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 이옥
선비는 가을을 슬퍼하니 서리 내리는 것을 슬퍼함인가? 초목이 아닌 것이다. 장차 추워지는 것을 슬퍼함인가? 기러기나 벌레가 아닌 것이다. 때를 만나지 못하여 강개한 사람과 고향과 조국을 떠나는 나그네라면 또한 어찌 가을만을 기다려 슬퍼하겠는가? 이상하기도 하다! 바람을 맞이하여 흐느껴 탄식하며 스스로 즐거워하지 못하고, 달을 보면 비통하여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에 이른다. 저들의 그 슬픔은 무슨 까닭에서인가? 슬퍼하는 자에게 물어보니 슬퍼하는 자 또한 슬퍼할 줄만 알지, 그 슬퍼지는 까닭은 알지 못한다.
아, 나는 알겠다! 하늘을 남자에 해당하고, 땅은 여자에 해당하는데, 여자는 음陰의 기운이요, 남자는 양陽의 기운이다. 양기는 자월子月(음력 11월)에 생겨나 진사辰巳(음력 3·4월)에서 왕성한 까닭에 사월巳月(음력 4월)은 순전한 양의 기운이 된다. 그러나 천도天道는 성하면 쇠하는 법이니, 사월巳月 이후부터는 음이 생겨나고 양은 점차 쇠한다. 쇠하면서 무릇 서너 달이 지나면 양의 기운이 소멸하여 다하는데, 옛사람이 그때를 일러 '가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즉 가을이라는 것은 음의 기운이 성하고 양의 기운은 없는 때이다. 동산銅山이 무너지매 낙수洛水의 종鐘이 울고, 자석磁石이 가리키는바 철침鐵鍼이 달려오는 것이니, 물物이 또한 그러하다. 오직 사람으로 양의 기운을 타고난 자가 어찌 가을을 슬퍼하지 않겠는가? 속담에 "봄에는 여자가 그리움이 많고, 가을에는 선비가 슬픔이 많다"라고 한다. 이는 자연이 가져다주는 느낌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진실로 자네의 말 그대로 선비가 슬퍼함이 그 양의 기운이 쇠함을 슬퍼하는 것이라면, 온 세상의 머리 건귁을 아니하고 수염이 난 자는 모두 가을을 슬퍼해야 할 것이다. 어찌 오직 선비만 가을을 슬퍼한단 말인가?"
내가 답하였다.
"그렇다. 바야흐로 저 가을 기운이 성하면, 그 바람은 경동하고, 그 새들은 멀리 날아가고, 그 물은 차갑게 울고, 그 꽃은 노랗게 피어 곧게 서 있고, 그 달은 유난히 밝은데 암암리에 양의 기운이 삭는 조짐이 소리와 기운에 넘친다면 그것을 접하고 만나는 자 누군들 슬퍼하지 않겠는가? 아! 선비보다 낮은 사람은 한창 노동을 하느라고 알지 못하고, 세속에 매몰된 자들은 또 취생몽사醉生夢死를 한다. 오직 선비는 그렇지 아니하여 그의 식견이 족히 애상을 분변하고, 그 마음 또한 사물에 대해 느끼기를 잘하여, 혹은 술을 마시고, 혹은 검을 다루고, 혹은 등불을 켜고 고서를 읽고, 혹은 새와 벌레들의 소리를 듣고, 혹은 국화를 따면서 능히 고요히 살피여, 마음을 비우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까닭에 천지의 기미를 가슴속에서 느끼는 것이요, 천지의 변화를 체외에서 느끼는 것이다. 이 가을을 슬퍼하는 자가 선비를 두고 그 누구이겠는가? 비록 슬퍼하지 않으려 하더라도 될 수 있겠는가? 송옥宋玉이 말하기를 '슬프구나! 가을 기운이여'라고 하였고, 구양수가 말하기를 '이는 가을 소리이다'라고 하면서 슬퍼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가히 선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경금자絅錦子는 말한다.
"내가 저녁을 슬퍼하면서, 가을이 슬퍼할 것이 없는데도 슬퍼지는 것을 알겠다. 하루의 저녁이 오면, 엄자가 붉어지고 뜰의 나뭇잎이 잠잠해지고, 날개를 접은 새가 처마를 엿보고, 창연히 어두운 빛이 먼 마을로부터 이른다면 그 광경에 처한 자는 반드시 슬퍼하여 그 기쁨을 잃어버릴 것이니, 해를 아껴서가 아니요, 그 기운을 슬퍼하는 것이다. 하루의 저녁도 오히려 슬퍼할 만한데, 일 년의 저녁을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일찍이 사람이 노쇠함을 슬퍼하는 것을 보니, 사십 오십에 머리털이 비로소 희어지고 기혈이 점차 말라간다면 그것을 슬퍼함이 반드시 칠십 팔십이 되어 이미 노쇠한 자의 갑절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노인이 된 자는 어찌할 수 없다고 여겨서 다시 슬퍼하지 않을 것인데, 사십 오십에 비로소 쇠약해짐을 느낀 자는 유독 슬픔을 느끼는 것이리라! 사람이 밤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저녁은 슬퍼하고 겨울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유독 가을을 슬퍼하는 것은, 어쩌면 또한 사십 오십 된 자들이 노쇠해감을 슬퍼하는 것과 같으리라!
아! 천지는 사람과 한 몸이요, 십이회十二會는 일년이다. 내가 천지의 회會를 알지 못하니, 이미 가을인가, 아닌가? 어쩌면 지나 버렸는가? 내가 가만히 그것을 슬퍼하노라."
* 경금자絅錦子 - 이옥의 호
* 송옥宋玉 -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 구양수 - 중국 북송의 시인
* 머리 건귁 - 여자들의 머리를 장식하는 수건
* 엄자 - 중국 감숙성에 있는 산, 해가 지는 산, 노경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