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 수필가 “삶이라는 날줄에 영혼의 씨줄로 짜내는 창조물”
전북문학관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문인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상주작가로 활동 중인 소선녀 수필가가 지역 문학을 지켜온 전북 여성 문인에 대한 문학 세계를 탐구하고 멘토링한다. 세 번째 시간에는 박일천 수필가를 만난다.
소: 작가님은 문학이 우리 삶에 어떤 이로움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박: 넓은 의미의 문학은 문학, 사회학, 사학, 철학, 심리학을 포함합니다. 그리스 고대문학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축적하여 온 문학의 힘은 지성과 휴머니즘, 인간이 살아가야 할 방향과 정의를 제시하며 연약한 인간을 보다 나은 길로 이끌어온 지성의 보고입니다. 간접 체험인 독서를 통해서 지성을 쌓고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오는 수필을 쓸 수 있다면, 심리학자 메슬로우가 말하는 인간 욕구의 마지막 단계인 자아 성취 즉 영성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영혼을 맑게 고양하고 사물을 성찰하여 순정하게 글을 써서 타인을 감동하게 하는 글을 쓴다면, 자신과 타인의 삶을 행복하게 엮어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소: 작가님은 현재까지 3권의 작품집을 내셨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작으로 뽑는 것, 또는 애착이 가는 작품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달궁에 빠지다』를 대표작으로 생각합니다. 첫 작품 『바다에 물든 태양』은 자전적 이야기 형식으로 서정과 서사를 섞어 수필을 썼습니다. 두 번째 수필집 『달궁에 빠지다』는 주변의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며 사물과의 교감을 통해 형상화하여 글을 쓰려고 심혈을 기울였어요.
수년 동안 어둠 속에서 지내던 애벌레가 매미로 변신하여 날개를 펴고 세상 밖으로 나오듯이. 굼벵이가 허물을 벗고 탈바꿈하여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글로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언어 구사와 어휘 선택의 조화를 이루려고 한 문단을 가지고 몇 시간씩 씨름하기도 했습니다. 간명하고 정황을 압축하려는 문장 다듬기에 심혈을 쏟았어요. 가물가물한 기억 속의 풍경 깊은 내면에 묻혀 있던 추억, 무의식의 심연 속에 갇혀 있던 ‘어린 시절’을 두레박으로 퍼 올려 ‘원형의 흐릿한 모습’을 재생시켜 글로 옮기는 작업. 가슴 저리게 했던 「아장사리」와 「멍울」은 어릴 적 아픔을 벗어 버리고 유년의 트라우마를 풀어내는 정신적 해방구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어릴 때 살던 동네 풍경과 기억의 매듭을 풀어 그리움을 담아냈고요. 홀로 어렵사리 두 딸을 키우며 꿋꿋하게 살아온 어머니와 외롭게 자란 유년의 나에게 보내는 치유의 글입니다. 또한, 역사, 아름다운 자연, 새로운 세상 이야기가 글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사회현상에 대한 글을 쓰게 하였어요. 제 삶을 여러 색깔로 물들어 다양한 작품을 쓰려고 하였습니다.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들여 형상화와 낯선 문장을 쓰려고 토지 문학 대상을 받은 「울지 않는 반딧불이」처럼 수십 번 다듬은 글이 여러 편 있습니다. 이처럼 시간과 공을 들인 제 분신 같은 작품이 『달궁에 빠지다』 에 들어있어서 저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해요.
소: 문학작품은 흔히 일상과 밀접한 소재를 담기도 합니다. 작가님께서는 작품의 소재를, 또는 영감을 어떻게 찾으시나요?
박: 일상에서 소재를 찾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보았을 때 글감이 떠오릅니다. 여행이나 산책길에서 보기 드문 사물을 보거나 새로운 풍광을 볼 때, 길 위에서 그들만의 삶을 보았을 때, 염전이나 잠바브웨에서 목각을 깎는 소년을 본 감회 등, 평소 볼 수 없는 낯선 것을 발견한 느낌을 소재로 글을 씁니다. 본 것과 생각한 것을 메모하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제목을 정하고 주제와 연관되는 소재를 찾아 이야기를 엮어갑니다. 새로운 대상과 사물을 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글을 쓰지요. 글을 쓰면 그날로 초고를 끝내고 한두 번 퇴고한 뒤 덮어 두었다가 틈이 날 때 여러 번 퇴고를 거듭합니다. 문장을 다듬을 때는 어휘를 다양하게 사용하려 합니다. 작품 안에 낯선 문장을 한 문장 이상 넣으려 고심하여 문장을 다듬은 뒤 글을 마무리하지요.
소: 작가님의 문학을 관통하는 한마디를 해주신다면요.
박: 문학은 삶이라는 날줄에 영혼의 씨줄로 짜내는 창조물이다.
소: 끝으로 후배 문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인생의 가장 푸른 날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일상의 거미줄에서 빠져나와 틈틈이 글을 쓰는 순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생을 다시 조명하는 시간이지요.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은 메마른 땅에 묘목을 심고 가꾸는 것처럼 고단한 일입니다. 힘들어도 삶의 흔적을 나이테처럼 켜켜이 새겨볼 일입니다. 가치 있게 살고자 고민하는 만큼 생의 의미도 깊어져 갑니다. 과거 어느 순간을 떠올려 글을 짓는 것은 잃어버린 지난날을 되찾아, 밋밋한 일상에 윤기를 더해주는 한 줄기 솔바람 같은 것이 아닐까요. 인생을 성찰하여 글을 쓴다는 사실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삶을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일천 작가는 2012년 대한문학으로 수필, 2015년 지구문학으로 시인, 에세이스트 수필로 등단했다. 평사리 토지문학 수필 부문 대상, 제13회 해운문학상 본상(수필), 제20회 공무원 연금 문학상 수필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수필집으로 『바다에 물든 태양』, 『달궁에 빠지다』,『경계 너머 세상을 걷다』가 있다.
인터뷰어=소선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