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하 의 안 개 –호영송
말(言)은 고작 엉성한 그물에 불과합니다. 그 그물로 행위 또는 행위의 진실을 건지려고 했을 때 잡으려던 고기(魚)는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손을 그릇 삼아 샘물을 떠 마셔 본 적이 있으시죠? 물은 이미 손가락 틈으로 다 새어 나가고 아주 조금의 물이 입술과 혀를 축여 줄 뿐 아닙니까. 네? 말의 유희(遊戱)라고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점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혓바닥과 입술을 나불대어 또는 종잇장 위에 펜으로 뭘 좀 끄적끄적해 보았자, 고트프리트 벤이 그의 시행(詩行)을 재주껏 전개시켜 보았자 그의 시행들은 그의 독자들에 의해서 말장난이라고 걷어 채이고 마는 일도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고트프리트 벤의 정신의 진실은 어디 있겠으며 그의 행위와 삶의 궁극적 가치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절망적이지요. 말의 유희에 떨어지지 않고 혹은 말려들지 않고 행위의 진실, 사실의 사실됨을 선생께 전달한다는 일은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여하튼 계속하라구요. 그리고 내 말은 어떻든간에 선생이 나의 행위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구요. 아, 술요? 그 술을 조금 주시렵니까. 아, 혀를 쏘는 맛이 고럴 듯하군요. 많이는 못합니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네 ? 뱀을 진에 담구었던 것이라구요? 그거 묘한 컴비네이션이군요. 그런데, 저 창문을 좀더 열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제껏 나는 말의 허망한 유희적 숙명, 말과 진실과의 상대적 갈등에 대해서 지껄여 왔읍니다만 실은 나의 싸움이란 것이 다름 아닌 말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소문과 싸워 왔습니다. 그 소문 또는 풍문이라는 괴물은 사실의 사실됨, 사실의 진실됨을 배반하고 제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겁니다. 소문은 거기 있었으며 그것은 가만히 거기 있지만 않고 부패한 시체를 빨아먹는 파리떼처럼 들러붙어 끈덕지게 웅웅거리고 또 곪은 상처에 입맞추고 그것의 냄새를 즐기고 그것의 썩어문드러짐을 축하하고 그리고 보다 많은 파리들을 불러모아 보다 썩어문드러짐을 즐기는 그런 꼴로 기승을 부렸습니다. 혹은 여름밤의 어둠을 온통 채우는 개구리 울음 소리 같은 또는 수만 개의 자갈들이 서로 마찰하며 다시 마찰하는 그 소리 같은 기승을 떨면서 소문은 불어나고 저희끼리 부딪치고 교합(交合)하면서 지친 듯하다가 다시 커지고 불어나고 했던 것입니다.
내가 오토레 수상(首相)의 부름을 받은 것은 어느 따사로운 봄날의 오후였습니다. 숲은 천성(天性) 의 초록으로 번쩍이기 시작하고 바람은 땅 속에 묶여 있던 정령(精靈)들까지라도 불러내려는 듯한, 그런 계절이었지요. 수상의 부름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으나 나는 그것을 거절할 만한 이유도 따로 생각해 낼 수 없었으므로 결국 수상의 명을 받들어 온 중년의 사나이-호리호리한 몸에 민첩한 몸매였는데 수상의 비서진의 일원이었습니다-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는 내게 매우 정중하고 친절한 태도로 예우했기 때문에 나는 마음 한쪽에서 솟는 긴장감을 좀 누그러뜨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곰곰 생각에 수상이 나를 불러야 할 만한 일은 쉬 짐작되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부름을 받을 실마리가 뵐 듯 말듯하게라도 있었다면 연전(年前) 나의 시집(詩集) 한 권을 수상께 증정한 적이 있었다는 것, 그것을 증정한 까닭은 수상의 야인(野人) 시절에 어떤 동기로 몇 차례 대면이 있었다는 것, 나는 그 대면을 통하여 그의 파격적인 행동 방식과 열정적인 성품에 매력을 느꼈으며 그의 예술에 대한 식견은 시나 연극 따위를 연연하는 한 소년(나)에 대해서도 풍부한 포용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 그리하여 우리는 상호 호의적인 느낌을 서로의 모습과 이름에 첨가시키고 있었다는 점이 떠오를 뿐-그러나 이런 평범한 일들아 한 나라의 대권을 잡고 있는 그에게 있 어 자질구레한 일 이상의 그 무엇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오토레씨의 성격적 매력, 그 이름의 그리움을 떠나서 수상(首相)이라는 어휘가 우는 것은 위압감, 거리감뿐이었습니다.
그 호리호리하고 민첩한 비서관은 내 궁금해하는 심정을 엿보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수상의 뜻에 의한 것이었는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상각하께서는 근년에 줄곧 모종의 문제를 두고 고심해 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릴 입장이 아니올시다마는……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어떤 우울한 양상에 대한 문제로 바아몽 선생에 조력을 청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나는 수상부(首相府)-청사의 중앙부 위에 자리한 수상 집무실의 부속실로 안내되었습니다.
잠시 뒤에 오토레 수상은 작은 키에 비해 비대한 몸집을 몰아 부속실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두 팔을 활짝 열고 둥근 얼굴에 가득 웃음을 실어 보이면서
"아, 바아몽씨가 와 주셨군, 고맙소."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의 음성은 굵은 저음이었으나 다소 탁했습니다. 수상은 작고 두툼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습니다,
"우리 오늘, 옛 지기(知己)들이 만난 것을 기념하여 좋은 술을 한 잔 합시다. 그리고 오랜만에 좀 싯적이고 철학적인 화제를 찾아봅시다. 어떻소, 바아몽씨. "
두상은 호쾌한 웃음을 섞어 가며 다소 들뜬 듯이 말했습니다. 수상은 웅변가였습니다. 그의 표정은 회로애락의 감정을 자유롭고 솔직하게 노출시킬 줄 알았으며, 그의 말씨는 경쾌하고 재빠르다가 갑자기 거칠어지고 더듬거리는 듯하다가 다시 또박또박해지고 때로는 병든 사자처럼 으르렁거리고 신음하는 듯한-말투의 기교와 표정의 예민한 변화는 배우의 그것에 앞서는 감이 있었습니다. 나는 오토레 수상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면서 -의 화술 을 다시 즐겨 보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은 되도록 간결하게 얘기를 끝내고서는 다시 그의 변화 무쌍한 언변에 귀기울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요즘 '우리'란 말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고 있소. 지금 바아몽니와 나, 두 사람도 우리이며 우리 파하의 모든 시민을 통틀어서도 우리라고 할 수 있지. 우리란 곧 집합체를 뜻하는 것이고 이 우리라는 집합체 또는 집단은 공동의 운명을 이끌어 나갈 공동의 지혜를 통하여 어떤 이상에 도달해야 할 것이오. 그렇다면 '우리' 속에서는 대화가 양성적으로 활발히 교환되어야 할 것이오. 곧 공론(公論)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소."
수상의 어조는 갑자기 거친 파도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파하 나라에선 그 공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단 말예요?
나는 비로소 수상이 무엇을 말하려는가 짐작하기 시작했습니다,
"파하 나라엔 언제부터인지 비방과 비난과 비꼼, 즉 허튼 소문만 들끓고 있단 말이야. 이 너절한 것들을 끊임없이 빚어내고 제 나라의 건강을 세균처럼 좀먹는 자들이 대체 어떤 자들인가도 나는 대충 알고 있지. 우리 파하의 건강을 해치려는 자들, 우리의 적들은 나라 안팎으로 많소. 우리 파하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식민주의적 정책이 그렇고 파하 속에 가득 차 있는 사대적 정신이 그렇고, 겉으로는 대아를 찾되 속으로는 소아만 움켜잡고 있는 비겁한 정신들이 그렇소. 이들 파하의 적은 교묘한 방법으로 파하를 괴롭히고 있어요. 정면에서는 우호적인 제스츄어를 쓰면서 속셈으로는 파하의 간을 갉아먹고 있단 말이오. 무서운 일이야. 파하는 지금 허약해져 있소. 나는 파하를 적들로부터 보호하지 않을 수 없소. 이는 내 의무요, 내 사명이요."
수상의 어조는 비장해져 있었습니다.
"나는 바아몽씨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아니 파하의 진정한 번영을 원하는 모든 시민에게 나는 내 호소를 들려주는 것이오. 우리는 싸워야 됩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 전부터 여러 가지 노력을 해 왔소. 소문으로부터, 소문이라는 적으로부터 파하를 지키기 위하여 우리 시민들에게 나는 침묵을 요구했소. 우선은 소문에 휩쓸리지 말도록 하기 위한 생각에서였지요. 저 바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건강합니다. 바다는 썩지 않는 법이오. 그러나 바다의 침묵은 위대하기만 하오. 칠대양(七大洋)을 돌아보아도 바다가 썩는 일은 볼 수 없소이다. 그러나 땅은 어떻소. 땅은 끊임없는 비난, 비방, 중상과 모략, 책략의 말, 거짓의 말, 탐욕의 말로 만연되어 있소. 나는 바아몽씨의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자 어떻소? 바아몽씨, 당신은 파하의 선량한 시민으로서, 내 지기의 한 분으로서, 그리고 말의 본질에 정통하는 시인으로서 나를 도와주시기 바라오.“
"각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각하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아무런 기량(技倆)도 갖추질 못했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아니, 지금 나는 겸양의 미덕을 받아들일 여유는 없소.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하오. 내일부터라도 나를 도와 일해 주시길 부탁해요. "
"그러나 수상각하. 저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며 언어에 대해서는 무력한데다 회의만 큰 무능한 시인일 뿐입니다…… "
수상은 그때 돌연 부르짖듯이 말했습니다.
"아직도 귀하는 나의 간절한 뜻을 모르겠소 ? 그렇다면 유감이오. "
"나는 지금 이 나라의 시정(市井)에 이 나라 사람들의 입마다에서 살아서 펄떡거리는 소문과 싸우자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오. 그 소문이란 놈은 밑도 끝도 없소. 다만 부피만 가지고 있소. 얼굴은 없으되 이아고 같이 교활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괴물이오."
"소문에 대해서, 적어도 그것이 끼치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무서운 영향력에 대해서는 소생도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다만 제 능력이…… "
"알겠소. 그렇다면 나도 좀 들어봅시다. 좀 아까 귀하는 말에 대한 회의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얘기했는데……"
나는 침착하게 그가 궁금해하는 점을-실은 나 자신의 고민의 내용을 고백한 것에 불과했습니다만- 이야기했습니다.
"요즘은 새삼스럽게도 말이 시인을 배반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시인이 말을 다루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실은 말이 시인을 다루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곧 말이 제나름의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이 나를 선행(先行)하는 것인가. 내가 말에 선행하는 것인가-하는 소박한 질문을 반복하게 됩니다. 즉 시인은 고의 시적 진리를 성취하기 위 하여 시적 감동을 창조하려 듭니다. 그러나 말은 자기 자신의 감동을 창조하려 들고 자기 자신의 비밀을 느닷없이 털어놓기도 하고 제 기분에 따라 입을 다물려고 합니다. 말은 자기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하고 싶어하고 게다가 자기 자신이 너그럽기도 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싶어합니다. 어떤 시인은 말의 이러한 교묘한 기능을 알아채고서 자기 자신의 결여된 힘을 보충하기 위하여 말에다가 아첨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그 시인의 시는 이중의 배반에 의해서 왜곡되고 우롱마저 당하는 것입니다만, 시인은 말의 장난기로부터 헤어나야 될 것입니다. 물론 어떤 시인은 자신의 약점을 교묘히 위장할 요량으로 이렇게 소리지릅니다. -말에다가 최상의 자유를! -반면에 어떤 시인은 말의 장난기에 대한 노여움을 터뜨 리고 말을 마구잡이로 다루면서 학대를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말의 비명 소리 때문에 시는 커녕 살벌한 회오리 바람 소리만이 거기 있게 됩니다.”
시인은 말과의 싸움(通情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시가 있기도 전에 그리고 사람이 있기도 전에 말이 있습니다. 또는 말이 흘리는 피가 있습니다. 시에 대해서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그것은 명상도 반성도 아닙니다, 말은 지금 희생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말, 말, 말-,과연 회생을 어떻게 치루어야 할까, 어떤 희생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비단 시인의 말만이 아닙니다. 세상에 가득 찬 말. 모두가 지금 우리에게 회생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말, 말, 말……머리 속에 가득 차 있는 형형 색색의 내용물들의 형형색색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이 말입니다. 화사하게 분장한 말, 찡그린 말, 울부짖는 말, 차갑게 건축처럼 굳어 있는 말, 칼날처럼 팽팽한 긴장의 말. 늙수그레한 말, 새벽에 떠오르는 해처럼 인선하고 강력한 말, 그리고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말 등등,,,,,,
“그러나 우리는 염치를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말에 대하여 우리의 사람됨, 사람의 사람됨을 밝혀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말은 강합니다, 말이 강한 만큼은 우리도 견고해야겠고, 사람으로서의 자각과 사람으로서의 양식을 강건하게 키워야겠습니다. 찰 앞에서 우리가 허물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지요. 말이 사람을 낳도록 또는 사람을 죽이도록 방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 사람이 말을 비틀어 죽이려 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그것은 말의 반격을 유도해선 안되기 때문입니다. 말과의 평화를 얻어야겠습니다. 말과 사람이 서로 평화를 얻도록 해야겠습니다. 말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호소하도록 만들어야겠습니다. 말과 사람, 말과 사람의 사회와의 관계-이런 관계에서도 말이 외람된 욕심을, 외람된 회생을 강요해 오도록 좌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먼저 사람이 말에 대해서 겸허해야 하고 여유를 갖도록 해야겠지요. 시인은, 자각 있는 시인일수록 말 앞에서 무수히 절망합니다. 그 절망을 극복하는 방도가 혹 있을는지, 있다면 겸허하게 말을, 말의 진실을 들여다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터입니다."
수상은 내 말이 끝나자 내 어깨를 그 두툼한 손으로 툭 쳐 주었습니다.
"고맙소. 훌륭한 말씀이었소. 나는 역시 바아몽씨를 모셔 오기를 잘 했소."
오토레 수상의 뜻은 간곡하였습니다.
"나는 귀하가 행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나는 귀하의 시인적 통찰력과 창의성을 존중하오. 고리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오. 나는 귀하가 불편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이미 모든 준비를 끝냈소. 귀하는 나의 공보 보좌관으로서 내일부터라도 일을 시작해 주오. 앞으로 공보 장관 마토씨는 바아몽씨를 위해서 많은 도움이 될 거요. 그는 풍부한 경칩을 따진 노련한 각료입니다. 귀하는 앞으로, 이 나라의 운명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나라의 밝음을 흐리게 하는 소문을 절러 주시 무찔러 주시오. 그 일에 관한 한 독립 부대의 사령관이 되도록 하시오."
나 자신이 수상의 공보 보좌관으로서 착수한 첫번째 일은 파하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숱한 소문의 수집과 그것의 분류 및 분석 작업이었습니다. 소문들의 양상을 파악하는 일이었지요. 소문이란 참으로 걷잡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일테면 우리 파하의 변경 지역에는 무당의 세력이 그 어느 지방보다도 번성하고 있었는데 지난 달부터 이들에게 무서운 수난기가 닥쳐 왔습니다. '무당 사냥'이라고까지 불리는 이 소동은 지난 달 어느 날 푸르나군(郡)에서 세 명의 어린이가 유괴되고 이어 며칠 뒤 그 아이들이 시체로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곧 무당들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그 지방에선 무당에 대한 박해와 사형(私刑)이 가해졌습니다. 이런 경향은 인근 지역까지 번졌으며 노한 군중들은 조금 혐의가 가면 공격을 가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푸르나군 일대는 마치 유령의 나라 같은 느낌마저 주게끔 되어 버렸지요. 이곳 시민들은 어둑어둑해지기가 무섭게 대문을 잠그고 들어앉는 것이었습니다. 폭도들에게 무당으로 오인받아 살해될까봐 그러는 것이죠.
그런데 또 해져하며 알 수 없는 노릇은-경찰 당국도 그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질 못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소동은 오토레 수상의 정부가 샤머니즘에 대한 탄압의 방법으로 획책한 것이라는 소문이 꾸준히 나돌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파쿰(우리 파하와는 혈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도 합니다. 파쿰 정부는 우리 파하에 파르나군의 영유권을 주장해 오고 있었는데) 정부의 첩자들이 파르나군을 혼란에 몰아넣기 위한 술책이라는 소문도 나돌았습니다. 이 밖에도 파르나군 자치 단체 내부의 갈등이 노출된 것이라는 등, 또는 모국(某國)의 정보 기관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이 소동은 연일 의회에서 주요 의제로 거론되었으며 유력한 의원들은 자기들대로의 암시와 추측을 공언하였으며 결국 소문의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이끌고 나갔습니다.
덕분에 오토레 수상의 입장-그는 이 문제로 의회에서 성난 곰처럼 흥분하고 또 노성을 터뜨리면서 정부의 결백함을 주장하였습니다만-은 몹시 난처해졌습니다. 여하튼 소문은 국가적인 대사로부터 한낱 개인의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며 그것은 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파하의 골목골목을 누볐습니다.
나는 파하를 위협하고 있는 많은 소문들의 성격과 내용을 대별하여 그것들의 원인별 분석 및 영향력에 대한 평가, 또 A라는 패턴에서 B라는 패턴으로의 이행(移行) 또는 변질과정 그리고 소문을 형성하는 요인에 대한 고찰, 발설자에 대한 추정 등을 조사하고 정리하였습니다.
그 소문들은 그러나 막상 손을 대면 바삭바삭 부서져 버리고 기껏 조각이나 남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이 조각들이 곧 귀중한 단서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FBI가 한 비행기의 공중 폭파 사건에 착수하여 수천 조각의 비행기의 잔해를 모아 복원시킴으로써 범행의 양상, 성격, 동기를 파악하고 범인을 잡아냈다는 실화는 내게도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각을 수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또 이보다 어려운 일은 소문을 막는 일, 또는 소문을 예방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시인은 '이야기는 죽지 않는다. 이야기는 새로 태어난다. 도처에 입(口)이 있기 때문에'라고 쓴 적이 있었습니다만 도처의 많은 입들은 무엇인가를 끈임 없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입들은 그들의 귀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야기를 꾸며 낼 줄 아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호랑이가 날개를 달고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수사학적으로 말하자면 일천만의 인구(人口)는 곧 일천만 종(種)의 상상력이며 일천만 가지의 소문이라 할 만했습니다.
나는 여러 날을 걸려서-나는 취임 후 한 달 가까운 동안을 거의 사무실에서 잠을 자다시피 하며 일에 열중했습니다. 수상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일 자체, 소문과의 싸움을 시작한 이상 승리해야겠다는 고집에서였지요-소문에 관한 양상을 대체로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대책을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날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날로 예정된 수상에 대한 브리핑을 준비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머리 속에 그 소문의 파리떼들의 숫자와 동태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 문득 숫자에 자꾸 착오를 일으키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잠이 부족했거나 여러 날 계속된 과로 때문인 것 같았읍니다. 그래서 나는 새벽 산책에 나서기로 했지요.
그러나 그 새벽의 산보는 오히려 나를 더욱 혼란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파하 공원을 거닐고 있을 때는 새벽의 안개가 많이 끼어 있었습니다. 안개는 동심일 때나 성년(成年)의 주름살을 갖고 있을 때나 얼마간은 신비감을 주고 또 시적인 감흥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안개 속에 묻혀 안개의 촉감, 고리고 안개의 냄새 같은 것을 즐기면서 거닐고 있었죠.
나는 공원의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소 있었는데 문득 어떤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끈끈한 느낌을 주었고 의미도 알 수 없는 중얼거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환청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데 나는 분명히 어떤 입(口)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안개의 입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입이었지요. 그래서 문득 나는 거대한 샤만이 안개의 몸을 빌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나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네, 샤만 말입니다. 샤만은 수천 수만 년을 내려오면서 날로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어 왔으니까요. 그리고 물의 샤만도 있고 불의 샤만도 있으니까 왜 안개의 샤만이라고 있을 수 없겠습니까. 나는 안개의 입이 내게 다가오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의 혀끝이 마치 내 귀바퀴에 닿는 듯 간지러움을 느끼게 하면서 축축한 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애숭이야, 네가 소문을 물리치겠다고? 하하하하."
"이 바보야. 너는 수상의 무덤이나 파거라. 하하하. 크크크."
나는 순간 안개의 입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몸을 홱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 입은 내가 비켜난 쪽에서 또 킬킬거리면서 속삭였습니다.
"네가 수상의 개가 됐다면서?"
나는 더 무엇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그 소름끼치는 소리로부터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뒤를 쫓아오면서 불결하게도 귓속을 파고들었습니다.
"너는 꼭둑각시, 너는 꼭둑각시."
"네가 소문을 어쩌고 어쩐다고!"
"너를 소문의 수렁에 빠뜨려 줄까."
"시끄러"
나는 부르짖으면서 어느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공중 변소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문득 뇨의를 느끼고 바지 재크를 내리고 오줌을 깔겼습니다. 아, 아 그렇군. 나는 그 동안 너무 긴장하고 있었어. 나는 며칠씩 바지를 벗는 밀이 없이 사무실 소파에 뒹굴면서 내가 맡은 문제들에 열중했던 것이지요. 이런 열중은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써 낸 어떤 시들은 바로 그런 집중과 몰입을 통해 싸워 얻은 것이었으니까요. 또 연극에 열정을 바치던 시절에도 그랬죠. 극장 연습실이나 무대 위의 세트 속에서 밤잠을 자지 않고 드라마 속의 바른 내 위치를 찾으려고 애쓰던 적도 있었습니다. 좌튼우튼간에 나는 과로로 인한 환각을 일으켰던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안개의 붉은 입, 안개의 끈끈한 소리는 그 뒤에도 결코 잊히지 않고 떠올라서 나를 혼란시켰습니다. 영국의 속담에 '소문은 75일만 지나면 끝난다'는 것이 있습니다만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소문은 파리떼와 같아서 죽기 전에 수백 수천의 알을 까고 죽습니다. 연전(年前) 유행되던 '행운의 편지'란 것도 그 좋은 예지요. '당신은 이 편지를 받고 24시간 이내에 새로 12명의 신사 숙녀에게 이와 똑같은 행운의 편지를 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앙화를 받을 것입니다.' 거의 협박장 같은 이 행운의 편지가 그대로 실천된다고 할 때 24시간을 주기로 12배씩 늘어가는 것이지요. 엄청난 번식률입니다.
나는 소문을 소탕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수상은 때때로 국민들에게 도덕적 각성을 호소하고 모든 소문에 대해서 외면하고 침묵을 지켜주기를 요청한 적도 있습니다만-그리고 마침내 얻은 결론은 역소문전법(逆所聞戰法)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집요하고 강력한 생명력을 갖는 소문들을 구축하기 위해서 저는 천적(天敵) 작전을 쓰기로 했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무당벌레로 하여금 진딧물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문을 일소하기 위해서 그 소문을 흡수할 수 있는 역소문을 퍼뜨리겠습니다."
"오, 그것은 기대할 만한 것 같소. 분투해 주시오."
수상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나는 마토 장관의 지원을 받아 몇 단계의 전략을 세웠습니다. 먼저 나는 방송과 신문을 활용하여 언어(言語)의 마술적 특성이 어떤 것인가, 소문과 정보와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어떻게 소문을 추방해야 할 것인가 등에 관한 계몽을 다각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작전요원들을 교육하여 경계해야 할 만한 소문들에 대한 역소문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계적으로 퍼뜨리게 했던 것이죠.
이를테면 오토레 수상이 이웃 파쿰 나라의 혈통을 가진 여인에게서 출생했으며 아버지도 알 수 없는 사생아라는 소문, 또 수상의 아들과 파하 공주의 약혼설 등이 있었는데(물론 이 소문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이는 수십 가지의 소문이 또 있읍니다만) 이에 대해서 나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게 만든 요인을 추출하여 역소문을 만들게 했습니다. '수상의 가계나 친족에 대한 사실은 더러 공식 자료로 발표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당국의 공식 자료보다는 쑤군쑤군 전해 온 소문을 더 믿는 것이었는데' 즉 최근 수상의 측근에서 새어 나온 소식에 의하면 수상의 모친은 한때 파쿰국에서 불우한 시절을 보내다가 마침내 어느 수도원에서 운명했다는 것, 수상의 부친은 파하의 독립 운동께 몸을 바쳤으며 적국의 폭력단에 의해서 비참한 죽음을 했다는 것, 이러한 사실들은 파쿰과의 외교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 숨겨 두는 비밀 사항이라는 것, 또 수상의 아들과 공주 사이의 약혼설은 수상 자신은 원할지 몰라도 공주 자신이 이웃 압삼국(國)의 왕자로부터 어느 파티에서 프로포즈를 받은 일이 있으며 파하 왕실에서도 이는 환영하는 바라는 것 등-대체로 이런 식으로 천적(역소문)을 풀어놓았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역소문들은 신빙성을 주게끔 위장되어 시정에 새어 나가게 했지요.
그런데 말이란 본능적으로 역설적인 효과까지 끌어안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자유'라는 말에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자유에의 지향과 동시에 극히 제한된 상태 안에서의 자유가 똑같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역설적인 의미를 한쪽으로 껴안는 셈이지요. '사랑'이란 말도 애끼고 애틋하게 여기고 열렬히 애무하며 애정을 나누는 뜻을 가지는 반면, 미워하고 미칠 듯이 노려보고 미련하게 고문하고 또는 미적지근하게 위해 주는 그러한 면도 껴안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이 '나는 당신을 미워하기도 합니다'라는 반대적인 뜻까지 포함해야 된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선생께서는, 내가 지금 왜 이런 말을 늘어놓고 있는지 벌써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실상 나의 천적 작전은 그 얼마 뒤엔가 한계점에 부딪친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역소문은 역소문에 대한 새로운 역소문을 유발해 내고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곧 '수상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불안을 느끼고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고가 공보진을 보강한 사실로도 엿볼 수 있다. 그의 공보진은 아마도 수상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기에 여념 없을 것이다'라는 소문마저 내 귀에 들어왔으니까요.
역소문 전법은 일부에선 효과를 얻었으나 일부에선 역효과를 얻은 셈이었습니다. 나는 마토 장관에게서 만나자는 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내게 음료수를 권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공보 정책의 어려움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정부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상대해서 설득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신문이나 방송을 매개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유리컵에 스스로를 집어넣어 보이면서
"자, 이 스트로를 보십시오. 이 대롱이 물 속에 담기면 굴절해 보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의 메시지가 매체를 통해서 한 번 건인 뒤에 그것은 다시 시청자나 독자의 눈과 귀로 들어가서 다시 또 건입니다, 여기서 오해가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시민들은 정부의 진의는 어디에 있는가를 가지고 자기네들끼리 갑론을박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책적으로 중요한 문제일수록 고의적인 훼방도 받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겉입니다 하고 보여주면 아니 그것은 겉이 아니야, 저것을 뒤집어라 뒤집어야 진짜가 보인다-이렇게 쑤군거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여론은 이렇게 해서 자꾸 뒤틀리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민도(民度)와도 별 깊은 관계가 없습니다.
아니 지식 수준이 높은 이들일수록 불평과 불만의 지수가 높습니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긴 대단히 힘들지요. 그들은 상상력이 풍부할 수도 있고 이상이 높은 만큼 현실에 대해선 반드시 회의하려 합니다. 하니까 공보 정책은 자칫 잘못하면 그들에게 말려들 수도 있어요. 또 적국의 첩자들의 암약도 배제해 버리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 이틀에 소문을 무찔러 버릴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의 사무실로 돌아와서 마토씨의 충고와 권에 따른 몇몇 방안을 검토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문득 내 눈앞이 갑자기 희끄무레해지면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나는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교외의 숲으로 갔습니다.
숲 속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나는 무성한 숲 사이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숲은 그 자체가 생명을 뜻합니다. 자연 본래의 신선한 활력을 갖고 있지요. 때문에 숲에서는 동물에서 곤충류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생명들이 정열적이고 낙천적인 멋 같습니다, 나는 미아처럼 숲 사이를 헤매었습니다.
아직 젊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육체 속에서는 어떤 활력 같은 것이 충전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자연의 선율 속에 있었습니다. 나는 참으로 시(時) 속에 있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책갈피 속에 갇혀 있는 활자에서 이보다 더한 시를 만날 수 있을는지요. 무릇 시인들이 쓴 시란 실재하는 시적 현상의 색인(索引) 구실밖에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바위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가 맑은 샘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목을 축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자를 애무하는 사내처럼 물의 감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물은 살아 있었습니다. 피부와 살과 감각의 내용을 가지고 있고 심령(心靈)마저 느끼게 하는 생명체임을 느꼈습니다, 술은 마성(魔性)은 가졌을지언정 영혼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샘물에서 환기를 되찾은 듯했지요. 고리고 나는 반듯하게 생긴 바위에 걸터앉았습니다.
소문은 왜 일어나는가, 나는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나는 숲의, 물의, 바람의 힘을 얻어 다시 생각해야 된다. 나는 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숲에게 나뭇잎들에게 초록(草綠)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한동안 외면하던 문제에 맞부딪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바로 고것을 정시해야 했습니다.
소문의 중요한 원인을 나는 외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문 때문에 옳은 공론(公論)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공론이 제대로 설 수 없기 때문에 소문이 만연하는 것 아닌가. 수상은 소문을 전염병에 비유하였지만 취약점이 많기 때문에 병균이 창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선후 관계를 의식적으로 도착시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나는 천천히 숲에서 나왔습니다.
"바아몽씨!"
마토 장관은 소파에 기대앉은 채 담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패기에 대해서는 존경하고 싶소."
"그러나 요즘 바아몽씨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 대단히 거북한 일로 생각합니다만."
나는 그 말뜻에 짐작이 갔습니다. 나는 그 무렵 파하 왕실과 수상의 가계에 대한-그들의 재산 상태까지 포함하여 -조사를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조사는 엄중한 비밀 속에서 진행했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왕실이나 수상의 가계 및 친족들에 대해서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나 하는 회의에 부딪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궁금한 일에 자유로이 접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노상 의심과 의혹을 갖고 있으며 소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실상 전통적으로 파하의 왕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고 또 수상부마저도 신비 속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상기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일의 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수상의 편에 서기보다는 시민의 편에서 바라보고 생각해야 옳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중립적인 입장에라도 서야 옳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신은 지금 일의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이에요. 당신은 왕실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왕실에 도전하고 있다는 말 뒤에는 실은 수상에 대한 반역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문책이 숨어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왕실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잘못된 말씀입니다. 뿐더러 저는 그런 의도도 갖지 않았고요."
"물론 바아몽씨로서는 부인할 테지. 그러나 당신이 요즘 필요 이상으로 왕실의 문제를 캐고 있음은…… 그것은 왕실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소. 이는 수상 각하의 입장에도 난처한 영향을 미칠 것이요."
"아니지요. 이는 왕 전하와 수상 각하를 동시에 위하는 범위에서 행해지는 일일뿐입니다, 나는 맹세를 내세우고 싶지는 않지만 국가에 대한 맹세라면 장관님 앞에서 맹세하겠습니다."
"아니, 나는 그 맹세를 듣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당신과 같이 의욕적인 분은 우리 파하국을 위해서 중요한 자본이 되고 있어요."
“……”
"그러나 우리는 국가의 대사를 다룸에 있어서 국가가 요청하는 일을 외면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장관님께서는 지금 왜곡이라는 어휘를 제게 쓰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나는 항의했습니다. 마토씨가 나에 대해서 불만을 느끼고 있음은 처음부터 감지하고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의 견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불쾌했습니다.
나는 마토씨로부터 기습을 당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아주 권위 있는 일격을 가했던 것이라고. 나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장관님께서는 제가 좀더 시간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관님께 심려를 끼친 점은 매우 송구스럽습니다만. ……저로서는. 지금 진실의 실체(實體)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는 일이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보좌관께서는 우리가 실체 아닌 허상(虛像)을 붙들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는 단정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은 실체에 대해서 보다 솔직하게 탐구하고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실체라고 믿어 온 것에 대하여 때로는 회의해 볼 필요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아몽씨, 당신은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이오."
그는 자기가 옳다는 사실을 의심해 보고 싶지 않아 보였습니다. 설령 오해와 고문의 원인이 자기에게서 세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할지라도, 또 그것을 자각하고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붙들고 있는 것만이 진실의 실체라는 믿음을 고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아몽씨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을 사랑하여서는 안 됩니다. 바아몽씨는 그 소문들 편에서 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지나친 말씀이십니다. 나는 항간의 소문에 귀기울이고 있지만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입장을 회의하더라도 정부를 아프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
나는 파하왕 전화 및 파하 왕실의 실태가 공공연히 대중으로부터 가려져 있고 대중은 가려지지 않은 약간의 사실만 알고 있을 분이며 이것이 왕실에 대한 동정적인 오해들을 낳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파하의 수상과 수상의 친족들 역시 대중으로부터 끊임없는 의혹을 사게끔 되는 요인을 껴안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시민들로 하여금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하고. 조금이라도 진실의 실체에 가까운 것에 귀기울이게 하고, 그것에 덧붙여 자기 나름의 상상력으로 허상에 사로잡히게 하며 다시 악의적인 소문은 이를 부채질하여 시민들은 더욱 불안하게 되고, 왕실이나 수상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허상과 악소문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지요.
가령 국영 아파트가 공매에 붙여지더라도 거기에는 당국이나 시공업자의 성실성보다는 먼저 소문이 작용을 합니다.
"각하께서는 지난번의 아파트 공매 사건을 보고 받으셨습니까?"
"음, 국영 아파트는 시민들에게 아주 환영을 받는다더군요."
수상은 별로 회의하고 싶어하지 않는 안색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깨뜨려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관계 직원들은 선량한 소시민들에게 야비한 망술을 부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
"아파트 입주 희망자가 53세대였던 것을 5백 30세대라고 공공연히 사실을 위장하여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어떤 신문은 이를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곧 드러났습니다. "
“……그랬던가?"
수상은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러한 소문이 또 파생시킨 많은 소문에 대해서도 보고를 했습니다.
"때문에 정부의 기본 시책은 지금 다시 검토되어야겠다는 것이 제 보고의 결론입니다."
"자네의 충고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인 문제점과 시정책을 작성해서 내각 회의에 제출해 주게."
수상은 그 날 따라 시종 변화 없는 표정 -그의 동적이고 정열적인 성격과는 대조적으로-이었습니다. 이는 수상의 기분이 무엇에 억눌려 있음을 뜻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마토씨와의 보다 심각한 충돌을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뛰어든 싸움에서 이때야말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내가 수상의 소명을 받고 공직에 앉은 지 6개월이 넘었을 때였습니다. 나는 수상과 왕 전하에 관한 나의 조사와 함께 대각에 대한 조사에도 손을 댔습니다. 그것은 벅찬 일이었습니다만 나로서는 이미 주사위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각 주변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문은 개각설이었습니다. 개각설은 또 일부 개각설과 전면 개각설로 나누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내게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소문이란 끊임없이 끓어오르고 부글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개각설은 내각의 동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비밀 작업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각은 일을 하기보다는 소문의 진위 여부에 관심을 갖고 전전긍긍하면서, 자기들의 정적을 주목하기에 바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정적을 경계하는 것으로도 미흡하여 여차직하면 그 누구에게라도 화살을 겨누고서 너도 나의 정적이지! 하고 노려보기 마련입니다.
우려대로 내게도 그러한 눈초리가 쏠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각료들에 대한 조사 작업을 당분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나는 각료들에게서 가장 큰 경계 인물로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마토씨가 나를 경계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마토씨는 그와 가까운 각료들에게 힘을 모아 나를 경계하라고 주의시킬 법한 일이며, 그의 정적들의 눈까지도 내게로 쏠리게 할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이쯤 되고 보면 관료 생활의 경력이 6개월 남짓한 나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부담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나는 도대체 이런 소문이 어디서부터 나돌게 된 것인지 짐작하기가 곤란했습니다. 참으로 수상 자신이 고러한 일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며 과연 그가 그러한 일을 누구에게 귀뜸했던 것일지. 또는 오랜 관료 생활의 경험으로 육감이 매우 발달한 어떤 각료가 지레 경계 신호를 올린 것인지. 또는 적국의 고급 첩자가 퍼트린 비어인지. 나 자신은 물론 그 알 수 없는 소문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소문의 진상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소문을 조사할 수 없었습니다. 마토씨의 견해를 알아볼까 했지만, 오히려 그 소문을 내가 마토씨에게 확인해 주는 일이 될 뿐 아니라 귀찮은 오해를 낳을 것같이 생각되었던 대문입니다.
각료들이 그 소문으로 괴로움을 당하던 어느 날 밤, 나는 갑자기 수상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나는 수상 관저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내가 관저의 정문에 도착했을 때 마토씨와 또 한 사람의 각료가 관저의 정문을 나서고 있었습니다. 그들 쪽에서는 나를 못 보았는지 인사할 기회도 주지 않고 관저를 떠나갔읍니다.
나는 수상의 사실(私室)로 안내되었습니다. 조금 뒤에 검소한 의상을 걸친 그러나 차가운 위엄에 싸인 한 여인이 들어섰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래 못 뵈었습니다."
그녀는 수상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마토 장관의 조카뻘이 되는 사이로 아직 젊고 슬기로운 여자였습니다,
"거기에 앉으시죠."
나는 수상 부인이 먼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전 채로 말했습니다.
"수상께서는 몸이 불편하셔서 이미 침소에 드셨습니다."
"각하께서는 많이 편찮으십니까 ? "
"아니, 염려하시지는 않아도 됩니다. ……수상께서는 저더러 바아몽씨를 만나 뵙도록 하셨는데…… "
나는 묵묵히 그녀의 얼굴을 지켜보았습니다.
실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마침내 수상 부인이 침묵을 깨뜨렸습니다.
"수상께서는 요즘 모종의 중대한 외교 문제로 고심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아몽 씨가 이 문제를 좀 도와 주셔야겠습니다."
“……“
"바아몽 씨는 우선 수상의 특사 자격으로 압삼국(國)으로 출발하세요. 그러나 이 일은 바아몽 씨 외엔 아무도 아는 일이 되어선 안 되겠어요. 출발은 내일 새벽으로 하세요."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명령 내용은 특수한 채널을 통해서 바아몽 씨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나는 담담하게 부인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나는 묵묵히 충격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말씀 드릴 것이 없습니다. 내가 명령에 따라 밀사로서 임지에 떨어진 그 시간에 나는 짤막한 메모지를 접수했습니다.
내가 압삼국의 의회 도서관 열람실에서 도서 목록을 들치고 있을 때 한 사나이가 내 곁으로 접근하더니 재빨리 쪽지를 내밀었던 것입니다. 내가 그 메모지를 보고 났을 때 사나이는 이미 내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귀관은 추방되었다."
나는 그 메모지를 꾸겨 버렸습니다,
나는 파하의 시민권을 앗겨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었던 것인지 명료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가 아는 사실만을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무슨 음모에 의해서 또는 무슨 소문으로부터 걷어 채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내가 조사했던 왕실과 수상부의 뒷 얘기 말씀입니까? 아, 그런 것은 이제 얘기할 필요도 없는 것이죠. 다만 하나 말씀드릴 수 있다면 소문 중에선 진실에 그리 어긋나지 않는 그러한 것도 있었다는 정도입니다. 문제는 옳은 소문과 그렇지 않은 소문을 가려낼 수 있는 양식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 다시 안개가 안개의 입이 나의 앞을 가립니다. 안개가 파하를 뒤덮고 있습니다. 파하의 숲. 파하의 푸른 하늘, 그리고 파하의 시민 - 그 모든 것이 안개에 가려 있습니다.
보이지가 않는군요. 좀 볼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으시렵니까. 아니, 위로는 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젠 좀 쉬어야겠습니다. 한 잔, 술을 한 잔 더 사시렵니까? 네 고맙습니다.
파하, 파하가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파하에 도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지은이 : 호영송(1942- )
경기도 파주 출생.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1962년 시집 [시간의 춤]을 간행. 1965년 [호영송 시집] 간행. 1973년 [파하의 안개]를 발표하여 소설가로서 등단함.
주요 소설 작품으로는 [흐름 속의 집], [겨울 나비], [아버지의 꿈], [흉금], [고향으로 가는 길],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