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 모두가 기다리는 인물- 전 중 관
「요즘 중국의 누리꾼들이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두드리는 단어는 ‘화이웨이(華益慰)’라는 이름이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이 이름을 검색한다. 그의 병세가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모두 이렇게 한 목소리로 기도한다.
“하느님, 우리의 ‘히포크라테스’를 제발 살려 주세요.”
중구 베이징(北京) 군구(軍區)종합의원의 외과 전문의였던 그는 병마에 시달리며 자신이 평생을 바쳐 왔던 병원의 침대에 누워 있다. 73세인 그는 지난해 7월말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입원실엔 하루에도 수백 명씩 몰려와 그의 쾌유를 빈다. 병실 앞 복도엔 이들이 놓고 간 꽃다발이 수북이 쌓여있다. 7. 21일에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직접 그의 병실을 찾았다.」
위의 글은 지난 2006년 7월 29일(토)에 보도된 동아일보 신문 24면 박스 기사입니다.
그러면 왜, 그토록 많은 중국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어 문병하는 것일까요?
그는 ‘실천하는 의사의 표상’으로 중국 ‘국민의사’요, 환자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평등하게 심혈을 기울여 치료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위급한 환자가 오면 언제라도 병실로 달려 나왔습니다. 한번은 멀리 휴가를 갔다가 한 노동자가 위암 진단을 받았다는 기별을 받고 “열흘 휴가기간 내내 수술을 미룰 수는 없다”며 곧바로 돌아오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답니다. 유명한 외과 의사였던 그에게는 늘 환자들이 몰려들었으며, 진료일이 아닌데도 찾아오는 환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다른 의사들과는 달리 그는 진료일에 다시 오라고 돌려보내지 않고, 근무가 끝난 뒤 사무실에서, 심지어는 밤늦게 집에서도 환자를 보기도 했답니다.
1998년 퇴직한 뒤에도 애타는 심정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외면하지 못했는데, 신화(新華)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퇴직한 후 그가 수술한 환자만 무려 800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는 52년간 수천 건의 수술을 했지만 단 한 번의 의료사고도 내지 않을 만큼 화타같이 뛰어난 의사였을 뿐 아니라, 단 한 번도 환자에게 금품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9년 전 그에게 수술을 받은 장추하이(張秋海)씨는 기념품이라며 1000위안(우리 돈으로 약11만 9천원)이 든 상자를 황망히 건넨 뒤 고향으로 내려갔지만 ‘화이웨이(華益慰)’가 죽은 후에 보니, 이 돈은 병원 인근 은행에 장 씨 명의로 고스란히 예금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병세가 하루가 다르게 위중해지자 그는 최근 ‘시신 기증서’에 서명했답니다. 환자들을 위해 마지막 남은 육체마저 주고 가려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사람입니까?
다음은 우리나라 의사 이야기입니다.
「지난 5월18일 ‘쪽방촌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선우경식 원장이 생을 마감했다. 향년 63세. 그는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빈민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다.
고 선우원장은 21년간 영등포 쪽방촌 골목에 있는 요셉의원을 이끌어왔다. 그의 손길을 거쳐 간 환자만 43만 명. 3년 전 말기 암 진단을 받았지만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날까지도 환자들 곁에 머물렀다. 쪽방촌 사람들은 요셉의원을 ‘가난한 이웃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이곳엔 환자들을 위해 늘 빵과 우유가 준비돼 있다. 매주 화요일엔 미용실로 변한다. 진료과목은 내과부터 치과, 산부인과, 한방진료에 이르기까지 종합병원을 방불케 한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의료복지 혜택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사업실패, 사고, 질병 등으로 극빈층으로 전락했지만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의 의료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이 많다. 요셉의원은 21년째 힘겹게 공공의료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다.
고 선우원장은 사회제도 속에서 구제받지 못한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애쓰기도 했다. 그는 전북 고창의 한 폐교에 알코올중독 환자들의 자활 터전을 마련했다. 현재 알코올중독 전력이 있는 네 명의 남성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선우원장은 큰 뜻을 남기고 갔지만, 그의 역할을 대신할 사회적 시스템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위 글은 ‘영등포 요셉의원 故선우경식 원장의 삶’이란 제목으로 KBS 추적60분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이 쪽방촌 슈바이처의 유언에서 ‘환자는 내게 선물이었다.’라고 하였답니다.
한 가난한 노의사의 삶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에도 중국의 ‘화이웨이(華益慰)’만큼 유명한 슈바이처가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1804∼1864)이 만년에 쓴 단편소설 중에의 여러 가지 인간상을 보여주면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한 작품으로 ‘큰 바위 얼굴’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대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답니다.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傳說)을 듣는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을 잘하는 정치인,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할 말을 다 마친 어니스트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용모를 가지고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란다.」
위의 세 가지 이야기는 상호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국민이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다.”라고 불평하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국민들에게 영향력이 큰 정치인들이나 훌륭한 지도자들이 안타깝게도 부정과 비리의 나락에 빠지는 소식의 신문보도에 접할 때마다, 정말 그 말이 맞는 이야기인 것도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이제는 우리에게도 ‘큰 바위 얼굴’처럼 국민 모두에게 존경받는 정신적인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국민 모두가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다면 그 나라 국민은 불행한 백성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 국민들은 매우 행복한 백성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중국에는 존경할만한 「국민 의사」이며 「히포크라테스」인 ‘화이웨이(華益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도 「쪽방촌의 슈바이처」 선우경식 원장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불평만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국민이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다.”라고 불평하기 전에, 왜 자기 자신부터 모두에게 존경받을 인물로 성장해나가도록 노력하지 않은 것일까요? 나 자신부터 깊이 반성해야할 일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특히 엘리트(Elite)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 자신부터 먼저 ‘큰 바위 얼굴’의 ‘어니스트’처럼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 되도록 갈고 닦으며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요?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아직 닦여지지 않은 '진주'들입니다.
여러분도 평소에 지식과 인격을 갈고 닦아, 장래 국민 모두가 존경할 큰 인물이 되도록 노력하셔요.
약 2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를 기다리듯, 지금 우리는 여러 부문에서 우리 겨레 모두가 존경할 만한 출중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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