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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김주영 소설가의 수집품 "저울추"

by 자한형 2022.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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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소설가의 수집품"저울추"- 한국문학관협회

김주영 소설가는 지독한 애연가였다. 서울신문에 처음 객주를 연재할 때 하루에 한 갑을 피웠었는데 49개월 뒤 1,465회를 끝으로 연재를 끝내고 나니 두 갑 반으로 늘어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담배는 글을 쓰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앉은뱅이책상 앞에 엎드려 사흘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다니 소설가에게 있어 담배는 원고지를 메우게 하는 힘이었는지 모른다. 그때 생긴 폐기종으로 인해 지금도 기침을 참지 못한다고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숨이 가쁘고 어쩌다 오르게 되면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한단다. 의사로부터 폐암 바로 전단계란 말을 듣고서도 6개월을 더 피울 만큼 김주영 소설가의 담배 사랑은 끔찍했다. 오늘내일하는 목숨 줄을 붙들고도 담배를 뿌리치지 않았던 건 정들거나 익숙한 것에 대한 집착이 남달리 강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소설가에게 있어 담배는 상상 속으로 가는 통로이거나 가장 가까운 위로자 역할이었을 수도 있겠다. 어떻든 어느 날 문득 담배와의 절연에 성공했고 우리는 김주영이라는 소설가를 더 오래도록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소설가에게는 수집에 대한 애착 또한 남다른 면이 있다. 무언가를 자꾸 모은다는 건 마음 어딘가에 공허를 간직한 때문이란 말을 들었다. 김주영 소설가는 한 때 우산이나 여행용 트렁크, 서류 가방 따위를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릴 적 겪었던 지독한 가난과 어머니에 대한 집착에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없이 자란 어린 소년에게 어머니의 치마폭은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저잣거리에 있던 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어린 소년의 몸으로 어머니를 지키기엔 역부족이란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학교에 다녀오느라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가 사라져 버리고 말 것 같은 불안함에 항상 시달렸다. 잠시라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마을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허기가 소설가의 마음 안에는 언제든 웅크리고 있었다.

저울추를 손에 넣은 날은 100여 년 전 사라진 보부상을 만난 듯 흐뭇했다. 저울 눈금을 후하게 쳐 달라느니 못 쳐 준다느니 흥정하는 장사꾼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라던 거상 임상목이 곁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중심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저울추가 보면 볼수록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글을 쓰면서도 저울추를 만져보는 버릇이 생겼다. 무언가에 애착을 갖는다는 건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소설가는 객주를 쓰면서 부단히 자신의 삶을 가꾸고 있었다. 건사해야 할 가족을 안으로 보듬으며 전국의 장터를 손금 보듯 훑고 다녔다. 길 위의 작가라 명명될 만큼 한 달에 이 십 여일을 길 위에 있었지만 마음 안엔 언제나 가족이 있었다. 보부상의 자취를 따라 장터를 떠도는 일이 그래서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장터가 여인숙에서 가슴 아래 베개를 받치고 엎드려 글을 쓰면서도 애착하는 물건을 만나 더러 위안을 받기도 했다.

객주문학관 3층 전시실에는 낡은 저울추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김주영 소설가는 전국을 통틀어 저울추를 가장 많이 모아놓은 곳은 객주문학관 한 곳뿐이라고 자부한다. 크거나 작거나 높거나 낮거나 한 저울추가 가지런히 서거나 혹은 누워있다. 모양도 제각각이다. 어디에 쓰였던 저울추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물건을 사고팔 때 주로 사용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실제로 사용해 손때 묻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 손으로 들기에 버거워 보이는 저울추가 있는가 하면 너무 작아서 저울추 역할을 제대로 하기는 할까 싶은 것들도 있다. 보잘것없이 밋밋해서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해 보이는 저울추가 있고 장식이 화려해서 귀하게 쓰임 받았을 것 같은 저울추도 있다. 이토록 다양한 저울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한데 정작 추를 매달았을 저울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객주를 쓰기 위해 전국을 메주 밟듯 하던 시절 김주영 소설가는 유난히 저울에 마음이 끌렸다. 옛 보부상들도 반드시 지니고 다녔을 물건이었다. 저잣거리의 정취가 진하게 밴 저울엔 장돌뱅이들의 애환 또한 서려있을 게 분명했다. 부피가 나가는 저울대는 제외하고 저울추만 모으기 시작했다. 저울추가 있다는 기별을 들으면 충청도 공주든 경상남도 진주든 가리지 않고 부리나케 내달렸다. 지방 골동품 점은 샅샅이 다 찾아다녔다. 개인이 소장한 것은 물론이고 인사동 골목도 수시로 들락거렸다. 여러 번 중국 여행을 할 때도 당연한 듯 저울에 마음이 갔다. 그들 삶의 일부였을 저울을 눈여겨보았고 어쩌다 지니고 오기도 했다. 어딘가에 마음을 쏟는 일은 열정을 살아나게 했다.

저울추를 손에 넣은 날은 100여 년 전 사라진 보부상을 만난 듯 흐뭇했다. 저울 눈금을 후하게 쳐 달라느니 못 준다느니 흥정하는 장사꾼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라던 거상 임상목이 곁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중심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저울추가 보면 볼수록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글을 쓰면서도 저울추를 만져보는 버릇이 생겼다. 무언가에 애착을 갖는다는 건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소설가는 객주를 쓰면서 부단히 자신의 삶을 가꾸고 있었다. 건사해야 할 가족을 안으로 보듬으며 전국의 장터를 손금 보듯 훑고 다녔다. 길 위의 작가라 명명될 만큼 한 달에 이 십 여일을 길 위에 있었지만 마음 안엔 언제나 가족이 있었다. 보부상의 자취를 따라 장터를 떠도는 일이 그래서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장터가 여인숙에서 가슴 아래 베개를 받치고 엎드려 글을 쓰면서도애착하는 물건을 만나 더러 위안을 받기도 했다.

저울대까지 갖춘 온전한 저울 두 개가 전시된 공간이 있다. 그중 큰 것은 김주영 소설가가 중국 후베이성 이창시에 있는 삼협댐을 보러 갔다가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댐을 보고 돌아 나오는데 그곳 과일 상인의 저울이 눈에 띄었단다. 상인에게 대뜸 저울을 팔라고 했더니 의아해하면서도 넘겨주더란다. 차를 타고 그곳을 떠나기 전 뒤를 돌아보니 상인은 소설가에게 판 것과 똑같은 저울을 꺼내서 쓰고 있더라고 했다. 중국은 무엇을 거래하든 저울로 달아서 파는 계량 문화가 발달된 곳이라고 한다. 수박도 참외도 저울로 달아서 파는 나라 중국을 떠올리며 저울에 빠진 소설가를 생각한다. “여축없다라는 경상도 방언이 떠오른다. 김주영 소설가는 조금도 모자라거나 버릴 것이 없는, “정확한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분이다. 객주를 쓰는 동안에도 상황과 배경에 꼭 맞는 낱말 하나를 찾기 위해 한 달여 사전을 뒤진 적도 있다고 한다. 소설가와 저울추는 어쩌면 가장 잘 맞는 짝이 아닐까 싶다.

객주가 세상에 나오기 전 역사 소설은 모두가 정치 일변도였다고 김주영 소설가는 말한다. 왕조를 다룬 이야기는 많으나 민초의 입장에서 쓰인 소설은 드물었다. 김주영 소설가는 역사 속에서 소실된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소년 시절의 대부분을 저잣거리에서 보낸 소설가는 장꾼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막연한 부채의식이 있었다. 보부상의 후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숙제처럼 마음에 지니고 있던 일이었지만 막상 부딪쳐보니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보부상은 천민에 속했으므로 후손들은 숨기기에 급급했다. 양반들은 조상들이 쓰던 담뱃대까지도 보관하고 있었지만 보부상들은 그렇지 않았다. 김주영 소설가는 역사의 행간에서 사라진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내어 세상에 알리는 일에 매진했다. 역사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그 당시에 썼음 직한 말들을 골라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토속어를 찾고 또 찾아 썼다. 저울추처럼 정확한 김주영 소설가에 의해 사라질 번 한 보부상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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