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 정희승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할아버지가 닭장 앞에서 부르셨다. 대문 앞쪽에 있는 닭장은 아랫집 담을 등지고 돼지우리에 바투 붙어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할아버지는 닭장을 들여다보기만 할 뿐 내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닭이 몹쓸 병에 걸렸구나.”
중닭 두 마리가 닭장 구석에서 꾸벅꾸벅 조는 게 보였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번갈아 가며 고개를 숙였다 들기를 반복하면서.
“서둘러야겠구나. 저 닭들을 얼른 산에다 놓아두고 오렴.”
“왜요?” 까닭을 모르는 나는 그 이유를 여쭤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숨탄것이라면 작은 벌레라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 분이셨다.
“치료할 약이 없단다. 이대로 두면 전염병이 번져서 다른 닭들까지 죽게 돼. 우리 닭뿐 아니라 동네 닭이 다 죽을 수도 있단다.”
“정말이에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닭에 병이 옮지 않도록 멀리 떼어놓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머뭇거릴 새가 없었다. 그 둘을 품에 안고 산으로 향했다.
매우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나에게 그 둘은 하늘 아래서 제일 나쁜 녀석들이었다. 세상의 모든 닭을 다 죽게 할 수도 있으니까. 녀석들을 되도록 먼 곳에 두고 와야 했다.
마을의 집들은 골짜기 안쪽 서쪽 산자락에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었다. 집에서 나와 키가 큰 버드나무가 늘어선 개울을 건너 맞은편 동쪽 산으로 들어갔다. 동네 사람들이 앞산이라고 부르는 산이다. 산 능선으로 난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갔다. 작은 산등성이 하나를 넘어 솔숲에 이르자, 다른 닭에게 병을 옮길 수 없을 만큼 충분히 먼 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닭들을 그곳에 내려놓았다. 아니,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나쁜 녀석들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어린 나는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줄 몰랐고, 종교나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에 응답할 만한 능력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닭들은 졸기에 바빠 다른 데로 도망치지 못했다. 작은 녀석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땅바닥에 힘껏 패대기쳤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진 닭이 벌떡 일어났다. 다른 닭을 들어 올렸다. 역시 땅바닥에 힘껏 패대기쳤다.
“나빠. 죽어!”
이번에도 닭이 벌떡 일어났다. 닭들은 죽지 않았다. 작은 몸과 약한 팔에서 나오는 힘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쉽게 죽겠는가. 다시 닭 한 마리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막 내리치려는데 졸고 있는 다른 닭이 눈에 들어왔다. 몹시 고통스러울 텐데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저 몰아치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점점 아래로 숙이다가, 부리가 땅에 닿을라치면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 뿐이었다. 그렇게 같은 몸짓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죽을 위험에 처했는데도 무방비 상태로 그렇게 자울자울 졸았다.
등 뒤에서 마른번개가 치고 우레가 요란하게 터졌다. 그런 것 같았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얼른 닭을 내려놓았다. 가슴이 가위눌리듯 죄어오고 손발이 벌벌 떨렸다. 두려움을 감당할 수 없는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잎이 무성한 개암나무 가지 밑에 두 녀석을 숨겨두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웃집 돌담에 이르렀는데도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더는 걷기 힘들 정도였다. 담 모퉁이에는 어깨높이에 있던 돌 하나가 빠져 풀이 난 곳이 있었다. 가슴을 쓰다듬다가 고통을 참을 수 없어 그 풀을 꼭 움켜쥐었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풀이 뿌리째 뽑혔다. 풀포기를 쥐고서 돌담에 몸을 기댄 채 가슴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깨끗이 쓸어놓은 넓은 마당만 내 앞에 펼쳐져 있을 뿐. 평소 할 일이 없는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마당을 쓰셨다.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무거운 그림자를 끌고 밝게 빛나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얼마나 조용한지 내딛는 발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마당 한가운데쯤에 이르렀을까? 내 주위에 작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상한 점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솔개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편 채 높이 떠 있었다. 동그라미를 그리며 느리게 맴돌면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하늘에서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