 성장시키는 것이 내게 던져진 운명이고 내가 벗어나지 않을 지상의 궤도라고 마음속에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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