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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비니(석태문 베트남 이야기)

여성이 힘센나라 베트남

by 자한형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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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힘센나라 베트남/석태문

베트남 사회에서 여성이 가진 지위는 어느 정도일까? 여성은 베트남의 사회발전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까? 여성의 권위가 높다면 그것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총원은 48명인데, 여직원이 31명이다. 여직원 비율이 64.6%로 압도적이다. 다낭시청 공무원도 여성이 더 많다.

베트남 사회에서 공공기관이 여성 친화적 근무처인 것 같다. 한국의 유사 공공기관과 비교하더라도 베트남의 여성 비율은 압도적이다. 그러다보니 여성의 경제력도 높다.

경제적으로 남성에 의존 크지 않아일할 곳 쉽게 찾을 수 있어

베트남 여성은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여성은 마음만 먹으면 일할 곳을 찾을 수 있다. 직장에 취직하거나 개인 가게도 낼 수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중 한 끼만 하는 이동식당을 개설하기도 한다.

아침식당은 보통 집의 1층 공간에서 연다. 점심과 저녁은 길거리 식당이 많다. 가져온 식재료를 다 팔고나면 가게를 접는다. 길거리 식당을 하는데 특별한 허가가 필요한 것 같지 않다. 워낙 길거리 음식이 발달하다보니, 돈을 벌어야할 상황이 되면 여성은 쉽게 거리창업을 한다.

당연히 여성들의 식사준비 부담도 적다. 동료 여직원은 시부모 집에서 같이 산다. 아침은 온 가족이 바깥에서 사먹는다. 점심은 시모가 준비하고, 저녁은 여직원이 준비한다. 부부공무원인 여직원은 하루 세 끼를 다 바깥에서 사먹는다.

외식문화가 발달하였으니, 가정식은 상대적으로 퇴보한 것일까. 가정식을 꼭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적다. 집밥을 중시하는 우리에 비하면 베트남 여성의 식사준비 부담은 매우 적은 것이다.

물론, 베트남 여성들의 지위가 다 높은 것은 아니다. 엄밀하게 볼 때 성평등(gender equality) 관점에서 여성은 여전히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 정년 차이, 여성이 가사의 중심이란 뿌리 깊은 관습 등은 대표적 차별이다.

베트남의 역사에는 고난과 핍박, 전쟁이 많았다. 남자들이 전쟁에 참여할 때 여성도 직접 참전하였고, 집안을 돌보고, 아이들을 키워 냈다. 나라가 전쟁터였으니 여성도 남성 못잖은 수난을 겪었다. 베트남 여성은 고난기에 사회와 가족에게 존중받았다.

평화기에는 여성에 대한 존중감이 떨어졌다. 베트남 여성의 자존감, 특별한 힘은 지금도 여전한가? 이런 의문들이 베트남 여성을 주목한 이유이다.

여성의 날에 직장에서는 여직원들에게 다과회와 꽃선물로 축하와 감사의 뜻을 전한다. 가정에서는 남성들이 아내엄마누나여동생에게, 친구와 지인사이에서는 남자가 여자들에게 꽃선물을 한다.

38일 국제여성의 날, 1020일 베트남 여성의 날곳곳에서 꽃선물

다낭 생활 8개월이 지났다. 아내는 집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다낭에 도착한 3월초를 생각해 본다. 살림에 요긴한 물품을 장만하려고 공유차량 그랩(grab)의 앱을 깔았다.

행선지만 기입하면 그랩을 이용해 시내 어디든 갈수 있다. 베트남 친구들과 한국인들은 롯데마트를 소개해주었다. 가장 규모가 크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다.

마침 그날이 여성의 날이었다. 마트 1층 로비에서 직사각형의 긴 테이블 2개를 연결하고 그 위에 음식, 케이크, 꽃들을 차려 놓았다. 테이블을 둘러싼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여성들은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행사제목을 붙여 놓았지만 베트남에 도착한지 겨우 며칠이니, 베트남어가 까막눈이었다. ‘여성과 관련되는 행사를 하는구나하며 지나치려 하다가 호기심에 한번 물어보았다.

 

이게 무슨 행사입니까?”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대답을 해준다. “, 오늘은 국제 여성의 날입니다.”

국제 여성의 날이니, 한국에서도 이 날을 기념할 터인데 부끄럽게도 나는 국제 여성의 날을 이날 처음 알았다. 관심이 없었던 탓이겠지만, 국제 여성의 날 행사를 한국은 베트남처럼 거창하게 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국제 여성의 날은 여성이 존중받는 날이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인정하는 날이다. 남편, 동료, 아들, 남친 등 모든 남성들이 여성의 수고와 활동에 감사를 표한다.

그랩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올 때, 시내 곳곳에서 이 날을 기념하는 꽃들이 보였다. 꽃다발을 파는 가게도 많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회사에서는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하는 듯 여성에게 꽃다발을 주는 모습이 보였다.

베트남에는 여성의 날이 하나 더 있다. “아니, 한 나라에 뭔 여성의 날이 두 개나?” 1020일은 베트남 정부가 정한 베트남 여성의 날이다.

무게로 보면 38일 국제 여성의 날보다 이 날이 더 가치있는 날이다. 다낭에 와서 1주일도 안된 시점에 맞은 국제 여성의 날이라서 잘 알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1020일 베트남 여성의 날이 규모가 큰 축제였다.

베트남 여성의 날국제 여성의 날보다 훨씬 꽃 선물을 많이 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들은 엄마와 누나여동생에게, 남친은 여친에게, 회사에서는 동료 여성에게 축하 꽃을 선물한다. 공공기관이나 회사는 오찬과 음악이 곁들인 기념행사도 연다.

여성의 날에는 남자가 상대 여성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이 가장 큰 이벤트이다. 만약 이날 남친이 여친에게 꽃을 선물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그녀의 남친이 아니다.

베트남 친구도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선생님, 내일 꼭 사모님께 꽃 선물을 해드리세요.” 한국에서 결혼초기 결혼기념일에 두 번 연속 꽃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처음엔 받았으나, 두 번째는 아내가 화를 냈다. “이 비싼 걸 왜, 쓸데없이.” 그렇게 공격 받은 후 아내에게 꽃 선물을 하지 않았다. 베트남에 와서 다시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라니...

물론 아내의 성격을 아는지라 나는 꽃을 선물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 일로 화를 내지도 않았고, 농담으로라도 꽃 안 사줘요?”라고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내가 정말 꽃을 살지도 모르니.

베트남 부부들이 야외에서 춤을 즐기고 있다. 전쟁을 많이 겪은 베트남에서는 여성들도 적에 맞서 싸웠을만큼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당당하다.

속담에 담긴 여성의 강인함'적이 문앞에 나타나면 여자는 싸우러 나간다

베트남은 중국과 역사적으로 인연이 많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나라들이 겪는 숙명이기도 했다. 베트남은 기원전이래로 천년이상(기원전 111~서기 939)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베트남 역사에서 중국에 대한 베트남 여성들의 무력투쟁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베트남은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역사학자 윌리엄 털리(William S. Turley)전통 베트남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부분적으로는 모계의 흔적을 지녔다고 보았다. 기원전 111년 중국 한나라가 베트남을 침공, 지배한 이래 베트남 최초의 저항운동은 서기 40년 쩡 쩌억(Trung Troc) 자매와 쩡 니(Trung Nhi) 세 여인이 주도한 독립투쟁이었다.

적이 문 앞에 나타나면 여자는 싸우러 나갑니다.” 오래된 이 속담은 베트남 역사에서 침략한 적병에 대한 여성의 저항, 투쟁이 얼마나 일상적이었는가를 말한다.

쩡 쩌억 자매는 한나라에 항거할 때 8만명의 병사들을 직접 양성했다. 비록 쩡 쩌억 자매의 대중국 투쟁은 실패로 끝났지만 베트남이 중국의 지배를 벗는 촉매제가 된 것은 분명하였다.

중국의 베트남 지배기에 도입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제도는 베트남 사회에 가부장 질서를 확립하였다. 귀족학교에는 남성만 입학할 수 있었고, 과거시험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베트남 전통의 모계적 전통은 거의 해체되고, 부계 질서가 자리 잡았다.

돌아보면 고대 베트남 사회에서 애국심의 원천은 모계적 전통, 여성의 힘이었다. 여성이 공동체의 주체였고, 외적에게는 무력투쟁의 지휘자가 되었다.

고대 베트남 사회에서 여성은 강했고, 남성은 상대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현대 베트남 여성의 당당함, 강인한 생활력은 어쩌면 베트남 역사에서 강고하게 뿌리내렸던 모계적 전통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백년전쟁은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에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도 19세기~20세기 중엽까지 세기의 전쟁을 겪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은 시골마을 출신의 스무살도 되지 않은 처녀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베트남의 백년전쟁 시작은 프랑스와 미국과의 전쟁이었다, 서막은 프랑스가 무역과 선교 목적으로 인도차이나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1930년대 민족주의운동 본격화하면서 여성의 사회참여 늘어

베트남의 응웬(Nguyen)왕조는 프랑스의 내정간섭에 대한 저항으로 선교사들을 처형하였다. 나폴레옹3세는 자국의 선교사 처형을 베트남 침공의 기회로 잡았다. 결국 1880년대에 베트남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프랑스 지배기에 베트남 여성들이 특별히 저항한 활동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베트남의 상류가문은 딸을 유럽 남성들에게 적극적으로 시집보냈다.

유럽 남성과의 결혼은 베트남의 상류층 가문 여성이나 상류층 여성이 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었다. 유럽 남편이 귀국하면 고향에 남겨진 여성은 베트남 사회의 주류로 등장했다.

결과는 냉소적이었다. 유럽 남성들은 동아시아 여성들을 아름답지만 정숙하지 않고, 순결에 관심이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남성적 관점일 뿐이다. 가정이 있는 유럽 남성이 인도차이나에 와서 현지여성과 결혼하고, 자녀도 낳았다.

유럽 남성의 책임은 어디로 갔는가? 필자는 오히려 베트남 여성들의 강인한 DNA를 칭송하고 싶다.

1930년대는 베트남의 민족주의 운동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여성의 사회참여도 본격화되었다. 이 시기 베트남 문학에 등장하는 여성은 가정, 어머니란 제한된 영역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소설속의 여성들은 강인한 여성상이었다. 베트남 여성노동조합총연맹은 여성의 이익을 주장했고, 유급 출산휴가, 평등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했다.

프랑스, 미국과 치른 두 차례의 인도차이나 전쟁(1945~1975)에서 베트남 여성은 한() 제국에 대항했던 쩡 자매와 마찬가지로 간호사, 물자배달, 마을순찰대, 정보·선전요원으로 활동했고 입대하여 직접 전투에 참여하거나, 지하에서 저항군의 역할도 수행했다.

베트남 여성은 외국의 점령세력에 대항하여 조국 독립투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전쟁에 참여한 여성이 늘면서 베트남 정부는 여성의 권위, 사회참여를 대폭 확대시켰다. 1967년 결의안은 공공부문 일자리에서 여성참여를 최소 35%, 교육부문 일자리는 50~70%까지 여성에게 할당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치는 1970년에 들어와 모두 실현되었다.

승전, 통일로 남성 경제활동 복귀하며 상황반전여성 사회참여 줄어

베트남은 1975년 통일을 이루었다. 남성들이 경제활동에 복귀하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여성의 사회 참여는 급격하게 줄었다.

1986년 가정법은 출산휴가를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으나, 1988년 각료회의에서 고용주의 불만을 받아들여 출산휴가를 4개월로 축소하였다. 현재 베트남 여성들은 6개월의 출산휴가를 즐기고 있지만, 이는 1930년대와 동일한 수준이다.

외형에서 드러난 베트남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상당히 높아 보인다. 그러나 법의 관점에서 성평등 현실을 보면 여성에게 녹녹한 상황이 아니다.

여성의 날 축하 오찬. 베트남에는 3'국제 여성의 날'10월 베트남 자체 '여성의 날' 등 두개의 여성의 날이 있고 각 직장에서는 꽃선물과 오찬 등으로 여직원들에게 축하인사를 한다.

현대 여성은 이중의 압력을 받는다. 정부는 여성에게 경제·정치 활동에 적극 참여하라고 말한다. 사회·관습으로는 여성은 가정사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집안일과 바깥일(경제·정치)을 다 잘해야 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엄청난 부담이자 족쇄이다.

과거에는 자녀를 낳으면 그냥 키우면 되었다. 지금은 건강하고, 똑똑하게 키워야 한다. 좋은 음식, 경쟁에서 이기도록 좋은 학교도 찾아야 하고, 음악과 스포츠, 영어·수학 등 과외도 시켜야 한다. 자녀에게 들어가는 양육비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여성이 혼자 하긴 힘들다.

눈에 띄는 차별도 있다. 남성은 60, 여성은 55세로 정년이 다르다. 5년 차이는 베트남 사회에서 공공과 민간을 불문하고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장치에 다름 아니다.

고령화 대응을 위해 정년을 남성 62, 여성 60세로 연장할 계획이지만 여전히 2년의 차별이 있다. 무슨 이유일까?

외형적으론 여성의 사회적 지위 높아보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녹치않은 상황

베트남의 성평등법(Law on Gender Equality)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을 남녀 간에도 완전하게 실현하도록 한 법이다.

성별을 이유로 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안 된다. 젠더(gender)는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여성과 남성의 특징, 지위, 역할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우리는 젠더를 간단히 사회적 성이라 말하며, 생물학적 성인 섹스(sex)와 구별한다.

성평등을 이야기할 때 젠더는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모든 법적 장치 속에 젠더 개념이 녹아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베트남 사회가 진정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완전한 평등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 대한민국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성평등법에는 6가지 기본원칙이 있다. 남녀는 사회와 가정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동등하며, 젠더 관점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

성평등 촉진과 모성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조치·정책은 젠더 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젠더 주류화(mainstreaming)가 베트남 사회에 정착되도록 관련법을 지속 보완·발전시켜야 한다. 성평등 실천을 위해 기관, 조직, 가족, 개인은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성평등 실현을 위한 원칙은 베트남 사회에서 성평등을 제약하는 모든 관습과 문화로부터 법과 제도적 장치로 강제, 강화할 때 실현될 수 있다. 엄격한 법적 기준에서 볼 때 현대 베트남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개선할 점이 너무나도 많다.

여성전문가들은 남성이 여성의 가사를 돕는다(help), 남성이 가사의 일부를 분담한다(share)’는 말을 싫어한다. 가정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책임지는 공간이다. 남성이 가정 일을 더 많이 분담하면 할수록, 여성은 가사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회적 경력을 닦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성평등을 위한 베트남 정부의 노력은 놀랄만했다. 2014년 베트남은 유엔이 15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가별 성평등지수에서 60위를 기록하였다. 아직 올라갈 숫자가 많이 남았지만 UN은 베트남의 성평등도가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개선되었다고 발표했다.

여성의 날을 맞아 남성이 여자친구에게 꽃선물과 저녁식사로 축하하고 있다. 이날 여자친구에게 꽃을 전하지 않으면 그다음달부터 관계가 깨질 정도로 여성의 날 꽃선물은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다.

돈도 벌고 가사도 책임지길 원하는 사회분위기성평등원칙 어긋나

여성의 32%가 배우자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여성의 54%는 정서적 폭력을 겪고 있다. 1988년에 도입된 두 자녀 정책이후 초음파기술을 이용한 성선택 낙태도 만연해있다,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은 남성보다 13%나 임금을 적게 받는다.

여성의 정치참여는 1997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베트남의 성평등화 작업이 빠르게 진행 중이지만, 할 일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수치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사회는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한 여성이 되기를 원한다. 여성은 돈도 벌어야 하고, 가정사도 책임지고, 더 많은 교육도 받고, 자기경력도 계속 키워야 한다. 이 모든 과업을 완수하려면 여성은 슈퍼우먼이 되어야한다.

여성에게 부과된 어려움을 해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남성에게 출산휴가를 주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여성에게만 주는 출산휴가는 남성은 항상 일하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여성은 출산휴가로 일에서 배제되고, 경력관리에 차질을 빚어도 괜찮다는 관념으로 연결된다.

이런 관념은 성평등법을 명백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남성이 이용가능한 출산휴가는 5일뿐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90, 100일까지 출산휴가를 간다. 남성의 장기 출산휴가는 여성의 부담을 줄이고, 여성의 조기 직장복귀, 경력관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베트남 역사에서 여성은 주도세력이었다. 베트남의 고대사회는 모계적 전통이 강하다고 해석할 정도였다. 서기 40년 중국의 베트남 지배에 저항한 쩡 자매의 독립투쟁 DNA는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이 겪은 거의 모든 누란(累卵)의 위기에 여성은 과감히 나섰다. 일과 가정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면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

그럼에도 베트남의 문화와 관습은 여전히 여성을 제약한다. 베트남 사회가 여성에게 슈퍼우먼의 역량을 계속 강요하는 것은 성평등 원칙에 어긋난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편에서 여성이 활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 100m 달리기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늦게 출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베트남을 성차별 없는 건강한 사회로 만들어가는 지름길이다.