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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좋은 글의 요건

by 자한형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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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의 요건

이 응 백(李應百)

무릇 글을쓰는 동기(動機)는,생각과 느낌을 표현(表現)하고 전달(傳達)하려는 데 있다.따라서 좋은 글이란,생각과 느낌이 효과적으로 표현,전달될 수 있는 글이다.그러면 어떤 글이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전달할 수 있는가?좋은 글이 될 수 있는 요건은 무엇인가?
좋은 글의 요건으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다음의 요건들을 갖추기만 하면 반드시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좋은 글에 이러한 요소(要素)들이 갖추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용이 충실할 것

내용이라고 하여 반드시 깊은 사색(思索)의 결과(結果)나 오묘한 진리(眞理)를 뜻하지는 않는다.어떤 의견(意見)이나 정보(情報),지식(知識),또는 느낌이나 관념(觀念)등 무엇이든지 간에‘쓸 것’이 곧 글의 내용이다.내용이 충실(充實)하다는 것은, ‘쓸 것’이 들어 있고,그것이‘쓸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쓸 것이 별로 없는데 억지로 글을 쓰거나,표현 기교(表現技巧)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겼을 경우에 내용이 충실하지 못한 글이 된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하늘이 쏟아진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녹아 흐늘거리는 아스팔트 위로 똑바로 걸어가려 애쓰고 있다.호흡은 끈적끈적한 황 냄새를 유발시키며,머리를 희미한 혼동으로 몰고 나온다.희미한 혼동 속을 또 낡은 우울한 외마디가 괴롭혀 온다.하얀 스크린 속으로 몽롱히 빠져든다.무너지는 함성에 한동안 시야는 흐려지고 비틀거린다.거품을 물고 악을 쓴 자아의 변명에,살은 닳고 주름으로 올올이 집히어진다.갇혀 타는 마음들이 뒤틀리는 소리 때문에 마음 가득히 오싹함을 담고 방황할 것만 같은 사념들.

이것은‘생활의 여울 속에서’라는 제목이 붙은 글의 서두(序頭)부분이다.무엇을 말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이다. ‘말할 것’이 없는데 억지로 썼거나,지나치게 기교를 써서 멋을 부리려다가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고 말았다. ‘끈적끈적한 황 냄새’니, ‘갇혀 타는 마음’이니 하는 말들을 써서 겉멋을 부리려 했다.
지나친 기교를 부려 알맹이가 없는 공허(空虛)한 글보다 기교는 좀 서툴러도 내용이 충실한 글이 오히려 더 낫다고 하겠다.그리고 내용이 충실한 글을 쓰려면,자기의 식견(識見)을 동원하는 외에,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거나,다른 사람에게서 지식과 정보를 얻거나,쓰려는 대상을 직접 관찰(觀察),조사(調査)하거나 하여 견문(見聞)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독창적일 것

글은 독창적이어야 한다.글이 독창적이라 함은,글에 개인(個人)의 창의력(創意力)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글의 독창성은 크게 보아 주제와 표현 방법(表現方法)에서 나타난다.글을 쓸 때에는,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그대로 옮기거나 모방(模倣)해서는 안 된다.누구나 빤히 알고 있는 것을 써도 독창성이 없는 글이 된다. “옥수수 밭은 일대(一大_)관병식(觀兵式)입니다.”는,이상(李箱)이‘산촌여정(山村餘情)’이라는 글에서 쓴 것이므로 다른 사람이 다시 쓸 수 없다. “옥수수 밭은 군대(軍隊)사열식(査閱式)이다.”라든지, ‘사열받고 있는 군대와 같은 옥수수밭 이랑’등도 안 된다.모방이기 때문이다.또, “남북통일(南北統一)은 우리 민족(民族)이 반드시 성취(成就)해야 할 과업(課業)이다.”라는 주장은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것이므로,특별히 참신(斬新)한 전개(展開)나 표현이 따르지 않는 한 좋은 글의 주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글을 쓸 때,자신의 독창적인 착사(着想),견해(見解),이론(理論)만으로 쓸 수는 없다.비교하고 소개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소견(所見)을 빌려 온다.다만,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남의 소견임을 밝혀야 한다.밝히지 않고 빌려 쓴 것을표절(剽竊)이라 한다.표절은 글쓰기 공부에서뿐 아니라,도덕적(道德的)차원(次元)에서도 극구 피하여야 할 악덕(惡德)이다.

정성이 담겨 있을 것

좋은 글은 진실(眞實)한 내용을 성실(誠實)하게 쓴 글이다. ‘글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거니와,글은 기술적(技術的)인 문제(問題)의 해결(解決)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글쓴이의 온 정신,온 마음이 구현(具現)된 글이라야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진지(眞摯)한 자세(姿勢)로 제재를 수집하고,적절(適切)한 표현을 찾아 내는 데 고심(苦心)하며,몇 번이고 되고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글쓰기의 초보자(初步者)는,흔히 자기가‘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쓰기보다는‘그렇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을 쓰려는 경향이 있다.가령,애국(愛國)이나 효도(孝道)를 권장(勸獎)하는 것 같은,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주제를 애써 선택하려 하기 전에,실제로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마음에 되새겨 보아야 한다.자기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서,남들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 것을 추측(推測)하여 쓴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진실은 가장 큰 힘이다.정성과 진실이 담긴 글이야말로 읽는 이를 이해,설득(說得),감동(感動)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명료할 것

무슨 내용을 썼는지 분명한 것이 좋은 글이다.사생활(私生活)의 내용을 고백(告白)한 일기(日記)외의 모든 글은 읽는 이를 전제(前提)로 하여 쓰는 것이므로,그 뜻이 쉽고 분명해야 한다.
명료한 글이 되려면,우선 내용이 논리에 맞도록 정리(整理)되어야 하겠지만,이에 못지않게 쉽고 간결(簡潔)하게 쓰는 일이 중요하다.어쩔 수 없이 어려운 개념(槪念)을 전달해야 할 경우라 해도,되도록이면 친절히 뜻을 풀어서 써야 한다.난해(難解)하고 복잡(複雜)한 글을 고심(苦心)하여 읽으려는 사람은 적다.베이컨은“학자(學者)와 함께 생각하고,대중(大衆)과 함께 말하자.”고 말한 적이 있다.생각은 학자와도 같이 심사 숙고(深思熟考)하되,그것을 글로 나타낼 때에는 누구나 알기 쉽게 쓰라는 뜻이다.

우리는 자연계(自然界)에서 야기(惹起)되는 신비(神祕)스러운제반 현상(諸般現象)을 직관(直觀)하는 순간(瞬間),무의식중(無意識中)감탄(感歎)을 금(禁)치 못하게 된다.

이 글은 쓸데없이 어려운 한자말을 부려 써서 ᄭᅮ준(水準)높은 지식인(知識人)이라야 이해할 수 있도록 썼으므로,다음과 같이 쉽게 쓰는 것이 좋다.

우리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신비스러운 여러 현상을 바라보는 순간,저도 모르게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다음으로,정확한 어휘(語彙)를 구사(驅使)해야 한다.일찍이 플로베르는 이른바 일물 일어설(一物一語說)을 주장하였거니와,정확한 어휘의 선택은 명료한 표현(表現)의 기초(基礎)이다.
이 밖에,어법(語法)에 맞지 않게 쓰거나,문장의 성분(成分)을 지나치게(省略)하는 것도 글의 명료성을 해치는요인(要因)이 된다.또,유행어(流行語),은어(隱語),속어(俗語)같은 말을 피하고,표준어를 써야 한다.문학 작품의 대화(對話)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어느 특정한 지방에서만 알 수 있는 사투리도 쓰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좋은 글의 요건을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이 밖에도 표현의 경제성,논지(論旨)의 일관성,구성(構成)의 치밀성 등 몇 가지를 더 추가(追加할 수 있겠다.
이러한 요건들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글의 성격이나 글 쓰는 이의 동기(動機)에 따라서 한 요건이 다른 요건보다 더 중요시될 수 있다.예컨대,사사로운 편지에서는 정성이 내용의 충실성보다 더 중요시되어야 하며,어떤 기계의 작동(作動)을 설명하는 설명문에서는 독창성보다는 명료성이 더욱 중요하다.시,소설 등의 문예문(文藝文)에서는 무엇보다 독창성이 생명이다.그러나 어떤 글이건,이러한 요건들을 고루 갖추는 것을 이상(理想)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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