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참나무-엄옥례
누가 치맛자락이라도 당긴 걸까. 집에서 일터로만 쳇바퀴를 돌리던 발길이 무슨 심사인지 뒷산으로 향했다. 칼바람이 물러간 자리에 봄바람이 스며들고 동면에서 깨어난 나무는 분주히 수액을 빨아올리고 있었다. 그 기운을 마시며 잠시 쉬는 산허리,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진 나무둥치에서 가지 하나가 연둣빛 새순을 빠끔 내밀고 있었다.
지난여름에 쓰러진 졸참나무다. 등산로를 넓히느라 뿌리가 드러나 태풍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우람하지는 않아도 제법 실팍하고 도토리까지 조롱조롱 달고 있어, 고만고만한 삶을 위안 받으러 가끔 산을 오를 때면 가난한 마음을 채워주던 나무다. 만져도 보고 흔들어도 보고,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세파에 쓰러져 번성했던 가지도 다 버리고 희망 한 줄기를 살리려는 남편이 보이기 때문이다.
스무 해 전, 신접살림을 차린 동네에서 컴퓨터 가게를 열었다. 컴퓨터 전문회사에 근무한 남편의 기술을 잘 살리면 돈을 많이 벌 거라는 기대로 마음은 벌써 부잣집 마님이었다. 하지만 시류보다 일찍 시작한 탓에 구매자는 없고 가게에는 호기심만 드나들었다. 보증금이 바닥나도록 임대료를 내지 못해 어쩌다 가게 앞으로 지나가는 주인의 눈길은 화살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처자식을 고사시킬 수 없기에 남편은 다시 회사로 나가고 나 혼자 오도카니 가게를 지켰다.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준다는 신神의 말이 사실일까. 마음은 벌써 보따리를 싸고 문 닫을 일만 남았을 때, 그토록 기다려도 불지 않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관청과 기업의 전산화를 선두로 바람은 가정까지 파고들었다.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사람들도 우리 가게를 잊지 않고 있었다. 값싸고 성능 좋은 컴퓨터가 인기를 끌던 때라 남편은 부품을 직접 조립해 자신이 고안한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 우리 가게가 가지를 뻗고 도토리를 조롱조롱 맺자 주변에 컴퓨터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러나 생존경쟁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가게들이 사후관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유명회사 컴퓨터로 돌아섰다.
남편도 변화를 따라야 했다. 몸집을 크게 불리자니 자본금이 턱없이 모자랐으나 기왕 시작한 일이라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그동안 도토리 줍듯 모은 적금과 여기저기에서 자금을 긁어모아 전문회사 대리점을 열었다. 번듯한 매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배가 불렀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어 곳간이 가득해질 것만 같았다. 전문회사라는 배경까지 받쳐주었으니 웬만한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다고 생각한 남편은 사장 흉내를 제법 냈다.
꽃바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려웠던 때의 마음을 잊고 자만하는 사이 사람들은 부품을 사서 컴퓨터를 직접 조립했고 게다가 인터넷 쇼핑몰이 손님을 낚아갔다. 설상가상, 대리점들은 가격 인하 경쟁을 벌였다. 그것은 제가 서 있는 토양을 깎는 일이었다. 흔들리던 가게는 결국 뿌리를 드러내고 고사할 처지가 되었다. 세상의 생태계에도 먹이사슬의 원리가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작동된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것이다.
컴퓨터 장사가 질렸는지 남편은 주점이나 식당으로 힐끗 곁눈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고난 성정으로 보아 향기 뒤에 가시를 품는 아까시나무가 될 수도 없다. 현란한 자태로 남을 유혹하는 장미과도 아닌, 투박한 몸으로 자그마한 도토리를 맺는 참나뭇과다. 그것도 우람한 굴참나무가 아니라 가진 것이라고는 기술뿐인, 이제는 나이가 들어 다른 일을 하려니 덜컥 겁부터 나는 졸참나무다.
작은 가게였지만 기술로 도토리가 열릴 때는 사람 사는 숲에서 한몫을 한다는 자긍심이 있었다. 그런 자양분이라도 먹고 살자 싶어 예전처럼 작은 매장을 열었다. 살림을 알뜰히 꾸려야 하기에 가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남편 손으로 해결한다. 불황 탓인지 에누리하는 손님이 많고 외상값을 못 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짜증이 날만도 하지만 남편은 웬만한 것은 무료로 고쳐 준다. 입소문을 듣고 손님이 조금씩 늘어날 때마다 인심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한다.
남편은 문득, 지난 일이 생각나거나 손님과 마찰이 생기면 평정심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누그러진다. 아직 세상 앞에 포효할 나이인데, 처자식 생각으로 속을 삭이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한때 잘나갔다는 추억만 우려먹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쓰러진 마당에 체면도 겉치레도 삭히면 자양분이 될 터이다.
이제, 남편도 나도 한 줄기 희망을 살려 작은 열매가 열리는 법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우람하게 자라 돋보이고자 하는 욕심보다는 그저 푸른 숲을 이루는 일원으로 이웃과 도토리를 나누며 오순도순 살고 싶은 마음이다. 운에 맡기지 않고 노력한 만큼 배당받고 사는 삶도 좋겠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말이다.
얼마 전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남편의 등을 산으로 떠밀었다. 평소 세 발짝도 걷기 싫은 남편의 뒤를 따랐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오히려 남자가 그리 약해서 쓰겠냐고 타박을 하면서 산을 올랐다. 봄바람에 나무들은 나 보란 듯 신록을 뽐냈고 하나 남은 졸참나무 가지도 소생의 잎을 팔랑이고 있었다. 졸참나무를 턱으로 가리켰다. 뭔가 싶어 바투 다가간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침 일찍,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남편이 나보다 먼저 부스럭거린다. 별일이다 싶지만 짚이는 게 있기에 평소대로 도마질을 하며 아침 준비를 한다. 식탁 가득 반찬을 차려놓고 남편을 기다린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을 들어선 남편이 등산화를 벗는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니 그냥 씨익 웃는다. 얼마 만에 보는 하얀 웃음인가. 저 천진한 희망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