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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

120. 잔등

by 자한형 2022.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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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등 (殘燈)-허준

 

장춘서 회령까지 스무하루를 두고 온 여정이었다.

우로를 막을 아무런 장비도 없는 무개 화차 속에서 아무렇게나 내어 팽개친 오뚝이 모양으로 가로 서기도 하고, 모로 서기도 하고, 흑은 팔을 끼고 엉거주춤 주저앉아서 서로 얼굴을 비비대고 졸다가는 매연에 전 남의 얼굴에다 건 침을 지르르 흘려주기질과 차에 오를 때마다 떼밀고 잡아채고 곤두박질을 하면서 오는 짝패이다가도 하루 아침 홀연히 오는 별리(別離)의 맛을 보지 않고는 한로(寒露)와 탄진(炭塵) 속에 건너 매어진 마음의 닻줄이 얼마만한 것인가를 알고 살기 힘든 듯하였다.

이날 아침, ()과 나는 도립병원 뒤 어느 대단히 마음 너그러운 마나님 집에서 하룻밤을 드새고 나왔다.

아래윗방의 단 두 칸 집인데 샛문턱에 팔고뱅이(팔꿈치)를 붙이고 부엌을 내다보고 주부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는 늙은이는 이 집 할머니이신 모양이요, 손자가 서너너덧 될 것이요, 손녀가 있고, 집으로만 한다면 도무지 용납될 여지가 있는 것 같지 않기도 했으나, 이 집 주부로서는 역시 이날 밤 목단강엔가 가서 농사를 짓던 주인 동생의 돌아온 기쁨도 없지 않다고 해서 그랬던지,

오늘 우리 시동생도 지금 막 목단강서 나왔답니다.

하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비좁은 방임을 무릅쓰고 달게 우리를 들게 한 것이었다,

이 집 저 집, 이 여관을 기웃, 저 여관을 기웃하다가 할 수 없이 최후적으로 찾아든 낯선 우리가 미안하리만큼 우리의 딱한 형편을 진심으로 동정한 것은 분명한 주부뿐이어서 밖에 나갔던 남편이 돌아와 찌프듯한 얼굴을 하고 못마땅한 듯이 아래윗방을 한두 번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생원과 같이 금생서 걸어오신 분들이 랍니다. 서울까지 가시는 손님들이래요.

하였다. 그리고는 남편에게나 손님인 우리들에게 양쪽으로 다같이 미안하게 된

어쩌면 한 정거장만 더 갖다주면 될 걸 게서 내려놔요. 이 밤중에 글쎄.

하고 혼자 혀를 끌끌 차며 할머니를 보았다.

남편은 마지못해 지듯이,

글쎄 우리 식구가 있으니 말이지.

하며 윗방으로 올라와 방바닥에 널려놓았던 것을 주섬주섬 거두고 게다 자기 자리와 동생 자리도 껴보았다.

이런 경위를 지남이 없었다 하더래도 미안할 대로 미안하였고 고마울 대로 고마웠을 우리인지라 아침 부엌에서 식기를 개숫물에 옮겨 담는 소리, 지피는 나무에 불이 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데는 더 자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깨끗이 가시지 아니한 피곤을 우리는 도리어 쾌적히 생각하며, 주부에게 아이 과자 값을 쥐어주고, 동이 트인 지 얼마 아니 되는 정거장으로 가는 길에 나선 것이었다.

방은 터지고 깨어진 양복바지를 몇 군덴가 호았는데 오는 도중에 거의 검정이가 된 회색 춘추복에 목다리 쓰쿠화를 신고 와이샤쓰 바람으로 노타이 노모자에. 목에 Good morning이란 붉은 글자가 간 상해에서 온 타리 수건을 질끈 동이고, 나는 팔월 달부터 꺼내 입지 않을 수 없었던 흑색 서지 동복에 방의 외투를 걸쳤다.

길림거 차를 만나지 못하여 사흘 밤 묵는 동안에 나는 무료한 대로 제법 영국 신사가 맬 법한 모양으로 넥타이만은 꽤 단정하게 맨 셈인데, 그것도 이 순이 가까운 동안을 만적거려보지 못한데다가, 원체 빡빡 깎고 나선 중머리이므로 해를 가리자고 쓴 소프트가 얼마나 뒤로 떨어지게 제쳐 썼던지 방이 내게 던지는 잔 광파가 무한히 흐늘거리는 수 없는 윙크로, 그짓이 어떻게나 유머러스하였던 것인가만은 짐작 못할 것이 아니었다.

지금 막 변소에 갔다가 일어서자니까 만돌린이란 놈이 제절로 둘룽둘룽 떨어져 내려오지 않소 글쎄.

방은 와이샤쓰 소매 밖으로 풀자루 같이 비어져 나온 북만의 군인을 위하여 만든 두툼한 털내의를 몇 벌론가 걷어붙인 위에다가 두 손가락을 발딱 제쳐 들고 게딱지 집듯 집어 보인다. 집게발에 물리울 거나 같이 섬세하게 하는 그 거조가 실로 거대한 몸집을 한 그에게 대조적인 효과의 우스움을 아니 품게 하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는 지난밤 금생에서 늦게 들어와서 요기하던 장국밥집 앞마당에 오자 절름거리기를 시작한다.

걸어오는 도중에 회령 가면 여덟 시에 떠나는 차가 있다는 사람의 말을 곧이 듣고 그 연락을 대기 위하여 이십여 리 길을 반 달음질로 온 것이며. 또 그의 발이 혹 부르틀 염려가 없지 않았던 것이며를 짐작 못할 것이 아니고 보건대, 만돌린의 발생을 우려하는 그 한탄조가 짐짓 황당한 작심만은 아님이 분명하나, 이런 여고(旅苦)가 없던 예전부터 술집 앞에 와서 절름거리는 그의 대의(大義)일랑 못 짐작할 것이 아니어서,

여보, 주을이 앞에서 손빼를 헤기고(손짓을 해서) 기다리는데 다리를 절다니요.

하면서도 지난밤 그렇게도 회령술을 찬송하던 그의 얼굴을 바로 보기에 견디지 못하였다. 나도 사실은 술집 앞에서 절름거리고 싶은 충동이 없는 것도 아니요, 만돌린쯤에 이르러서는 벌써 문제도 아니었다.

그들의 동의를 지각해온 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마는 이러고 있을 수 없다는 나의 대방침이 그에게 주을의 온천을 상기케 하자는 데 불과하였다,

우리가 안봉선을 택하지 않고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는 이유로는 이 쪽이 비교적 안전하다는 경험자의 권고에도 있는 것이지마는 우리의 여정을 청진이나 주을에서 절반으로 끊어 가지고 일단 때를 벗고 가자 함도 일종의 유혹이 아닐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열흘이고 스무날이고 주을에 푸욱 잠겨서 만주의 때를 뺄 꿈이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마는, 어쨌든 그 실현성의 여하는 불문하고 당장의 형편이 우리에게 그런 소뇌(小腦)주의 에 빠져 있게를 못할 것만 같은 까닭이었다.

첫째, 돈이었다. 함경도만 들어서면 여비쯤은 염려 없다는 방의 말을 지나친 장담으로만 알고 떠난 길은 아니지마는. 정작 와보니 교통상 불편으로 갈 데를 마음대로 가지 못할 것을 생각 못하였던 것이 잘못이요, 간다더라도 부모형제라면 몰라도 그저 막역한 친구라고만 하여서는 오래간만에 만난 터에 딱한 사정을 입밖에 내지 못하는 정리의 일면도 없지 아니한 것이다.

추위도 무서웠다. 푸르등등한 날씨가 어느 때에 서리가 올지 어느 때에 눈을 퍼 부을지 모르는 것을 아무런 옷의 준비도 없이 떠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길을 짤막한 방의 오버 하나를 가지고야 어떻게 하는가.

셋째로는 기차였다. 지금 형편으로 본다면 기차의 수로 본다든지 편리로 본다든지 닥치는 그 시각시각마다 극상(極上)의 것이어서 닥치는 순간을 날쌔게 붙잡아야 할 행운도 당장 당장이 마지막인 것 같은. 적어도 더 나아질 희망은 없다는 불안과 공포심도 작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하다간 서울까지 걸어간다는 말 나지이.>

하는 마음이 사람들 가슴에 검은 조수와 같이 밀려들었다.

닥쳐오는 추위와 여비 문제와 고향을 까마득히 둔 향수가 나날이 깊어 들어가서 일종의 억제할 수 없는 초조와 불안이 끓어오름에는 그들과 다름이 없었으나, 반면에는 만조에 따라오는 조금과 같이 아무리 보채보아도 아니 된다는 관점에 한번 이르기만 하는 날이면 그때는 그때로서 그 이상 유창(流暢)한 사람이 없다하리만큼 유창한 사람이 되는 나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된 대로 또 어떻게라도 되겠지.

명확한 예측이 서지 아니한 채 이런 낙관부터 가지고서 계속되는 몇 날이고 몇 날이고를 안심입명하였다는 듯이 지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방에게 있어서도 일반이었다. 나와 이 성질은 마치 수미(首尾)를 바꾸어놓은 가자미의 몸뚱아리 모양으로 노상 지축거리면서 태평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니고, 주막에 앉으면 궁둥이가 질기고, 누우면 다섯 발 여섯 발 늘어나다가도 한번 정신이 들어야 할 때에 이르면 정거장 구내에 뛰어들어가 어느새 소련병에게 군용차를 교섭하기도 하고, 또 날쌔게 화차에 뛰어오르기도 하였다,

나를 체념을 위한 행동자라 할 수가 있다면, 그는 관찰과 행동을 앞세운 체관자라 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내 항상 블랭크를 수행하는 찌푸린 궁상한 얼굴 대신에 항심이 늘 배어나온 것 같은 잔 광파가 흐늘거리어 마지않는 그 눈언저리가 이를 증명하였다.

그가 교제적인 것과 내가 고독적인 것, 그가 원심적인 것과 내가 내연적인 것, 그가 점진적인 것과 내가 돌발적이요 발작적인 것. 그가 행동적이요 내가 답보적인 것 - 이곳에도 이 음양의 원리가 우리의 여행을 비교적 순조롭게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차가 두 정거장 가서도 내려놓고 세 정거장 가서도 내려놓는 이 여행을 수 없는 정거장에서 갈아타고 오면서 회령까지 오기로 친대도 몇 달 걸렸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방이 장국밥집 앞에서 절름거리기를 마지 아니하는 동안에 정거장 방향에만 마음을 두고 있던 나는 폭격을 받아서 형해조차 남지 아니한, 사람을 정리하느라고 쳤을 새끼줄 너머로 거므스름한 동체의 쭉 벋어나간 긴 물상이 놓여 있음을 희미하니 이슬을 짓다 남은 아침 연애 속으로 내려다보았다.

으응, 차가 와.

옆구리를 쿡 찌르는 바람에 방은 늘씬한 그 허리가 한발이나 움츠러 들어가는 듯하였으나 어시호 이때에 생긴 긴장미는 우리가 재치는 걸음으로 정거장에 이 르기까지 풀리지 아니하였다.

차는 역시 군용이었다. 자동차, 장갑차, 대포 같은 병기가 실렸음은 물론 시량(柴糧)인지 천막을 쳐서 내용을 가리운 차까지 치면 한 삼십여 개도 더 될 차로 맨 뒤끝에는 서너 개 유개 화차도 달려 있었다.

이날도 여느 날과 달라야 할 일이 없어서 이 세대 유개차 지붕 위에는 벌써 빽빽이 사람들이 올라가 앉아서 팔짱을 낀 사람, 무릎을 그러안은 사람, 턱을 받치고 앉은 사람, 머리를 무릎 속에 틀어박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끼이고 덮이고 밟힌 듯이 겹겹이 앉아 있어서 어디나 더 발부리를 붙여볼 나위가 있을 것 같지 아니함도 일반이었다.

입은 것, 쓴 것. 신은 것, 두른 것, 감은 것, 찬 것, 자세히 보면 그들의 차림차림으로 하나 같은 것을 찾아낼 수가 없겠건만, 그러나 그들이 품은 감정 속의 두서너 가지 열렬한 부분만은 색별(色別)하려야 색별할 수 없는 공동한 특징이 되어서 그 가슴속 깊이 묻히어 있음을 알기는 쉬운 일이었다.

고개를 무릎 틈바구니에 박고, 보지는 아니하나 만사를 내어 던진 듯이 완전한 체념 속에 주저앉은 듯한 중년의 사람, 그도 그의 두 귀만은 무슨 소리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열원은 한결같았고, 또 한데 뭉친 것이었다.

그들 중에서.

왔다아.

하는 소리가 한마디 들리자 지붕 위에 정착해 있던 군중의 수 없는 처리는 전후로 요동하였고, 위로 비쭉비쭉 솟아났다. 와악 하고 소연한 소리조차 와글와글 끓는 듯하였다.

보니 과연 대망의 화통이 남쪽 인도교 가드 밑을 지나 꽁무니를 내대이고 물레걸음을 쳐서 온다.

우리는 이 경쾌한 조그마한 몸뚱아리로 말미암아 얼마나 애를 쓰는지, 마치 예스가 아니면 노라도 뱉어주어야 할 경우에 이쁜 사내를 앞에다 놓고 애타는 웃음만 웃고 맴돌이질하는 연인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믿기지 않는 일거일동에 예민하지 아니할 수 없었으며, 그 밑빠른 거취에 실망하면서 우직하게 따라가지 아니할 수도 없었다.

나도 저들과 같이 두서너 가지 색별하여 갈라놓을 수 없는 감정의 열렬한 몇 부분을 가진 한사람에 틀림없을진대 리 모진 연인으로 말미암아 물불을 가리지 못 하게 하는 열광적인 환희와 동시에 일충 이상 정도의 초조와 불안과 그리고 얄궂은 체념을 동반하는 위구를 품지 아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하자는 웃음이며, 어디 와서 머물 맴돌이야.-

나는 여러 번 역증이 나던 버릇으로 막연히 이런 소리를 가슴속에서 다시금 불러일으키며 방이 장춘에서 가지고 온 증명을 들고 소련병에게 교섭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운명은 손길이 아니 보이는 바람과 같다고나 해야 할 것처럼 바람에 불리는 줄이야 누가 모를까마는 아침이 아니고는 어느 연로에 기쁨을 놓고 가고 어느 연로에 슬픔을 놓고 갔는지 더듬어 알기 힘든 것인가 하였다.

방이 천막 친 차 언저리에 발부리를 붙이고 기어올라갈 적에 차는 떠났다. 그리고 차 위에서 발 디딜 만한 데를 골라 디딘 뒤에 기립을 하여 몸을 돌이켰을 때 비로소 그는 철로 한가운데 놓인 나를 보았다.

두 손으로는 무겁게 짊어진 륙크삭크(륙색)의 들멧줄을 잡고 땅에 떨어지다 붙은 듯한, 과히 제쳐 쓴 모자를 쓰고 두툼한 훌렁훌렁한 호신 속에 앙연히 서서 바라보는 나를 그는 어떻게 보았을까 - 그는 두 사내 사이에 벌어져 가는 거리에 앞서 층일층 차에 앞서가는 걸로만 보이게 하자는 것처럼 뒤에 떨어지는 나를 향하여 섰다가 이렇게 된 형편임을 보고서는 다시는 어쩔 수 없음을 깨달은 듯이 얼른 체념의 웃음을 웃어 던지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머리 위에서 휘저었다. 이때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차상(車上)의 몸이 된 것임을 알고 그의 심중도 어떠하리라는 것을 나는 모를 수가 없었다. 나도 손을 들었다. 차머리가 가드를 지나 커브를 돌아 차차 속력이 가해짐이 분명할 때에 유발적인 이외에 아무런 동기도 없이 올라간 내 손은 제 힘을 빌려 다시 무겁게 내려왔다.

이제는 완전히 홀로 된 것을 느끼며 철로에서 나와 폼으로 발을 옮겨 디딜 때까지 몇 개 붉은 글자의 행렬은 오랫동안 나의 눈앞에서 현황하게 어른거리었다.

굿모닝 Good Morning

철로 한복판에 서서 진행해 가는 차를 전별할 때부터가 별로이 이 이별에 부당함을 느끼었음은 아니나, 허물어지다 남은 플랫홈 위 한구석 찬 이슬에 젖은 돌팡구 위에 륙크(륙색)를 놓고 그 위에 걸쳐 앉았을 때에는 무슨 크나큰 보복이나 당한 사람처럼 방과 나와의 교유 관계에서 오는 인과(因果)에까지 생각이 이르러, 그 여운이 새삼스러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감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내 생래의 성질로 해서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혹 애걸하는 모양도 되고 혹 호소하는 자태로도 보여서 지저분한 후줄근한 주책없는 인상을 누구에게나 주었을는지는 모르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그 이상 어느 누구의 우의(友誼)를 이용하자 하지 않았음에는 비단 방에게뿐 아니라 누구에게 있어서도 또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데가 없었다.

보복은 무슨 보복, 인과는 어디서 오는 인과.

나는 이 불의의 별리에 아무러한 나의 죄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혹 허물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잘못됨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런 의식쯤이야 나의 고독에 대한 용력(勇力)과 인내력을 집어삼킬 것까지는 못되었다. 내가 부르르 털고 일어나서 때마침 우연히 타게 된 트럭 위의 몸이 되어 방이 탔을 군용화차가 머무른 어느 소역(小驛)을 반시간도 못하여 따라잡을 때가 오기 전까지에는 다만 세상은 무한히 넓고 먼 것이라는 느낌 외엔 운명에 대한 미미한 의식조차 없었던 것을 발견하였을 뿐이었다.

내 몸을 휩쓸어 넘어뜨리고 가려는 거침없이 달리는 트럭 위에서 일어나서 나는 허어연 연기를 내뿜으며 기진맥진하여 누워 있는 방이 앓았을 화차를 먼 빛에 바라보며 그 방향을 향하여 한없이 내 모자를 내흔들었다.

이렇게 해서 이백 몇 리가 된다던가 삼백 몇 리가 된다던가 하는, 나에게는 천 리도 더 되고 만리도 더 되는 길을 서른 몇 사람으로 만든 일행의 한사람이 되어 나는 떠난 지 불과 서너 시간이 다 못되어 청진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급한 그때 내 형편으로서의 불소한 금액이었다 하더라도 참으로 돈에다 비길 상쾌한 세 시간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자동차에서 내린 것은 청진을 한 정거장 다 못 간 수성이라는 역 앞 다릿목이었으나 이십 리 길을 남겨놓은 곳이라고 하는데도 바다가 있음직한 방향을 앞에 놓고 산으로 병풍같이 둘러싼 구획 안에 검은 굴뚝이 수없이 불쑥불쑥 비어져 나온 것이 치어다 보이는 데서 우리는 떨어진 것이었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청진까지 다 들어가면 자동차를 빼앗긴다는 운전수의 말을 곧이들으려고 하며 일변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금하지 못하면서 가리켜준 대로 다릿목에서 십자로 가로질러 달아나는 제방을 외로 꺾어 따라 들어가서 나는 동으로 동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처음엔 사실 나는 이 수성이라는 정거장 앞에서 내렸을 적에 한참동안 서서 망설이지 아니할 수 없었다.

<만일 방이 탄 차가 이곳을 통과함이 틀림없는 사실이고 볼진대 청진을 다 가서 그 피난민이 오글오글할 정신을 못 차릴 정거장이란 곳에 나가서 만나자느니 보다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와 닿는 차를 맞아서 타고 같이 청진으로 들어감이 좋지 아니할까.>

아무리 목표지가 지척간에 와 닿았다 하더라도, 이십 리란 길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장차 지뚝거리기를 시작할 곤곤한 길손에게 이만한 트집을 갖게 하기에는 충분한 것이 있었다.

쨋수를 가린다면 가령 제일 목적지라고나밖에 하지 못할 목적지이겠지마는 어쨌든 이 목표한 곳에 도달한 안심감에다가 지난밤 금생에서 떨어져서 회령까지 허덕거리고 뛰어온 괴로운 구찬한 추억이라든가, 오늘은 의외로 또 편안하게 올 수 있은 나머지 채 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사치욕이라든가, 게다가 시장한 것이다.

이미 내 허기증은 도중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어젯밤 이래 먹지 아니한데다가 깨끗한 산과 청명한 계곡의 맑은 공기를 절단하듯 일로 매진하여 탄 차가 다사한 초가을의 광명을 헤치고 나아옴을 깨달을 때에 생기지 않고는 못 배길 헛헛증도 없지 아니했을 것이다.

여태까지 이러한 조건이 일시 내 마음의 피댓줄을 늦추게 하였으나, 그러나 서서 아무리 휘둘러본대야 역 앞에 인가라고는 일본인의 관사식 건축이 몇개 뭉키어 건너편 언덕 밑에 연하여 놓여 있을 뿐, 노변에조차 떡 한자박 파는 데가 없다. 나는 군입맛을 몇 번 다시었다. 그리고 방과 만나는 수단으로서도, 이편이 불리하고 도리어 위험성조차 적지 아니할 것을 생각하였다.

방이 타고 오는 차가 군용차이고 보매. 이러한 한 소역에 설 일이 있을 것 같지 아니하려니와 방과 내가 회령서 나누일 때, 장차 어디서 만나고 어떻게 하자는 의논조차 할 새 없이, 참으로 돌연 떨어지기는 한 처지이지마는, 방의 친척이 청진에 많이 산다는 것으로, 열흘이든 스무날이든 예서 때를 빼고 가자 한 우리들의 담화로만 보더라도, 청진에서 만나자는 것은 암묵한 가운데 일종 우리들의 약조가 되어 있다고도 할 고장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두 이인삼각 선수가 발을 맞추어 가지고 떠나야 할 제일 목표지에 다름없었다. 그렇거늘 이 난시에 청진과 같은 대역에서 사람을 만나기 혼잡할 구차함과 위구쯤은 문제로 삼을 것도 아니어서, 방도 게서 만나고, 밥도 빨리 가서 게서 먹고, 여로도 게서 풀 결론으로 마음을 편달하여 떠나온 것이었다.

날은 유별히 청명하여서 어깨 넘어로 넘어간 륙크의 두 갈래 들멧줄은 발자국을 옮겨놓는 대로 불쾌함을 곁따르지 아니한 압박감을 줄 뿐, 물에 부풀어 일어난 것 모양으로 우둥퉁하게 생긴 아무렇게나 된 찌일찔 끌리는 호신 밑에서는 어느덧 발가락과 발바닥 밑에 축축한 땀이 반죽이 되어 얼마간의 쾌감을조차 가지고 배어 나온다.

자동차에서 내린 일행 중 몇 사람은 나남 가는 방향이라고 하여 오던 길을 바로 더 걸어가 버리고, 더러는 촌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은 뒤에 4, 5인 혹 5,6인씩 짝패가 되어 청진으로 들어가는 이들의 뒤를 홀로 전군(殿軍)이 되어 나는 따라갔다.

나날이 유정하여 가는 마가을(늦가을)의 다사한 햇볕을 전폭으로 받으며 등에 진 륙크 밑을 두 손을 뒤에 돌려 받쳐들고 시가지를 가리켜 굽어가는 제방 위를 타박타박 들어 걸어가는 것이었다.

4, 5인씩 혹 5, 6인씩 된 짝패들 중에는 도중 제방에서 밑으로 내려가서 잔잔한 물가에 진을 치고 밥 짓는 준비를 하는 동안 벌써 세수를 하고 발을 씻는 패도 있으며, 해림에서 장춘을 거쳐 나온다던 젊은 농부 내외는, 하나는 쌀을 일고 하나는 북어를 두들기는 것까지, 한가한 햇볕 속에 째애쨌이 탐스럽게 내려다보였다.

이윽고 타고 오던 제방이 끝이 나는 데를 왔다.

제방 아래에서 꺽굽 서서 무엇인가 밭에서 거두고 있는 농군을 불러 물으니, 끝이 난 제방을 내려서서 가던 길을 곧장 가라고 한다.

이쪽 이 줄기로 해서 방축이 또 한 개 뻗어나간기 배우지 앵있소. 그 질으 따라가서 방축 등으 넘어서은 개앵멘다. 그 갱으 건너 또 저어짝 방축 등때기르 난 질루 해서 넘어가메난 질으 따라가압세. 큰 질이라군 그것백겐 없음멘다.

농부는 저짝과 이짝을 번갈아 가리키던 손을 내리고 겸사스럽게 가리켜주었다. 그리고 보니 지금껏 자기가 걸어온 것은 보강적 의미밖에 아니 가진 외곽 제방인 듯하였다.

가리킴을 받은 대로 나는 끝난 제방을 내려서서 다시 제방 등을 넘어서서 강가로 내려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폭도 넓고 수량도 대단히 많은 청량한 맑은 물에 눈허리가 시근거리도록 가을 햇볕이 찬란하게 반사하였다, 나는 위선 짐을 내려서 륙크 안에 든 물건을 꺼내어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지었다.

남색 중국 흩의 위아래.

어떤 구상중의 그림을 위한 사생첩 두 권.

천복이라는 내 이름이 쓰여져 있는 동 일기 한권.

꼭 십일 년 전 두 번째 동경 갈 때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이불의 거죽과 호청.

호청 속에 싸 넣은 헌 구두, 더러는 짝짝이가 된 양말들.

그리고는 신문지에 둘둘 말아 남이 보기 전에 빨려고 하는 사루마다(팬티).

, 또 잊어서는 아니 되는 내 귀중품 보료, 함경도말로 탄자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들을 깨끗한 횐 모래 위에다 픽픽 던져서 놓고 뽑은 발을 물에 담근 채 사변에 앉았다 누웠다 한다.

너 만주서 이런 물 봤니.

못 봤어요.

남양서 회령 온다고 하는 차를 타고 두어 정거장이나 지난 뒤에 연선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맑은 물을 턱을 고이고 한참이나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길림 이래 단속적으로 동행이 되다 말았다 하는, 장춘서 적십자에 있었다는 젊은 애티가 나는 간호부와, 목릉에서 탔다는 열두어 살이나 났을 소학생과의 시()의 대화를 불현듯 나는 하늘을 누워서 보며 생각하였다.

살 만한 자리란 자리는 다 빼앗기고 밭 들여놓을 흙 붙은 데도 없어서, 고국을 떠나 산도 없고 물도 안 보이는 황랑한 회색 벌판에 서서, 밭을 갈고 논을 일으키고 혹은 미천한 직업을 찾아서 헤매는 사람들의 간절한 그리움이, 이 두 버린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우러나오는 시의 주제에 있는 것이 아닌가.

너 언제 또 들어가니.

다신 안 들어 가나봐요.

아무리 생각한대야 생활의 의미를 깊이 알 도리가 없는 소년의 압박과 고독과 공포의 오랜 습성은 아직 해방의 뜻조차 그의 가슴속에 완전한 것이 못되어 막연한 불안이 아직 그 입가에 퍼덕이고 있었다,

학교도 다 떼 가지고 나와요.

이때 이 언제까지나 불안이 꺼지지 아니하는 소년의 떨리는 어조는 내가 지난 해 겨을 북안에 들어가 있는 사촌 매부의 어린 넷째 아들을 나에게 연상케 하였다.

내가 보통학교를 졸업한 지 삼 년째 되던 해니까 진정으로 이십 년 전, 매부는 아는 이가 있어 지금으로 보니 공주령 어느 근방에다 처음으로 만주 짐을 부려놓은 모양이었다. 의지가 굴강하고 바르고 과감한 매부 일족의 고투는 십오 년 동안의 풍상을 겪어오는 동안에 밭 낟가리 논 마지기나를 제법 만들어놓기에 성공하였다.

위로 장성한 아들 셋은 배필을 정하여 더러는 분가도 시키었고 시집도 보내었다. 근린에는 조선 사람 집이 수십 채로 늘고 예배당까지도 서게 된 부유한 촌이 되었다. 매부는 술도 모르고 담배도 모르고 잡기에도 재주가 없이, 대체 이 사람이 일하는 외론 무슨 재미로 사는 사람인가를 모르리만큼 그저 독실만 하고 정직만 하고 온화만 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자기는 별로 이렇다하게 내어놓고 다니지는 아니하나, 누이는 예배당이 되자 백 원이라는, 그때로서는 막대한 돈을 기부까지 하여 예배당의 일을 적지 않이 부축도 해왔었다.

매부는 물론 그런 것을 아니라 할 사람도 아니요, 기라 하고 내세울 사람도 아니었지마는, 이렇게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넉넉히 살아올 수 있던 그들 일족도 촌 전체 운명의 일부를 나누어지고 다시 십오 년 뒤 유리(遊離)의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된 것이었다.

아는 사람을 따마 들어온다는 것이 우연히 좋은 땅이더래서 도리어 그런 봉변을 당한 셈이 되었지. 알고 보니 반반한 데는 한군데도 그런 변을 당하지 않은 데가 없었어.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도 돌아다보지도 않을 토박한 곳에나 주저앉았더라면야. 풀 하나 날 데 없이 반반히 만져논 손때 묻혀논 정이야 들었겠나.

벌써 쉰 고개를 몇이나 넘었을가 싶은 나이 알쏭알쏭해서 잘 기억도 죄지 않는 나이 먹은 누이는 남편의 말 뒤끝을 이어 손아래 사촌 동생을 보고 이렇게 언짢아하였다. 그들도 일본 집단 개척에게 촌지를 빼앗기고 살던 데를 앗기운 사람들의 일족에 지나지 못하였다.

만척에 강제 수용을 당하고 북안에 온 지 오 년짼데 오는 첫해는 이걸 또 호미를 쥐고 낫을 잡고 어떻게 땅을 파자고 하나 하고 생각하니 어떻게 을시년 같지 않을 수가 있었겠나. 한 해 가고, 이태 가고, 삼 년 가니, 인제는 억지로 정 붙이려던 제 생각도 다 절로서 잊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 이렇게 살아오는 것 아닌가.

그는 면면하였다,

그는 누구를 원망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고렇고 누이도 그렇고 누구를 저주할 줄을 아는 사람으로는 될 법을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그렇거늘 그들과 함께 일족을 이룬 그들의 장성한 아들들이나 딸들도 그렇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의 지금 막 한 말조차 쓸데없는 소린가 하고 뉘우쳐 생각한 사람처럼 말부리를 돌리어 조선에 있는 일가 친척의 안부, 촌수로 헤일 수 없는 머언 원척에 이르기까지 세세히 묻고, 이 영감은 어찌 되었나 저 영감은 어찌 되었나 하는 끈끈한, 그러나 그리움이 멎을 길 없는 물음만 한참 캐어물은 끝에,

그런데 차차 한 해씩 나일 먹어가느라니까 인젠 그 바람이 딱 싫어집데. 봄 가을 한참때에 부는 그 하늘이 발개서 뒤집혀 들어오는 촌바람 - 언제야 안 불었을 바람이련만 또 바람이 인젠 딱 싫어집데. 흙바람이 아니랜들 무엇 하겠나만...... 이제는 앞으로 목숨이라야 아마 흙 될 것밖에 다른 것이 남지 안해서 그런지 하늘빛이 잿빛인 것도 좋은 건 아니구------

말에 막힌 것이 아니라 가래가 돋는 모양으로 그는 왜 오래도록 쿨쿨대고 기침을 기쳤다.

입만(入滿)한 지 얼마 안되어 농부에겐 있을 수 없는 소화 불량을 얻어 이래 이십 년 가까이 고생하여오던 끝에, 이번에는 또 기침까지 병발하여서 이제는 된 일은 아니하노라 하며, 힘드는 농사는 아이들이 다 맡아서 한다고 하였다.

성장하여 취처(娶妻)하여 손자 보고. 일 잘하고 외도를 모르는 자기자신과 호말도 틀림이 없는 진실한 아들을 둔, 보통 무난하다 할, 행복의 무슨 자랑 같기도 하고 또는 굴강한 의지에 엄호(掩護)를 힘입어 별 감상(感傷)을 드러내지 아니하려는 이 평범한 술회가 일종의 한탄 같기도 하였지마는,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그 심저(心底)에 가라앉아서 흔들리울 길이 없는, 한 방향으로 쏠리는 일정한 정서를 그 외의 무슨 방법으로 표현할 수가 있었겠는가.

<향수란이렇게근본적인 것일까?>

나는 누워서 눈에 스셔드는 높은 하늘의 푸른빛을 마음껏 가슴에 물들이며 아까 제방에서 떨어져 내려가 잔잔한 수변에 진을 치고 뭉키어 밥을 짓던. 오붓오붓한 7,8인의 일행을 문득 생각하였다.

-매부의 일족은 어찌 되었을까. -

이번 일 후에 응당 생각할 순서에 있었던 불행한 그들의 운명을 나는 뉘우치는 마음으로 새삼스러이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찌 되었을까.>

나는 다시 마음에 되놓이었다.

만일 그들이 무사할 수가 있어 동 너머 뭉키어 밥 짓는 저 일행들의 행색을 하고라도 어느 이 고토의 흙을 밟고 있다 하면 작년 겨울 소학교 이 학년이던 어린 조카 - 영하 사십 도의 쨍쨍이 얼어붙는 겨울 하늘 아래서 눈물을 얼리우며 시오 리 길을 왕래하던 어린 조카, 그것이 너무 측은해서,

어린것에게 너무 과한 짐이 아니되느냐.

그렇게까지 해서 학교에 아니 보내면 어떠냐.

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터져 나올 뻔한 것을 어른이나 아이나 그밖에 자리에 앉았는 누구의 얼굴을 쳐다보나 그런 말이 나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쟤들이 저러구두 날마다 빠지지 않고 학교에 다닙니까?

하였었다.

춥고 눈보라가 티고 정 매워서 못 가리라는 날에는 이 동네 한 서른 가호 되는 집 아이들 중학교 다니는 좀 큰 놈들이 찾아와서 결석을 못하게 데리고들 가지.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제 날마다 하는 일이 금시에 생각나는 듯이 두 조마 귀를 불끈 쥐고 오들오들 떨던 그 조카 놈도 같이 따라올 수 있는 것이라면.

너 만주서 저런 하늘 봤니?

못 봤어요.

하는 문답을 하면서 토닥거리고 오는 것이겠나.

비로소 눈몽아리를 뜨겁게 함을 깨닫는 이러한 연상들 속에서 나는 조선이 그처럼 그리울 수가 없는 나라인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때 물이 흘러가는 발 아래 방향에서 찰그닥하는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다부지게 귓봉우리에서 맺어지는 바람에 나는 놀래어 일어났다. 서너간이 될까말까 하는 물 아래켠에서 궁둥이를 이쪽에다 대고 기역자로 꺽 서서 열심히 물 바닥을 들여다보는 아이가 있다. 얼결에 보면 아인지 어른인지 사람인지 아닌지조차 분간키 어려우리만큼 그 차림차림은 우스웠다.

진한 구릿빛으로 탄 얼굴과 윗도리는 아무 것도 걸친 것이 없이 해를 받아 번쩍번쩍 빛나는데, 회끄무레한 사루마다 같은 것을 아랫도리에 감았을 뿐이었다.

그는 막 찰그닥하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상반신을 일으킨 내가 그것이 사람인 것을 포착하는 순간에 허리를 꾸부리었던 것이다. 만일 나의 몸을 일으킴이 몇 초만 늦었더라도 그 꾸부리고 섰는 형태만으로는 무슨 물건인지, 물 가운데 박힌 말뚝이나 바위팡귀로밖에 심상히 보고 지나갔을지도 모르리만큼, 그 차림차림은 의외의 것이 아닐 수 없어서 직각적으로 내게 내가 떠나온 이국인의 풍모를 연상케 하여 몇 번씩이나 몸을 소스라치게 하였는지 모른다. 그의 바른손 댓켠에는 물 가운데 자기의 꾸부린 키보다 얼만큼 클지 안 클지 모르는 작대기가 꽃히어 있는데, 이것도 그가 꾸부리었던 허리를 날쌔게 펴면서 그것을 빼어들고 물을 따라 띄엄띄엄 따라가기 전까지는 그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짐작할 여유가 없으리만큼 그의 행동의 변화는 순간적이었고 돌발적이었다.

내려가는 물세를 따라 시선을 보내는 모양으로 그 머리의 뒤통수가 뒤로 차츰 차츰 제쳐져 올라오는가 하였더니, 별안간 허리를 펴고 물에 꽂힌 작대기를 잡아 빼어드는 동시에, 그는 물을 따라 뛰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뛰면서도 시선은 항상 노려보던 물 가운데에 쏠리어 있는 것을 보고야, 비로소 그 전체의 의미를 나는 대개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는 아마 한간통이나 이렇게 해서 뛰어내려가다가 다시 허리를 꾸부리고 물 속을 열심히 응시하던 끝에 그제는 들었던 작대기를 자기 자신의 시선이 몰린 물을 향하여 힘껏 던지었다. 찰그닥하는 소리는 이때에 난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는 작대기에다가 전신의 힘을 집중하여 내리누르고 이리저리 부비대었다. 동시에 그의 희끄므레한 사루마다를 두른 궁둥이가. 영화에서 보는 남양 토인의 춤처럼 몇 번인가 좌우로 이질거리었다.

나는 이 모든 행동에서 그의 목적한 바가 완전히 달하여진 것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그가 허리를 전 자세대로 펴며 작대기를 다시 빼어들 때까지 주목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마음의 충동을 느끼었다. 그가 물에 박히었던 쪽의 작대기를 하늘을 향하여 치켜들고 금속성의 광휘를 발하는, 작대기 끝에 박힌 거무스럼한 물건을 뽑아내는 듯 하는 거동을 나는 먼 빛에 보았다. 그 검은 물건은 소년의 손끝에서 꿈틀거리었다.

이때에 나는 그 작대기가 금속성인 세 갈래의 삼지창으로 된 끝을 가진 것이며, 그 창에 박혀 몸부림을 치는 것이 무엇이며, 그의 첫번 겨눔이 실패하였을 때에 내가 그 소리에 깨우쳐 일어난 것이며를 인지(認知)할 수가 있었다.

그런 것 너 하로에 몇 마리나 잡니?

륙크에서 꺼내어 모래 위에다 널어놓은 내 짐들 가까이 그가 삼지창 끝에서 빼어들고 온 물건을 홱 내던지고 다시 물로 들어가려 할 즈음에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 뱀장어 하루에 몇 개나 잡어?

이처럼 재우쳐 묻는 내 말에 그는 반 마디 대꾸도 없이 거들떠보지도 아니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면서 물로 점벙점벙 더듬어 들어간다. 아무리 보아도 사람을 통째로 삼킨 듯한 시치미를 뗀 그 거만하고 초연함이란,

잔소리 말고 널랑 잡아다논 그 고기 지키고나 있어.

하는 걸로밖에는 아니 보인다.

과연 모래 위에 팽개쳐놓고 간 그놈의 고기가 곰불락 일락 뛰기를 시작한다. 삼지창 끝에 박히었던 장어의 대가리는 옥신각신 진탕으로 이겨져서 여지없이 된데다가 뛰는 때마다 피가 뿜어져 나온 부분이 모래와 반죽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장(細長)의 동물은 그 전신 토막 토막이 전수히(전부) 생명이라는 듯이 잠시도 가만 있지를 아니하였다, 제가 얼마나 뛰랴, 뛰면 무엇하랴 하고 얕잡아 보고 앉았는 사이에 여러 번 여러 수십 번도 더 툭툭거리기질을 하는가 했더니 어느덧 물 언저리까지 접근하여 가서 한번 더 뛰면 물 속으로 뛰어들어갈 수 있게 까지 된 것이 아닌가.

잡아다놓은 고기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듯이 이 번에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한 반만치 구부리고 역시 그 물밑만 노리고 있는 아이는 아무리 보아도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혹 고기를 잡으며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중 편이한 장소를 찾아 잠깐 들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하나는 양보를 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사람의 말을 들은 체 만 체도 아니하고 거들떠보지도 아니하는 그 오만한 태도에는 충분히 양해가 갈 만한 이유가 서지 아니한다. 괘씸하여 내버려둘까 하는 생각도 났다.

그러나 부르튼 듯이 입이 불쑥 비어져 나온 열사오 세밖에 아니 나 보이는 이 소년의 행동은 나로 하여금 오래도록 탐색적인 논란의 태도를 갖게 하기에는 너무나 직선적인 굵기와 부러울 만한 열렬함이 있었다, 자아 중심의 황홀이 있는 듯 하였다. 나는 나 자신의 이때 너무나 직정적인 일면을 자소하듯 일어나서 한번이면 알아볼 마지막 고비를 뛰어넘으려는 동물의 중동을 잡아 올려 전 자리에 팽개쳐버리었다.

목숨이 어디가 붙었는지도 모르는 그 목숨에 대한 본능적인 강렬한 집착 그리고 그 본능의 정확성은 놀라리만큼 큰 것이었다.

곰불락 일락 쳐보아서 전후좌우의 식별이 없이 그저 안타까워서 못 견디는 맹목적인 발동 같아 보이지만 나중에 그 단말마적 운동이 그려나간 선을 따라가보면 그것은 언제나 일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의 생명이 찾아야 할 방향을 으레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부(首部)가 전면적으로 으깨어져 나간 나머지는 그저 고기요 뼈다귀요 피 일밖에 없는, 생명이 어디가 붙었을 데가 없는 이 미물이 가진 본능이라 할는지 육감칠감이라 할는지 혹은 무슨 본연적인 지향이라 할는지, 어쨌든 이 생명에 대한 강렬하고 정확한 구심력 - 나는 무슨 큰 철리의 단초나 붙잡은 모양으로 흐뭇한 일종의 만족감을 가지고 동물의 단말마적 운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철리의 실증 운동으로 말미암아 내가 두어 번 그 실종자의 뒤치다꺼리를 아니해줄 수 없는 동안에, 소년은 제 이의 소획(수확)을 들고 올라온다. 길이는 뱀장어의 삼분의 일이 될까말까한, 대가리는 불룩한 것이 빛까지도 보가지(까치복) 같고 꼬리는 빨고 빳빳하고 날카로웠다. 역시 대단히 빳빳할 것 같은 날구지 (나라미 : 가슴지느러미)가 두개 아금지 좌우에 붙어 있는, 맑은 산간계수에나 흔히 있을 듯한 날쌔게 생긴 생선이었다.

물으니 소년은 비로소 무엇이라고 하였는데, 나는 그 대답을 역시 확실히 기대할 수 없었음에 기인하였던지 맨 나중으로 무슨 -딱이-라는 두 음만 분명히 붙잡을 수가 있었다.

너 어디 사니.

소년은 턱을 들어 돌려서 강 건너 제방 너머를 가리킨다.

고장을 이름으로 가르쳐 들었기로니 소용이 없을 것이라, 대개 이만한 정도면 충분한 만족이어서,

너 저거 파니, 먹니?

안 먹어요.

안 먹으면 얼마씩 받니, 한 마리에.

목전의 현실적인 요구에 따라 내 질문은 차차 실제적인 데로 들어갔다.

오 원씩.

또 이건.

나는 아직 소년의 손에서 땅위에 내려 놓이지 아니한 그 무슨 -딱이-를 가리켰다.

이건 안 팔구 집에서 먹구.

부르튼 듯이 부풀어오른 고의 입술 끝에서는 열었다 닫기는 때마다 반말이 아니 나오는 때가 없었다. 아까와는 많이 달라져서 더러 녹진녹진한 데가 그 태도 가운데 엿보이는 반가움보다도 이것은 나에게 잊어버렸던 내 더 큰 그리운 고혹(蠱惑)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이 오래된 고혹에 저절로 끌리어 들어가는 내 자신을 느끼며,

하루 몇 마리나 잡니. 저런 건?

너더댓 마리도 되구 열아믄 마리 될 적도 있구.

너 여기서 그거 하나 구어주지 않으련 - 저 풀 뜯어다가 불 놓아서.

풀을 뜯어다가요?

이상하게도 갑자기 공손한 말을 쓰고 부드러운 어조(語調)인가 하였더니. 그러고 이 자리를 떠난 소년은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뱀장어가 한 마리에 얼마 하는 것이나, 무슨 딱이라던 것이 하루에 몇 마리 잡히는 것이나, 또는 나의 시장기가 견디어날 수 없을 정도도 아니었으나, 전쟁 이래 처음 안겨지는 고국 산수의 맑고 정함과 이 맑고 정한 물을 마시고 자라나는 사람의 잡티가 섞이지 아니한 신선한 촉감이 혼연히 일치가 되어 나의 마음을 건드림은 심상한 것이 아니었다.

뱀장어며 딱이며, 또 그것들을 불을 놓아 구워 먹자는 것이며가 다 이 희그무레하게, 거슬때기밖에는 아니될 헌 사루마다를 걸치고 진구릿빛 얼굴에 앞가슴이 톡 비어져 나온 발가숭이 소년과 함께 마주 앉아서 반말지거리를 하며, 그 아무 것도 섞이지 아니한 검은 눈동자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으면 하는 욕망밖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언어는 내가 소년에게 건너놓고 싶은 한 미약한 인대(靭帶)에 불과하였다. 만일 이 인대가 없어도 되는 것이라면 반말지거리의 대화인들 도리어 우리에게 무슨 필요가 있으랴. 소년이 가진 여러 가지 가슴이 쩌엉해들어오는 감촉에 부딪칠 처소에만 놓여 있을 수 있다면, 잠자코 묵묵하게 앉아서 건너다 보고만 있음이 더 얼마나 훌륭한 일이겠기에 !

그러나 소년은 그의 행동적이요 감각적이요 직절하고 선명한, 다시 군데가 생길 여지가 없는 성품이 나의 부질없는 희망을 받아들일 사이가 없다는 듯이 사라지고는 오지 아니하였다.

나는 속이 빈 륙크삭크를 거꾸로 들어 안의 먼지를 깨끗이 털고, 모래 위에 꺼내어 바래던 보료며 호복이며를 역시 깨끗이 털어 주워 넣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방이 탄 차가 와닿았는데도 내가 가지 못한 걸로 해서 못 만나지나 아니할까 하는 조밀조밀한 의구도 갑자기 가슴에 습래하였다.

챙긴 륙크를 이어 지고, 입었던 양복에다 양말 호신 같은 건너가서 신어야 할 떨어지기 쉬운 물건들을 싸서 한아름 안고, 모자는 쓰고, 사루마다 바람으로 나는 물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물은 깊은 데로서 정강이를 넘을락말락 하였으나, 물살이 세고 찬데다가 퍽이나 넓은 강이었으므로, 건너편 모래 위에 발을 디디고 올라섰을 때에는 발바닥이 오그라져 들어오고, 몸에 소름이 돋고 속으로 와들와들 떨리기까지 하였다.

나는 모래를 디뎠던 맨발 바람으로 축동 등골에 올라가서, 게서 다시 륙크를 내 리고, 한아름 안았던 양복을 내려놓고 입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아니하였던 청진의 전 시야가 거리를 에워쌌을 산허리를 중심으로 일부분 완전히 건너다 보였다. 쑤욱쑥 비어져 나온 공장의 굴뚝들과, 서로 제가끔인 그늘로 덮인 건물들 때문에 산이 내려다보고 있을 바다는 아니 보였지마는 째앳쨋하고도 재릿재릿한 마가을 햇볕 아래, 그 상반신을 바래고 있는 산 중복의 경관은 유난히도 조용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언제 싸움이 있었더냐는 듯이 서로서로 손을 내밀어 잡아다니고, 붙들리어 떨어지지 않게 부축하고, 떠받들리어 오복하니 연락이 된 수 없는 인가와 인가 - 오직 이 중에서 하나, 마음을 선뜩 멈추게 하는 것이 있음은 다릿목에서 처음 둑으로 걸어들어올 제 먼 발에 본 한 채의 붉은 이층 벽돌집이었다. 그것이 먼 발에 무심히 보았던 탓으로 속이 타버려서 아래층도 위층도 없이 된 훤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겉깝대기만인 것인 줄은 몰랐었다.

-불이 났나, 혹 폭격을 당한 것이나 아닌가.-

그러나 한 개 피난 노상에 있는 사람에 불과한 나에게 이것을 단순한 화재로 상상할 수 있는 유유한 기회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재화로 연결하여 생각함이 첩경 인 특수한 처지에 나는 서 있었을밖에 없었다.

-그렇기로 저런 산 말랭이의 동떨어진 외딴집인데 폭격은 무슨 폭격이람. 대견한 무슨 군사상관계의 집도 아닌 듯한데-

그러고 생각하면 그 집 한 채만 복판으로 명중을 했다는 것도 공교스러운 일이요, 또 했다더라도 속만 말쑥하게 맞아 없어지고 겉깝대기가 그렇게 묘하게 남아 있을 리도 없을 것 같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나는 모래가 말라서 부실부실 떨어지는 발을 손으로 말짱하게 비비어 닦고 양말을 신고 일어서려 하였다.

이때 축동 아래로 카키빛 목으로 된 새 군인복에 짚신을 신고 더부룩한 맨머리로 더풀더풀 강을 건너 넘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옷이 대단히 큰 모양인 것은 몸에 훌렁훌렁하는 것을 저고리 소매와 바지를 걷어올린 것이 손목과 발등에 희게 나 덮인 양복 만으로만도 알 수 있었다. 바른손에는 지게 지팡이인지 끝이 갈래가 난 몽둥이를 쥐고. 왼손에는 소 처녑 같은 거무스름한 거스럽이거나 또는 생선 같기도 한 흐늘흐늘하는 것을 버들가지인지 무엇인지에 꿰어 든 것이다.

그가 강을 건너 모래판을 지나 축동을 밟아 올라옴과 동시에 그의 두 손에 들렸던 소지품이 처녑도 아니요. 지팡이도 아니요, 내가 상상하던 모양의 생선도 아니요, 실로 아까의 그 더벅머리 소년이 가졌던 삼지창에 그 소획물들에 틀림 없음을 발견하였을 때는 그의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모에 나는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가 동등에 올라와 나와 같은 지면에 서서 고개를 들고 나에게 일면을 던졌을 때, 그는 나의 휘둥그러해지는 눈을 다시 한번 건너다보고 싱긋 웃었다.

그는 아까 강에서 고기를 잡던 때의 자기의 행장이 괴상하였던 것을 자인하는 모양이었고. 지금의 이 돌연한 번듯한 차림차림에 놀라지 아니할 수 없는 내가 또한 당연한 것을 인정하는 듯하였다.

이러하거늘 거기 대해 더 캐어물을 것이 없음을 안 나로서도 또한 기이한 질문이 가슴 한편 구석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남을 누를 길만은 없었다. 나는 무슨 묵계나 있었던 것처럼 묵묵히 소년의 뒤를 따라 제방을 내려왔다.

소년은 밥을 먹으러 간다고 하였다.

너 여기 비행기 많이 왔었너?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니고는 풀지 못할 바로 직전에 생긴 의문이 덩어리가 된 채 가슴 한편 구석에 뭉키어 있었다.

많이 왔어요.

소년은 나의 말의 의미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는 모양으로 이번에도 이상하게시리 정중한 말로 이렇게 명확한 대답을 하고 나서, 그 뒤에 으레이 따라야 할 나의 질문이 무엇인가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저기 저어 산허리턱에 벽돌집 있지 않니, 꺼어멓게 타서 껍대기만 남은 저 이층 집 말이야. 거 멀 허든 집이냐?

학교야요.

소년이 순한 사람이 아니라고 미리 정해놓지 않은 것은 나의 다행한 정확한 감정(鑑定)이었다. 나는 방향을 가리키기 위하여 들었던 손을 내리고 다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학교가 왜 타? 거기도 폭탄이 떨어졌던가.

아아니요, 일본 놈이 불을 놓구 달아났지요.

?

나는 나 자신 놀라리만큼 갑작스러운 높은 어조로 물었다.

학굔데 왜 일본놈이 불을 놓구 달아나?

약이 오르니깐 불을 놓구 달아났지요 뭐.

내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서슴지 않고 불쑥 비어져나온 이 약이 오른다는 대답은 과연 조략(粗略)한 것이었으나 신선하였고, 직명하였고, 그 자체로부터 완결된 것이었고, 그러므로 또한 청량하였다.

그래애, 네 말이 맞아. 약이 올랐겠지, 하 아 하.

소년이 더듬거리지 아니하고 쓴 소복하고도 함축이 많은 이 청량한 표현에 나는 막혔던 가슴이 시원히 터지도록 웃었다.

웃었으나 흥분상태에 돌입하기를 비롯하려던 중오의 불길은 미처 꺼지지 아니한 채 가슴 한 모퉁이에 남아 있었다. 다만 그것이 연소하여 충분한 불길로 발전하기에는 지금 자기와 함께 곁따라 가는 소년의 그 싱싱한 품성이 나로 하여금 한시도 다른 길로 삐어져 나가기를 허락지 않는 자극적인 것이었고 또 강인한 것이었다고도 할 것이었다.

나는 창자 속에 아무 것도 남음이 없는 웃음을 웃고 난 뒤에 소년의 .이 강인한 촉지가 언제든지 한번은 내게 능동적으로 와 작용할 날이 있을 것을 은연중에 기대하면서, 소년과 몸이 스칠락말락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한참동안 일부러 잠자코 걸어가고 있었다.

내 묻는 말에 하는 수없이 대답은 하였으면서도 아직까지도 탁 풀어져서 들어오지 못할 어느 종류의 경계와 의흑이 잠재해 있는 것을 나는 소년의 흘깃흘깃 곁눈질하는 그 안색에서 엿볼 수 있는 까닭도 없지는 아니하였다. 과연 소년은 내가 지일질 끌고 오는 호신을 새삼스럽게도 내려다보는 듯하더니 정면으로 다시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만주 어디서 오십니까?

나 장춘서 - 예전 신경이라고 하던 데.

네에, 신경이요!?

시방은 신경이라고 안 그러고 맨 처음 가지고 나왔던 이름대로 장춘이라구 도로 그러게 되었지 - 신경이란 뜻은 새 신짜 서울 경짜. 새서울이란 말인데, 예전 중국땅이던 것을 일본이 빼앗아 가지고 제 맘대로 만주국이란 나라를 세웠다 해서 그 새로 된 나라의 서울이란 뜻이지. 그러기 지금은 만주도 만주란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동북지방이라고 그래 - 마치 이 함경도가 우리 조선 동북쪽에 있는 것처럼 만주도 중국의 서울인 남경에서 보면 동북지방이 되거던.

무엇에든지 붙이어 친근감을 갖게 하자는 내 설명은 불가불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까 저어기 강가에 내왔던 그 뻘겅 탄자 만주서 가져온 겁니까. 거 만주서 산 거야요?

내 생각이 거지반 맞아 들어가는 것을 알았으나 소년의 호기심도 처음엔 역시 그 탄자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탄자라 함은 무슨 털인지 털 이면을 모르는 나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으나 여우의 털로서는 과히 클 것 같기도 하고 늑대의 털로서는 지나치게 호화로운 것을 석 장을 이어서 밑에 발간 빳빳한 모슬린을 붙이어 만든 것이었다.

펴고 누우면 과히 큰 키가 아닌 나로서는 발이 나올 정도는 아니어서, 이 반삭을 넘어 나오는 피난행에 어느 때는 유개 화차 지붕 위에서 뒤집어쓰고 한풍(寒風)과 우로를 가리기도 하였고, 찬 여관 방바닥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는 날은 번번이 방과 나는 그것을 반반에 쪼개어서 깔고 겨우 한습을 막아온 물건이었다.

거 좋소.

북신북신하는 털 위를 한번 쭈욱 손바닥으로 거슬러 훑어보고 또 쓰다듬어 내려와보고, 방은 내 얼굴을 쳐다보고서는 그의 본성대로 상찬(賞讚)으로 치고는 너무 무미한 입맛을 쩝 다시었다.

이 말 끝에던가 내가,

짐은 지고 오는 륙크를 털리우고 옷도 다 빼앗기어 사루마다 바람이 되더라도 이 탄자만 무사하면 구만이요.

한 나의 발언으로부터 우리의 환향은 언젠가 금의환향이란 말 대신에 사루마다 환향이란 명칭을 만들어 쓰게 되었고, 그걸로 해서 킬킬대고 웃게 되었고 따라서 내가,

서울 가서 파시 책상을 놓고 앉게 될 적에 깔아볼 생자이요.

하고 나서게까지 된 이 탄자는 이러한 나의 알뜰한 염원이 존중함을 받아 귀중품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었다.

귀자를 붙인 또 한가지 연유에는 이것이 돈을 주고 바꾼 것이 아니라 한 소련 장교 - 동부 전선에 활약한 전차대로서 불가리아, 루마니아, 에트바니아(에스토니아) 등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팔꼬뱅이와 어깨와 다리 사채기(사타구니)에 총을 맞고 흉터가 생긴 것을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으로 이야기하던, 장춘서 내 옆방에 들어 있던 이반이라는 전차 중좌에게서 받은 물건인 까닭도 있었다. 그는 나중 백림까지 쳐들어가 독일이 완전히 항복하는 것을 목격하고 온 장교라 하였다.

이 탄자는 반삭이 훨씬 넘는 세월을 처처로 전전해 오는 동안에 참으로 많은 선망과 많은 웃음을 제공한 물건이었다.

소년이 산 것이 아니냐고 묻는 말에는 물건 자체, 그 유독히 붉은 빛깔이라든지 북실북실한 털의 촉감이라든지. 무슨 그런 것으로부터 오는 호기심 이외에 별다른 욕기가 있을 수 없음을 모름이 아니나, 산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이로라 하고 정말로 한다며는 부대적인 설명이 또한 적지 아니한 시간을 차지할 것을 깨닫고.

응 샀어.

하여 버리고 말았다.

그런 것으로 허다한 시간을 잡히기에는 너무나 많은 궁금증과 질문이 남아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지금 소년의 심리 중에 그만한 내 욕구에 응할 준비만은 넉넉히 되어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짐작한 이상 또한 그 절대의 호기를 놓쳐서는 아니 되리라는 성급한 욕구도 없지 아니한 까닭이었다.

그럼 일본사람은 다들 도망을 가고 지금은 하나도 없는 셈인가?

소년이 잠깐 잠잠한 틈을 타서 나는 비로소 공세를 취하여야 할 것을 알았다.

도망도 가고, 더런 총두 맞아 죽구, 더런 남아 있는 놈도 있지요.

남아 있는 건 어디덜 있노. 저 살던 데 그대루 있나?

아아니요. 한군데 몰아놨자요, 저어기 저어.

소년은 손을 들어 산허리에 있는, 불을 놓았다는 벽돌집의 약간 왼편 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 골통이에 그전 저네 살던 데에다가 한 구퉁이를 짤라서 거기 집어넣고 그 밖에선 못 살게 해요. 그 중에선 달아나는 놈두 많지만.

달아나?

돈 뺏기기 싫어서 돈을 감춰가지구 어떻게 서울루 달아나볼까 하다가는 잡혀서 슬컨 맞구 돈 뺏기구 아오지나 고무산 같은 데루 붙들려간 게 많았어요. 나두 여러 개 잡었는데요.

, 네가 다 잡았어, 어떻게?

저 골통이에 내 뱀장어 날마다 도맡아 놓구 사먹는 어업조합 조합장인가 지낸 놈 있었지요. , 이놈, 돈푼이나 상당히 감쳤구나, 어디 두구보자 허구 있었었는데, 하룬 해가 져가는 초저녁입니다. 저어 우이.

소년은 상반신을 절반이나 비틀어 돌려서 우리가 내려온 축동 길로부터 훨씬 서편짝으로 올라간 강상(江上)을 왼손을 들어 가리키며,

저 위짝 뚝 너머를 웬 사내하고 여편네하고 둘이서 넘어오겠지요. 길 아니 난 데로 우정 골라서 넘어오듯이 넘어오는 것인데, 고길 몰라서 저 위꺼정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내가 보았지요 - 이 어슬어슬해서 어디를 가는 웬 나들이꾼이 길을 질러가느라고 이런 길도 아니 난 험한 델 일부러 골라 오는 건가 - 하고 아무리 보아도 수상하지 않아요. 덤비거든요. 가만 목을 질러서 풀숲에 숨어가지곤 고기를 더듬는 체하면서 자세히 보니까 그게 바로 그 조합장 년놈들 아니겠어요. 그놈은 흰 두투마기에 모쫄한 개나리(괴나리) 보따리 를 해 짊어지고 여편네는 회색 세루 치마에 고무신을 신고요. 그러니 보지 않던 사람이야 알아낼 재간이 있어요. 그놈들이 우리처럼 이렇게 곧은 길로만 왔대도 못 잡았을 뻔했지요. 그때 난 그놈들이 강을 다 건너도록 두었다가 뛰어 가서 김선생 - 위원회 김선생한테 가 일러드렸지요. 이만한 ,,,,..

그는 두 활개를 훨쩍 벌리었다가, 그 벌린 두 팔로 공중에다가 둥그러미를 그리며,

보따리 속에서 나온 꽁꽁 뭉치인 돈이 터뜨리니깐 이만허더래요. 뭐 오십만 원이라든가 육십만 원이라든가 그걸 다 어따 감춰뒀더랬는지, 금비녀 금가락지두 수두룩히 나오고요. 그놈 매 흠뻑 맞고 고무산으로 붙들려 갔지요.

사투리를 바꾸어 든다면 이렇게 될 말로 그러고는 씽끗 소년은 웃었다. 그 웃음은 아까 축동 말랭이(마루)에서 웃던 웃음을 나에게 연상케 하였다.

과연 그는,

그래서 이거 하나 얻어 입었어요.

하고는 훌렁훌렁하는 카키 빛 양복 저고릿자락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또 한번 씽끗 웃었다.

그렇게 물샐틈없이 꼼짝 못하게 하는데도 달아나는 놈은 미꾸라지 새끼처럼 샌단 말이 야요.

내가 이때 소년의 미꾸라지라는 말에서 문득 연상한 것은 아까 모래판 위에서 그 행동을 들여다보고 있던 한 마리 생선이었다. 대가리가 산산이 으깨어져 부서진 이 생선의 단말마적인 발악은 지금 소년이 말하는 소위 그들의 운명을 이야기하여 남김이 없는 듯도 하였다. 그 하잘 수 없이 된 존재의 애타는 목숨을 축이기 위하여 물의 방향을 더듬어 날뛰던 작은 미물 - 그것은 내가 강을 건너온 뒤에 한 개 더 잡힌 동족(同族) 동무와 함께 소년의 자유스러이 내젓는 왼팔 끝에 매달리어 역시 간헐적으로 퍼둥거리기를 마지아니하였다.

또 한 놈의 집은.

득의만만한 소년의 볼이 홍조가 되어서 쭉 비어져 나온 우두퉁한 입이 이제는 한없이 재빨리 여닫히는 것을 뜻밖의 느낌으로 바라보다가, 나는 소년의 남은 또 한가지의 술책이 어떠했던 것인가를 못 얻어들을 줄은 모르고.

그런데 어째 잡은 뱀장어는 애써서 일본 집에만 가져다 파누, 아마 돈을 많이 주던 게지.

하고 놀리었다.

놀리노라 해놓고 생각해보니 일견 뜻이 꿋꿋함이 틀림없을 이 소년의 비위를 거슬리었을까도 하였는데 의외로 그는,

돈도 많이 받지만 조선사람은 이걸 잘 먹지도 않구요.

하며. 순순히 내 놀리움으로 말미암아 그런 것쯤으로서는 도저히 자기의 자존심이 손상치 아니할 것이란 표정을 그 얼굴에 갈아채워 가며 그는 거침없이 걸어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힘의 여세를 빌려,

그밖에도 또 하나 그놈들께 가져가야만 할 일이 있지요.

무슨 일?

소년은 입을 다물고 한참 잠잠하였다. 그러나 종내는 나의 존재에 대하여 종전에 내린 자기의 판정을 한번 흉중에서 되풀이해보고 그것에 조금도 착오가 없었음을 재인식하는 것처럼,

첨엔 돈 많이 주는 것도 좋기는 했어요, 정말 - 했는데 그놈의 조합장 해먹은 일본 놈 잡구 나서 하루는 위원회 김선생이 우리 집에 와서 이 양복을 주며 하는 말씀이 퍽 이상한 말씀이 아니겠어요. 너 남의 집 초상난 데 가본 일 있니. 담박에 그러십니다 - 가봤습니다 하니까, 그 사람 죽은 방에서 일가친척이며 온 동네 사람들이 왜 모여서 들끓고 날을 새우는지 알어? - 모릅니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웃으시며 김선생 하는 말이 다른 할 일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마는,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수가 있단 말이야 하시고는 하하하 하고 자꾸 웃으셨습니다.

.

글쎄 그래요. 무슨 소린지를 몰라서 왜 벌떡 일어나요, 어떻게 벌떡 일어나요, 하고 무서워서 물으니깐 - 죽은 사람 몸뚱이 위를 고양이가 넘어 지나가면 일어난다고 왜 그러지들 안해? -그러시구는 또 깔깔거리고 웃으십니다.

날 놀리듯이 그렇게 자꾸만 웃으시구 나서, 그러니까 고양이가 오는지 안 오는지 시체가 벌떡 일어날려는지 안 날려는지 잘 지켜야만 된단 말이야. 네가 잡은 그놈의 조합장놈도 그렇게 얌전하게 자빠졌던 놈인데 벌떡 일어나서 달 아날려는 것 보겠지-

그런 말씀을 하셨어 ? 그러니까 네가 잡은 이 뱀장어가 꽤 엉뚱한 짓을 하는 셈이었단 말이지, 사람이 못 지키는 고양이를 다 지키구.

절반은 소년의 말 대답으로, 또 절반은 그의 안색을 살피는 놀라움으로 나는 이랬다.

그 김선생이란 이가 누구니?

위원회에서 뭔가 하시는데, 왜 높은 사람이야요. 전에 감옥에서 나왔지요.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동네에 살다가 지금은 포항동에 일본놈 살던 집 얻어 가지구 게서 지내지요. 김선생넨 선생 어머니하고 나만하고 나보다 적고 한, 아버지 없는 조카들하고 지내다가 김선생이 잡혀 들어가고 난 뒤에 그 할머니가 혼자 살 수가 없어서 그것들을 다리고 포항동 어느 집에 가서 지금껏 남의 집을 살았었지요.

, 그런 분이시야.

이번엔 그런 사람이 참 많았어요.

그랬겠지.

나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잠잠하였다. 소년도 입을 다문 채 더는 재잘거리지를 아니하고 무엇인가 중대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소긋하고 걸어갈 뿐이었다,

그건 그런데 에에또 너 그 김선생이란 이가 죽은 사람을 대놓고 하신 말씀을 그래 그때 알아들었단 말이냐.

나는 다시 이렇게 입을 열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알어듣구 말구요. 그걸 몰라요.

소년은 한번 내 얼굴을 치켜 올려다보고,

안직 못 보셨군요. 건 정말 다들 죽은 거 한가집니다.

그는 다시 처음의 흥분상태로 돌아가 낯에 엷은 분홍기가 떠오르더니 다음 순간에는 다시 푹 꺼져 들어가면서,

내 뱀장어깨나 사먹는 녀석들은 어디다 숨켰든지간에 숨겨서 돈푼 있는 놈들이 틀림없지만요, 정말 다아들 배가 고파서 쩔쩔맵니다. 다아들 얼굴이 하얗고 가죽이 축 늘어지고 다리가 부들부들 딸리는 걸 가지고 밤낮을 모르고 망깨를 비라리(구걸)허러 촌으로 나려오지 않습니까. 배추꼬랑이를 먹는다, 고춧잎을 딴다. 수박껍데기를 핥는다. 그래보다가 저엉 할 수가 없으면 고무산이나 아오지로 가지요. 누가 보내지 않아도 자청해서 갑니다. 우리 여기는 쌀이 없는 덴데 일본것들이란 거지반 사내 없앤 것들만인데다가 애새끼들만 오굴오굴허는 걸 데리고 가기는 어딜 가며 어딜 가면 무얼 합니까.

---

그 중에서도 외목 나쁜 것만 해온 놈들은 돈이 있어 도리어 뭘 사먹기들이나 하지만, 그렇게 아이새끼들만이 많은 거야 업구. 지구. 걸리고 해서 당기는 게 말이 아니랍니다, 저어번에 또 한 놈은 다다미를 들치군, 판장을 제치구, 그 밑에 흙을 두자나 파고 돈 십만 원인가 이십만 원인가 감춘 걸 알아낸 것도 내가 알아냈지요. 그런 놈들이 벌떡 일어나지 못하게는 해야겠지만요,..... 그밖엔 정말 다 죽었습니다. 죽은 거 한가집니다.

일단 자기의 흥분이 대상을 잃은 상태로 기운을 풀어놓고 걸어오던 소년은 이때 다시 기운을 내어 똑바로 고개를 해 든 채 꼿꼿이 눈앞의 일 점 공간을 응시하면서 일층 보조를 거칠게 높이어서 뚜벅뚜벅 전진하는 듯 나아갔다.

건 정말 다 죽었습니다. 죽은 이 한가집니다.

그는 다시 한번 이렇게 외고 나서 갑자기 자기가 가던 바른편짝 길 바깥쪽으로 딱 외향을 하여 머물러 섰다.

그리고는 바른 손에 들었던 삼지창을 들어올려 견주어서 전면의 허공을 무찔렀다.

이렇게 해서 엎어뜨려놀 기운 가진 놈도 없이 인젠 다 죽었는데요 뭘.

창부리가 내달은 곳에는 어디로 가는 소로(小路)인지 풀에 반 이상 덮인 조그만 한줄기 갈랫길을 내어놓고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올 것이 없었다.

그는 무슨 힘인지 그저 남고 남는 힘에 못 이기어 끌리어가듯이 그 조그마한 논두렁길을 향하여 이끌리어 들어갔다,

회령에서는 정거장이 전체적으로 폭격을 받아서 어느 모양으로 어떤 건축이 서 있었던 것인가를 조금도 분간하여 알지 못하리만큼 완전히 부서져 있었지마는, 청진은 하 커서 그랬던지 어떠한 규모로 어떻게 서 있었던 정거장인가의 상상을 허락할 만한 형적은 남아 있었다.

시가지에서 정거장에 이르는 광장 전면에 와 서서 보면 걷어치우다 남은 무대의 오도구(大道具)처럼 한 면만 남은 정거장 본 건물의 장면만이라도 남아 있었다.

건물의 입체적 내용을 잃어버리고 완전한 평면 속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이 간판적인 의미밖에 없는 형해만도 미미하나마 사람 마음에 일종의 질서감을 깨뜨려주기에는 어느 정도의 효과가 없지 아니한 듯도 하였다.

정거장 정면 좌우에는 회령 이래 낯익히 보아온 새끼줄 대신에 콘크리트 말뚝을 연결하여 나아간 철조망까지 있었다.

더러는 썩어서 끊어지기도 하고 더러는 끊기인 것 같기도 한 그 중간중간 철선 사이로 무시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데에는 여기도 다음이 없었으나, 그 저 편 폼 구내에 예전 같으면 도록코 창고로밖에 안 쓰였을 납작한 판장으로 만든 집 안팎으로 소련병과 역원들과 또 드물게는 피난민들의 몇 사람조차 섞이어서 무엇인가 지껄이며 어깨를 치며 드나드는 것을 보는 것도 한갓 여유감을 주는 풍경이 아닐 수도 없었다.

그 철책을 들어서서 건너다 보이는 중간 폼의 콘크리트 바닥과 기둥들도 성한 채 남은 것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훑어내려가면서 보니, 예전 폼에서 폼으로 사람들을 건너 다주었을, 어디나 있는 성가시러웁게만 여겨지던 구름다리도 제대로 남아 있었다. 성가시러웁고 구찮고 무미무색한 것이 질서란 것이었던가 생각하며 그 하잘 것 없는 조그마한 질서를 그리워하는 경우에 도달한 지금의 자기를 생 각하면 괴로움과 쓸쓸함을 씹어 넘기기 떫은 감같이 하는 자기에게도 과히 쓸쓸한 것이 아니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들여다보던 노서아 말 포켓 알파벳의 책을 덮어서 주머니에 넣고 주저앉았던 돌 위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말리는 이가 없이 된 폼 위를 구름다리를 향하여 걸어갔다.

아마 한 방향의 차를 기다릴 스무날 동안 낯익히 보아온 사람들, 그러나 누가 누구인지 알 리가 없는 이들의 무리가 이 기둥 저 기둥에 기대어 섰고, 거적을 깔고 부축하여들 앉고 밑을 붙일 만한 돌, 돌바닥에 깊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아서 엷은 첫 황혼 속에 잠겨들고 있었다.

구름다리 쪽으로부터 오는 같은 복색을 한 두 여군(女軍)이 팔을 다가 끼고 무엇을 속삭이며 지나가는 이들과 어기어 지나갔다. 짙은 다갈색 오버에 깡뚱히 무릎이 드러나게 짧은 장화를 받치어 신고, 머리에 베레(베레모)를 얹은 그들의 얼굴에는 영양에 빛나는 탄력이 흐늘거리었다.

구름다리 층계가 밟힐 데까지 갔다가 돌아선 나는 중간에서 또 그들 여인과 어기어 지나왔다,

모쫄하게 키가 작고 다부지게 생긴 그 중의 한사람은 까만 눈자위라든가 곧게 내려 붙은 눈썹이라든가 평면적인 전체적 인상으로 보아 소련에 국적을 둔 조선 사람이 틀림없겠으나, 그는 여태까지도 역시 팔을 다가 끼고 지탱하여 가는 동성(同性) 반려(伴侶)에게 무엇인가 한없이 하소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조선에서 자라난 사람으로 지금 뉘게 그런 사람이 있을까 하리만큼 전체적으로 다부진 긴축한 그들의 육체 중에서도, 의복이 다 가무릴 수 없을 만큼 유난히 풍성한 그들의 유방은 협박감이 없이 자유스럽게 자라난 유일한 표적인 것 같기도 하나, 하룻날의 일을 다한 곤비(困憊)만이 깔리인 이 황량한 처소에서는, 팔을 다가 끼고 몸을 서로 의지하여 가며 무엇인가 열심히 속삭이고 면면이 하소하여 고치지 않는 그들의 뒷 자영 역시 붓을 들어 그리자면, 두어자 -적막-에 이를밖엔 없었다. 너 나의 네 것과 내 것의 분별감이 모호해지는 신비한 황혼때를 만나면 힘차고 씩씩하고 탄성이 풍부한 그와 같은 청춘에 있어서조차 그들 역시 어느 나라의 주인공도 못된다는 표백을 스스로 싸고 도는 듯하였다.

나는 그들의 속삭임을 엿듣고 따라가고 싶으리 만큼 고흑적인 독고감을 새삼스러이 느끼었다.

발이 멈춰졌던 폼 한편짝 기둥에 기대어 서서 나는 방과 내가 같은 관찰점에 도달한 우리의 노인관을 머릿속에 되풀이하였다. 방과 나의 노인관은 어느 것이 현실적이요, 어느 것이 가설적끼었는지 모르리만큼 한가지 과실로 맺혀 떨어질 수는 없었지마는,

우리가 남과 같이 살아야 한다면 노서아 사람만큼 무난한 국민이 없을는지도 몰라아.

한 것은 이십여 일 동안 수많은 노서아 사람들을 만난 우리들의 결론이었다.

이 결론은 중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면 다이었다, 이것만 그럼에 틀림이 없다 하면 소련의 지금 현실이야 어떻게 되어 있든 또한 장차 어떠한 정책이 국내적으로 유행적인 것이 되든 동거해 있는 민족들의 우의를 장해할 아무런 구극적인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사실 그 동안 그들로 말미암아 당한 우리들의 성화스러움이란 하나둘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몇 푼 안 남은 여비도 그들에게 제공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술을 사서 대접하였다, 몸에 찼던 물통이나 펜 같은 것이라도 귀에 대고 절레절레 흔들어보고 가지고 싶어하면 선선히 선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사루마다 환향이란 말을 토하면서 킬킬거리고 오던 우리들의 수많은 웃음 속에는 이러한 어찌할 수 없는 체관이 깔리어 있다고도 아니할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무시로 연발하는 -다바이--다발총-의 협위를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우리가 순종하지 아니하면 사실 그들은 쏘는 사람들이었고, 또 다음 순간에는 그들은 당장에 후회할 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행동은 순간적이었고 충동적이었다. 행동적이었고 발작적이었다. 그리고 그 발작의 행동이 단속되는 콤마와 콤마 사이에는 긴 관상(觀想)의 스톱이 머물러 있는 듯하였다, 그들은 잠자코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생각에 잘 잠기곤 하였다. 그런 때에도 보면,

어느 누가 마리아에게 돌을 던질 사람이 있느냐?

하는 따위의 노서 아 대 예술가들의 주제를 시시각각으로 체험하고 있는 듯하였다. 순전히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전세계 인류를 포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슬라브족이어야 한다는 염원 - 연민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 섞인 이 위대한 염원을 감히 품어볼 수가 있었으랴. 사실로 그들 군대에는 얼마나 많은 이민족이 섞이어 있었던 것인가 -슬라브, 그루지야, 타타르, 카즈베크 등등,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입으로 화가라 하면 화가로 알고 환영하였고, 교원이라 하면 교원으로 알고 환호하여 받아들이는 한낱 우직한 농민들에 불과한 듯하였다.

그들은 농민인 까닭으로 농민에게 특유한 이기적인 것이 드러나는지는 모르나 그 대신 소박하고 어리석었다. 남양서 회령까지 오는 차 중 우리는 비를 만나 그들이 숙식하는 무개화차 위에 실은 적십자 자동차 위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그들이 배당으로 타오는 수프 한 스푼을 가지고. 방과 나는 그들과 함께 번갈아서 떠먹어가며 그들의 -띠 우 스포꼬이네-를 들었다.

 

띠 우 스포꼬이네 메냐

스카지 쯔토 에토 슈트카

레포 끼따이 메냐

스카지 쯔토 에토 슈트카

 

밤새도록 외치는 노래는 환희의 노래 아닌 것이 없겠건마는 통이 굵게 터져나오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끝마무리 마닥(마당)에 눈물이 맺히는 것이며, 혹은 마디마디에 우수가 떨리는 것을 나는 들을 수가 있었다.

울거나 웃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또한 그들은 같은 모멘트로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자아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요만한 정도로 알아들을 수가 있는 내 노서아어는 장춘 이래 쭈욱 들어오는 그들 노래의 유일한 후렴이었다.

날이 밝아서 우리가 그 적십자 자동차에서 내렸을 때, 방은 기차 선로를 채 나서지도 아니하고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서서,

친구들의 그 지긋지긋한 질긴 키쓰-키쓰는 질기고 길수록 좋은 것이지만 당신의 그 지긋지긋한 긴 수염이 나는 영 싫어요.

오랜 우리들의 여로를 일시에 풀어 팽개치게 하는 동시에 갑작스러이 또 새삼스러운 사내들의 여수(旅愁)를 급격히 밀어다주도록 방은 이렇게 요괴염염한 니마이(두 개)의 목소리를 써서 우리를 웃기면서 아직 무슨 깨끗한 것이 남아 있다는 것처럼 손바닥으로 그의 두 볼을 동시에 쓸어 내리었다.

그러면서 그 친구들 거 뭐라구 하는 말입디까.

하는 그에게 내가,

미 아드나 세마-우리는 한 가족이 아니냐-는 소리 아니요 그게.

하니까,

글쎄, 그런 모양인 줄 나도 짐작은 하였소마는.

하고, 그는 다시 또 억울하다는 모양으로 쓸다 멈춘 두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말을 몰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어떻게 말을 들어야 할지 몰랐지마는, 우리는 그 기쁨과 슬픔에 같이 섞이어서 한 가족이 되어 지나더라도 아무 흥이 없을 것임은 하필 이날 밤에 한하여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은 아니었다.

민족을 달리한 - 두 여인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이 모든 회억과 사람을 유별히 그리웁게 하는 황혼의 그림자는 층일층 홀로 혼자 되는 나의 독고감을 내 흉저에 깊이 앉히어놓을 뿐이었다.

 

그래도 역시 잠이 오지 아니하였다,

축축한 찬 냉기가 얍싹한 요 껍데기 위로 스며 나온다. 나는 쿡쿡 쑤시기 시작하는 듯한 다리를 다리 위에 포개어 얹고 몸을 제쳐 모로 누웠다. 그리고 애매한 그 다음 일만 생각하기로 하는 것이다.

정거장 납작한 판장집에는 어느덧 불이 켜져 있었다.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가 역원에게 방과 내가 회령에서 떨어지게 된 전말을 이야기하였음도 회령서 그때 선발(先發)한 첫차가 지금 어디쯤이나 와 있을 까를 묻기 위함이었다. 회령서는 구내에 들어와 있는 군용차가 둘이나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나는 역원에게 하지 아니하면 안되었다.

처음 방과 내가 타려던 차는 화통이 와 달리려고 그것이 궁둥이를 내밀고 뒷걸음질을 쳐오던, 폼에 바싹 다가붙어 서 있는 차이었으나, 일단 붙었던 화통이 도로 떨어져 달아나면서, 그 다음 이번 선에 역시 같은 모양으로 와 서 있던 차에 가 달리기 때문에, 우리는 선로를 뛰어넘어 서서 새로 화통이 가 달린 차로 달려가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타지 못하였다. 방은 소련병에게 장춘서 가지고 온 증명서를 내 보이고 교섭을 하여 겨우 양식인가 실어서 천막을 친 차에 오를 수가 있었으나. 나는 동행인 줄을 모르는 소련병의 거절로 말미암아 주춤주춤하고 완전히 이야기를 다 못하고 있는 동안에 차는 떠나고 만 것이었다.

부득이 뒤에 떨어진 나는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지를 몰랐다.

-아무래도 같이 가야 할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어떻게라도 해서 될 수 있는 일 같지도 아니하였다.

처음 화통을 달았다가 떨리운 차는 그대로 목을 잘리운 채 일번 선 위에 놓여 있었다. 그 맨 꽁무니에 달린 서너 개 유개화차 지붕에서는 사람들이 부실부실 흩어져 내려오기를 시작한다. 이 차는 언제 떠날지 모르는 차라고들 하였다. 화통이 없는 것이며, 또는 척 있어볼 희망도 없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때 결심하였다, 다시 회령 거리로 어정어정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아니하였다. 그만치 나는 아침부터 이 차로 말미암아 제일로 분주한 사람이었고, 또한 이 차로 말미암아 제일로 긴장한 사람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이렇게 떨어지게 되었을까.>

나는 사람들이 부실부실 흩어져 내려오는,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차 지붕 위에 올라앉아서 턱을 손에 받쳐 얹고 이렇게 곰곰 생각하였다. 그리고 눈을 지르 감았다.

-언제 떠나도 좋다.-

하였고, 아니 떠나도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기를 쓰듯이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 존재는 역시 항상 운명의 회오리바람 속에 놓여 있는 나일 수밖에는 없었다.

손바닥 위에 턱을 고이고 눈을 지르감고 앉았는 내 귀에 도락쿠(트럭)로 청진 갈 사람은 없느냐는 소리가 발 아래에서 들린 것은 바로 이때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쫓아갈지 쫓아가게 될지 안될지조차 모르는 무망한 순간들을 벗어져 나와. 일사천리로 청진을 향하여 내달은 몸이 된 것이었다.

얼마나 주고 오셨습니까?

내 말이 일단 끝나자 이러고 묻는 젊은 역원은 친절한 사람이었다. 내가,

백이십 원에 왔어요.

하니까 그는,

꽤 비싼데요.

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한참동안이나 전화통에 매달리어 찌르릉찌르릉 전화의 종을 울리었다. 전화는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는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가 다시 한번 일어나서 전화통으로 갔다.

역시 전화는 종내 나오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전화도 아니 나옵니다마는, 나온대야 요새는 어느 정거장이나 금방 지나갈 차라도 모르고 지나치는 차니까요.

참으로 이것은 어느 정거장이나 정거장에 지을 죄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그의 말에 그렇겠지요 하면서 순순히 그들의 죄가 아닌 표적을 남겨놓고 그 조그마한 사무실의 나무문을 밀고 나왔을 때에는 과연 거기에는 이 젊은 역원의 설명을 당장에 힘들이지 않고 반증하듯이 저편 쪽 구름다리를 지나 이쪽으로 그 머리를 내밀고 전진하여오는 차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방이 탔을, 앞으로 서너 칸째 되는. 천막을 가리운, 차 설 위치를 찾아 허둥거리었다.

사람들은 내린다. 탔으리라고 생각한 찻간에는 방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삼십여 량 달린 차의 꼬리가 보일 때까지 줄달음질을 쳐보았으나, 내가 찾는 사람은 종내 보이지 아니하였다. 이름을 불렀으나 혼잡통에 들릴 리가 없다. 나 할 일이 이밖에 더 있을 수 없겠건만 나는 나 한 일에 자신이 없어진다.

<그 양반 탄 차를 내가 잘못 알고 뒤지는 동안에 벌써 내린 거나 아닌가.>

<혹 그 양반이 회령서 오다가 중간에서 다른 찻간으로 옮긴 것을 내가 모른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전후의 질서 없이 내 자신(自信)을 잃은 머릿속에서 회전한다. 이 둘 중에 어느 하나가 틀림없는데다가 또 아침녘 트럭 위에서 열심으로 내저은 내 모자를 볼 기회를 방이 붙잡지 못하였다면, 그는 내렸더라도 나를 찾지 아니하고 나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허둥지둥 역 광장을 향하여 출구를 나섰다.

그러나 철책 꿰어진 사이로 나오는 구멍만도 세 군데가 넘는 이 광장 전면에 섰다기로니 아무 짝패가 없이 단신으로 나올 사람을 발견할 적확성이 있을 리가 있는가.

나는 단념하였다. 그러나 아주 그러고 말 수도 없었다.

이 차가 회령서 오는 찹니까.

맨 나중으로 나오는 젊은 농사꾼의 내외 - 맨바짓바람으로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마대로 만든 큰 독 같은 륙크를 궁둥이 밑까지 달고 너들떡거리고 나오는 그 젊은 사내에게 나는 허둥지둥 묻지 아니할 수 없었다.

예예, 회령서 옵니다,

인제 겨우 한고비는 지냈다는, 그러나 앞으로 장차 몇 고비나 남았는가 하는 안도보다는 한탄이 더 많이 어물리운 어조로 젊은 남편은 길게 예예를 내뽑는다.

아침 회령서 떠난 차 분명하지요.

그렇다니 껭요.

전라도 사투리는 열렸던 입을 채 닫지 못하고, 얼이 빠져서 서 있는 사람의 옆을 서슴지 않고 지나가 버리었다.

-혹 도중에서 내려서 내가 타고 오리라고 알고 있을 제이 화차를 기다리어 나와 같이 타고 오자고 내린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렇게 앞이 막힌 소극적인 방도 아니다. 게다가 청진. 이 땅은 누가 말한 것은 없으나마 암암리에 우리들의 제일차 목표지가 되어 있음직도 한 일이 아닌가.-

젊은 내외가 지나쳐 피난소로 꺼부러져 사라졌을 때에 나도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엔 없었다.

-지금 이들을 실어 가지고 온 차가 아침 방이 타고 내가 못 탔던 차임은 생각할 것도 없고, 또 아니라고 의심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이곳은 방의 고향이요 친구도 많은 곳이겠지마는, 어디가 어딘가를 모르는 내게 그것도 도움이 될 수가 없다.-

-이제 내게 남은 유일한 길은 내일 아침부터라도 일찍 일어나 정거장에 나와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기를 바랄밖에 별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도 나와 만날 기약을 가지고 있다 하면 정거장밖에는 나을 길이 없음을 모르지 아니할 테니까- 그것도 한 이틀 해보다가 못 만나는 날에는 혼자서라도 가는 수밖엔 없는 게지.-

이렇게 결론을 지어놓고 보면 이 유일한 결단으로 해서 오는 의외의 용기도 없지 아니하였고, 그러지 않기로니 그 유일한 길 자체에 기허(幾許)의 광명이 없는 것만도 아닌 듯하였다,

이렇게 생각한 나머지 나는 여관으로 돌아와 자리를 보고 누운 것이었다.

 

잠은 이내 오지 아니하였다.

나는 다리를 포개어 얹고 모로 누웠던 몸을 돌이켜 다시 바로 누이었다. 등골과 어깻죽지로 찬바람이 새어드는 것이다.

이때 시계가 몇 점을 치려고 하던 것인지 일곱 점을 뎅뎅 치고 또 스르르 감아 들어가는 소리를 내는 순간에 바깥 현관문이 돌연 드르르 열리며,

쥔 아즈망이 계시오.

하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서슴지 아니하고 들어서는 동정이며 그 주인을 찾는 거침없는 어세가 인근에 살아서 무상으로 출입을 하는 사람이거나, 여객이라면 단골로 다니는 흠없는 여객에 틀림없는 것이 현관 옆방에 우연히 들게 된 나에게는 똑똑히 분간하여 알 수 있으리만큼 분명한 것이었다.

뉘요?

안에서 미닫이를 열고 나가는 듯한 주인마누라가,

난 또 뉘라고, 어서 오시오.

하고는 객을 맞아 복도로 모시는 듯하더니 이 분명히 인근 사람 아닌 것만은 확실한, 돌연한 틈입자에게 아래와 같은 문답을 주고받고 한다. 복도에서 하는 말이 현관 옆방에 든 내가 아니라 하더라도 과히 낮은 목소리로만 하지 않는다 하면 어느 방에 든 사람에게라도 분명히 통할 만한 이 집은 일본식 건축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네 어디 갔다 오시는 길이요?

회령서 오오.

이 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나리만큼 회령이란 소리는 내 귀밑을 화끈하게 때리었다. 전등의 스위치를 비틀어서 불을 켜고 복도로 나가는 나 자신을 나는 상상 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을 듯해서 불끈거리려는 가슴을 누릎베개 위에 귀만 또렷이 내놓고 이야기의 뒤를 듣기로 판다.

말 마오. 회령서 열세 시간 타고 오오. 아침 일곱 시에 떠난 것이 인제 오지 아니합니까.

요좀 차가 그래요.

중도동 못미처 고개턱에 와서 고개를 못 넘구 헐떡거리다가 해를 다 지웠지요. 서른네 칸씩이나 되니 어찌 안 그렇겠습니까. 절반씩 두 번에 끊어서 넘겨다놓고야 왔지요 .,,,,, 회령서 청진을 열세 시간이라는 게야 사람이 살아먹을 도리가 있나요.

나는 벌떡 일어나서 전등을 켜고 복도로 나갔다.

그럼 손님 타고 오신 차가 회령서 온 아침 맨 처음으로 떠난 찹니까.

나는 청진 어느 시골에서 무슨 장사로라도 회령에 다니는 듯한 신래의 객에게 이렇게 물었다.

, 처음 떠난 찹니다.

그러니까 아까 저녁때 여기 와 닿은 차가 선생이 회령 떠나신 뒤에 떠나온 차겠습니다.

그렇지요. 우리 차가 중간에서 허덕거리고 고개를 못 넘구 차 대가리가 올라 갔다 내려갔다 하는 동안에 그 뒤에 떠난 것이 먼점 지나오고 말았으니깐요.

그러면 뒤에 떠나오다 먼저 지나쳐왔다는 차라는 것이 언제 떠날지, 떠날지 안 떠날지도 모른다던 그 일번 선 차에 틀림이 없었다. 설마 그 차가 떠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아니하였고, 게다가 그것이 먼저 와 닿았으리라고는 더더군다나 상상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이렇게도 기이할 수가 없는 우리들의 짧은 여로가 일으키는 무쌍한 곡절전변에 나는 또다시 한번 놀라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생각하면 착 전까지 모든 형편과 이치가, 초저녁에 와 닿은 차가 방이 탄 차에 틀림없으리라고 확고한 단정을 아니 가질 수는 없으면서도. 그러면서도 무엇인지 억지와 무리가 그 단정 속에 전연 없지 아니한 것을 나는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리 출구가 역에는 많고 그것들이 또 다 불분명한 것들만이라 하더라도. 자기로서도 보리만큼은 보았다 하고 싶었고, 또 방의 행동이 그렇게 재빨랐을 것 같지도 아니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층 중요한 것은 와 닿아 있는 차 전체로서 오는 도저히 이치로 깎아 맞추어서는 맞추어질 길이 없는 일종의 -기미- 라 할 것부터가 그러하였던 것이었다, 더더구나 고르다 남은 찌꺼기의, 기통을 달고 못하지 아니한 양수의 차를 달고서 같은 궤도 위를 남보다 먼저 달려온 차 - 이것 역시 불가사의한 자연의 이수와 규거를 넘어서는 무법무리한 일 같게로만은 아니 여겨질 일이었다.

-어떻게 하나. 지금이라도 정거장엘 나가보는 것인가. 나가본댔자 쓸데없는 일일까. -

차가 도착한 지 이미 적지 아니한 시간을 경과한 이제 나갔다기로 만날 수 있을 리는 만무하였고, 또 어느 거리, 어느 모퉁이에서 우연히 부딪쳐볼 백분의 일 가능성조차 없는, 백주와도 다른 어두운 밤중이 아닌가. 하나 그렇다기로 듣고 가만히 앉아 있자는 것도 마음에 허락지 않는 의리 인정은 없을 수 없었다.

이 이순여의 짧지 아니한 내 여행이 하루도 안 그런 날이 없었던 것처럼 이날 밤도 나는 양복을 저고리와 바지에다 넥타이까지 맨 채 끄르지 않고 자던 터이므로 방에 돌아왔대야 모자만을 들고 밖으로 나오면 되는 일이었다. 보니. 현관에서 마주 보이는 --O만 없는 글자로 난 복도 맨 꼬두머리 벽상에 붙은 괘종의 바늘들은 어느덧 아라비아의 8자와 3자를,가리키고 있었다.

절반 이상이나 불이 꺼지다 남은 침침한 좁은 골목을 나와 낮에 보니 소련의 전몰 해군의 기념비가 거지반 낙성이 된 로터리를 돌아 곧추 정거장으로 통하는 대로 좌우 보도 위에는 3,4인 혹 4,5인 짝이 되어, 더러는 치안대 같기도 하고, 더러는 피난민 같기도 한 사람들이 마음이 채 안정하지 아니한 두덜거리는 목소리로 여관이 어쩌니 차가 어쩌니 하며 지나가는, 누가 어쩔 염려는 없으면서도 어쩐지 불안하고 어쩐지 싸늘하여서 못 견디고 짚은 밤이었다.

지금 차에서 내려서 아직 채 헤어져 가지 아니한 사람들인지 혹은 정거장 구내 피난민 수용소에서 궁금증에 못 이겨 나온 소풍꾼들인지, 며칠 몇 달 못 먹은 유령이면 이런 것들일까 하게 삼삼오오 뭉치어서 정거장 정면 벽을 지고 묵묵히 선 것이 그믐이 다 찬, 무엇이나 분간치 못할 어두운 밤에 오직 그들의 배경이 왼 벽 자체의 힘뿐을 빌려 희근히 들여다보일 뿐이었다.

방선생.

나는 보고 부르는 것이나 다름없이 정확한 어음을 돋우어 정거장 입구를 향하여 불러보았다, 희근거리는 유령의 그림자는 다시 움직거리지도 아니하였다.

정문을 들어서서 개찰구이었을 데를 지나 폼으로 나아왔다.

친절한 젊은 역원이 들어 있던 나무판잣집 사무실로부터 헤어져 나오는 희미한 몇 줄기 광원을 의지하여, 거기에도 역시 바람을 가리울 기둥들 틈에와 이슬을 막을 추녀끝 될 만한 곳곳마다에 제가끔 이슬을 피하여 깃을 가다뜨리고(오그라뜨리고) 웅크리고 앉았는 불쌍한 참새의 무리들은 있었다.

지금 회령서 온 차 어느 겁니까.

판자로 이어 내려온 것이 어슷어슷 규칙적으로 끝이 비어져 나온 사무실 늑골들 틈바구니에 어깨를 틀어박고 앉아서 광명을 등진 채 두어 자 앞만 무심히 바라다보는 한 젊은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가리키는 데를 따라 초저녁에 와 닿은 차량과 차량을 연결한 체인을 짚고 올라서서 제 이 폼으로 건너갔다.

거기도 또한 탈 대로 타고 연소할 대로 연소한 불이 지금 막 꺼진 자리에 더 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는 곳에 다름은 없었다. 탈 것은 다 타고 타지 못할 것만 남기인 듯이 꺼멓게 식어빠진 회신(灰燼)의 길고 긴 차체의 연장 - 그 긴 회신의 처처에는 불에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태워버리고 어버이와 동기를 잃어버린 금세 의지가지 없이 된 가족들이, 회신이 다 된 무한히도 긴 이 차체의 운명을 함께 지니고 가려듯이, 오직 묵묵히 웅크리고 엉기어 앓은 그림자들 - 무개차 위에 떠받쳐놓은 장갑차의 쇠바퀴 사이, 기름기름히 쌓아 얹힌 각재(角材)나 아마 화목으로밖에 아니 운반할 부서지다 남은 책상이나 걸상쪼각 틈바구니에. 혹은 째어진 장막의 한 끝을 잡아다려 뼈가 들추이는 어깨를 가리우기도 하고.

나는 방이 탔었을 앞으로 서너 칸째 되는 찻간의 방위를 찾아 걸어갔다.

과연 그것은 내가 상상하였던 것과 다름이 없이 셋째 칸째이었음에 틀림이 없었고, 또한 장막을 가리운, 회령서 혼자 쓸쓸한 마음으로 떠나보낸 바로 그 찻간이 틀림없었건만, 나는 다시는 방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는 내 마음에 맡기어 찍소리도 내지 아니하고 도로 돌아서 버리고 말았다.

기름기름히 쌓아 얹힌 각재들 사이에 끼인 사람. 부서지다 남은 걸상과 책상을 쓰고 자는 사람, 째어진 장막의 한 끝을 잡아다려 뼈가 들추이는 어깨를 가리운 사람, 이 사람들은 한 특수한 개념을 형성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 특수한 개념을 한 독자적 인 완전무결한 개념으로 응고시키렴에는, 방은 그 중에서도 무용한 사람일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아니 우리는 아무리 다 회신하였다 하더라도 그래도 어딜는지 덜 회신한 곳이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회신하지 아니하였으면서도 회신을 체험할 수 있는 대신에는 회신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떠나 더욱더 완전한 회신이 올 줄을 알면서까지 일층 높은 처소에서 회신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내려다보고 방관하고 있을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애꿎은 제삼자의 정신 !>

차와 차를 연결한 체인을 다시 짚고 넘어서서, 나는 뒤도 돌아다보지 아니하고 천천히 걸어 정거장을 나왔다,

 

나는 걷어치우다 남은 마지막 오도구를 등지고 섰다.

몇개 꺾쇠를 제쳐놓으면 이것마저 쓰러져 없어지고 말 듯한 평면적인 한 개의 하잘것없는 벽을 의지하고 서서 나는 전면 넓은 광장의 어두움을 내다보았다.

그것은 방금 무대의 조명과 함께 완전히 일류미네이션이 꺼진. 관객이 흩어져버린 극장 한 큰 관람석에 불과하였다. 종전까지 벽을 따라 흐늘거리던 유령의 군상들도 어디론가 흩어져버린 듯하였으나 그러나 그들이 남겨놓고 간 찬 호흡의 냉랭한 기운이 목덜미를 덮쳐오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어느 구석에 어쩌다 꺼지지 아니하고 남아 있는 풋라이트의 한 점 광원도 이제는 남지 아니하였다.

-어디로 가나-

팔짱을 겨드랑이 밑에다가 끼고 나는 내 두 발이 디디고 섰는 자리에서 움직여나지 아니하였다.

-어디로 가나. -

다른 날 어느 누가 이를 높고 먼 처소에서 바라본다면 이 또한 영원히 지속되어 나아가는 인생의 막과 막 사이를 연장하는 작은 한 일장(一場) 암전(暗轉)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련만, 순간 순간을 있는 힘을 다하여 지어 나아오던 이때 나에게 있어서는 이 모든 것은 완전히 비극의 종연(終演)을 완료한 한 큰 극장의 헛헛한 경관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어두운 경관 속에 지향이 없이 팔을 옆구리에다가 끼고 앞을 내다보고 섰는 배우의 요요한 그림자는 이제 어디로 그 발길을 옮겨랴 하는 것인가.

클클하고 헛헛한 마음을 부여안고 그는 불이 꺼진 관객석 깊은 허방에 빠지지 않도록 더듬어 한줄기 하나미치(객석을 지나게 만든 배우의 통로)를 골라 잡을 길밖에는 없음을 깨닫는다.

동록이 난 철책을 가운데 놓고 나무판자로 만들어 세운 정거장 사무실 반대방향 이쪽으로는 어느 지면보다도 일충 꺼져 들어간 허방이, 남으로 광장 두드러진 기슭아리에 인접하여 있었다. 다해서 백 평이 넘어도 많이 안 넘을 거지반 네모가 반듯하다 할 공지(空地)인데 군데군데 영양불량이 된 몇 개씩의 옥수숫대와 꽃을 맺어보지 못했을 오그라 붙은 호박넝쿨들 틈으로 꿰어나간 한줄기 쇠스랑 길, 이 또한 이번 일 이후 피난민들의 필요 없이는 생겨날 리가 없는 길이었다.

길 양 좌우로 호박잎과 풀포기 사이로 수없이 빽빽 벌여놓인 사람들의 된 분()- 낮에 수성서 들어와 여관에 륙크를 풀어놓고 처음으로 형편을 살피려 정거장으로 나왔다가 정신없이 이 분을 밟고 참으로 무서운 분 무더기인 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발을 빼내일 수 있어야 하지. 미아리 공동묘지보담 더 빽빽 들어서서.

남의 일같이 저주스러웁게 제법 골살을 찌푸리고 겨우 쇠스랑길 밖에 비어져 나가지 않도록 해서 똥 묻은 신발을 비비대고 갔던 나인데도 그 나도 얼마 뒤 요기하기를 끝내고 똑같은 길을 도로 돌아오는 길에는 역시 그 위에 발을 빗디디고 주저앉은 사람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쇠어빠진, 새끼손가락같이 가는 옥수숫대를 살 떨어진 양산 받듯 가리어 받고 떡잎부터 먼저 된 산산 찢긴 호박잎으로 앞을 가리우니 가리어졌을 리도 물론 없었거니와 향() 될 만한 데를 찾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남의 일같이 저주스럽게 생각한 것도 우스운 일이 되고 마는 수밖엔 없었다. 그렇다고 이 근방에서 찾자면 이곳밖에는 급한 용을 채쓸 데도 없을 것 같았다.

짝패와 더불어 앉아 같이 하는 일이라면 무슨 우스개라도 하며 킬킬거리지 아니할 수 없을 내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나는 등을 우그리어 찢어진 호박잎 밑으로 들어보내듯 하며 상상하였다. 누가 내라고 해서 낸 것도 아니요, 누가 따라 오라고 해서 시작한 거사도 아닌 이 일대 공동변소가 실로 어떻게 이렇게 요긴하고 눈살 바르고 적당한 장소에 만들어져 있을 수 있겠는가 - 물론 하필 나라고 해서 특별히 지목해 보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러나 바지를 추켜 올리고 허리끈을 매는 내 얼굴은 아무래도 붉어지지 아니할 수 없음을 느끼었다.

공지와 새표가 되는 광장 두드러진 기슭 아랫길을 따라 내려가면 허방이 끝이 나는 곳에 여관으로 이층 벽돌집이 서 있고, 이 집을 한 채 지나쳐 바른손으로 꺾어 들어간 골목길은 서너너덧 집 지날까 말까 하여 다시 작은 십자 길에 와 부딪친다. 모두가 일본 집들이었다. 어디를 가나 그랬던 것처럼 이곳도 정거장의 정면과 그 뒷골목이 될 만한 십자 길을 중심으로 하고 팔월 십오일 전에는 철도 여객들을 상대로 하는 여관이며, 과일전이며, 식료품 잡화상 같은 것이 번성한 장사를 하였을 듯한 흔적이 아직 군데군데 완연히 남아 있었다.

낮에 수성서 들어와서 점심을 사먹고 둘러나오던 역로순을 따라 하나미치를 따라 내려온 나는 여관 골목을 들어서서 십자 길을 바른편으로 꺾어 고쳐 정거장 쪽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니, 허방공지의 눈이 널려 있는 쇠스랑길을 건너오면 지름길이 되는 곳에 음식의 점포는 늘어 놓여 있는 것이었다.

점포라 했대야 물론 그것은 비바람조차 막지 못할 판장쪽이나 하다못해 삿때기. 가마닛장 같은 것을 둘러친 잠정적인 단순한 상권(商圈) 표지(標識)에 불과한 것들이어서 이나마 권세에 미치지 못하는 패거리들은 엿장사며, 떡장사며, 지짐이. 두부. 오징어. 성냥, 담배, 비누, 비스킷, 옥수수 삶은 것 -구운 것 -사과. 배 같은 것을 맨땅 위에 나무판때기나 종이쪽지에 벌여놓기도 하고, 광주리에 담은 왜 이런 빈약한 점포들을 의지하여 길 옆에 쪼그리고 앓아서 손님을 부르는 남녀노유들.

이 현황잡다한 풍물 속에 이날 한나절을 보낸 일이 있는 나는 너무나 고조곤한 쓸칠 듯한 쌀쌀한 공기 속에 새삼스러이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어 옷깃을 세우지 아니할 수 없었다.

한 잔 하고 가나.

낮에 오래간만으로 돼지고기에 생선에 매운 무나물까지 받쳐서 처음으로 배껏 먹어본 이래론 여지껏 먹은 것도 없으려니와 전신이 바싹 오그라들고 가다들어(빳빳하게 되면서 오그라들다) 무엇에 닿으면 닿는 대로 부서져 으스러질 것 같은 을씨년함을 나는 어찌하는 수 없었던 것이다.

길 위에 노점을 하러 나온 사람들은 벌써 하나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십자 길로부터 노점 지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음식의 점포가 늘어선 첫 골목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곳에도 불은 모조리 꺼지고 말아서 양 줄로 선 가지각색의 빼럭(바라크, 판자집)들만이 서늘한 저녁 공기 속에 마주 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발을 옮기어 둘째 골목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이곳도 역시 파장인 듯하였다. 바른편으로 서너 집을 앞서 오직 한집 촛불이 크게 흐늘거리며 춤을 추는 가운데 중년이 넘었을 남녀의 침착한 두덜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왔으나 그 소리마저 광주리에 그릇들 옮겨담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고는 가슴에 습래하는 일층 헛헛하고 낙망적 인 생각을 금하지 못하였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이때 나는 그 속을 안 들여다보고 지나쳐갈 수도 없었다. 마나님일 듯한 찬 오십이나 되었을까 한 여편네가 한복판에 두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서 주머니 끈을 풀어헤친 채 이날 수입된 지전들을 정성껏 헤고 있었다.

헤던 손을 뚝 그치고는 간간 그도 무엇인가 중얼거리거니와 그것을 흘깃흘깃 곁눈질하기에 정신이 팔린 그 남편 될 듯한 사내도 무엇인가 두간두간 두덜거리기를 마지아니하며 반 허리를 굽힌 채 그릇들을 광주리 속에 챙기고 있었다.

주저앉으면 안될 것도 없을 성싶었으나 그제는 딱 먹을 용기가 나지 아니하는 광경만으로도 되돌아서 지나쳐 나와버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리하여 나는 돌고 돌아 더듬거리어 나오던 끝에 이상하게도 낮에 수성서 들어와서 돼지고기에 생선에 매운 무나물을 맛있게 받쳐 먹은, 빼럭 행렬 거지반 끝 골목 되는 그 할머니가게에 당연히 돌아들어야만 했던 것처럼 돌아들게 된 것이었다.

할먼네 무나물 못 잊어 왔습니다.

선을 보이고 앉았는 처녀 모양으로 할머니는 보이얀 김이 몰큰거리는 솥 옆구리에 단정히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무엇인지 한참 정신이 팔리고 있었다.

고기 있거든 고기에 술도 한잔 주시고요.

한 장으로 된 좁고 긴 나무판자 상 앞에 내가 털썩 주저앉음과 동시에 할머니는 비로소 정신이 드는 듯이 주저앉는 나를 쳐다보고,

, 어서 앉으시오.

하고는 언제 왔었던 손님이려니 하는 어렴풋한 기억만을 더듬는 모양으로 입에서 긴 담뱃대를 떼 내었다.

역시 바람이 있었던지 솥구막 가까이 납작한 종이에 피어나는 기름불은 유달리 흐늘거려 앉은뱅이 춤을 추면서 제가끔 광명과 그늘을 산지사방 벽에 쥐어 뿌리었다. 굴은 빛보담은 더 많은 그늘들을 일으키어 그것에 생명을 주어 무시로 약동하게 하고 또 무시로 발광하게 하는 듯하였다. 그래서 이 작은, 의지할 데가 없는 빼럭의 기둥이 되고, 주추가 되고, 천반(천장)이 되는 몇 개의 나무판자와 가마니때기와 그 외의 모든 너슬개미들을 모조리 핥아 없애려는 듯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남을 핥아 없애지도 아니하고 제 자신 꺼져 없어지는 법도 없이, 다만 사람의 가슴속에 무엇인지 모르는 은근한 한줄기 불안을 남겨놓으면서 조용한 가운데 타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오래 앉아 계서요, 혼자서, 할머니.

물론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궁금하지 아니할 수 없는 생각이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가슴 한 모퉁이에서 일어나는 불안의 그늘들을 눌러 가라앉히기 위하여 무엇이든 씨부리지 아니할 수도 없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밤마다 이렇게 오래 남아 계서요, 할머니.

밤마다이라면 밤마다이지만 잠 안 오는 게 소시적부터 버릇이 되어서요.

할머니는 국솥에서 한 사발 국을 잘 떠서 상 위에 올려놓고 됫병을 잡아 그 속에 담긴 반 이상이나 남은 투명한 맑은 액체를 컵에 기울여 부었다.

나는 찬 호주(수수소주)의 반 모금이 짜릿하게 목구멍을 지나 식도를 적셔 내려가 뱃속에 퍼지는 것을 맥을 짚어보는 것처럼 분명히 짐작하여 알며, 할머니의 무엇인지 풍성한 의미가 없지 아니할 듯한 이 -잠 안 오는 버릇-이란 금맥(金脈)을 찾아 들어갔다.

소시적부터이시라니, 할아버니랑 아드님이랑은 다 어디 가시구요.

다 없답니다.

없으시다니, 그럼 혼자세요?

더운 국 덕으로 뱃속에서 잘 퍼지기 시작하는 호주의 힘을 빌려 물어보지 아니하여도 이미 분명한 물음들을 나는 일부 이렇게 물어보았다. () 안 어느 구석을 쳐다보나 어둑신하지 아니한 곳이라고는 없었으나, 벌써 한 잔 들어간 이제 내 눈에 마음을 엎누르는 음침한 데는 한군데도 뜨이지 아니하게 된 것이었다.

아이들 두어서넛 되던 건 이리저리 하나둘 다 없어져버리고. 내 갓 서른 나던 해.

노인은 담뱃대를 입에서 빼어들고 가느다란 연기를 입에서 내뽑으며 뚝 말을 끊쳤다가,

갓 서른 나던 해 봄에 올해 스물여덟 났던 애가 뱃속에 든 채 혼자 되었답니다.

하였다.

네에.

---

그분은 어디 가셨습니까.

그것마저 죽어 없어졌지요.

그는 별로 상심하는 티도 정도 이상으로는 나타내지 아니하면서 태연히 다시 대를 가져다 입에 물려다가,

물으시니 말씀이지 한 달 더 참으면 해방이 되는 것을 그걸 못 참고 오 년 만에 그만 감옥에서 종시 죽고야 말았답니다.

나는 마주 얼굴을 쳐다보기도 언짢아서, 이러고는 남은 컵의 술을 마저 들이 마시었다.

해방이 되었는데 제 새끼래서 그런지 원래 아글타글 살 욕심을 남보다 더는 보이지 않든 애니만큼 다른 것들 때보다 가슴 아픈 것이 어째 덜하지 아니한 것만 같애 못 견디는 겁니다.

그는 잠깐만이라도 자기의 두 눈을 가릴 필요가 있어서 그랬던지 선뜻 일어나 등지고 앉았던 낮은 시렁 위에 놓인 됫병을 들러 갔다. 그리고 차마 묻지는 못 하나마 내심 내 요구임에는 틀림없는 것들에 대하여 노인은 암묵한 가운데 자연스러이 대답을 만들어 내려가며 그 됫병을 내어밀어 내 둘쨋번째 잔에 술을 따른 것이다.

보통학교는 어찌어찌 이 어미가 졸업을 시켜주었지마는, 벌써 졸업하던 해 봄부터 붙들려가기까지 꼭 십 년 동안을 죽이 되나 밥이 되나 한날같이 이 에미와 함께 살아오면서 공장살이를 하다가 이 모양 되었으니! 저 포항동 너머 남의 방 한칸 얻어가지고요.

네에.

처음부터 이런 걸.

노인은 대 끝으로 국솥을 가리키며,

이런 걸 하던 것도 아니요, 어려서부터 배운 것도 아니지마는 그 애가 들어가던 해 여름, 처음 얼마동안은 어쩔 줄을 모르고 어리둥절해 있기만 하다가, 늘 그러구 있을 수도 없고 또 아이 몇 잃어버리는 동안에 생긴 잠 안 오는 나쁜 버릇이 다시 도져서 몇 해 만에 다시 남의 고궁살이를 들어갔지요.

네에, 그러세요.

그 긴 다섯 해 동안을 그저 모진 일과 고단한 잠만으로 지어 나아오다가 하루 아침은 문득 그것이 죽었으니 찾아가라는 기별이 감옥에서 나왔을 때에야 얼마나 앞이 아득하였겠어요.

그리셨겠습니다.

사람의 가죽은 질기다고 했습니다. 병과 액으로 앞서도 자식새끼 몇 되던 것 하나씩 둘씩 이리저리 다 때우기는 하였지마는, 그런 땐들 왜 안 그럴 수야 있었겠나요마는, 이제는 힘을 줄 데라고는 하나 남지 않고 없어지고. 그것 하나만 믿고 산다 한 그놈마자 죽어 없어졌는데도 사람의 목숨은 이렇게 모지른 것이니.

마음이 제법 단단해 보이던 그도 한번 내달으니 비로소 젊은이 앞에서 긴 한숨을 걷잡지 못하였다. 여기서 처음으로 나는 그를 위로할 기회를 얻었으므로

그럼 어떻게 하십니까. 그러고 가는 사람도 다 제 명이 아닙니까.

하여드리니까 그는,

하기야 명이지요. 하지만 명이란들 그럴 수야 있습니까. 해방이 되었다 해도 갇히었던 사람들은 이제 살인강도 암질라도 다 옥문을 걷어차고 훨훨 튀어 세상에 나오지 않습니까.

하였다.

부질없는 말로 이가 어째 안 갈리겠습니까 - 하지만 내 새끼를 갖다 가두어 죽인 놈들은 자빠져서 다들 무릎을 꿇었지마는, 무릎 꿇은 놈들의 꼴을 보면 눈물밖에 나는 것이 없이 되었습니다그려. 애비랄 것 없이 남편이랄 것 없이 잃어버릴 건 다 잃어버리고 못 먹고 굶주리어 피골이 상접해서 헌 너즐때기에 깡통을 들고 앞뒤로 허친거리며, 업고 안고 끌고 주추 끼고 다니는 꼴들 - 어디 매가 갑니까. 벌거벗겨 놓고 보니 매 갈 데가 어딥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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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서 오셨다니깐 혹 못 보셨는지 모르지마는, 낮에 보면 이 조그마한 장터에도 그 헐벗은 굶주린 것들이 뜨문히 바닥에 깔리곤 합니다. 그것들만 실어서 보내는 고무산인가 아오진가 간다는 차가 저기 와선 채 저 차도 벌써 나 알기에 닷새도 더 되는가 봅니다만. 참다참다 못해 자원해 나오는 것들이 한 차 되기를 기다려 떠나는 것인데, 닷새 동안이면 닷새 동안 긴내 굶은 것인들 그 속에 어째 없겠어요.J

그러지 아니하여도 나는 할머니의, 아까 그것들이 업고. 안고, 끼고 다닌다는 측은한 표현을 한 것으로부터, 낮에 수성서 들어오는 길로 맞닥뜨린, 사람이 복작거리는 좁은 행상로 위에 일어난 한 장면의 짤막한 신을 연상하기 시작하는 중이었는데. 노인은 이러고는 말을 끊고 흐응 깊은 한숨을 들이쉬었다.

참으로 그 일본여자는 업고, 달고, 또 하나는 손을 잡고, 아마 아오지 가기를 기다리는 차에서 기어 내려온 듯 폼 가까운 행상로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허옇게 퉁퉁 부어오른 나체, 기름때에 전 걸레 같은 헝겊조각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업고, 달리우고, 잡힌 채, 길 바추(울타리)에 비켜 서 있었다. 머리를 동인 것만으로는 휘둘리우는 몸을 어찌할 수 없다는 모양으로, 골살을 몇 번 찌푸렸다가는 펴서 하늘을 쳐다보고, 또 찌푸렸다가는 펴서 쳐다보고 하기를 한참이나 하며 애를 쓰는 것을 자기는 유심히 건너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는 정신이 들었는지 지척지척 걸어 들어와 광주리며, 함지며, 채두렝이(채둥우리) 같은 데에 여러 가지 먹을 것을 담아 가지고 나와, 혹은 섰기도 하고, 혹은 앉았기도 한 여인 행상꾼들 앞을 지나쳐 오다가 문득 한 여인 앞에 서서 발부리에 놓인 광주리의 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 개에 오 원씩.

행상의 여인네는 허리를 꾸부리어 광주리에서 속에 담기었던 배 한 개를 집어들고 다른 한 손을 활짝 펴서 일본인 아낙네 눈앞을 가리우매, 아낙네는 실심한 사람 모양으로 한참동안이나 자기 눈앞을 가리운 활짝 편 그 손가락들을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뒤에 달린 일여덟 살 난 사낼미가 엉것 바치를 움켜잡고 비틀 듯이 앞으로 떠밀고 그보다 두어 살이나 덜 먹었을, 손을 잡혀 나오던 어린 계집아이가 어미의 손을 끌어당기었다. 그리고 업힌 것이 띤 띠개에서 넘나와 두 손을 내어뻗으며 어미의 어깨 너머를 솟아오르려고 한다.

이것들이 이렇게 야단이 야요.

세 어린 것의 어머니는 참다 못하여 일본말로 이러며 고개를 개우뜸하고는 행상여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애걸이 없었다기로니 이것들이 어찌 그것만으로 덜 비참할 리가 있을 정경이었을 것이냐.

그 위에 물론 그것만은 아니었다.

고기잡이 아이를 갯가에서 내려오다 떨기우고 나서 제철소 옆을 지나 혼자 걸어오다가 일본사람들 때문에 만든 특별구역 가까이 하 다다랐을 때 그 아랫동네 우물에 몰켜들어, 방틀에 붙어 서서 주린 창자에 찬물을 몰아넣고들 섰는 광경 - 한 사내는 더운 약 받아들 듯 냉수 한 그릇을 손에 받아들고 행길가 풀숲에 펼치고 하늘을 쳐다보고 앉아서 한 모금씩 그것들을 목 넘어 넘기고 있었다. 허겁진 얼굴에 한바탕 꺼벙칠을 해 가지고 긴 머리는 뒤헝클릴 대로 뒤헝클리어 힘없는 부인 눈으로는 먼 하늘가를 바라보며.

그 종자가 그렇게 될 줄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안 그렇든들 그것들이 다 죽일 놈들이 었겠어요만.

별안간 계속되려는 할머니 말씀에 나는 술잔 앞에 머리를 박고 수그리고 앉아서 끄덕이고 있던 내 머리를 정신을 들여 을리키어 들었다.

이번에 난 참 수타 울었습니다,,,,,, 우리 애 잡혀가던 해 여름, 가토라는 일본 사람 젊은이 하나도 그 속에 끼어 같은 일에 같이 넘어갔지요. 처음엔 몰랐다가 그해 가을도 깊어서 재판이 끝이 나자 기결감으로 옮겨가게 된 뒤 어느 날 첫 면회를 갔다가 그런 일본 사람하고 같이 간 줄을 집 애 입에서 들어 알았습니다. 겨울에 들어서서 젊은이는 원산으로 이감을 가게 되었는데, 집 애 말을 좇아 가면서 입으라고 옷 한 벌을 지어 들고 갔더니 그때 우리 애 하는 말이 가토라는 사람은 집은 있으되 집이 없어서 온 사람이 아니요, 먹을 것이 있으되 제 먹을 것 때문에 애쓸 수 없던 사람이다, 그렇다고 물론 건달을 하려고 건너온 사람도 아닌 것이니 자기하고 같은 일에 종사했으나 거지도 아니요, 도둑놈도 아니요,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이라고 그러지요. 그럼 무엇이 죄냐 - 일본 사람은 일본 바다에서 나는 멸치만 잡아먹어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다고 한 것이 죄다, 어머니, 멸치만 잡아먹어도 산다는 말을 아시겠어요? 하였습니다.

네에!

누가 무엇 때문에 누구 까닭으로 싸왔는지 그건 난 모릅니다. 하지만 내 아들이 붙들려는 갔으나마 죄 아님을 못 믿을 나는 아니었으므로 응당 당장에 해득했어야 할 이 말들을 오 년 동안을 두고도 해득치 못하다가. 이제야 겨우, 오늘에야 겨우 해득한 것입니다. - 그 종자들로 해서 어떻게 눈물이 안 나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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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가 원산으로 간 것은 첫눈이 펄펄 날리는 과히 춥지는 아니하나 흐린 음산한 날이어서, 나는 새벽부터 옥문전에 가 섰다가 배웅을 해주었는데, 간 후론 물론 나왔다는 말도 못 듣고 죽었단 말도 못 들어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죽지 안했으면 이번에 나왔을 겁니다. 저것들이 저, 업고, 잡고, 끼고, 주룽주룽 단 저 불쌍한 것들이 가토의 종자인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없겠으니 어떻게 눈물이 아니 나,,,,,,

이때 갑자이 불이 껌풀 하는 느낌과 함께 노인의 말이 중도에 뚝 끊기며 고 부드러운 두 눈동자를 치뜨키어 내 머리 위로 문밖을 내다보는 바람에 나도 스스로 일어나는 불의의 감각에 이끌리어 몸을 돌이키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머리 밑을 지나가는 쌀랑한 한줄기 감촉이었다. 그리고 찰나적이었으나마 참으로 겨우 소리를 지르지 않을 정도로 놀라 멈칫 부동의 자세에 나를 머물러 세우게 한 강강한 한 느낌이었다.

꺼풀을 뒤집어 쓴 혼령이면 게서 더 할 수 있으랴할 한 개의 혼령이 문설주이기도 하고 문기둥이기도 한 한 편짝 통나무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더부룩이 내려덮인 머리칼 밑엔 어떤 얼굴을 한 사람인지 채 들여다볼 용기도 나지 아니하는 동안에. 헌 너즈레기 위에 다시 헌 너즈레기를 걸친 깡똥한 일본사람들의 여자 옷 밑에 다리뼈와 복숭아뼈가 두드러져 나온 두 개 왕발이, 흐물거리는 희미한 기름불 먼 그늘 속에 내어다 보였다. 한 팔을 명치 끝까지 꺾어 올린 손바닥 위에는 옹큼한 한 개의 깡통이 들리어서 역시 그 먼 흐물거리는 희미한 불 그늘 속에서 둔탁한 빛을 반사하고 있으며 -

저겁니다.

할머니는 떨리는 낮은 목소리로 불시에 이러하였다. 낮으나 그것은 밑으로 흥분이 전파하여 들어가는 날카로운, 그러나 남의 처지에 자기의 몸을 놓고 생각하는 은근한 목소리였다.

저것들입니다.

이렇게 되뇌는 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어 노인이 밥 양푼에서 밥을 푸고 국솥에서 국을 떠 붓는 동안 잔 밑바닥에 남은 호주의 몇 모금을 짤끔거리며 입술에 적시고 있었다.

이 불의의 손이 밥을 다 먹을 때를 별러 나도 내 술의 끝을 내기는 하였으나 끝이 났다고 곧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서기에는 이때 나는 너무나 공포에도 가깝다 할 심각한 인상을 가슴속에서 떨쳐버릴 길이 없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슴 한 귀퉁이에 새로 돋아 나오는 흥분의 싹인들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잔 더 주세요.

나는 바닥이 마른 내 술잔을 내어 밀어 할머니에게서 셋쩟잔의 호주를 받아들었다.

아오질 기다리는 차에서 내려온 겁니까?

그렇답니다.

할머니 대답에 나는 잠잠하였다. 그러고 셋쨋잔 첫 모금으로 혀 위에 남는 호주의 쓴 뒷맛을 나는 잡은 채로 몇 번 다시어 보았다.

밤마다입니까?

밤마다입니다.

오는 게 늘 오겠습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정 할 수 없어서 기어 내리는 것들이요, 또 너더댓새에 한 차씩은 떠나가니까요.

나는 잔을 들어 넷쨋번 모금의 술을 마시었다. 관자놀이 위의 핏대가 불끈거리고 온 전신의 혈관이 부풀어 일어나 인제는 완전히 술이 돌기 시작함을 나는 활연한 기분 가운데서 느끼었다.

하지만 아무리 잠이 아니 오시더라도, 밤을 새시고 앉아 계시는 건 아니겠지요.

웬걸이오, 못된 버릇으로 해서 아무래도 새지요. 그 대신 낮에 잡니다.

내가 잠자코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계속될 그의 말을 기다리매,

우리 나라도 안적 채 자리가 잡힐 겨를이 없어서 기렇지, 인제 딱 제자리가 잡히고 나면 나 같은 노폐한 늙은 것이야 무슨 소용이 있는 겁니까. 무용지물이지요. 무엇이 내다보이는 게 있어서, 무슨 근력이 나겠기에, 아글타글 돈을 벌 생각이 있어 그러겠습니까마는, 이렇게 해가다 벌리는 게 있으면 가지고 절에 들어갈 밑천이나 하자는 거지요, 없으면 구만두고. 그러노라면 세상도 차차 자리를 잡아 가라앉을 터이고, 그렇지 않아요 - 뭣을 어떻게 하자고 무슨 욕심이 복받쳐서 허둥지둥이야 할 내 처지겠어요. 이렇게 내가 나온다니까 해 방이 된 오늘에야 왜 뻐젓이 내어놓고 자치회라든가 보안대라든가 안 가볼 것 있느냐 하는 사람도 없지 않었지마는, 이 어수선하고 일 많은 때에 그건 무슨 일이라고 ,,,

무슨 일이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당연히 할머니께서야 그리서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러지 안해도 우리 집 애하고 가깝던 젊은이들이 요새 모두들 무엇들이 되어서 부득부득 끌고 갈려는 것을 내가 안 들었지요. 그런 호산 내게 당치도 아니한 거려니와 그렇지 않단들 생눈을 뻔히 뜨고야 왜 남에게 신세 수고는 끼칩니까. 반평생 돌아본들 나처럼 가죽 질긴 늙은이도 없는가 했습니다. 이 질긴 고기를 좀더 써먹다 죽으리라 싶어 나왔는데, 나와보니 안 나왔던 것보담 얼마나 잘했다 싶었는지요.

네에 네에,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러실 수야 있습니까.

뭘이오. 인제 앞이 얼마 남었는지 모르지마는, 이제 얼마 안 가서 쓸데도 없는 무용지물 될 것이, 그 동안에라도 무엇에나 뼈다귀를 놀리고 먹어야 할 거 아니겠어요. 또 안 그렇다면 이렇게 피난민이 우글우글하고 눈에 밟히는 것이 많은 때에 무엇이 즐거워서 혼자 호사를 하자겠습니까.

네에, 죄송합니다.

피난민도 형지 없이 어지러웠고 일본사람들도 과연 눈을 거들떠보기 싫게 처참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나, 생각하면 이것을 혁명이라 하는 것이었단. 혁명은 가혹한 것이었고 또 가혹하여도 할 수 없을 것임에 불구하고 한 개의 배 장사를 에워싸고 지나쳐간 짤막한 정경을 통하여, 지금 마주앉아 그 면면한 심정을 토로하는 이 밥장사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어떻게 된 배 한 알이며, 그것이 어떻게 된 밥 한 그릇이기에, 덥석덥석 국에 말아줄 마음의 준비가 언제부터 이처럼 되어 있었느냐는 것은 나의 새로이 발견한 크나큰 경이(驚異)가 아닐 수 없었다. 경이보다도 그것은 인간 희망의 넓고 아름다운 시야를 거쳐서만 거둬들일 수

있는 하염없는 너그러운 슬픔 같은 곳에 나를 연하여주었다.

나는 혓바닥에 쌉쌀한 뒷맛을 남겨놓고 간 미주(美酒)의 방울방울이 흠뻑 몸에 젖어들 듯이 넓고 너그러운 슬픔이 내 전신을 적셔 올라옴을 느끼었다. 그리고 때마침 네다섯 피난민들이 몸을 얼려 가지고 흘흘 거리고 들어서는 바람에 나는 자리를 내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술 먹은 다음날 버릇대로 나는 아침 채 날이 밝기 전에 눈을 떴으나 여관에서 조반도 못 얻어먹고 나간 것이 정거장에 와보니 어느 틈에 여덟 시가 벌써 가까운 시간이었다.

오늘 아침 일찍이 나가서 만가지 못하는 날이면 방은 이내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덟 시라면 나를 찾으러 일찍 나왔던 방이 단념을 하고 돌아갈 그리 늦은 시간도 될 것 같지는 아니하였다.

못 만날 사람이 되어서 방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차 형편을 보아서는 혼자서라도 떠날 생각을 하고 나온 나는 정식으로 둘러멘 륙크의 밑바닥을 두 손으로 받쳐가며 밤 사이에 씻기어나간 싱싱한 아침 공기 속을 플랫폼을 끝에서 끝까지 몇 번인가 오고가고 하였다. 그러나 방은 나서지 아니하였다.

궤도 위에는 어젯밤 와 닿은 두 군용차가 화통을 떼운 채 제 선로들 위에 그대로 차게 머물러 있고 분필로 아오지행이라고 썼던 지난밤 이래의 일본사람들 그 자원(自願) 차가 달랑 두어 동강부터서 떨어진, 먼 궤도 위에 팽개쳐 놓여 있었다.

머리도 없는 두 군용차 위엔 제가끔 어느 틈엔가 벌써 사람들이 올라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차는 좀처럼 떠날 기색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나는 폼에서 나와 철책을 뚫고 노점들 있는 쪽으로 내려왔다. 국밥 한 그릇쯤 먹고 가도 늦지 않을 여유는 있을 성싶었다.

회령서 방을 놓친 것이 불과 12초의 간격이었으면 청진서 방을 잡은 것도 그 12초의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인젠 혼자라도 떠날 결심을 한 나인자라 그 동안에 차 대가리가 어떻게 변덕을 부려도 안될 일이어서 나는 철책 석탄 잿더미를 타고 내려와 공지를 지나 행상로 골목길을 밟고 올라서서 제일 가깝기만 한 장국밥집을 찾아든 것이었다.

몇 초만 밥을 늦게 먹었어도 물론 안될 뻔하였지마는, 몇 숟가락 밥을 남겨놓고 일어났더라도 방을 붙잡는 일은 어려울 뻔하였다. 양치를 하고 돈을 치르고 내가 일어선 것은 방이 막 나무 판자로 된 정거장 임시 사무소 있는 쪽, 폼 마지막 기둥까지 왔다가 돌아서는 찰나이었다. 이 사무소와 기둥 사이 라야 불과 한간이 될까말까한 사이였으므로 나는 방이 걸어온 길을 돌아서서 그 사무소 뒤에 가려 없어지기 전에, 있는 소리를 다하여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역 임시 사무소와 폼 마지막 기둥 사이 한 간통의 좁은 공간 속에 우연히 들어선 그를 붙잡았다느니보다는, 그런 좁은 간간한 틀을 짜서 놓고 그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함이 옳으리만큼 우리의 상봉은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나는 새를, 잠깐 깃을 고르느라고 퍼덕이는 동안에 쏘아 떨어뜨린 경우인들 게서 더할 수는 없었다.

방선생.

방선생.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푸를 대로 푸르른 마가을 바닷빛 모양으로 이곳이 고향인 사람의 맏누님집을 향하여 걸어나가는 젊은 두 피난민의 마음은 한없이 부르고 또 한없이 부풀어올랐다.

이틀 밤을 방 누님 댁에서 자고 사흘째 되는 날은 아침 간다고 신포동을 내려 왔다.

간다고 내려는 왔으나 있을 둥 말 둥하였던 차는 역시 이날 없는 모양이어서 우리는 못 견뎌지는 모양하고 다시 거리로 들어와 여관을 정하고 거기 짐을 부리기로 하였다. 주을은 못 되었으나마 신포동 그래도 자그마한 목간통에서 목욕을 하고 위선 옷의 만돌린만이라도 털어놓고 내려온 우리였으니 절반은 짐이 덜린 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길림서 둘이 갈라 가지고 제가끔 시계 주머니와 허리춤과 양말 속 발바닥 밑 같은 데에 조심성스럽게 갈라서 감추어 가지고 떠난 몇천 원 돈도 이날 여관에 들어 이면수 프라이와 뜯은 북어와 배 해서 한잔 먹고 난 걸로 누구에게 한푼 배앗긴 것도 없이 이제는 아주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하면서도 무엇인지 모르게 우리의 어깨는 가뿐해진 것으로만 여겼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 같은 여관에 든 손님에게서 사실은 어제도 낮 지나 함흥 가는 차가 있었더라는 말을 듣고는 갑작스러이 다시 마음이 흐려짐을 느끼었다. 듣기 탓으로는 그렇게 날마다 차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음도 아니나, 완전히 마음을 놓아 안될 곳에서 마음을 놓고 흥청거렸다는 후회감으로 붙어 본다면 어젯일은 암만 하여도 불시에 마지막으로 속아넘어간 네미시스의 소작만 같아서 섬뜨레한 불안이 가시지 아니하였다.

어제도 차가 떠났다는 그 낮때가 지나서 부터는 우리의 이 불안도 차차 심각한 것이 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방과 나는 서로 번갈아 가며 짐을 보기로 하고 다시 시내로 들어가 흑 트럭과 같은 변벌이 있지나 않을까 하고 돌아다녀 보았으나 별 신통한 수도 없음을 알고는 정말로 몸이 풀림을 걷잡을 길이 없었다.

이러구 앉았댔자 부지하 세월이겠소. 며칠 정신 차려 기다리노라면 제 안 오겠소.

우리는 자시 이런 배짱 좋은 사람들이 되어 일어서서 나오지 아니할 수 없었다.

우리가 이날 밤 다시 정거장으로 나온 것은 그뒤 두어 시간이나 되어 해가 벌써 절반은 산 너머로 타고 넘어간 어슬어슬하기 시작하는 경각이었다. 아침 여관에서 나오면서 방의 론진 팔목 시계와 바꾸어 가지고 나온 육백 원 돈 중에서 배갈을 사이다 병에다 두 개나 사들고 들어와 한잔씩하고 저녁을 먹고 막 수저를 놓자고 하는데, 주인이 헐떡거리며 이층으로 올라와 하는 말이 차가 방금 뒤에서 나온 모양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차 타고 와 내린 손님들이 지금 우리 집에 들기 시작합니다.

하였다.

참으로 주인의 말대로 차는 정거장에 와 닿아 있었고, 또 이만하면 우리도 우리를 제일도 요행스러운 피난민으로 생각함이 아님은 아니었으나, 그러나 조급한 우리들의 갈증이 만족이 되리만큼 닥치는 대로 순조로웁게 일이 진행되는 것만도 아닌 듯은 하였다. 그 대신 우리는 오직 이러한 운불운의 부절한 기복 - 그 중에서도 측량할 수 없는 불운의 깊은 골짜기에서만 우리는 우리 가슴에 깊이 잠복해 있어, 하마터면 어느 결에 저절로 삭아져버려 없어졌을지도 몰랐을 뜻하지 아니하였던 그리운 소망들을 불시에 달할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라 하였다.

달고 온 군용차에서 떨어져 달아난 화통이 어디를 갔으며, 언제 돌아올 것인지 모른다는 불안성을 떤, 물론 이 구석 저 구석 차에 올라탄 사람들 입에서 우러나와 다시 이겨낼 수 없는 염증과 지리함이 우리들 가슴에도 내려앉으려 할 즈음에,

여보 천(), 어쨌든 우리는 내렸다 올랐다 하질 말고, 인젠 여기서 밥을 새더라도 기다려보기로 합시다.

하는 방의 말을 받아 나도 얼근히 술이 퍼진 기분을 빌려서,

내리기는 어딜 내려요.

하여, 방의 기운을 북돋고 나서,

헌데 흑 떠나게 될 때 다바이씨들에게 또 대접를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아까 사 가지고 들어갔던 집에서 사이다 병으로 내 두어 개 더 사 가지고 오리다.

하고는 도록코를 뛰어내려 다녀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술이 꼭 찬 사이다 병 두개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예전 개찰구로 쓰던 정면 문으로 들어서려 할 때, 나는 7, 8인 사람의 일행이 나를 받아 나오는 것과 마주쳤다. 이미 날이 어두워 들어가는 깊어진 황혼이 끝이 나려는 때인지라 얼른 눈에 뜨인 것은 아니었으나, 지내놓고 보니 패 중 제일 앞장을 서서 더펄거리고 나가는 더벅머리 소년의 뒷모양은 아무리 생각하여보아도 낯익은 차림차림이었다.

-그 독특한 더펄거리는 걸음걸이는 제쳐놓고라도 커서 과히 훌렁훌렁한 국민복에 저고리 소매와 바지를 걷어올린 것이 희게 손목과 발등에 나 덮인 것만 보더라도-

<어느 일본 놈을 또 잡아가는 것인가.>

폼으로 첫발을 옮겨 디디지도 채 못한 채 나는 홰 돌아서서 광장으로 사라져 나가는 그들- 포승을 진 키가 들숭날숭한 두 사내를 에워싼 7, 8인 사람의 한 그룹이 남실거리는 어둠 속에 사라지는 뒷모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유혹적인 걸음발이 몇 발씩이나 더들먹거려짐을 어찌하는 수 없었다.

이만한 정경을 배경으로 한, 이만한 포박의 장면 같으면 내 성질로서 신기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畵家) 되기를 결심한 이래 후천적으로 생긴 내 집요한 탐색벽으로 하더라도 이런 긴박한 경우에 이르면 이것쯤은 참으로 적은 평범한 호기심으로 떨어지고 말 성질의 것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 위에 그렇지 않고 남는 큰 놀라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내 가슴속에 부지불식간에 산 확고한 릴리프(浮彫)가 되어 그리웁게 숨어 있던 그 소년의 싱싱한 맑은 두 눈알의 홍채가, 산 자기의 실상(實狀)을 만나 발한 찬란한 섬광 때문이 아니면 무엇일 수 없었다.

참으로 고혹에 끌린 내 걸음발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이상 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나는 내려왔던 도록코에 올라가 방과 가지런히 그 위에 실은 자동차의 찬 몸뚱아리를 기대고 앉았다. 언제 이렇게 어두워졌던가 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니 그러지 않아도 그믐밤이 아니면 그믐 전날 밤, 그믐 전날 밤이 아니면 하루 더 전날 밤밖에는 더 못되리라 한, 어쨌든 그믐밤을 앞에 놓고 움직거리지 못하는 밤하늘에 어느 결엔가 구름조차 한불 깔린 것이 치떠 보였다. 그것은 이마가 선뜻거리어 더는 잠시도 쳐다보기에 견디지 못할 것들이었다.

여보 방선생. 하고 나는 방을 불렀다. 고리고 비로소 처음으로 수성 이래 나 혼자의 비밀로 되어 있던 소년의 이야기를 자초지종부터 하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방은 정색을 하여 나를 돌이켜보고,

건 참 철저한데.

하며,

하지만 아까 누구한테 들으니까 부령에선가 어디에선가 무슨 구데타가 있었대.

하였다.

무슨 쿠데타?

여기서 하는 쿠데타에 무슨 글 쿠데타가 있을라구 ,,,.,. 썩어빠진 전직자들이 그래도 물을 덜 흐려서 나쁜 짓들을 하고는 교묘히 먹물을 뿜어놓고 돌아다닌다는군. 해서 어제 오늘은 그것들을 잡느라고 이 정거장에도 한불 깔렸댔대. 그리구서는 몰래 서울루 도망질을 쳐 간다니깐.

으응.

그러니 깐 아까 꽁여갔다는 그자들도 혹 그런 것들이었는지도 모르지. 당신은 그런 데까지는 참견할 리가 없을 애라고 하지만 그건 몰라요. 그녀석이 보안대 김선생이 어쩌니 어쩌니 했다면서 - 연락이 있다고만 하면 그런 사람들의 일에도 어른만으로는 감당 못할 일이 없지 안해 있거든.

듣고 보니 그럴 성싶은 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사람이건 조선사람이건 또 무슨 일로 꽁여간 것이건 간에 내게 큰 상관될 것은 없었다. 지금껏 내 가슴속에 엉기어진 그 소년에 대한 형용하기 힘든 모든 인당은 그걸로 말미암아 어떻게 될 성질의 것은 못되는 것이었다.

다시 쳐다보는 밤하늘은 이미 이제는 이마가 선뜻할 겨를도 없이 어느 틈엔가 일면 진한 칠빛이 되어 있다가 쳐다보는 내 가슴 위를 불현듯이 무거웁게 내려 덮고 말았다. 양복바지 무릎을 뚫고 팔소매 끝과 목덜미 너머로 숨을 들이켠 밤 바람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노년으로 말미암아 머릿속에 켜진 아주 꺼지지 아니하려는 현황한 불길들에 시달리어가며. 나는 그러안은 두 무릎들 틈에 머리를 박고 허리를 꾸부리어 댄 채, 오직 꾸부리고 옹크린 덕분을 빌려 억지스러운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청한 잠이 들기는 하였는데, 얼마를 잤던 것인지는 모르나마, 눈이 뜨였을 때는 방이 소련병과 마주 서서 제가끔 주어가며 받아가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보아, 무엇인지 한 담판 끝낸 순간인 듯하였다. 그는 소련병에게서 도로 돌려 받은, 그래도 제법 잘 써먹기는 했으나 노서아말로 된 것이란 이외로는 별 대단할 것도 없는 증명서를 양복저고리 안 포켓에 집어넣으며 웃으며 무시로 고개를 끄덕거리었다.

두 소련병 중 하나는 내가 앉아 있는 자동차의 전 차체(車體) 둘레와 도록코의 구석구석을 회중 전등으로 돌려 비추어 보였다, 어느 결에 내쫓은 것인지 방과 나와 두 소련병을 내어놓고는 토록코 위의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음을 나는 그 쨋쨋한 회중 전등 불빛 속에 돌아보았다.

아마 떠나기는 하는 모양인가,,,,,, 한데 여기 사람들은 다 어디를 갔소?

내가 스러들어가려던 어깨를 들추어가며 이렇게 물으니,

쫓겨 내려가서 저쪽 차 지붕 위에들 모두 올라가 달라붙는 모양인데 그걸 못 하게 하느라고 지금 소련병이 야단인 모양이오.

하며, 방은 그 긴 턱주가리로 차 꽁무니 쪽을 가리키었다.

왜 거기꺼정이야 못 타게 해.

아마 밤중이니까 낮과도 달라서 졸다가 사람 상하는 일이 있어도 안될 테니깐 그러는 게지.

몸을 떨치고 일어나서 보니 과연 까맣게 내려다보이는. 아마 이 차 마지막으로 달렸을 두어서너 개 유개화차 지붕 위에는, 강한 서치라이트와 같이 불길이 잘 뻗는 군인용 회중전등 집중적인 불빛 속에 사람들이 앞뒤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것이, 자주자주 갈리는 먼 환등 속같이 건너다 보였다. 이리저리 몰리는 사람들의 무리를 따라 불을 비쳐가며 쫓아 몰아대는 것인데, 두터운 구름이 내려 덮인 그믐밤 하늘이다. 중공(中空)에서 끊어진, 끝이 퍼진 그 불꼬리들 밑에 전개하는 이 혼란 광경은 무심히 바라볼 사람들에게는 음침한 처절한 짓들이었다.

SOS를 부르는 경종(警鐘) 속에 살 구멍을 찾아서 허둥거리는 조난 군중의 참담한 광경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환각이 잠이 잘 아니 깨인 어리둥절한 내 머리에 어른거리었다.

그러자 우리가 이제로부터 가야 할 방향에서 축축거리며 화통의 접근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어느 결에 털그덕 하고 그것은 우리 차체에 와 부딪치었다.

이윽고 화통은 삼십여 칸도 더 달았을 긴 우리의 차를 잡아당기었다. 그러나 몇 바퀴 채 굴러가지도 못해서 그것은 다시 털그덕 하고 제자리에 서고 말았다,

떨려내린 피난민들이 자꾸 차 떠나는 틈을 타서 매어 달리는 모양이야.

눈이 멍해서 자기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고 앉았는 나에게 차 꼬리를 향하여 앉은 방이 먼 중공을 바라보며 입을 쩝 다시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다시 자리에서 내가 일서나 돌이켜보매 아까 꺼졌던 회중 전등의 강한 불빛이 방이 바라보고 앓아서 중얼거리던 중공 하늘 아래 유개화차 지붕 위에 있음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인차(이내) 주르르 하는 다발총의 연발하는 총소리가 귓봉오리를 울려왔다. 물론 빈 공포이었으나 쫓아가는 스포트라이트의 집중된 불빛 속에 드러난 것은 차 꼬리를 향하여 도망질치는 무수한 군중의 뒷모양뿐이었다. 내 몸에 와 닿는 똑같은 종류의 서치라이트와 다름이 없이 내 가슴도 선뜻선뜻하고 펄럭펄럭 하였다.

차는 다시 떠났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떠날 수가 없어서 더 몇 번인가 이러한 장면이 반복된 뒤에, 그러나 역시 종내 떠나기로 되었던 군용차는 아무렇게 해서라도 떠나기는 하였다.

서치라이트로 몇 번 가슴이 선뜻거린 데다가 이렇게 수없이 털그덩 거림을 받은 덕분으로 나는 아주 잠이 깨어서, 떠나는 화물차 모서리에 기대어 섰다.

서른 몇 개나 되는 차 체인을 화통이 잡아다니는, 털그덩 소리가 몇 개로 짤막하게 모디어 (모이어) 나고는 차는 차차 본 속력을 내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몇 칸째 아니되는 우리의 찻간은 어느 틈에 시력이 이를 곳으로 까아맣게 칠하여 놓이지 아니한 곳이 없는 어두운 공간 속에 오직 한 개의 표적이 될 만한 높은 휜 급구대를 지나 몇 개나 되는지 모르는 눈거풀 아래에서만 알쏭알쏭하니 지어져 들어가는 전철(轉轍)의 마지막 분기점까지도 지나쳐 오는 것이 차바퀴의 덜컹거리며 한곳으로 굴러 모여드는 소리로 분명히 지각되었다

오래간만에 막히었던 가슴이 뚫려져 내려가는 활연함을 나는 느끼었으나, 그러나 이 소리는 또한 나에게 내 가슴속에 고유하니 본성으로 잠복해 있는 내 구슬픈 제삼자의 정신을 불러일으키었다. 두터운 구름이 내려 덮인 그믐밤중, 언제나 복구될는지 모르는 광야와 같이 골고루 어두운 어두움 속제 싸여서 그것이 응당 차지하고 있을 만한 위치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나는 뒤떨어지는 청진의 거리들을 내 흉중에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방은 이 땅이 우리들 여정(旅程)의 절반이라고 하였지마는, 설혹 지내온 것이 절반이 못된다 하더라도 내게는 이미 내 가슴 가운데 그려진 이번 피난의 변천굴곡은 여기서 다 완결된 거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이상 고생스러운 험로를 몇 갑절 더 연장해나간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이외의 더 색다른 의미를 찾기는 어려운 일일 듯하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내 피난 행은 여기서 완전히 끝이 난 모양으로 나는 쌀쌀한 충분히 찬() 나로 돌아왔다,

다만 나는 이때 신포동서 다시 거리로 내려왔던 이 일 양일지간에 그러자고만 하였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가 있었을 일을 어째 한번도 그 할머니 - 그 국밥집 할머니를 찾아가 보지 못하고 왔던가 하는, 벼르고 벼르다가 못한 일보다도 더 걷잡을 길이 없는 내 돌연한 애석함을 부둥켜안고 어찌하지 못해함을 나는 불현듯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것은 제 궤도에 들어서서 본 속력을 내기 시작한 우리들의 차가 레일 위를 열십자로 건너매인 인도(人道)의 구름다리마저 뚫고 지나 나와 바른손에 바다를 끼고 밋밋이 돌아나가는 그 긴 마지막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이었다.

지금껏 차 꼬리에 감추어져 보이지 아니하였던 정거장 구내의 임시 사무소며 먼 시그널의 등들이 안계(眼界)에 들어오는 동시에. 또한 그것들이 거리마저 차차 멀리 떼어놓으며 우리들의 차가 그 긴 모퉁이를 굽어돎을 따라 지금껏 염두에 두어보지도 아니하였던 그 할머니 장막의 외로운 등불이 먼 내 눈앞에서 내 옷깃을 휘날리는 음산한 그믐밤 바람에 명멸하였다. 그리고 그 명멸하는 희멀금한 불빛 속에서 인생의 깊은 인정을 누누이 이야기하며 밤새도록 종지의 기름불을 졸이고 앉았던, 온 일생을 쇠정하게 늙어온 할머니의 그 정갈한 얼굴이 크게 오버랩이 되어 내 눈앞을 가리어 마지아니하였다, 그 비길 데 없이 따뜻한 큰 그림자에 가리어진 내 눈몽아리들은 뜨거이 젖어들려 하였다. 그리고도 웬일인지를 모르게 어떻게 할 수 없는 간절한 느껴움들이 자꾸 가슴 깊이 남으려고만 하여서 나는 두 발뒤꿈치를 돋을 대로 돋우고 모자를 벗어들고 서서 황량한 폐허 위, 오직 제 힘뿐을 빌려 퍼덕이는 한 점 그 먼 불 그늘을 향하여 한없이 한없이 내 손들을 내어 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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